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에 읽은 책. 정말 어렵지만 매력적인 책이었다.


"혹시 백작님을 아십니까?" "아니요." 선생은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리려고 했으나, K는 물러서지 않고 재차 물었다. "뭐라고요? 백작님을 모른다고요?" "내가 그분을 알아야 한단 말이오?" 선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프랑스어로 소리 높여 덧붙였다. - P18

"제 주인이 언제 성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언제라도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수화기에서 들려온 대답이었다. "좋습니다." K는 이렇게 말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 P35

두사람이 말없이 걷기만 한다면, 바르나바스로서도 어쩌면 그저 계속 걸어가는 것 자체가 두사람이 동행하는 목적이 될 수 있었다. - P44

성에서 온 신사분들은 잠을 아주 많이 자는데, 이해가 잘 안돼요. 하기야 그렇게 많이 자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참아낼 수 있겠어요? - P60

하지만 클람을 실제로 보는 일은 절대 불가능해요. 내가 오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나 자신도 그럴 수가 없거든요. 당신은 클람이 당신과 대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분은 마을 사람들과도 결코 대화하지 않아요. 그분은 여태껏 마을 사람들과 직접 대화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요. 하지만 그분은 적어도 프리다의 이름은 부르게 되었고, 프리다는 원한다면 그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엿보기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일도 허락받았어요. 그것은 프리다에게 엄청나게 영예로운 일이고, 나로서도 죽을 때까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죠. 하지만 그분은 프리다와도 정말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어요. 그리고 그분이 프리다를 가끔씩 불렀다고 해서, 사람들이 부여하고 싶어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분은 그냥 프리다라는 이름을 불렀던 것이고ㅡ그의 의도를 누가 알겠어요? 프리다는 스스로 알아서 부랴부랴 달려갔던 거죠. - P74

"당신은 어디로 가든지 이곳에서는 가장 무지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조심하세요. 여기 우리 집에서는 프리다가 있어서 해를 입지 않고 보호받고, 가슴을 활짝 열고 지껄일 수도 있을 거요. 이곳에서 당신은 이를테면 클람과 면담하겠다는 의중을 우리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를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 P83

나는 물론 무지한 상태고, 그 사실은 어쩔 수 없으며 나로서는 무척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장점이 될지도 모르죠. 무지한 사람은 대담해서 더욱 많은 것을 감행한다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무지함과 또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불행한 결과들을 아직 힘이 남아있는 한은 참고 견딜 생각이오. 하지만 - P83

"하찮은 혼란이 상황에 따라서는 한사람의 실존을 결정한다는 점을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 P94

"나로서는 아직은 그 관청들을 잘 이해할 수 없군요. 다만 두가지 사실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관청 내부에서 일어나는, 관청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이 있고, 둘째로는 관청의 외부에 있고 관청에 의해 정말 어처구니없이, 그래서 그 위험의 심각성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권리를 침해받을 우려가 있는 나라는 실제 인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촌장님이 그토록 경탄할 만큼 비상한 지식을 갖고 설명해준 내용은 전자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저로서는 나에 관해서도 한마디쯤은 듣고 싶습니다." - P96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야. 나는 이곳에 정착할 거야." - P193

K는 교실 의자에 앉아 그녀의 지친 몸동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빈약한 육체에 그나마 아름다움을 부여했던 것은 활기와 단호함이었는데,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 상태였다. K와 며칠을 함께보낸 것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여관 주점의 일은 수월하지는 않지만, 그녀에게는 더 적합했던 것 같았다. 아니면 클람의 영역에서 멀어진 것이 쇠락의 진정한 원인일까? 클람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 그녀를 더없이 매혹적으로 만들었고 또 그 매혹에 사로잡혀 K는 그녀를 낚아챘던 것인데, 이제 그녀는 K의 팔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 P192

그래서 바르나바스가 아침에 성으로 간다고 하면, 나는 마음이 우울해져요. 아무리 봐도 무익한 성으로의 여행, 아무리 봐도 헛수고인 하루, 아무리 봐도 허망한 희망인 거죠.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P253

우리는 각자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와서 만났고, 서로를 알고 난 이후부터 우리 각자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에 대해 불안해하는데, 모든 것이 너무 새로운 거야. - P358

