내용이 많이 특이하긴 하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내 이름은 도로시 시모어다. 마흔다섯 살이고, 이목구비에는 피로의 흔적이 약간 엿보인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되는 것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P9

그는 저 멀리에 보이는, 검은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집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아마도 죽어가고 있을 그 청년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길 위에 홀로 남겨졌다. 갑자기 그 청년이 눈을 뜨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 P18

"당신도 알겠지만, 난 돌이킬 수 없어요. 나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요."

"사람은 뭐든 돌이킬 수 있는 법이지."

"아뇨,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인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당신도 그걸 느낄 거예요. 당신은 그걸 알아야 해요. 그걸 알지 않으면 안 돼요." - P35

"그는 당신을 떠났어요. 그래서 벌 받은 거죠. 인생은 그런 거예요."

"너 유치하구나. 하지만 고맙게도 인생은 너처럼 그렇게 유치하지 않아."

"인생은 유치할 수 있어요." - P50

낮의 아름다움, 밤의 혼란, 알코올과 쾌락이 선사하는 현기증,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 일이 가져다주는 흥분, 그리고 건강. 또한 잠이 베개 위에, 죽음의 자세 속에 우리를 다시 묶어두기 전에 각자의 앞에 놓인,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거대한 낮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생생하게 일깨우는 믿을 수 없는 그 행복을. - P74

그녀는 지난 오 년 동안 프랭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그를 만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오후 시간이 갑자기 비었거나 새 애인이 그녀의 감정적 용량을 감당하지 못한 거라고 추측했다. - P90

"당신과 함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그 살아 있는 대답이니까. 신 그 자신과 함께 신의 존재에 대해 토론할 수 없는 것처럼." - P99

"루이스…… 네가 그들을 죽인 거 아니지, 그렇지?"

"누구요?"

"모두 말이야. 프랭크, 볼튼, 그리고 루엘라."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증거가 전혀 없거든요. 그들은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 - P113

1. 내 허락 없이는 절대로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2. LSD 복용을 끊는다.

3. 이 집에서 나가 혼자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 P124

"당신이 알지 모르지만, 폴이 죽든 살든 내겐 아무 상관 없어."

"그렇다면 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폴을 구한 거야?"

"당신은 그를 좋아하고, 그가 죽으면 힘들어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만약 폴이 내 애인이 아니었다면 넌 가만히 앉아 서 그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을 거라는 뜻이야?"

"네." - P144

"이보세요, 난 사람들이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난처한 일이죠.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와 함께 사는지, 무엇을 해서 사는지, 누구와 함께 자는지, 그들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죠. 아무튼, 다들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조금은 있어야 편안하죠,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 P154

루이스가 내 손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손가락 사이로 뜨뜻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여섯 달 전 인적 없는 길에서 이글거리는 불빛을 받으며 이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을 때, 이것과 똑같은 피가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을 때 왜 아무런 예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나는 루이스를 그곳에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그가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다. - P16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12-19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재밌나 보군요. 제가 읽었던 사강의 소설은 좀 싱거웠어요. 그 뒤로 안 읽게 되더군요.^^

새파랑 2021-12-19 16:53   좋아요 0 | URL
페크님은 쎈(?)걸 좋아하시는군요 ㅋ 그럼 이 책도 별로이실거 같아요 ㅎㅎ
 
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와서 보니 모든것이 자신을 슬프게 할 씨앗이 아니었던가˝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볼때면 항상 생각하는게 있다. ‘과연 내가 저 시대에 살았더라면 나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았을까?


시간이 흐른 후에야 누구나 쉽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그때 그 시절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녹색광선에서 여섯번째로 출판된 책 <빛 속으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작가인 ˝김사량˝이, 일본어로 쓴 단편을 모은 작품이다. 솔직히 ˝김사량˝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1914년 태어난 그는 평양에서 항일시위를 하다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제대에 입학했으며, <빛 속으로>를 일본어로 써서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지만, 한때는 일본을 위한 글을 쓰기도 하였으며, 이후 중국에 있는 항일근거지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 후 그는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고 6.25. 전쟁때 북한의 종군기자로 참가하여 1950년에 사망한다.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친일 이력에다가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가게되어, 우리나라와 북한 어디에도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잊혀졌던 작가였던 ˝김사량˝.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저항작가로 다시 알려지게 되면서 그의 작품은 주목받게 된다.


