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짧다. 뭔가 속은 것 같은 생각에 충분히 억울해하고, 다른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기에, 80 인생은 짧다. 남녀 차별의 이 길고 견고한 연결고리를 이해하는데 인생은 짧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는 초기 인류 사회에서 사회의 존속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출산 및 육아를 여성들이 맡기로 합의한 것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며, ‘기능적인 면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채집 수렵사회를 거쳐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가 도래했으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여전히 여성, 혹은 여성인 일이다. 무급 가사노동 가치가 491조로 GDP 대비 25.5%를 차지하고 있지만,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64분인데 반해, 여성은 그의 세 배에 달하는 205분으로 집계된 것이 그 증거다. (<연합뉴스>, 2021 6 21, ‘여성 1인 가사 노동 가치 연 1380만 원남성의 2.6)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가 가사 노동만은 아니다. 재산권과 교육 기회 박탈, 이동의 자유 제한, 남녀에 따른 이중적인 성 관념, 질주름(처녀막)을 위시한 순결에 대한 강요, 모성 찬양, 여성 노인에 대한 혐오, 강간 협박, 페미사이드가 일반화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렵다. 맞다.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시대의 악습은 여전하며,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통증 연대기는 통증과 고통에 대한 책이다. 책 전체를 통해 탐구하는 문제는 인간의 통증에 대한 고민해답이다. 각 챕터 말미의 통증일기는 저자가 경험했던 훨씬 더 내밀한 고통의 이야기다. 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여러 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나 젊고, 이렇게나 예쁘고, 하버드 대학을 다니고, 영문학을 전공한 최우수 성적의 그녀는 왜 연인관계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렇게 소극적인 사람이 된단 말인가. 그 망설임의 중심에는 통증이 있었고,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통증, 의사조차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불치병과 그 치료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기 주저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혹 나의 이 통증 때문에 이 사람이 나를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사랑을 잃기 싫은 마음. 이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얼어붙은 여자의 이야기는 뻔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고 잘 알고 있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건 이젠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돌아보면 상황이 생각만큼 뻔하지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이야기로 읽어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나와 그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짧은 연애와 사랑의 경험을 통해 배운바, 내가 사랑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약자다. 나는 그 사람을 원하고, 그 사람이 나를 원하거나 혹은 원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망각과 자유』에서 강신주는 썼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양보한다. 우리가 사는 문화 속에서 남성은 사랑 앞에 좀 더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여성은 좀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요구받는다.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야말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속 이성복 시인 같은 사람.



 












앞날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동률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기어이 그대를 보내야만 한다면

차라리 그대를 닮은 그림자로 숨어서

그대와 함께할 있다면 그리하겠소

서러운 나의 사랑이 영원히 모든 빛을 잃어도

그대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소

그리하겠소 기꺼이



그리고는 생각한다. 누구든 그 사람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원하고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이기를, 나만의 이기를 바라게 되는 그때에는, 누구든 약자가 된다고. 양보하고 싶고, 그리고 양보하게 된다고.


그래서, 의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랑에 빠졌을 때, 호르몬 과다의 그 미친 시간에 약자가 되는 조건이란 여남 두 사람에게 동일한데, 왜 아이와 함께 가정에 남는 사람은 여성인가. 가사노동에 3배의 시간을 소요하는 사람은 왜 여성인가. 경제지표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은 왜 여성인가. 사랑과 함께 희생을 요구받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대대로, 그리고 오늘날까지 왜 여성이고, 여성이어야만 하는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의 마지막은 왜 이러한가.

 

젠더 모자이크 저자의 막내아들이 다섯 살 전후일 때 일이다. 친구 생일파티에서 분홍 닌자로 변신해서 상상 속 적에게 분홍 리본을 던지며 행복하게 놀던 아들이 저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세요?” 저자는 안다고 답했는데, 아들이 덧붙여 말한다. “그 사람들 이상해요. 왜냐하면 난 남잔데 분홍색을 좋아하거든요.”(198)


다섯 살 아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여남간의 차이보다 성별 간 겹치는 부분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가부장제의 견고한 아성이 무너질 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 똑똑이 친구(쟝쟝님)는 똑똑한 친구(다락방님)의 서재 댓글에서 “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지금 말고요) 젠더-섹스-섹슈얼리티-퀴어 논쟁 등으로 치열해진 게 패착처럼 느껴진 적 있다 ….. 그게 많이 이야기 되면서 자매애에 기반한 어떤 대중적 동력(?)을 잃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똑똑이 친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성운동이 총력을 기울였던 참정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오히려 여성운동이 약화되었던 선례나, ‘포르노를 둘러싼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 간의 피튀기는설전은 여성 운동, 페미니즘 운동의 전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나 혼자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인식과 폭이 무한정 확대되어 가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서로 간에 합의된 그 작은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속에서 발견되듯, 가정 폭력, 지참금 살해 문제에 대해 인도 여성들이 계급과 계층을 뛰어넘어 공동으로 투쟁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다면, 페미니스트 혹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여성들의 범위를 넘어서, 대부분의 여성, 대부분의 남성마저도 범죄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한 공동투쟁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물리적이며 신체적인 공격에 대한 폭로와 처벌 촉구. 강간, 친족 성폭행,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가정 폭력, 리벤지 포르노 등등. 특히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신체 촬영 범죄는 가까운 사람이나 불특정 다수를 가리지 않으며, 범죄의 결과가 무한정 재생산될 수 있어 피해자에게 극심한 손해를 끼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젠더 모자이크』 저자 아들의 말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낙관하기에 현실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 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내가 아니라, 남자는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네가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자. 가볍게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작은 일, 작은 사건에 대해서, 그 사건에 대해 해석할 때. 남자도 분홍색 좋아해. 여자인 내가 파란색 좋아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그거 잘해. 여자들도 그거 할 수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더 강하게 맞서고 더 끈질기게 밀어붙이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빼도 된다고, 이제야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거부감을 일으킨다면 괄호 안에 넣으면 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아도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는 페미니즘적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적 사고를 실천하자. 멈추지 말고 오래오래. 끈질기게, 말하고 다시 말하고, 쓰고 다시 또 쓰자. 길게 더 길게. 길게 더 길게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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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5 12:0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사람들이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해주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을 선언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여성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로만 선언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오히려 그 이름에 갇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누구다 말하기 이전에 행동을 하자, 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한나 아렌트가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라고 한 적 없지만, 저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때마다 더 멀리, 더 높게, 더 단단히 가자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수정 교수가 나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라고 한 적 없지만, 이수정 교수님의 여성에 대한 연대는 늘 감사한 마음이 들고요. 그 분은 ‘여성에게 연대할거야‘라는 것보다 왜 이들은 약자인가, 약자의 편에 서겠다, 하면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신건데,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려고 하다 보면 그쪽이 페미니즘 인것 같아요.

