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이웃님이 극찬해 마지않는보이지 않는 잉크』를 읽고 있다. 알라딘 이웃님은 여러 번 모리슨 읽기를 권했는데, 사고의 폭과 깊이에 크게 감명받은 듯했다. 내게는 좀 어렵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어렵네라고 말하는 순간, 내 안의 편견도 같이 드러난다. 토니 모리슨의 말, 인터뷰, 에세이는 어렵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정. 그녀가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배제하고 내가 이렇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

 


2011 3 1,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의 특강 프로그램의 강연 제목이 보이지 않는 잉크. 토니 모리슨은 알아보는 독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행간에 그리고 행의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잉크라고 말한다. 또한, 쓰이지 않은 것이 쓰인 것만큼 의미심장하기에 의도적인 공백, 의도적으로 유혹하는 공백을 알맞은독자가 채워가며 텍스트를 온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21) 능동적이고 활성화된 독자를 쓰기에 참여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잉크가 행간에 숨겨져 있어 독자의 발견을 기다리는 데 반해, ‘흰 잉크는 이미 쓰여 있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 엘렌 식수가 말하는 그대로다.

 



여성 안에는 언제나 최소한 약간의 좋은 모유가 늘 남아 있다. 여성은 흰 잉크로 글을 쓴다. (21)

 


글을 쓴다는 것은 행위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여성에게 자기 고유의 힘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여성과 그 성, 여성과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존재와의 탈-검열화된 관계를 실현시킬 것이다. (19)

 

 

인류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며, 백인의 역사이고, 서구의 역사이며, 남성의 역사임을,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역사를 기술할 기회가 없었다.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쓸 수 없었고, 종이가 없었고, 잉크는 흰색이었다. 써라. 글을 써라. 너 자신의 글을 써라. 너 자신의 육신을 글로 써라. 남자들의 규칙과 코드를 무너뜨리는 새 언어로 써라. 엘렌 식수의 명령이 귓가에 울린다.

 

 


2013년이니까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도서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여자, 여자로서의 삶, 여자의 일생, 어머니, 어머니라는 이름, 어머니의 위대함 그리고 엄마. 이런 류의 책에 딱 질색인 내가 그림(그림: 장차현실)에 끌려 무심코 책을 펼쳤고, 내 처지에 딱 맞는 문장을 만났다. 반가웠고 한편으론 절망했다.

 



다음날 아침이 지나면 집은 다시 거짓말처럼 어질러져 있다. 벽에 기대 앉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다. 어디부터 또 손을 댈까. 아기는 자기만 보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옆에서 머리를 바닥에 박아댄다. 집이 나에게도 쉬는 곳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집을 나가서 쉬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30

 








이런 책, 이런 문단은 또 어떤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직업적 성취 사이에서 자아가 찢기면서 날마다 울었습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내가 내 경력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고통받을 때, 남편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저는 만신창이가 되고, 남편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은 책 어엿한 4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 모성애로부터 막대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남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토록 강력한 권력이라는 것을 저는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모성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서 아이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도 괜찮으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엄마가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이유이고, 절차입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59)

 

 


나는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했다. 부모님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됐고 이 세상을 살 동안에는 도저히 바다와 같은 그 은혜를 되갚아 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이미 성숙한 상태로 부모 혹은 엄마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난 그러지 못했다. 축복받은 결혼이었고 예정된 임신이었고 기다리던 출산인데도 그랬다. 포기하되 기쁘게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꾸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복했다. 그 자체로는 진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 길지 않은 육아의 시간 동안,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와중에도 나는 외롭고 슬펐고, 방황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책 어디에도 그때 내 실존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답이 없었던 게 아니라, 질문이 없었다. 답변이 미흡한 게 아니라 의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저번 주에 도서관을 거닐다가 책 제목에 엄마도서관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책을 보게 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이고,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일단 대출해서 가져왔다. 집에서 살살 넘겨보는데, 내용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도서관을 통한 육아가 중심이었다. 좀 아쉬웠던 건 도서관 영어책을 통한 아이 영어교육 챕터였다. 이런 구성이 일면 이해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전업주부가 도서관에 열심히 출입하고 부지런히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책 육아를 통해 아이를 잘 교육하고, 영어도서를 통해 아이에게 효과적인 영어 학습을 하기 위해서라는 뻔한 결론이, 여기 하나 더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쓰기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업주부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것뿐인 사회라면 개인으로서는 실내 인테리어, 부동산 투자와 더불어 자녀 교육이라는 임무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것마저 여성의 일이며, 여성에게 맡겨진 것이고, 여성이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부터는 아니 에르노의얼어붙은 여자』를 읽는다. 작가 스스로는 소설로 명명했지만, 독자들은 모두 자전적 이야기로 읽는다는 소설 아닌 소설. 원피스를 입고 나무를 타는 자유로운 에르노는 공부에만 신경 쓰라는 어머니의 격려 속에 자라나지만, 결혼 이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빠진다. 공부하는 여자가 겪는 사소하고 거대한 고민들. 여자가 제대로공부할 때 일어나는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을. 에르노는 썼다. 에르노는 자신을 글로 써서 자신이 겪은 불합리함을 세상에 내보였고, 그리고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것이 그들의 일이 아님을 밝히 보여주었다. 에르노가 써서 가능했다. 에르노가 보여줬다. 자신을 글로 써서, 에르노가 보여줬다.

