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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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내 약점이지요.]  P.75


전락 : 아래로 굴러 떨어짐. 나쁜 상태나 타락한 상태에 빠짐

1956년 발표된 "알베르 까뮈"의 마지막 작품인 <전락>은 우선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프랑스어로 La Chute 라고 한다.

"까뮈"의 작품은 <이방인>하고 <페스트> 밖에 몰랐었지만, 얼마전 <이방인> 재독을 통해 "까뮈"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알라딘 우주점 오프라인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구입했다. 사실 "까뮈"여서 구입했다기 보다는 '창비세계문학'이어서 구매한게 더 크긴 하지만...

전직 변호사이고 현재는 속죄판사인 "끌라망스" 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전락>은 구성이 다소 특이하다. 화자의 수다스러운 말만 존재하고, 주인공인 청자의 말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끌라망스"만 말하고 상황을 설명한다. 연극으로 친다면 1인 모노 드라마와 같은 구성이다.

하지만 이런 구성이 독자로 하여금 화자인 "끌라망스"의 말에만 집중하게 하고, 작품의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과 속죄'가 아닐까 한다.

모든 걸 갖추고 있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었던 변호사 "끌라망스"는 어느날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자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를 그냥 지나치게 되고 결국 여자는 강물로 투신을 한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그는 다리 아래로 가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그냥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후 그는 이때의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인해 "전락"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그때부터 내리막길로 내려가게 된다. 주변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그의 관점은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그는 주변인들을 감시하고 비난하는 심판자로 인식한다. 또한 "전락"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요. 이들에게 말하느니 차라리 교제를 피해버릴 겁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와 비슷해서 우리와 같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속을 털어놓게 됩니다. 결국 제 행실을 바로잡고 싶지도 않고, 더 나아지고 싶지도 않은 거지요. 그러자면 먼저 자기한테 결함이 있다는 판결을 수용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다만 동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길 안에서 격려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P.82


[우리는 어느 누구의 결백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 모든 이들의 유죄성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 외에 다른 모든 이들의 범죄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것이 내 신념이자 바람이기도 합니다.]  P.107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속이 더 훤히 드러나 보일 때가 있지요. 진실이란 빛처럼 눈을 멀게 하지만 거짓은 아름다운 석양 같아서 각각의 물체를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P.118


결국 "끌레망스"는 변호사에서 치안판사로,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전락'하게 되고, 마지막에 그는 과거 여인이 투신한 '쎈 강변'으로 돌아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떨어져 버린 건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까뮈"의 자전적 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마지막 작품 <전락>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고,  읽으면서 자꾸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까뮈"가 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마치 나 자신을 해부하는 느낌을 주는 인상깊은 문장들이 책속에 가득하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곧 다시 읽어봐야 겠다.


PS. 노래가 빠질 수 없지.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은 별로 없겠지만 이 책의 내용과 어울려서 소개한다.

"이승열" <돌아오지 않아>
https://youtu.be/x3UQEawJPug

하지만 밤은 까맣게 내려
하늘거리는 잎새를 누르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떨어져 버린 넌 돌아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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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8 10: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1등? 🤭 가수 이승열님 보컬이 독특해 미생 주제곡이 떠올랐는데 그 분 맞네요!✌새파랑님 올려주신 이 리뷰와도 가사가 너무 잘 어울리고요. 변호사에서 판사로 전락했다는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치안판사는 명예직이군요. p.118의 발췌문이 특히 눈에 들어옵니다.

새파랑 2021-09-08 10:48   좋아요 7 | URL
1등😊 책에는 속죄판사라고 나오더라구요. 정확히 뭐가 좋은지는 저도 잘 😅
새벽에 깨서 다 읽었는데 완전 어려웠어요 ㅡㅡ 근데 문장들이 하나같이 다 완전 좋아요~!!
이승열님 광팬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9-09 07:54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미생 OST ‘날아‘ 좋아해요!

저는 까뮈를 고등학교 불어 쌤때문에 읽게 되서 넘 일찍 읽었어요
이방인, 1도 모르고 그저 감상적인 독후감만 썼던 기억이...
지드의 <배덕자>랑 스토리가 엉켰던 웃지못할 상황도...ㅋㅋ
페스트,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 그 외 읽었는데 전락은 못읽었네요
리스트에 올려요!

