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의 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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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6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를 떠나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항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아주 재미있고 탐미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정직한 제목인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노인이 쓴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이지만 그의 성욕은 왕성하기만 하다. 특히 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면, 이러한 그의 욕구는 며느리인 사쓰코에게 향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 .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P.25



그런데 사쓰코 역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이 자신을 향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위해 노인의 추파를 아주 조금은 맞춰준다. 이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쓰코는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 반대로 노인은 며느리를 사쓰짱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P.95



며느리에게 온갖 치욕, 멸시를 당하면서도 노인의 구애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왕성한 욕망을 보인다. 노인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성욕이었다. 게다가 사쓰코의 발에 대한 미친 성욕은 그녀의 발 아래에서 죽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욕망으로 이어진다. 노인의 미친 욕망은 이뤄질수 있을까?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P.165





널리 읽힌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막 강추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기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욕나오지만 읽는걸 멈출 수는 없고 매우 재미있다.


Ps.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선집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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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2-25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초기작들이 이런 성애소설이 많다죠?^^
저도 오래전 대표작인 <미친사랑 > 읽다 깜놀했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도 풋페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나오거든요. 참... 뭐라 평하기 곤란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다음에 읽었던 책은 에로티시즘과 전혀 닿지않아서 의외였던 경험이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긴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09:12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다니자키 준이치로 팬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눈치보이지만 좋아합니다 ㅋ <미친 사랑> 보다 이 작품이 더 충격(?) 적이긴 합니다 ㅋ

그당시에 이런 작품을 썻다는데 놀랍기만 합니다~!!

희선 2022-12-26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미친 노인의 일기》라니... 욕하면서 재미있게 보게 되는 거군요 며느리 발이라니...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가 바라는 게 있었네요 다른 것 때문에 오래 살면 더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12-26 09:1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준이치로의 일대기를 보면 왠지 실제로도 그랬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ㅋ 완전 재미있어요 ~!!

coolcat329 2022-12-2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원동력이 성욕이라니 괴로울 거 같아요.ㅠ 변태같지만 본인도 괴로울겁니다. 그것도 며느리라니 ㅠ
현실에서 이런 노인은 노망난 변태겠지만 문학은 이런 인물을 그래도 이해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니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2-12-26 09:14   좋아요 1 | URL
이해하고픈 마음이 별로 들지는 않습니다 ㅋ 완전 미친 노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ㅋ 이게 문학의 힘인거 같기도 합니다~!!

청아 2022-12-2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문학을 매개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네요. 내년에는 그의 작품을 꼭 읽어야겠어요. 제 생각에 페티시즘을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이 되고싶은 열망도 얼마간 있는것 같아요ㅋ

새파랑 2022-12-26 13:11   좋아요 1 | URL
앗 ㅋ 그런 이유도 있는걸까요? 정신건강(?)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안읽는걸 추천하지만, 미미님은 독서기계시니 문제 없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12-26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전 미친, 막장 드라마네요.
그래도 이 소설을 욕하면서 읽어갈 수 있다는건 작가의 필력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욕망은 자기 뜻대로는 제어가 안되어 저런 사람도 존재할 듯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21:40   좋아요 1 | URL
필력이 ㅋ 장난 아닌거 같아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수가 없습니다 ~!!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거 같아요 ㅋ

페넬로페님하곤 완전 상극인 작품입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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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5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네 편의 단편 모두 낯선 미국 땅에서 마음속의 말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그들도 답답했겠지만 읽는 나도 답답했다. 그나마 마지막 "아가씨 유정도 하지"만 좀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기대 대비 좀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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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12-25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행복한 하루 보내셨나요? >.<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인지라 내일이면 또 한 주의 시작이네요ㅎㅎ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새파랑 2022-12-25 18:41   좋아요 0 | URL
전 크리스마스도 일반 주말하고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월요병 압박이 벌써부터 느껴집니다 ㅡㅡ
 

미학이란게 이런걸까? 단편들이 특이하면서도 아름답다.

