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좋다. 완전 내취향이다~!!




어쨌든 쁘리와 다른 사람 모두가 그 그림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라고 쁘리가 말했듯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 그리고 오직 나 혼자만이 - 그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나는 그 그림의 이면에는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음을 잘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그림의 이면은 판지 한 장이고, 그 뒤는 벽이다. - P9

나는 작가가 정성을 쏟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담아 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고요한 그림 속의 모든 움직임을 본다. 첫 장부터 바로 최근에 아주 슬프게 막을 내린 마지막 장까지,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의 움직임을 말이다. - P10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착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내 기억에서 잊힐 날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첫 옷차림이었다. 내가 우아하고 매우 품위 있다고 느낀 차림이다. - P18

여하튼 나는 끼라띠 여사의 경호원과 마찬가지의 명예를 부여받은 데에 특별히 높은 자부심을 느꼈다. 내 느낌으로는 끼라띠 여사 스스로도 모든 사람이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온화한 자태를 보였지만, 누구든 옅은 분홍빛 얼굴 전체에 어린 그녀의 즐거움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 P22

"그만, 그만해." 그녀는 내가 입을 다물도록 손을 내저었다. "자네와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아는가? 놉펀, 자네는 계속해서 나를 격찬하려고 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자네를 망칠 걸세." - P38

결국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을 때 나는 자문했다. 무슨 이유로 나는 끼라띠 여사의 사생활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가? 그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어떤 의무나 필요성이 내게 있는가? 당시 내가 스스로를 그녀의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어떤 걱정이 있다고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나에게 그녀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말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개인적인 일을 깊이 고민해야만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내어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P40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그녀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에는 다른 것을 떠올린 적이 없노라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하고 싶었고, 거의 말할 뻔했다. 하지만 감히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 스스로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44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건 간에 나는 모두 좋아해. 하지만 바로 그거야.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경향이 있어. 거의 모든 것은 관찰할 만하고 구경할 만해. 예컨대 이 호숫가의 잔물결이 이는 수면 역시 나에게는 흥미로워.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점과 시듦이 없는 상쾌한 감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 P47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노년과 함께 말라 버렸기 때문이야. 사랑할 나이는 이미 그분을 지나가 버렸지. 이제 그분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 그분은 나를 사랑할 수 없어. 그분에게는 사랑—내 이상 속 사랑으로 만들어 낼 것이 없기 때문이야." - P64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어떤 감정이 나의 행복을 방해했다. 그것은 시시각각 가장 강렬한 무엇인가가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으로 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두려움이 가슴속을 오르내렸다. 나는 그걸 꽉 눌러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상당히 힘에 부쳤다. 그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웠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나는 지쳤고 피곤했고 행복했다. - P77

그분의 시간은 당신이 인생에서 어떤 이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 적게 남았어. 그분은 달빛이나 호수 그리고 구애의 말에도 관심이 없어. 그분은 아름다운 것을 동경할 마음이 없어. 그분에겐 미래가 없어. 과거와 현재만 있을 뿐이야. 자네는 거기에서 어떻게 사랑이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 있지? 시멘트 길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나지 않는다네, 그대여." - P93

"저는 굉장히 난처합니다. 여사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제가 만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이 저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 확실히 압니다. 제 행동이 윤리에 어긋났다고 해도 저는 자연법칙의 통제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랑과 마주했을 때 저는 피해 나올 수 없었고 궁지에 몰렸습니다. 여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유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제발 윤리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저는 응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언제나 자연법칙의 통제 안에 있습니다." - P96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가 순수하게 저절로 생겨난 사랑, 불쌍하고 애처로운 무고한 사랑을 억눌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을 그렇게 대할 수 없습니다." - P107

"내 좋은 사람이여. 마지막으로 내 조언을 받아들이길 바라. 자네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나 일본에 왔어. 자네의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고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하네. 지난 두 달 동안 자네와 나 사이의 관계는 잊어버리게. 그건 꿈이라고 생각하게." - P111