이 작품에 실려있는 단편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를 읽어보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에 더하여,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1.

표제작인 <빛 속으로>에세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주요 테마는 이름. 됴쿄국제대학 학생인 ˝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나˝는 빈민촌의 S 협회에서 이이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를 ˝남 선생님˝이 아닌 일본식 이름 ˝미나미 선생님˝ 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이걸 고치려고 하지 않고 ˝미나미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내버려 둔다. 오히려 조선인의 이름을 감추면서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곳에서 살아가기에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러한 것에 대한 가책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조선인이라고 하면, 저런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기분 속에는 애정 이외에 나쁜 의미의 호기심이랄까, 아무튼 다른 감정이 앞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그런 식으로 나를 불렀을 뿐이에요.]  P.22



이후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이 ˝야마다 하루오˝를 만난다. 그 아이는 ˝나˝를 볼때마다 ˝조센징˝이라고 놀려대고, 조선인을 증오하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아이였다. 처음에 ˝나는˝ 그를 일본인 아이라고 알았지만, 이후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본인이고, 어머니는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고 조선인을 싫어하며, 어머니는 자신이 조선인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야마다 하루오˝에게 ˝나˝는 연민을 느끼고, 그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아이와 가까워 질수록 나는 왠지 모를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한 줄기 빛을 보게 된다.

----------------
˝선생님, 나는 선생님 이름을 알아.˝

˝그래? 말해봐.˝

˝남 선생님이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내 손에 자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웃옷을 내던지고 달려 내려갔다.
나도 문득 구원받은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쓰러질 듯 타다닥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P.68



2.

두번째 작품인 <천마>는 경성을 배경으로, 일본인 관료를 등에 엎고 온갖 기행을 일삼는 작가 ˝현룡˝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준 낮은 외국어와 얕은 지식을 앞세워서 깨어있는 작가 행세를 하는 ˝현룡˝, 하지만 그의 만행을 더이상 봐줄수 없었던 일본인 관료˝오무라˝는 그에게 절로 유배를 가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절에 너무나 들어가기 싫었던 그는 일본에서 우연히 알게된 ˝다나카˝라는 작가가 경성에 방문하여 관료 ˝오무라˝를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작가 ˝다나카˝를 찾아가 그가 절에 안들어가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일본인 앞에서 조선인을 욕하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천룡˝을 보면서 작가인 ˝다나카˝는 그의 모습을 조선의 대표적인 ‘인텔리‘로 보게된다. 결국 설득은 실패하고, 그는 자신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 약간은 미쳐버리게 된다.

[일본인을 만났을 때는 일종의 비굴함으로 조선인의 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도 일본인과 동급이라고 믿는 그였다. 드디어 현룡은 불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나는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민족성을 생각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네. 다나카, 이보게 자네, 내 기분을 알겠나?˝]  P.120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일본인 앞에서 굽신거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천룡˝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인텔리‘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3.

세번째 작품인 <풀이 깊다>는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식민지의 이중언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정책 중 하나인 ‘색의 장려(백색 옷의 착용 금지)‘를  위해 산민들에게 일본어로 연설하는 군수(주인공의 작은아버지), 그리고 이를 조선어로 통역하 는 코풀이 선생님(주인공의 중학교 은사)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프기만 하다.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보던 주인공 의대생 ˝박인식˝은 이후 흰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먹물을 뿌리는 폭력성을 목격하게 되고,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국의 비통함을 체감한다. 이후 그는 화전민들의 치료와 야학을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일본의 폭력성을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던 화전민의 모습은 마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안타까움과 겹쳐보였다.

[방화는 쫓겨 들어가는 그들이 이 세상에 퍼붓는 일종의 저주일까? 군청에서는 자기 관할 내에서 만큼은 화전민들을 살게 할 수 없다며 사방에서 화전민을 쫓아내기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산속 깊이, 산속 깊이.]  P.175




일제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그리고 ‘적의 언어‘인 일본어로 글을 썼던 작가 ˝김사량˝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책의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책을 읽고나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인 <문맹>이 떠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때 일본에 저항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저항문학 이겠지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는 것 역시도 저항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간 사람들에게 위로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Ps 1. 표제작인 <빛 속으로>는 정말 잘 쓰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Ps 2. 이로써 녹색광선에서 출판한 여섯권의 책을 다 읽었다. 곧 일곱번째 책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 책도 빨리 읽고싶다.

