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을 읽고 있다. 많이 읽었고, 조금 남았다. 열심히 읽고 계신 분들, 뽜야!!

지난번에 다락방님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고 다락방님이 대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그 대화가 자꾸 생각났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첫 어절은 삶이. 두번째는 엉망이. 세번째는 되어갈. 네번째는 때.

삶은 종종 엉망이 되어간다. 엉망의 기준은 다 가지각색이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모든 것을 가진 듯 해도 자신의 삶이 엉망이라 느낄 수 있고. 특별하지 않은 삶, 부족한 것이 많은 삶 속에서도 '이정도면 괜찮다'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삶의 모형이 안분지족과 안빈낙도는 아니지만, 100%의 충족과 만족이 불가능한 욕망을 마냥 날뛰게 할 수는 없기에. 삶 속에는 부족함으로 인한 아쉬움, 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지난주 토요일에 다리미 아내로 변신했을 때, 정희진쌤의 매거진 <공부>의 7월호 <"내가 말했던 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다" - 푸코의 '담론'>을 들었다. 말의 물질성에 대한 부분이 좋았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 번 더 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이미 2번 들었음), 그 에피소드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이 성경 구절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


여기에서 '말씀'이란 발화로서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조 이전부터 함께했던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이 되어 인간에게로 찾아오셨다.


기독교는, 그리고 그 뿌리가 되는 유대교는 특히 말이 중요한 종교이다. 신심이 깊으신 우리 엄마는 부정적인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엄마의 근거 역시 성경 말씀이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장 28절)


나도 모르게 툭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을 때, 엄마는 득달같이 달려와 혼을 내시면서 내게 '취소!'를 요구하신다. 동의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취소!'를 외쳤던 나. 정작 엄마가 되자 아이들이 부정적인 말을 할 때, 엄마처럼 '취소'를 외치고 있더라는. 이를테면, 시험을 잘 못 보고 왔을 때. 몇 개 더 틀린 정도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못 보고 왔을 때, 아이들은 쉽게 '망했어."라고 말한다. '망했어'는 우리집에서 용납되는 단어가 아니다. 취소! 망했어! 그래도 그런 말하면 안 돼! 망했다고, 진짜로! 그래도 안 돼! 망한게 어딨어, 다음에 또 잘 보면 되지. 다음에 잘봐도 안돼. 아무튼 취소! 취소해! 취소!를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우주로 뻗어나간 그 말이 진짜 취소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끝까지 우리 엄마처럼 행동한다. 나는 '망했어'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게 하는 엄마다.

그런데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데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망한 것처럼 느껴질 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마음.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해결책은 너무나 멀어보이고. 문제의 해결이, 상황 타개가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그런 순간.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이 문장이 좋았던것 같다. 가끔, 우리의 삶은 엉망이 되어 간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 이런 고통, 난관, 역경이 순간이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것. 인생은 곧 고통의 연속.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 그럴거라는.

송이버섯은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일본 중부에서 짝을 이루며 서식하는데, 둘 다 심각한 산림 벌채가 행해진 곳에서만 자란다. (102쪽)


심각한 산림 벌채 이후의 산. 민둥산. 허전하고 볼썽사나운. 엉망진창인 모습. 황무지처럼 버려진. 버려진 모습의 산. 그런 산에서 송이버섯이 자란다.

사피엔스가 지나는 골목골목마다 대형 포유류등은 멸종했다. 먹을거리 빼놓고는 모두 쓸어버리는 인간의 무자비함. 경작할 땅을 얻기 위해 산에 일부러 불을 내는 인간들. 숲 속 깊숙히,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인간은 침략과도 같은 전진을 계속 이어가고, 인간의 손길,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은 어김없이 손상당하고 훼손된다. 하지만.

