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반 부닌. 너무 좋다. 처음 읽는 작품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노인의 시체는 신세계의 해안에 있는 집으로, 무덤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주일간 수많은 모욕과 인간들의 무관심 속에 항구의 창고에서 다른 창고로 옮겨다닌 시체는 마침내 바로 얼마전까지 구세계로 가는 그를 퍽이나 융숭하게 대접했던 그 유명한 배에 다시 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산 자들에게서 감추어졌다. 타르를 칠한 관 속에 넣어져 캄캄한 선창 깊이 내려보내졌다. - P36

"가장 큰 희극이 뭔지 알아?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득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지. 바로 그게 문제야, 창. 그렇지만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정말 멋져!" - P51

그렇게 창의 낮과 밤은 단조롭게 흐른다. 세상은 마치 기선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부주의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물속 암초에 전속력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어느 겨울 아침 잠에서 깬 창은 방안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고요에 놀란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장의 침대로 뛰어든다. 그리고 창백하게 굳은 열굴에 눈이 빈쯤 열려있고 고개는 뒤로 떨군 채 이동도 없이 누워 있는 선장을 본다. 그 눈을 본 창은 그의 다리를 쳐서 넘어뜨렸거나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절망적인 울음소리를 낸다. - P60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집요하게 미타를 원하고 갈구하던 카타가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런 카타와 전혀 닮지 않은 평범한 원래의 카타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미타가 지금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 P245

무언가가 그녀를 그에게서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미타는 교장에 대헤 편안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교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교장 말고도 또다른 관심사들이 카타의 마음을 차지한 것 같았다. 누가? 무엇이? 미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카타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는데, 특히 그녀가 그몰래 무언가를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고 상상하며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그가 느끼기에는 뭔가 불가항력적인 힘이 카타를 그에게서 먼 어딘가로, 혹은생각만 해도 끔찍한 어떤 것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 P246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는 거죠? 당신 생각에 내 모든 것이 그렇게 천박하다면 말이에요!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해요?"

그러나 그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긴장된 힘으로 인해 점차 늘어만 가는 요구 때문에 그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질투했고, 질투로 인한 같등이 커질수록 그의 사랑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더 커져가는 듯했다. - P250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사랑이라 불리는 것인가, 아니면 정열이라 불리는 것인가? 그녀의 외투 단추를 끄르고 천국처럼 매혹적인 가슴에 입을 맞출 때, 그 가슴이 영혼을 뒤흔들 만큼 순종적이고 순진무구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열려 있을 때 그를 거의 기절할 정도로 죽음 직전의 황홀경으로 이끄는 것은 카타의 영혼인가 아니면 육체인가?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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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9, N25040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약간의 변화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과거 한국문학의 천재였던 이상의 삶을, 현재 한국문학의 천재인 김연수가 재구성한 작품이 <꾿빠이, 이상> 이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이상이 맞지만 이상이 살았던 시대는 단지 소재일뿐, 이상 사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다 가상의 이야기이냐? 그건 아니고 왠지 사실인듯한 이야기를 다룬다.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진짜냐 가짜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믿느냐 안맏느냐가 문제일 뿐.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세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연관없어 보이지만 김연수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상의 작품집과 오감도를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의 작품집은 너무 어려웠다. 잘 읽히지도 않고 내용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도 읽은 <날개>와 <봉별기> 외에는 쉽게 읽히지 않았고, 그나마 중편인 <12월 12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감도는 내 이해 범위 밖이었다... 그럼에도 이상이 천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꾿빠이, 이상>을 쓰기 위해 김연수 작가님이 정말 고생하셨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김연수 작가님 입문용으로는 다소 어렵긴 하지만, 이상을 좋아하거나  아직 김연수 작가님의 안읽은 작품을 찾는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추가) 리뷰를 대충 쓴 대신 마무리는 김연수 작가님 책탑으로~!!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해보자면,

장편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단편집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입문용 : <너무나 많은 여름이> 이고,


아직 안읽은 김연수 작가님 소설은 <7번국도>, <스무살> 두편 남아있다. 전작읽기 도전은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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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30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기 도전, 을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5-05-01 07:55   좋아요 0 | URL
넵 감사합니다~! 얼마 안남았습니다~!! ㅋ

그레이스 2025-04-30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탑 멋져요~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 김연수를 못 읽어봤네요
정말 이상하게도^^ㅋㅋ
몇권 있는데...

새파랑 2025-05-01 07:56   좋아요 1 | URL
김연수 작가님 저의 최애 작가입니다. 읽으시면 깜짝 놀라실겁니다~!!

페넬로페 2025-04-30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의 작품 읽기와 책탑 멋지네요.
새파랑님께서 추천하신 책만 안 읽은 것 같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5-05-01 08:00   좋아요 1 | URL
앗 ㅋ 저의 추천작을 추천합니다~!! 다 좋긴 하지만~!!!

coolcat329 2025-05-01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새파랑님 진정 김연수 작가의 찐팬이네요. 저는 에세이 한 권만 읽어봤는데 추천작들 읽어볼게요~

새파랑 2025-05-01 11:33   좋아요 0 | URL
저는 김연수 작가님 에세이는 아직 안접했습니다 ㅋ 소설은 장편 단편 다 좋습니다~!!!