"만약에 우리가 바로 그날 밤에 다른 곳으로 이주했더라면, 지금우리는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있을 것이고, 항상 함께 지내면서, 언제든지 가까이 있는 당신 손을 잡을 수 있겠지. 나는 당신이 곁에 있어주길 얼마나 바랐는데, 당신을 알고부터 나는 당신이 곁에 없으면 정말 버림받은 심정이었어. 당신 곁에 있는 것, 내 말을 믿어줘, 그게 나의 유일한 꿈이야 다른 소원은 없어." - P359

"어째서 이곳의 문들은 잠글 수 없는 걸까요, 안그래요?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격언에 따르면 비서들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그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죠." - P366

그는 야간심문에 소환되었는데, 야간심문이 왜 도입되었는지 모른단 말인가? 야간심문의 유일한 목적은―K는 여기서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설명을 들었다―신사 나리들이 낮에 민원인들을 보는 것을 도저히 견디질 못해 밤에, 인공조명 아래서 얼른 민원인을 심문하고 심문이 끝나자마자 잠을 자면서 온갖 불쾌한 것을 즉시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 P394

"당신이 프리다에게 반한 것은 그녀가 당신에게서 달아났기 때문이죠. 떠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만일 사태가 당신이 말한 바와 같다고 해도 그러니까 모든 점에서, 심지어 당신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당신 생각이 옳다고 해도,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셈이죠? 프리다는 당신을 떠났고, 당신 설명으로나 내 설명으로나 그녀가 당신에게 돌아올 희망은 없어요. 그녀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동안은 어디서든 지내야 해요." - P435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10-11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많이 난해하다던데 새파랑님의 본격 리뷰를 기다립니다. ^^

새파랑 2022-10-11 14:25   좋아요 0 | URL
저 너무 어렵게 읽어서 100자평으로 퉁칠려고 했는데 😅

바람돌이 2022-10-11 14:28   좋아요 1 | URL
아니 아니 안되어요!!!!

새파랑 2022-10-11 16:51   좋아요 0 | URL
헉 ㅋ 그럼 200자평으로 ㅋ

바람돌이 2022-10-11 18:28   좋아요 1 | URL
300자로 합의하시죠. ㅎㅎ
 

8월에 이어서 9월의 독서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계속 일이 생기고 모임이 생기고 여행(?)이 생겨서 책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리뷰도 너무 대충썼다는 생각도 든다. 2022년에는 150권 독서가 목표였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10월달도 벌써 5일이 지났는데 한권도 못읽었다. 오늘부터라도 독서에 매진해야 겠다.


9월에는 15권을 읽었는데, 얇은 책이 많아서 체감상 8권을 읽은 기분이다. 그런데 9월에 읽은 책들 중 좋은 책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 몇작품만 꼽아 보자면,



1.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 사바하틴 알리

완전 내 취향의 소설이었다. 예측 가능한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결말까지 가는 과정도 좋았고, 사랑하면 할수록 커지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세속적인 행복이든 물질적인 재산이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은 뇌리에서 절대 떠나지 않고 불쑥불쑥 떠올라 쓰라리게 마음을 헤집는다. 어쩌면 우리가 놓지 못하는 건 떠나간 기회가 아니라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미련일 것이다.˝



2. 질투의 끝 : 마르셀 프루스트

프루스트의 입문서 같은 책. 동네 산책을 나간다면 들고가고 싶은 책. 가방안에 항상 넣고 다니고 싶은 책. (단편집인데다가 아주 얇다.) 질투의 끝을 가장 잘 표현한 책.

˝나를 짓누르던 그것이 나의 사랑이었을까? 만일 사랑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내 성격이었을까? 나였을까? 삶이었을까? 그렇다. 죽어서도 난 내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내 육신의 욕망, 관능의 욕구, 질투에서는 벗어나리라.˝



3. 마틴 에덴 : 잭 런던

9월에 읽은 책중에서는 마틴 에덴이 가장 재미있었다.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 사랑의 시작이 사람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지, 사랑의 끝이 사람을 얼마나 붕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사랑만은 그렇지 않아. 가다가 나약해져서 맥없이 머뭇대지 않는 한, 사랑은 잘못 갈 수가 없어.˝




10월에는 그동안 못읽은 에밀졸라랑 필립로스도 한권씩 읽어야겠다. 그리고 문장 필사도 안밀리고 하루에 한장씩 써야 겠다.



