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2권을 꺼내 읽어야 겠다.


"이 나라는 항상 가난에 시달려 왔어. 항상 그랬어. 항상 착취당하기만 하는 대중, 그리고 우리 위에 소수의 수탈자가 있었지. 내 말을 믿게나, 예로, 모든 것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길 원한다면,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도록 만들어야 해. 착취당하는 생활이 자네나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이야."
- P281

삶은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고, 허망함과 두려움을, 두려움과 매력을 연결시켜 보았다. 나는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아순타 호르단이 나를 유혹했던 바로 그 순간만큼 그렇게 강렬하게 나를 유혹했던 암컷은 없었다. 그리고 실로 위험했던 것은, 열정과 그 열정을 불러일으킨 여자가 내 허락도 없이 나 자신의 욕망을 변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욕망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녀의 것이 될 수 있을까? - P300

"시간을 앞서 가는 거야."

"시간과 거래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망하는 거지, 여호수아. 시간이 널 파괴해." - P323

존재의 본질적인 흐름, 그것이 바로 시간으로 잴 수 없는 지속이었다. 생명은 나눌 수 없다. 기억으로 과거를 품는다. 욕망으로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나 과거도 미래도 순간에서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순간은 과거의 기억이며 미래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새롭다. - P334

"하지만 피는 보지 않았지, 재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피의 계승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했어. 비록 전임자 덕분에 권력을 차지한 후임자들의 배은망덕은 계속 이어졌지만." - P356

"나는 내가 원해서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이곳의 머리야."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면 나는 약이 올라 미칠 지경이야."

"약-이 올라-미-칠-지-경-이-야."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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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미문학은 유니크 하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 손을 놓을 수 없다.




미래가 행복하게 나타나도 그녀는 일부러 그 기쁨을 크게 떠벌리지 않는다. 인생이란 변덕스러워서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그 기쁨에 찬물이 끼얹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미래가 불행할 경우에는 어느정도 이야기를 낙관적으로 다듬어 들려준다. 농담도 끼워 넣고 어깨를 으쓱하며, 우울한 미래를 얼버무리고, 그녀의 누추한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몸, 그녀의 입, 그녀의 다리, 그것이 바로 미래인 것이다. - P31

청춘기의 시작을 맞이한 우리는 거울에 비칠 때마다 모습이 달라졌다. 수천 가지 유년기의 모습이 고집스럽게 남아 있어도, 우리의 갈 길을 막아도, 우리의 얼굴은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몸부림쳤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 P37

너희 둘은 카스토르와 폴룩스처럼 항상 붙어 다니는구나, 그가 경쾌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 P53

우리는 심사숙고한 독서를 통해 우연히 만난 동료였다. 우리의 만남은 전적으로 우연(아슬아슬한)에 의한 것이었지만 운명(위장한 의지)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 P55

"알아 둬. 특권은 타고나는 거야.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에롤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 외의 것은 모두 훔친 거야." - P69

어쩌면 내 기쁨은 나 자신이 그녀에게 기쁨을 선사했다는 감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엘비라는 즉시 옷을 입고 간호사다운 태도를 취했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한 여자에게 기쁨을 안겨줄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그때까지 배워 온 삶의 지혜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앞으로는 그것보다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것이 다시없을 것임을 알 수 있었고, 그리고 그와 똑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 P101

필로파테르 신부가 맨 먼저 우리에게 제기했던 문제는 그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독서와 지적인 취미에 대해 잘 알았다. 그는 우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P103

"너와 나는 바싹 말라 버릴 수도 있어, 여호수아. 우리가 같은 샘물을 마시면 우리는 옹졸한 인간으로 변하고 말 거야. 우리를 대항해 벽을 세우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도록 유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 P104

"봐라, 얘들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면 안 된단다. 그렇다고 해서 순전히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서도 옳지 않아. 진지해져야 한단다. 달아나면 안 돼." - P113

