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은 4권, 에세이는 이 책까지 3권째다. 옴진리교와 지하철 사린 사건를 다룬 『언더 그라운드』를 미리 사 두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친하지 않은 동네 문화센터 미술 선생님과 초상화를 그리기로 만난 첫 번째 자리에서 자기 가슴 작아서 걱정이라고 고민 상담하는 여고생 등장하는 것 빼고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게나 단정한 사람 혹은 단정해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나 집착하는 문제는 역시나 '성'인가. 혹은 ‘성‘ 뿐인가.

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진구 구장에서 다카하시가 던진 제1구를 힐턴이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쳤을 때, 하루키에게 찾아온 깨달음.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몰라. 그는 소설을 썼고, <군조> 신인상을 받았다. 잘나가던 재즈 카페를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전념해 보기로 하고, 그리고는 영영 소설가가 되었다. 간절히 원하지 않았는데도 이루어진 소망.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받게 된 선물. 그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부단히 애쓰지 않으면 그렇게나 오랫동안, 그렇게나 널리 읽히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운동하러 나가기 싫을 때, 하루키의 속마음 토크가 재미있었다.

Whenever I feel like I don't want to run, I always ask myself the same thing: You're able to make a living as a novelist, working at home, setting your own hours, so you don't have to commute on a packed train or sit through boring meetings. Don't you realize how fortunate you are? (Believe me, I do.) Compared to that, running an hour around the neighborhood is nothing, right? (46p)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과 감사 없이는 할 수 없는 말들이다. 하루키가 다른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고 반복했듯이 그는 자신의 직업, 그리고 그 직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환경, 조건에 감사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표현했듯이.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58쪽)

내 눈을 사로잡았던 문단은 여기다.

Whenever the seasons change, the direction of the wind fluctuates like someone threw a switch. And runners can detect each notch in the seasonal shift in the feel of the wind against our skin, its smell and direction. In the midst of this flow, I'm aware of myself as one tiny piece in the gigantic mosaic of nature. I'm just a replaceable natural phenomenon, like the water in the river that flows under the bridge toward the sea.(91p)

대체가능한 자연 현상으로서의 나. 그런 나 자신을 안다면, 내가 그런 존재라는 걸 인지한다면 왜. 왜, 그는 그리도 열심히 사는 걸까. 살 때까지 혹은 살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려고? 그건 이유가 안 된다. 80대 후반에도 건강한 근육을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95세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100세 아니, 110세까지의 삶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게 될 테고, 그리고 분해될 것이고, 사라질 것이다.

근육에 대한 그의 집착, 기계로서의 자기 인식은 적확하고 실제적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다루려' 하고 '다스리려' 한다. 생명체로서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리고 적잖이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안다. 자신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 모자이크 속의 작은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게 궁금한데, 항상 궁금하다.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현재의 이 시간, 기쁨과 고통조차 사실은 뇌 속 신경 세포 다발의 특정한 전기 신호 간의 화학적 반응의 결과일 뿐이며, 나 역시, 나의 육체 역시 한없이 부서져 그 형체는 물론 흔적조차 모두 사그라질 텐데, 그렇다면 왜 사는가. 왜,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왜… 잘 살려고 하는가.

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왜 살 때까지 살려고 하는가.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우주에는 신의 섭리가 가득하며, 신의 계획과 섭리, 교회에서 쓰는 전문용어로 신의 은총과 사랑 속에, 그 속에서 비로소 존재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너머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는 나는, 궁금하다. 무의미한 세계, 목적 없는 우주에서 a just replaceable natural phenomenon인 스스로를 긍정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 삶을. 노력하는 그 삶을. 진지한 그 삶을. 궁금해서, 궁금하니깐 그다음 책을 펼친다.













정희진쌤의 픽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그 책 대출하려 갔을 때 그 옆에 있었던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그 옆의 옆에 있었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를 김치냉장고로 옮겨둔다. 나는 사뭇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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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25-02-09 0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첫 인용은 제가 맨날 저한테 물어봐야 할 말이네요. 출퇴근이라고 생각하고 뛰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날씨 구져서 꼼짝도 안 했지만요. 하루키 글이랑 영어라는 언어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도 표지는 다르지만, 이 책 있어서 당장 꺼내놨습니다.