댓글(3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0-05 18: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성실한 다독인 새파랑님
역쉬 독보적🤗
매일매일 필사까지☺

새파랑 2022-10-05 18:42   좋아요 3 | URL
매일매일 필사한건 아니지만 😅 일단 월간 정리는 매월 하고 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0-05 18: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독서기록 보면 저하고 전혀 다른 장르라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프루스트 입문서 체크해놨어요. 이달에도 멋진 독서생활이어가시길!

scott 2022-10-05 18:18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은 독서이력앱 나오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2-10-05 18:42   좋아요 3 | URL
전 오직 소설 한길입니다 ㅋ 프루스트 좋아요~!! 이달은 정말 열독해보겠습니~!!

새파랑 2022-10-05 18:43   좋아요 3 | URL
전 스콧님 독서이력에 비하면 아직 초딩입니다 ㅋ

그레이스 2022-10-05 18: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9월은 그렇죠?!
저도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새파랑님 독보적은 아름답네요

새파랑 2022-10-05 18:43   좋아요 4 | URL
그레이스님도 10월에 화이팅 입니다~!! 아름답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아 2022-10-05 19:1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런 추세라면 150권 거뜬하실것 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170권 목표인 저보다 더많이 읽으셨는걸요👍

새파랑 2022-10-05 19:46   좋아요 4 | URL
지금까지 120권 읽었는데 얇은 책들이 많아서 120권 읽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ㅋ 전 미미님과 다르게 벽돌책은 잘 못읽겠더라구요 ㅜㅜ
벽돌책도 그냥 부셔버리는 미미님이 진정 👍 👍

프레이야 2022-10-05 20: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뭐 이리 꼬박꼬박 성실하신 새파랑 님
넘사벽이십니다. 저는 되는대로입니다만 ^^

새파랑 2022-10-06 06:54   좋아요 0 | URL
제가 어떻게 넘사벽이겠습니까 ㅋ 저도 되는대로 막 읽습니다ㅎㅎ 성실하지 않습니다~!!

페넬로페 2022-10-05 2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5권이나 책을 읽고, 독보적 걷기에, 매일 필사까지요.
이런데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되죠, ㅎㅎ
새파랑님, 9월에도 수고 많으셨어요^^

새파랑 2022-10-06 06:56   좋아요 1 | URL
걷는건 그냥 일이 많아서 걸어다니는거 같아요 ㅋ 요샌 산책도 잘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님도 9월 수고 많으셨습니다~!!

Yeagene 2022-10-05 2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새파랑님이시네요 ㅎㅎ
올해 150권 목표달성 거뜬하실 듯합니다♡

새파랑 2022-10-06 06:57   좋아요 0 | URL
150권 달성 가능할까요? ㅋ 어제도 책은 100페이지밖에 못읽었습니다만 ㅎㅎ 노력해보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10-05 21: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멋지시당. 15권도 모자란다니. 새파랑님은 욕심쟁이 ㅋ 간만에 들어와도 플친들 늘 그 자리 있어주셔 참 좋아요.^^

새파랑 2022-10-06 06:58   좋아요 1 | URL
책읽기님 오랜만에 뵙는거 같아요 ^^ 간만에 들어오셔도 책은 많이 읽으시고 있을거 같아요~!! 저는 늘 제자리입니다 ㅋ

mini74 2022-10-05 21: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적게 읽으셨다는 겁니까 새파랑님 새파란 거짓말 ㅎㅎㅎ 모임과 여행이 함께 한 새파랑님의 9월도 멋졌을것 같습니다 ㅎㅎ

scott 2022-10-05 21:18   좋아요 5 | URL
그러게요
붙박이 1등생이
시험 성적 받고 나서

공부 덜 했다고 겸손 하는 것 같아유 ㅎㅎㅎㅎ
복사 붙이귀롱 ㅎㅎㅎㅎ
새파랑님 새파란 거짓말 ~@@@

새파랑 2022-10-06 06:59   좋아요 4 | URL
앗 새파란 거짓만 ㅋ 체감상 적게 읽은거 같은데 읽은 권수만 많네요 ㅎㅎ 9월은 갠적으로 좀 암흑기였습니다 ㅋ