그건 마치 크기가 같지 않은 여섯 갈래 길이 갈려 나오는 동그란 광장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다섯 갈래 길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지 하나의 길만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 길에서, 세 번째 길에서, 네 번째 길에서, 다섯 번째 길에서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생각으로 우리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 마음속에는 진정한 길이 이미 정해져 있고, 다른 길들은 우리 자신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우연이며, 풍경이며, 상황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부하는 건 아닐까? - P135

"누가 죄인인지 자네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특히 자네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무슨 수로 알 수 있단 말인가?"
- P117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어.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 의지를 표현하는 거야. 따라서 선이든 악이든 내가 행하는 것은 자유로울까? 내 자유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미덕이 될 수 있으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악을 위한 자유? 악은 악이라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자유롭지 않단 말인가? - P183

돈키호테도 산초 판사에 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기적(극히 드물게 발생하는)은 미스터리(진실이 밝혀지면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로 남겨 두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 P227

"구세주, 나는 살아 있는 기억의 죽은 애인이야. 내게 내일 같은 건 없어. 시간이 모든 의미를 잃어버렸어. 오늘은 어제와 또 내일과 똑같아. 날이면 날마다 똑같아. 구세주,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냔 말이야!" "원한다면." 내가 말했다. "네 죽음을 더 이상 뒤로 미루고 싶지 않다면, 루차 사파타." "뒤로 미루지 않아." 그녀가 대답했다. "빨리 끝내고 싶어."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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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실과 행위는 어둠에 덮여 망각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만, 기록된 사실과 행위는 마치 생명을 얻은 것과 같다.˝


이반 부닌은 <아르세니프의 인생>이 자서전으로 불리는 걸 싫어했다고 하는데, 나는 완전 자전적 이야기로 읽었다. 파리로의 망명 이후 썼다는 이 책은 주인공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처럼 쓰여있다.


러시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아르세니예프˝는 성장해 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가문은 점점 몰락하게 되고, 스쳐 지나가는 여인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작가로서의 인생을 꿈꾸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그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이에 대한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특히 사랑이 다가올때마다 설레임을 느끼지만, 결국 사랑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인상깊게 표현하고 있다.


˝이반 부닌˝ 의 단편이 너무 좋았기에 선택했던 그의 장편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며, 러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한다. 작품에 큰 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메세지가 내포된 것도 아니며, 시종일관 이야기는 담담하게 이어진다.


마치 아름다운 문장들로 쓰여진 단편들이 하나로 이어진 느낌이 더 강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반 부닌˝의 단편이 더 내취향이었다. 그럼에도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의 외로운 회고와 러시인 소지주로서의 목가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이 있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에 비해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서사가 없다보니 약간 호불호가 갈릴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어려웠을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올랐다. 기억이라는 것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잊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영원하고 거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무한함 속에서,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공간인 바투리노란 곳에서 도대체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삶이 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삶이란 서로 무관한 감정과 생각들, 과거에 대한 무질서한 회상, 미래에 대한 모호한 예측의 끊임없는 흐름, 즉 한순간도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는 흐름이라는 걸 알았다.]  P.235


오늘은 매운맛의 소설을 읽어야 겠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한다. - P21

나와 저 달은 이제 오래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고, 말없이 끈기 있게 뭔가를 기대하면서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는 우리 둘이 뭔가를 몹시 그리워한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 P184

당시 나의 모든 생각, 당시 나의 모든 감정은 내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감정이었다. 그것들은 갑자기 나의 생각과 감정이 되었다. - P418

겨울 내내, 매일매일 나는 끈질기게 그녀의 편지를 기다렸다. 그녀가 그렇게 무정하고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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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2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등 .🖐 ^^

새파랑 2021-11-22 09:19   좋아요 3 | URL
아 춥네요 ㄷㄷ 줄거리 요약은 포기했어요 ^^

청아 2021-11-22 0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35페이지 정말 <잃.시.찾>떠오르네요! ㅎㅎ 자전적 작품은 읽다보면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있어요(휴~ㅋ)얼음장 같은 바람 부네요. 새파랑님 감기조심하세요🙋‍♀️

새파랑 2021-11-22 11:23   좋아요 3 | URL
미미님의 구매 페이퍼에서 이미 확인했죠 ^^ 이 책은 꼭 한번에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ㅋ 미미님의 폭풍독서를 응원합니다~!!