새파랑 2021-09-08 10:49   좋아요 7 | URL
<날아 >도 좋고 이곡들어 있는 앨범도 좋아요~!! 그레이스님이면 이 책 그냥 이해하실거 같아요. 저에겐 난관이었어요 😅

2021-09-09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9-09 07:54   좋아요 1 | URL
저의 잘못된 기억일 수 있겠네요
댓글 고침

2021-09-0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9-09 08:48   좋아요 1 | URL
기억이 이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더듬어 보니 미생 ost듣고 좋아서 누구지? 정동하? 했다가 이승렬? 목소리가 비슷한데 그럼 부활 싱어중 하나인가? 했다가 아니네? 까지 갔는데, 아니네를 잊고 말았어요.
기억의 상실과 편집...
좌절!

mini74 2021-09-08 11:3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몰랐어요 ㅠㅠ 이런 책이 있군요 !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 ㅠㅠ 어렵다니 쪼금 겁도 나지만 읽어보고 싶어요 ~~

새파랑 2021-09-08 11:55   좋아요 5 | URL
어려워도 제 수준에서 어려운거지 미니님이야 가볍게 읽으실거 같아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9-08 11: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요즘의 제가 읽어야 할 책이네요. 까뮈는 작품도 멋지지만 사람 자체도 좋은 듯해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쉽게 풀어주셔 일단 입문한 느낌이어요. 이 책은 당장 읽고프네요. 도서관 달려가겠음요^^

새파랑 2021-09-08 12:21   좋아요 5 | URL
까뮈는 일단 외모부터가 너무 멋진거 같아요 😆 뭔가 아우라가 있어요 ㅋ 책읽기님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독서괭 2021-09-08 12: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책이군요. 그래도 새파랑님 글 보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뭔가 도움받을 해설서를 곁들여 읽는 편이 좋겠네요🧐

새파랑 2021-09-08 12:23   좋아요 5 | URL
저는 꾸역꾸역 읽었어요 😅 까뮈는 어려운거 같긴 해요 ㅎㅎ 북플에도 그렇게 리뷰가 많지는 않더라구요~

페넬로페 2021-09-08 12: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까뮈 읽기는 이방인과 페스트 이후로 딱 멈추어 버린것 같아요
이 책의 무엇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해부하게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꼭 읽어야겠어요^^
이승열???
진짜 처음 들어보는 가수입니다~~
노래 들어볼께요^^

새파랑 2021-09-08 13:13   좋아요 5 | URL
까뮈의 통찰력 있는 문장에 좀 놀라게 되더라구요. 역시 노벨상 탄 사람 같더라구요. 제가 이해를 완벽히 해서 설명드리고 싶지만 그게 안되는 ㅎㅎ 이승열 노래 완전 좋아요. 인기곡 듣다 보시면 익숙한 노래도 많으실거에요😄

막시무스 2021-09-08 13: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자살방조도 아니고 떨어지는걸 목격하고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은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 충만중입니다!ㅎ

새파랑 2021-09-08 13:16   좋아요 6 | URL
그 방조한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더라구요. 범죄는 아니지만 모두가 자신을 심판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죄지었는데 걸리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찔리는 기분과 비슷한? ㅎㅎ 어렵긴 한데 와! 하는 느낌이 들어요 🙄

2021-09-08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9-09 0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방인도 페스트도 잼나게 읽어서 이 책도 도전하고 싶은데 새파랑님이 꾸역꾸역 읽으셨다니 도전하기 좀 겁나네요~ 모든 걸 읽어내시는 분이신데!! 하긴 이것도 읽어 내셨구나!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9 07:10   좋아요 1 | URL
문장이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건 아닌데, 스토리가 아닌 혼자만의 독백처럼 책이 쓰여져 있어서 진도가 팍팍나가지는 않더라구요. 툐툐님의 명상에 딱 어울리는 책입니다~!!

희선 2021-09-10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지는 않았지만 카뮈 하면 《이방인》 《페스트》가 생각나는데, 이런 소설도 있군요 소설과 노래가 어울리는군요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래도 사람은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하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희선

새파랑 2021-09-10 06:19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두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다른 작품도 꽤 있더라구요. 까뮈는 책 제목을 너무 잘 짓는것 같아요. 전락 이라니 ㅎㅎ 이 음악은 뮤직비디오랑 보면 좀 슬픕니다 ㅜㅜ
 

다락방님의 책은 조금씩 읽어나가야 겠다.
‘책을 읽다‘가 아닌 ‘사람을 읽다‘라는 제목이 너무 좋다.






