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읽으면서 ˝로맹 가리˝를 떠올릴 수 없었다. ˝에밀 아자르˝ 그 자체. 완전 새로운 느낌이었다.

실제로 체험하고 직접 관찰한 것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이 주제는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절대로 글을 꾸미려 하지 마세요. - P35

나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 속에는 아마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논리적인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 P37

희망을 품지 않으면 확실히 죽도록 무서울 일도 없다. 희망과 공포는 늘 붙어 다닌다. - P57

아는 이를 죽이는 것이 언제나 더 힘든 법이지요. 전쟁 중에 군종신부였기 때문에 잘 알아요. 가까운 곳보다 누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죽이는 것이 훨씬 쉽지요. 전투기 조종사들은 폭격할 때 죄책감을 덜 느낍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보니까요. - P84

사람은 온전히 자기 입장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자기 입장에 있을 뿐더러, 곧 불안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방법을 통해 다른 이의 입장이 될 수는 있다. - P98

사랑은 서로 왕래하고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어요. 사랑은 아마도 인간이 응답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대화일 겁니다. - P140

여러분, 자기 일로 애태우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남의 일로 애태우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쪽이 덜 괴롭습니다. 각자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고독입니다. 자기 생각은 그만두세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살기 위해 안고 있는 온갖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기분이 나아질 겁니다. 동지 의식이 있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 P154

나는 더이상 그로칼랭이고 싶지 않았다. 그로말랭이 되어 변화하고 싶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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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기억해야 한다. 기억할 때마다 아플지라도. 한번 기억속에서 사라지면 영원히 잊혀지기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을까?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외부와의 접촉도 없이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경하˝, 그녀는 유서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날 과거에 같이 일했던 친한 친구인 ˝인선˝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는다.

˝경하야, 지금 와줄 수 있어?˝


노환인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팔년 전 서울에서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간 ˝인선˝ 하지만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은 제주도가 아닌 봉합수술 전문병원 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영상제작 일을 하던 ˝인선˝이었지만, 제주도로 돌아가서는 목공방에서 일을 하던 그녀였기에, ˝경하˝는 ˝인선˝이 일을 하다가 다쳤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인선˝을 만난 ˝경하˝는 그녀가 작업을 하다가 검지와 중지가 잘려서 봉합된 것을 보게 되고, 봉합된 손가락의 신경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삼분에 한번씩 상처를 내어 소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뭐, 썩는 거지. 수술한 위쪽 마디가
-------------------------  P.40. 



그리고 ˝인선˝은 ˝경하˝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탁을 한다. 지금 바로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집에 방문하여 키우고 있는 앵무새를 돌봐달라고, 오늘 가지 않는다면 앵무새는 죽을 거라고. 그녀의 진지한 부탁에 ˝경하˝는 알겠다고 하고, 그녀의 바람대로 자신의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제주도로 향하게 된다.

[운이 좋구나,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비행기편으로 섬으로 들어왔고, 인선의 마을로 데려다줄 마지막 지선버스에 방금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들었던 연인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게 운좋은 거냐. 날씨가 이래가지고, 이 좋은 운을 타고 어떤 위험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건가?]  P.120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는 폭설로 인해 도시 전체가 마비에 가까운 지경이었고, ˝인선˝의 집은 산중턱에 위치한 오지였다. 어떻게든 버스를 타고 동네 인근까지 가지만, 목적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하˝는 그녀의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미끌어져 없어지게 되고, 의식을 잃게 된다. 이후 꺠어난 그녀는 눈덮인 풍경 때문인지, 아니면 뭔지는 모르는 이유 때문인지 세계가 약간 바뀐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눈과 추위와의 사투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그녀의 사고현장을 보게 되고, 앵무새 ˝아마˝는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뒷뜰에  앵무새를 묻어주고, 방으로 돌아와서 얼은 몸을 녹이려고 한다. 그러면서 ˝인선˝이 촬영했던 영화를 떠올리고, 그녀가 작업하고 있던 백그루가 넘는 통나무를 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불이 들어오지 않는 단전이 발생한다. 창문이 덩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한을 견뎌 나가는 ˝경하˝, 그녀 역시 ˝인선˝과 마찬가지로 생과 사의 경계에 있게 된다.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불꽃을 뿜으며 무너져 앉을 이 집으로. 조각난 거인의 몸처럼 겹겹이 포개져 누운 나무들 곁으로.]  P.172



