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 드디어 ‘입문‘ 했다. 과연 소문대로 왜 읽기 어려운지, 왜 읽다가 포기하는지 이유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일단 문장 자체가 길고, 한가지 것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며, 감정의 밑바닥 까지 표현히다 보니 문장에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겠다고 느꼈다. 만약 ‘프루스트‘가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엄청난 수다쟁이가 아니었을까란 상상까지 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어느정도 페이지가 넘어갔다. 내 경우에는 이 책을 읽을 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음악도 듣지 않고 간식도 먹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사항이 생겼다. 잠깐 정신을 집중 안하면 앞페이지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간혹 5~6페이지 앞으로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아니 그보다 더한 경우도...)

<스완네 집 쪽으로 1, 2>는 1부 ‘콩브레‘,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콩브레‘는 ˝마르셀˝이 어린시절 파리 인근 시골인 ‘콩브레‘의 할아버지집과 레오니 할머니 집에서 지내면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저번에도 언급한 ‘마들렌과 홍차‘이야기가 들어있는 챕터이다.

이 챕터에는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간략한 성격, 콩브레의 묘사, 그리고 이후에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스완˝과 그의 딸 ˝질베르트˝, 그의 아내인 ˝오데트˝에 대한 잠깐의 만남이 그려져 있다.

특히 ‘콩브레‘의 주요 산책길인 ‘메제글리즈라비뇌즈(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이 나오는데, 각자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르셀˝이 경험하고 듣고 알게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길에 있는 풍경과 집을 떠올리면서 이와 인물들의 이야기와 풍경 묘사가 마구 튀어 나와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책의 앞부분에 지도라도 한장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부인 ‘스완의 사랑‘은 시점이 갑자기 바뀌어서 ˝스완˝과 ˝오데뜨˝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챕터이다. 화류계의 여인인 ˝오데트˝가 어떻게 ˝스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미치도록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스완˝이 처음부터 ˝오데트˝에게 빠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먼저 그에게 접근하였고, 그 역시 가볍게 생각하였지만, 어느순간 그가 좋아하는 ‘보티첼리‘ 그림속 여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빠지게 되면서, 그는 격정적인 사랑에 휘말리게 된다. 누가봐도 악녀이고 계산적인 그녀이지만, 그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녀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을 했을 때 느끼는 초조함, 의심, 말못할 아픔, 감정의 변화 등이 너무 잘 표헌되어 있어서, ˝스완˝이 느끼는 사랑의 열병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그렇게도 많은 밤, 그가 그 길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는 기쁘게 해 주던 불빛으로 ˝그녀가 바로 저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알려 줬는데, 지금은 ˝그녀가 기다리던 남자와 같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154페이지

그와 그녀의 사랑의 결말 부분이 생락되어 있어서 어떻게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챕터에서는 ˝스완˝이 ˝오데트˝를 포기한것 처럼 써있어서 이후 결혼까지 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3부인 ‘고장의 이름‘은 다시 주인공인 ˝마르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가 ˝스완˝의 딸인 ˝질베르트˝에 대해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그녀와 함께한 장소인 ‘샹젤리제‘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마르셀˝의 사랑 이야기는 2부의 ˝스완˝의 사랑 이야기와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초조해하고, 기다리고, 공상하는 모습은 어린소년의 짝사랑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데, 왜 ˝질베르트˝는 나만큼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마르셀˝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또한 ˝질베르트˝를 좋아하는 만큼, ˝스완˝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도 커짐을 보여주는데, ˝스완˝의 세계에 합류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열망을 알수 있으며, 향후 이야기가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챕터 제목처럼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멋진 문장들이 나오는데, 이는 추억과 더불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나타내주는 것 같다.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이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407페이지

뭔가 책을 다 안읽고 리뷰를 쓰는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아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안 읽은 책이 8권 이상 남아 있고, 이 책의 결론도 모르며, 특히 내가 읽은 2권의 내용들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10권을 읽을 즈음에 기억나지 않을 거 같아서, 이렇게 리뷰를 써보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스토리는 정말 간략하지만 세부 내용은 절대 간략하지 않고 방대하기 때문에, 혹시 제 리뷰가 오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직접 읽어보시면 좋겠다. 특히 2부 <스완의 사랑> 은 정말 좋다.