그런 저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문득 단발머리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더 읽고 쓰는 일을 멈추시면 안될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단발머리님이 읽는게 점점 더 쌓일수록 더 넓은 글이 나오는 것 같아서요. 훗.
:)

단발머리 2021-07-05 12:18   좋아요 6 | URL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것과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행동양식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있거든요. 언젠가 글로 풀어볼 시간이 있겠지만, 말보다 행동이라는 다락방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경우도, 한나 아렌트, 이수정 교수님의 경우도 그러할테고요. 저는 점점 더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끌려요. 살고 살려라!의 주장이요. 다만 제 위치가 용감하고 씩씩한 그녀들과는 너무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위축되기는 하지만요.

읽고 쓰는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서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 같이 하는 친구, 응원해주는 친구,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인것 같아요. 다락방님이 내겐 큰 행운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읽고 쓰자고요!

- 2021-07-13 18:0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말씀에 엄청 동의!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여성주의와 따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요. 일단은 나 자신을 튼튼하게 보호하기!! 그리구 단발님 말씀에도 오래오래 길게길게 쓰는 걸로 동의할 테야요!! 저는 어쩐지 다시 돌아와서 올해의 띵문이었던 장혜영의원의 글이 생각나요. 피해자 정체성에 대한 어떤 희망을 본 것도 같았던. 아주 많은 전략들이 중첩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혼란한 세상이지만 읽고 쓰고 공부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하면서 자신을 구성하고 다져 나가는 게 지금은 저의 그리고 각자 다른 우리들의 페미니즘 방식😭 아 좋아라 ㅎㅎ

2021-11-0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7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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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평생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박사모와 같은 레벨로 불리며 살 것을 안다. 충분히 예상한다. 반면에 똑똑하며 사리 분별이 정확한 중도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투표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박원순이, 이번에는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중도의 이러한 현명한결정 때문이다. 나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쪽만을 애정하는 집토끼들의 생각이란 건, 뭐 들어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은 들어볼 필요도 없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그렇다는 걸, 나도 알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조국의 시간을 읽었다. 빨리 읽고 싶기도 했고, 읽기 싫기도 해서 천천히 사고, 책이 도착해서도 좀 미루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야 간신히 손에 들었다. 우리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았던 회오리 같던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 돌아본다.

 

 

도대체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세상에,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나는 큰 죄를 짓기에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 아닌가. 검찰에 불려 가기엔 너무 소심한 사람 아닌가. 검찰개혁이 완수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아니, 검찰을 개혁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김영삼 정부 이후 문민정부이고,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이 시대에, 왜 검찰을 개혁해야 하는가. 왜 검찰이 개혁의 대상인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과 조국의 법무부 장관 취임, 그리고 조국의 법무부 장관 사임의 전 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대대적인 저항은 조국은 안 된다는 확신에 대한 답이다. 조국이면 절대 안 되는데, 왜냐하면 조국은 평생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대중적 지지를 거머쥔 똑똑한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개인사가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이 정도의 압수수색과 이 정도의 전 방위적 신상 털기식 수사라면 어느 한 사람 괜찮을까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모두 다 자신은 조국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검찰개혁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조국은 발기발기 찢어졌고,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조선일보>는 성매매 기사에 조국과 그의 딸 일러스트를 함께 넣어 패륜적 악행을 일삼고, ‘, 그래? 미안!’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단군 이래 언론의 최고 먹잇감이었던 조국과 그의 가족은 그렇게 조리돌림 당해도 괜찮은 이유가, 검찰개혁인데. 도대체 검찰개혁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조국과 그의 가족은 검찰과 언론과 야당의 전방위적 공세에 더해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단 말인가.

 

 

나는 조국에 대한 검증과 압수수색과 신상털기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임은정 검사는 도를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조국 죽이기’, ‘조국 사냥이었다고 말한다.

 


타깃을 향해 신속하게 치고 들어가는 검찰권의 속도와 강도를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밖에요. 수사가 사냥이 되면, 검사가 사냥꾼과 몰이꾼이 되면, 수사가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더러 보아왔습니다만, 표창장 위조 혐의에조차 사냥꾼들이 저렇게 풀리는 걸 보며 황당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요. (158,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2019 10 14)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의 말도 옮긴다.

 


재작년 연말에 이미 누적된 조국 기사량100만 건 정도였습니다. 최순실 관련 기사량의 10배나 된 거죠. ‘국정농단도 아니고 그저 한 가정의 문제임에도 보수, 극우 언론들의 과다한 왜곡, 편파 보도는 거의 테러수준이었습니다. 본인과 특히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그 부담을 생각하면 절로 동감을 하게 됩니다. ‘문제에 대한 지적을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조국 대전국면에서의 융단 폭격식언론 보도들은 인권 침해적 요소들이 대단히 심각했습니다. 이 조리돌림은 한국 언론사의 수치스러운 기억이 될 겁니다.” (180, 박노자 교수 페이스북, 2021 5 7)

 


『시사인』 고제규 편집장의 말이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을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업무방해, 뇌물수수 등 모두 12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8 27일 강제 수사에 들어간 지 126일 만에, 100명이 넘는 수사진을 투입한 결과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88)를 넘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151)에 버금가는 기간이고 수사진 규모다. … 수사가 길어질수록 검찰의 목적은 눈에 보였다. 조국 구속. 결과는? 돌팔이 수준의 수사라는 걸 누구보다 검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100여 명이 투입되어 126일을 수사하고, 수사 타깃이었던 조국 전 장관을 구속조차 못 시켰다. 검찰로서도 수치라고 평가할 것이다. (167, 고제규 편집장 페이스북, 2019 12 31)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에게 다른 사람이 묻는다. 너는? 너는 어떤데? 나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을 보수보다 진보에 더 엄격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보수는 마음대로 타락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걔네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는 뜻인가. 군인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을 발사하고 국가의 부를 개인적으로 착복해 3대로 이어가는 전직 대통령은 노년에도 마냥 행복하고, 친구에게 후원받은 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던 이는 세상을 등졌다. 매섭게 몰아칠 질타와 위선적이라는 비난과 그리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워서 그래서 세상을 버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사람에게 자격이 필요한가. 물론이다. 지도자에게 그에 맞는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그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비전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언론에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는 조국 국면에서 사람들이 조국에게 완벽을 요구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으니 안 된다는 것인가. 완벽하지 않으니 죽으라는 말인가. 이 모든 사태는 검찰 때문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자기 생각에부적격하다고 생각한 검찰은 총장부터 말단검사까지 한 몸이 되어 조국과 그의 가족을 죽이려 들었다. 검찰 개혁이 싫어서. 그리고 언론이 한 편이 되었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려는 사람은, 그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는, 어처구니없는 중상모략에 시달려야 하고,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를 감당해야 하고, 아버지의 비석이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어야 하고, 이혼했지만 사이좋게 지내는 동생의 개인사가 모두 공개되어야 하고, 자녀의 중2 시절 일기장이 압수당해야 하고, 집에서 나온 쓰레기봉투를 뜯어 그 안을 살피는 기자들에게 아무 말 못 해야 하고, 20대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늦은 밤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깡패 같은 기자들에게 제발 가 달라 부탁해야 하는가. 그것이 온당한 일이었나.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자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완벽해야 하는가.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자신의 삶, 가족, 친구와 관련 없는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우리 집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까, 이 나라의 미친 사교육과 선행 학습은 나와 상관이 없는가. 우리 집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까, 세월호 단원고 아이들을 추모해서는 안 되는가. 우리 부모님들은 건강하고 행복하시니 노인 복지에 대해서는 말하면 안 되는가.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내 새끼들, 내 친구들하고만 행복하게 하하호호 잘 살면 되는가.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나는 검찰에 불려 갈 일은 없을 테니까.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인가.

