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이다. 정말 재미있고, 몰입해서 읽었고, 글이 세련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나오미‘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참 예쁜 이름이구나, ‘NAOMI‘라고 쓰면 서양 사람 같다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고, 그때부터 차츰‘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름이 하이칼라면 얼굴 모습도 어딘가 서양 사람 냄새를 풍기고 아주 영리해 보여서, ‘이런 곳의 여급으로 놔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P5

나오미 같은 소녀를 집에 데려와 그 성장하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본 뒤, 마음에 들면 아내로 맞아들이는 방법이 가장 좋다. 어쨌든 나는 부잣집 딸이나 교육을 받은 훌륭한 여자를 원하는 건 아니니까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 P14

"나오미야 배안고파?" 하고 물으면, "아뇨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하고 말할 때도 있지만, 배가 고플 때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네!" 하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뭘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양식이면 양식, 국수면 국수라고 먹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 P16

"그럼 나오미는 무슨 꽃이 제일 좋아?" 하고 언젠가 물어봤더니,‘"난 튤립이 제일 좋아요" 하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 P25

나오미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과 ‘인형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그녀의 사랑에 현혹되어 눈이 어두워져 있던 나는 그렇게 뻔한 이치조차 전혀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 P60

나는 지금도 그때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떠올리며, 모든 학생들과 함께 낄낄대고 웃었던 내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회상할 때마다, 이제 와서는 웃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이유로 로마의 영웅이 바보가 되었는지, 안토니우스쯤 되는 자가 무엇 때문에 요부의 농간에 칠칠치 못하게 휘말려들었는지, 그 마음을 이제 와서는 확실히 납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해 동정마저 금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P75

흔히 세상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속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이것은 결코 처음부터 ‘속이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남자가 자진해서 ‘속는 것‘을 기뻐합니다. 어떤‘여자에게 반해버리면 그 여자가 하는 말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남자 귀에는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게 들립니다. - P75

나는 생각합니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한테 정복당한 것도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차츰 저항력을 빼앗기고‘구슬림에 넘어가고 말았을 거라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 이번에는 이쪽이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쉽사리 여자의 우월감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재앙이 거기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 P80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는 일품요리인 비프스테이크로 만족했던 나오미가 어느새 점점 입이 고급스러워져서, 하루 세끼 식사할 때마다 "이런 게 먹고 싶다" "저런 게 먹고 싶다"고 나이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말을 합니다. 게다가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는 귀찮은 일은 싫어하기 때문에, 대개는 가까운 식당에 주문을 합니다. - P106

도대체 나는 이 여자의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까지 반해버렸을까? 저 코일까? 저 눈일까?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열거하자, 이상하게도 언제나 나한테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얼굴이 오늘 밤에는 참으로 보잘것없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러자 내 기억의 밑바닥에는 이 여자를 처음 만났을 무렵 그 다이아몬드 카페 시절의 나오미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 시절이 훨씬 좋았어. 천진하고 귀엽고 내성적이고 우울한 데가 있고, 이렇게 거칠고 건방진 여자와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여자였지. 나는 그 무렵의 나오미에게 반했기 때문에, 그 타성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겠지만, 생각해보면 모르는 사이에 이 여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은 계집이 되어버렸어. - P149

나오미가 굉장한 핫텐카라고? 학생들을 가지고 논다고? ......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분명히 있을 수 있어. 요즘 나오미의 태도를 보면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게이상할 정도야. 실은 나도 내심 걱정하고는 있었지만, 그녀 주위에 남자친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하고 있었던것이다. 나오미는 어린애다. 그리고 활발하다. "난 남자야" 하고 그녀 자신이 말하는 대로다. 그래서 남자들을 잔뜩 모아놓고 천진하게, 떠들썩하게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설령 그녀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눈이 있으면 남몰래 딴 짓을 할 수는 없을 테고, 설마 나오미가… 하고 생각한 이 ‘설마‘가 잘못이었던 것이다. - P169

그녀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게 분명해지면, 나는‘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제 그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녀가 타락한 죄의 절반은 물론 나한테도 있으니까, 나오미가 순순히 잘못을뉘우치고 사과만 해준다면,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나무라고 싶지도 않고, 또 나무랄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고집이 세고 특히 나에 대해서는 한층 더 강경해지고 싶어 하는 그녀가 설령 증거를 들이댄다 해도 그렇게 호락호락 나에게 고개를 숙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 P171