나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적당한 때가 되면 점차 사라져 갈 것이고, 결국 나는 자네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러면 족쇄 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감정과 행복이 예전처럼 놉편의 마음으로 돌아올거야. 나는 그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려. - P124

나는 끼라띠 여사가 그 편지 속에 어떤 심오한 감정을 숨겼음을 전혀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생의 세심함과 은밀함이란, 그 당시에 알기에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 P135

그런데 나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봐. 왜냐하면 아티깐버디 공이 죽은 이후에 여사가 사교 활동을 즐기지 않는 것 같다고 들었거든. 그녀는 조신하게 생활하면서 아티깐버디 공의 친한 친구들 모두의 칭찬을 받고 있어. 최근에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고 결혼을 타진했을 정도였는데 여사가 거절한것 같다고 들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마음속에 은밀한 뭔가를 간직한 사람인 것 같다고들 말해. - P142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이상함을 금할 수 없어. 왜냐하면 지나온 시간에 내 행복을 이루었던 중요한 부분은 나에게 일어난 실제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어떤 것에 대한 희망 또는 기대였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서도 내 삶은 아직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네.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앞날에 표류하고 있어.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고 희망하지. 그리고 기다리고 있어." - P151

"맞아,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우리가 알게 된 첫날부터 나를 이해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눈빛에 비웃는 듯한 감정이 보이는 듯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또 뭐가 있는지 제발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 전부 이해하지 못해. 자네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 P170

"자네의 사랑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었지.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것은 죽어 가는 몸에서 여전히 자라나고 있어." - P171

나는 나를사랑하는사람 없이 죽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족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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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악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4
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 코롤렌코 지음, 오원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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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2

"다시 꿈을 꿨어요. 요즘 꿈을 자주 꾸는데...……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어요...."


<맹인악사>는 러시아 문학에서 인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비평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며 당대 작가들은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네편의 중단편을 모은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지만 코롤렌코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걸로 생각되어진다. 아님 나만 모르는걸까? 이 책에 실린 네 작품 모두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맹인악사> 였다.




<맹인악사>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표트르는, 불행을 안고 태어났음에도 어머니의 보살핌과 삼촌인 막심의 계략(?)에 의해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볼수는 없지만 청각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알아가고, 누구보다도 섬세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산모는 헤어날 길 없는 무거운 슬픔이 갓난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 바로 무덤까지 새 생명을 따라다니려요람 위에 걸려 있다고 직감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아이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P.176



그리고 에벨리나라는 또래의 소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된다. 그녀는 표트르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심리를 안정적으로 해주고 감성에 섬세함을 불어넣는다.

[전체적으로 이 우정은 행운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사랑이 그에게 줄 수없는 소통을 발견했으며, 가끔 그에게 찾아드는 예민한 정신적 평온의 순간에도 소녀가 곁에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P.242



하지만 표트르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에 따른 자신의 불행을 직면하게 된다. 남과 너무나 다른 그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고, 다른 맹인들처럼 일반사람들과 관계를 끈고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은 어두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해가 지날수록 소년의 천성적 활기는 썰물처럼 어렴풋하게 점차 사라졌지만, 영혼 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슬픈 기운은 소년의 기질로 드러나며 점점 강해졌다. 어린시절에 특별히 명확한 새로운 인상을 받을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웃음소리는 이제는 점점 드물어졌다.] P.251



그래도 표트르에게는 그를 아끼는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낙오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결국 연인과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맹인일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앞을 볼 수 있는 아이라는걸 알고 새로운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맹인은 절대 볼 수 없는 빛을 보게 된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정말로 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도, 그는 하늘과 땅,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보았다고 확신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P.344



몇년 후 표트르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행복을 주고 슬픔을 상기시킬 수 있근 맹인악사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다. 그렇다, 새가 날기 위해 태어나듯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불행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그래, 그는 눈을 떴어. 어둡고 괴로운 이기적 고통의 자리에'그는 이제 삶의 지각을 가져왔고, 인간적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눈을떴고, 이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들을 상기시킬 수 있어.] P.350