댓글(69)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레이스 2022-01-07 1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1-07 19:1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드려요 2022년도 잘 부탁드려요 ^^

thkang1001 2022-01-07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서재의 달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새파랑 2022-01-07 19:16   좋아요 3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감 2022-01-07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당선 축하해요 ^^

새파랑 2022-01-08 00:18   좋아요 1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1-07 2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새파랑 2022-01-08 00:18   좋아요 2 | URL
축하를 또 받네요~!!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1-07 2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적의 언어로 글을 쓴 크리스토프도.... 그렇군요.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선명하네요.

새파랑 2022-01-08 00:20   좋아요 1 | URL
초란공님 이 책 좋아하실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독서 응원합니다~!!

러블리땡 2022-01-08 0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

새파랑 2022-01-08 00:20   좋아요 2 | URL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님 주말독서도 화이팅 입니다~!!

페넬로페 2022-01-08 0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녹색광선 출판사 찐사랑의 보답같아요. 당연한 리뷰 당선입니다.
저도 하나씩 관심 가져 볼께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1-08 07:52   좋아요 4 | URL
또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합니다 ^^

희선 2022-01-08 0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김사량 작가를 사랑할지도 모르겠네요 좋아하는 작가에서 한사람이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1-08 07:53   좋아요 2 | URL
ㅋ 사랑까지는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는 맞습니다~!! 희선님 주말 잘 보내세요 ^^

bookholic 2022-01-08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의 정성스러운 글은 이달의 당선작 첫손에 꼽을 만합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1-10 06:03   좋아요 1 | URL
북홀릭님 감사합니다 ^^ 이번달에도 함께 열독 하시죠~!!

하나의책장 2022-01-10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는 새파랑님이 빠질 순 없죠!
새파랑님, 축하드려요^^ 굿밤되세요♡

새파랑 2022-01-10 06:04   좋아요 1 | URL
하나님 감사합니다 ^^ 새벽에 봤네요 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녹색광선의 책은 역시 흥미로웠다.






<빛속으로>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네요."
"그렇죠."
"사실 선생님한테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요."
"물론 나는 조선인입니다."
기분 탓인지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 P20

<빛속으로>

"예를 들어 내가 조선인이라고 하면, 저런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기분 속에는 애정 이외에 나쁜 의미의 호기심이랄까, 아무튼 다른 감정이 앞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그런 식으로 나를 불렀을 뿐이에요. - P22

<빛속으로>

자기 어머니 병문안을 오면서 남의 눈을 피하거나,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오히려 소년의 그런 모습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애처로워 보였다. - P58

<빛속으로>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내 손에 자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웃옷을 내던지고 달려 내려갔다. 나도 문득 구원받은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쓰러질 듯 타다닥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P68

<천마>

"나는 이제 조선어 창작은 질렸습니다. 조선어 따위 똥이나 처먹으라고 하세요. 그건 멸망의 부적이니까요." 그는 지난밤 모임을 떠올리며 되는대로 허세를 부렸다. "나는 도쿄 문단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도쿄의 친구들도 모두 그러기를 열심히 권하고 있죠." - P82

<천마>

사실 그는 허울 좋은 애국주의의 미명 아래 숨어 조선어로 쓰는 것은 어리석고, 언어 그 자체의 존재조차 정치적인 무언의 반역이라고 헐뜯는 자 중 한 사람인 것이다. - P90

<천마>

이제 와서 보니 모든것이 자신을 슬프게 할 씨앗이 아니었던가 - P110

<천마>

일본인을 만났을 때는 일종의 비굴함으로 조선인의 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도 일본인과 동급이라고 믿는 그였다. 드디어 현룡은 불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나는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민족성을 생각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네. 다나카, 이보게 자네, 내 기분을 알겠나?" - P120

<풀이 깊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옛 스승은 슬픈 듯 멈추어 서서 중얼거렸다. - P166

<풀이 깊다>

방화는 쫓겨 들어가는 그들이 이 세상에 퍼붓는 일종의 저주일까? 군청에서는 자기 관할 내에서 만큼은 화전민들을 살게 할 수 없다며 사방에서 화전민을 쫓아내기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산속 깊이, 산속 깊이. - P17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2-16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2021년 서재 달인 되셨삼 333
추카 해유 ^ㅎ^

새파랑 2021-12-16 14:56   좋아요 0 | URL
이야 ㅋ 저에게 이런일이~!! 감사합니다 ^^
스콧님도 축하드려요 😆
 


˝나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 속에는 아마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논리적인 생각이다.˝


<그로칼랭>은 ˝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가 동일 인물인지 몰랐다면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속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그로칼랭은 ‘열렬한 포옹‘ 이라는 뜻이다.)