새파랑 2022-10-06 07:00   좋아요 3 | URL
붙박이 1등은 스콧님이십니다. 전 111등? ㅎㅎ 아이디 바꿔야하나요? ㅋ

bookholic 2022-10-05 2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꾸준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새파랑 2022-10-06 07:00   좋아요 3 | URL
북홀릭님은 저보다 훠월씬 부지런하시지 않나요 ㅋ 제가 배우고 싶습니다~!!

coolcat329 2022-10-06 0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직 ‘소설 한길‘ 이라는 위의 새파랑님 댓글이 ‘달인‘을 기억나게 합니다.ㅋㅋ
대단한 열정~성실 바이러스 뿜어대는 새파랑님 👍

새파랑 2022-10-06 07:02   좋아요 2 | URL
제가 좀 이야기를 좋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ㅋ 성실 바이러스까지는 아니어도 다른분들 열독하실수 있도록 이렇게 페이퍼는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모나리자 2022-10-06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새파랑님 ~ 10월도 화이팅입니다 ~^^

새파랑 2022-10-07 07:41   좋아요 2 | URL
10월을 시작했는데 아직 한권을 못완독하고 있네요 ㅋ 모나리지님도 10 월 화이팅 입니다~!!!

희선 2022-10-07 0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구월이 참 빨리 간 것 같네요 시월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파랑 님 시월에도 즐겁게 책 만나시고 걷기도 즐겁게 하세요


희선

새파랑 2022-10-07 07:42   좋아요 3 | URL
10월도 벌써 7일이네요 ㅜㅜ 시간은 왜이리 빠른건지 모르겠습니다 ㅋ

레삭매냐 2022-10-10 1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독보적 히스토리는
정말 독보적입니다 !!!

새파랑 2022-10-10 13:25   좋아요 2 | URL
그런데 10월은 망했습니다 ㅋ 저 드디어 카프카의 <성> 완독했습니다. 10월에 이제 1권읽었네요~!!
 
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N22120 뻔한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게 읽혔던 이유는 중간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문장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얼마나 사랑했기에, 얼마나 함께하고 싶었기에? 더 비극적이고 더 자극적이기여서 인상적인 작품. 구에 대한 사랑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최근에 읽은 한국문학 중 가장 좋았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05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테스크한 문장이라니 궁굼해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2-10-05 13:45   좋아요 2 | URL
전 책보면서 이런(?) 특이한거 나오면 좋더라구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ㅋ

청아 2022-10-05 1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로테스크한 문장에 끌리네요. 새파랑님 연속 2권다 별5개. 이번달 느낌 좋은데요?ㅎㅎ

새파랑 2022-10-05 13:46   좋아요 2 | URL
저번달에 읽은건데 이제서야 리뷰를 급하게 발로 썼습니다 😅 이번달 아직 독서 0권이에요 ㅋ 이 책은 유명하니 리뷰를 생략했습니다 ^^

coolcat329 2022-10-05 1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소설 예전에 물감님 리뷰 읽었던 기억 납니다. 새파랑님은 정말 사랑 이야기 좋아하시는군요! 그로테스크한 사랑하니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도 생각납니다.

새파랑 2022-10-05 13:47   좋아요 3 | URL
제가 슬픈 짐승도 읽어봤습니다 ^^ 그런데 저는 구의 증명이 더 좋았습니다~!! 저는 사랑이야기가 없으면 흥미가 안생기더라구요 ㅋ

거리의화가 2022-10-05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자 최진영님 소설 딱 하나 읽어본 것이 작년 이효석 문학수상작 작품집에서였던 것 같아요. 그로테스크한 문장들이라! 새파랑님이 좋다고 하시니 궁금해지네요^^

새파랑 2022-10-05 15:15   좋아요 2 | URL
제가 좀 평이 후하긴 한데 ㅎㅎ 완전 좋습니다~!! 최진영 작가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10-05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계절에 넘 어울리는 사랑이야기네요.
게다가 그로테스크한 문장~~
2015년에 나온 책이네요^^

새파랑 2022-10-05 13:54   좋아요 3 | URL
제가 가을이어서 이 책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ㅋ 아 좋아요. 페넬로페님은 좋아하실거 같아요 ^^

독서괭 2022-10-05 1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최근에 읽은 한국문학 중 최고라고 하시니 궁금!!