교란을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인문학자는 교란을 손상과 관련짓는다. 그러나 교란은 생태학자가 사용하는 개념으로,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고 항상 인간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일으키는 교란은 생태 관계를 유발하는 독특한 능력이 아니다. 게다가 교란은 하나의 시작으로, 항상 도중에 일어난다. 즉, 교란이라는 용어에는 교란 이전에는 조화로운 상태였다는 전제가 없다. 교란은 다른 교란을 뒤따른다. 따라서 모든 풍경은 교란되어 있고, 교란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 용어의 범위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란에 대해 질문하면서 풍경의 역학을 탐구하고 논의를 계속할 수 있다. 교란이 심각한지 아닌지는 뒤따라 일어나는 배치들의 재구성을 통해 해결될 문제다. (284쪽)


교란과 손상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인문학자 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교란은 다른 교란을 뒤따른다. 즉, 이전의 상태 역시 안정적이고 완전한 상태라 말할 수 없다. 불확정적인 지금 여기의 응축이 바로 지금의 우리인 것처럼, 비인간도 자연도 그러하다. 교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국 엄마의 말이 옳다는 뜻일까. 망했어도 망한것은 아니며, 망했어도 다 망한 것은 아니라는. 망했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망했다고 해서 다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망은 망이 아니니 망이라 할 필요조차 없다는.



뭐야. 이 페이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삘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주의사항: 망은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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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30 1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가 오늘 이 책을 밤을 새서라도 완독할 것임을 밝히는 바이며,
아 좋습니다. 저는 이 책이 좋은 여러가지 이뉴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교란이에요. 저도 교란과 손상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은 그게 그게 아니라니까? 그게 꼭 그런게 아닐 수 있어, 라고 말해주어서 말이죠. 저도 밤을 새서 다 읽고(과연..) 글을 하나 써보도록 할게요.
단발머리 님,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 2024-10-30 19:09   좋아요 0 | URL
밤을 새서라도~~ 에서 제가 엑스를 ㅋㅋㅋㅋ 누릅니다ㅋㅋㅋㅋㅋㅋㅋ왜냐하면 저도 아직 좀 남았는데 저는 뒷심이 부족한 사람이라 아무래도 11월로 넘어갈 듯 하고요.

사실 자본주의의 변형 내지는 개발정책의 모순 같은 것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생각이 다듬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일단 프레첼(갈릭버터맛) 먹으면서 정진해 보겠습니다. 뽜야!!

독서괭 2024-10-30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희 애들도 요즘 망했다라는 말을 많이 해서, 저는 ˝인생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어~˝ 합니다. 단발님은 취소를 외치시는군요. 귀엽.. ㅎㅎㅎ

단발머리 2024-10-30 20:29   좋아요 2 | URL
인생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죠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옳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엄마에게 ‘취소!‘를 배워서요. 우리 애들은 저보다 ‘취소!‘가 늦습니다. 얼마나 안 할려고 하는지요. 전 진짜 빨리 한단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했어! 취소해! 취소! 거의 자동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4-10-30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페이퍼 읽고 나니 저도 빨리 읽고 싶어집니다.
전 요즘 ‘고래가 가는 곳‘ 읽고 있는데 ‘세계 끝의 버섯‘의 논리와 비슷한 개념들이 나와서 일단은 재밌게 읽고 있지만 고래들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나니 마냥 또 재밌지만은 않은 이중적인... 무거운 마음이거든요.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저도 다듬어지지 않아 반납일이 다가오는데 어쩔까 고민이 됩니다.
최대한 읽고 이 책도 얼른 도전해 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11-01 11:41   좋아요 0 | URL
고래가 가는 곳, 은하수님도 정희진쌤 매거진 듣고 읽으시는 걸까요? 저도 대출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 제가 찜!은 좀 빠른 편이거든요. 시작 못 하고 반납했습니다 ㅠㅠ
이 버섯책이랑 연결된다니 급 아쉬워지는 마음... 다시 대출해야겠어요.
은하수님의 버섯 리뷰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의 최대 고민은 역시나 반납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4-11-01 13:48   좋아요 1 | URL
어제 도서관 검색해보고
다른 도서관에 책이 가만히 다들 있길래 반납하고 다시 빌려왔어요. 예약자도 없어요 ㅋ~~~
역시 저도 정희진 쌤 듣고
사지않고 빌렸어요.
원체 비싸니...
근데 이 책이 생각보다 전 재밌더라구요. 고래에 대해 원없이 알게 됐는데 이걸 리뷰로 쓰려니 또 쉽지 않네요 .. ^^