오후 네시에 깨어난 ˝경하˝는 열이 내려있고, 평소의 아픔이 사라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묻었던 앵무새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 놀라운건 공방으로 가보니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있는 것이었다. 이건 꿈일까? 환상일까? 사후 세계일까? 아니면 현실? 그러거 보니 언제부터가 현실이었는지 햇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선˝은 ˝경하˝에게 그동안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어머니가 경험한 이야기를, 어머니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난과 고통에 대해 들려준다. ‘제주도 4.3 사건‘의 진실에 대해.

[돌아가자, 나는 말했다. 다음에 오자, 눈 그치고 다시.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인선이 말했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P.307



반공주의와 이데올로기라는 광기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이 학살된 그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진상을 밝히기 위한 삶을 살았었고,  딸인 ˝인선˝ 역시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의지를 이어받는다. 도대체 이 사건에는 어떤 아픔이 있었던 걸까?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가 읽은 한강 작가님의 첫 작품이다. 예전에 작가님 작품의 리뷰를 읽었을 때도 (심리적인) 아픔이 느껴진다는 평을 많이 봤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완전 공감했다. 특히 ˝인선˝의 두 손가락이 절단된 과정과 이를 접합하기 위한 치료 과정이 너무 섬세하게 묘사되어서 마치 내 손가락이 다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얼마전에 손을 다쳤었다...


제주도 4.3 사건을 다루고 있고, 등장 인물들이 한결같이 침울하다보니 작품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둡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이 작품이 말하려고 하는 ‘역사적 아픔‘의 비극성을 극대화 하는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평행세계와 같은 약간 비현실적인 설정의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설정이 작가님의 의도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양한 비유가 등장하는데 이런걸 찾는 것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요소였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  P.44



이 책 덕분에 제주 4.3 사건도 찾아보게 되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역사적 비극을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이 있기에 우리는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작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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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2-14 0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주 4.3사건에 대해 확실히 잘 모르기에 저도 이 소설에 관심이 많아요.
한강의 이 소설에 그 역사적 사실이 많이 표현되어 있나요? 아님 이미지와 느낌으로 전달하는건지 궁금해요~~

새파랑 2021-12-14 10:44   좋아요 4 | URL
이 책이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가 리뷰에 쓴 대부분은 1부 내용이고, 2부 내용에는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가님의 이야기 입니다. 읽으면서 좀 마음이 아팠어요 ㅜㅜ

프레이야 2021-12-14 09: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여름날 제주 4.3 평화공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 코스로 들렀어요. 제주 가시면 한번 가보시길 권해 드려요. 꼭! 건물 안은 물론 바깥으로도 주욱 둘러보시길요.

새파랑 2021-12-14 10:45   좋아요 3 | URL
평화공원이 있군요~!! 제주도를 가본지가 오래되서 😅 제가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꼭 가보겠습니다~!!

2021-12-14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12-14 10:52   좋아요 4 | URL
읽으면 좀 우울해 지실수도 있어요 ^^ 전 흥미롭게 읽었어요~!!

Yeagene 2021-12-14 11:37   좋아요 4 | URL
한강작가 작품이 대체로 어둡고 우울한 것 같아요..그래서 읽기 전에 조금 망설여지더라구요ㅠㅠㅠ

새파랑 2021-12-14 12:05   좋아요 3 | URL
기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기분이 아주 좋으실때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

Yeagene 2021-12-14 12:35   좋아요 3 | URL
ㅎㅎㅎ 진짜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ㅎㅎㅎ

청아 2021-12-14 11:3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앞쪽 이야기 전체가 제주 4.3사건에 대한 은유인가보군요.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어요~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작별하지 않을 수 있다‘마지막 문장이 울림이있어요!!🥲

새파랑 2021-12-14 11:54   좋아요 5 | URL
역시 리뷰만 봐도 책의 구성을 딱 알아맞추시는 미미님이군요~!
어제 이 책을 읽고 알라딘 우주점에 가서 <소년이 온다>를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 평이 좀 갈리긴 하던데 전 좋더라구요~!