 

 

검찰에 불려갈 주제도 안 되는 나는, 여러 밤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 감히 완벽하지도 않은 인간인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감히 검찰에 맞서려는 사람은  조국처럼 된다. 그 사람이 우리나라 최고의 형법 전공 법학자여도, 서울대 법대 교수여도.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힌다. 조국처럼 만신창이가 된다. 검찰개혁의 이유와 증거가 바로 조국이다. 조국 전 장관이 그 증거다. 

 

언론이 조국 펀드라고 대대적으로 떠들던 사모펀드재판건에서 대법원이 정경심 교수의 무죄를 확정했다. 언론에서 다루어 주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게 똑똑한 검사들이 밤낮으로 덤볐는데도 조국을 구속시키지 못 했고, 이제 남은 건 동양대 표창장 하나다. 동양대 표창장 하나가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동양대 표창장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보다 10배 중요한 일이라고 묻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 같은 시간 동안 내가 바랬던 건 딱 하나였다. 조국 전 장관이 죽지 않는 것. 검찰의 괴롭힘에 시달려 죽지 않는 것.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는 말을 남기고 죽지 않는 것. 지지 않는 것. 울지 않는 것.

 


가족 구성원 전체가 도륙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엄청났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생환(). 그것이면 족했다. (280쪽) 

 


그는 살아남았고, 살아서 이 책을 썼다.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살았다.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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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02 13:0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은 똑같은 상태에서 그가 검찰 출신이었다면 결과가 같았을지 의문입니다. 산장에서 접대영상 찍힌 ‘그 남자‘는 이제 고개 당당히 들고 다니고 출국 금지 시켰던 사람들이 타깃이 되고 있는 기막힌 상황은 ‘그 남자‘가 검찰 출신이기 때문이겠죠. 실상은 임명권자 위에 서 있는 권력.

단발머리 2021-07-02 14:54   좋아요 4 | URL
산장에서 접대영상 찍힌 그 남자의 무사 출국이 검찰이 원하던 바였겠죠. 그게 안 되니 출국 금지시켰던 사람들을 기소하는 것 아니겠습니다. 법 위에 있죠, 우리 나라 검찰은요...

잠자냥 2021-07-02 13:21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조국에게 분노한 이유는, ‘모두 다 자신은 조국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간 조국이 보여준 이미지와 너무 배치되는 일들이 벌어져서가 아닐까 합니다. 설사 그것이 표창장 위조처럼 가벼운(?) 행위라 할지라도, 조국이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기에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닐까요. 그건 박원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성범죄는 아무리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어도 도저히 또 찍어줄 수는 없게 만든 것이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겠죠. 다만 그 터는 방식과 횟수는 진영을 떠나서 똑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윤석렬과 그의 가족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털면 됩니다. 기대하지는 않지만요...

단발머리 2021-07-02 15:01   좋아요 7 | URL
사실 위 책에는 조국 전 장관의 반성이 절절합니다. 저는 그런 사과가 과도하다고 생각하지만, 조국 전 장관은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표창장과 관련해서 (저는 위조가 아니라 위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으니 사람들이 분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 문제는 그 정도가 ‘조폭 언론‘을 통해 어떻게 확대되었는지 꼭 살펴야한다는 겁니다. 보수가 잘못해서 벌점 얻으면 마이너스 1점이지요. 근데 진보는 잘못해서 벌점 얻으면 마이너스 1,300점입니다. 보수 언론도 진보 언론도 모두 다 함께 물어뜯으니까요. 보수언론은 보수에 관대하고 진보에 적대적이고, 진보언론은 보수에 적대적이고 깨끗한 척 해야하기에 진보에 적대적입니다. 진보 몰락의 기울기가 훨씬 더 가파르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윤석열과 그의 가족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털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조국처럼 핍박받아서는 안 됩니다.
다만, 조국 수사의 10분의 1로 4시간만 털어도 윤짜장은 고개 들고 다니지 못할 겁니다.

청아 2021-07-02 15:08   좋아요 3 | URL
아 단발머리님 마지막 말 공감1000입니다.

잠자냥 2021-07-02 15:12   좋아요 3 | URL
아니요, 저는 윤석렬만큼은 그만큼 똑같이 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석렬이니까요. 남의 가정에 피눈물 나게 했으니까 똑같이 당해봐야 합니다. 그 집에 가서 짜장면도 시키고, 자식이 없으니 자식 일기장 대신 김명신 일기장이라도 털어야 할까요? 암튼 그런데 그 사람은 장모와 자기 대변인 사퇴 문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전형적인 윤로남불입니다. 조폭개........아휴 말을 더 안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7-02 18:08   좋아요 2 | URL
미미님/ 공감 1000 감사합니다^^

잠자냥님/ 윤석열도 조국만큼 털려야 된다는 말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심정에는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근데 피눈물 나게 하고 짜장면 시키고 일기장 빼앗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 집은 그냥 두어도 될 듯 싶습니다. 장모 판결에 대해 윤짜장이 ˝법 적용에 누구나 예외 없다˝라고 말했다죠. 누구나 예외 없고, 자기는 예외죠. 하늘 위에 사십니다, 그 분은.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2 13: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라는 알라디너가 이 리뷰를 보았으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1-07-02 15:02   좋아요 1 | URL
하아... 글쎄요.

페넬로페 2021-07-02 13: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일단 저도 잠자냥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진보진영인 사람들도 조금 힘이 빠진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약간의 니힐리스트 또는 아나키스트가 되어가는것 같아요^^

단발머리님께서 페이퍼에 적으신 문장들의 울림이 너무 좋네요~~
좀 울컥했어요^^
그러면서 안타까워요
조금만 더 잘하고 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없다는 논리가 아닌 다 가진 사람한테 거는 소시민의 작은 희망 정도입니다^^

단발머리 2021-07-02 15:04   좋아요 6 | URL
전 진영에 갇힌 사람이니까 진영에 갇히지 않는 분들의 의견이 좀 더 중립적일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삐뚤어진 한국의 언론이 그 ‘중립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걸 모른 척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내내 저도 여러번 울컥했습니다. 힘든 독서였어요 ㅠㅠ

테레사 2021-07-02 14: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더 강하게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그래서 보수는 마음대로 타락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걔네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는 뜻인가. 누군가 거악에 분노 안하고 위선에 더 분노하는 현재를 자신은 받아드리기..너무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 특히 박원순은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난 것이 현재까지 인권위의 성희롱혐의뿐임에도(물론 성희롱을 옹호해서는 안되지만요)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2차가해라고 입을 닫게 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저로서는 감당이 안되네요.