도시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쿠쟁˝, 그에게 사람은 어렵고 사랑은 더 어렵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입안에서 맴돌고, 공상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용기내어 말을 건네고, 마음을 고백해 보지만 그에게 돌아오는건 냉소와 거절 뿐이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비단뱀 ˝그로칼랭˝. 아무 조건없이 ˝쿠쟁˝을 좋아해주는 ˝그로칼랭˝과 함께 있을때에만 그는 행복을 느낀다.

[사람은 온전히 자기 입장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자기 입장에 있을 뿐더러, 곧 불안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방법을 통해 다른 이의 입장이 될 수는 있다.]  P.98



그러나 자신의 전부인 ˝그로칼랭˝을 동물원에 보내고 난 후 그는 큰 상실감을 느낀다. 결국 ˝그로칼랭˝에 점점 동화되면서 그의 정신분열은 극대화된다. 외로운 대도시 한복판에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이야기는 절대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기묘하고 유쾌하며, 예측불가능한 ˝쿠쟁˝과 ˝그로칼랭˝의 행동은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오히려 ˝쿠쟁˝과 같은 사람이 가지는 외로움의 선명함을 더해준다. 왜 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끼는 걸까?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내용은 더없이 독창적인 <그로칼랭>, 나는 이 작품을 읽고나서 ˝로맹 가리˝는 문학의 천재라는 생각을 했다.



Ps.  지금까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작품은 총 다섯편을 읽었는데(생각보다 얼마 안읽었다) 다 좋았고 작품마다 색깔이 뚜렷함을 느꼈다.

가장 독창적인 작품 : 그로칼랭
가장 감동적인 작품 : 자기만의 생
가장 좋아하는 작품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1-12-15 1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인천에 갔다가 로맹 가리
의 <그로 칼랭>을 데리고 왔답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려구요.
나름 제가 전작하는 작가라 애정 뿜뿜!~

새파랑 2021-12-15 11:53   좋아요 3 | URL
재독이시군요~! 레삭매냐의 전작 작가라니 왠지 제가 뿌듯하네요. <그로칼랭> 왠지 B급 감성도 느껴지면서도 재미있더라구요 ^^

청아 2021-12-15 12: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벌써 5권이나 읽으셨군요! 그로칼랭이 ‘열렬한 포옹‘의 의미라니 로멘틱했는데 비단뱀!!ㅋㅋㅋ로맹가리의 재치는 정말 놀랍네요. 발췌문도 👍

새파랑 2021-12-15 12:13   좋아요 3 | URL
이 책의 주인공인 ˝쿠쟁˝이 비단뱀을 안고 자요 ^^ 책을 정신없이 읽는다고 밑줄도 별로 못그었어요 ㅋ 갠적으로는 유쾌한 책이었습니다~!

미미님 집에 로맹가리 모든 작품이 있을거 같아요 ㅋ

청아 2021-12-15 12:20   좋아요 3 | URL
거의 다 있어요ㅋㅋㅋ✌

페넬로페 2021-12-15 13: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첫 구절!
제가 죽어도 생각지도 못한 의미입니다.
전율!
그래서 저는 죽을때까지 책을 읽고 배워야하나봐요~~
독창적이고 유쾌한 이 작품,
꼭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1-12-15 14:19   좋아요 4 | URL
리뷰를 잘 써보려고 했는데 점심시간에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좀 짧게 썼어요 ^^ 문장들이 다 감탄이 나오고 정말 독특합니다~!!

프레이야 2021-12-15 14: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이제 로맹 가리인가요.
완전 응원합니다. 그로칼랭은 읽지 않은 작품인데 가장 독창적이고 유쾌하다고 하시니 어여 영접해야겠어요ㅎㅎ 바로 주문했어요 중고로.

