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p.)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윤나TV]에는 이런 댓글이 덜린 적도 있다.
˝책도 강의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작가님은 영상에서 자꾸 웃어요 웃을 필요가 없는 장면에서도 왜 자꾸 웃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 나는 적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어색한 상황에 처하면 반사적으로 웃었다.

ㅡ 내 마음을 알고 싶다. 내 꿈을 알고 싶다. 내 이야기를 알고 싶다. 알고 싶으면 물어봐야지. 그저 웃고 말거나 괜찮아요 하면서 얼버무리지 말고 쫌.


(8p.)나는 개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삶의 패턴에 ‘말의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면, 우리는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말의 시나리오란 ‘말이 되풀이해 들려주는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 말은 이미 우리에게 굳어진 말의 시나리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때의 말은 대화를 위해 발화되는 말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화할 때 당신이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모두 포함한다. 시나리오는 말로 드러나고, 말은 시나리오를 지속시킨다.

ㅡ 10년 전의 나라면 이쯤에서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테니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와닿아서 씁쓸할 지경이다. 이제라도 이해해서 다행 아닌가 하다가도 내 나이를 생각하면 울고 싶다. 울면 우는거지 뭐. 울다가 읽다가, 읽다가 쓰다가, 쓰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그러다 가면 되지 뭐.


(12p.)나는 코칭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삶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 이야기 밖에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에서도 나는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ㅡ 계속 읽어나가는 이유다. 지금이야말로 나에겐 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28p.)‘하지 못하는 말들‘은 심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그 영토에 주도권을 세우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선을 긋고, 물러서게 하고, 존중을 요구하는 말을 하는 것은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못하고 돌아설 때 분노는 내면에 쌓인다.

(33p.)예를 들어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맥락적 기억을 저장해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사람이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 때 그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그 사람은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요.˝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ㅡ 여기 맥락하고는 상관 없지만 내 경험이니까 굳이 ‘기록‘해두고 싶은 게 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귀동냥으로도 다른 사람들끼리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대사를 자막으로 봤을 때 어찌나 신선했는지 그 말을 기억해뒀다가 꼭 한 번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릴 땐 누가 나를 칭찬하면 그저 멋쩍어하고 손사레까지 쳐가면서 되려 칭찬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배운 뒤로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말을 할 기회, 들을 기회 둘 다.




* 키워드
1. 타인지향 시나리오 Other-Directed Scenario
2. 내부지향 시나리오 Inner-Directed Scenario
3. 자기감 sense of self
4. 심리적 영토
5. 사건-자서전적 기억 EAM, Episodic-Autobiographical Memor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를 들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 한 부분을 훔쳐 보자. 다음 문단은 단지 하나의 방에 대한 묘사가 어떻게 인물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형적인 예다. 여기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방금 자살한, 자신의 좋은 친구이자 체스 파트너였던 사진작가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방을 조사한다.

방 안에는 공원에서 쓰인 듯한 바퀴 달린 커다란 카메라와, 집에서 만든 페인트로 칠한 바닷가의 석양이 그려진 배경이 놓여 있고, 벽에는 중요한 순간들이 담긴 아이들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첫 성찬식 때 사진, 토끼 옷을 입고 찍은 사진, 생일 파티 사진. 체스를 두다 생각에 잠겨 멈춰 있던 오후마다, 우르비노 박사는 해가 지날수록 벽을 덮은 사진이 늘어가는 것을 바라보았었다. 일상적인 그 사진들은 미래의 도시의 씨앗이었다. 이 모르는 아이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또 부패할, 그의 영광이라곤 재조차 남아 있지 않을 그곳. 종종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그는 슬픔으로 몸서리쳤다.

이 짧은 단락은 이야기의 배경과 우르비노 박사의 세계관을 드러내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씨름하는 보편적 인간 조건을 멋지게 요약해준다. 마치 우리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젠가 세계도 우리 없이 계속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커다란 돌 위에 “왔다 감”이라고 스프레이로 써놓는 것보단 훨씬 낫다.(199쪽)



이야기를 쓰는 이유?
‘이야기는 삶의 도구‘라는 말을 곱씹어 생각한다. 학생이었을 때도 분식점 벽에 ˝왔다 감˝ 낙서 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새삼 이야기를 쓰겠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 할 말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야기를 써서(도구 삼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면 와이낫?
진짜 말 그대로 와.이.낫

내가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 하나
와이낫

주인공은 나
나 아니면 안되는 이야기 하나
와이낫

주인공은 주인공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다.
와이낫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바깥에서
이야기 속으로

왔다 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 이 대목, 창작의 신비성이 아니라 현실성에 관한 것이라는 말에 설득됨.



이 책은 창작의 신비성이 아니라 현실성에 관한 것이다. - P13

중심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도록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점점 산 넘어 산이 되어가는데, 알다시피 스크린에는 숨을 곳이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 P13

카메라는 모든 잘못된 것들에게는 치명적인 X레이 기계이다. 카메라는 인생을 몇 배로 확대해서 보여주며 우리가 혼란과 당혹감 속에서 다 때려치우고 싶어질 때까지 이야기의 전개 과정 중 모든 취약하고 유치한 구석을 샅샅이 발가벗겨 낸다. 그러나 단단히 결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이러한 당혹감들은 사라지게 된다. 시나리오 창작 과정은 이상한 일들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아니다. - P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조지의 《적색 부주의Careless in Red》 중 한 부분을 보자.

앨런이 말했다. “케라.”

그녀는 못 들은 척했다. 쌀과 녹색 콩으로 된 잠발라야와 브레드 푸딩을 만들기로 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괜찮았다. 치킨, 소시지, 새우, 피망, 바지락 국물…… 목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녀는 일주일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연습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 때나 자기들이 원할 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겠지. 정말 훌륭한 기계가 아닌가? 전자레인지는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줬다. 이건 음식뿐 아니라 사람들도 이런 기계에 넣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녀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 아닐까? 그들을 데우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꿀 수 있도록. 소녀는 누굴 가장 먼저 집어넣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엄마? 아빠? 산토? 아니면, 앨런?
(93/411)_《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는다. 글쓰기 책에는 인용구가 많아서 읽고 싶은 책도 많다. 《적색 부주의(Careless in RED)》라는 책이 끌리는데 번역본은 안보인다. 아쉽다. 아쉽지만 패스. ‘내일 죽는다면‘까지는 아니어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1년뿐이라면‘ 정도의 생각을 하다보니 많은 일들을 패스할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eBook으로 읽다가 종이책 주문
2024. 2. 19. 월 아침에 비 오다가 12시에 맑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68쪽 사진: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숨

서점에서 본 책이다. 표지를 문지르면 좋은 냄새가 난다. 향기에 홀려서 그대로 계산대로 들고 가다가 ‘차라리 식물 화분을 하나 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책은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나왔다. 하지만 식물 화분 파는 곳을 찾지 못해 그냥 집에 왔다. 결국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올 정도로 식물 사진이 많은데 그 중에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진한 초록색과 연두색이 어울린 색감이 좋다. 굵은 흰색 잎맥이 힘차게 느껴진다. 식물 이름은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숨‘이다. 외우기는 어려울 듯. 그래도 지은이가 이 식물을 제일 좋아한다고 해서 뭔가 통한 느낌이 반가웠다.



(269쪽) 수백 종의 식물이 자라는 내 정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물을 꼽으라면, 나는 자랑스럽게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숨을 꼽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