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가슴 아픈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야기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막내 동생 철수(가명), 그리고 나.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곳은, 집이나 학교가 아닌, 바로 '교회'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나는 스무살 때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막내 동생과 나는 5살 차이다.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과 동시에, 철수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 패턴을 그대로 따라서 생활했다. 중간 중간 나에게 교회로 돌아올 것을 권하기도 하면서 철수는 정말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 나와는 달리 대학에 가서도 철수는 여전히 교회에서 아동부, 중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2002년에 아버지가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회사가 어려워 지면서 눈에 띄게 쇠약해지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철수와 나는 '믿음'에 대해서 다른 행동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철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신은 없다'면서 종교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나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가 지고 계셨던 짐은 커다란 산이 되어 우리 가족을 덮쳐 눌렀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정녕 아버지 혼자 전부 짊어지고 계셨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죄책감은 커졌고, 한편으로는 그 짐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차서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나는 결국 하나님을 다시 찾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주일마다 다시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몰라보게 안정을 되찾고, 힘을 얻어 살고 있다.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어느 토요일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철수에게 말했다.

"내일 같이 예배드리러 가자."

"싫어"

"왜 싫은데?"

"싫어.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은 없는 건데 누구한테 예배를 드리라는 거야?"

"하나님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되지. 아니, 세상 일 뿐이 아니야. 이제와서 얘기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새벽마다 뭘 했는지 알아? 나 새벽기도 다녔어. 하루 빨리 부모님 전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루 빨리 우리 가족 모두 구원 받고 다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뭐야. 하나님이 있다해도 내 기도는 들어주지도 않는데 그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교회 가자는 얘기 하지 마."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부모님이 싫어하시니까 집에다가는 새벽에 운동하러 간다고 말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거였고, 그렇게 열심히 부모님을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렇게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고(집에 혼자 쓰러져 계신 아버지를 처음 발견해서 응급차를 부른 것도 철수였다.), 별별 극악무도한 범죄와 사기가 들끓는 세상 뉴스 역시, 하나님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그런 논리가.. 참 어린애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에 대해 뭔가 더 이상 이어갈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스웨터』는, 동생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알게 해 준 책이다. 등장인물과 배경, 소재는 분명 다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다시 찾게 되었는지, 옛날 일기장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고마운 것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화를 멈춘 상태'에서 벗어나 동생을 위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기도할지, 어떤 일을 할지.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인상깊은 구절]

"때때로 너무 마음이 단단한 것도 약점이 된단다. 정말 강해지고 싶다면 먼저 약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네 몫의 짐을 다른 사람과 나눠보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도 필요하단다. 어려운 일인 건 알아. 하지만 가족은 네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폭풍 속에서 쉴 곳을 마련해주는 사람들이야." (178쪽)

"왜 거짓말인줄 아세요?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에요. 우릴 사랑하지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 따윈 안중에도 없다고요." (186쪽)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일은, 그 여행을 이어갈 합당한 자격을 스스로가 갖추었다고 믿는 일이란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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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어떤 느낌이나 견해도 밝히고 싶지 않다."

이것으로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뭔가 말하기엔.. 이 책이 소재로 삼고있는 것에 대해 내가 너무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은 것도, 리뷰를 통해 그 극단적인 견해를 밝혀야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데,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 견해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견해를 밝히겠다는 생각이 밝혀봐야 별 거 없겠구나 쪽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다만, 소설이 끝나자 마자, 바로 그 다음 페이지(211p.)에 나오는 옮긴이(성귀수)의 글 한 줄에 대해서 만큼은 정말 '짜증나는 한마디'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웬만하면 자살하지 말자!"라니!!!!!!!!!!!!!!!!!!! 이것도 농담이라고 던진 말인가? 블랙유머니 뭐니 그런 흉내랍시고?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자, 우리 새해도 되고 했으니, 웬만하면 살지 말자! 웬만하면 죽지 말자! 웬만하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자! 웬만하면..." 이런 말도 안되는 인사말보다도 백 배, 천 배 더 어이없다. 웬만하면??? 나 원 참.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르네!

이러면 어떨까?
"웬만하면 성귀수씨가 번역한 책 읽지 말자." 웬만하면. (*여기서 '웬만하면'이란 웬만한 책은 다 읽어서 더 이상 읽을만한 책이 남아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뭔가 읽지 않으면 못견딜만큼 그렇게 읽을거리가 궁한 상태!)