단발머리 2024-11-02 18:16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도서관 홈피 들어가 봐야겠어요. 제가 빌려왔을 때 보니 완전 새책이더라구요. 아무도 아직 안 읽은 듯.
근데 저도 그냥 돌려보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ㅋㅋㅋㅋㅋㅋ
은하수님이 재미있다고 하시니 저도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고래 이야기 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책을 못 읽었다. 아침-빨래-설거지-점심-빨래-청소-저녁-설거지-다림질. 점심 시켜 먹었는데도 그랬다. 나처럼 살림에 손 안 대는 사람도 이럴진대, 야무진 살림꾼들은 다들 어떻게 사시는건지. 아니다. 그 분들은 나랑 다르지. 그 분들은 손이 빠르지. 빠르다, 그 분들은. 나는 느리고. 나는 손이 느린 사람이다.

소설을 읽을 때의 감동을 기쁨이나 즐거움만으로 한정짓는 건 불가능하다. 슬픔도 걱정도, 염려도 미움도 모두 소설이 주는 감정일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게 될 기쁨이나 먹먹함이 10이라 했을 때, 나는 18페이지에서 그런 감정 총량의 4.3을 느껴버렸다. 먹먹하고 암담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올리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시는 감정의 격동이 일어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에게 자신을 대입하는 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다.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키기도 하고, 주인공이 아닌 사람에게 스스로를 대입시킬 수도 있다. 스트라우트의 문장을 따라가면서 나는 올리브가 될 수도, 루시가 될 수도 있다. 어제 읽었던 올리브의 이야기에서, 나는 R이 되었다. 쿵, 가슴이 내려 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왜 R이 되었을까. 나는 왜,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닌 상처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었을까. 나는 왜 유령이 아닌, 유령과 같이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왜 S가 아닌 R이 되었을까.

올리브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만큼 내 마음의 향방이 궁금해지는 순간. 나는 왜, 왜 R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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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10-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은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선택을 할 성향이 아니라서 그런거 아닐까요? 😄

단발머리 2024-10-28 06:11   좋아요 1 | URL
아~~ 그러면 좋겠어요.
근데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상처받은 거는 잘 기억하잖아요. 자기가 상처 준 거는 잘 기억 못하고요.
저 책의 그 부분에서... 어쩜 저는 상처받은 지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그게 삶을 부인하는 거는 안 됐으면 하는데 말이지요.

최대한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제 감상을 적고 싶었거든요. 설렁설렁 적어놓은 저의 감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망고님이실거라 생각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권력과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지난주부터였다. 권력과 공간의 관계. 권력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등에 대해 혼자 생각하게 됐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크기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차지한 공간, 내가 점유한 공간은 교장쌤보다 30% 더 넓고, 교감쌤의 6배, 교무부장쌤의 8배 정도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정도의 권력을 소유한 건 아니니 말이다. 권력이 공간의 넓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뭘까.

난데없이 파친코의 배우 김민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주인공 선자를 설명하던 중이었는데, 세련된 발음으로, 자연스러운 어조로 김민하가 말했다. "...she is fragile and also resilient" 귀에 꽂힌 건 fragile. 부서지기 쉬운, 손상되기 쉬운, 취약한.

내내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fragile이라는 단어가 꽂히니 이 단어를 내가 처한 상황에 집어 넣게 되었고, 이걸 공간의 문제로 치환시키자 하니 '방해받지 않는, 독립된'에 닿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은 '공유하지 않음'이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교장쌤의 공간을 잠시 공유하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공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공유한다는 건 이전 거주자(?) 입장에서는 침범이기에 결국 '공유'는 '사적인 공간'의 침해를 뜻한다. 권력이 없는 자는, 권리가 없는 자는 자신의 공간을 '공유'해야만 한다.