모나리자 2021-12-14 15: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근현대 한국에 비극적인 역사가 참 많았어요. 뒤늦게 알려진 사건도 많구요. 어쩌면 소설가는 작품으로 지나간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켜서 바람직한 삶이 되도록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채식주의자>만 읽었네요.^^

새파랑 2021-12-14 15:58   좋아요 5 | URL
어제 알라딘 우주점 가니까 <채식주의자>만 열권 넘게 있어서 안샀어요 ㅋ 왠지 인기가 없게 느껴져서요 😅 그리고 전 육식주의자라서 ㅎㅎ 그게 소설가의 임무가 맞는거 같아요. 그래서 상당히 어렵고 부담이지만 ^^

mini74 2021-12-14 17: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4.3. 제주도에서 아기무덤들 보고 넘 슬펐던 ㅠㅠ 새파랑님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 소년이 온다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채식주의자는 전 어려웠어요 ~

새파랑 2021-12-14 17:30   좋아요 2 | URL
제주도에 아기무덤이 있나 보네요 ㅜㅜ 슬픈 역사가 실감나네요..

제가 오늘은 프랑스로 가보겠습니다. 비단뱀 보러 ^^
소년이 온다는 읽어봐야 겠군요~!!

희선 2021-12-15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주 4.3 사건도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야 알려진 듯하더군요 제주도 한 마을 사람이 다 죽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건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네요 그런 걸 쓰기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1-12-15 08:11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잔인했었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알게되는것도 의미있는것 같아요. 정말 글을 쓰는게 쉽지 않았을거란 느낌이 들었어요~!!
 

우울함이 그냥 느껴진다.




운이 좋구나,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비행기편으로 섬으로 들어왔고, 인선의 마을로 데려다줄 마지막 지선버스에 방금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들었던 연인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게 운좋은 거냐. 날씨가 이래가지고, 이 좋은 운을 타고 어떤 위험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건가?
- P120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P138

부드러운 것이 손끝에 닿는다.
더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 P149

제목이 뭐야?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 P191

이야기의 패턴은 거의 같았다. 큰 산 아랫마을의 모든 대문을 두드려 끼니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늙은 걸인이 오직 한 여자에게서 밥 한 그릇을 얻는다. 고마움의 표시로 그가 말한다. 내일 동트기 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산을 오르라고, 산을 넘어갈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노인의 말대로 여자가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해일이나 폭우가 마을을 삼킨다. 예외 없이 그녀는 뒤돌아본다. 그곳에서 돌이 된다. - P239

돌아가자, 나는 말했다.
다음에 오자, 눈 그치고 다시.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인선이 말했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 P307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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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 가운데 복수의 칼날처럼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복수의 칼날만큼 대담하고 창조적인 건 없어. 또한 아무리 세련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배신의 칼날만큼 무자비하고 창조적인 건 없다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으로,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매장당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 미국에서 경쟁자를 매장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을 사회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진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가지의 낙인만 있으면 가능했다. ‘저 사람은 공산주의자다‘ 라고.


<매커시즘 :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로 1950년대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국무부의 진보적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한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됨>


당시 미국사회를 휩쓴 ‘매커시즘‘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주요 테마다. 이야기는 화자인 ˝네이선 주커먼˝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머리 린골드(90살)˝를 현재시점인 1997년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머리 린골드˝ 에게는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아이라 린골드˝로, 고등학교 시절  작가를 꿈꾸던 ˝네이선˝은 그의 급진적인 사상에 매료되어서 그를 따랐고, ˝아이라˝ 역시 ˝네이선˝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후 ˝아이라˝는 주변의 고발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결국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

[트루먼 씨가 국민에게 이 나라는 공산주의가 큰 문제라고 말하면, 국민들은 그 말을 믿는 이 잘나빠진 나라 때문에 정말 화가 나. 인종차별도 불평등도 문제가 안 돼. 공산주의가 문제라고, 사만 명, 육만 명, 십만 명밖에 안 되는 공산주의자가 문제라고, 그들이 인구가 일억 오천만인 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고. 내가 바본 줄 아오? 이 빌어먹을 나라가 무엇 때문에 망해가고 있는지 얘기해볼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노동자에 대한 차별 때문이오. 우리나라를 망치는 건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우리나라는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차별 때문에 저절로 망해가는 거야!]  P.217



이 작품은 ˝아이라˝가 어떻게 성장을 했고, 어떻게 성공을 했으며, 어떻게 무너지게 되고, 어떻게 매장당했는지, 그리고 ˝아이라˝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를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보여준다.

