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인 것을 중학교 즈음에 알아챘다. 그 때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은 말 잘하는 남자가 아니었는데도, 난 그걸 알았다. 사람의 매력을 발견하는 각각의 특별한 지점이 있을 테지만, 영화 또는 드라마의 캐릭터이든 실제에서든 나는 말 잘하는 남자를 한결같이 좋아했다. 내가 말하는 말 잘하는이란 청산유수 같은 언변, 위트 가득한 농담을 넘어서서 말이 통하는을 의미한다. 하지만 말이 통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 그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는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을 그가 알아챈다는 뜻이다.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

 


내가 사랑했던 동시에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필립 로스의 소설유령 퇴장』에는 이런 문단이 있다.

 


그녀     제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시는 거예요?

 

        자네의 젊음과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자네가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유령 퇴장』, 178)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말한다.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소통과 당신이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나는 이게 사랑을 말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걔랑은 말이 안 통해라는 말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 책 『The Love Hypothesis』에서는 서로에게 처음인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질문과 답을 통해,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을 통해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만큼이나 로맨틱하고 예쁜 사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사람은 페미니스트 벨 훅스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랑은 사치일까』, 187)

 


벨 훅스의 상황과 이 책의 주인공 올리브의 상황은 다르다. 벨 훅스가 실제 상황을 맡고 있었다면, 올리브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답게 해피 엔딩을 맡고 있다. 벨 훅스와 올리브의 연구 분야도 다르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academia에 몸담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확히는 그런 열망을 가진 여성으로서 두 사람이 겪어야만 하는 경험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의 교습과 훈련,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환경과 그 과정 가운데서 지도 교수에 대한 강요된 충성 같은 부분들이 언뜻 보이기도 했다. 이 세상 어떤 직군이든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마는, 학계 내의 정치와 갈등, 그리고 암투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fake relationship이라는 장치는 요즘에 흔하게 차용된다. 처음에는 가짜였다가 나중에 진짜가 된다는 설정인데,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맞.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에로틱한 분위기. 신경과학자의 언어로 풀어가는 절묘한 대화. 함께 한 추억을 통해 만들어가는 두 사람만의 농담들. 그걸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을 뒤로하고 별 다섯을 주었다. 내게 준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소소한 감사 표시다. 페미니즘을 알고 로맨스를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이번에는 이해와 판단을 잠깐 뒤로하고 읽었다. 외출도 잠깐 뒤로하고, 재활용도 잠깐 뒤로하고, 빨래도 잠깐 뒤로 하고, 설거지도 잠깐 뒤로하고.

 

 


하여 나는 책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이 책의 리뷰를 마쳤다. 여자 주인공은 Olive이고, 남자 주인공은 Adam이다. 표지에 보이는 대로 Olivelab girl이고 Adam은 교수님, 표지가 작품의 8할을 맡고 있다. 과학적 연구법에 대한 부분은 지극히 심오하여, 나오는 족족 건너뛰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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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5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2-01-25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수와 학생이라니 살짝 멈추게 되었습니다만 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대화를 통한 에로틱‘ ‘두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 이렇게 말씀하시니 막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마구마구 올라오네요.

단발머리 2022-01-25 01:21   좋아요 4 | URL
같은 과이기는 한데 담당 교수는 아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수/학생간의 권력 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은, 로맨스 소설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저는 며칠동안 파묻혀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혹 읽으실 분들 계실까 내용은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군요. 푸하하하하.

바람돌이 2022-01-25 0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보고 만화인줄 알았어요. 재밋어 보이지만 원서니 무조건 패스... ㅎㅎ
그보다는 사랑은 사치일까가 관심이 가네요. 이론서 공부는 못하겠고, 저런 에세이가 더 맘에 훅 들어온다는.... ^^

단발머리 2022-01-25 09:08   좋아요 2 | URL
만화는 아니고 로맨스 소설입니다.
저는 벨 훅스 책이 다 좋더라구요. 어렵지 않게 쓰셔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고요. 벨 훅스가 맘에 훅 들어오실것입니다^^

다락방 2022-01-25 0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수와 학생이라니 저도 잠깐 멈칫 하게 되네요. 과학적연구법 이야 그렇다쳐도 그들 사이의 소통.. 을 제가 번역서 없이 읽을 수 있을까요? 오고가는 핑퐁같은 대화를 저는 보고싶은데 말예요. 그게 원서 읽는 재미일 것 같은데.. 그런데 집에 사두고 안읽은 원서가..
그런데, 이 책이 그렇게 야하다면서요? 🙄

단발머리 2022-01-25 09:12   좋아요 2 | URL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가 좀 그렇기는 해요. 대학원생도 학생은 학생이죠.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괜찮을 듯 해요. 특히 핑퐁같은 대화는 아주 짧아서 이해가 더 잘되기도 하구요.
이 책이 야하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뒷부분에 좀 야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그걸 다 이해하기에는 제 영어실력이 좀 부족해서 저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하하하하.