 


 

소꿉장난 같은 식사 때문에. 대학 식당은 여름에 문을 닫았다. 정오와 저녁에 나는 냄비 앞에 혼자가 된다. 나는 그보다 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그저 빵가루 묻힌 송아지고기 커틀릿, 초콜릿 무스나 할 줄 알았지, 특별한 것은 할 줄 몰랐다. 그나 나나, 어머니 치마폭에서 요리를 도운 과거가 없었다. 왜 둘 중에서 나만 이것저것 해봐야 하나, 닭은 얼마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지, 오이의 씨는 제거해야 하는지, 그런 걸 알아보려고 왜 나만 요리책을 탐독해야 하고, 그가 헌법을 공부하는 동안 당근 껍질을 벗기고, 저녁을 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해야하는가? 어떤 우월성의 명목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가?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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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0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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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3 0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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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3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3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5-13 09: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리슨 전작에 도전하고 있
습니다.

일단 11편의 소설은 모두 섭외해 두었
습니다. 심지어 <홈>도 원서로다가...
번역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은 소설은 모두 7개네요. <자비>는
인연이 있는 책이라 재독해야 하는데
게으름 탓에 미루기만 하네요.

물론 <잉크>도 7월에 중고서점에서
업어올 예정입니다.

단발머리 2021-05-13 09:35   좋아요 3 | URL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레삭매냐님의 전작 도전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음이 갑니다. 11권을 미리 준비하는 그 치밀함에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구요. 전 모리슨 작품은 두 권 읽었거든요. 저도 모리슨 전작읽기 도전! 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작년에 외쳐둔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가 아직도 지지부진해서 모리슨 작가님을 잠깐 미뤄두려 합니다.
레삭매냐님의 잉크 입수기도 기다리겠습니다^^

잠자냥 2021-05-13 1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단발머리 님 말씀에 공감. 좀 쉬운 에세이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가 어려워서 콰쾅- 놀랐어요. 그런 한편 아, 토니 모리슨 역시... 멋진 여자, 똑똑한 여자... 강의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 막 이랬다능.

단발머리 2021-05-13 11:22   좋아요 3 | URL
네 그러게요. 저는 읽다가 책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 글쎄, 표지도 책 모양새도 두께도 크기도 모두 ‘나 어렵다, 어려운 줄 알아라‘ 이렇게 생긴 거에요. 저의 무지와 센스없음을 새삼 깨닫고 있는 독서 중입니다.

그나저나 전 오늘 알게 된 정보 중에 잠자냥님 소세키 작품 다 읽으셨다는, 그 정보가 제일 놀라운데요. 게다가 한 번 더 읽기도 하신다고요? 잠자냥님은 혼자 48시간을 사시는 겁니까? 이게 질문 1이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세키 전집 읽기를 추천하시나요? 이게 질문 2입니다^^