단발머리 2025-02-09 20:19   좋아요 0 | URL
제주도도 추웠는가요? ㅋㅋㅋㅋㅋ 서울은 오늘 오전에도 눈길이더라구요. 큰길은 다 치워졌지만 인도는 아직도 눈이 많아요.
하루키가 영어로도 많이 팔렸던 거 같아요. 교보에 가니 영어로 된 책들이 한 칸을 차지하더라구요. 꺼내놓으셨다니 금방 읽으시겠네요. 쭉쭉 넘어갑니다^^

공쟝쟝 2025-02-09 0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라캉에 진지한 편이라… 그럼 왜 그러냐? 라고 물으시면 그건 충동 때문이라죠 ㅋㅋ (성충동 딩동댕 죽음충동 딩동댕) 그게 올라올 때 마다 그걸 할 수는 없으니 열심히 달리기를 한다고 단발님이 저한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나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한창 달렸을 때는 (말잇못)….

농담이고… 제가 읽었던 책에서 (맞아요 사사키 아타루) 신이요 완벽한 신이요 신이 굳이 세계와 인간을 만들었대요. 왜. 왜 그랬을까. 그는 완벽한데. 이유는 아시죠? 사랑해서. 사랑해서. (이쯤 되면 저는 사랑이 궁금해지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목적없는 우주에서 신의 사랑으로 지어진 이 존재가요.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 아들을 수직적으로 내려 보내주었사온데) 신의 사랑을 감히 수평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는 데, 그것이 연애의 발명, 띠로리…. 17세기 유럽에서 태어난 것이랍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리하여 그 궁정 연애의 본질은. ‘유일성’‘(오로지 한 사람만을 연모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데.. 단발님께서 평소 주장하고 계시는 지론들이 지독한 기독교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인가 의심하게 되는 나는… 계보학을 좋아하는 푸코빠 입니다. 메롱!

단발머리 2025-02-09 20:21   좋아요 1 | URL
댓글 길어져서 또 따로 썼습니다.

쟝님이 여러번 제가 쟝님 ‘눌림 버튼‘이라 하셨는데, 그거 아닌 거 같아요. 내가 이리도 길게 쓰다니.... 쟝님이 나 눌러놓고 도망간거 아니냐며... 이 연사 강력하게 부르짖습니다!

맥락없는데이터 2025-02-09 0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댓글을 남긴 이유는 저도 최근에 하루키의 책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어서 감히 남겨봅니다. 더구나 인용하신 부분을 조금 전에 들었거든요! 저와 님의 해석이 조금 다른데, 님께서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받게 된 선물‘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을 저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어요. 저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마음이 그날 야구장에서 선물처럼 주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하루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는 것이니, 결국 우리가 느끼는 대로 해석하는 거겠죠. 그게 독자의 권리인 것 같아요. 마음대로 해석하기! 😂 어쨌든, 님의 밀도 높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죽음과 인생에 대한 더 열린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공쟝쟝 2025-02-09 08:28   좋아요 1 | URL
어머~!! 여기서 뵙다니 반가워요. 아이디 바뀌어서 못 알아볼 번했습니다, 혹시 오디오북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오더블인가요?)

맥락없는데이터 2025-02-09 09:44   좋아요 2 | URL
공쟝쟝 님을 위해 아이디까지 바꿨는데, 안 찾아오시길래 제가 오버했나 싶었어요. 그런데 못 알아보셔서 안 오신 거였군요. 😂 네, 오더블 맞습니다! 리스닝을 기르려고 듣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앱이 됐어요.