새파랑 2022-10-05 13:55   좋아요 2 | URL
제가 좀 최고가 많아서 무작정 신뢰하시믄 안됩니다 😅

희선 2022-10-07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사랑... 누군가를 기억하는 게 그 사람이 살았다는 증명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2-10-07 07:40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는 기억하는 방법이 좀 잔인하긴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레이디 L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119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할수 있죠? 나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나더러 완전히 달라져서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할 수 있죠? "


어떻게 보면 아나키스트 만큼 맹목적인 사람도 없다.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 아나키스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사람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변사람은 어느정도 까지 피해를 감내해야 할까?

['그녀' '그 여자' '다른 여자'라는 이름으로 아네트는 자신의 경쟁자를 생각했다.인류를 뜻하는 프랑스어 'humanité'는 여성형 명사다. 그녀는 인류를 자신에게서 연인을 빼앗아 가려는 까다롭고 만족할 줄 모르는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공주, 대단한 귀부인, 바로 이것이 그 여자였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무시무시하게 변덕이 심하고, 피 흘리는 놀이를 좋아하는 여자. 그 밖에 사상이며 대의며 정치적 명제들, 이 모든 건 너무 복잡하고 비현실적이었다.] P.149



로맹가리의 <레이디 L>은 19세기 실존인물이자 아나키스트인 '아르망 드니'가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쓰인 작품이다. 로맹가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아네트'라는 여성, '레이디 L'을 등장시켜서 멋진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도도하고 똑똑한 귀족인 레이디 L은 이제 더이상 이룰게 없는 여든살의 노인 여성이다. 영국에서 그녀의 인지도는 엄청났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영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층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이룰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사실 그녀는 귀족출신이 아니었다.

[레이디 L은 늘 영국 하늘을 무감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은밀한 동요도, 어떤 분노도, 어떤 걱정도 상상할 수 없었다. 심한 폭우가 쏟아질 때조차 참극은 없었다. 격렬한 비바람조차 그저 잔디에 물을 주는 정도로 그쳤다. 벼락은 아이들에게서 먼곳에 떨어졌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은 피했다.] P.11



어린시절 아네트는 아나키스트인 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집을 나와 거리의 여성이 돼었지만, 아름다운 미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다가 똑똑하기 까지 했다. 매력적인 여성인 그녀앞에 아나키스트은 아르망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르망에게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아르망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뒤 오래도록 그녀는 그때 아래층에서 리스트의 선율이 들려오는 동안 그가 한 말을 감미로운 냉소까지 전부 기억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를 너무도 잘 알게 된 그녀가 잘못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의 아나키 개론에 그녀가 새로운 장 하나를, 마지막 장을 덧붙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 정도였다.] P.70



아르망 역시 그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그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혁명이었다. 아르망은 매력적인 아네트를 귀족으로 위장하여 혁명에 필요한 돈과 정보를 빼내는데 이용하기로 한다. 아네트 역시 아르망의 생각에 공감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는 혁명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일반적인 사람이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다가갈 수 없는 먼 존재입니다. 당신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올림포스 산에 홀로 선 여신입니다. 누구도 감히 어느 누구도 이런저런 추측을 할 수 없고 아주 멀리서 정중하게 당신을 숭배하며 한숨만 내쉴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에게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얻어낼 겁니다.] P.99



처음에는 아네트 역시 혁명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혁명을 위해 돈많은 귀족이자 자유로운 영혼인 글렌데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아네트는 글렌데일과 가까워 질수록 자신이 그동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혁명의 무모함을, 사랑의 진실함을 깨닫게 된다. 글렌데일은 그녀에 대해 모든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네트에게 청혼하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인다. 순식간에 진짜 귀족이 된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글렌데일과 아르망 뿐이었다.

[당신과 나, 우리는 둘 다 친구들에게 하듯 사물들에 애정을 줄 줄 알죠. 그것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이 무생물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불가사의한 세계를 돌볼 줄 알죠. 사물은 우리가 버려둘 때만 무생물이 되는겁니다. 사물들이 살아나려면 눈길과 우정이 필요해요. 내가 죽게 되면 내 친근한 세계가 모조리 흩어질 겁니다. 사방으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고통스럽소. 나는 당신이 내 뒤를 이어 내 작은 마법의 세계를 지켜주었으면 하오. 당신이 나와 결혼해주길 바라오.] P.146