옮긴이의 글 한마디에 유감 천만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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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오렌지 - 세계적인 광고회사 팰런 월드와이드의 혁신 광고전략 Harvard Business 경제경영 총서 36
팻 팰런 외 지음, 김광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앞서, 권민의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우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브랜드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욕구’를 찾아내서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만일 내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한다면,
그 브랜드가 나의 어떤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는 얘기?

내가 좋아하는 광고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쇼를 하라, 쇼!’를 좋아한다.
특히 ‘한 살의 쇼’와 요즘 한참 TV에 나오는 ‘100살의 쇼’
그리고 ‘생각대로 T'도 무지하게 좋아라 한다.
광고 자체보다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 ‘되고송’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 통신회사는 LGT이다.

광고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광고 회사 제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만일 휴대폰이 매일 다른 식당을 찾아가듯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제품이라면 통신회사를 바꿨을지도 모르겠지만, 통신회사를 바꾸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의사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광고만 좋아하는 한 사람인 것이다.

말하자면 ‘광고’를 소비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나에 대해 한 가지 진단을 하게 된다.
......
나는 이야기 중독이다.

이야기 중독...?
이야기에 자극 받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늘 이야기가 필요한 상태...

아.. 어쩌지? 옛말에 이야기 좋아하면 거지 된다는데...
그건 그냥 그야말로 농경사회였던 옛날에 나온 말일 뿐이라고,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막연하게 ‘예언 효과’를 거부해 보지만...
정말 그러면 어쩌지?
어이쿠. 

그러면서도 나는 또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이야기를 좋아하다가, 끝내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다 먹어치우고,
나중엔 자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 이야기.

그렇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인기있는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또 자기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래서 세상은 다시 이야기로 풍성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온 것 같지만,
사실 이렇게 찾아나선 길에 만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창의력 오렌지』다.

창의력 오렌지!
이야기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 창의력 오렌지는,
맛있게 익은 총각김치처럼 그렇게
아삭하게 씹는 맛과 잘 발효된 감칠맛을 선물한다.

자, 이것이 내가 이 책에 대해 최고로 보낼 수 있는 찬사다.

아삭하게 씹는 맛,
최적의 조건에서 잘 발효된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칠맛!

‘팻 팰런’과 ‘프레드 센’, 두 사람이 이야기꾼이고,
이들이 공동 운영하는 광고회사 ‘팰런 월드와이드’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팰런 월드와이드가,
변화된 시장 상황에 맞게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시티은행의 광고를 맡아서
시티은행과 궁합이 맞는 진정한 고객을 찾아내는 과정,
찾아낸 고객에게 다가가고 관계를 정립해 가는 과정,
그러한 노력이 보상받는 과정 이야기와,

또 하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nited Airlines)의 광고대행사로서,
이 항공사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들의 특성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마법’을 펼쳐가는 이야기는,
정말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90쪽에 나오는
“그들이 당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노력도 먹히지 않는다.”
라는 말이나, 

143쪽부터 펼쳐지는 BMW 인터넷 광고 이야기(영화감독이 광고를 만든다), 

 
9장의 바하마 이야기, 

203쪽 “찾아서 알아내는 기쁨을 의무감으로 촉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치명적인 실수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말을 맛볼 때의 느낌은
혀에 착착 와서 감기는
싱싱하면서도 곰삭은 총각김치의 감칠맛,
바로 그것이다.

자, 그럼 내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별 거 아니다. 그저, 나처럼 이야기를 좋아하고
나처럼 총각김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창의력 오렌지’ 맛을 한 번 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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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ICEBREAK BASIC - 회화, 20시간만 들으면 되고 영어, 생각대로 하면 되고
BaEsic Contents House 외 지음 / Watermelon(워터메론)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잉글리시 아이스브레이크 베이직
ENGLISH ICE BREAK BASIC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는, 사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꾸준히 리뷰를 쓰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리뷰를 쓰는 것이, 독서로 얻을 수 있는 유익(그것이 재미든, 필요한 지식이든, 지혜든, 또는 감동이나 동기 부여.. 그 무엇이든 간에)을 내 것으로 만들어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어교재’로 분류되는 책을 놓고 리뷰를 쓰는 것은 왜일까? 

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책을 리뷰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알고 싶어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읽어보는 가장 큰 이유가,
내가 돈을 지불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니까... 