나를 만만하게 얕보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오기를 부리다가 헤어지게 되면? 그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녀의 정조 자체보다 이쪽이 훨씬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녀의 잘못을 밝혀내고 또는 감독한다 해도, 그때에 대처할 내 생각을 미리 결정해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녀가 "그럼 나는 나가겠어요" 하고 말했을 때, "마음대로 나가버려"하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각오가 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 P172

"그건 그 비오는 밤에 여기서 여럿이 뒤섞여 잔 적이 있었지요. 그날 밤에 눈치챘습니다. 그날 밤 나는 정말 당신을 동정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뻔뻔스러운 태도는 아무리 봐도 보통 사이는 아니라고 여겨졌으니까요. 나는 질투를 느끼면 느낄수록 당신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 P216

그녀의 살‘이라는 귀중한 성지에는 두 도둑놈의 진흙투성이 발자국이 영원히 찍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나오미가 미운 게 아니라 그 사건 자체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 P229

그렇다면 왜 이런 부정하고 더럽혀진 여자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가 하면, 그녀가 가진 육체의 매력, 오직 거기에만 질질 끌려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나오미의 타락인 동시에 나의 타락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남자로서의 절조와 결벽과 순정을 버리고, 지난날의 자존심도 내팽개쳐버린 채, 창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굴복하면서도 그것을 수치라고도 생각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때로는 마땅히 경멸해야 할 그 창녀의 모습을 마치 여신이라도 우러러보듯 숭배하기까지 했으니까요. - P232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오랫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떠날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인사는 지극히 담담한 것이었습니다. - P242

불과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녀를 그렇게 귀찮게 여기고 그녀의 존재를 저주했던 내가 지금은 반대로 나 자신을 저주하고 그 경솔함을 후회하게 되다니? 그렇게 미웠던 여자가 이렇게 그리워지다니? 이 급격한 마음의 변화는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고, 아마 사랑의 신만이 알고 있는 수수께끼일 것입니다. 나는 어느새 일어나서 방 안을 오락가락하면서, 어떻게 하면이 연모의 정을 달랠 수 있을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을 달랠 길은 보이지 않고, 그저 그녀가 아름다웠던 일만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계속된 동거생활의 장면들이 되살아나, 아, 그때는 이런 얘기를 했지, 그런 표정을 지었지, 그런 눈을 했지 하는 식으로 계속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데, 그 가운데 미련의 씨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 P246

아아, 나는 도대체 어쩔 셈으로 이런 정밀한 사진을 찍어두었을까요? 이것이 언젠가는 슬픈 추억이 된다는 것을 예감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 P249

"무슨 이유라뇨? 그건 도리를 벗어난 일이니까요.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이젠 나오미 씨를 깨끗이 잊어버리는게 어떻습니까?" - P265

"나오미 씨한테 걸려들면 어떤 남자라도 그렇게 되게 마련입니다."

"그 계집한테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어."

"확실히 그건 마력입니다! 나도 그걸 느꼈기 때문에, 더이상 그 여자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가까이 가면 내가 위험하다고 깨달은 겁니다." - P278

그녀의 바람기와 방자함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 결점을 없애버리면 그녀의 가치도 없어져버립니다. 바람기가 있는 계집이다. 제멋대로 하는 방자한 계집이다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귀여워져 그녀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면 낼수록 내가 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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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18 0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이 세련적‘^^ 새파랑님의 강렬한 한줄평! 제목도 단순한듯 강렬해요^^

새파랑 2022-07-18 09:20   좋아요 3 | URL
리뷰를 어제 썼어야 하는데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옮기다가 지쳐서 일단 오늘로 미뤘습니다 😆 당시 시대를 봤을때는 파격적인거 같아요 ㅋ

yamoo 2022-07-18 0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이 책 있는데....이 책 시리즈를 처분할가 생각중인데, 생각을 고쳐먹게 만드는 글이네요..^^

새파랑 2022-07-18 09:21   좋아요 3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 저도 이제 네편? 읽었는데 작품마다 편차도 좀 있고 호불호가 갈리는거 같아요 😅
요 책도 호불호가 있더라구요 ㅋ

모나리자 2022-07-18 1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빨강이 정말 강렬하네요. 너무 예쁜데요.
다니자키 작품을 벌써 네편이나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새파랑님.^^
이번주도 화이팅 하세요.^^

새파랑 2022-07-18 16:39   좋아요 3 | URL
이제 네편입니다 ^^ 요책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거 같아요~!!

scott 2022-07-18 16: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준이치로옹!
의 섬세함(약간은 변태적인 ㅎㅎㅎ)과 미문이 뛰어나서
영어로 번역되어 영미권 독자들 마음까지 사로 잡았죠 ^^

새파랑 2022-07-18 16:41   좋아요 2 | URL
이 책 재미는 보장인데, 약간 문학사적 가치? 이런건 좀 갸우뚱 하게 되더라구요 ㅋ 그래도 재미있으면 장땡~!!