다락방 2025-05-09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새파랑 님 책들을 다 어디에 보관하시나요?

새파랑 2025-05-09 09:35   좋아요 0 | URL
옷장(?)에 책탑 그대로 보관합니다 ㅜㅜ 나머지 책들은 박스에다가... 제가 책장을 살 형편이 안되가지고 ㅜㅜ

이작가님처럼 바닥(?)에 쌓아 놓기에는 책이 손상될거 같아서 안합니다 ㅋ

독서괭 2025-05-09 13:38   좋아요 1 | URL
오오 옷장 활용! 책탑 그대로 보관 ㅋㅋㅋ

독서괭 2025-05-09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탑이네요. 저는 <사랑이라니 선영아>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토록 평범한 미래> 세권 읽은 것 같습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 읽다 중단되어버려 다시 못 읽었군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읽어보고 싶어요.

새파랑 2025-05-09 15:02   좋아요 0 | URL
일곱해의 마지막이 잘 안읽히긴 하더라고요. 꾿빠이 이상도 그렇고요. 백석, 이상 같은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배경지식이 중요하더라구요. 환희괭님 김연수 작가님 작품 많이 읽으셨군요^^
 
내가 그대를 잊으면 - 트루먼 커포티 미발표 초기 소설집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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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38 트루먼 커포티가 10대 때 쓴 단편집. 나는 10대때 뭘 했었나 반성해본다...제목과 표지가 정말좋은데 포함된 단편들도 모두 좋다. 자전적인 느낌이 많이 남. 이제 그의 장편들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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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많이 남아서 다시 읽는중.

성근 눈발이 다시 날리고 있었다. 희끗한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을 때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 P235

생명이 꺼지면 영혼은 고통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을 당신은 믿습니까.

그 믿음에 의지해 때로 사람들은 피 흘리는 동료, 신음하는 개를 앞당겨 죽입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전장에서, 동물병원에서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때, 정말 사라지는 것은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의 고통 아닐까요. - P259

나약합이 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걸. 간절함이 알 속의 죄를 깨어나게도 한다는 걸. 문밖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을. 모든 일들의 시작이 자신이있음을, 그러니 자신을 제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논리적인 길임을 확신하는 순간을. 무의미로 무의미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밀봉하려는 마지막 결단을.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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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리 읽으면서 아픈지 모르겠다..




투명하게 사라져버린 새를 새라고 부를 수 있을까? - P7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그것이 별의 생리이자 운명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별로부터 았다. 별들과 같은 생리와 운명을 배고 태어난 인간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다가 죽는다. 다른 것은 생애의 길이뿐이다. - P17

나에게 중요한 건 그리는 순간이니까. 그게 전부니까. - P28

내 어머니의 손을 닮았던 삼촌의 손을 기억한다. 인주의 집에서 처음 삼촌을 만난 날, 저런 손을 가진 남자도 있구나, 생각하며 놀랐다. 먹이 묻은 손, 음식을 만드는 손, 뜻 없이 인주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 살결이 거칠어 보이는 손, 푸릇한 멍들이 손등에 앉은 손, 무언가를 많이 참아본 사람의 손, 불현듯 내 손을 뻗어 크기와 온기를 재보고 싶던 그 손. - P49

난 말이지, 정회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 P52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 막아달라는 말일수도 있어. - P52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 P53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도 단언할 수 없다. 모른다고밖에는, 모든 것이 덩어리로 다기왔다고 밖에는. 스며들고 빈저갔다고밖에는. 당신의 그림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치럼. - P63

누군가의 죽음이 한번 뚫고 나간 삶의 구멍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그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기 위해 달아나고, 실제로 까마특히 떨어져서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뚫고 나간 자리는 여전히 뚫려있으리란 것을, 다시는 감쪽같이 오므라들 수 없으리란 것을 몰랐다. - P64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이상한 비현실감을 띠고 물러서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가 체머리를 떨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불과 몇 초의 시간동안 깨닫는다. 두렵지 않다는 것을. 내 삶이 얼마나 헐벗어 있었는지를. 잃거나 부서질 것을 겁낼 어떤 귀중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 P117

확신할 수 있는 것 따윈 없어
확신할 수 있는 건 모두 죽었어. 썩어서 사라졌어. - P144

한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 없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도해본 적은 있습니다. 가장 많이, 간절하게 기도한 내용은 죽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들이주는 누군가가 정말 존재했다면 난 이미 여러번 죽었을 겁니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건, 그때마다 내가 그만큼 더 강하게 살아 있길 택했다는 걸 뜻합니다. 이건 말장난이 아닙니다. - P146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에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씩어가는 곳도 거기에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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