단발머리 2021-07-02 15:09   좋아요 3 | URL
거악에 분노하지 않고 위선에 분노하는 현재를 받아들여야겠죠.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들여다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런 시선이 가능하도록 했던 검찰, 언론, 야당의 공조와 그 악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잠자냥 2021-07-02 14: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조국이 LA조선일보 상대 미국소송에서 승리해서 조선일보 폐간이 앞당겨지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단발머리 2021-07-02 15:06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잠자냥님 의견에 완전 동의합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경우를 실사로 꼭 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조선일보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blueyonder 2021-07-02 15: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절절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7-02 15:04   좋아요 4 | URL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다 2021-07-02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조국펀드가 무죄인데 왜 정경심이 징역 4년 받고 감옥에서 못 나오고 있는지요? 조국과 정경심 재판이 남아있고 사모펀드 쟁점도 여전한데요. 이제 남은 건 표창장 하나라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리고 언제부터 민주당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진보인가요? 이거야말로 기레기들의 프레임 아닐까요?

단발머리 2021-07-02 20:48   좋아요 3 | URL
사모펀드 관련해서 5촌 조카는 유죄이지만 정경심 교수는 무죄입니다. 대법원 판결이니 확정이지요. 사모펀드 쟁점은 끝났습니다. 입시비리 관련해서 정경심 교수는 유죄이지만 앞으로 법정에서 계속 다툴테니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민주당 정권은 사실 중도보수에 가깝죠. 70년 전에 내전이 일어나고 ‘빨갱이‘라는 손짓 하나로 사람 죽이던 나라입니다. 제대로 된 진보가 살아 남았겠습니까. 설마 국민의힘당이 진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다다 2021-07-02 23:43   좋아요 0 | URL
정경심 교수가 조국 전 장관 5촌 조카 조범동과 횡령죄 공범이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고 해서 무죄라고 볼 수가 있는지요?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사모펀드 관련 금융실명제법 위반, 범죄수익은닉, 미공개정보이용에 대한 법적 공방이 아직 진행중인데요.

조국 전 장관은 2019년 8월에 <5촌 조카가 사모펀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고, 투자처도 모른다고 했죠. 그런데, 며칠 전 5촌 조카가 대법원 유죄 확정됐죠. 조국 전 장관의 거짓말이 확인된 셈이기도 한데,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연일 SNS에 조국대장경을 쓰고 계시더라구요.

네 국민의 힘은 반동수구와 보수가 동거하는 정치세력이라고 봅니다.

조국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식 그리고 언론보도 형태가 아주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다가도 조국 전 장관의 태도나 제가 경험한 민주당 지지자 대다수가 보이는 반응을 보면 정말 이것 밖에 안되는 사람들인가 싶고 실망감이 큽니다.

모두들 단발머리 님 글에 지지와 공감을 보이는데, 혼자 딴지를 거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함께 사는 공동체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7-03 08:20   좋아요 0 | URL
대법원에서 공모 부분에 대해서 무죄가 확정되었는데 뭐가 더 남았는지 모르겠네요. 1심에서 유죄였던 사항에 대한 최종판단이 대법원 판결 아닌가요?

5촌 조카는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이 거짓말 한 것으로 이해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이 5촌 조카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5촌 조카가 자기는 관여하지 않았다, 자기는 아무 죄도 없다, 해서 조국 전 장관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지만, 알고 보니 5촌 조카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다님의 이 문장, ˝조국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식 그리고 언론보도 형태가 아주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다가도 조국 전 장관의 태도나 제가 경험한 민주당 지지자 대다수가 보이는 반응을 보면 정말 이것 밖에 안되는 사람들인가 싶고 실망감이 큽니다.˝가 제가 이 글을 쓴 이유입니다.

실망할 수 있고 욕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지지하던 정당을 바꿀 수도 있겠지요. 제가 말하는 건, 이 정도의 행적에 대해 이 정도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검찰 권력의 미친 활개와 언론의 잔악무도함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만큼 혼내면 됩니다. 그게 법이 지배하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 아닙니까. 아이가 컵 하나 깼다고 정신 잃을 정도로 두드려 패야겠습니까. 조국한테는 그러지 않았습니까. 100군데가 넘는 곳을 압수수색하면서 조사 과정에서 조국 장관 동생의 편을 들었던 후배의 집, 임시숙소, 차량등을 3회나 압수수색하고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게 온당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겠죠.
전 저 나름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입니다. 다다님 의견을 딴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다 2021-07-03 10:21   좋아요 0 | URL
대법원에서 공모 부문에 대해서 무죄가 확정되었는데 뭐가 더 남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정경심 교수는 기존 1심에서 사모펀드 관련해서 횡령죄 공모 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위반, 금융실명제법 위반, 범죄수익은닉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판단이 있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5촌 조카 조범동의 재판 과정에서 일부(횡령죄 공모)가 무혐의로 인정 된 사실을 가지고 ‘대법원에서 정경심씨가 사모펀드 관련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성급하게 말씀을 하시면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단발머리님께선 조국 사모펀드 사건(‘기업사냥을 통한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신 듯 한데, 이게 그렇게 가벼운 사안이 아닙니다.

다다 2021-07-02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온 사회가 다 썩었는데도 정치인들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권력에는 언제나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사회 전체가 부패의 늪에 빠져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에게 보통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게 싫은 사람은 정치를 그만두면 된다.˝ 동아일보, 정치인과 도덕성, 유시민

지금 다시 읽어도 명문이네요.

단발머리 2021-07-02 20:4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1-07-02 2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참 할 말이 많지만 글로
다 형언할 수가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전에 책부터 만나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좀 시간
이 걸릴 것 같네요.

단발머리 2021-07-02 20:44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의 말씀을 저도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읽기였어요. 기억을 돌아볼수록 그 집 식구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놀랍고도 다행이라 여겨질 뿐입니다.
저도 미루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읽고 말았네요.

붕붕툐툐 2021-07-02 2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아줘 고맙다. 그리고 지금 언론들과 치열하게 싸워줘 고맙다. 딱 그 마음입니다. 단발머리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책은 나중에나 읽게 될 거 같아요. ㅠㅠㅠ

단발머리 2021-07-03 08:22   좋아요 1 | URL
네, 저도요. 그 기간에는 세상이 온통 조국 세상이라 저도 뉴스 보는 게 싫었거든요. 이번에 여러 자료랑 같이 읽는데, 어떻게 버텼대 ㅠㅠㅠ 이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힘든 독서지만 그래도 전 이 책 읽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ㅠㅠㅠ
 


 















통증의 한 가지 저주는 통증이 없는 사람에게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환자는 멜로드라마 같은, 비현실적이고 상투적인 은유로 통증을 표현하려 안간힘을 쓴다. 당뇨 신경병에 걸린 노숙인은 작은 신경들이 산소 부족으로 죽어 허벅지와 발이 덴 듯한 통증을 이렇게 묘사했다. "얼음송곳처럼 따갑고 찌르는 것처럼 아파요…" (163)

 


흔히 쓰는 말 중에 내가 싫어하는 게 저 애, 저거, 저거 꾀병이야.” 하는 말이 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신의 아이에게 누가 그런 말을 할까 싶겠지만 나는 많이도 보았다. 주변의 엄마들도, 가까운 사이의 어떤 분도 아이들이 어릴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저거, 저거 꾀병이야. 하긴 육아서의 바이블삐뽀삐뽀 119 소아과』에서도 아픈 아이에게 혜택을 주지 말라고 쓰여 있기는 했지만, 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많이 다친 게 아니어도, 어디가 다친 건지 당최 모를 때조차도, 아프다는 그 말을 믿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는, ~ 한 번 불어주고 후시딘 발라주고 캐릭터 밴드를 붙여주고는 했다. 그건 내가 통증이란 타인이 공유할 수 없다는 진실을 알아서라기보다는. 믿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나도 많이 아팠으니까.