이후 노년이었던 글렌데일은 죽게 되고, 아르망은 그동안의 죄로 인해 감옥에 가지만, 8년이 지난 후 아네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을 도울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녀의 정체가 탄로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위기를 생각하기 보다도 여전히 아르망에게 마음이 가있었고, 그와 함께 자유로워 지는것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아르망은 여전히 혁명에 눈이 멀어 있어서 아네트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조금만 더 이성적이었다면, 조금만 더 옆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그녀는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그것은 '아무'를 의미했다. 기껏해야 투박한 콧수염과 중산모를'쓴 자유, 평등, 박애가 찾아와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단두대로 향하는 길을 그에게 가리키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참으로 이상해. 고귀하고 관대한 생각도 도를 넘어서면 곧 편협해져버리니.' 그녀는 다정한 적개심을 품고 그를 바라보고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P.216



과연 아네트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아! 내가 당신을 꼭 만나야만 했을까요,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야만 했을까요,
순진하게도 내가 당신에게 고백해야만 했을까요,
거만하게도 당신은 침묵을 지켜야만 했을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야만 했을까요.
당신이 날 절망에 빠뜨려야만 했을까요,
그런데도 내가 당신을 숭배해야만 했을까요.
그래서 당신이 날 살해해야만 했을까요!"




<레이디 L>은 이상만 높고 현실적이지 않은 아나키스트들을 은근히 까는(?) 로맹 가리의 비판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신념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혁명은 과연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상을 실현하기 이전에 주변사람의 마음을 얻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Ps. 1. 책이 옆에 없어서 줄거리랑 이름이 약간 틀릴 수도 있습니다 ㅎㅎ

Ps. 2. 역시 로맹가리! 라는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유머속에 감춰진 쓸쓸함이 정말 좋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도.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05 12: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먼저인 여자 혁명이 먼저인 남자의 사랑이야기인가요. 마지막 반전도 궁금합니다. *^^*

새파랑 2022-10-05 13:56   좋아요 2 | URL
마지막 까지 읽으면 화들짝 놀랍니다. 새벽의 약속이나 자기앞의 생과 같은 감동이 있는 작품이기 보다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

청아 2022-10-05 12: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아르망?>.<
줄거리가 흥미로워보여요!
영화 아네트도 나쁜 아빠가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신기하네요

새파랑 2022-10-05 13:58   좋아요 2 | URL
아르망 맞을거에요 ㅋ 제가 책을 다른데 두고 와서 북플에 밑줄그은 문장보고 써서 부정확할수도 있습니다 ㅋ 아네트가 불우한 어린시절의 상징인걸까요? 😅
요책은 재미있습니다~!!

페넬로페 2022-10-05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상만 높고 현실적이지 않지만 요즘 같은 시국엔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어요.
새파랑님의 로맹 가리 사랑!
따라 갈 자가 없어요^^

새파랑 2022-10-05 15:14   좋아요 4 | URL
댓글이 사라졌네요~!! 전 로맹가리가 좋더라구요 ㅋ 그냥 애정이 갑니다 ㅋ 이름부터 멋집니다~!!

scott 2022-10-07 00:45   좋아요 3 | URL
닉네임 바꿔여
새로맹☺

새파랑 2022-10-07 07:39   좋아요 3 | URL
전 소세키가 더 좋습니다~!! 새세키로 바꿔볼까요? ^^

그레이스 2022-10-05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도 아나키스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는데... 예술가들의 심취한 사상!
이상적인데 반해 쟁취는 극렬한 투쟁을 요구하죠
그러기에 사랑이 비극적일듯요

새파랑 2022-10-05 19:44   좋아요 4 | URL
아 존버거의 작품도 떠오르네요 ㅋ 그 작품도 좋았는데 ㅎㅎ 두 작품이 다 아나키스트를 소재로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 극과 극인거 같아요 ㅋ

scott 2022-10-07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리옹 자살 하지 않앟다면 노벨상
받으셨을지도😂

새파랑 2022-10-07 07:38   좋아요 2 | URL
가리옹 아마 노벨문학상에 더해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지 않았을까요? ^^

모나리자 2022-10-10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작품 거의 읽으셨겠네요.
작가마다 작품 파고드는 새파랑님 대단하세요.^^

새파랑 2022-10-11 07:59   좋아요 2 | URL
로맹가리 작품이 하도 많아서 이제 절반정도 읽은거 같아요 ㅋ 아직도 갈길이 멉니다 ^^
 

역시 로맹 가리. 그의 작품은 결말도 완벽하다.