곧  3, 4권을 읽고 내용을 다시 정리해야 겠다. 아래 사진은 새로 산 박스 세트~!! 너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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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31 20: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이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새파랑님이 밑줄 그으신 이문단이 마르셀 옹의 ‘잃시찾‘ 전권을 관통하는 주제 입니다.
이렇게 빠른 시간안에 1-2권을 읽으시면서 새파랑님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음악도 듣지 않고 간식도 먹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사항]라는 규칙 까지 정해 두시고 열독 하신건 진정 마르셀옹이 집필할때 아무도 못들어오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해 모든 문과 창을 코르크로 밀봉 해놓고 집필하듯 새파랑님은 진정 숨만 쉬시면 책에 푹 빠지셨네요.

3-4권 읽으시기전에 새파랑님께
🍺맥주+🍗치킨을~

새파랑 2021-05-31 20:41   좋아요 5 | URL
저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정말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이 책은 잠깐 집중안하고 읽으면 ‘뭐지?‘하는 느낌을 받아서요. 어디 산속 휴양림 같은데 혼자 머물면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아직 오늘 걷기를 못해서 치맥은 나중에^^

페넬로페 2021-05-31 22:00   좋아요 4 | URL
정말 이 문장 좋아요♡♡

그레이스 2021-05-31 20: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제 클래식스로 10권 전집이 있는데 민음사 표지가 예뻐서 ...^^
구입할까 생각중이예요
잘 읽히는지가 관건이죠?!

새파랑 2021-05-31 20:44   좋아요 5 | URL
저는 민음사를 좋아해서 ㅎㅎ 근데 박스로 있으니까 멋있어 보여요. 읽는 것과는 별개로 ^^ 표지가 예쁘다고 잘 읽히는것 같지는 않네요 ㅎㅎ

페넬로페 2021-05-31 22:11   좋아요 5 | URL
그레이스님~~
‘민음사판 책 구입한다‘에
한 표입니다^^

청아 2021-05-31 21: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모아 놓으니 넘나 화사해요!! 저는 거꾸로 7권까지 사 두었는데 1권이 있지만 세트로 사야겠네요ㅋㅋ원래 스포당하지 않으려고 줄거린 스킵했는데 프루스트는 오히려 사전 정보를 알아둠 좋을것 같네요.마들렌의 세계에 입문 축하드립니다!ㅋㅋㅋ*ଘ(੭*ˊᵕˋ)੭*(프루스트는 맥주마심 더 잘 이해되는것도 같아요ㅋ)-스콧님 통찰👍

새파랑 2021-05-31 21:03   좋아요 5 | URL
카메라가 안좋고 책상이 어지러워어 사진이 별로에요 ㅎㅎ 역시 시각효과가 있나봐요. 책만 봐도 프루스트에 대한 애정이 늘어나요 ^^

붕붕툐툐 2021-05-31 2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표지 넘 사랑스러워요~(제가 읽는 건 다른 버전이라) 모아만 둬도 뿌듯하실 거 같은데, 읽기까지 하시니~ 진짜 배부르실 듯 합니다! 능력자 새파랑님!!

