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114
˝인생은, 내 생각에, 실수와 수치뿐.˝ 그래..… 실수와 수치뿐이었다.
(마틴 에덴 1 리뷰에 이어서...)
사랑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쉬지않고 올라왔는데, 올라와보니 그 꿈이 사라진걸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좌절? 분노? 체념? 어쩌면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더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란 악몽일 뿐이니까...
계속 실패하더라도 마틴 에덴은 루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몇날 몇일을 굶어가면서도 골방에 쳐박혀서 미친듯이 글을 쓴다. 나는 나를 믿기 때문에, 사랑의 힘을 믿기 때문에 힘들어도 계속 쓴다.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자기는 나를 사랑하지. 그런데 왜 사랑할까? 내 안에서 나로 하여금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수 없게끔 하는 것이, 자기의 사랑을 내게로 끄는 바로 그것이야. 자기가 만났고 사랑할 수도 있었던 다른 남자들과 내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는 거야.˝] P.76
하지만 옆에서 이를 바라보는 루스는 불안하기만 하다. 마틴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가 작가로서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잠시의 일탈로 치부하며, 그가 곧 작가의 자질이 없다고 깨닫기를, 그냥 평범한 직업을 갖길 바란다. 하지만 마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작가로서의 성공을 너무 확신했기에,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자기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의 적개심이 두렵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이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사랑만은 그렇지 않아. 가다가 나약해져서 맥없이 머뭇대지 않는 한, 사랑은 잘못 갈 수가 없어.˝] P.78
하지만 오해 때문이었을까, 아님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루스는 마틴의 손을 놓아버린다. 그녀에게 있어서 마틴과 같은 하층민의 삶은 애초부터 어울릴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가봐도 어울릴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어쩌면 현실적으로 헤어짐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점을 기억해 줘. 우리의 관계는 단순히 실수였어. 부모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맞지 않고,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된 걸 둘 다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나를 만나려고 해 봐야 소용없어.] P.155
하지만 마틴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글을 쓰고 새롭게 태어난 이유는 오직 루스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떠나가 버린다면 마틴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가 믿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마틴은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건지 방황하게 된다.
루스가 떠나간 이후 거짓말처럼 마틴이 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과거에 그가 쓴 작품들까지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면서 마틴은 성공한 작가가 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자가 된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게 했던 유일한 이유인 루스가 떠난 뒤에 찾아 온 이러한 성공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그는 예전의 하층민 시절로도 돌아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 상류층의 삶도 즐길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에 서게 된다. 돈이 많지만, 명성이 높지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고귀하다고 믿었던 사랑이라는 가치는 그에게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수천 권의 책들이 그들과 그 사이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가 그자신을 추방했던 것이다. 지식의 광대한 영토로 너무 깊숙이 들어온 나머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그는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도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없었다.] P.191
이후 루스는 가족들의 사주를 받고 성공한 마틴을 다시 찾아오지만, 마틴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마틴이 사랑했던건 루스가 아닌, 그가 관념적으로 창조해 낸 여성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 사랑을 믿을 수 없었다.
[˝가장 나쁜 건, 사랑을, 성스러운 사랑을 내가 의심하게 되었다는 거야. 사랑이 출판과 대중의 주목을 먹여서 살려 내야 할 만큼 천한 것인가? 나는 앉아서 머리가 빙빙 돌 때까지 그 생각을 하곤 했어.˝] P.228
그라고 마틴은 갑자기 모든 부와 명성을 놓아둔 채 타이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가 찾으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희망도 공포도 놓고
우리는 짧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떤 신이시든
어느 생명도 영원히 살지 않게 하심을,
죽은 자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심을,
아무리 느리게 흐르는 강도
구불구불 바다에 꼭 닿게 하심을.] P.249
이 책은 분명 잭 런던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있는 작품이 맞다. 그가 생각했던 사랑, 성공, 그리고 당시 출판업계에 대한 시각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히고 진심으로 읽혔다. 역시 가장 와닿는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단언하건대, 편집자들 중 99퍼센트의 주된 자격은 실패한 경력이야. 그들은 작가로서 실패한 사람들이야. 그들이 글쓰기의 즐거움보다 고역스럽게 사무를 보고 발행 부수와 사장에게 얽매여 살기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들은 글을 써 보려고 했으나 안 됐던 거야. 바로 거기에 저주받은 역설이 있지. 문학에 있어 성공으로 가는 길목을 문학에 실패한 그들 경비견이 지키고 있으니. 편집장, 편집 차장, 편집부원들 대부분, 그리고 잡지와 출판사들에 고용되어 원고를 사전 검토하는 독자들 대부분, 그들 거의 모두가 글을 쓰려 했으나 실패한 자들이야.˝] P.68
(좀 싸한 느낌이 드는 문장이긴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
마틴 에덴이 그냥 성공을 즐겼더라면, 루스와의 재회를 받아들였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잠깐 해봤다. 아마 현실이라면 그렇게 했을것 같다. 실제로 잭 런던 역시 <마틴 에덴>의 결말처럼 살지는 않았고 현실적인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데... 뭐 현실은 현실이고, 소설은 소설이니까.
그래도 마지막 결말은 너무 소름돋으면서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중 하나가 될거 같다.
(도대체 최고의 책은 몇권인건가...)
Ps 1. <마틴 에덴> 완독 기념으로 그동안 모은 녹색광선 시리즈를 (일부만) 모아봤다. <패배의 신호>는 구매는 했었는데 친구 빌려주고 아직 못받았다... <마틴 에덴 1>은 분명 얼마전까지 책상에 있었는데 어디간건지...
나중에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찍어봐야 겠다.
Ps 2. 지금까지 녹색광선에서 나온 책들은 다 내 취향이었다. 안좋았던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