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사실, 하루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해서 그의 작품을 모조리 읽은 것도 아닌데,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 중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가 제일 궁금했다고 하면, 지리적 근접성이 아니라, 심리적 근접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 중에서도 웬지 모르게 하루키와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몇 살 때 작가가 되셨나요? 작가가 되었을 때 놀라셨나요?

무라카미 제가 스물아홉살 때 작가가 되었지요. 물론 놀랐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지더군요. (115쪽)

사실, 이런 류의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부 열심히 안 하는데 전교 1등이라거나, 피부과 안 다니는데도 타고난 피부미인이라거나, 아니면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스물 아홉에 갑자기 쓰기 시작해 전 세계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거나.

하지만, 이런 문장이 있어 다시 하루키가 좋아진다.

무라카미 저는 지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만하지도 않아요. 저는 제 책을 읽는 독자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입니다. 재즈 클럽을 운영하면서 칵테일도 만들고 샌드위치도 만들었지요.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그건 일종의 하늘이 준 재능이랍니다. 그래서 아주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14쪽)

하늘이 준 재능이므로, 자신은 겸손해야 된다는 하루키의 말. 이러한 깨달음 자체가 이미 하늘이 준 재능 아닌가 싶다.

지금도 제 글쓰기의 이상은 챈들러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에 집어넣는 거예요. 그게 제 목표랍니다. (120쪽)

내가 아는 챈들러는 [프렌즈]의 챈들러 뿐이라, 알라딘에서 챈들러를 찾아보았고, 이이는 레이먼드 챈들러인 듯 하다. 훌륭한 작품이 많으나, 읽어본 작품은 아직, 없다.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127쪽)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마음 속 깊은 곳,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게 하는 것,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그런 것이 문학이 아닌가 싶다.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의 타협이 얼마나 절묘한가, 두 부분이 얼마나 조화로운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얼마나 유연하게 뻗어가느냐가 결국은 위대한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준다. 옆집, 줄기차게 짖어대는 미친X소리여도 안 될테고, 5학년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2. 움베르트 에코

성장소설은 대개 어느 정도 감정적이고 성적인 교육도 포함합니다. 당신의 소설 전체에서 성적인 장면이 묘사된 것은 딱 두 군데뿐입니다. 하나는 『장미의 이름』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바우돌리노』에서입니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에코 성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42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류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어마어마하게 똑똑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이런 방식, 이런 톤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는 하다.

요즘 제일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에코 밤에 소설을 읽는 거예요. 가톨릭 배교자로서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낮은 주로 에세이나 어려운 작업을 위한 시간이랍니다. (45쪽) 

예전에 ‘양파’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양파의 효능 및 효과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양파만 먹으면 성인병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양파는 물에 삶거나, 불에 볶아도 영양소 대부분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반가웠던 건, 그 때는 ‘양파가 아주 저렴했다’는 것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도 쉽고, 구하기도 쉬운데 가격까지 싸다. 거의 ‘신의 선물’ 수준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 쉽고,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양파’라니.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서’를 폭풍흡입할 때였다. 최신의 교육이론으로 무장한 갖가지 알록달록 육아서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느라 분주했던 때, 여러 권의 육아서를 간파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결론은 ‘책읽기’다.

물론, 나는 “그래, 책 많이 읽어야돼. 그래야~~“라고 말하는 엄마들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라고 알 뿐입니다. 그 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책을 읽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즐거움’을 배제한 독서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어야하고, 답답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들 또한 읽어야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어야하고, 작심삼일의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아줄 책들 또한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한 책읽기를 포기한다면, 책읽기가 수많은 의무 중의 하나로 변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엄마들이 말하는 ‘독서 교육’에서 가장빨리, 가장 멀리 도망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렇다치고.