지속적으로 공유를 권고받았던 나는, 드디어 공유의 최극단을 지시받는다. 이동, 이주, 이사. 그렇게 나는, 우리는, 나와 우리의 그 무엇들은 퇴출을 명받아 이사를 감행한다. 그 와중에 임시조처의 임시변통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힘없는 한 명의 개인인 나는 이사와 이사, 이사 다음 이사, 연속이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제 생각은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사에 고정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만큼의 책이 필요한가. 나는 얼마만큼의 연필이 필요한가. 나는 얼마만큼의 노트가 필요한가. 꼭 필요한 건 무엇인가. 지금 바로 필요하지 않아서 놓고 갈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물건을 꼭 가지고 가야하는가. 두고 가는 물건은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노마드의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생필품'의 문제. 어디까지가 생필품인가.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요는 이번주 내내 이사와 청소와 정리와 정돈으로 내내 피곤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쉬는 시간 종은 빠짐없이 울리고, 나는 버섯책을, 섹스책을, 스트라우트책을 차분히 읽어나갔다.











10월의 어떤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이 나면 도전하고 싶은 책은 이 책이다. 푸코의 『권력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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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력은 역시 공간이죠! (푸코 나와서 좋아하는 중)

단발머리 2024-10-27 19:37   좋아요 1 | URL
그럴줄 알았어요ㅋㅋㅋㅋ 저 책이 얇은가봐요. 상세정보는 안 봤는데 가격이 착하네요 ㅎㅎ

- 2024-10-26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7)푸코: 하지만 저는 ‘공간‘이 어떻게 역사‘의 일부를 이 루고 있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 하나의 사회가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고 거기에 힘의 관계를 써넣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34)와타나베 : 결국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것은 유일한 시간이라는 고정 관념(obsession)을 동질적이어야 할 공간에 써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이죠 푸코 : 그렇습니다. 따라서 제 역사분석의 대상은 말하자면 유럽의 공간 내부에서의 제국주의=식민지주의입니다. 어떻게 해서 어떤 개인 혹은 개인의 범주가 그들의 지배를 확립하고, 어떻게 해서 근대 서양사회를 기능하게끔 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철학의 무대

단발머리 2024-10-27 19:41   좋아요 1 | URL
와타나베씨는 또 누구에요? ㅋㅋㅋㅋㅋㅋㅋ 푸코랑 대담할 정도면 저 분의 공력도 장난 아니겠죠?
유럽 공간 내부에서의 제국주의=식민주의 ......... 이 부분이 관심이 생기네요. <친밀한 적>에서도 저 부분 나오죠. 한 두세쪽 정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얼마나 이분법적인 사람이던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던란다.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가져보는 삶의 가능성>. 아~~ 농촌의 삶, 자연의 삶. 버리는 삶, 더 자유로워지는 삶. 그랬다. 나는 그렇게 버섯을 따라갔다. 따라가며 읽었다. 송이버섯 모르고 새송이버섯만 아는 사람의 버섯책 읽기란 그런 것이다.

송이버섯은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일본 중부에서 짝을 이루며 서식하는데, 둘 다 심각한 산림 벌채가 행해진 곳에서만 자란다. 정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송이버섯은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과 관련이 있다. 빙하, 화산, 모래언덕-또는 인간의 행위 -때문에 다른 나무와 심지어는 유기질 토양까지 없어져버린 장소 말이다. (102쪽)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잔혹한 자연 파괴의 현장에서, 바로 거기에서 송이버섯이 자란다. 소나무와 짝을 이뤄 자란다.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에서 자란다. 아무것도 없이 황폐화된 그 곳에서 자란다. 인간의 예상을 뒤엎는 버섯의 등장, 그리고 버섯의 성장. 인간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이 버섯이 어디서 오는지를, 어떻게 자라는지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나는 이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건 핵폭발 때문일거라 생각했고, 핵 오염물, 핵 폐기물과 함께 살아간 후손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사나흘을 불편하게 보내기도 하였으나. 아뿔싸! 그 불쌍한 인류는 후손이 아닌 바로 우리였으니 일본의 전격적인 방사능 오염수 방류. 해류는 한반도 쪽으로 3-4년 이내에 도착 예정.