가장 큰 감사는 역시 알라디너들에게 돌린다. 부족한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멋진 댓글을 남겨주고, 최고의 공감을 표현해주었다. 그들이 있기에 읽고 쓰는 걸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의 소중한 알라디너들." - P9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에서 그릭은 조셀린이 좋아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모두 읽는다. 그는 조셀린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관심을 가질 거라 기대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인지 글을 보고 완전 공감했다...) - P23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ㅔ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그들은 내가 선물한 책을 읽으며 책을 선물해준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을까.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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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의 자전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이다. 이 책은 대단히 어렵지만 왠지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정당하다는 자각, 옳다는 만족감, 자신을 존경할 수 있는 기쁨, 바로이런 것들이 우리를 똑바로 세워주고 또 전진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원동력들이지요.
- P22

그런데 왜 항상 죽은 자들에게 더 공정하고 더 너그러운지 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에겐 지켜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내버려둡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칵테일을 마시고 예쁜 애인을 만나는 사이에, 요컨데 짬이 날 때 잠깐 경의를 표하면 그만입니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떠오른다...)
- P35

누구에게나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지 않으면 모든 이유들이 서로 대립할 수 있고, 결국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면서도 무섭기도 하다.)
- P47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닌 대사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어떤 것", "이유는 없어요, 매혹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사랑에는 넌더리가 났으니까요..." 따위가 있었는데, 몹시 진부한 것들인데도 매번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 이런 대사도 있었지요. ‘이것은 지금껏 다른 어떤 여자도 주지 못한 신비로운 행복이며, 아마도 아니, 확실히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바로 그래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거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까뮈의 작업멘트?)
- P61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내 약점이지요.
- P75

특히 친구들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할 때, 이 말을 곧이곧대로믿지 마십시오. 이들은 단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를 당신이 보증해주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 P81

그래서 우리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요. 이들에게 말하느니 차라리 교제를 피해버릴 겁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와 비슷해서 우리와 같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속을 털어놓게 됩니다. 결국 제 행실을 바로잡고 싶지도 않고, 더 나아지고 싶지도 않은 거지요. 그러자면 먼저 자기한테 결함이 있다는 판결을 수용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다만 동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길 안에서 격려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런 날카로운 통찰력이란...)
- P82

당신은 중세 때 고난실이라 불리던  지하 감방을 모르겠군요. 대게의 경우,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었지요. 여타의 감방들과 다른 점은 교묘한 크기에 있었습니다. 서 있을 수 있을만큼 높지도 않고 드러누울 수 있을 만큼 넓지도 않아, 엉거주춤 어색한 자세로 대각선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잠이 들면 전락이었고, 깨어 있을 때는 웅크린 자세였지요.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 아닙니까, 날마다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확고부동한 구속에 의해, 이 수형자는 자신이 죄인이며, 무죄란 사지를 맘껏 펼 수 있는 데 있음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었지요.
- P106

우리는 어느 누구의 결백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 모든 이들의 유죄성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 외에 다른 모든 이들의 범죄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것이 내 신념이자 바람이기도 합니다.
- P107

대도시에서 방황하는 고독한 인간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 P116

아무튼, 내 측근 중 하나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거짓말을 해야 하느니 차라리 숨길 만한 비밀을 갖지 않겠다는 부류, 둘째는 숨길 만한 비밀을 갖지 않느니 차라리 거짓말을 하겠다는 부류, 마지막으로 거짓말과 비밀을 둘 다 좋아하는 부류 이지요.
- P118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속이 더 훤히 드러나 보일 때가 있지요. 진실이란 빛처럼 눈을 멀게 하지만 거짓은 아름다운 석양 같아서 각각의 물체를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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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극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04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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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새해의 결심이나 치통까지도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 이므로"


체코 하면 어떤 작가가 떠오르나요? 어떤사람은 <변신>의 "카프카"를, 어떤사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쿤데라"를 떠올리실것 같다. 저는"쿤데라"가 떠오르네요.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들을 체코 작가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독일어로,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주로 썼으니 체코 출신이긴 하나 체코 작가라고 하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코어로 글을 쓴 체코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번에 내가 읽은 <곤충 극장>의 작가인 "카렐 차페크"가 바로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유명한게 꼭 훌륭하다는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R.U.R : 로섬의 만능 로봇>이란 연극 작품을 통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로봇이란 단어(체코어로 Robota가 노동을 뜻한다고 한다.)를 만들어낸 "차폐크"는 유럽의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행하던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작가다. 그는 탁월한 글솜씨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당시의 정치성향을 반대하여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그래서 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당시 정치를 풍차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곤충 극장>에는 <곤충 극장>, <마르코풀로스의 비밀>, <하얀 역병>  등 세 작품이 실려 있는데, 내용들이 모두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이유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곤충) 한명 한명(한마리 한마리) 모두 생동감있는 대사를 구사하여 마치 살아 숨쉬는 사람들(곤충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1. 곤충극장