새파랑 2021-05-31 21:56   좋아요 5 | URL
근데 이제 서론 읽은 기분이에요 ㅎㅎ 일단 관상용으로 ^^

페넬로페 2021-05-31 2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프루스트 시작하고 싶네요~~
그래도 조금만 미루고
새파랑님 리뷰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묵묵히 읽으시는 모습이 너무 멋지십니다^^
유야호👍👍👍
저는 차와 달콤한 것들을준비했어요♡♡
맛있게 드시며 책 읽으시기를~~
🥞🍰🍨🍬☕🍫🍮

2021-05-3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1-06-01 07: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풍경묘사...나오면 전 긴장하는데 ㅠ. 2부 스완의 사랑에서 ‘미치도록 자세하게‘ 묘사가 어느정도 일지 궁금합니다.
2권 완독 축하드립니다. 간식도 자제하고 읽어야하는책~~
근데 책 너무너무 이뿌네요

새파랑 2021-06-01 07:57   좋아요 5 | URL
풍경을 따라가면 가끔 머리속이 새하얗게 됩니다 ㅎㅎ 이건 책이 예뻐서 소장해도 좋을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6-01 21: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두도 못낼 위업을
이루어가고 계시네요...

새파랑 2021-06-01 22:10   좋아요 2 | URL
위업까지는 아니지만 ㅋ 그냥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지 읽을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ㅎㅎ

희선 2021-06-03 0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듯하네요 저기에서 한권씩 빼서 보시니 10권까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 다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새파랑 2021-06-03 06:36   좋아요 2 | URL
아직 다 안나왔다고 하더라구요. 보는것만으로도 너무 좋네요^^
 

[나는 나이면서도 그렇지 않아요]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단편집인 <내가 있는 곳>은 내가 읽은 작가님의 세번째 작품이다. (축복받은 집, 저지대, 그리고 이 책)  단편집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에세이 또는 일기에 가까운 작품집이다.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써서 그런가? 문장을 길게 쓰는게 제한되어 이렇게 짧은 글로 쓴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총 46개의 단편 모음인데, 제일 긴 단편이 7페이지 이다.

그렇다고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페이지, 어느 단편을 펼치더라도 줌파 라히리 특유의 감성을 잘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더 절제되어 쓰인 문장이다 보니 더 임팩트 있게 표현되어 있다.

내가 느낀 이 작품의 주된 감정은 ‘고독‘이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주인공은 그가 있는 곳에서, 그가 보는 것에서, 그의 생각 속에서 항상 혼자 있음이 느껴진다.

[머물기보다는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 쌓다가 푸는 발밑의 작은 여행 가방, 책 한권을 넣어둔 싸구려 손가방. 우리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 어떤 곳이 있을까?] 189페이지

그렇다고 이러한 감정이 단순히 외로움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혼자이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이 개별개별 단편마다 조금씩 숨어있는데, 현재 내가 있는곳을 부정적인 곳이 아닌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어로 작품을 쓴 이유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런 용기와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너무 초단편 모음집이다 보니 줌파 라히리의 다른 작품을  읽고, 그의 작품에 대한 감성을 느껴본 후에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안그러면 ‘이게 뭐야?‘ 이럴 수도 있음...

나의 다음 읽을 작품은 <그저 좋은 사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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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5-31 18: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파랑님 리뷰 읽으면 너무 그 책이 읽고 싶어져요~~
이거이거, 제가 새파랑님 찐팬 됐어요 ㅎㅎ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익히기도 힘든데 이렇게 이탈리아어로 소설까지 쓰다니
줌파 라히리 작가가 넘 대단하네요~~
내용의 주된 감정이 고독이라고 하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또 찜 합니다요^^

새파랑 2021-05-31 20:10   좋아요 4 | URL
너무 부끄럽네요. 제가 잘 쓴것도 아닌데 ㅎㅎ 줌파 라히리 다른 책을 먼저 읽고 읽으셔야 되요. 안그럼 책 던질 수도 있습니다^^

scott 2021-05-31 20:33   좋아요 4 | URL
찐팬 요기 1명 추가!✋

청아 2021-05-31 18: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장 긴 이야기가 7페이지라는게 우선 놀랍네요! 아무래도 언어에 의한 압박이 작용했을까요? ‘초단편집‘이란 말 딱인듯ㅋㅋㅋ<그저 좋은 사람>과 <저지대>가 우선 끌립니당ㅋㅋ😆

새파랑 2021-05-31 20:12   좋아요 4 | URL
<저지대> 저는 완전 좋았어요~!! 강추 합니다. 왜이리 세상에는 좋은 작가가 많은지 ~

scott 2021-05-31 20:33   좋아요 4 | URL
미미님께 저지대 추천 합니다
장마🐸 시작 되기 전 강추 합니다.