육아서 독파의 결과가 ‘책읽기’라는 결론은 꽤나 흥미로웠다. 책읽기는 아이의 정서발달에도 최고의 효과를 내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강력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어휘량을 늘이는 데도 최적의 방법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엄마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일정부분 ‘제 몫’이다. 지금은, 엄마인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곁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에코는 말한다. 요즘은 가장 큰 즐거움은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이다. 에코와 나는 알고 있는 게 다르고(하늘땅 별땅), 가지고 있는 게 다르고(너무 다르고), 사회적 영향력면에서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석학, 5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저명한 에코에게 근자의 가장 큰 즐거움인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은, 한국의 평범한 전업주부인 나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많은 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훈련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밤에 소설’을 읽는 거다.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그렇게 읽는 거다.

근래에 나는 너무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즐거운 밤을 선사해 주신 김중혁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살포시 전한다. 작가님, 땡큐~

 

 

 

 

 

3. 오르한 파묵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글을 쓰십니까?

파묵 남은 생이 짧아지면서 그런 질문을 더 자주 스스로에게 하게 돼요. (중략) 세월이 너무 빨리 바뀌니 오늘날의 책은 100년 후에는 아마 잊힐 겁니다. 극소수만 읽힐 거예요. 200년 후에는 요즘 쓰인 책 중 다섯 권 정도만 살아남겠지요. 내가 그 다섯 권 중에 들어갈 책을 쓰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그 점이 글쓰기의 의미인가? 200년 후에 읽힐지에 대해서 내가 걱정해야 하는가? 삶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 책이 미래에 읽힐 거라는 위안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늘 하면서 계속 글을 써나가지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답니다. 제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 이 삶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97쪽)

말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의 책 『검은 책』은 재미있었지만, 조금 어려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놈의 대출기간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오르한 파묵, 작가의 이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보니,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검은 책』이라.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가. 파묵은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맞다.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 아닐테고, 어쩌면 그렇게 많이 힘든 일도 아닐 것이다. 외로운 글쓰기란, 힘든 글쓰기란 내가 하는 지금의 이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하는 글쓰기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고서 계속되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가 외로운 글쓰기, 힘든 글쓰기 일테다.

4. 레이먼드 카버

카버 ...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도 장소도 없다는 것 등이지요. 밖에 나가 차에 앉아서 무릎 위에 공책을 놓고 글을 쓰려고 애썼죠. 이때는 제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였어요. 이십 대 말이나 삼십 대 초였을 때였죠.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323쪽)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 소설가라는 이름이 내뿜는 광채와는 상관 없이, 글을 쓰고, 지우고, 소설을 완성하고, 아니, 소설을 쓸 수 없어 단편이나 시를 써가면서 삶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소설과 같다. 모든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 없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이를 달래가며 써내려간 소설이 모두 [해리포터]가 될 수 없듯이, 지난한 삶의 결국이 행복이 아닐수도 있고, 내가 가진 하얀색 도화지에 파스텔 분홍만 칠하겠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게 삶이고, 그런게 인생일테다.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카버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 - 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 -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48쪽)

추천사 이야기를 해야겠다. 추천사를 쓸려면 이 정도는 써주세요. 추천사를 쓸려면 요렇게 써주세요.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소설가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 결국 그는 매일 소설을 쓰게 될 텐데, 그러자면 건강과 체력은 필수적이다. ...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7쪽)

그 위대한 이름들을 처음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위대한 작품 역시 처음 보는 이름이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다시 읽기 전에 파리 리뷰 인터뷰 2가 나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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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사지도 않았네요. ㅎㅎ
그나저나 에코의 센스 쩌네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니! 아...나도 이렇게 센스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챈들러가 만들어낸 캐릭터인 '필립 말로'는 진짜진짜 러블리 합니다, 단발머리님. 대박이에요!!