 

다른 통증은 차치하고 우주의 섭리에 의한 생리통만 해도 내 우주는 너무 버거웠다. 어느 정도 생리통이 심했냐 하면 출산의 고통에 비견될 만큼 심했다. 5분 진통이 와서 분만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출산의 괴로움이 생리통의 강도와 비슷해 도와주던 간호사님이 이제, 들어가실께요!’라고 소리칠 때 그래? 이게 정말 다야?’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작고 딱딱한 책상, 생리통 때문에 엎드려 있는 친구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내가 아는 고통이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 겪은 사람만 아는 통증이었다.

 


이 책은 통증의 역사를 다루고 각종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을 추적한다. 통증을 이겨내려는 인류의 지난하고 고단한 과정을 보여주고,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의학의 위업 속에서도 여전히 나아는 통증의 괴로움에 관해 기술한다. 통증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려는 의학적 노력에 더해 마취제를 비롯해 통증을 감소시킬 약제와 약품에 대해 논한다. 무엇보다 통증에서 벗어나고자 전국 혹은 전 세계 병원을 투어하는 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의사, 어느 환자에게나 똑같이 처방하고 다음 주에 만나자는 의사, 환자에게 필요한 바로 진통제를 처방해주지 않는 의사. 통증에서 벗어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또 하루를, 그다음 하루를 통증과 씨름한다.

 


커트가 말했다. "길을 벗어나면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내가 대답했다. "내 인생이 그랬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이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듣고 싶어 한 말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커트와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길에 빠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약해진 몸으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커트는 모든 여자가 좋아할 만한 남자다. 얼굴과 마음씨가 훌륭하고 지적이고 재치 있는데다 하늘빛 눈망울의 소유자이니까. 남부러울 것 없는 커트를 생각하면 혼란스러웠다. 사귀는 내내 그랬다. 커트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가슴속에 불이 타올랐다. 하지만 커트와 사귀면서 나는 건강과 체력과 역량과 솔직함을 잃었다. (104)

 


이 책의 백미라고 한다면. (, ‘통증 일기를 백미라고 말하는 나의 이 잔인함에 용서를 구한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한다면, 당연히 저자의 통증 연대기, 통증 일기다. 오랫동안, 인류는 고통과 통증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징벌이라고 여겼다. 저자 역시 그랬다. 탐내서는 안 되는 남자를 탐내서. 너무 근사한 남자를 꼬시려고 해서. 완벽한 그와 첫날밤을 보낸 후부터 그녀는 경추증, 척추관 협착증, 후두 신경통, 충돌 증후군, 회전근개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당한다. 자신의 통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통증에서 자유롭기 위한 여정들은 한 편의 소설과 같이 아름답고 눈물겹다. 아마도 그녀의 기록이 진실에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슬픔과는 또 다른 결의 여러 감정이 그녀의 통증일기에는 살아있다. 솔직한 것이 무엇에든 답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녀가 자신의 통증에 솔직하게 맞서는 장면들은 그녀의 숭고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더욱 그녀에게 감동하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녀의 통증과 고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운다.  

 


대다수 사람들은 행운을 자기가 타고난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당연히 나이듯 행운이 당연히 내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행운이 행운인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고 그늘에 내던져질 수 있는 것이다. 동전이 뒤집히듯 내 삶도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역사적으로 좋은 시기(대다수 시기와 비교할 때), 좋은 나라(질적으로, 양적으로), 좋은 혈통, 좋은 몸, 좋은 심장, 좋은 신장, 좋은 폐, 그리고 또 …… 동전이 뒤집히는 건 반갑지 않았다. (305)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운이 원래부터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돈과 시간, 열정과 체력 혹은 긍정적인 성격에 타고난 유머 감각.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이 모든 건 동시에 혹은 차례로 어느 때고 그늘에 내던져질 수 있고, 눈앞에서 이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자고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나대지 말고, 까불지 말아야 한다. 오만방자하지 않았던 그녀마저 이렇듯 소중한 것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행운이 나와 함께함을 기뻐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그녀가 통증에서 자유로워졌기를 고대하면서.  





하지만 대체 왜? 통증은 행복의 대가였을까, 행복을 누린 벌이었을까? 통증의 어원은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 ‘poena, ‘갚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네‘’ poine’,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겪어야 하는 처벌과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펜peine’이다. - P37

인간은 통증을 느낄 때 남에게 동정심을 일으키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지만 대다수 동물은 동료가 부상당하면 상처가 나을 때까지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게다가 부상당한 동물은 상처 부위가 쓸릴까봐 무리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지낸다. 사람이 다가가면, 달아나려고 미친 듯 몸부림을 친다. 다리를 살펴보려고 접근하면 사슴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뒤틀며 반대쪽 다리로 공격한다. 사슴이 아니라 여우나 늑대였다면 물었을 것이다. - P41

나는 툭하면 기침이 났는데, 그때마다 동네 병원을 찾아가 의사가 처방전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48시간 안에 나을 걸 알았으니까. 예외는 한 번도 없었다. 처방전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제의적 만족감을 선사했다. 귀에 닳은 투약지시를 의사가 읊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가 처방전을 건네는 순간 기침은 사실상 멈추었다. 처방전은 적의 퇴각을 타전하는 전보였다. 전투가 며칠 끌 수는 있겠지만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 P55

환자의 시간은 아무 가치가 없다. 프랑스 작가이며 매독으로 죽은 그자비에 오브리에는 1870년에 이렇게 썼다. "질병은 가난 못지않은 실패다. 내 옆에서 기다리던 환자들에게는 실업급여를 타려 기다리던 실업자의 남루함이 묻어 있었다. - P70

고통을 감수하려면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려면 (고통을 언제나 부정적으로 여기는) 생물로서의 본능보다 (고통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적 신념을 우위에 두고, 통증의 영적 의미를 육체적 의미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들이 성인과 순교자를 떠받드는 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여느 인간과 다르기, 아니 초인적이기 때문이다. - P91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로버트 A허머 박사 연구진은 미국에 사는 성인 2만여 명을 9년 동안 추적 조사한 유명한 연구에서 교회 출석과 사망률 사이에 놀라우리만치 강력한 통계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출석한 기독교인은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보다 평균 6년을 더 살았으며 두 번 이상 출석한 사람은 평균 7년을 더 살았다. 죽는 시점도 종교의 영향을 받는 듯하다. 독실한 신자는 중요한 종교 기념일을 앞두고 죽는 일이 드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출석한 기독교인이 8년을 더 살았으며 두 번 이상 출석한 사람은 14년이나 더 살았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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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1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remy 2021-06-21 13:06   좋아요 2 | URL
뭐, 제가 딱히 한국책이나 만화책 아니면 그냥 아마존에서 책을 살 수 밖에 없는
미국생활 30년 넘은 사람이라서지 특별하게 멋질 건 없답니다.