서니데이 2022-07-18 17: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 그대로 썼다면 ˝치인˝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렸을 것 같은데, 번역하신 분이 제목을 잘 쓰신 것 같아요.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유명한 작가라서, 아마 하루키 선생도 다니자키 상을 받았을 거예요.
새파랑님, 더운 하루 시원하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7-18 18:58   좋아요 4 | URL
원제가 치인의 사랑이던데, 이 제목도 딱 맞는거 같아요. 만약 제가 출판사였다면 ‘미친(놈)의 사랑‘ 이라 했을거 같아요 😆

청아 2022-07-18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저번에 재밌다고 하셔서 리뷰 고대하고 있습니다ㅎㅎ
몰입하셨다니 기대감 상승😄

새파랑 2022-07-19 06:02   좋아요 2 | URL
아 ㅋ 읽고 바로 썼어야 하는데 ~!! 오늘 써야겠어요~!! 어제 일이 있어서 휴업했습니다 😅

mini74 2022-07-19 1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궁금해요 새파랑님 ! 새파랑님의 마성의 100자평 *^^*

새파랑 2022-07-19 10:17   좋아요 2 | URL
오늘 어떻게든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ㅋ 안되면 100자평? ^^
 
왼손잡이 여인 범우문고 74
패터 한트케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N22091

"밝은 대낮에 여인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밋밋하고 얼어붙은 곧바른 길을 걸어갔다. 그녀는 계속 똑바로 걸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여인은 그렇게 걸어갔다."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을수는 없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한다. 다른사람이 변한 걸 느꼈을때는 '갑자기 애가 왜이래?' 이렇게 황당해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갑자기가 아니다. 조금씩이다.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의 여인 '마리안느'도 마찬가지다. 남편인 '부르노'는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아마 황당했을 것이다. 자신의 별 대수롭지도 않은 말 때문에 갑자기 부인이 헤어지자고 말한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헤어짐이 잠깐일거라 오판하게 된다.

["당신이 나를 떠나리라는 것, 당신이 나를 혼자 버려 두리라는 깨달음이었어요. 바로 그거예요. 부르노, 가세요.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요."] P.32



하지만 그녀에게 헤어짐은 잠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꿈꿔왔고, 권태에 따른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이다. 왜 그녀가 그런 헤어짐을 선택했는지 페터 한트케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3인칭 관찰자로서 그녀를 바라보고 차분히 그릴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작가가 의도한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프란치스카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개인적인 신비주의자라는 거야. 맞아, 당신은 신비주의자야. 신비주의자! 제기랄! 당신, 병이야.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카에게 한두 번 전기치료만 하면 당신은 다시 이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어."] P.45



갑자기 남편과 헤어져서 아들과 단둘이 살게된 '마리안느'의 앞날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들은 더럽게 말도 안듣고 자신의 번역일을 방해하기만 하며, 남편인 '부르노'는 자주 찾아와 그녀를 협박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며, 주변 남자들은 그녀에게 추근거리기만 한다.

["없어, 난 행복하고 싶지가 않아. 기껏 만족할 뿐이야, 난 행복이 두려워. 난 행복을 견뎌 내지 못할 것만 같아. 머릿속에서 말이야. 난 영원히 미치거나 죽고 말 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살해할지도 모르지."] P.88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고독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 누구와도 가까워지는걸 원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나간다. 미래에 또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선택을 만족해 한다. 뭐 그게 인생이지, 한결같이 산다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제나름의 방식대로 일상의 삶을 계속한다. 생각을 하기도 안 하기도 하면서 비록 모든 것이 노름에 걸린 엄청난 경우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일상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화젯거리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양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P.137





긴 이별이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이후 사년(?)만에 페터 한트케의 <완손잡이 여인>을 접했다. 내가 읽은 그의 두번째 작품. <왼손잡이 여인>은 <긴 이별...>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약간 한트케가 힘을 빼고 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한트케가 써내려가는 담담한 문장들은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순간순간을 포착해 써내려간 장면은 영화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긴 이별...>을 재독해 봐야겠다 ^^

"넌 너를 드러내지 않았어. 그리고 아무도 너를 비굴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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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15 2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긴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가 아마 제일 읽기 힘들지 않았나싶습니다.
한트케는 <패널티킥...>이 제일 좋았어요 ^^

새파랑 2022-07-15 22:19   좋아요 3 | URL
아하 그렇군요~!! 일단 <패널티킥>을 읽어야 겠습니다 ^^

청아 2022-07-15 22: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새파랑님!! 이 리뷰 이전에 써주신 글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네요. 덕분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새파랑 2022-07-15 22:27   좋아요 3 | URL
미미님과 폴스타프님 덕에 읽은 책입니다 ㅋ 제가 요즘 여름을 타서 완전 주관적으로 리뷰를 막 써봤습니다. 쓰는데 30분 걸렸어요 😅 <미친 사랑> 읽고 있는데 완전 잼있네요~!!