단발머리 2014-03-25 15:59   좋아요 0 | URL
센스 쩌는 에코를 저는,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러블리 '필립 말로'를 곧 좋아할 예정인데요. 그렇다고 치면, 저는 무척이나 바빠질 것 같네요.
문제는 '필립 말로'가 챈들러의 무슨 작품에서 나오는지 몰라서요. 다락방님 방에 가서 찾아볼 예정입니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휘리릭~

다락방 2014-03-25 16:46   좋아요 0 | URL
챈들러의 모든 작품에 필립 말로가 나옵니다, 단발머리님.
현재 국내에 번역된 챈들러 작품은 필립 말로 시리즈에요.
기나긴 이별, 빅슬립, 하이 윈도우, 안녕 내사랑, 호수의 여인, 리틀 시스터
모두 다요.
<안녕, 내사랑>으로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움화화핫
저도 조만간 다시 읽을라고요.

단발머리 2014-03-25 17:50   좋아요 0 | URL
접수 완전 완료되었구요.
권해주시는대로 <안녕, 내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주루룩 읽어가진 못하겠지만, 러블리 '필립 말로'니까. 움하하핫~~ 기대됩니다.
지도 편달 매우 감사합니다^^

icaru 2014-04-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면전에 두고,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진정 멋드러지게 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ㅎ
저도 최근 이 책을 잡았었어요... 쿄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같은 부분에 밑줄 긋기 하셨세여~
ㅋ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인정하는 부분,, 특히 ㅎ

단발머리 2014-04-02 07:20   좋아요 0 | URL
icaru님 덕분에 저 멋드러진 사람 됐어요~ 브이!!
그래서 사람들이 하루키 좋아하나봐요. 그렇게 성공하고 돈 많고ㅋㅋ 그러는 데도, 달리기 하고 수영하고, 열심히 소설 쓰고. 하늘이 준 재능이라 진짜로 인정하는 사람만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요~~

날씨가 너무 좋네요. 화창한 하루 되세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가치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담긴 책은 박웅현의 [여덟개의 단어]이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2권 중반에서 중단해버린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작년에 하고 아직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결심을 했다.

 

 

 

 

 

이 책을 펴서 제일 먼저 읽은 챕터도 당연히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것이었다.

안나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브론스키를 사랑합니다. 그만큼 브론스키가 완벽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안나가 모든 걸 브론스키에게 쏟아부었다는 의미겠죠. 브론스키는 늘 같은 브론스키인데 안나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런 사랑을 브론스키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잉된 생기와 열정을 가진 안나의 사랑은 두 몫의 사랑이거든요. 이것이 세료자와 브론스키에게로 나뉘었다가 브론스키에게만 흘러가요. 그건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입니다. (263쪽)

과잉된 생기와 열정, 두 사람의 몫의 사랑을 가지고 있던 안나의 사랑이 브론스키에게로만 흘러갈 때,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브론스키가 안나를 외면하려 했던 이유가 그녀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집착 때문임은 확실하니까.

이런 제안도 재미있었다.

가끔 강의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데요. 만약 고골이 『안나 카레니나』를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스치바가 주인공입니다. 대표적인 생리학적 인간이죠. 잘 먹기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됩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생리학적 문제로 해소되는 인간형이죠. 고골의 소설에 등장하는 속물적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인물은 카레닌입니다. 오쟁이 진 남편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는 뭔가 굴욕적인 대우를 받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254쪽)

러시아 문학사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두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교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유럽이라는 타자에 대한 대타의식으로서의 러시아(자아)라는 민족의식을 강조합니다. 그에게는 ‘나’와 ‘타자’를 어떻게 구획할 것인지가 『가난한 사람들』 이후 줄곧 이어진 문제의식이었고, 그것이 나중에 러시아 대 유럽이라는 대립으로 확장됩니다. (중략) 하지만 톨스토이는 타자보다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에고이즘과 싸웠다고 생각되는데, 톨스토이의 경우 데뷔작부터가 자전 3부작이죠. 자기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이게 확장되면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일성의 문제가 됩니다. (243-4쪽)