잠자냥 2021-05-13 11:29   좋아요 1 | URL
제가 서른 초반... 아 나 스무살 잠자냥이지;; 10대 초반부터 읽기 시작해서 야금야금 하나씩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소세키 전집 읽기 추천합니다... 오, 생각난 김에 페이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5-13 11:41   좋아요 2 | URL
스무살 잠자냥님!! 어쩜 이리 이른 나이부터 읽기의 즐거움을 아셨는지요. 특히 스무살이시라니. 이런 독해력에 이런 끈질김에 더해 젊음이라는 강력한 자원을 소유하고 계신 잠자냥님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저는 <마음>이랑 <문>이랑 한 권 더 읽었는데 기억은 안 나네요. 심심한 소세키를 좋아합니다만 <산시로>에서 좀 헤매고 그랬습니다. 페이퍼 올려주신다니 기대만발입니다. 박수치는 사람 저 혼자 아닙니다. 제 옆에, 그 옆에, 옆에 옆에 사람들, 떼로 박수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1-05-13 12:00   좋아요 2 | URL
저는 소세키 취향 딱히 아니지만 어쨌거나 잠자냥 님의 소세키 특집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벌써부터 증거사진 기다려져요. 증거사진을 내놓으세요!! >.<

잠자냥 2021-05-13 12:5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증거 사진 집에 가서 찍어야 하니까 페이퍼는 낼 올리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단발머리 2021-05-13 13:08   좋아요 1 | URL
우아하하하하하하하!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기대만발 소세키 특집 페이퍼!!!!

독서괭 2021-05-13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문장 한문장 모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ㅜㅜ 저도 두아이 키우는 엄마인지라..휴....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읽고 있어서 다 읽고 <보이지 않는 잉크> 읽어보려 했는데 단발머리님이 어렵다고 하시니 많이 어려울 것 같아 고민되네요.. <얼어붙은 여자>도 찜해 둔 책이예요!

단발머리 2021-05-13 11:24   좋아요 2 | URL
<보이지 않는 잉크> 어렵지만 꼭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요. 저도 아직 읽는 중이거든요. 친구는 원서를 사고싶다! 이런 이야기도 했더랬습니다. <얼어붙은 여자>도 찜해 두셨다니 반가워요. 저는 친구들이 노래하는 ‘에르노‘, 이 책도 에르노 이름만 보고 대출해왔는데, 이틀을 에르노와 함께 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유부만두 2021-05-13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리슨 책이 어렵군요. 아직 안 시작했..... (하하하, 온라인 보관함 뿐 아니라 오프라인 우리집 보관함에도 책이 많다우)
그런데 소세키 책 전 두 권 밖에 안 읽었는데요, 찌질한데 은근 안 미워요. ‘그후‘는 애정합니다. 그래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길티 플래저)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2021-05-13 11:43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평소와 다름없이 말이지요) 읽었는데 구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렵지만 좋으네요.
앗! 그리고 제가 기억 안 난 그 책이 <그 후>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님 댓글보니까 생각납니다.
제가 유부만두님 오프라인 보관함을 엄청 부러워하잖아요. 그 우아한 자태를 말이지요.

- 2021-05-13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페미니즘 공부하며 보이지 않는 잉크와 흰 잉크라는 단어가 너무 슬퍼서 애간장이 녹았었어요. 이제 우리는 우리를 써요. 잘 모르겠는 마음을 써요. 흰종이에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더라도. 저도 보이지 않는 잉크도 읽겠사와요. 그리고 그리고 이 페이퍼 너무 슬프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읽었어요..

단발머리 2021-05-13 12:12   좋아요 2 | URL
이 페이퍼가 그렇게 근사하고 뭐 그렇지는 않지만 이 페이퍼 제목은 꼭 쟝쟝님한테 바치고 싶어요.
엘렌 식수의 당부....잊지 말아요.

그대 자신을 글로 써라.

- 2021-05-14 18:17   좋아요 0 | URL
그릅시다. 그대 자신들을 글로 써보입시다!!! 뭐랄까. 고스란하게 전해졌어요. 어떤 언어에도 정착을 하기 어려웠을 (심지어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하더라도) 단발님의 마음이.

다락방 2021-05-13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리슨 책 저도 (아마) 샀는데, 아아 어렵다니. 각오 단단히 하고 읽겠습니다.
게다가 아니 에르노의 인용하신 문장 참 좋네요. 아니 에르노.. 크- 아니 에르노 저 책도 사서 읽겠습니다.
아 왜이렇게 살 책 많아요. 어제였나 그제였나 10만원어치 주문한 책 아직 박스 도착도 안했는데요.