2021-11-22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시무스 2021-11-22 1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기 정리가 어려운 서사없는 소설이라!ㅠ 표지는 굉장히 인상적인것 같은데 도전은 겁나보이네요!ㅎ

새파랑 2021-11-22 13:54   좋아요 2 | URL
줄거리 쓰면 책에 있는 이야기를 다 써야할거 같아서 포기했어요 ㅎㅎ 다른분들 리뷰가 잘 정리되어있더라구요~! 한번 읽어보시고 고르셔도 좋을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11-22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독서영역은 정말 넓은 것 같아요. 러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이라는 이력만으로도 관심이 갑니다^^
담담하게 서술된 문장도 제가 좋아하니 읽어야죠, 꼭!

새파랑 2021-11-22 16:22   좋아요 3 | URL
저의 독서 범위는 소설 한정인데 ^^ 페넬로페님은 왠지 잘 맞으실거 같아요 ㅋ 단편집도 꼭 읽어보세요~!!

scott 2021-11-22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억속을 걸어가는 삶 !
이적의 노래가 생각 났습니다!ㅎㅎ
새파랑님의 오늘의 매운 맛!은

로스옹! 🖐^^

새파랑 2021-11-22 16:23   좋아요 3 | URL
로스옹을 집었다가 남미 문학으로 급선회 했습니다. 편식 금지 ^^

mini74 2021-11-22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아연소년들 에서 이 분도 언급돼요. ~ 장바구니에 모셔둔 책. 어렵다니ㅠㅠㅜ 발췌문장들은 또 참 아름답네요 새파랑님 리뷰 원래도 좋았지만 더더 자꾸 좋아지는 것 같아요. *^^*

새파랑 2021-11-22 20:50   좋아요 2 | URL
ㅋ 미니님이 칭찬해주셔서 리뷰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잃시찾 보다는 쉽습니다 ^^

scott 2021-11-22 21:39   좋아요 2 | URL
리뷰 장인 👍

새파랑 2021-11-22 21:56   좋아요 1 | URL
리뷰 장인은 두분이시죠 ㅋ 저는 학생 ^^

그레이스 2021-11-22 1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서어서 읽을꼬예요

새파랑 2021-11-22 20:51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이 어서어서 읽어주시면 좋을거 같아요 ^^ 단편도 꼭 읽어주세요~!!

scott 2021-11-22 21:38   좋아요 3 | URL
단편 강추 합니다 !ㅎㅎ

희선 2021-11-23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 가장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군요 이 말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됐다 해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많은 사람이 좋아했겠네요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 책 별로 안 봤지만... 글을 쓰려면 작은 거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걸 잘 썼군요


희선

새파랑 2021-11-23 07:05   좋아요 0 | URL
역시 🏆 의 힘이란~!! 이분 엄청 예민하고 섬세한 작가인거 같아요 ㅋ 그런데 상 받은 것 치고는 국내에 그렇게 알려진건 아닌거 같아요. 희선님은 왠지 이 책 좋아할거 같습니다~!!
 

드디어 완독. 쉽지 않은 책이었다.