대중의 눈높에 맞춘 강의로 엮어진 책이라 그런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읽고 있다. 러시아가 그렇게나 오랜 기간동안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걸 몰랐던 1인으로서, 책 앞부분에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개관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넘어 푸슈킨과 투르게네프의 작품으로도 손뻗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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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사야겠어요. 헤헷. 재미있겠다. 저는 안나 카레니나가 그래서 좋았거든요. '나 자신'에게 충실한 소설이라서요. 그렇지 못한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안나 카레니나는 그저 불륜녀 일 뿐이지만, 톨스토이는 독자로 하여금 안나가 되게 하고 레빈이 되게 하고 브론스키가 되게 하잖아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에게 충실한, 그런 소설을 쓰는 천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재밌겠다. 사야지. 히히.

단발머리 2014-03-21 20: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가 안나가 되게하고, 브론스키가 되게 하는, 이런 고도의 기술은 정말, 최고죠.
천재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조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요. ㅍㅎㅎ

2014-03-21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1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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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반, 형님반이 되어서 그런가, 부쩍 커버린 아롱이가 일찍이 집을 나선다.

“엄마, 갖다올께요~”

시계를 본다. 8시 3분. 작년 요맘때였으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시간이다. 길을 건너는 아롱이를 바라본다. 저 앞에 걸어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아롱이가 또 뛰어간다. 아롱이는 아롱이의 생활 속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나는 아침 설거지를 미뤄두고, 책을 펼친다. (물론, ‘설거지를 미뤄두고‘와 ’책을 펼친다’ 사이에는 약간의(?) 뉴스 확인과 인터넷 검색 그리고 애니팽 3-4판이 자리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큰 맘 먹고 구매한 후에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3권 [풀베개]이다. 열린책들 판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반 정도 읽었는데, 그래도 이 책이 먼저 읽고 싶었다. 알라딘 어느 분 서재에서 읽었던 이런 구절들 때문이었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15쪽)

 

누구나 아는 이야기, 이렇게도 쉬운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아,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이 세상에 살게 된 지 20년이 되어서야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임을 알았다. 25년이 되어서야 명암이 표리인 것처럼 해가 드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16쪽)

 

서른을 넘어 마흔의 문턱까지 달려온 이 즈음,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이 더한다는 소세키의 말이 담담하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가온다.

책을 펼치고, 책을 만지고, 삽화를 보고, 소세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이런 멋진 구절을 읽게 될 때, 나는 생각한다.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가’. 내 생활이 너무 호화롭지 않은가. 내 삶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은가.

조용한 아침, 혼자 소세키를 읽으며 하는 생각이다.

나는 기차가 분별없이 모든 사람을 화물과 마찬가지로 알고 맹렬히 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객차 안에 갇혀 있는 개인과, 개인의 개성에 털끝만치의 주의조차 주지 않는 이 쇠바퀴를 비교하며, 위험하다, 위험해, 하고 주의를 주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문명은 이 위험이 코를 찌를 정도로 충만해 있다. 앞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기차는 위험한 표본 가운데 하나다. (182-3쪽)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냉수처럼 깔끔한 소세키의 문장이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기차를 보며 말한다. 이것은 위험하다고 말이다.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이다. 소세키가 보았던 기차보다 2배, 3배, 아니 10배는 빨라진 기차를 생각하며 나도 말한다. 위험하다, 위험해.

아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락이다. 나는 이 단락을 읽으면서, 소세키의 작품을 그리고 소세키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그럼 뭐가 쓰여 있는데요?”

“글쎄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호호호호. 그래서 공부하시는 거예요?”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이렇게 펼치고, 펼쳐진 데를 적당히 읽고 있는 겁니다.”

“그래, 재미있나요?”

“그게 재미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읽은들, 끝에서부터 읽은들, 적당한 데를 적당히 읽은들 괜찮은 거 아닌가요? 그리 이상하게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122-3쪽)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책상에, 아니, 식탁에 이렇게 책을 펼친다. 아무데나 편다. 아무데나 펴서 적당히 읽는다. 공부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아무데나 펴서 적당히 읽는다.