제 시간으로는 일요일 이른 오후라 단발머리님 글 읽고 꽂힌 김에
일필휘지로 그냥 댓글 길게 썼는데
월요일 시작하셔서 바쁘실텐데 이렇게 성의껏 답글 써주시니
상냥하신 마음씀씀이에 감사드리며
편안하고 좋은 한 주를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단발머리 2021-06-29 08:43   좋아요 0 | URL
Jeremy님 방에 놀러갔다가 좋은 글, 좋은 책 소개에 깜짝 놀라고 왔습니다. 앞으로 서재에서 자주 뵈어요!
한주가 벌써 다 지나버렸네요 ㅠㅠㅠ 이번 한 주도 좋은 시간 되시길요^^

mini74 2021-06-21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란 유난히 통증을 참는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통증의 정도가 다 다른데도요. 저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

얄라알라 2021-06-23 13:02   좋아요 1 | URL
아 정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제 지인의 어머니는 산통을 참으시다가, 어금니가 다 부서지셨다고하는..

그게 미덕이었던 시절이 있었겠죠? 설마 지금은 아니겠죠?

단발머리 2021-06-29 08:46   좋아요 2 | URL
미니님/ 네, 맞아요. 고통에 대한 호소가 그렇게 받아들여지요. 근데 최근에 정희진 선생님 글 읽으면서는, 어쩌면 다른 사람은 내 고통을 끝까지 이해할 수 없으니, 특히 육체적 통증 같은 경우요....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을 배려해야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더라구요. 저도 감사하면서 살려구요.

북사랑님/ 지금은 출산시에 무통 주사를 맞으니까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는 아니지 싶어요. 그렇다고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구요.

수이 2021-06-21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대지 말고 조심조심 엉금엉금

단발머리 2021-06-29 08:46   좋아요 0 | URL
조심조심 한발한발. 오늘도 그렇게 살자구요. 찬찬히 조심조심.

얄라알라 2021-06-23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다보니 ˝꾀병˝이야말로, 저평가된, 제대로 파보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거리인데요.
이런 느낌이에요 내가 호소하면 고통, 네가 말하면 꾀병..

단발머리 2021-06-29 08:47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뭡니까. 자매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 있겠습니다 ㅎㅎㅎ

2021-06-24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6-24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정희진샘의 신간이었군요! 고통이나 통증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주제라 살짝 꿍 비껴있었는 데, 흥미가 생기네요? (통증일기에 백미를 가져다 붙이신 것 처럼... 흥미가 생긴다는 표현도 좀 거시기 하지만 서도 ㅎㅎㅎ) 단발님 리뷰 좀더 읽고 읽을지 말지 생각해 봐야겠읍니다 ^^

단발머리 2021-06-29 08:52   좋아요 1 | URL
저 다 읽었고요.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말 그대로 연대기라서 별로인 지점도 사람마다 있을 수 있겠고요. 전 고통에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통증일기는, 일기니까 에세이에 가까운데, 이 사람이 하버드 영문과 수석졸업생이잖아요.
소설 같아요. 그냥 툭툭 써내는데, 파바박 찌르는 느낌? 전 좋았어요. 크흑.

- 2021-06-29 09:29   좋아요 0 | URL
하바드 영뭉과 수석의 느낌이 한글에서도 느껴지면 워떡한데??? ㅋㅋㅋ 저자가 여자네요 ㅋㅋ 남자였음 안보려고 해따 ㅋㅋ

2021-06-29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9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7-07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단발머리 2021-07-18 19:28   좋아요 0 | URL
초딩님 인사가 늦었어요 ㅠㅠ 축하감사드려요!
 




 













1. 태어난 게 범죄 / Born a crime

 

이번이 두 번째다. 노아 트레버를 좋아한다. 저자의 경험 자체가 특별하다 보니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노아 트레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이 발견될 경우 조사 끝에 온 가족이 범법자가 될 소지가 다분했기에 다정한 가족은 항상 불안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혼혈 가족의 모습이다.

 


노아의 어머니는 친척 아주머니 집에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닭 한 마리로 열 네명이 나눠 먹어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는 돼지의 먹이를, 개의 먹이를 훔쳐 먹었다. 그랬는데도, 그랬음에도. 그녀에게는 영어가 있었다.

 


There she had a white pastor who taught her English. She didn’t have food or shoes or even a pair of underwear, but she had English. She could read and write. (65)

 


그녀에게 영어는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도구이자 계급 상승을 위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영어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사다리가 되어 주었으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금빛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다민족, 다언어 사회에서 지배자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언어, 그 영어라는 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가 가지는 위상은 어마어마하고, 영어에 쏟아붓는 에너지, , 시간, 열정, 관심은 가히 전 국가적이라 할 만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어는 먼나라 이웃나라 딴 나라에 속해 있다. 무엇을 위해서 혹은 무엇 때문인지는 더 이상 묻지 말자. 더 이상 물을 힘도 없으니, 그냥 이 문장을 기억하기로 하자.

She didn’t have food or shoes or even a pair of underwear, but she had English.




 













2. 오만과 편견 / Pride and prejudice

 


중간중간 재미있는 대목만 읽었던 걸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걸로 이번이 세 번째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제일 큰 관심사였다면, 두 번째 읽을 때는 다아시의 이모 캐서린 부인과 엘리자베스의 한판 대결이 아주 볼만했다. 이번에는 콜린 씨다. 베넷 가문의 넷째 딸 리디아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위컴과 함께 야반도주하고, 리디아가 상속받을 재산이 형편없기에 위컴에게 버림받고 불명예만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될까, 온 가족이 염려하고 있던 찰나. 베넷 가문의 친척이며, 법적으로는 베넷 가문의 상속자인 콜린 씨가 베넷 씨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베넷 씨, 저희 콜린스 부부는 베넷 씨 이하 모든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베넷 씨가 지금 빠져 계신 절망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할 것으로 믿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절망의 원인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베넷 씨와 베넷 부인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따님이 본디 악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가급적 마음을 달래시고 못난 자식일랑 영원히 마음에서 내치시어 자기가 저지른 가증스러운 죄악의 열매를 스스로 거두게 하십시오. (389)  

 


소설 속에서는 콜린 씨를 거구로 그리지만 느낌으로는 영화 속 자그마한 콜린의 모습이 그의 말과 행동에 훨씬 잘 어울린다.