책읽는나무 2022-01-25 0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야해요??
그럼 읽어야 되겠네요?
아...언제쯤 읽게 될까요??ㅋㅋㅋ
교수와 학생..갑자기 빛과 물질에 관한 상대성 이론이란 단편소설 생각나네요? 거긴 교수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던데 책 표지는 교수가 좀 젊군요!!!
군옥수수 꼬깔콘에 담백한 베지밀 같은 사랑이려나??

단발머리 2022-01-25 09:15   좋아요 4 | URL
읽으신다고 하신다면 제가 뭐, 말릴 수는 없겠습니다만은 주요한 장면들은 ‘핑퐁 같은 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 밝혀드립니다.
젊은 교수입니다. 하하하하.
꼬깔콘 군옥수수맛에 베지밀 에이 같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스*** 스콘과 호박 라떼 같은 사랑입니다. 참고 부탁드려요^^

독서괭 2022-01-25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 분들처럼 저도 교수라는 말에 멈칫 하였으나. 에로틱이라는 말에 또또.. 관심이??ㅋㅋ 핑퐁같은 대화라니 그것도 궁금하네요. 티키타카라고도 하는데 저는 로맨스에서 그런 대화장면 잘 쓰는 작가가 좋더라구요^^

단발머리 2022-01-25 13:16   좋아요 4 | URL
저는 주인공들이 싸우는 장면에 크게 감정몰입하는 1인이며,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뭐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핑퐁 같은 대화와 티키타카에 더해 여주인공 속마음 토크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교수와 대학원생(박사과정)의 일이라 사실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미혼의 34세 남주와 역시 미혼의 26세 여주라는 것을 소심하게 밝혀드립니다.

라로 2022-01-25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령퇴장 안 읽어봤는데 저런 구절이 있군요. 읽어볼까? 싶어지는 궁금한 대화에요.^^;; 저같은 늙은이도 이 책 넘 재밌게 읽었어요,, 그런데 정말 페미니즘을 알고 로맨스를 읽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라는 말씀 너무 공감합니다. 저는 정말 아담이 올리브 부를때마다 좀 짜증났거든요. 하지만 또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쭈욱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

단발머리 2022-01-25 15:47   좋아요 2 | URL
필립 로스에 대해서라면, 특히 저 <유령 퇴장>에 대해서라면 읽은 분들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점 알려드려요. (저는 호감 쪽입니다.) 이 책 속의 여러가지 반박하고 싶은 지점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걸로도 두쪽은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근데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요. 푹 빠지게 하는 작가의 힘,에 공감합니다.

mini74 2022-01-25 2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아무도 꼬깔콘과 베지밀 이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건가하다가 나무님이 언급하셨군요 ㅎㅎ 야한 사랑보다 먹는 거에 진심인 ㅠㅠ

단발머리 2022-01-27 15:22   좋아요 1 | URL
꼬깔콘이 군옥수수맛이라는 것, 그리고 베지밀 에이가 아니라 ‘B‘라는 점도 중요하거든요. 그나마 책나무님이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야한 사랑보다 먹는 거에 진심이시라는 거,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The Love Hypothesis (Paperback) - 『사랑의 가설』원서
Ali Hazelwood / Penguin Putnam Inc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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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없는….



(궁금한 독자를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Adam #Olive #별다섯 #romance
#Welcome to the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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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24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왜요 왜ㅋㅋ궁금해요 단발머리님! 저는 아주 얇은 친구로 읽고있어요^^

단발머리 2022-01-24 20:59   좋아요 2 | URL
궁금한 미미님을 위해 키워드 나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1-24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 뭔데요 뭔데요 해줘요 해줘요 😭😭😭😭😭

단발머리 2022-01-24 21:05   좋아요 2 | URL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2탄 곧 준비하겠습니다.

다락방 2022-01-24 21:08   좋아요 1 | URL
언제요? 🙄🙄🙄🙄🙄

단발머리 2022-01-24 21:10   좋아요 1 | URL
내일 아침 출근길에 읽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이상 무!!!

다락방 2022-01-24 21:48   좋아요 1 | URL
저는 이만 잘 준비를 할터이니 내일 출근길 읽을 때 무리없이 부탁드려요. 흠흠. (포스 작렬하며 마침)

수이 2022-01-24 21:51   좋아요 1 | URL
로맨스로 단결하는 겁니까? 🙄

다락방 2022-01-24 22:17   좋아요 1 | URL
저 술마셨어요 호호(어쩌라고?)