그런 의미로 볼 때, 이 책은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 책은, (사람으로 치자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자기의 장점이 무엇인지,
자기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자기 소개를 누구보다 깔끔하게 잘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믿을 만하다는 게 뭔가.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누구든 그 사람을 ‘믿을 만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책이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자기 소개에 해당하는 처음 두 쪽의 내용’을 ‘말(言)’이라 치고,
책을 읽고 나서 독자에게 나타나는 학습효과를 ‘행동’이라고 할 때
이 책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그러니 믿을 만하다.
그러니 읽어볼 만하다.
그러니 이 책으로 다시 영어를 배울 만하고,
그러니 이 책을 권할 만하다.

(맨 앞 쪽.), Preface

“비 영어권 국가에서 온 반벙어리 외국인들에게즉각적이고 유쾌한 효과를 거둔 영어 교재”
막연히 영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책은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영어에 친해져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토록 해줍니다.

(사실 이 부분은 번역이 맘에 안든다.
이럴 때 나에게 깊숙히 뿌리 내린 버릇 하나가 작동한다.
내 맘에 들게 문장을 바꾸어 적는 버릇! 완전 자동이다. ㅋㅋ
위와 같은 경우라면..
‘이 책은 막연히 영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저 차례대로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어와 친해진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고쳐 썼다.)

100% Graphic Language Book
이 책은 전체가 다 그림으로 표현된 영어 책입니다.
그림이 주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보는 즉시 내용을 알게 해준다는 것과
또 하나는 우뇌를 자극해 기억을 쉽게 해주는 것입니다.

망각 곡선에 근거한 자연스런 반복
이 책의 모든 그림과 스크립트는 뷸규칙적으로 여러 번 반복됩니다.
보통 7번 정도의 우연한 만남이 있어야 대상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자연스런 반복을 통해 이 책은 영어의 기본을 정확히 여러분 몸에 심어드릴 것입니다.

이런 자기 소개가
이미 많은 독자들을 통해
과장 없이 사실로 입증되었다면,
어떤가?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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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같은 소설.
헷갈린다.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실감나는 소설. 
 
지금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건지섬으로 날아가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줄리엣과 도시가 결혼하여 키트와 함께 (어쩌면 키트의 동생들이 태어났을지도 모르지) 행복하게 살고, 이솔라는 섬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들을 캐다가 정체불명 약초를 끓여서 나름대로 확신에 찬 이름을 붙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을것 같다. 어쩌면 파리로 갔던 레미가 건강을 회복하고 약속대로 건지섬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아.. 아멜리아 집 라즈베리를 따서 만든 파이와 차 한잔을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오늘은 2008년 12월 19일이다.
1946년 9월 17일자 편지가 책에 실린 마지막 편지니까,
가만있자... 무려 62년 전 이야기가 되겠군.
설사 이 책의 인물들이 실제고 또 다 살아있다하더라도
키트조차 할머니가 되어있겠네... 

그렇더라도, 나는 안다.
작가 메리 앤 셰퍼가 건지 섬에 살도록 만들어 놓은 이 모든 사람들을
건지 섬뿐 아니라, 우리나라 제주도, 울릉도, 강화도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을. 

편지 쓰고 싶다
편지 읽고 싶다
편지 부치고 싶다
답장 받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싸움 걸고 싶다
도전 받고 싶다
맞서고 싶다
돕고 싶다
아... 우아하게 살고 싶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당연하다. 

소설 곳곳에서 내 모습이 보일 뿐만 아니라, 내가 꿈꾸고 있던 모습까지 비추니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마법의 거울. 처음엔 거울 앞에 서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책 후반부에 가서는 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사실 결말은 좀 싱겁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부에 너무 심한 감정이입을 겪다보니 기대치가 너무 가파르게 올라갔던게지.) 
 