 


편지에서는 자신을 한껏 낮춘 듯하지만 구절구절 그의 허영과 위선, 그리고 오만함이 묻어난다. 무식함과 재채기, 그리고 사랑을 인생 사 감추기 어려운 3종 세트라 하지만, 원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생각이라는 건 감출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거나, 칭찬하는 척하면서 은근 디스하는 말들은, 말하는 이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투명하게 비춰준다.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만, 결국은 마음이다. 마음은 잘 감춰지지 않는다. 심보를 바르게 하자.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3.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선생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9년 전에도, 2021년의 지금도 선생님의 문체는 통통 튀고 발랄하다. ‘다이어트에도 영성이 필요하다?!’는 글에서 만난 문단이다.

 


동양의학의 양생술은 단연 최강급이다. 양생은 정, , 신의 순환이 핵심인데, 그러기 위해선 덜 먹고 잘 자야 한다. 특히 술과 고기, 기름진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양생술의 대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수양이나 양생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다이어트다. 특히 중요한 건 저녁에 소식하는 것이다. (89)  

 


인생의 의미, 공부의 즐거움, 고전이라는 바다, 함께 공부하는 벗에 대한 찬사를 넘어 이제 의역학과의 접합이 시작된다. , , 더 많이, 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바꾸고 내용과 태도를 바꾸고 감각과 활동, 그리고 관계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수행으로서의 다이어트를 추천한다. 소비와 유흥이 아닌 저녁이라. 그것이 진정한 휴식으로 가는 길이란 말이냐. 푸라닭 블랙알리오와의 정면승부는 영원히 미뤄져야 한단 말이냐.

 
















4. 통증 연대기

 


성별, 인종, 계층은 통증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 카 박사의 환자 중상당수는 박사 말고는 진통제를 처방해줄 의사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실제로도 그랬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가 소수 민족, 여성, 기초생활 수급자, 산재연금 수급자, 정신질환자, 약물 남용 경험이 있는 환자다. (197)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성별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는 주장은 종종 제기된 바 있다.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마약성 진통제, 수술, 완벽한 검사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지만, 여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같은 진단 결과가 나온 환자에 대해 여성은 항우울제를 처방 받을 확률이 남성보다 82퍼센트 높았으며 항불안제를 처방받을 확률은 37퍼센트 높았다.) 여성은 통증 치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거니와, 적극적일 경우 히스테리로 치부되기 쉽다. (198)

 


성별, 인종, 계층에 따라 다른 통증 치료법이 적용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충격적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통증의 치료에 쓰일 진통제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통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개인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내가 만난 의사가 어떠한가에 따라 통증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질 수도,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다. 성별, 인종, 계급의 편견 속에 통증은, 여전히 그만 아는 그 무엇이 되어 그를 구속한다. 통증에서의 해방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현재시간 오후 11 29. 이 날이 다 가기 전에 조금 더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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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19 23: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영어 나와서 놀랬어요ㅋㅋㅋㅋㅋ아우..평생 공부중ㅋㅋ질병연구도 주로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서 여성들의 경우 오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구요. 원서좀 손닿는 곳에 꺼내놔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6-20 12:22   좋아요 3 | URL
전 의사 대다수가 남자라서 그런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일 극단적인 경우로는….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의 경우가 있겠지요.
제 원서들은 주로 김치냉장고 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6-20 0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 번역본도 읽지 않은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반성은 조금만 하고 가을쯤 도전해볼까요. 단발님이 추천해주신 책은 모조리 다 읽고 싶거든요!!

단발머리 2021-06-20 12:24   좋아요 3 | URL
오만과 편견 안 읽은 축복을 맘껏 누리시고요 ㅎㅎㅎ 저 바빠요. 어제 수연님이 말씀하신 책과 책들 빌리러 도서관 가야하거든요.

레삭매냐 2021-06-20 0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트레버 노아의 책 <태어난 게 범죄>
의 영어 제목이 <Born a Crime>라니
너무 멋지네요.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다가
못 다 읽고 반납했네요. 재밌었는데...

다시 빌려서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영어가 재산이지요.

단발머리 2021-06-20 12:27   좋아요 4 | URL
제목 진짜 잘 뽑았죠? 보통 이런 에세이가 작가의 매력에 업혀가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작가는 워낙 이력 자체가 특별하니까요. 저는 아주 잼나게 읽었어요.
영어가 재산이지요, 흑. 부자가 되고 싶어요ㅠㅠㅠ

그렇게혜윰 2021-06-20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미숙 작가에게 통통튄다는 말이 딱이네요!

단발머리 2021-06-20 12:28   좋아요 2 | URL
통통 & 발랄 & 유쾌가 고미숙 선생님 3종 세트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

han22598 2021-06-20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의 고통은 정신적인 이유로 많이 취급했다는 여러가지 근거들중의 하나인 히스테리 (hysteria) 라는 진단자체도 과거에 있었던 걸루 기억해요. 히스테리는 자궁적출술을 한 여성들에게 극단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라는 식으로 결부 시켰던 과거와 근래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을 지칭한 사회적 거부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ㅠㅠ

단발머리 2021-06-20 17:0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히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읽은 것 같아요.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박에 대해서는 못 본체 하고 그 모든 원인을 자궁 때문이라고 돌리는 과학 아닌 과학이 횡횡하던 시대가 있었죠. 인용한 글에서도 여성의 고통에 대한 진단 중 항우울제 비중이 높다는게, 그런 믿음이 현재까지 이어진 거라 생각되요. 휴우 ㅠㅠㅠ 갈 길이 멉니다.

다락방 2021-06-2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여러번 읽은 책이 별로 없거든요. 물론 있기는 하지만요. 근데 단발머리님이 오만과 편견 세 번 읽으셨고 읽을 때마다 다른걸 발견하셨다니까 아, 나도 다시 읽어볼까 싶어져요. 사실 제 경우에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여러번 읽었고 읽을 때마다 다른 구절에서 좋아서 자지러지지만 말입니다. 크-

어떤 책이든 여러번 읽는 책이 있다는 건 좋은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그건 분명 삶의 작은 기쁨일 거예요.
훗.

단발머리 2021-06-26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여러 번 읽는 책을 여러 권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 아닌가 싶어요. 아직도 읽어야할 책,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지만 자꾸 손이 가는 책이 있기는 해요. 오만과 편견도 제게 그런 책 중의 하나구요^^ 다락방님에게는 새벽 세시와 바람이 부나요,가 있다면 제게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하나 더 장만해야겠어요^^)

책 읽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알짜배기 기쁨이지요!!!
 