단발머리 2022-01-24 22:2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 월요일인데… 피곤할 텐데요.

단발머리 2022-01-24 22:20   좋아요 1 | URL
단결! 이상무!! 🤭🤭🤭

다락방 2022-01-24 22:21   좋아요 1 | URL
저 이제 잘겁니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똭 단발머리님 페이퍼가 있는거죠?!

단발머리 2022-01-24 22:23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럼요.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막 마트 갔다 들어왔어요. 정리하고 바로 준비해서 착오없이!
출근 시간 내가 아니까요! (찡긋)

라로 2022-01-2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주인공도 이름이 올리브! 너드들의 사랑,, ^^;;; 저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아담이 올리브 부르는 거 말고;;;)이거 시리즈 2번째는 아직 못인데요, 더 재밌다고 하네요. 단발머리님 글 기대됩니닷!^^

단발머리 2022-01-24 22:57   좋아요 1 | URL
라로님,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아주 재밌게 읽어서요. 시리즈 두번째도 읽고 싶은데 아마도 좀 기다려야되지 싶어요.
기대만발은 감사합니다만 쪼금 걱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1-2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몰까?? 뭐지???
아....궁금해요!!!!
여기도 올리브???? 궁금해요.저 요즘 올리브 사랑에 빠졌어요.

단발머리 2022-01-24 22:58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올리브책 읽고 계시지요. 여기도 올리브 나옵니다. 올리브가 사랑에 빠졌지요. 푸하하하하하!
내일 다시 찾아올께요!!

수이 2022-01-24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언제 올라옵니까?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10독 가시는 겁니까?

단발머리 2022-01-25 01:22   좋아요 1 | URL
10독은 좀 부담스럽네요. 하지만 한두번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빅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psyche 2022-01-24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이라니... 로맨스 별로인 저도 끌리네요. 단발머리님 글 기다립니다.

수이 2022-01-25 01:13   좋아요 1 | URL
언니 글 올라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저 오디오북 막 구매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2-01-25 01:18   좋아요 1 | URL
지금 막 읽고 왔습니다. 단발머리님 낚는 솜씨가 끝내주네요!

단발머리 2022-01-25 01:22   좋아요 1 | URL
어떻게요. 이달의 낚시왕 될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1-25 01:31   좋아요 1 | URL
언니도 읽으시는 거죠?! ㅋㅋㅋㅋㅋ 낚시왕 낚시 실력이 끝내주는걸요!

psyche 2022-01-25 08:19   좋아요 0 | URL
몰랐는데 엄청 인기인 책인가봐요. 도서관 줄이 장난 아니네요. 9주 기다리래요.

다락방 2022-01-25 09:14   좋아요 0 | URL
9주라니. 그냥 사버려요, 프시케 님!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1-25 09:2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9주라니... 9주는 좀 너무 머네요. 저는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ㅎㅎㅎ
아롱이 음반 사는데 무료배송 하려고 장바구니에 있던 책들 중에 표지가 눈에 띄어 주문했는데 알고 보니 요즘에 핫한 책이더라구요. 저자가 신경뇌과학자여서 그런지 이과대학 대학원생들의 고달픈 풍경이 아주 세세히 잘 그려진 듯 해요.
물론 가장 주요한 흐름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간의 ‘아름다운‘ 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간은 타자를 생각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고 앞에서 이미 말한바 있다. 인간은 이원성의 기호 아래에서 세계를 파악한다. 이원성은 원래 성적 특성을 지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동일자로 내세우는 남자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자의 범주에 분류되었다. 타자는 여자를 포함한다. 여자는 애초에 홀로 타자를 구현할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2의 성』, 117)

 


이런 주장은 자연스럽다. 세상을 나와 너로 구분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궁금했던 건 주체와 타자로의 인식에서 남성이 자신을 주체로 인지한 데 반해, 왜 여성은 객체, 타자가 될 수밖에없었냐는 점이다. 여성은 왜 자신을 주체로 볼 수 없었는가. 여성은 왜 타자로서'만' 존재했는가.