공쟝쟝 2025-02-09 09:48   좋아요 2 | URL
맥락님~ (남의 페이퍼에서 다정함 자랑하기) 어머나….!! 제가 알라딘 북플 중독이라 (ㅋㅋㅋㅋㅋ) 사실 이걸 끊으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치만 책 읽고 양질의 독후감을 나누기에 이만한 플랫폼이 또 있을까요) 앱깔고 한 번에 몰아서 시간내서 하는 데, 그동안 책도 끊어보려고 (독서 중독이라) 못 찾아뵈었다… (이 한심한 중독인생…)… 접속을 끊기가 어려운 중생이지만 접속하면 꼭꼭 들를테니, 서운해 말아주세요!! 헤헤~

단발머리 2025-02-09 20:30   좋아요 1 | URL
맥락님 / 안녕하세요^^ 첫 댓글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는 느끼는대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받게 된 선물‘은 온전히 저의 ‘느낌‘입니다. 그러니깐 하루키가 그 문단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아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 맥락님의 이해가 맞고 맥락님의 해석이 맞습니다.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한거죠. 그게 맞고요.
저는.... 그런 상황, 그런 환경의 하루키가 부러웠던 마음을 저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아, 하루키는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애쓰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었구나.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 되었구나. 다른 책에 보면 하루키가 소설 쓰고 나서 출판사에 보내잖아요. 자기가 원고 보낸 걸 까먹었다고.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 그게 부럽더라구요. 멋지구요. 다시 한 번 쓰자면, 제가 하루키의 노력을 하찮게 보는게 아닙니다.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거구요. 다만 어떤 사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요.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그렇게 ‘표현‘해 본 것이었습니다. 맥락님 댓글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자주 오시어요~~~~~~

쟝쟝님 / 제 방에서 맥락님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신다니! 이 무슨 기쁜 소식입니까! 앞으로는 맥락님 서운해 하시지 않도록 잘 좀 부탁드리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락없는데이터 2025-02-10 06:10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댓글 감사합니다! 😊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받게 된 선물’이 온전히 단발머리님의 느낌이라는 점, 그리고 하루키가 그 문장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바와는 다를 수 있다는 말씀, 저도 그렇게 이해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해석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죠. 하지만 그것도 독서의 묘미가 아닐까요? 같은 문장을 읽고도 저마다의 시선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자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어쩌면 그것이 하루키와 다른 이들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한 후에는 묵묵히 실행하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저는 작은 것 하나도 오래 마음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편인데 말이에요. 이건 마음의 크기 차이일까요, 아니면 성향의 문제일까요? 😆

오늘은 하루키가 아내의 신체적 조건(?)을 부러워하며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하는 부분을 들었어요. 그 장면에서 피식 웃었죠. 결국, 공평함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지점이 서로 다를 뿐, 결국 누구나 자기만의 몫을 가지고 살아가니까요.

그리고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일 수도 있겠죠. 기회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온 노력과 선택, 그리고 환경과 타이밍이 맞물릴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운이란 것도 그저 무작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이 되어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단발머리님께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이게 운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해온 것들이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이어진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경험이요.

사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와서 처음으로 고백하는 건데, 저는 하루키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트라우마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어떤 작가의 글을 읽고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하루키를 잊을 수 없었죠. 그렇다고 하루키를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저와 결이 맞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에는 깊이 들여다볼 만한 지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달리기에 대한 책은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마 영어로 듣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더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단어들로 쓰였다는 점에서요.

어쨌든, 책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큰 즐거움이에요. 다만, 그런 이야기를 나눌 곳이 많지 않다는 게 늘 아쉽죠. ㅎㅎㅎ 단발머리님이 표현하신 부분이 와닿아서 댓글이 길어졌네요.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

단발머리 2025-02-10 09:5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맥락님~~ 맥락님 말씀이 맞습니다.

˝.........기회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온 노력과 선택, 그리고 환경과 타이밍이 맞물릴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운이란 것도 그저 무작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이 되어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맥락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의하는 그만큼, 딱 그만큼. 저는 그런 기회, 우연, 환경, 타이밍의 작동 자체가 어떤 사람에게는 닿지 못하는 현실로 작용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자신만의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김연아)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하는데, 꼭 알아야 하는 사람은 노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덜 원해서 얻지 못한 건 아니라는 거요.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의 김현철 교수는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라고 말했다죠.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가. 가 그의 미래 소득을 결정한다고요.