귀공자의 시선으로 보면 일 년 내내 거기서 거기인 유곽 여자에 빠져 천편일률적인 방탕을 구가하는 악우들의 하루하루가 오히려 딱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여자에 빠지기로 하자면 평균치는 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만일 방탕을 구가하자면 늘 새로운 방탕이었으면 좋겠다, 귀공자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욕망이 불타고 있었지만 그것을 만족시키기에 알맞은 대상이 눈에 띄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P9

기분이 우울할수록, 마음이 쓸쓸할수록 향락에 동경을 품고 가슴 뛰는 흥분을 찾고자 하는 마음속 답답함은 점점 더 쌓여 갔습니다. - P16

"이 수레의 가마 안에는 남양의 물속에 사는 진기한 생물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문을 듣고 저 멀리 열대 바닷가에서 인어를 산 채로 잡아 온 사람입니다." - P20

"나는 지금까지 은근히 나 자신의 폭넓은 학식과 견문을 자랑해 왔네. 예로부터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제아무리 귀한 생물이라도, 제아무리 진기한 보물이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없었어. 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물속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구나. 내가 아편에 취해 있을 때 늘 눈앞에 빚어지는 환각의 세계에조차 이 유완 한 인어보다 더 월등한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어. 아마 나는 인어 가격이 지금 지불한 대가의 두 배였어도 분명 그대에게서 이 상품을 사들였을 것이야." - P26

"자네는 인어가 아깝지 않은가. 그런 가격으로 나에게 넘긴 것을 이제 새삼 후회하지는 않는가. 자네 나라 사람들은 어찌하여 인어보다 보석을 더 진중하는 것인가. 자네는 어찌하여 이 인어를 자네 나라로 가져가려 하지 않는가?" - P31

그 곁에 다가가는 자는 주인인 귀공자뿐인 것입니다. 유리판 한 장을 두고 서로 떨어져 물속에서 헐떡이는 인어와 물 밖에서 고뇌하는 인간은 온종일 묵묵히 마주한 채, 한 사람은 물 밖에 나가지 못하는 운명을 한탄하고 한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유를 원망하며 헛헛하고 하릴없는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P36

그날 밤 그는 나를 붙잡고 예술과 체육의 관계를 도도하게 논하여 들려주었습니다. 적어도 유럽 예술의 근원인 희랍적 정신의 진수를 터득한 자는 체육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모두 인간의 육체미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육체를 경시하는 국민은 결국 위대한 예술을 낳을 수 없다. - P86

"아니, 그럴 걱정은 없어. 부자가 타락하는 것은 그 재산을 더 불려 보겠다고 사업에 뛰어들 때뿐이지. 돈이 많은 자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항상 행복해." - P86

그렇지만 내가 신체 기관인 눈을 가진 이상 육안의 영역이 심안의 영역도 담당해야 한다면, 이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육안의 상실에 큰 가치를 둘 것 이다. - P94

"내 얘기를 좀 들어 봐. - 나는 눈으로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면, 즉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색채 혹은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니면 그림으로 그리거나 문장으로 써낼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육체야. 사상이란 아무리 훌륭해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아니지. 그래서 사상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할 리 없는 거야." - P97

‘인간의 육체에서 남성미는 여성미보다 열등하다. 이른바 남성미라는 것의 대부분은 여성미를 모방한 것이다.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중성의 미라는 것도 실은 여성미를 가진 남성일 뿐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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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을 쓸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일흔일곱이 된 오늘날, 이미 그런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고 나서 남장을 한 미인이 아니라 여장을 한 미소년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청년 시절의 와카야마 지도리에 대한 기억이 오늘에 이르러 되살아난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불능이 된 노인의 성생활(불능이 되어도 어떤 종류든 성생활은 있는 법이다.)과 관계가 있는것 같다. - P11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90세가 되어서도 보란 듯이 자식을 낳은 구하라 후사노스케와 같은 정력은 없고 이미 완전한 무능력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모른다. 사쓰코는 조금씩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험하며 그 반응을 보는 것 같다. - P25

뜻밖에도 나는 사쓰코의 맨발을 만져 볼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소파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나일론 양말을 벗어서 보여 주었다. 나는 그 발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섯 개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 P27

"내가 사랑의 모험을 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분풀이로, 하다못해 다른 사람에게 모험을 시켜서 그것을 보고 즐기자는 거야. 사람이 이렇게 되면 이제 불쌍해지는 거지!"