 


인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여전히 여성들은 불완전하고 주변적이어서 일종의 아종으로 규정되었다. 정치적으로 여성들은 가상 투표권이라는 빵조각이라도 대접받을 정도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일단 어떤 문제가 사회 문제라고 규정되면, 그 문제를 정치 논쟁이나 투쟁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규정되지 못한 문제는 계속 침묵 당하고, 정치에 끼어들지 못한다. 남성의 규정 능력, 즉 무엇이 정치적인 문제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를 규정하는 힘은 결국 여성들의 해방 투쟁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24)

 


기나긴 여성 혐오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추락한다.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가 지워진 채 하나의 집단으로써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값이 남성인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여성은 그렇게 타자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여성의 ‘2등 시민화의 근거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을 수도 있겠다. 해제 속 정희진 선생님이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위계적 세계관(28). 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 우주 속에서 여성은 동물보다 우월하지만, 남성보다는 열등하며, 노예근성을 타고난 남자는 여자보다는 우월하지만,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격체를 가진 최상의 남자보다는 열등하다는 식이다. 위계적 우주 속에서 모든 개별 사물에게 각각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문화의 방식으로 사회를 지배할 때, 일개 개인이 그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렌트가 접촉과 오염을 피하며 지성과 의지도, 욕구와 욕망도, 목적과 결과도 접촉하지 않은, 즉 절대적으로 무를 접촉하는 자유 공간 속에 행동을 두려고 한 데는 위험할 정도로 병적인 측면이 있다. (『남성됨과 정치』, 85)

 


그리스 정치 속에서 이상향을 반드시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아렌트의 열정을 이해하지만, 웬디 브라운의 지적대로 그것은 이미 역사적 패배를 가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된 책을 몇 권 찾아 놓았고, 자랑스러운 한나 아렌트 정치사상 세트는 구입했다. 도서관에 상호대차한 책도 받으려 가야 하는데 오늘도 못 나갈 듯싶다.


 
















공허한 정치적 논의만을 이어가기에는 정치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고결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정치가 우리 삶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혁명과 전쟁이 저문 이 세대에 변화란 결국 정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대선,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나 아렌트만큼 중요한 우리의 대통령 선거. 마키아벨리 보다 중요한 대선 공약. 베버 보다 중요한 우리의 미래. 정치 그리고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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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22-01-22 17: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01-22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이론보다 현실이 더 복잡하고, 더 어렵고 하지만 더 중요하죠. 이번 대선은 참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지형이 많은듯해요. 무언가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그 변화가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어줄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의 이념대립이나, 이분벅적 구도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2-01-22 17:47   좋아요 2 | URL
이번 판세를 분석하시던 어떤 분이 ‘빚진 게 없는 상태‘로 대선후보를 본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심지어 박근혜 마저도 국민들이 ‘부채감‘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던 듯 하고요. 이번에는 진짜 얼굴(김건희 강세)과 실력(이재명 강세)만으로 대통령을 뽑으면 될 것 같은데.... 텔레비전 토론 한 번 없으니, 앞으로도 쭉 복잡할 예정입니다.
 


















이 책이 ‘2022년 상반기의 책되시겠다. 이 책을 대출해서 집에 가져온 게 3번 정도 되는 것 같고, 이번에도 대출한 책으로 읽고 있지만, 내 책으로 읽는 거 아니어서 많이 죄송하기는 하지만. 정말 대단한 책이다.

 

천재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천재가 사는 세상을 모르니 명시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에서 그려지는 천재는 그렇다. 일반 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천재는 외롭다. 이해받기 어렵다. 여성이 천재일 때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가부장제를 내면화해 살아가는 사람들 틈바귀에서, 즉 그런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서 생활할 때, 천재인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한다.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지적으로 무력하고 결정적으로 순종적이어야 한다. 천재 여성이 그 금기를 넘어서려고 할 때, 그녀의 도전은 천재 남성이 겪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훨씬 거대하고 단단한 장애물이 그녀 앞에 높여 있다.

 



필리스 체슬러의 책은 그렇게 읽힌다. 성적으로 적극적이고, 지적으로 열정적인 여성이 겪어야만 하는 시간과 경험들. 그리고 그녀가 돕는 여성에게서 느끼는 분노와 실망의 순간들. 135쪽을 읽으면서 이 페이지의 모든 문장이 느낌표로 끝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째로 옮겨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순간이 계속 반복된다.

 


아래 문단은 137쪽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실수를 한다.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찮게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대하면서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매일 매 순간 멈추지 않고 뛰는 심장이 자꾸, 쿵쿵거린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가 내 남성 동료 교수 중 한 명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학생은 임신이 됐고 자궁 외 임신으로 거의 죽다 살아났다. 의지할 사람이 전무했던 그 학생에게 연민을 느낀 나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서 퇴원하면 내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학생을 돌보아 주었다.


어느 날 그 학생이 회복되어 활기찬 모습으로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권력을 남용해 임신시킨 그 작자를 위해 저녁 식사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놨다. "그 사람은 병원이 무섭대요.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 한 번도 저를 찾아보지 못했던 거래요. 오늘밤 그가 저를 찾아온다니 너무 설레요."