다시 하루키에게로 돌아가자면, 제가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하루키 왈, 성인이 되어서도 나만큼 문학, 특히 세계 문학을 많이 읽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저는 그 말이 맞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나 많이 읽었던 하루키는 어느 날, 날아가는 야구공에 희망을 담아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노력이 맞습니다. 그의 부단한 노력이 맞습니다. 자신에게 차곡차곡 쌓여있던 것들이 그에게 성공의 문을 열어준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전, 생각합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아니 노력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맥락님 댓글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맥락님 방에 가보니 영어책을 즐겨 읽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좋은 책 추천도 부탁드리고요. 자주자주 뵈어요^^

맥락없는데이터 2025-02-10 10:58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다시 읽어보니 제가 운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부분만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께서 강조하신, 노력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좋은 대화 나눌 수 있어 감사해요!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5-02-10 13:01   좋아요 2 | URL
맥락님~~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쓰자면, 전 맥락님이 말씀하신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맥락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책에 긋는 밑줄이 제각각이듯 생각과 느낌이 모두 제각각 일텐데, 알라딘 서재야말로 제각각 세상, 제각각 우주인 거 같아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책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세요!

공쟝쟝 2025-02-09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하나 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오로지 한 사람만을 죽을 때 까지 연모하는 방식의 (서구유럽식) 연애는 지금 발명 재발명 되다 못해 일부 젊은 층에 의해 ‘드러워서 못해먹것다’로 수렴되고 잇는 가운데(?), 그러나 그 흐름도 이제 차차 사라져가고…. 남들이 좋다고 남들이 말 하니까 그걸 베껴 나도 하고 싶다. 뭐 그런 거라고 생각됩니다. 왜 잘 살려고 하는가, 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가, 왜 살 때 까지 살려고 하는 가…. 물으신다면… 남들이 하니까… 라는 것이 (ㅋㅋㅋ 죄송합니다 본투비 기독교인에 대적하는 본투비 빨갱읍읍) 결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연휴에 하루키를 읽기 위해 로맨스 드라마를 몰아보기를 한 저는 요즘 연애가 하고 싶다! 입니다. 변우석과 이준혁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11 17:06   좋아요 1 | URL
왜 잘 살려고 하는가, 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가, 왜 살 때 까지 살려고 하는 가…. 물으신다면… 남들이 하니까…

저의 질문에 첫번째 정답으로 선정되셨습니다.
1) 남들이 하니까
요렇게 적어놓을께요. 📝

이준혁은 찬성이고, 변우석은 글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요즘에 주지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5-02-09 21:59   좋아요 0 | URL
주지훈 받고 추영우 더! 그리고 저는 조인성이요. 요즘 강풀 무빙 정주행 중-
90년대 연애 감성....... 너므 좋아 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잠후럽 아니고... 목숨걸고 사랑한다..
동생들이 언니가 끊었던 로맨스를 다시 보기 시작하더니 완전 돌아온 남미새 폭주라며 놀리고,
나의 폭주를 멈춰달라!!!ㅋ 누가 멈출 것이냐.
왜 이준혁은 나이 들 수록 잘생겼냐. 아직 각성하지 않은 자들아, 각성하라. 내 넓은 마음으로 너희를...

단발머리 2025-02-09 22:02   좋아요 1 | URL
아~~~~~~~ 나 이준석 봤어! 봤다고요!
웃고 있다가 캡처하러 들어가니 벌써 고쳤구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순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10 13:02   좋아요 1 | URL
끊었던 로맨스 다시 시작하면 큰일이죠. 이 겨울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고 합니다.
누구든 막아서야 할텐데...
계엄군 장갑차는 민주시민들이 막아섰지만 폭주하는 쟝님은 아무도 안 막는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각성 필요합니다. 참 많이 필요함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10 13:03   좋아요 1 | URL
조인성은....... 🥰 제가 옛날에 찜했어요. 조인성은 안 돼요!