이게 내 일이다.

맞다, 나는 호사스럽다. 나는 너무나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너무나 사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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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스피노자는 자신의 윤리학을 욕망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지닌 혁명성이다. 개개인의 삶보다는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대부분의 윤리학자들이 스피노자를 그토록 비난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전체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거나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 이렇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역할이다. (182쪽)

하루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행하고 죽는 것, 그것이 더 커다란 행복이니 말이다. 기쁘면 기쁘다고 표현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하자. 그것이 바로 욕망을 긍정하는, 쉽지만 녹록치 않은 방식이다. (184쪽)

 

 

 

 

 

 

 

길게 뻗은 방파제가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 배를 매어 두는 기둥으로 쓰이는 철탑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온통 검은색 차림의 그녀. 움직이지 않고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 신화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사람. 그녀가 돌아본다. 

그녀의 얼굴은 어니스티나처럼 곱지는 않았다. 어느 시대, 어떤 취향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아름다운 얼굴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슬픔을 머금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서는 슬픔이 숲속의 샘물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거기엔 어떤 꾸밈도, 위선도, 발작도, 가면도 없었다. (19-20쪽)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은 아니다. 난 슬픔을 머금은 얼굴이 아니다. 숲속의 샘물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슬픔이, 내 얼굴에는 없다. 나는 슬픔을 머금은 얼굴이 아니다. 사람마다, 누구나 얼굴 속에 무엇인가를 머금고 있다면, 만약 그래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메롱을 머금은 얼굴이다. 메롱.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배우가 좋을까 생각해본다. 금방 떠오르는 배우가 없다. 우수에 찬, 슬픔을 머금은 얼굴이라. 조민수, 김희애, 그리고 신세경이 떠오른다.

이야기를 따라간다. 제목이 [프랑스 중위의 여자]다. 주인공은 여자일 테고, 그녀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다. 이야기는 ‘프랑스 중위와의 사랑 이야기‘일 수 있고, 아니면, 프랑스 중위와 사귀였던 여자,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전력을 가진 여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여자를 찾아 나선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은, 자신은 언제나 정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고, 그녀가 생각하는 통치의 개념은, 불손한 백성들은 사납게 몰아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34쪽) 

 

나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찾고 있었는데, 위의 문장은 나를 ‘또 다른 그녀’에게로 이끌어준다.

자신은 언제나 정당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녀, 불손한 백성들은 사납게 몰아세워야 한다고 믿는 그녀, 상대방은 항상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 의미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을 말하는 그녀, 외교 성과를 패션으로만 말하는 그녀.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녀의 말과 행동이 ‘그녀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녀가 정말 몰라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그녀. 그녀가 나왔다. 그녀를 저리 밀치고, 다시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찾아본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찰스는 그녀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짓궂은 농담을 당장 알아차릴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농담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깊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깊은 애정은 곧 그에게 와닿았다. (12쪽)

 

또 다른 그녀다. 부족함 없이 자란 부잣집 외동딸, 찰스의 약혼녀, 어니스티나. 어린 나이임에도 바람기 다분한 찰스의 성향을 진작에 간파한 어니스티나는 드디어 찰스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곧 그의 신부가 될 것이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책장을 빠르게 넘긴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가들은 글을 쓸 때 나름대로 설정된 계획을 갖고 있어서, 제1장에서 예견된 미래는 언제나 정확한 경로를 밟아 제13장에 이르러 실현될 것이라고. 그러나 소설가들은 저마다 다른 숱한 이유들 때문에 글을 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모를 위해, 친구들을 위해, 애인들을 위해, 허영심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즐거움 때문에. ... 모두의 진실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소설가에게 공통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 <우리는 실재하는(또는 실재했던) 세계만큼 사실적인, 그러나 그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바꿔 말하면,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나는 찰스만이 아니라 티나와 사라, 심지어 저 밉살스러운 풀트니 부인에게도 각각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신에 대한 좋은 정의가 하나 있다 − <다른 자유들도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자유>. 나는 이 정의에 따라야 한다. (139쪽)