태어날때부터 눈으로 세상을 못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난 그동안 맹인이 꿈을 못꾼다는 사실을 몰랐었는데,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맹인은 눈으로 세상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빛이라는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모습을 봤었더라면 꿈에서라도 만날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맹인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예전에 스티비 원더가 단 한번만이라도 딸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맹인에 대해 안타깝지만 동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볼수는 없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섬세하며, 뛰어난 청각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 역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단지 일반인들과 다를 뿐, 불행하다고 단정하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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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4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각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극복한 케이스라고 보면 되겠네요. 저도 덕분에 러시아 작가 한 분 더 알아갑니다*^^*

새파랑 2022-11-14 16:13   좋아요 1 | URL
교훈성이 강하고 좀 늘어지는 전개라서 약간 아쉬운감이 있습니다만 좋았습니다 ㅋ

바람돌이 2022-11-14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입니다. 대산문학은 진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내네요. 이런 뚝심있는 시리즈를 내는 출판사 응원하고싶습니다. ^^ 요즘 유튜브로 러시아문학 소개를 보고 있는데 아 진짜 러시아 문학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읽어보고싶단 생각을 많이하게 하더라구요. ^^

새파랑 2022-11-14 17:30   좋아요 1 | URL
러시아 하면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아니겠습니까? ㅋ 저도 러시아는 이분들빼곤 별로 안읽어본거 같아요 ㅎㅎ

mini74 2022-11-14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에요. 꿈조차 꿀 수 없다니...넘 슬픕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0 | URL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거 같아요 ㅜㅜ 꿈을 꿨는데 어둠밖에 안보인다면 어떨지 상상이 안됩니다~~

페넬로페 2022-11-14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들어보는 러시아 작가예요.
본 것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군요.
책을 통해 늘 새로운 사실을 배우네요.
내용이 슬프면서도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1 | URL
제가 감동적인건 별로 안좋아하지만 요책은 괘않았습니다 ^^

희선 2022-11-16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다 다르기도 하더군요 아주 안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빛이나 색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잘 안 보이면 사는 게 쉽지 않겠지요 세상은 눈이 보이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드는 게 많으니...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닐 거예요 다른 걸로 보고 느끼겠지요 눈이 보이는 사람은 못 보는 걸 느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2-11-16 10:20   좋아요 0 | URL
아 다 다르군요. 전 이 책 읽고 맹인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많은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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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1

사실 이런말을 하는 건 작가에게도 실례이고,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앤드류 포터의 단편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나서 안톤 체호프와 윌리엄 트레버가 떠올랐다. 뭔가 불투명 하면서도, 감정이 속에서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편들이었다. 게다가 여기 실린 단편들은 한결같이 모두 좋았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첫번째 작품인 <구멍> 부터 강렬했다.



<구멍>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갑작스런 사고사를 목격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직접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엄청난 충격일 것이고, 그 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도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주인공은 친구인 탈이 구멍속에 빠져 죽는걸 목격하게 된다. 엄청난 충격때문에 주인공은 탈이 사고로 빠진건지, 아님 자신이 밀어서 그런건지, 아님 자신이 내려가라고 부추긴건지 햇갈리게 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애처로움이 깊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P.11



<코요테>

평생 단 한편의 작품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 작품마져 실패였던 아버지는 영화를 찍기 위해 집을 자주 비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견딜수 없었던 어머니는 회사동료인 다른 남자를 만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그랬던걸까? 아님 외로워서 그랬던 걸까? 이런 아버지를 지켜보던 나의 기억은 안타깝기보다는 담담하게 남아있다. 왜 어떤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데도 멀어질 수 밖에 없는걸까?