나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인간이 이 어린 여성의 어리석은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다. 학생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는 떠났던 그 남자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행복해하면서도, 자신을 들여보내줬던 여성 스승에게 감사를 어떻게 표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꽃 한 다발로 내게 감사를 표하거나 하는 데까지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할 눈치였다. 이런 행동은 마치 어머니가 우리에게 날마다 뭘 해 주든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대역죄인이다.)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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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4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4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2-01-14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인용문도 단발머리 님 마음도요.
좀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한 예인데, 나이들고 병든 몸으로 역시 나이들고 병든 남자 수발하는 늙은 여자가 안타까운데 그런 말을 하니 어떤 중년여성은 거꾸로 남자가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더군요. 아 그말이 그말이 아닌데 말이죠. 여자의 적은 여자.

단발머리 2022-01-14 15:58   좋아요 2 | URL
남자가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근데 비교가 안 될 정도인데 그 분은 그렇게 생각하시네요.
저는 그런 경우도 들었어요. 늙으신 어머니의 병수발을 중년의 딸이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힘들게 병 수발하는 딸에게 매일 짜증과 화를 내시고 와서 보지도 않는 아들을 무한걱정하십니다. 하아...
제 생각에 여자의 적은 여자라기보다는 여자의 적은 온 세상 같아요. 남자, 여자, 온 세상이 여자의 적입니다 ㅠㅠㅠ

수이 2022-01-14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은 걸로 나오는데 왜 구구절절 떠오르지 않을까요. 2022년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리 말씀하시니 다시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정독!

단발머리 2022-01-14 15:55   좋아요 1 | URL
저는 비타님이 이 책 이미 예전에 읽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ㅎㅎㅎ 비타님 페이퍼 보고 바로 대출해왔는데 밀리다가 이제야 읽네요. 다시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이 책은.... 쉽게 생생하고... 아, 그렇습니다^^

수이 2022-01-14 16:52   좋아요 0 | URL
급히 읽지 않고 천천히 정독해서 단발님처럼 근사한 페이퍼를 써보겠습니다! 알라딘 꿈나무 비타 올림! 🏋️‍♀️

책읽는나무 2022-01-14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 페이지가 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 있었어?? 읽다가 다 읽고 나니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아~~ 카페인이 다 떨어져서 인가요?ㅋㅋㅋ
근데 단발머리님은 책을 다 옮겨 적어 놓으시는 건가요??? 아무리 옮겨 놓는데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인용문을 적재적소에 넣을 만큼 기억을 다 하시는지??
신통방통 아...단발머리님의 머리를 닮고 싶습니다^^
이번 달 책은 진짜 정독해야겠어요.
불끈!!!!👩‍🏫👩‍🏫

단발머리 2022-01-14 15:53   좋아요 2 | URL
저는 읽으면서는 북플의 밑줄긋기를 많이 이용하구요 ㅎㅎㅎ 사진 찍으면 문자로 전환해주는 시스템이라니 ㅋㅋㅋㅋㅋㅋ 너무 황홀합니다. 다 읽고 나서 리뷰 쓰려면 @@ 되는 경우가 많아서 생각이 떠오르면 읽다가 바로 짧게라도 쓰려고 해요. 지금은 140쪽 읽고 있어요. 그니까 지금 읽으면서 쓰고 있는 페이퍼입니다.

저는 책나무님 국수 사진 보고 반해서요. 책나무님 손을 닮고 싶습니다. 어떤 국수도 가능케 하는 마력의 황금손!

2022-01-14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1-14 16:51   좋아요 2 | URL
단발님 국수 드시러 갈 때 여기 동행 1인 손 🤚

단발머리 2022-01-14 17:07   좋아요 2 | URL
진짜 예매해야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 책나무님 어디 사시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ktx 예매 ㅋㅋㅋㅋㅋㅋㅋㅋ

2022-01-1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1-19 13:51   좋아요 0 | URL
서울 아닐까요? 책나무님 비밀 댓글에 주소 써넣으신 거죠? 저만 안 보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1-19 14:38   좋아요 0 | URL
이런....이런....ㅋㅋㅋ
아....또 제가 바보짓을 했군요??
아...참!!!!

책읽는나무 2022-01-19 14:41   좋아요 0 | URL
아....아니군요???
아...또 헷갈렸네요ㅜㅜ
단발머리님 서재였네요..
전 비타님 댓글만 보고..비타님 서재인 줄 알고...내가 내글에 비댓을 단 줄 알고...지금 제가 오락가락 하고 있네요.
아....정신줄 잡아야 하는데...ㅜㅜ

수이 2022-01-19 15: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 오늘도 굿 데이 보내세요 나무님!