공쟝쟝 2025-02-10 08:23   좋아요 1 | URL
이준석 봤어요? ㅋㅋㅋㅋ 이준혁보다 이준석을 좋이하는 나의 무의식,이 아니라 나의 정치중독 ㅋㅋㅋㅋㅋㅋ
조인성…🙅🏻‍♀️무빙에 두식씨!❤️ 강풀 사람 참 휴머니스트 👯👯

단발머리 2025-02-10 13:03   좋아요 0 | URL
봤어요! 바로 캡처했어야 했는데 ㅋㅋㅋㅋ 평생 놀려먹을 수 있었는데 넘나 아쉽네요.
설마 이준혁보다 이준석을 좋아할까요? 그러나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사람은 이준혁 아니고 이준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인성, 그만 좋아해요. 그 사랑 난 반대야. 절대 반댈세!!! ❌
 











1. 제국주의와 남성성

이 책은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맥락에서 남성성이 정의되었던 현실을 분석하고, 여성성과의 대타성을 통해 성, 인종, 계급을 둘러싼 담론이 정교화'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외부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이러한 타자화를 내부로까지 확장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수혜자는 당연히 백인 남성이다. 유럽의 백인 남성만이 제국주의의 주체이자 완전한 인간향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피부색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색인종의 순종성을 둘러싼 담론은 특히 흑인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럽인을 <흰 피부>의 집단으로 설정하고 상대적으로 비유럽인 모두를 <검다>는 범주에 집어넣었던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 때문이다. 따라서 종속민의 다양한 피부색은 종종 모두 뭉뚱그려져 백인의 대타적인 이미지로서 <검은> 부류라고 설정된다. (168쪽)










예전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에서 같이 읽을 때, 버사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는 이렇게 써두었더란다.

작품에 딱 한 번 나온 ‘검은 피부’라는 표현은 버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종의 구성 과정을 돌이켜 볼 때, ‘희다’는 것, ‘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백인’이 기준이 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방송인 노아 트레버는 자랄 때 ‘백인’ 취급을 받았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백인’으로 대우했다. 학교에 다닐 때 노아는 ‘유색인’으로 분류되었고, 미국에서라면 그는 분명 ‘흑인’이다. 그는 흑인보다 하얗고, 백인보다 검다. 흑인과 있을 때 그는 백인이고, 백인과 함께 있을 때 그는 흑인이다. 백인인 로체스터가 보았을 때 버사는 ‘검은’ 피부의 사람이다. 이 ‘검은’의 의미란, 우리가 피부색으로서 흑인을 떠올릴 때의 ‘검은’이 아닐 수도 있다. 아시안인 우리의 피부와 비교했을 때 버사는 분명 ‘하얀’ 피부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체스터, 이 믿을 수 없는 사람 로체스터에게 버사는 ‘검은’ 피부의 사람이다. 이러한 버사의 가시적 이질성은 그녀에 대한 로체스터의 혐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녀의 ‘검은 피부’가 미움과 변심의 시작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로체스터를 믿을 수 있는가>, 단발머리)

우리에게 서양인이 모두 비슷해 보이듯, 그들에게도 우리가 비슷해 보일 테지만, 그들은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기에, 하얀, 아주 하얀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흑인이 된다. 유색 인종이 된다. 검은 피부, 갈색 피부, 밝은 피부가 된다.

번역서 아닌 책이 주는 자유로움과 저자들이 첨예한 갈등의 지점에서 뒤로 숨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전면에 두고 논의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자들의 요구로 재출간되었다는 대목이 무척이나 반갑다.

내가, 우리가, 바로 그 고마운 독자들이다.










2. Lessons Chemistry

밀린 책들 부지런히 읽는 중이다. 시작할 때 오더블과 함께 했고, 마무리하면서 오더블과 함께 했다.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재미있고 추천할 만한데, 하도 드문드문 읽어서 내용은 많이 잊어버렸다. 내가 픽한 문단은 여기.

"Madeline(주인공의 딸) wants to do things that are more suited to little boys," Mudford(학교 선생님) had said. "It's not right. You obviously believe a woman's place is in the home, what with your"-she coughed slightly - "television show. So talk to her. She wanted to be on safety patrol this week."

"Why was that a problem?"

"Because only boys are on safety patrol. Boys protect girls. Because they're bigger."

"But Madeline is the tallest one in your class."