["인생 최악의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형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본다는 것은."] P.44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표제작이자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크게 외면적인 이유와 내면적인 이유로 나눌수 있다. 개인적으는 내면적인 끌림을 더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내면적인 끌림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대학생이자 여주인공인 헤더에게는 의대를 다니면서 젊고 멋진 콜린이라는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로버트라는 노교수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면서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정신적 떨림을 경험한다.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 P.106



그녀는 노교수와의 정신적 교감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남자친구인 콜린에게 숨긴다. 아니 숨길수 밖에 없었다. 노교수를 제외하고 어느 누가 그녀의 떨림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P.102



결국 남자친구인 콜린은 그녀와 노교수의 만남을 목격하고만다. 하지만 콜린은 그녀에게 다시는 노교수를 만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그녀를 용서한다. 그리고 의대를 졸업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노교수를 잊을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P.119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가장 좋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은지가 좀 지나다보니 기억이 잘 안나서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고전과는 약간 결이 다른 최신판 고급 단편을 읽은 기분이었다. 체호프를 좋아하는 분들이 읽으신다면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Ps. 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쓰는 습관을 길러야 겠다. 다읽었는데 리뷰를 못쓴 두개의 작품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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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14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앤드루 포터의 이 책은 오래
전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

그 다음에는 거의 소식이 없
네요.

리뷰는 책 읽는 대로 바로 쓰
지 않으면 자꾸만 뒤로 밀리게
되더라구요. 바로 바로 쓰지
않으면 망각 속으로...

새파랑 2022-11-14 12:29   좋아요 2 | URL
아 이 책 말고 다른 작품은 없나보군요 ㅜㅜ 문체도 문장도 마음에 드는데 ㅜㅜ

저도 이놈의 망각 때문에 일단 고민하지 말고 읽고나서 바로 쓰려고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1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편집들 중에 역시 표제작이 좋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정신적 교류가 중요한 듯합니다. 육체적 교감이야... 오래 못가잖아요^^;

새파랑 2022-11-14 16:15   좋아요 1 | URL
괜히 표제작이 아니었습니다 ㅋ 교감도 나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닐까요? 전 표제작 다 읽고나서 ‘와 좋다‘ 이랬었는데 몇일 지나고 나서 쓰려니 그때의 느낌을 리뷰에 잘 못담은것 같아요 ㅜㅜ

mini74 2022-11-14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순간 새파랑님 이제 물리책까지? 했습니다. ㅎㅎ 표제작의 제목이 독특합니다.

새파랑 2022-11-14 17:33   좋아요 1 | URL
저는 물리책보다는 물리치료가 필요학니다 ^^ 혹시 시간되시면 표제작은 한번 읽어보세요 ~!!

바람돌이 2022-11-14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와 안톤 체홉이라니... 최고의 뽐뿌입니다. ^^
제가 늘 하는 결심이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자인데 진짜 진짜 어려워요. 지난 달에는 거의 반정도는 밑줄긋기 외에 아무것도 못하고 넘어갔어요. 이게 또 쓰야 할 책이 막 쌓이면 그냥 포기하게 되더라는..... ㅎㅎ

새파랑 2022-11-14 17:34   좋아요 2 | URL
전 그래서 오늘부터 리뷰를 다 쓰기전까지는 다음책으로 안넘어가겠다는 다짐을 세웠습니다 ^^

페넬로페 2022-11-14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실린 단편도 흥미로워요.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ㅠㅠ
책 읽고 바로 리뷰 쓰기, 아자아자^^

새파랑 2022-11-15 11:2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페넬로페님 100퍼센트 좋아하실 겁니다 ^^ 오늘부터 리뷰 밀리지 않기 시작하시죠 ~!!

파이버 2022-11-14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어 표제작이 제일 좋았습니다ㅎㅎ 책 읽고 리뷰 바로 쓰기 참 어려운 일이에요ㅜㅜ 넘 많이 밀리면 마치 숙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새파랑님 남은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새파랑 2022-11-15 11:30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과 저랑 갬성이 비슷하신거 같아요 ^^

제가 원래 책 두권 읽고 리뷰 쓰기였는데 이젠 바꾸겠습니다~!!
 

눈이 먼다는게 어떤건지 간접체험했다.


