독서괭 2022-01-14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읽어보고싶어요!! <여성과 광기> 2/3쯤 읽었는데 나머지 열심히 읽어 끝내고 이책도 봐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01-14 17:0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회고록 느낌이라 아주 쭉쭉 읽히는데 내용이 후덜덜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에요^^

- 2022-01-1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상반기 책 선택해버린 승질급한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단발머리 2022-01-15 09:25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에도 강렬한 밑줄 문단을 2개나 발견했다죠. 이 책 놀랍고 또 놀라워요!! 모르고 살았던 우리의 역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1-19 13:52   좋아요 0 | URL
상반기 책에 감히 별 네개밖에 안 준 독자는 얼른 재독하고 별 다섯개를!!!
 




 












이 페이퍼는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것이다.

 


어제 일이다. 도시가스 계량기 교체 작업 때문에 기사님들이 집에 오셨고,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뭔가 실수를 하셨는지 가스 새는 냄새가 심하게 났고, 영하 7도에 대대적인 실내환기를 하고 있었다. 거실과 부엌 사이를 오가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펼쳤다.

 


뇌과학 관련 책 이렇게 세 권인데, 제일 먼저 살펴본 책은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목차를 살펴보고 페이지를 넘겨보니, , 막 이렇고, 또 이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두꺼운 책을 내려놓고. 『뇌과학 공부』를 펼친다. 이건 더하다이건 또 이렇고, 막 이런다.





 















이 책에서 저자는 뇌 공부란 <뇌구조 그리기암기’>라고 강조해 말한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보자면, ‘뇌 공부의 핵심은 노트에 그리고 쓴다이다’(4). 이 책도 안 되겠다.

 


알라딘 명랑토끼님이 읽는 책이라 저번 주에는독서의 기술』을 살짝 훑어봤는데, 그 책 60쪽에서 저자가 말한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것을 아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굳이 변명하자면, ‘슬쩍 훑어봄은 이러한 과정의 일환이다.



 













세 번째 책느끼고 아는 존재』를 펼친다. 이 책이 바로 내가 찾던 그 책이란 걸 알았다. 4장의 소제목, 의식과 앎에 관하여. 이 부분을 먼저 읽으면 되겠다.



 

 












그렇게 정리하고, 읽던 책으로 돌아간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나는 심리치료사인 바버라에게 우리 의식 고양 모임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대체 모임에 뭘 입고 올지 조마조마했어요. 그러다 당신이 《여성과 광기》로 유명해지니 사람들은 당신을 록스타처럼 대했죠. 사람들 - 여성들, 페미니스트들은 당신의 성공을 질투했고, 나는 그 사실이 충격적이고 슬펐습니다. 나는 우리가 당연히 서로의 성공을 반가워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90)

 


, 하고 책을 내려놓는다. 부끄럽게도. 페미니즘 책을 이만큼 읽을 때까지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12월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얼마큼 놀라고 얼마큼 당황스러웠다.

 















전통적으로 남성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희생이나 협력보다는 다른 여성의 도움이나 희생을 보다 쉽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기대가 비교적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다. (『여성과 광기』, 501)

 


자매애에 대한 맹신이라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환상은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재능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량이 뛰어나고 표현에 능통한 여성들 - 유명하고, 기명 기사를 쓰고, 출간 계약을 하고, 그야말로 어떤 것이든 능력 있는 여성들 -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는 내게도, 케이트 밀릿에게도, 나오미 웨이스타인에게도 일어났던 일이다. (110)

 


재능 있는 여성들, 똑똑한 정도를 넘어서서 천재인 여성들을 바라보는 다른 여성들(천재인 여성들과 일반 여성들)의 시기와 질시. 그로 인한 페미니즘 운동의 갈등과 고민.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이 서로간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너무 즐거웠다. 케이트 밀렛과 베티 프리단.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수전 브라운 밀러. 그리고 아직은 읽지 못한 책, 『여성, 거세당하다』의 저메인 그리어.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많은 이름이 있지만 내가 찾아낸 이름은 이 정도다. 읽어가면서, 더 많은 이름을 찾고 노트에 적고, 기억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 책이 도착했다. 원래는 월요일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화요일 밤늦게 도착했다. 괜찮다. 오는 게 어딥니까. 책 많이 사는 사람은 아닌지라 반가운 책손님 사진을 찍어보았다. 이민진 작가님, 죄송합니다. 알파벳 머그잔 받아야 해서 진작에 샀어야 하는 책을 이제야 구입했네요. 그래도 제가 꼭 읽을게요. 진짜예요. 곧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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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류의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시점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1-15 09:57 
    코로나19 이후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비휴머니즘(실상은 반휴머니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랏님이 부덕하여 역병이 창궐한다는 미신처럼, 인간이 잘못해서 지구가 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나름의 미신을 좀처럼 떨쳐내기 어렵다. 어느 때 보다 빠른 속도로 백신을 내놓아도,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에 옮아다니는 바이러스 앞에서 모두가 좀 더 겸손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겸손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딱히 가지고 있는 답은 없지만ㅋ, 내 경우 다
 