"카프카"의 <변신>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작가들은 왜 인간을 곤충에 빗대어 작품을 썼을까? 생각없이 본능에 사는 인간들과 곤충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랬던 걸까? 이 작품에 등장한 곤충들은 모두 인간의 사악하고 나약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술에 만취하여 등장한 "여행자"는 갑자기 곤충들의 세계로 빠지게 되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곤충의 세계에서 그는 욕망만을 뒤쫓아 살아가는 '나비', 무가치한 것들에 대해 삶을 허비하는 '쇠똥구리', 자신의 번영을 위해 살인을 일삼는 '맵시벌',  어리석게도 희생되는 '귀뚜라미', 맹복적인 투쟁을 추구하는 '개미들'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야기 한다. 인간이나 곤충이나 다를 바 없다고.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행자'는 '하루살이', '번데기'와 함께 등장하면서 인간의 삶 역시 결국 영원할 수 없다는,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다는 주제를 암시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비겁한 놈, 넘어진 사람 목을 조르다니! 놔, 한순간만- 달란 말이야. 살게 해줘! 살게 해달라고! 꺼져 버려! 할 말이 너무나 많단 말이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이제는 안단 말이야!]  P.100


이 작품의 "여행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이미 늦은 후 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니다.



2. 마르코풀로스의 비밀

이러한 존재에 대한 "차페크"의 고민은 다음 작품인 <마르코풀로스의 비밀>에서 더욱 구체화 되어 나타난다. 만약 당신에거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받아들이겠는가? 만약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삶에는 의미가 있을까? 이 작품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에밀리아"라는 30대 외모를 가진 오페라 가수를 통해 삶이 의미가 있는 건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아무도 3백 년 동안 사랑할 수는 없어. 아니, 희망할 수도 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없어. 3백 년 동안 눈을 똑바로 뜨고 살 수는 없는 거야. 견딜 수가 없으니까. 모든게 차갑고 무감각해져. 선에도 무감하고, 악에도 무감하고. 천국에도, 이승에도 무감해져.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지. 아무것도. 죄도, 고통도, 심지어 대지도, 아무것도. 오로지 의미를 지는 무언가만 존재하는 법이야.]  P.225

결국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영생이 아닌 인생을 택한다.



3. 하얀 역병

이 작품 역시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위의 두 작품들과는 다른게 절대권력, 당시의 파시즘과 나치즘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세계의 강대국이면서 전쟁을 통해 힘을 유지하고 있던 한 나라가 있었는데, 어느날 중국에서 온 역병이 유행하게 되고, 이 유행병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다. (왠지 코로나를 연상케 한다.). 이 병이 무서운 점은 50살이 되면 무조건 걸리게 되고, 걸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무조건 죽는 병이며,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한  "갈렌"이란 의사가 등장하게 되고, 그는 그 나라를 지배하는 총사령관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백신 치료법을 공개하겠다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더이상 군수물자를 생산하지 않고 전쟁에서 물러나는 것, 즉 세계의 평화였다.  "갈렌"이 생각했을때는 자신의 백신으로 역병이 치료되더라도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 없이 백신 치료법이 제공된다면 결국 사람이 죽는건 똑같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전쟁광인 총사령관은 이를 거부하고 주변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지시하지만, 자신도 역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가족들의 설득에 의해 "갈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그러나 총사령관의 집으로 가던 "갈렌"은 총사령관의 선제공격 지시로 선동된 군중들 속을 통과하면서, 길을 비켜달라는 요청과 함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고, 그는 성난 군중들의 폭력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백신 치료법은 소멸되게 된다.

["우리 총사령관을 중상하고 있다!", "가로등에 목매달아!", "쏴버려" 등의 고함소리,. 폭력적이고 시끄러운 소요 속에 군중이 갈렌을 에워싸고 포위를 좁힌다. 잠시 후 군중이 흩어지자 왕진 가방을 꼭 움켜쥔 채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갈렌의 모습이 드러난다.]  P.322



이 책을 읽고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은 곤충과 다르게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상생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렐 차페크"의 희곡집 <곤충 극장>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머가 넘치고 풍자적인, 그러면서도 치열한 고민이 담겨져 있는 희곡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어쨋든 매주 희곡 1편 읽기는 멈추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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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9-07 16: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정말 의미심장하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를 잘 모르는데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매주 희곡 한편 읽기의 멈추지 않는 진행을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1-09-07 16:42   좋아요 6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읽는 차페크의 작품인데 정말 좋더라구요. 세상은 넓고 안읽은 좋은 책은 넘쳐나는거 같아요 😆