청아 2021-05-31 21:02   좋아요 3 | URL
스콧님까지 추천하시니 꼭꼭 읽어볼래요~♡ 🐸 장마 오기전!(불끈)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31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꺄하~ 줌파 라히리도 잊지 않고 읽어 주시는 센스!! 저는 장편은 다음달에 읽으려고 킵해놨다는..ㅋㅋㅋㅋ
<내가 있는 곳>은 초단편이군요~ 제가 제일 약해라 하는 장르인데, 줌파의 작품은 어떨지 너무 궁금해용!!

새파랑 2021-05-31 21:53   좋아요 2 | URL
저도 이제 팬입니다^^ 툐툐님은 이 책 좋아하실거 같아요~!
 

짧지만 인상깊은 단편집~!!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그늘은 구출이라기보다 패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감수해야 할 혹은 넘어가야 할 야생의 요소, 열망하는 혹은 증오하는 요소다.
비교당할 똑똑한 남자형제나 아름다운 자매가 없음에도 난 그늘에 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계절의 냉혹한 그늘 또는 자신 가족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내겐 누군가의 친절한 그늘이 없다.

(가족의 그늘은 냉혹하면서도 친절할 수도 있다.) - P142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닮은꼴 여인은 나에게 말하는 듯 하다.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이 두 문장은 휙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을 떨게 하듯 잠시 내 우울한 마음을 어지럽힌다.

(분신? 나는 나이면서도 그렇지 않아요...) - P187

머물기보다는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 쌓다가 푸는 발밑의 작은 여행 가방, 책 한권을 넣어둔 싸구려 손가방. 우리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 어떤 곳이 있을까?

(떠돌아 다니면서도 머무를 곳을 찾는다는)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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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다. 이건 반드시 재독해야 하는 작품이다.


순간적인 담장이여, 벽에서 자라는 덧없는 식물이여! 벽을 기어 올라가거나 창문을 장식하는 식물 중에서도 가장 빛깔이 없고 가장 서글픈 식물이여, 그대가 우리 집 발코니에 나타난 날부터 그대는 내게 가장 소중해졌도다. 샹젤리제에 이미 가 있을지도 모르는 질베르트라는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은, 그리하여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어서 술래잡기를 시작하자. 너는 내 편이야"라고 말해 줄 그대여, 연약해서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지만, 계절이 아니라 시간과 관련되어, 때에 따라 거부되기도 하고 이루어지기도 하는 즉각적인 행복의 약속, 그래서 그만큼 더 즉각적인 행복을, 사랑의 행복을 약속하는 식물이여, 돌 위에 있으면서도 이끼보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한 줄기 햇살에 싹을 틔우고 기쁨의 꽃을 피우는 강인한 식물이여.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분) - P356

이미 콩브레에서부터 질베르트의 미지의 삶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을 내던지고 그녀 삶 속으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했던 내가, 지금은 질베르트가 너무나 잘알려지고 멸시받는 내 삶의 겸허한 종이 되어 편리하고도 편안한 조력자로서 저녁마다 내 일을 도와주고 나를 위해 여러 소책자들을 검토해 줄 수 있다면 엄청난 특혜일 거라고 생각했다. - P377

나는 너무도 질베르트를 사랑했기에, 길가에서 그들 집의 늙은 집시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만 감동해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흰 구레나룻을 열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 P387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이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이미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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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5-31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다 하시니 덩달아 좋네요. 저는 그냥 소장만 해도 좋겠는 책이어요. 열권 나란히 세워 놓음 뽀대 나잖아요. 새파랑님 곧 그 사진을 올리시겠죠.^^ 장소에 대한 저 글은 여기저기서 본 것 같아요. 추억은 그리움이다!! 당근 그렇지요.^^