플라스틱이 배에 가득차서 죽게 된 흰긴수염고래의 사진을 보면 알게 된다. 고래만이 아니라 우리도 곧 죽게 되리라는 걸. 멈추지 않는 진보의 꿈. 멈추지 않는 공장. 멈추지 않는 돈벌이. 멈추지 않는 노동. 인간이 더 이상 이 지구에 살 수 없으리란 걸 진작부터 알고 있던 돈 많고 머리 좋은 사람들은 우주로의 이사를 서두르고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실용화되지 않을테지. 뇌를 다운로드하는 비용은 엄청날 것야. 로봇팔, 로봇다리도 마찬가지고. 인공피부는 또 얼마나 비쌀텐가.

나는야...

청산에 살어리랏다

나의 청산은 지구

지구 끝, 세계 끝에는 버섯

내 머리는 버섯모양

나는야 버섯돌이

버섯돌이, 청산에 살어리랏다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이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배치는 열린 모임 gathering이다. - P56

어떻게 모임은 때때로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happenings‘이 되는가? 만약 진보를 뺀 역사가 불확정적이고 다각적이라면, 배치가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줄수 있는가? - P57

나로서는 다른 존재-인간이든 비인간이든-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서 직면할 수 있는 도전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가 각자 홀로 생존한다는 식의, 사실과 정반대되는 환상을 품을 수 있는 건,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 P66

오가와 박사는 많은 아이러니와 웃음으로 노스탤지어를 음미한다. 우리가 송이버섯이 없는 사찰의 숲 옆에서 비를 맞으며 있는 동안 그는 일본의 송이버섯 사랑이 한국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일본의 민족주의자들과 한국인들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다. 한국의 귀족이 일본의 문명을 시작했다는 오가와 박사의 설명은 일본인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발언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문명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 P101

오가와 박사의 이야기는 노스탤지어를 고려하고 있기에 흥미로웠지만, 또 다른 면도 생각하게 했다. 송이버섯은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일본 중부에서 짝을 이루며 서식하는데, 둘 다 심각한 산림 벌채가 행해진 곳에서만 자란다. 정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송이버섯은 가장 많이 교란된 유형의 숲과 관련이 있다. 빙하, 화산, 모래언덕-또는 인간의 행위 때문에 다른 나무와 심지어는 유기질 토양까지 없어져버린 장소 말이다. - P102

자본주의적 농장은 부를 모으기 위해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 있는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이를 ‘구제salvage‘라고 부르는데,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사용되는 많은 원료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석탄과 석유를 생각해보라).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의 전제 조건인 인간 생명을 생산할 수 없다. ‘구제 축적‘은 선두 기업이 상품 생산 조건을 통제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 P120

송이버섯 채집은 도시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있지만, 도시는 아니다. 채집 또한 노동이 아니다. ‘일‘조차도 아니다. 라오계 채집인 사이는 ‘일‘이란 자신의 상사가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송이버섯 채집은 ‘찾는 행위‘다. - P146

백인 채집인은 자신들을 폭력적인 참전용사일 뿐 아니라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강인하고, 지략이 뛰어난 자급자족적인 산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지점 중 하나는 사냥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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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2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다 읽고 버섯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 페이퍼 읽으니 당장 시작하고 싶어지네요.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10-22 21:19   좋아요 1 | URL
천천히 시작하셔도 되는데… 🤭

건수하 2024-10-22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올해 무더위로 송이버섯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는 교란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과한 교란이었을까요?
(아직 시작 못해서 적절한 댓글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단발머리 2024-10-23 11:52   좋아요 0 | URL
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송이버섯을 재배하는군요. 하긴 우리나라에서 넘어갔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할 거 같기는 해요. 과한 교란에 대해서는 저도 좀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아주아주 적절한 댓글입니다. 생각거리를 던져주시는 ㅎㅎ

독서괭 2024-10-23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읽고 있다가 나는야 버섯돌이에서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10-23 12:49   좋아요 0 | URL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아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4-10-23 14: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는데 버섯 전골 먹고싶은 저는 무엇??? ㅎㅎ
송이버섯이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는건 엄청 충격이네요. 그럼 송이버섯이 못자라기를 바래야잖아요. 아 송이 버섯들어간 전골 먹고싶은데....ㅠㅠ