"Which is another problem," Mudford said. "Her height is making the boys feel bad." (238p)












3. 로마서 : 절대적으로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책> 고를 때 마지막에 리스트에서 빼놓았던 책이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시지>이다. 킹제임스버전부터 시작해 NIV를 지나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영어 성경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메시지>. 해외 시장에서 빅히트를 기록하고 한국 성경 시장에도 입성했는데, 성경 전체가 번역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쉬워 번역이 이루어지는 대로 순차적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모세오경, 시가서를 가지고 있고, 한영대역으로 신약과 예언서를, 완역되어 나온 통합본도 한글로도, 영어로도 구입했다. 성경 시장을 한국 가요계로 비유하자면(적절한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 <메시지>는 BTS 출현 전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존재이다. BTS는 좀 다르게 소비되었다고 생각해서 옆으로 미뤄둔다.

아무튼 이 시리즈가 이렇게나 많은데 또 샀다. 로마서만 미니북으로 만든 책인데, 크기를 보여드리기 위해(요청한 사람 없지만서도) 일부러 사진을 찍어본다.












4.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잠자냥님 픽 <2024년도 하반기 좋았던 책>에 빛나는 책인데, 많이들 읽어보시라 해서 읽기 시작했다(추천에 진지한 편). 논점에 다가가는 방식과 풀어가는 문장의 흡입력이 어마어마하다. 이번 주일에는 권사회 헌신 예배인지라 외부 강사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가 늦게 끝났고, 예배 후에 공동 의회가 있었고, 엄마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에 큰아이 주문(공심채&팟타이) 받아 오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얼른 재활용하러 가야 하는데, 욕실 청소도 해야 하고, 음쓰도 정리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바쁜 와중에도 2쪽 읽었다.

시원하고 야무지다. 마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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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04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논필>(내 멋대로 줄임)은 필독서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4 16:12   좋아요 1 | URL
모두 모이세요! 잠자냥님 픽 필독서 1호 등장입니다! 👏🎉🎊

라파엘 2025-02-04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를 ‘서태지와 아이들‘에 비유한 내용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BTS에 비유될 만한 그 이후의 좋은 번역이 있나요? 🤔

단발머리 2025-02-04 18:58   좋아요 1 | URL
BTS에 비유될 만한 좋은 번역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요 ㅋㅋㅋㅋㅋ 한국 가요계보다 성경 번역 쪽이 많이 늦고 있네요.
서둘러야 합니다!!! : )

다락방 2025-02-05 10:09   좋아요 3 | URL
앗 라파엘 님이닷!!

라파엘 2025-02-05 11:58   좋아요 0 | URL
앗!! 다락방 님!! 😍

단발머리 2025-02-05 12:02   좋아요 1 | URL
앗!! 라파엘님! 🤩
앗!! 다락방님! 😍

다락방 2025-02-05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 님이 책을 읽는 분이셔서 그리고 글을 쓰는 분이셔서 정말 좋습니다.
만약 단발머리 님이 읽지 않고 쓰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인류의 큰 손해입니다.

단발머리 2025-02-05 10:40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님의 다정한 말씀 너무 좋네요! 하트뿅뿅!
저도... 제가 읽는 사람이고 가끔 쓰는 사람이라 좋아요. 모두 다락방님 덕분, 알라딘서재 이웃님들 덕분입니다!
 
Tell Me Everything (Hardcover)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Random House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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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주요한 축이 루시와 윌리엄이었다면, 이 책의 주요한 축은 루시와 밥이다. 조금 더하자면, 매트와 올리브. 만약 주인공을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밥. 올리브와 루시의 이야기 중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소중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의 주인공은 밥이다. 이 책은 밥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과 우정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멀리 있는 감정인가는 새롭지 않은 문제다. 나는 남사친이 없어서 그런지 편안하고 친근하며 나를 지지해 주는 남자, 그런 친구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독한 프로이트주의자인 필립 로스의 말처럼, 남녀 사이의 일은, 중요한 단 한 가지 일은 섹스 뿐이다, 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혹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 정도이다.