 


























나의 의문과 웃음이 고미숙 선생님에게 닿아 있어서 기쁘다.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이렇게 네 권을 읽었고 이 책이 다섯 번째다. 많이 읽지 않았는데도 굳이 밝혀 두는 건, 이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와 수준이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선생님의 연암 박지원 하트뿅뿅 사랑에 감복해 열하일기 3종 세트를 도전해 보았으나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책이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서는존재이고, ‘사이의 존재이다(27). 인간은 생각을 생각하는 존재이고(31),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리는 힘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이다. 앎은 세계를 향해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이며, 또한 내부를 향해 깊이 침잠하는 것이기에,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다름 아닌 무지다(40). 생명을 보존하려면 자연의 이치와 천성을 알아야 하며, 그 속도와 리듬에 대한 앎이 바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실천은 간단하다. “간절히 궁금해하는 것” (운성스님, 명상-유튜브) 무엇에 대해? 세계의 근원에 대해서, 존재의 심연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을 텅 비운 채, 우주적 가능성으로!” 모든 배움의 기초가 질문인 것도 그 때문이다. (41)

 


궁금해할 것이 두 가지다. 세계의 근원과 존재의 심연. 내가 궁금한 두 가지와 맞닿아있다. 빅뱅과 인간의 의식.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의 개념을 제시한 카를로 로벨리는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그저 과학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과학을 통해 발전된 세계관이 분명하고 정확한 의미에서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을 가질 수 있으며, 각각의 해석들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진실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81)  

 


인류는 우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정도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해석이 가능하다. 미시적 차원의 세계에서는 불연속성이 발견되고, 모든 움직임에 우연한 요소인 본질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결국 어떤 입자의 움직임은 입자의 존재에 대한 확률의 변화가 된다. 그리고 그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왜 움직이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현재의 우리는 알 수 없다.

 


빅뱅이 일어난 이후의 세계에 대해, 우주에 대해, 지구에 대해 과학자들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빅뱅 이전에는, 빅뱅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무한에 가까운 고밀도에, 크기도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시작했다는 데 동의한다. ‘특이점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서는 물리학 법칙들이 무너진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과학자들도 대폭발이 일어나던 그 첫 순간, 즉 처음 10초 동안 일어난 일을 해석하지 못한다(10초는 1초의 100만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분의 1초다.) (『신의 언어』, 71)

 


인간은 육체 속에 산다. 진화론에서는 진화의 과정에 영혼이 출현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 어느 곳에서도 마음이 발견되지 않았듯, 영혼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영혼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영혼은 없는 걸까. 인간, 알고리즘으로서의 유기체인 인간은 그렇게 살고 그렇게 분해되어 없어지는 걸까. 내 몸을 이뤘던 원자는 영원히 존재할 테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우주에 다시 없는 독특한 결합으로서의 , 나의 죽음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의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면, 무사히 벗어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기독교적 세계관, 내세관 속에서 자랐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리고 구원과 파멸이 있다고 배웠다. 그렇게 믿는다. 다른 답을 찾는 이유는 내가 가진 해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다. 다른 해답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 세계에서는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했다. 유전과 환경 중, 유전의 대부분과 환경의 상당 부분이 부모에 기인했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존재인 부모가 계급을 결정했고 삶을 결정했고 인생을 결정했다. 우리는 아무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부모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영상으로 보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비극이 언제쯤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뉴욕의 사망자 집단 매장과 인도의 갠지스강 시신 유기 등은 이 세계의 종말 같은 모습이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 사는지가 중요해진 걸까. 어제도, 오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죽는다. 전염병, , 성인병, 각종 질병으로 죽는다. 사건, 사고 때문에 죽는다. 노화로 인해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부자들만 불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죽음은 쉽지 않다. 죽음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다. 부자들만 불멸에 가까운 제2의 삶을 살아갈 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뿐이다.

 

 


어제는 도서관에 갔다. 희망 도서로 신청한 책을 가져가라 하기에 받으러 갔는데, 멀리 이 책의 표지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 그거 제 책 아닌데요, 라고 말할 뻔했다. 오른쪽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왼쪽, 내가 신청한 책이 맞았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고 쉽게 웃는 사람이다. 요 며칠 웃을 일이 없었는데, 책을 살짝 넘겨보다가 마스크 너머로 푸핫!’ 하고 소리 내 웃어버렸다. 뒹굴기와 달리기. 이 책의 부제는 <생물과 인간,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로서 인간 행동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되, 그 연구의 시작이 단세포 미생물, 박테리아의 조상들이다. 많은 박테리아는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고 매일 살아남기 위해 임의적인 움직임을 지속한다고 한다. 유익한 물질을 만났을 때는 달리기 운동을 통해 가까이 간다. 해로운 물질을 만났을 때는 뒹굴기 운동을 통해 도망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박테리아가, 생존을 위해,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뒹굴기 운동과 달리기 운동을 한다는 건데,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 웃겼다. 뒹굴기와 달리기라니. 하하하. 뒹굴기와 달리기라니. 유익한 사람에게는 달려가고 해로운 사람에게서는 도망쳐라. 뒹굴어서 도망쳐라. 도서관 2층 계단 앞에 서서 한 번 더 웃었다.





 




뒹굴기와 달리기를 너머, 유성 생식과 우리의 친구 척추동물을 지나, 행동적 유연성의 진화와 수다 떨기의 힘, 뇌에서의 고차 인식과 기억 그리고 마음과 감정에 대해 읽어보겠다. 그 어디에서도 영혼을 찾을 수 없다 해도 괜찮다. 내게는 뒹굴기와 달리기가 있으니. 뒹굴기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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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15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미숙샘 좋아요! 전 열하일기 읽고 너무 좋아서 열하일기 완역본을 읽었어요~ 그 부분에선 저의 은인이세요~ 이 책도 흥미 돋네요~ 뒹굴기와 구르기. 넘나 귀여운 것!ㅎㅎㄹㅎㅎ

단발머리 2021-06-16 10:04   좋아요 3 | URL
고미숙 팬미팅 가는 건가요? ㅋㅋㅋㅋㅋ 열하일기 완역본 읽으셨다니 너무 멋지세요! 오래오래 뿜뿜하셔도 될듯 합니다^^

2021-06-16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6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6-16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니 박테리아도 나름 귀엽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1-06-16 10:27   좋아요 3 | URL
네네~ 뒹굴기랑 달리기 넘 귀엽지요. 뒹굴고 달리고 달리고 뒹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과 분노 저 책장에 이미 꽂아둔 책이에요. 안그래도 ‘저건 언제 읽지?‘ 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까 곧 만나야겠구나 싶어요. 물론, 단발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제가 똭- 마주친 건 어떤 뜻이 있는건 아닐까..

하늘의 뜻...

단발머리 2021-06-26 10:52   좋아요 0 | URL
완전 하늘의 뜻이지요 ㅎㅎ 저 그제 도서관에서 <운명과 분노> 봤거든요. 또 잠시, 다락방님 생각😘

Conan 2021-06-2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 선생은 저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열하일기, 임꺽정, 호모쿵푸스를 읽었고 동의보감이랑 몇권 사놓은 책은 아직 못읽고 있습니다. 책이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7-01 20:46   좋아요 1 | URL
네,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대부분 재미있지요. 전 열하일기를 읽는게 목표입니다. 열하일기는 좀 어렵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