 
책읽는나무 2022-01-12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도시가스 작동 괜찮은 거였죠??^^
하필 한파 때ㅜㅜ
책들 이쁘네요~그리고 부럽구요.
한나 아렌트 책 넘 이쁘네요^^
며칠 전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인터뷰란을 읽다가 ‘공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쓰던데..아!! 이것이 바로 단발머리님이 아렌트 책을 사서 공부해야 한다고 하신 거였군!! 깊은 깨달음을 얻었달까요??ㅋㅋㅋ
암튼, 벌써 똑똑해진 기분이랄까요?^^

책읽는나무 2022-01-12 22:47   좋아요 5 | URL
근데 나갔다가 깜빡했다가, 다시 들어와 대댓글 남기는데요?
저렇게 어려운 뇌과학 분야 책을 읽으시는 공쟝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단발머리 2022-01-14 09:29   좋아요 3 | URL
사실 그 뒷이야기도 있는데 책나무님 안 보시고도 보신듯 알고 계시네요. 아저씨들이 보일러를 꺼놓고 가셔서 온수 난방 안 되서 좀 고민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시 가스 전화하고 막 그래서 어찌어찌 해결됐습니다.
한나 아렌트 책은 저의 자랑이며, 읽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글리로아 인터뷰는 저도 읽고 싶어요^^ 알려 주실 수 있으면 댓글 부탁드려요!!

쟝쟝님은 원래 똑똑한데다가 요즘 초고속 진화중이랍니다. 대단한 분!!!

책읽는나무 2022-01-14 10:04   좋아요 0 | URL
제가 읽고 있었던 건 <오리지널 마인드>라고 16인의 지성인들을 각각 인터뷰한 캐나다의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엮었대요.
그 책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개인적인 인터뷰 몇 페이지를 읽었어요. 단발머리님의 지성으론 아마도 이 책이 성에 안차실 수도 있어요^^
물론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하긴 하지만요ㅜㅜ
딱 읽고 싶은 사람 부분만 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할 듯요^^
전 그냥 소처럼 한 번 잡은 책은 그냥 무조건 끝까지 읽는 편인지라~~
몇 달째 계속 읽고 있네요.ㅋㅋㅋ

다시 봐도 한나 아렌트 책은 이쁘군요?^^

- 2022-01-15 10:53   좋아요 1 | URL
지가 읽는 뇌과학책은 전부다 쉬워요 ㅋㅋㅋㅋ 한태기도 안어렵고 대중용입니데이 ㅋㅋㅋ

청아 2022-01-1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근사한 책!!ㅎㅎ단발머리님 페이지는 무조건 즐겨찾기^^♡

단발머리 2022-01-14 09:30   좋아요 2 | URL
에고 부끄러워라. 근데 미미님 즐겨찾기라니 너무 뿌듯한데요!!!

mini74 2022-01-13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단발머리님 리뷰는 우와 하며 보게됩니다. 저 뇌들이 다 뭐란 말입니까 ㅠㅠ 한나 아렌트 표지도 멋지고. 알라딘 머그컵도 예쁘네요 ~

단발머리 2022-01-14 09:31   좋아요 2 | URL
저 뇌들은 바로 저의 뇌이며 미니님의 뇌입니다. 그러나 공부하기는 좀 어려워보여서 아마 저도 패쑤하게 될 거 같아요.
알라딘 머그컵 A부터 Z까지라고 알고 있어요. 구매를 권합니다^^

hnine 2022-01-13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명, 뇌 관련 책은 거의 전공 책이네요. 박문호 박사 저 분은 전자공학 전공하신 분이고 그쪽 연구소 (ETRI)에 재직하시면서도 오래 전부터 뇌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정도가 뇌 과학 전공자 수준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라서 책도 여러 권 내시고 강의도 하시고 예전에는 댁에서 정기 모임도 갖고 그랬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공학자이기 때문인지 생명현상을 설명하시는 방법도 좀 독특하시달까. 그러니 비전공자에겐 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단발머리 2022-01-14 09:34   좋아요 2 | URL
hnine님, 박문호 박사님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저도 이력 보고 좀 놀랐어요. 전자공학 전공이신데 혼자 거의 독학으로 뇌과학 쪽도 연구하신 것 같더라구요. 너투브 찾아보니 불교방송에서도 강연 많이 하시더라구요.
전 궁금해서 책을 두어권 빌려왔는데 넘 어렵네요. 하하하. 자신 없어집니다.