단발머리 2024-10-23 19:09   좋아요 3 | URL
ㅋㅋㅋ 바람돌이님! 저도 버섯전골 엄청 좋아한답니다.
송이버섯이 심하게 교란된 숲에서만 자란다는 거 정말 놀랄 일이죠. 전 이 부분 읽으면서 그랬거든요. 이것 봐. 인간이 지나간 곳은 다 파괴돼. 망했다고! 이렇게요 ㅋㅋㅋㅋㅋ 근데 송이버섯이 거기에서 자란다고 그래요. 완전 망한 거 같은 땅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그 옆에서 송이버섯이 ㅋㅋㅋㅋㅋㅋ 이상 송이맛을 모르는 버섯돌이였습니다^^
 













먼댓글 없어져서 먼댓글 형식으로 씁니다. 제 페이퍼는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입니다. 쟝쟝님의 댓글을 옮겨 놓습니다.

하.................... 오늘 나도 라캉 알튀세르 정신분석 유물론자들 칸 정리하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한 숨 쉬면서 루티 언니 (맨 윗칸에 바나나 위용 당당하게 위치해있음) 째려보고 왔기에. 이 페이퍼에서 찌지뽕을 왕창 누릅니다. 두번 세 번 두 번 ㅅ ㅔ 번 누르다가 눌렀나요? 눌러졌지요?

˝라캉은 이를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이라고 부른다.(112쪽) 그건 또 대체, 무슨 말인가.˝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 (아직 단발님이 읽으신 거기까지 못 읽었어요.) 다 걷어차버린 존재 자체에 대한 존재 스스로의 불안이요. 단발님은 예외입니다. (깊게 숙고된 종교는 거기를 메꾼다는 것이 제가 가진 일종의(?) 이론입니다) 계속 베끼고 베끼고 베끼면서도 대타자를 계속 걷어차야하거든요. 실존주의 냄시 나게 말하자면 계속 기투해야하는 건데. 그 불안... 그 밑바닥에서 고고한 불안... 그게 일종의 특권이라는 말로 저는 이해됩니다. 합니다. 그 뒤에 그 속에 그 안에 본질. 혹은 어떤 무언가가 작용할 거라는 것은 타자들의 환상일 뿐 주체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죠. 내 얼굴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내가 연기하고 있는 가면을. 젠더 관점 쫌 더 섞어보면, 자기가 떨고 있는 그 허세를 똑바로 볼 줄 아는 여성의 도전에 대한 일종의 신경증적 반응일까요? 철학에 도전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거기에 대한 안심까지 시켜주시는 넓디 넓은 루티의 헤아림이 하이힐?

좀 멀리 갔는 데... 카사노바 호텔에서 아니 에르노가 본인의 섹스를 그렇게 묘사하는 장면이 있어요. 기억이 잘 안나는 데 일종의 수행성. 시뮬라시옹? 섹스-쾌락 저도 잘 모르지만. ..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혹은 없다고 그것이 억압되어 있다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지 않고 또 말하지 않는.성기 결합외의 그 입과 눈과 귀들이 행하는 일련의 모든 것.을 섹슈얼리티라고 한다면. 왓이즈섹스. 는. 너무도. ‘지성적‘인 질문이다. 저급하지도 더럽지도 역겹지도 혹은 수치스럽지 않은.

그러나 왓 이즈 섹스 를 존재론적으로 질문하는 여자는 얼마나 부담스러우며 그것의 실재에 닿고자 하는 여자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이 댓글을 읽자마자 『만화로 읽는 3분 철학 3』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진을 가져오려고 이 글을 쓰는 겁니다. 투비처럼 댓글에 사진 첨부 가능하면 댓글로 썼을 듯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캉이 말한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을 쟝님은 '다 걷어차버린 존재 자체에 대한 존재 스스로의 불안'이라고 쓰셨는데, 그 말은 이 그림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됐지만, 항시, 항상, 1년 365일 24시간,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죠.

존재 스스로에 대한 불안을 숙고된 종교가 메꾼다는 쟝님의 문장에 동의합니다. 인간이 삶의 주인으로, 더 구체적으로는 '신 없는' 삶 속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여러 분투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신 '없는' 시대, 신이 없다고 믿는 시대이긴 하죠. 이성애 가부장주의가 오랫동안 그 자리,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이 시대의 주인공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구요.