1. 현재의 ˝머리˝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머리˝와 ˝아이라˝에 대한 이야기.
2. 과거의 ˝아이라˝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아이라˝ 자신에 대한  이야기.
3. 과거와 현재의 ˝네이선˝이 ˝아이라˝와 ˝머리˝를 관찰하고 느낀 이야기



이 작품의 줄거리를 연도별 흐름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정리한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이 시간의 흐름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다소 햇갈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읽는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나만 이해를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1945년 : ˝아이라˝ 군 제대 후 ˝오데이˝라는공산주의자와 함께 지내면서 노동자로 일함. 그에게서 정치철학과 사회 철학, 글쓰는 방법을 배움

1946년 : ˝머리˝ 선생님 군 제대 후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네이선˝과 처음으로 만남

1948년 : ˝네이선˝은 ˝머리˝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그의 동생인 ˝아이라˝와 만남. 이후 친해지게 됨. ˝아이라˝는 당시 라디오 작가이자 링컨 웅변가로 인지도가 높았고, 당시 인기 스타였던 여자 성우인 ˝이브˝와 막 결혼한 상황이었음

1949년 ~ 1951년 : 생활과 사상이 너무 상반되는 두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위태로웠음. 미국의 전복을 꽤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아이라˝의 사상은 상당히 진보적이었고, 당시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속에서 그의 위치는 위태로웠음. 그리고 부인인 ˝이브˝는 ˝아이라˝와의 결혼이 네번째로,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이 사실을 감추고 유대인을 증오했으며, 자신의 딸인  ˝실피드˝에게 정신적 착취를 당하고 있었음. ˝실프드˝는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함

1952년 : ˝아이라˝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이브˝는 주변인들의 부추김에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책을 출판함(반공주의자인 ˝그랜트 부부˝가 대필함). 이후 ˝아이라˝의 주변인들은 ‘매커시즘‘에 휩쓸려서 ˝아이라˝가 정말로 공산주의자가 맞다고,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고발함. 그 결과 ˝아이라˝는 사회로부터 완전 매장당하고, ˝아이라˝의 형인 ˝머리˝ 역시 공산주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당함.

[단 한 방에 이브는 아이라의 삶을 몰개성적 삶으로 만든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에게 인간의 얼굴을, 그것도 자기 남편의 얼굴을 씌워준 거야. 난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공산주의자와 잠을 잤다, 공산주의자가 내 아이를 괴롭혔다.]  P.456



1997년 : ˝네이선˝과 ˝머리˝는 한 강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동안의 ˝머리˝와 ˝아이라˝의 굴곡진 삶에 대해 듣게 됨



작가인 ˝필립 로스˝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라는 책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곳에서도 버림받은 한 사람의 전락을 날카롭게 그리고 있는데, 특히 장대한 서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전작인 <미국의 목가>보다 더 재미있었다. 상당한 분량이어서 선뜻 책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잘나가는 사람이 다소 날조된 선동으로 인해 쉽게 무저지는 모습은 예전 시대에만 한정된건 아니다. 오히려 정보전달이 너무나 빠른 현 시대에 이러한 광풍을 더 쉽게, 더 자주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포장하는 것도, 전락 시키는 것도 한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상을 바라보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Ps 1. 다음 읽을 필립 로스의 책인 <휴먼 스테인> 이다. 미국 삼부작을 완결해 보자.