청아 2021-09-07 17: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새파랑님 요전에 카프카의 <변신>읽으시고 갑충에 관한 가족들의 공포와 혐오를 써주셨는데 이번에도 곤충이네요!👍 <곤충극장>에서는 또다른 의미를 던져주는 군요. 저도 집에 있는 희곡들 다 읽음 꼭 이 작품도 읽어볼래요. 풍자 너무 좋아요!!
다음 작품은 혹시<파리대왕> 인가요?😳😉

새파랑 2021-09-07 17:10   좋아요 6 | URL
읽다보니 다 곤충 판이네요 😅 다음 책은 그럼 <파리대왕>을 읽어야겠어요 ^^ 이 작품 미미님 맘에 드실꺼 같아요~!

coolcat329 2021-09-07 17: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는데 역시 빠르게 읽으셨군요.
이것이 진정한 체코문학이네요~!
체코하면 저는 쿤데라가 떠올랐거든요.

새파랑 2021-09-07 17:10   좋아요 5 | URL
저도 쿤데라로 생각했어요 😆 체코도 문학의 강국인거 같아요. 역시 쿨캣님도 사셯군요. 완전 좋아요 👍

mini74 2021-09-07 17: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나비의 탈을 쓴 쇠똥구리면서 내면에 개미의 마음을 가진 하루살이 ? 넘 재미있게 쓰셔서 리뷰도 술술 읽혀요. 아 왜 이리 재미있어보이는 책이 많은걸까요. ㅎㅎ

새파랑 2021-09-07 17:53   좋아요 5 | URL
나비의 탈을 쓰셨다니 미니님은 아름답다는 걸 의미하는건가요 😆 미니님 알라디너 티비를 보면 미니님이 소개하신 책이 재미있어 보여요 ^^

mini74 2021-09-07 18:00   좋아요 4 | URL
나비가 욕망을 뒤쫓는다고 하셔서 ㅎㅎ 예쁘지는 않지만 힘은 셉니다 *^^*

붕붕툐툐 2021-09-07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명작이죠~ 엄지 척 희곡입니다~ 새파랑님은 세 작품 다 좋으셨다니 저보다 훨씬 고오급 독자이십니다~👍👍👍

새파랑 2021-09-08 05:38   좋아요 3 | URL
역시 희곡 천재 툐툐님도 인정하신 명직~!! 저는 뒤로 갈수록 작품이 좋더라구요^^

그레이스 2021-09-07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매주 한 편의 희곡!
👍 👍 👍

새파랑 2021-09-08 05:39   좋아요 3 | URL
이제 가지고 있는 희곡작품이 몇개 없어서 또 읽을 책을 찾아봐야할거 같아요~!!

희선 2021-09-08 0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곤충은 작지만 사람한테 도움을 많이 주기도 한다는 게 생각납니다 어제 새벽에 곤충으로 만든 단백질바가 있다는 걸 봤습니다 새파랑 님이 <곤충 극장> 읽는 걸 보고 그걸 보다니... <하얀 역병>은 정말 코로나19 생각나게 하는군요 중국에서 온 역병이라니... 쉰살만 되면 다 그 병에 걸린다니...

한번밖에 살지 못하니 서로 미워하기보다 서로 돕고 사는 게 좋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09-08 05:40   좋아요 3 | URL
곤충 단백질바 드셔본건가요? 😅 세번째 작품은 중국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은 약간 공포의 대상이었던것 같아요 🙄

희선 2021-09-09 23:58   좋아요 1 | URL
우연히 그런 게 있다는 걸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갈색거저리라는 거더군요


희선

bookholic 2021-09-08 1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주 희곡 1편 찾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대단하심~~^^

새파랑 2021-09-08 14:0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동안 희곡 읽은게 별로 없어서요 😅 희곡 재미있어요 ㅋ
 

다락방님의 데뷔작~!! 그래도 쓰여진 글중에 내가 읽은 작품이 여덟편이나 있어서 놀랐다. 사실 하나도 없을까봐 걱정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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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8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일곱편입니다. 방금 <독서공감> 페이퍼 쓰고 보니 새파랑님 글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새파랑님도 의외로 많지 않으시니 위로가 됩니다ㅎㅎ

새파랑 2021-09-08 16:43   좋아요 1 | URL
저는 독서 초보에요 😅 다락방님 책 보고 읽을책을 늘려 나가야 겠어요~!!

독서괭 2021-09-08 18:22   좋아요 1 | URL
아니 독서초보님이 고전을 이 속도로 읽으신다니 놀라워요😳

새파랑 2021-09-08 18:38   좋아요 0 | URL
코로나 때문에 취미가 독서밖에 안남아서요 😅 그냥 보통 속도 입니다~!! 책 말고 하는 취미가 별로 없어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