저는 신심이 깊은 사람도, 종교에 깊이 침잠된 사람도 아니어서 잘은 모르지만요.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신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인다는 그 '상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강신주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이전에 제가 애정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 강신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의 인문학적 잣대, 철학의 잣대로 ‘네가 주인이니 예수가 주인이니?’ 이걸로 몰아가야 하는 거예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113쪽)


저는 강신주의 저 문장을 읽고, 인본주의 사상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의로서의 인본주의,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본주의의 핵심이 아니라는 거요. 핵심은 누가 네 삶에 주인이냐,고 묻는 거죠. 예수가 주인이라고? 예수가 네 삶의 주인이야? 그럼 너는 노예야. (강신주가 이렇게 말했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네가 주인이어야 해.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어서 이 불안과 고뇌에 맞서야해. 감당해야해. 하지만, 그렇게 할 때, 너는 주인이야. 너의 삶의 주인. 너는 어른이야. 네 삶의 최종 결정권자가 너야. 의지하지 않는, 기대지 않는. 혼자의 힘으로 서 있는.

그럴 때.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할 때. 혼자만의 고뇌, 혼자만의 고독, 분투, 버둥거림은 모두 '특권'으로 이해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유롭고 괴로운 주인의 삶, 순종이 요구되지만 불안은 덜할 것이 분명한 노예의 삶. 그 사이의 결투 혹은 혈투가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인간 모두에게 숙제로 주어진다고 보고요.

노예의 삶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구멍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 구멍을 채울 다른 '인간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냥 선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릅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부릅니다. 크게도 부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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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2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찬송 따라불렀습니다.

단발머리 2024-10-22 20:11   좋아요 0 | URL
담에 만나서 손 들고 같이 불러요. 화음 가능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4-10-22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예 주인 저 말을 최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판단이 흐려질때 한번씩 떠올리면 정신차리는데 도움이 되곤했던^^

단발머리 2024-10-22 20:12   좋아요 1 | URL
판단이 흐려질 때 있죠. 뭐가 뭔지 모르는 때 있고요.
저 말을 강신주만 하지는 않았을텐데, 저는 강신주의 워딩이 딱 꽂히더라구요.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2024-10-22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22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4-10-22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ㅋㅋ 예전에 쓴 글 가져올게요.
“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으나, 나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시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로 연예인으로 비트코인으로 로또로 주식으로.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우리는 믿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준거 그대로의 준거자체. 믿기로 약속한 것이 언어이며 언어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니까. 무엇을 믿을래.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그걸 부단히 바꿔가면서 우린 늙어갈 것이고 아프고 병들어갈 것이며 죽을 것이다. 죽음 이후는 내가 논하고 싶은 영역이 아니다. (불가지론) 나는 그래서 늙고 아프고 병드는 것이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해결을 돈(각자도생)이 아닌 돌봄의 윤리…로 찾아야 한다는 쪽에 배팅을 걸어볼 생각이다. 그것은 능력주의와는 별개이며 젠더에 대한 진지한 공부 없이는 하나 마나 한 헛소리라는 것도.”

기독교 잘 몰라요 아예 몰라요.
그런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잖아요.
존재와 믿음의 영역은 괄호를 묶고. 그것은 말씀으로 오는 것이라면… 어떤 말로 지금을 살며 사회를 지어갈건지는…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고 합니다! 누가요? 내가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4-10-22 20:51   좋아요 1 | URL
태초에 말씀이 있었지요. 원전에는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 1-5절)

어떤 말로 살아야할지... 그 문장들에서는 어디선지 모르게 빨간 흔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4-10-22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신을 받아들이는 상태라는 말은 기억할게요🩷 그건 … 사랑에 가깝네요!

단발머리 2024-10-22 20:53   좋아요 1 | URL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비유가 성경에는 많거든요.
왕과 백성.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그 중에 ㅋㅋㅋㅋㅋㅋㅋ남친과 여친이라는 설정도 있습니다.
지혜의 임금 솔로몬이 지은 <아가서>에 자세히 묘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에 가깝지요. 제정신 아닙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