마침내 안헨은 떠났다. 나는 그날처럼 격하게 울어본 적이 없다. 안헨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나에게 열어 보여주었던, 세상과 인생에 대한 사랑,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달콤한 사랑이 안겨준 지극한 부드러움과 고통을 느끼면서 울었던 것이너무 울어서 멍해지고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강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안헨을 역으로 데려갔던 타란타스가 나를 앞질렀다. 마부가 잠시 마차를 멈추고 페테르부르크의 잡지 한 권을 건넸다. 한 달 전에 나는 그 잡지사에 처음으로 시 몇 편을 보냈다. 나는 걸어가면서 잡지를 펼쳤다. 내 이름의 매혹적인 철자가 마치 번갯불처럼 내 눈을 때렸다. - P176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도시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고, 내게 세상은 오랫동안 친숙한 들판과 언덕뿐이고, 나는 농부들과 아낙들만을 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고작 두세 개의 조그만 영지와 바실리옙스코예뿐이고, 들어올리는 썩은 창틀에 색유리 겉창이 달려 있고 정원을 향한 두 개의 창문이 달린 낡은 모퉁이 방이 내 모든 꿈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왜 가끔씩이라도 깨닫지 못했던 걸까? - P181

발코니로 나오면서 나는 매번 당혹스러웠고, 심지어 약간 고통까지 느끼면서 밤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곤 했다. 도대체 밤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밤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해야만 하나. - P183

나와 저 달은 이제 오래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고, 말없이 끈기 있게 뭔가를 기대하면서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는 우리 둘이 뭔가를 몹시 그리워한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 P184

안헨은 오랫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심지어 낮에도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하든 간에 모든 것 뒤 안헨이 있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 P185

나를 에워싸고 있는 영원하고 거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무한함 속에서,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공간인 바투리노란 곳에서 도대체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삶이 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삶이란 서로 무관한 감정과 생각들, 과거에 대한 무질서한 회상, 미래에 대한 모호한 예측의 끊임없는 흐름, 즉 한순간도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는 흐름이라는 걸 알았다. - P235

글리케리야는 귀여운 애요. 그리고 숨길 과실도 없어요, 하지만 아주 변덕스러운 애요. 오늘은 이것에 마음이 끌리다가도 내일은 다른 것에 마음을 줄 수도 있어요. 물론 그애가 꿈꾸는 건 전나무 아래에 있는 톨스토이의 작은 승방이 아니오.이 조그만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그애가 옷을 어떻게 입고 있나 보시오. 난 딸애가 절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애는, 말하자면, 절대 당신의 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오. - P315

"자기는 항상 내가 변한 걸 보고 놀라워하지."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자기가 변한 걸 알기나 할까! 자기는 왠지 점점 나에게 관심을 덜보이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땐 특히나 그래. 난 자기에게 마치 공기 같은 것이 될까봐 걱정이야.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공기에 관심을 갖지는 않아. 사실이잖아? 자기는 이게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하지. 그러나 자기는 이제 나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 P406

당시 나의 모든 생각, 당시 나의 모든 감정은 내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감정이었다. 그것들은 갑자기 나의 생각과 감정이 되었다. - P418

겨울 내내, 매일매일 나는 끈질기게 그녀의 편지를 기다렸다. 그녀가 그렇게 무정하고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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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2 0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제 🪓옹 세트 꺼내 보신다에 🖐^^

새파랑 2021-11-22 07:41   좋아요 1 | URL
꺼내만 놔서 넘겨봤는데 파본은 없네요 ^^
 

자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처음 목격한 나자의 죽음은 삶의 느낌, 즉 내가 막 알게 된 삶의 느낌을 앗아가버렸다. 나는 내가 죽을 운명이고, 나쟈에게 일어난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 어느 순간 내게도 일어날 수 있으며 지상의 모든 생명체, 육체적·물질적 존재는 반드시 사멸하고 부패하여, 집밖으로 실려 나갈 때까지 나쟈의 입술을 뒤덮었던 연보랏빛 흑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에 젖은 나의 영혼, 마치 무언가에 심하게 창피당하고 모욕당한 듯한 나의 영혼은 도움과 구원을 받기 위해 신을 찾았다. - P66