다락방 2022-01-13 0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ㅋㅋㅋ 저 올리신 사진들 보고 뭐여.. 하고 바로 내렸습니다. 어차피 봐도 모를것이다..하는 마음에 ㅋ 그러면서 그런 제가 웃겼어요. 나란 사람... 저도 <느끼고 아는 존재> 샀는데 휴 현명한 선택이었네요.

안그래도 저 오늘 아침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단발님 페이퍼로 이렇게 딱 보게 되네요.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요? 그리고 지난번 단발머리 님 페이퍼에 한나 아렌트 등장해서 이 책들을 사야한다 아니다 막 이랬잖아요? (살겁니다.) 근데 오늘 읽은 <남성됨과 정치>에 한나 아렌트가 나오는 겁니다. 세상에...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어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2-01-14 09:38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사진 보고 왜 내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 책 훑어보다가 와... 이건 뭐... 이야... 하면서 굳이 사진으로 찍어서 올린 거란 말이에요. 나만 고생할 수 없다!! 이러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느끼고 아는 존재>는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 책은 위의 박문호 교수님 저작은 아니고 감수하신 책이라 하더라구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넘 좋아요. 저 어제 밤에도 머릿 속으로 페이퍼 하나 썼어요. 자매애 연대와 우리의 갈 길. 천재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막 이런 식으로 제목 여러가지 붙이면서요.
우리의 연결은 이렇게 공고하네요. 꽈배기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요!!! (이거 비유 적정한가 모르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01-15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 가>를 읭? 하면서 보다가 <느끼고 아는 존재> 나와서 안심함. ㅋㅋㅋ <느끼고 아는 존재> 전에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먼저 읽으시면 더 좋을 것 같은 데. 읽지 말고 바로 넘어가시라고... 제가 페이퍼를 써볼까?생각 중입니다. 생각만 중입니다. 아 어쩜 좋지? 어쩜 좋단 말이지? 몸이 천개 만 개였음 좋겠다!!!! 그리고 저 <느끼고 아는 존재> 읽는 중인데... ㅇ ㅏ.... 그 쪽으로 또 넘어가야죠... 갑자기 다시 백수되고 싶네요. 흑...... 또... 아.. 한나 아렌트... 아.... 하이데거... 현상학...... 뇌 터진다... 역시 안되겠어요. 유산소 운동을 좀 더 하겠습니다... ㅋㅋㅋ 제 해마의 기능 향상을 위해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1-15 09:29   좋아요 3 | URL
저도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읽고는 싶은데 계속 뒤로 밀리다가 아랫집으로 통하는 계단까지 밀릴 판입니다. 쟝쟝님이 페이퍼를 써준다면 너무나 너무나 좋을 듯 한데, 쟝쟝님 바쁜데 어쩌나... 하면서 기다리는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읽으면서 느끼는 건 내가 정확히 궁금해 하는 건, ‘의식‘의 범위와 ‘작동 방식‘인 듯 해요. 뇌의 기능이라기보다는요. 뇌가 결국 1.4키로의 살덩어리고 우리의 판단이라는 것이 ‘전기신호‘에 불과한 것이라면, 의식은 어디있나. 나는 그런게 궁금해요. 영혼의 자리, 마음의 위치를 찾는 중세인의 심정이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산소 운동해야 해마 기능이 향상된다고요? 그런데 운동은 커녕 산책도 자신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01-15 09:39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궁금해요. 궁금하고 사실은 원하는 방향(?)도 있어요. ㅋㅋㅋㅋㅋ 아 책 읽고 싶다. 너무 읽고 싶은게 많은데 나라는 자원은 한정적이라서, 이거 뒤적 저거 뒤적 하다가 다 30페이지씩만 읽고 눈물흘리는 상황 연달아 발생중이예요. 페이퍼 썼습니다. 이제 아는 존재에 집중하셔도 될것 같아요 뿅!

독서괭 2022-01-15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페이퍼네요~😍 연결되어 있는 작가들! 페미니즘 공부 시작하면 읽을 책이 또 한정없이 늘어날 것 같아요 ㅎㅎ 한나아렌트 전집은 저 옛날에 사줬는데 간직하고만 있네요 ㅋㅋ 이노므 전집들 언제 박살(?)을 내야하는데 ㅠㅠ

단발머리 2022-01-15 20:23   좋아요 2 | URL
고전 속 작가들이 서로 만나서 밥 먹고 사진 찍고 그런 이야기들 나오는데 저, 정말 가슴이 막 떨리고 그래서요. 앞으로도 계속 영웅들과 위인들이 연속적으로 출현할 예정입니다.
이노므 전집들은 언제 날 잡아 어디 들어가야 박살(?)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