"자기한테 희망이 없으니까 될 대로 되라는 거네." - P71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 P95

어머니는 1883년에 낳은 당신의 아들 도쿠스케가 아직도 이 세상에 생존하여 이 사쓰코 같은 여자, 더욱이 어머니의 손자며느리, 손자의 정처인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며 한심하게도 그녀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즐기고 내 아내, 내 자식들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1928년에서 햇수로 33 년 후에 아들이 이런 미치광이가 되고, 이런 손자며느리가 자신의 집안에 들어오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하셨을까? 아니, 나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P97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녀에게 짓밟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개에게 짓밟혀 죽는다면 그것은 견딜 수가 없다. - P110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 P165

"자네 발바닥을 뜨게 해 줘. 그렇게 해서 이 백당지 색지 위에 주목으로 발바닥 탁본을 뜰 거야."
"그걸 뭐에 쓰게?"
"그 탁본을 바탕으로 사쓰짱 발을 본뜬 불족석을 만들거야. 내가 죽으면 뼈를 그 돌 아래 묻을 거야. 그게 진정 대왕생이지." - P176

"약속대로 수영장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아버님 머리에는 여러 가지 공상이 떠오를 거야. 애들도 기대하고 있고 말이야."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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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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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4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별의 날은 와야한다."



재회할 가능성 1%와 0%의 차이가 이런걸까? 다시는 볼수 없다는 이유가 애틋함을, 추억을, 사랑을 더 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11권에서는 마르셀의 과도한 집착과 의심이 결국 알베르틴을 떠나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점점 식어가는 마음을 느낀 마르셀은 차라리 헤어지길 바라지만, 또 반대로 집착은 커져만 간다.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헤에지긴 싫어하는 알수 없는 마음.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 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 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P.17



마르셀은 어떻게든 떠나간 알베르틴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틴에게 계속 솔직하지 못했다. 애써 돌려서 표현하고, 물질을 앞세우며, 질투를 유발하고, 그녀의 마음을 떠보기만 한다. 꼭 그렇게 사랑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어야 했을까?

[우리 감각 세계의 건물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며, 믿음이 없으면 건물은 흔들린다. 우리는 바로 이 믿음이 사람들의 가치와 무용성을 결정하며 또 그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열광이나 권태의 감정을 결정하는 걸 보아 왔다.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아 끝나리라고 확신하는 것 만으로도 슬픔이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또는 슬픔이 돌연 커져서 한 존재를 우리의 목숨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믿음은 슬픔을 견디게 한다. ] P.57



마르셀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결국 알베르틴은 마음을 돌리고, 그에게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이젠 돌아갈 가망이 없어진다. 완벽하고 갑작스러운 상실. 더이상 알베르틴은 없었다.

알베르틴을 떠나보낸 것도, 알베르틴을 상실한 것도 모두 마르셀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마르셀의 사랑은 예전보다 더 커져만 간다.

[한 존재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형태를 갖추고 시간이란 틀에 복종해야 한다. 연속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존재는 한 번에 한 모습밖에 보여 주지 않으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들의 집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에게 그것은 큰 약점이지만, 또한 큰 힘이기도 하다. 존재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또 어느 한순간의 기억은 그 후 일어난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이 기록한 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과 더불어 드러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그런 파편화는 다만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무한대로 증식한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망각해야 했던 것은 한 명의 알베르틴이 아니라 무한한 알베르틴이었다. 알베르틴을 잃은 슬픔이 견딜 만한 상태에 이르자, 나는 다른 알베르틴, 다른 수백 명의 알베르틴과 더불어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P.110



왜 우리는 항상 떠나 보내고 난 후에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되는 걸까? 왜 항상 후회하게 되는 걸까?