Jim sat forward again. "Of course she's in love with you. You two take walks all the time, and you talk, right?" Bob nodded. "I always remember reading - it was years ago now - an article in which a famous director said: There is nothing sexier than talking. I always remember that. And that's what you and Lucy do - you talk. All right, now listen, Bobby. Don't tell her you're in love with her. Do not have that conversation with her. (277p)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자원은 인간이다. 제일 큰 즐거움은 대화에서 온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시간은 1분이, 아니 1초가 버겁다. 설사 애정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 말을 '알아듣는' 너를 발견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성관계는 없다. 환상은 실재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바로 그러하므로. 소통 불가능의 세계에서 맛보는 합일의 순간은 특별하다. 다만, 그런 순간은 찰나일 뿐이니. 스침에서 마주침으로의 그 순간은 더더욱 소중하다.


지금, 이 사람.

현재,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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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2-01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화만큼 섹시한 건 없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 있을까요? 혼자 떠드는 거 말고, 진짜 대화!
루시에 올리브까지~~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25-02-01 21:49   좋아요 2 | URL
다정하신 독서괭님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바닷가의 루시>입니다. 그 때 제가 윌리엄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했는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는 윌리엄 별로 안 나오는데다가 좀 별로인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게 윌리엄의 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쓸쓸한 이 내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어서 어서 오시구요. 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으로 후진해서 가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02-02 09:05   좋아요 1 | URL
후진도 좋네요 ㅎㅎㅎ

수이 2025-02-0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사친을 만들어요, 말할까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남사친들 만난지 너무 오래 전이라 내게도 있던가 남사친. 단발님 근처에는 그러고 보니 다들 여성들뿐이군요. 블루베리가 너무 적습니다. 조금 더 팍팍 넣어요. 교회 잘 다녀오시구요, 라고 시계를 보니 벌써 아멘 하고 있을 시간.

단발머리 2025-02-04 18:59   좋아요 0 | URL
남사친은... 제 생각에는 더 어릴 때 만들어야지 않을까요? 지금은 다 커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회는 잘 다녀왔습니다. 그 시간은 아직 출발 전이었구요! 그러나 아멘!
저녁 맛난거 먹어요~~

망고 2025-02-02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다 읽으셨군요 이 책도 너무 좋죠? ㅎㅎㅎ 루시와 밥의 사랑이 그렇게 끝났지만 루시가 마지막에 말하는 Love is love, 사랑이 다 다른 형태더라도 그건 다 사랑이라고, 밥을 사랑하지만 윌리엄에게서 느껴지는 안전한 느낌의 사랑도 사랑이라 루시가 선택한 길 즉 이 책의 결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단발머리 2025-02-04 19:01   좋아요 1 | URL
이 책 저도 너무 좋았어요. 아끼면서 미뤄지고 바빠서 미루다가 이번 연휴에 마저 읽었습니다. 저는 밥의 마음을 알 거 같았지만(어디까지나 추측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하지 않은게 너무 잘한거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많이 후회할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루시의 고민과 갈들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해보았습니다.
다음 책, 우리 같이 기다려 보아요~~

다락방 2025-02-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들은 섹스도 같은 성별과 하는데 친구며 연인이며 다른 성별이 뭐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대화가 통한다면 그걸로 기쁠 수 있다면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나이가 어떻게되든 좋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단발머리 님은 많은 분들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단발머리 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단발머리 님은 사람들에게 기둥이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 맥락을 잘 파악하진 못했지만, 그리고 우정 역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랑이 우정의 한 형태일 수도 있고요.


단발머리 2025-02-04 19:0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대화가 통하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죠. 근데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딱딱! 통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루시와 밥이 그렇거든요.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도 있고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제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저번주 토요일에도 그런 좋은 시간이었는데, 가끔 너무 힘들때는 말이에요. 그냥 들어주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요. 어차피 인간에게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한데.... 응, 그랬구나~~ 그런거요. 저번주 토요일에 그랬습니다^^

사랑과 우정이 참 비슷하지요. 사랑도 우정도 소듕합니다!

공쟝쟝 2025-02-05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에서 텔미, 에브리띵, 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구매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7 11: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르니깐요. 그게 가능하다고 하대요.
이건 루시가 밥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해줘요, 밥. 그간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내게 말해줘요!
 