서곡 2022-07-15 22: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 ‘소망 없는 불행‘이 실려 있죠. 엄마에 대해 쓴 인상적인 산문.

새파랑 2022-07-15 22:32   좋아요 3 | URL
제가 가진 책은 <소망 없는 불행> 이 안들어 있더라구요. 딱 <왼손잡이 여인> 하나만 들어있더라구요. 잘못출판된걸까요? 😅 그 단편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서곡 2022-07-15 22:41   좋아요 4 | URL
아 그래서 위 리뷰에 ‘소망 없는 불행‘ 에 대해 안 쓰셨구나...제가 갖고 있는 범우문고 <왼손잡이 여인>은 미색 바탕에 붉은 선이 들어간 표지인데요. 저 푸른 표지본과 다른가 봅니다. ‘소망 없는 불행‘이 민음사전집에 있으니 참고하시길요. 아니 에르노가 부모에 대해 썼듯이 페터 한트케의 절절한 엄마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새파랑 2022-07-15 22:53   좋아요 3 | URL
절절한 엄마 이야기라니 읽어봐야 겠습니다. 한트케의 절절함이 어떤건지 궁금하네요~!!

페넬로페 2022-07-15 22: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담담하게 그려진 이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조금 고독한 느낌도 받습니다.
저는 소망없는 불행 읽었는데 자전적 이야기라서 좋았어요^^

새파랑 2022-07-15 22:56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님도 이 책 좋아하실거 같아요. 가격도 착하고 얇아서 금방 읽을수 있어요. 소망없는 불행 꼭 읽어야 겠습니다~!!

mini74 2022-07-15 23: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갑작스럽지않다. 조금씩이다 이 말 와닿습니다. 왼손잡이여인 본인이 영화화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베를린천사의 시 시나리오고 쓰고~ 저도 읽어보고싶네요. 미님 폴스타프님 새파랑님까지 ㅎㅎ

새파랑 2022-07-16 07:32   좋아요 3 | URL
이 책 보고 제가 떠올린 말 입니다 ㅋ 이 책 영화화 하기도 했군요. 잼있을거 같아요 ~! 미니님 집에 이미 있을수도 있습니다~!!

alummii 2022-07-15 23: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거 좀 쉽다니 한번 도전해 보고파요 ㅎㅎ

새파랑 2022-07-16 07:33   좋아요 4 | URL
<긴이별...> 보다는 확실히 잘읽히더라구요~!! 추천드립니다~!!

희선 2022-07-17 2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는 말 보니, 왜 슬픈지... 엄마 혼자 아이 기르기 힘들겠지요 아들이 지금은 그래도 자란 다음엔 좀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누군가 방해하지 않으면 앞으로 죽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다른 건 바라지 않고...


희선

새파랑 2022-07-18 05:57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고독을 선택했으면서도 자식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사는 모습은 좀 의외이긴 합니다 🤔 그나마 아들이 없었다면 집이 너무 썰렁했을거 같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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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뀌는 건 없다. 조금씩 바뀐다. 다만 상대방이 알지 못할뿐.


늘상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 왔지만 이제야 당신과 묶여 있다는 감정을 갖게 된 것이었어. 그래, 목숨을 내걸고 맹세할 수가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점을 직접 경험하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없어도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 P24

"오늘밤은 내가 전부터 꿈꾸어 왔던 모든 것들이 충족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마치 어떤 행복의 나라에서 중간 지점이 없이 단박에 다른 지점으로 옮겨 가는 기분이거든. 난 지금 마력을 느끼고 있어 마리안느 난 당신이 필요해, 그리고 행복해. 너무나 행복해서 내부에서 온갖 것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니까. " - P30

"당신이 나를 떠나리라는 것, 당신이 나를 혼자 버려 두리라는 깨달음이었어요. 바로 그거예요. 부르노, 가세요.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요." - P32