[다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고장에서, 그곳에 갈 때 이미 통과했던 역의 이름과 모습을 모두 알아보게 하는 같은 노선의 기차를 타고 귀갓길에 오를 때면, 그래서 한순간 기차가 그런 역 중 하나에 멈출 때면, 우리가 방금 떠난 장소를 향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런 환상은 이내 사라지지만, 그러나 한순간 우리는 떠난 장소를 향해 다시 실려 간다고 느꼈으며, 바로 이것이 추억의 잔인함이다.] P.24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부터 10권 까지의 긴 여정은 11권 <사라진 알베르틴>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였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마르셀의 상실감이 그대로 와닿았다. 마르셀은 과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Ps. 잃시찾 11권만 따로 읽어도 괜찮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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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22 1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글 읽으니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네요. 새파랑님이 전해주시는 마르셀 이야기 상실감. 참 좋네요 *^^*

새파랑 2022-12-22 15:04   좋아요 2 | URL
리뷰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좋았던 부분만 썼습니다 ㅋ 요새 연말 모임이 많아서 책읽을 시간도, 리뷰쓸 시간도 없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2-12-22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s 정보가 무엇보다 좋네요^^ ㅎㅎㅎ
저는 내게 오는 감정들에 모두 올인하면 생각보다 좀 피곤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건 아니어야만해 하며 외면하다 놓치기도 하구요. 아무튼... 사랑이란!
새파랑님 2권만 더 읽으시면 시리즈 완독이시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12-22 15:05   좋아요 1 | URL
아직 2권 더 읽으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거 같습니다 ㅋ 시간이 없으시면 잃시찾 11권부터 읽어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2-12-22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르셀의 변화하는 마음들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알베르틴의 마지막이 가슴 아팠어요 ㅠㅠ
새파랑님, 잃.시.찾, 완독 화이팅입니다^^

새파랑 2022-12-22 15:07   좋아요 2 | URL
저도 좀 답답했습니다. 왜 이렇게 변덕이 심하고 소심한건지 ㅋ 그래도 저도 이런 비슷한(?)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 공감은 했습니다 ^^

독서괭 2022-12-22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잃시찾이 이런 사랑 이야기였나요? 11권만 따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씀에 괜히 희망을 품게 되네요 ㅋㅋㅋ 지금 집에 1-5권 있는데 11권사서 먼저 읽어야 하나 ㅎㅎㅎ

새파랑 2022-12-22 15:08   좋아요 1 | URL
잃시찾의 핵심 키워드는 사랑입니다 ^^ 그런데 독서괭님은 마르셀의 행동을 마음에 안들어하실 수 있습니다 ㅋ

기왕 5권까지 사놓으신거 1권부터 순차적으로 읽으세요 ^^

scott 2022-12-22 15: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르셀 옹이 새파랑님 리뷰 읽은다면
코르크로 막아버린 방에서 뛰쳐 나올 것 같습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

새파랑님의 아뒤
2023년 부터는 새마르셀 ^^

새파랑 2022-12-22 15:10   좋아요 3 | URL
저정도의 허접한 리뷰를 읽고 화가나서 뛰쳐 나가는거 아닐까요?

프루스트옹 하면 스콧님이랑 미미님이죠 ^^

23년에 아이디 바꿔볼까 고민입니다 ㅋ

청아 2022-12-22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집에와서 PC로 읽었습니다. 11권 너무 슬프죠ㅠ.ㅠ
이별의 아픔, 그렇게 드러난 사랑의 진실을 이이상 표현하기
힘들거라고 믿습니다.^^* 새파랑님 리뷰 읽으며 다시금 감동이!

새파랑 2022-12-23 05:34   좋아요 2 | URL
전 지금까지 읽은 잃시찾 중에 11권이 가장 좋더라구요. 역시 잃시찾의 진정한 마니마 미미님~!! 내년에는 다시 정주행? ^^

희선 2022-12-23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떠나가기 전에 잘해야 할 텐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못한다면 무척 슬프겠습니다 아니 어딘가에서 살고만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텐데... 알베르틴은 세상을 떠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했군요


희선

새파랑 2022-12-23 08:58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ㅜㅜ 완전 이별 (고별)은 너무 슬픈거 같아요 ㅜㅜ 이 책 읽고 좀 많이 슬펐습니다 ~!!

서니데이 2022-12-23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인데, 계속 추울 것 같아요.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새파랑 2022-12-24 11:3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주말 많이 춥네요 ㅋ 마음은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2-2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2권 남으셨네요~!

새파랑 2022-12-28 09:36   좋아요 1 | URL
내년에 아껴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