내일 반납일이라 펼쳤는데, 세상에 이런…

엄마 찾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써내려간 문장들. 사랑 이야기 아니고 논쟁. 위로의 말이 아닌 철학. 조사라기 보다는 논의의 자극제.


행여 실수가 있다면 그건 갓난아기를 무릎 위에 재워놓은 채(재우지 못한 때도 많았지만), 혹은 옆방에서 파트너가 육아를 맡아주는 동안 엄마를 찾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집필을 겨우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주어지는 제한과 프로젝트 자체의 한계를 돌아보게 했고, 모든 해방 운동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 즉 타인에 대한 돌봄에 매달리느라 자신의 소중한 견해를 남들에게 들려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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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2-01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능 이 책 샀을걸요, 아마? 훗.

단발머리 2025-02-01 15:04   좋아요 0 | URL
참ㅋㅋㅋㅋ 모든걸 가지신 이 분ㅋㅋㅋㅋㅋ 책장까지 마련하셨으니 부러울게 없으시다 🤣
 














제국주의 확장 과정에서 '집 안의 천사'는 가정의 지배자이자 이상적인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딸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흡사 천사와 같은 성정의 소유자라 여겨지는 '집안의 천사'는 역할이라기보다는 '존재만으로' 그 특징을 소유했다고 여겨진다.(119쪽)

'집안의 천사'와 관련해서는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4권이 나와 있다. 예전에 도서관 책으로 찍어두었던 사진이 반가워(공장 초기화 유경험자) 다시 올려둔다.

























여기서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보인다. 왜냐하면 -일반화해도 좋다면 ㅡ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 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59쪽)



제국주의 구도에서 성은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종, 계급의 문제와 복합적인 방식으로 교차해 작동한다. 여성은 분명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그러한 불합리함을 수용하도록 강제되었지만, 영국의 백인 여성과 식민지의 유색인종 여성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본국의 백인 여성이 '집안의 천사'로 추앙받으며, '안전하게(?)' 남성에게 보호받을 것을 요청받는 것에 반해, 식민지의 여성은 백인 남성의 성적 환상을 시험하고, 성적 모험의 장으로서 인식되었다.

본국 백인 남성과 비백인 식민지 여성 사이의 성적 관계가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오히려 비백인 여성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남자를 밝힌다거나 혼전 순결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냄으로써, 비백인 여성에 대한 전방위적 성적 억압을 변명하려 했다.


<4. 서구 남성의 성적 열등감>은 크기에 대한 남성의 집착을 자세히 보여준다. 성의 과학화라는 현상과 여성 오르가슴의 발견(178쪽)으로 흑인 남성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해 버린 백인 남성은 불안에 휩싸인다. 백인 여성이 자신들보다 흑인 남성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불안의 근거는 크기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남성이 가진 매우 작은 성기가 그들의 '미성숙함'의 증거라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흑인 남성의 엄청나게 큰 성기는 그들의 '동물성'의 증거라 주장했다. 하지만, '오르가슴'을 통해 여성이 남성의 성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백인 남성들은 또 다른 이유를 찾아내어야만 했다. 작은 성기를 문제시했던 과학은 이제 지나치게 큰 성기를 문제시해야 했다. 그것은 백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도덕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

<엄청난 성적 능력을 가진> 흑인 남성과 성이라는 영역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그 구도에서 빠져나와 <도덕성>이라는 영역으로 스스로를 도피시켜 버린 것이다. 따라서 <성>은 드러내기보다는 은폐해야 할 것, 그리고 <도덕>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열등한 것이 되어버렸다. (185쪽)


도덕성으로 피신해 버렸음에도 흑인 남성의 엄청난 성적 능력에 대한 환상은 제국주의가 해체된 이후에도 백인 남성을 사로잡은 강력한 문화 전통이 되어 왔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크기다. 사이즈에 대한 집착이 그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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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8 0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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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5-01-29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기… 백인이 그렇단 말이군! (과계몽)

단발머리 2025-01-29 21:43   좋아요 1 | URL
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크기 대결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떠납니다.
도덕의 세계로....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