누구보다 게오르기 형이 그 새로운 생활의 모습으로 나를 고무시키고 들뜨게 했다. 내게 행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당시 형은 늘씬했고, 신선한 젊음, 맑고 훤칠한 이마, 빛나는 눈, 두 뺨에 물든 짙은 홍조로 몹시 아름다웠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모스크바 제국 대학교의 학생이었고, 내가 들어가게 될 김나지움을 졸업할 때 금메달까지 받았다. - P76

이렇게 나는 바스카코프도 올랴도 잊어버릴 테고, 심지어 내가 지금 몹시 사랑하고 있고, 커다란 행복을 느끼며 사냥을 같이 하고 있는 아버지도 잊어버릴 테고, 내게 낯익고 소중한 골목들이 있는 카멘카도 잊어버릴거야. - P80

학창 시절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때 나는 아이에서 소년으로 변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겉보기에 나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고 평범하게 흘러갔다.매일같이 등교하고, 저녁마다 항상 서글픈 마음으로 마지못해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고, 다가오는 방학을 고대하며 끊임없이 꿈꾸고, 크리스마스와 여름방학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항상 세보곤 했다. 아, 이 모든 날들이 더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 P100

이 꽃들이 그저 ‘담배‘라고 불린다는 건 후에야 알았다. 내가 이 냄새를 기억하게 된 까닭은, 그후 며칠 동안 처음으로 달콤하게 앓았던 사랑의 냄새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군에 사는 아가씨 덕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담배 냄새를 맡으면 항상 흥분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전혀 알지 못했고, 내가 평생 동안 담배 냄새를 맡기만 하면 즉시 그녀를, 분수의 신선함을, 군악대의 연주를 떠올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P104

‘도로 젊어지다‘는 한때 양조장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술에 취한 사람은 젊고 유쾌한 뭔가가 자기 안으로 들어와 달콤한 발효가 일어나고 이성으로부터, 일상의 얽매임과 규율로부터 해방된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농부들도 보드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능한 한 마셔야지! 보드카를 마시면 사람 마음이 풀어지거든!" ‘러시아의 즐거움은 술 마시는 데 있다‘는 유명한 말은 겉보기와는 달리 전혀 단순하지 않다. - P128

그 겨울밤의 방울 소리, 눈 덮인 텅 빈 벌판의 황량한 밤, 그 놀라움, 추위, 어스름, 부드러움, 떨림 그날 밤 눈과 낮은 하늘이 하나로 합쳐져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앞에서 작은 불빛이 계속 아른거렸는데, 마치 겨울밤이 낳은 신비한 동물의 눈 같았다. 눈 덮인 들판의 밤공기, 너구리털 외투와 얇은 부츠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 모피 장갑에서 빼낸 아가씨의 따스한 손을 난생처음 내 젊고 뜨거운 손으로 잡아본 느낌,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어둠 속에서 사랑스럽게 반짝이던 아가씨의 두눈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 P154

‘죽음은 태양 같아서 죽음을 직접 바라볼 수 없다‘는 농부들의 말을 알지요? 바라볼 수도 없고, 바라봐서도 안 돼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 그가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걸어다니며 쉰 목소리를 내는 게 부끄럽다오. 그러나 이게 우리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소?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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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9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을 쓴 작가
투르게네프 보다 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


새파랑 2021-11-19 22:50   좋아요 1 | URL
책보면 좀 망했다고(?) 쓰여있던데 그렇게 폭망한건 아니었군요 ^^

2021-11-20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0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11-21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새파랑 2021-11-21 12:3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거 같아요. 그래서 자전적인 책이 좀 더 와닿는거 같아요 ^^

서니데이 2021-11-21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러시아 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네요.
주말에 미세먼지가 좋지 않습니다.
새파랑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11-22 07:43   좋아요 0 | URL
ㅋ 러시아는 광활한거 같아요 ^^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