"눈은 영혼의 거울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쩌면 눈은 영혼속으로 선명하고 반짝이는 다채로운 세계의 인상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의 정신 구조의 어떤 부분이 빛의 지각에 의존하는지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P249

그리고 운명은 어두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해가 지날수록 소년의 천성적 활기는 썰물처럼 어렴풋하게 점차 사라졌지만, 영혼 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슬픈 기운은 소년의 기질로 드러나며 점점 강해졌다. 어린시절에 특별히 명확한 새로운 인상을 받을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웃음소리는 이제는 점점 드물어졌다. - P251

우정은 상호 간에 충만되어 더욱 두터워졌다. 에벨리나가 그들의 상호 관계에 평안과 고요한 기쁨을 가져오고, 맹인 소년에게 주위 삶의 새로운 뉘앙스를 전해주었다면, 소년은 자기 나름대로 소녀에게 자신의 슬픔을 안겨주었다. 소년과의 첫번째 만남은 어린 소녀의 예민한
마음에 피투성이 상처를 남긴 듯한데, 충격을 안긴 칼을 상처에서 빼내면 소녀는 피를 흘릴 것이다. 초원의 작은 언덕 위에서 맹인 소년과 처음으로 만난 뒤 어린 소녀는 날카로운 공감의 고통을 느꼈으며, 이제 소녀에게 소년의 존재는 점점 더 필연적이 되었다. 그와 헤어지면 상처는 다시 드러나고 고통이 재발하는 듯하여, 소녀는 자신의 고통을 부단한 보살핌으로 달래기 위해 자기의 어린 친구에게로 줄달음치곤 했다. - P253

"다시 꿈을 꿨어요. 요즘 꿈을 자주 꾸는데...……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어요...." - P317

"그래, 내가 괴롭히고 있지. 난 이런 식으로 평생을 괴롭힐 거야, 괴롭히지 않을 수 없지. 나 자신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알겠어. 내 잘못은 아니야.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시력을 앗아간 그 손길이 나에게 악의를 집어넣었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우리는 모두 같아……… 날 내버려둬…… 나를 그냥 버리라고. 너의 사랑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고통뿐이야………… 난 보고 싶어, 이해하니? 난 보고 싶고, 이 열망에서 벗어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 너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볼 수 있다면, 난 만족할 것이고………… 기억할 것이고, 이 기억을 남은 생애 동안 어둠 속에서 간직할거야......" - P319

"그렇지 않아." 막심이 날카롭게 대답했다. "너에게는 소리도, 온기도, 움직임도 있고……… 너는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어…… 많은 사람이 네가 엉터리라고 멸시하는 것을 위해 시력을 포기하기도 하지....하지만 너는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자기 슬픔만을 간직하고 있어...…… - P326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정말로 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도, 그는 하늘과 땅,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보았다고 확신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P344

그래, 그는 눈을 떴어………… 어둡고 괴로운 이기적 고통의 자리에‘그는 이제 삶의 지각을 가져왔고, 인간적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눈을떴고, 이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들을 상기시킬 수 있어...…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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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말은 주변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썰매를 끌어다 놓았다. 달빛을 머금은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때때로 달빛은 마치 녹아내리는 듯했고, 눈은 어두워졌다가 금방 그 위로 북극의 오로라가 찬란하게 반사되었다. - P17

그는 눈 위에 누웠다. 추위는 더 심해졌다. 오로라의 마지막 빛줄기가 흐릿하게 가물거렸고 타이가 숲의 정상을 통해 마카르에게로 비추면서 하늘로 퍼져 나갔다. 종소리의 마지막 메아리가 멀리 찰간에서 울려왔다. 오로라가 확 타오르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종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카르는 숨을 거두었다. - P25

마카르가 누군가로부터 총애, 환대 혹은 기쁨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이 죽어갈 때 그는 괴롭고 힘겨웠으며, 그들은 다 자랐을 때 홀로 힘겨운 가난과 싸우기 위해 그를 두고 떠나갔다. 이제 그는 두번째 아내와 단둘이 늙어버렸고, 기력이 쇠해지고 의지할 데 없는 노년이 찾아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잔혹한 눈보라를 맞으며 초원 속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쓸쓸한 전나무처럼 외롭게 서 있었다. - P47