아! 내가 당신을 꼭 만나야만 했을까요,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야만 했을까요,
순진하게도 내가 당신에게 고백해야만 했을까요,
거만하게도 당신은 침묵을 지켜야만 했을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야만 했을까요.
당신이 날 절망에 빠뜨려야만 했을까요,
그런데도 내가 당신을 숭배해야만 했을까요.
그래서 당신이 날 살해해야만 했을까요!

레이디 L은 늘 영국 하늘을 무감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은밀한 동요도, 어떤 분노도, 어떤 걱정도 상상할 수 없었다.‘심한 폭우가 쏟아질 때조차 참극은 없었다. 격렬한 비바람조차 그저 잔디에 물을 주는 정도로 그쳤다. 벼락은 아이들에게서 먼곳에 떨어졌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은 피했다. - P11

그런데 그녀가 하늘에 더 요구하는 게 있다면‘몇 시간이고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추억하고 꿈을 꿀 수 있도록 황금빛 둥근 지붕에 청명한 배경을 빌려달라는 것뿐이었다. - P11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진짜 위대해지고 싶습니까? 인류의 역사에서 최고의 저명인사들 가운데 자리하고 싶습니까?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살아남길 바라십니까? 억압받는 대중이 당신 쪽을 돌아보고, 당신의 이름을 환호하고, 그 속삭임이 커져 승리의 노래가 되고, 그 메아리가 자유로운 새 세상에 영원히 울려 퍼지길 바라십니까?" - P52

"극단주의자는 비열한 수단을 이용할 때조차 열광한다. 말하자면 그는 거기서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찾는다. 사람들은 단지 대의가 요구할 때만 피를 흘리지 않는다. 대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피를 흘린다. 주저하지 않고 이용하는 잔인하고 비열한 수단들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의 성스러움과 중요성을 입증해주는 피의 증거를 본다." - P59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아르망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뒤 오래도록 그녀는 그때 아래층에서 리스트의 선율이 들려오는 동안 그가 한 말을 감미로운 냉소까지 전부 기억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를 너무도 잘 알게 된 그녀가 잘못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의 아나키 개론에 그녀가 새로운 장 하나를, 마지막 장을 덧붙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 정도였다. - P70

‘기억하세요. 당신은 다가갈 수 없는 먼 존재입니다. 당신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올림포스 산에 홀로 선 여신입니다. 누구도 감히 어느 누구도 이런저런 추측을 할 수 없고 아주 멀리서 정중하게 당신을 숭배하며 한숨만 내쉴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에게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얻어낼 겁니다. - P99

그녀가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금세 그녀에게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의식하지 못한 채 감염되듯 조금씩 달라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방식,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감추는 냉소적 회의주의, 관대하고 호의적인 배덕까지 허용할 정도로 철저하게 선입견이 없다는 점이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재빨리 그녀는 그 방식을 자신이 옷 입듯 입는다면 넋을 빼놓을 만큼 잘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고, 단지 쳐다보는 방식만으로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그 기술의 비밀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디키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는 그녀의 과거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 P109

"그자는 썩어빠진 인간이오. 우리가 그에 대해 좋게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부패가 너무도 명백해서 어떤 면에서는 그가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다는 거요. 그가 혁명 과정을 재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오직 자기 쾌락에만 관심을 갖는 이기적인 향락주의자요. 냉소주의와 회의주의를 지혜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는 초연한 자유주의자의 태도보다 더 혐오스러운 건 없어요. 게다가 그는 자기 주변의 추악함과 비참함을 보지 않으려고 자기 눈에 예술의 황금가루를 뿌리고 있단 말이오." - P112

"물론, 당신이 원하는 걸 난 할 거예요. 그렇지만 아르망..…….단 한 번이라도 우리를 위해, 여행을 하고 세상을 보고 함께 행복할 수 있게 돈을 남겨둘 수는 없을까요? 왜 당신은 언제나 모든 걸 당신 친구들에게 다 줘야 하죠? 그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떠들어대기만 하고 돈을 허비할 뿐이에요. 저 어설픈 코발스키처럼 말이죠. 그 사람이 성공한 거라곤 자기 친어머니를 날려버린 것뿐이잖아요. 웃기지 않아요?" - P114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할수 있죠? 나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나더러 완전히 달라져서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할 수 있죠? 내가 혁명의 소명을 거부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오. 나 자신을 포기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으라고 요구할 순 없소. - P115