몇 년째 단골로 다니는 서점인데,
언제나 원하는 책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사실은 원하고 있었던 책도 서너 권
덤으로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24쪽) 

몇 년 전,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도시의 복잡함을 못견뎌하는 나에게 유일한 위안은 '서점'이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렸다. '언제나 원하는 책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사실은 원하고 있었던 책도 서너 권 덤으로 찾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나에겐 종로 1가에 있는 영풍문고,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였다. 이 문장을 만나자마자 단번에 나는 작가 메리 앤 세퍼에게 반하고 말았던 것인데... 아... 안타깝다. 이 책이 그녀의 데뷔작이자 유작이라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음식이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섯 달 동안 늘 순무에다 가끔씩 연골 덩어리만 먹다 보니
제대로 된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57쪽) 

몇 년 전에, 턱을 다쳐서 음식을 씹을 수 없이 한달을 지낸 적이 있다. 며칠은 물, 한약, 음료수로 버티고, 며칠은 죽으로 버티고, 겨우 겨우 두부나 삶은 호박을 오물거리며 먹으며 버티던 그 때. 정말 입맛 잃고 살맛도 잃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음식이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제대로 된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말도 뼈저리게 겪어서 안다. 고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아삭아삭한 느낌. 씹는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얼마나 애태웠던가. 하하. 지난 일이니까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런 경험은 다시는 하고싶지 않다. 나는 지금도 턱관절을 의식하고 조심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저녁에 집에 왔을 때
당신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당신이 책으로 쓰고 싶은 주제를 찾아내는 데 행운이 함께 하길 빕니다.
(74쪽) 

나도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학교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데 우체통에서 나를 기다리는 편지를 발견하는 기쁨, 그 편지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느낌, 편지 봉투를 뜯고 편지를 펼쳐 읽을 때의 설레임..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좋은 일이지^^ 

어머나, 세상에, 세상에.
당신이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의 자매인 앤 브론테에 대해 책을 썼군요.(99쪽)

이런 편지도. 어머나, 세상에, 세상에! 이런 호들갑을 떨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하지만 분명해. 분명 나도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좋아라 웃어대던 때가 있었어. 그래 분명해. 지금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음... 속상하다. 못할 이유가 뭔가. 지금 당장 편지 한 통을 써야겠다. 

비록 줄리엣이
취향과 판단력, 잘못된 우선순위, 그리고
적절하지 못한 유머센스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훌륭한 자질이
한 가지는 있습니다.

정직하다는 겁니다.
만약 그녀가
당신들 문학회의 명예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면,
렇게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군요.
벨라 톤튼 드림(87쪽) 

만일 줄리엣이 뭘 하겠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그것을 할 겁니다.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이먼 심플리스 드림(91쪽) 

음..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해달라는 글을 부탁한다면, 그건 누굴까? 그가 누가 되었든, 이렇게 확신에 찬 소개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자신이 없군. 

이 책은 이렇게 곳곳에서 나를 웃겼다가, 용기있게 했다가, 또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주절거릴 수 있는 구절을 곳곳에서 만난다. 정말 한두군데가 아니다. 작가가 살아있다면 내 서툰 영어실력을 총동원해서 아마 그녀에게 팬레터를 썼을 것이다. 내 실력으로 안되면 동생한테 부탁하면 되고^^~ 

그럼 이 책을 읽고 어떤 교훈을 얻었냐고? 글쎄.. 뭐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해야한다면.. 딱히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 주제가 뭔가도 말하기 어려운걸. 주제? 책.. 사랑.. 사람.. 전쟁.. 문학.. 독서.. 출판.. ㅋㅋㅋ 모두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저 사는 이야기다. 계속 되는 삶, 이어지는 삶.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삶 말이다. 

책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거짓말같이 눈 앞에 펼쳐지는 삶.
나 또는 우리 중 누군가의 삶.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전쟁이라는 시간적 배경 위에
사람들이 책을 읽고, 모임을 열고, 편지를 쓰고, 만나고,
일하고, 먹고, 사랑하고, 돌보고, 키우고, 자라고, 만들고, 떠나고, 돌아오고...
그런 모습이 그려지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처럼 맞장구치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하고 그와 같이 수다를 떨 수 있을까? 음... 학창시절에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 친구라면? 결국 짝사랑으로 끝나버렸지만 끊임없이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했던 그 연애편지의 대상이 된 오빠라면? 한참 책읽는 재미를 알아가는 이팔청춘 나의 조카라면? 글쎄... 

사적이고 비밀스런 모임의 회원을 물색하듯이, 그렇게 이 책을 권할 만한 사람을 물색하며 며칠을 보내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리뷰를 읽고 어느 한마디라도 당신에게 탁! 걸려든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예를 들어 ‘서점’이라든지, 짝사랑, 연애편지, 친구, 모임... 같은 평범한 단어가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게 되리라~
즐거운 상상하면서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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