Ps 2. 야금야금 읽다보니 이제 필립 로스의 여섯작품, 일곱권을 읽었다. 아직 안읽은 그의 작품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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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13 1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필립 로스 읽기 여섯 작품이나! 계속 응원합니다. 페이퍼도 계속 기대할게요. 작가의 배신과 복수의 칼날에 대한 예리한 통찰, 문장이 서늘합니다. 오늘 날씨 추워요. 따뜻하게~^^

새파랑 2021-12-13 11:27   좋아요 3 | URL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요 ㅜㅜ 프레이야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산뜻한 한주 시작하길 바라겠습니다 ^^
아직 구매해 놓고 안읽은 작품이 네편 있어서 행복하네요 😆

페넬로페 2021-12-13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의 작품이 새파랑님께 얼마나 좋으면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어 행복하다고 할까요~~
미국의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에피소드를 대하면 인간 하나 매장시키는것이 그렇게 쉽다는 걸 알수 있겠더라고요^^
연도별 정리 캡쳐 해두었어요.
이 책 읽을 때 참조할께요**

새파랑 2021-12-13 12:10   좋아요 3 | URL
필립로스가 글을 시원시원힌게 잘 쓰는거 같아요.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ㅋ
제가 이 책을 4일 동안 읽어서인지 이야기가 햇갈려서 연도별로 한번 정리해 봤어요 ㅋ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

Jeremy 2021-12-13 1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영문책에서는 p. 284 에 나오는 구절인데
정말 미쳤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McCarthyism 광풍과
집단 Panic 내지 생각없이 휘둘리는 대중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찰과 조소와 일침 중에서도 손 꼽힐 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파랑님도 어디쯤에서 읽으셨는지 바로 생각나실 것 같아요.

“But that’s what happens.
Once the human tragedy has been completed,
it gets turned over to the journalists to banalize into entertainment.
Perhaps it’s because the whole irrational frenzy burst right through our door
and no newspaper’s half-baked insinuating detail passed me
by that I think of the McCarthy era as inaugurating the postwar triumph of gossip
as the unifying credo of the world’s oldest democratic republic.
In Gossip We Trust. Gossip as gospel, the national faith.
McCarthyism as the beginning not just of serious politics
but of serious everything as entertainment to amuse the mass audience.
McCarthyism as the first postwar flowering of the American unthinking
that is now everywhere.”

특히 In God We Trust 의 Parody 부분, 너무나 pathetic.
In Gossip We Trust. Gossip as gospel, the national faith.

“Human Stain” 은 제 생각엔 “I Married a Communist.” 보다
더 잘 쓴 책이라서 새파랑님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Joseph McCarthy 때문에 1953 년에
Arthur Miller 는 “The Crucible” 을 썼고
Ray Bradbury 는 “ Fahrenheit 451˝ 을 쓰게 되었으니
McCarthy, 나름 엄청나게 문학계에 공헌?


새파랑 2021-12-13 13:05   좋아요 3 | URL
휴먼 스테인이 더 대단하다고 해서 기대가 됩니다~! 매커시가 그래도 문학에 공헌한 바가 크네요 ㅋ
Jeremy님의 글을 열심히 독해하고 있어요 😅 토익 지문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ㅎㅎ 휘둘리는 대중에 대한 그의 일침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

Jeremy 2021-12-13 13:24   좋아요 2 | URL
괜히 시험보는 것처럼 독해하실 필요는 없고
이게 chapter 8 초반부에 나오는 부분이니까
이 부분에 해당되는 걸 책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매커시가 문학에 공헌한 바는 이게 다가 아니랍니다, ㅜㅜ.
무진장 많은 저항과 비판과 조롱과 Dystopian 문학 탄생!


새파랑 2021-12-13 13:27   좋아요 2 | URL
이따 집에 가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매커시가 탄생시킨 다른 작품도 접해봐야 겠어요~!!

청아 2021-12-13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작품도 꼭 읽어야겠네요!! 연도별로 정리하신것 신박합니다😆👍매커시즘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아직도 은근히
활용되는듯해요. 저는 미국 삼부작을 읽을때 이 책부터 시작해야겠어요ㅎㅎ

새파랑 2021-12-13 13:07   좋아요 2 | URL
뒤에 해설(답지)이 없어서 나름 정리해 봤어요 ^^ 좀 많이 부실하지만 ㅎㅎ
혹시 미국 삼부작 읽으시면 저처럼 순서대로 읽으세요 ㅋ 미미님의 읽기가 기대됩니다 😆

coolcat329 2021-12-13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어요. 미국의 목가보다 재밌군요~~나중에 읽을 때 새파랑님 정리 참고하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12-13 14:08   좋아요 1 | URL
미국의 목가는 자식(?)문제 인데, 공산주의자는 이념(?)문제여서 더 재미있더라구요. 두 작품 다 미국사회에 대한 분노가 잘 나타나 있지만 ^^

Falstaff 2021-12-13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어서.... 헷갈리는데, 이 책 속에 제일 자주 거론하는 책이 토마스 페인의 <상식>인가요?