"남자에게 육체적 끌림을 느낄 때마다 여자는 언제나 그 남자의 영혼에, 아니 조금 더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의 지성에 매료되었다고 주장하죠. 그가 지적인지 아닌지 말 한마디 내뱉을 시간이 없었을 때조차 말입니다. 이 경우도 그런 것 같군요. 당신이 그자의 영혼을 찬양하니 말이오…………. 육체적 끌림을 정신적 사랑과 혼동하는 건 정치와 이상주의를 뒤섞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주 나쁜 일이지요. 좋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그러니까 그……… 명백하게 일어난 일 말고, 그래서 당신이 대단한 만족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 말고 말입니다." - P125

"움베르토 암살을 제대로 성사시키는 데 정확히 얼마가 필요한 거요? 그 계획에 드는 비용을 전부 내가 부담할 테니 제발 부탁인데 그 귀고리는 좀 가만히 내버려두시오. 그건 그녀가 아끼는 겁니다. 당신이 좋다면 당신이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라 칩시다." - P140

당신과 나, 우리는 둘 다 친구들에게 하듯 사물들에 애정을 줄 줄 알죠. 그것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이 무생물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불가사의한 세계를 돌볼 줄 알죠. 사물은 우리가 버려둘 때만 무생물이 되는겁니다. 사물들이 살아나려면 눈길과 우정이 필요해요. 내가 죽게 되면 내 친근한 세계가 모조리 흩어질 겁니다. 사방으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고통스럽소. 나는 당신이 내 뒤를 이어 내 작은 마법의 세계를 지켜주었으면 하오. 당신이 나와 결혼해주길 바라오. - P146

‘그녀‘ ‘그 여자‘ ‘다른 여자‘라는 이름으로 아네트는‘ 자신의 경쟁자를 생각했다.인류를 뜻하는 프랑스어 ‘humanité‘는 여성형 명사다. 그녀는‘인류를 자신에게서 연인을 빼앗아 가려는 까다롭고 만족할 줄 모르는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공주, 대단한 귀부인, 바로 이것이 그 여자였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무시무시하게 변덕이 심하고, 피 흘리는 놀이를 좋아하는 여자. 그 밖에 사상이며 대의며 정치적 명제들, 이 모든 건 너무 복잡하고 비현실적이었다. - P149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그것은 ‘아무‘를 의미했다. 기껏해야 투박한 콧수염과 중산모를‘쓴 자유, 평등, 박애가 찾아와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단두대로 향하는 길을 그에게 가리키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참으로 이상해. 고귀하고 관대한 생각도 도를 넘어서면 곧 편협해져버리니.‘ 그녀는 다정한 적개심을 품고 그를 바라보고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 P216

"난 정말이지 운이 나빴어요. 술주정뱅이를 사랑할 수도 있었고 도박꾼이나 협잡꾼을, 약물중독자를 사랑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죠! 어째서 진짜 이상주의자여야 했을까요.‘그래서 나 또한 테러리즘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죠. 내가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말해둡시다. 내 사랑, 내가 얼마나 자주 이곳에 와서 당신께 미소 띤 절망감으로 이 시를 암송했던가요? - P226

그녀는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권총은 가죽 가방 옆에 떨어져 있었고, 노란 궁정 의상에서 먼지가 살포시 날았다. 아르망은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서 손에 들고 있는 붉은 망사 장미를 향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P22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10-03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책이군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도 있어서, 나오면 출간연도 한 번 찾아보게 됩니다.
가끔 읽은 책도 있지만, 새 번역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새파랑님, 휴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새파랑 2022-10-04 07:18   좋아요 1 | URL
전집 세트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새로운 한주 잘 시작하세요~!!

바람돌이 2022-10-03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말 진짜 섬뜩하던데요. ㅎㅎ

새파랑 2022-10-04 07:18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랬습니다 ㅋ 갑자기 호러 소설로 변신 ㅋ 오늘은 이 책 리뷰를 꼭 써야겠습니다~!!

scott 2022-10-04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북플 이미지에 로맹 가리옹 책들 올리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ᐡ-ܫ•ᐡ)

새파랑 2022-10-05 07:32   좋아요 0 | URL
아 어제도 못했네요 ㅜㅜ 오늘은 꼭 써야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