 

이번에는 작가다. 소설가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하나의 이유를 밝히고, 그리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있음을 밝힌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나는 각각의 방문을 열어놓으라고 말한다. 안방의 컴퓨터에서 유튜브로 ‘레고 무비’를 무한반복하는 아롱이 때문이 아니라(아니라?!), 아이들이 아직 어리므로, 문을 열고 닫을 때 손을 다칠 염려가 있어 문을 열어놓으라 한다. 우리집은 문을 열어놓는다.

그래서, 이렇게 느닷없이 소설의 문을 열고, 문장 사이를 뚫고, 정체를 드러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를 만나면 적잖이 당황한다. 근래에 읽었던 소설 중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난다. 한껏 진지하면서도, 완벽하게 유머러스하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문을 열어 젖히는 밀란 쿤데라.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나는 작가들.

찾았다. 드디어 그녀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두 눈으로 덮여 있어서,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액세서리 정도의 구실밖에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지성과 꼿꼿한 정신이 있었다. 또 거기에는 어떤 동정에도 반발하는 조용한 거부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존재였다. (168-9쪽)

 

눈빛에서는 억제된 격정을, 입술에서는 억제된 감각을 드러내는 그녀. 검은 눈에서 나오는 섬광 같은 시선을 찰스에게 쏘아대는 그녀. 프랑스 중위의 여자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지만, 단지 연애소설만은 아니다. 다만, 나는 작가가 말하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볼테르에 대해,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에 대해, 영국의 선거권 확대에 대해, 신생국 미국의 역동적 변화와 미국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복잡한 심경에 대해, 렌틴의 『의학에 관한 실제적 지식』(하노버, 1798)에 대해 잘 몰랐기에, 내가 읽을 수 있는만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잠시 서 있었다. 여자는 닫힌 문이었고, 남자한테는 열쇠가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미소는 사라졌다. 긴 침묵이 그들 사이에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찰스는 진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그는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뛰어내리고 싶다고, 뛰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팔을 뻗기만 하면 그녀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열띤 감정으로 호응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뺨이 더욱 붉어졌다. 마침내 그가 속삭였다.

“다시는 단둘이 만나서는 안 되겠소.” (262쪽)

 

이승우님의 책,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문학의 문장은, 실용문과 달라서 정보의 직접적이고 빠른 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간접적이고 우회하는 방법을 택한다. 할 수 있는 한, 소통을 지연시키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말하는 것이 문학의 언어이다. 호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은유한다. (64쪽)

 

 

맞다. 문학은 소통을 가능한 지연시킨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고 불리던 사라라는 여자가, 아름답고 유복한 약혼녀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찰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짧은 소설은, 이 짧은 이야기는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말을 미룬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에는 이렇게 보여주고 만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아니, 이미 사랑에 빠졌음에도 지금까지 그걸 속여왔던 거다. 이제야, 두 사람은 눈을 맞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켰다. 둘 다 최면술에라도 걸린 듯, 눈은 여전히 서로에게 못 박혀 있었다. 그녀는, 아니 우물처럼 깊고 커다란 눈은 그가 이제껏 보았던 어떤 것보다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순간이 시대를 극복했다. (349쪽)

 

처음부터 불길한 예감에 사라를 멀리하려 했던 찰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욕망에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 한다. 하지만, 다시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당신을 잊지 못할 거요.”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파고드는 듯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 봐둬야 할 게 있다고. 당신의 진실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진실, 당신의 감정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정, 당신의 역사관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역사를 보아 두라고.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나는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해 주어야만 비로소 당신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362쪽)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여러해 까지라도 미뤄둘 수는 있지만 영원히 가두어둘 수는 없는 욕망(482쪽) 때문에 결국 찰스는 사라를 안는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럴 수 있다고, 사라도, 찰스도 적어도 머리속으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다음, 찰스의 사랑을 얻은 후 사라의 행동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판 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찰스편이다. 왜, 왜 떠나려 하나요? 왜, 떠나나요?