"프란치스카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개인적인 신비주의자라는 거야. 맞아, 당신은 신비주의자야. 신비주의자! 제기랄! 당신, 병이야.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카에게 한두 번 전기치료만 하면 당신은 다시 이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어." - P45

밝은 대낮에 여인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밋밋하고 얼어붙은 곧바른 길을 걸어갔다. 그녀는 계속 똑바로 걸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여인은 그렇게 걸어갔다. - P79

"아무도 당신을 돕지 않습니까?‘ 하고 방문객이 물었다. ‘그래요, 아무도 돕지 않아요‘ 하고 여자가 대답했다. ‘제가 꿈꾸는 남자는 나의 내부에서 그 이상 그에게 매달리지 않는 여인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일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의 어떤 점을 사랑합니까?" ‘이런 종류의 사랑이지요." - P80

"난 네가 우리들을 찾아올 수 없었던 사실을 이해하겠어. 나 역시 조용한 집에서 살다가 누구를 만나러 가려면 갑자기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죽을 지경이 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거든…………." - P87

"없어, 난 행복하고 싶지가 않아. 기껏 만족할 뿐이야, 난 행복이 두려워. 난 행복을 견뎌 내지 못할 것만 같아. 머릿속에서 말이야. 난 영원히 미치거나 죽고 말 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살해할지도 모르지." - P88

"혼자라는 것은 차디차고 구역질나는 고통을 유발해요. 말하자면 의지와는 상관없는 고통이지요. 그렇게 되면 사람이 완전히 버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줄 사람들이 필요해요." - P125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제나름의 방식대로 일상의 삶을 계속한다. 생각을 하기도 안 하기도 하면서 비록 모든 것이 노름에 걸린 엄청난 경우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일상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화젯거리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양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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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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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단편작가들은 많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작가 단 한명을 꼽자면 윌리엄 트레버다. 이 책을 빼고 국내 출판된 트레버의 다른 책들은 다 읽었는데, 그래서 이 책은 아껴 읽는 중이다. 다 읽으면 너무 아쉬울까봐. 차분한 문장속에 담겨있는 진한 여운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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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14 08: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껴읽을만한 책은 역시 좋은 책이에요. 이런 책은 나중에 재독해도 좋더군요^^

새파랑 2022-07-14 09:51   좋아요 6 | URL
이 책 완전 소장각 입니다. 현대문학 단편집들 좋더라구요~!!

coolcat329 2022-07-14 10: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을 좋아하게 만들어 준 책입니다.😍

새파랑 2022-07-14 11:01   좋아요 3 | URL
쿨캣님에게 의미있는 책이군요 ^^ 저에게도 의미있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청아 2022-07-14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껴읽는 그 마음 완전 공감합니다!!ㅎㅎ저는 아끼는
책이 너무 많아 탈이지만 ^^;;

새파랑 2022-07-14 11:02   좋아요 4 | URL
역시 책부부부자 미미님~!! 아껴 읽고 싶은데 아직 쌓인 책이 많아서 참 그렇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07-14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최애 단편 작가라니 읽어봐야겠네요~! 했는데 책 정보 보니 616페이지네요...
젤 짧은 걸로 한 권 읽어야겠어요 ㅎㅎ

새파랑 2022-07-14 14:29   좋아요 2 | URL
햇살님 덕분에 제가 <그의 옛연인>단편집을 안읽었다는걸 발견했습니다 ^^ 왜 안읽었는데 읽은줄 알았을까요? 😅 최근 출판된 <밀회> 추천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7-14 16: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숙제 추가
밀회 읽어보겠습니다!

희선 2022-07-15 0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껴 읽는 책이 있다는 건 좋은 거겠습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서 좋으시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7-15 18:50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작가가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ㅋ 맨날 새로운 애정작가가 생기는거 같아요 ^^

mini74 2022-07-15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껴서 야금야금. 그러다 다시 펴보고 가끔 표지 쓰다듬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건 찐행복 ㅎㅎ 가끔 제가 좋아하는 책들 표지 쓰담쓰담하면 남편이 변태같다고 ㅎㅎ 차분한 문장에 진한 여운이란 새파랑님 말씀 격하게 공감합니다 *^^*

햇살과함께 2022-07-15 21:55   좋아요 2 | URL
변태 ㅋㅋ 책 변태 좋은데요?!

새파랑 2022-07-15 22:31   좋아요 2 | URL
책변태 미니님 ㅋ 전 베개 옆에 책 세권, 베개 밑에 책 한권 놓고 잡니다 ㅎㅎ 쓰고 보니 싸이코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