새파랑 2021-05-31 15:38   좋아요 2 | URL
ㅋ 절 너무 잘 아시는거 같은데요? ㅎㅎ 이 작품 6권까지만 세트가 나왔고 나머지는 아직까지 낱권이더라구요. 너무좋아요^^

scott 2021-05-31 15:56   좋아요 2 | URL
뽀대 때문에 책을 쟁여두게 되여 ㅎㅎㅎ

새파랑 2021-05-31 16:01   좋아요 2 | URL
전 그냥 생각없이 사는거 같아요...공간도 없는데 ㅡㅡ

청아 2021-05-31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새파랑님 정말 빠르십니다👍👍 게다가 2권은 더 두껍네요. 😳저도 어서 읽으러! 슝33333

새파랑 2021-05-31 15:40   좋아요 2 | URL
미미님 8권 거의 다 읽으신거 같은데~ 저는 이책 읽는데 상당히 오래 걸리더라구요 ㅡㅡ
너무 빨리 읽으시면 저는 못따라갑니다^^

청아 2021-05-31 15:44   좋아요 2 | URL
8권 500쪽이 넘는데 저는 아직 314쪽입니다ㅋㅋㅋ
다른 책도 조금씩 곁눈질 중이어서 프루스트는 하루 100쪽정도 나갈듯해요! 😁

새파랑 2021-05-31 15:56   좋아요 2 | URL
와~엄청 두껍네요. 문장에 한번 빠지면 해어나오기 힘들더라구요 ㅜㅜ 오늘 이제 읽을 책 골라야 하는데 3권을 읽어야 하나, 경멸을 읽어야 하나 갈등중입니다 ㅡㅡ

청아 2021-05-31 16:08   좋아요 2 | URL
앗 새파랑님 <경멸>부터 읽으세욧ㅋㅋㅋㅋ부탁드립니다(넙죽,꾸벅)저 코피나려고 해요ㅋㅋㅋㅋㅋ

scott 2021-05-31 16:12   좋아요 2 | URL
저도 미미님 말씀에 동감
모라비아옹의 경멸에 한표 추가!!✋

새파랑 2021-05-31 16:13   좋아요 2 | URL
앗 ㅋ 저 이제 두권 읽었는데 ㅎㅎ그럼 <경멸> 읽어봐야겠어요. 마침 챙겨온^^

청아 2021-05-31 16:17   좋아요 2 | URL
휴~3333👍(๑◔‿◔๑)👍 감사해요!ㅋㅋㅋㅋㅋㅋ😭

scott 2021-05-31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확실한 2021년 形 알라딘에서 야쉼차게 출시한 AI!

민음사가 잃시찾 완결 출간 하기 전에 새파랑님 전권(마지막권 제외하고)
완독 !하실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5-31 16:05   좋아요 2 | URL
근데 도선생님도 읽고 싶고 줌파 책도 읽고 싶고..... 큰일이에요 ^^ 저도 스콧님 처럼 AI 였으면~!!
 

줌파 라히리의 초단편 모음집.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만들어나가는 작은 만족들은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에 대한 엄마의 집착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가 보는 시각에는 관심이 없다. 내게 진짜 외로움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이 격차다.

(타인의 시각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나의 시각이 아닌) - P46

"햇살이 좋으데 도대체 왜 집가지 걸어가지 않으려는 거야?"

"이 신발이 새거야, 꽉 끼어서 아파"

"그럼 진작 말하면 됐잖아."

"당신이 이유를 물었으면 됐잖아"

(이유...물어봐야 되는 거구나....그냥 짐작하지 말고....)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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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5-31 1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단편은 뭐예요? 아주 짧은?? 글고 시발??? 신발 아니에요?? ㅋ

새파랑 2021-05-31 13:42   좋아요 2 | URL
ㅋ 제가 미쳤나 봅니다 ㅜㅜ 신발이에요~!!
단편들이 다 짧아요~총 46개의 단편인데, 길어도 7페이지를 넘기는게 없어요. 근데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