 

사라는 답하고, 나는 그녀의 답에 조금은 수긍한다. 이렇게 현대적인 여성이라니. 너무 쿨해서 서늘해질 지경이다.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인용되는 시와 소설의 몇 구절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다. 기품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시, 그가 사랑하는 소설, 그리고 그가 아끼는 작가들 때문에 나도 존 파울즈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내 유일한 힘은 그대에게 있나니.

그대 안에 머무는 것은 기쁨이어라.

− 토머스 하디, 「영원한 그녀」 (371쪽) 

 

오, 나의 사랑이여, 그대를 나 혼자서만 사랑하게 해다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해다오.

환상이 찾아온 것을 아무도 목격하지 않게 해다오.

모든 것을 보면서도, 보이지 않게 해다오.

− 아서 H. 클러프, 제목 없는 시 (1852) (356쪽)

 

다음책은 [오래오래]다.

감은빛님의 <커피의 역사> 이벤트에 응모했었다. 사실, 기준 미달인데 넓은 아량으로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해 주시고, 내가 신청한 책을 보내주셨다. 어제 아침, 일찍 도착한 책을 품에 안고는, 너무 예뻐서 감탄과 탄성에 혼자 원우먼쇼를 하고야 말았다.

“감은빛님, 고맙습니다. 잘 읽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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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3-0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롱을 머금은 얼굴, 아하하하 단발머리님~! 정말 ㅋㅋㅋ

프랑스 중위의 여자, 진짜 재밌게 읽었네요. 존 파울즈의 전작 3권짜리 마구스를 좀 암울했던 시기에 읽고, 은근 19금스러운데가 다분한 참 매력적인 소설이었더래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본다는 것이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답니다.

그의 작품 중 이런 거 몇 편 더 수중안에 주어진다면, 계속계속 틀어박혀 책으로 도피하며 은둔자처럼 살아도 부족할 게 없겠다 싶은 때가 있어요. 그나저나 줄거리와 등장인물 기억 잘 안나요. 재밌게 읽은 거 맞나?

두 작품에서 모두 영국은 낡은 사회였고, 미국은 도피를 떠나는 신세계였는데, 앞의 나라 것이 고급이라면, 뒤의 나라 것은 천박 저급하다. 하는 배경 기저가 깔아놓은 거 같았아요. ㅎ

단발머리 2014-03-06 11:07   좋아요 0 | URL
icaru님, 메롱 머금은 얼굴, 한 번 보실랍니까?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리뷰 쓰면서 처음부터 사악 훑어보는데, 다시 읽고 싶더라구요.
전 존 파울즈꺼는 처음이라 다른 것도 읽어볼려구요. 말씀하신 작품 이름이 [마구스]인가요?
지금 검색해보니, 품절이네요. 도서관을 찾아봐야겠어요~~

저는 영국이든, 미국이든 가리지 않고요. 가보고 싶을 따를입니다. 살고 싶지는 않지만, 가보고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4-03-1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에서 여자가 나오는 장면을 읽을 때 그곳을 지도에서 찾으면서 읽었어요.잉글랜드 지역이 은근히 경치 좋은 곳이 많더라고요.

단발머리 2014-03-13 08:31   좋아요 0 | URL
아하.. 전 그 생각은 못했어요.
그냥, 그 놈의 절벽만 막 상상하면서 읽었거든요. 전 왜 지도를 찾을 생각을 못했을까요.
풍광을 보면서, 바람을 상상했다면, 더 근사한 사라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었을텐데요..... ^^
 

세기별 국내외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시리즈와 김탁환의 혁명 시리즈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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