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 가운데 복수의 칼날처럼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복수의 칼날만큼 대담하고 창조적인 건 없어. 또한 아무리 세련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배신의 칼날만큼 무자비하고 창조적인 건 없다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으로,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매장당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 미국에서 경쟁자를 매장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을 사회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진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가지의 낙인만 있으면 가능했다. ‘저 사람은 공산주의자다‘ 라고.
<매커시즘 :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로 1950년대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국무부의 진보적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한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됨>
당시 미국사회를 휩쓴 ‘매커시즘‘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주요 테마다. 이야기는 화자인 ˝네이선 주커먼˝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머리 린골드(90살)˝를 현재시점인 1997년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머리 린골드˝ 에게는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아이라 린골드˝로, 고등학교 시절 작가를 꿈꾸던 ˝네이선˝은 그의 급진적인 사상에 매료되어서 그를 따랐고, ˝아이라˝ 역시 ˝네이선˝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후 ˝아이라˝는 주변의 고발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결국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
[트루먼 씨가 국민에게 이 나라는 공산주의가 큰 문제라고 말하면, 국민들은 그 말을 믿는 이 잘나빠진 나라 때문에 정말 화가 나. 인종차별도 불평등도 문제가 안 돼. 공산주의가 문제라고, 사만 명, 육만 명, 십만 명밖에 안 되는 공산주의자가 문제라고, 그들이 인구가 일억 오천만인 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고. 내가 바본 줄 아오? 이 빌어먹을 나라가 무엇 때문에 망해가고 있는지 얘기해볼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노동자에 대한 차별 때문이오. 우리나라를 망치는 건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우리나라는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차별 때문에 저절로 망해가는 거야!] P.217
이 작품은 ˝아이라˝가 어떻게 성장을 했고, 어떻게 성공을 했으며, 어떻게 무너지게 되고, 어떻게 매장당했는지, 그리고 ˝아이라˝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를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보여준다.
1. 현재의 ˝머리˝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머리˝와 ˝아이라˝에 대한 이야기.
2. 과거의 ˝아이라˝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아이라˝ 자신에 대한 이야기.
3. 과거와 현재의 ˝네이선˝이 ˝아이라˝와 ˝머리˝를 관찰하고 느낀 이야기
이 작품의 줄거리를 연도별 흐름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정리한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이 시간의 흐름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다소 햇갈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읽는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나만 이해를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1945년 : ˝아이라˝ 군 제대 후 ˝오데이˝라는공산주의자와 함께 지내면서 노동자로 일함. 그에게서 정치철학과 사회 철학, 글쓰는 방법을 배움
1946년 : ˝머리˝ 선생님 군 제대 후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네이선˝과 처음으로 만남
1948년 : ˝네이선˝은 ˝머리˝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그의 동생인 ˝아이라˝와 만남. 이후 친해지게 됨. ˝아이라˝는 당시 라디오 작가이자 링컨 웅변가로 인지도가 높았고, 당시 인기 스타였던 여자 성우인 ˝이브˝와 막 결혼한 상황이었음
1949년 ~ 1951년 : 생활과 사상이 너무 상반되는 두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위태로웠음. 미국의 전복을 꽤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아이라˝의 사상은 상당히 진보적이었고, 당시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속에서 그의 위치는 위태로웠음. 그리고 부인인 ˝이브˝는 ˝아이라˝와의 결혼이 네번째로,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이 사실을 감추고 유대인을 증오했으며, 자신의 딸인 ˝실피드˝에게 정신적 착취를 당하고 있었음. ˝실프드˝는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함
1952년 : ˝아이라˝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이브˝는 주변인들의 부추김에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책을 출판함(반공주의자인 ˝그랜트 부부˝가 대필함). 이후 ˝아이라˝의 주변인들은 ‘매커시즘‘에 휩쓸려서 ˝아이라˝가 정말로 공산주의자가 맞다고,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고발함. 그 결과 ˝아이라˝는 사회로부터 완전 매장당하고, ˝아이라˝의 형인 ˝머리˝ 역시 공산주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당함.
[단 한 방에 이브는 아이라의 삶을 몰개성적 삶으로 만든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에게 인간의 얼굴을, 그것도 자기 남편의 얼굴을 씌워준 거야. 난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공산주의자와 잠을 잤다, 공산주의자가 내 아이를 괴롭혔다.] P.456
1997년 : ˝네이선˝과 ˝머리˝는 한 강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동안의 ˝머리˝와 ˝아이라˝의 굴곡진 삶에 대해 듣게 됨
작가인 ˝필립 로스˝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라는 책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곳에서도 버림받은 한 사람의 전락을 날카롭게 그리고 있는데, 특히 장대한 서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전작인 <미국의 목가>보다 더 재미있었다. 상당한 분량이어서 선뜻 책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잘나가는 사람이 다소 날조된 선동으로 인해 쉽게 무저지는 모습은 예전 시대에만 한정된건 아니다. 오히려 정보전달이 너무나 빠른 현 시대에 이러한 광풍을 더 쉽게, 더 자주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포장하는 것도, 전락 시키는 것도 한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상을 바라보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Ps 1. 다음 읽을 필립 로스의 책인 <휴먼 스테인> 이다. 미국 삼부작을 완결해 보자.
Ps 2. 야금야금 읽다보니 이제 필립 로스의 여섯작품, 일곱권을 읽었다. 아직 안읽은 그의 작품이 많아서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