새파랑 2021-12-13 14:11   좋아요 1 | URL
역시 오래전에 읽으셨군요 ㅋ 토마스 페인이 누구인지 몰 라서 책에서 관심있게 못본거 같아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왔던거 같은데 😅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mini74 2021-12-13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필립로스에 진심이신 분 ㅎㅎ 저도 이 책 궁금하네요. ~

새파랑 2021-12-13 16:00   좋아요 1 | URL
필립로스는 완전 진심이죠 ^^ 후기작들도 매력있는데, 미국 3부작도 색다른 느낌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21-12-13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 빠르신 행보에 응원군도 많고요... 방문자 수도 많고요. 댓글 수도 많고요.
진도를 알 수 없는 이 행보에 새해엔 저도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심했어요. 새해엔 부지런해지기로...
새파랑 님의 기를 받아야징...ㅋㅋ

새파랑 2021-12-13 20:43   좋아요 1 | URL
이 책 좀 오래잡고 읽었어요 😅 제가 아직 초보여서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시는거 같아요 ^^
페크님은 원래 부지런하시니까요~!
새해에는 더 많은 페크님의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

독서괭 2021-12-13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많이 읽으셨네요~ 그런데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니 다작의 작가네요^^ 혐오와 차별이라는 테마는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12-13 23:39   좋아요 2 | URL
필립 로스 책 아직 절반도 못읽은거 같아요 😅 차별은 그시절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있는거 같아요. 언제쯤 차별없는 세상이 올까요 ㅜㅜ

모나리자 2021-12-13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는데 벌써 많이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 읽으시는 속도도 빠르시고..ㅎ 푹 빠지신 것 같은데요.
전작 완독하시길 응원할게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1-12-14 07:49   좋아요 2 | URL
언제나 한 작가만 몰아서 읽기를 해서 그런거 같아요 ㅋ 완전 빠졌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1-12-14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필립로스 열풍이 새파랑님의 서재로부터 시작되구요~~

새파랑 2021-12-14 17:31   좋아요 2 | URL
저도 다른 분들이 읽은 책 따라 읽은건데요 ㅋ 소세키는 그레이스님으로부터~!! 저 <태풍> 읽고 있어요 ^^

희선 2021-12-15 0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커시즘 들어본 적 있는데 잘 몰랐던 거네요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면서 한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했군요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지금 더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정보도 빨리 퍼지고, 그게 진짜가 아닐 때도 있군요 필립 로스 책은 다음해에도 만나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1-12-15 09:16   좋아요 2 | URL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겠죠? 워낙 다양한 생각이 수용되니까요 ㅋ 필립 로스 책이 아주 많더라구요. 내년에는 꼭 다 읽어보고 싶어요^^
 

처음 읽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 지금까지는 너무 좋다.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 P17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에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 P27

그녀의 습관들에 대해 알 만큼 안다. 이렇게 내 이름만 먼저 부르는 것은 안부 인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급한 용건이다.

(이건 완전 공감이 된다.) - P30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눈에 대한 감정.) - P44

누군가가 먼저 전화를 걸어, 여기 눈이 오는데 거긴 어떠니, 라고 물으면 여긴 내일 온대, 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내년에는 할 수 있을까, 라고 둘 중 누군가가 물으면, 그래, 내년엔 꼭 하자, 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었고, 그렇게 끝없이 연기되고 있는바로 그 상태가 그 일의 성격이 되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 P48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그 웃음에 문득 전염되어 내 마음이 밝아지면, 내 밝아진 얼굴에 안심한 인선의 눈이 더 환해졌다.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인터뷰 상대를 만나도,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겨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침착한 얼굴을 보면 더이상 당황할 필요도, 허둥거릴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다. - P51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오래전 겨울에 들었던 인선의 가출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상하게도 그 어머니만큼이나 인선이 안쓰럽게 느껴졌었다.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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