새파랑 2021-12-15 14:20   좋아요 5 | URL
요새 로맹 가리, 필립 로스, 에밀 졸라, 소세키, 사강 책을 한권씩 돌아가면서 읽고 있어요 ^^ 완전 유쾌합니다 ㅋ <자기앞의 생> 유머버젼 이에요~!!

독서괭 2021-12-15 14: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자기앞의 생에도 꽤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훨씬 유쾌하다니 읽어보고 싶네요! 새들은 페루~는 예전에 있었는데 어디갔나..😨

새파랑 2021-12-15 16:28   좋아요 4 | URL
이 책은 읽다가 중간에 이게 뭐야? 이러실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 웃긴데 좀 엽기적인? ㅎㅎ 약간 안맞는 부분도 있을거에요~!!

coolcat329 2021-12-15 14: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꾸준히 돌아가며 전작읽기 도전하시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 로맹 가리 페루 하나도 기억안나는데 이것도 다시 읽어야겠어요. ㅠ

새파랑 2021-12-15 16:29   좋아요 2 | URL
차라리 한 작가 책만 몰아서 읽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페루는 그 분위가가 너무 좋았어요~!!

mini74 2021-12-15 15: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외로움의 선명함. 이 문장이 마음에 콕 와닿습니다 ㅎㅎ 가장 독창적이라니 !! 전 자기만의 생과 페루만 읽었어요. 그로칼랭 기억해두지요. 1월에 보자 그로칼랭 ㅎㅎㅎ

새파랑 2021-12-15 16:30   좋아요 4 | URL
외로움의 선명함은 제가 창작(?)한 말입니다 ㅋ 그런데 어딘가에 이런 말을 쓴 책이 있겠죠? 이책 미니님 스타일일듯 ^^

희선 2021-12-16 0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야기 본 적 있어요 그로칼랭 뜻은 이번에 알았네요 사람과 사람은 어렵기는 하죠 동물은 사람과 다르기도 하고, 그게 비단뱀이라니... 그렇게라도 덜 쓸쓸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은데 동물원에 보내고 쿠쟁이 이상해지는군요


희선

새파랑 2021-12-16 06:39   좋아요 3 | URL
2미터가 넘는 비단뱀하고 같이 살고, 그걸 가지고 밖에 돌아다니고 하는 설정이 너무 유쾌했어요. 사람보다 더 마음을 주는 비단뱀이라니 ^^

고양이라디오 2021-12-17 1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기 앞의 생>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로맹 가리씨 작품을 더 만나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17 10:55   좋아요 1 | URL
<자기앞의 생>은 정말 명작인거 같아요. 로맹가리는 글 잘쓰시는분~!!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세요 ^^
 

이 작품을 읽으면서 ˝로맹 가리˝를 떠올릴 수 없었다. ˝에밀 아자르˝ 그 자체. 완전 새로운 느낌이었다.

실제로 체험하고 직접 관찰한 것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이 주제는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절대로 글을 꾸미려 하지 마세요. - P35

나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 속에는 아마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논리적인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 P37

희망을 품지 않으면 확실히 죽도록 무서울 일도 없다. 희망과 공포는 늘 붙어 다닌다. - P57

아는 이를 죽이는 것이 언제나 더 힘든 법이지요. 전쟁 중에 군종신부였기 때문에 잘 알아요. 가까운 곳보다 누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죽이는 것이 훨씬 쉽지요. 전투기 조종사들은 폭격할 때 죄책감을 덜 느낍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보니까요. - P84

사람은 온전히 자기 입장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자기 입장에 있을 뿐더러, 곧 불안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방법을 통해 다른 이의 입장이 될 수는 있다. - P98

사랑은 서로 왕래하고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어요. 사랑은 아마도 인간이 응답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대화일 겁니다. - P140

여러분, 자기 일로 애태우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남의 일로 애태우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쪽이 덜 괴롭습니다. 각자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고독입니다. 자기 생각은 그만두세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살기 위해 안고 있는 온갖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기분이 나아질 겁니다. 동지 의식이 있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 P154

나는 더이상 그로칼랭이고 싶지 않았다. 그로말랭이 되어 변화하고 싶었다. - P3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