토이온이 말하는 신실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상에서 마카르와 같은 시기에 부유한 목조 가옥에 살던 그들이라면 마카르는 그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눈이 맑은 것은 마카르가 흘린 만큼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얼굴이 밝은 것은 향수로 닦았기 때문이며, 의복이 깨끗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 P48

그런데 마카르가 다른 사람들처럼 땅과 하늘이 비치는 맑고 순수한 눈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에 기꺼이 열어 보일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단 말인가? 지금 그가 자신의 음
침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땅 밑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그는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인내가 바닥났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고 있었다. - P48

아마도 산모는 헤어날 길 없는 무거운 슬픔이 갓난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 바로 무덤까지 새 생명을 따라다니려요람 위에 걸려 있다고 직감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아이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 P176

"불행히도, 마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아이는 실제로 맹인이고,‘게다가 희망이 없습니다……" 엄마는 슬퍼하면서도 차분하게 이 얘기를 받아들였다.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답니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 P178

「그러나 당시에는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그가 어떤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푸른 연기에 둘러싸인 막심 삼촌이 흐릿한 시선으로 짙은 눈썹을 음울하게 찌푸리며 때로는 꼼짝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인즉슨 이 불구의 전사는 인생이란 투쟁이며, 그곳에 불구자가 설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대오에서 영원히 이탈했고, 이제는 헛되이 호송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삶에 의해 말안장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기사인 것 같았다. 짓밟힌 구더기처럼 티끌 속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닌가. 자기 존재의 하찮은 찌꺼기를 구걸하며 승리자의 등자에 매달리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닌가? - P181

"으음.....… 그렇군." 어느 날 그는 어린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 작은 아이도 역시 불구자로군. 우리 둘을 하나로 합치면 아마도 한 명의 초라한 작은 인간이 만들어질 텐데." 그때부터 그의 시선은 훨씬 자주 어린아이에게 머물기 시작했다. - P182

소리들은 차례로 날아올랐다 떨어졌으며,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강력했다. 아이를 사로잡은 파동은 울리고 구르는 주변의 어둠에서 솟아나 그 어둠을 넘어 새로운 파동과 소리로 교체되면서 더욱 긴장되게 일렁거렸다.……… 파동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고통스럽게 아이를 일으키고, 흔들고, 달랬다……… 또다시 이 어렴풋한 혼돈 위로 길고도 슬픈 사람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만물이 고요해졌다. - P191

때때로 무더운 한낮에 주위가 고요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뜸해 자연 속에서 오직 끝없고 조용한 생명력의 질주만이 감지되는 독특한 정적이 드리울 때, 맹인 아이의 얼굴에는 독특한 표정이 나타났다. 외부의 정적으로 인해 아이 영혼의 심연에서는 오직 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소리가 일었고, 아이는 바짝 긴장하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런 순간에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득한 노래 선율처럼 어렴풋이 생겨나는 사고가 그의 심장에서 울리기 시작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 P197

아이가 피리 부는 사내에게로 달려가 잠자리에 들기 전 그의 마구간에서 두어 시간이나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이 시간은 아이에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되었고, 엄마는 아이가 심지어 이튿날까지도 전날 저녁의 인상에 파묻혀 있고, 자신의 사랑에 전처럼 충실하게 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팔에 안겨 포옹을 하면서도 이오힘의 저녁 노래를 떠올리는 것을 질투심에 불타며 바라보았다. - P205

소년의 눈동자는 자신이 행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저물어가는 태양이 그것에 야릇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것은 소녀에게 무서운 악몽처럼 느껴졌다. - P235

전체적으로 이 우정은 행운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사랑이 그에게 줄 수없는 소통을 발견했으며, 가끔 그에게 찾아드는 예민한 정신적 평온의 순간에도 소녀가 곁에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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