<내 날개옷은 어디갔지?>의 인용하신 문장도 절절하네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한참 곱씹었을 단발머리님을 떠올려봅니다.

단발머리 2021-05-13 12:10   좋아요 1 | URL
저는 아니 에르노 여러분들이 그렇게나 외치실 때 왜 안 읽었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아니 에르노 이름 보여서 도서관에서 들고 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제가 거의 다 읽어가서요. 다음 리뷰도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 책 엄청 많지요 ㅋㅋㅋㅋㅋㅋ책이 얼른 도착해서 아름다운 책탑 사진 볼 수 있었음 하네요.

저는 이제 날개옷은 없어졌다는 걸 확인해서요. 다른 옷 찾고 있어요. 날씨가 더워져서 반팔에 반반지도 괜찮을거 같고요.
다락방님의 응원과 응원과 응원, 항상 감사해요.

다락방 2021-05-13 1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태그 보고 꼭 댓글 달고 싶네요.

고! 추!

단발머리 2021-05-13 12:11   좋아요 1 | URL
라고 제가 명시적으로 태그 달았다는 것을 알아주는 다락방님의 세심함에 기립박수 보냅니다. 짝짝짝!!!

잠자냥 2021-05-13 12:3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 북플로 보다가 꼭 다시 서재로 와서 확인한 1인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3 12:38   좋아요 1 | URL
언제나 환영합니다!!! 꼭 다시 서재로 봐주시는 센스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러비드>도 읽다 어려워서 포기했는데, 이 책도 어렵다니, 전 토니 모리슨을 읽기엔 능력이 부족한가 봅니다. 저런~ 언제쯤 다시 도전을 해야할지..ㅠㅠ

단발머리 2021-05-14 10:36   좋아요 1 | URL
저도 빌러비드 어려웠어요. 이 책은 그런것 같아요. 어렵지 않겠지,라는 예상을 깔고 시작했거든요, 저는요. 그래서 어려웠던 거 같아요. 토니 모리슨의 문학론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없이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ㅎㅎ
 




 













여섯 번째 단편 <Light>를 읽는다.

 

“You’re scared to die, even at your age?”

Olive nodded. “Oh Godfrey, there were days I’d have liked to have been dead. But I’m still scared of dying.” The Olive said, “You know, Cindy, if you should be dying, if you do die, the truth is – we’re all just a few steps behind you. Twenty minutes behind you, and that’s the truth.” (128)

 


아픈 신디를 찾아온 올리브. 그녀 역시 죽음이 두렵지만 사람들이 외면하는 신디를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준다. 이렇게 나이 든 자신 역시 죽음이 두렵노라 말해준다.

 


 

죽음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를 자주 생각한다. 다음 달이 되면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된다. 맞은편 신호등에 시아버지 키에 시아버지 체격의 어르신을 발견하면 아직도 움찔하고 놀란다. 시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하루에 두 번씩 매일 면회를 갔다. 시아버지의 임종을 보았고 입관에 참석했고 화장터에 함께 갔다. 수목장에 모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시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시아버지를 모신 수목장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여보, 우리 왔어요. 애들이랑 같이 왔어요. 도련님이 말한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시아버지는 여기 안 계시는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여기 안 계시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시아버지는 어디 계신가.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시아버지의 실체인가. 실물로서의 시아버지인가. 시아버지의 생명활동이 완벽하게 멈춰지고 그 분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는 걸 두 눈으로 보았는데, 여기 바로 이 자리에 묻히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시아버지의 무엇을 찾는가. 내가 찾는 것은 시아버지의 마음인가. 나를 예뻐해 주셨던 마음인가. 남편에게 남아있는 시아버지의 정갈함인가. 간곡히 부탁하셨던 그 때의 그 말씀인가. 나는 무엇을 찾는가.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이 두렵다.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 처하는 것, 그런 것이 두렵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두렵다. 내세를 믿는 사람이니까, 내게 죽음은 단절과 종말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일 뿐이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 않다.  


 

요즘에는 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 때문인 것 같다. 노쇠한 부모님을 돌보는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젠 돌아가셔야지라고 그녀가 말할 때, 그 순간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렵다. 너는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 그 상황이 얼마나 고달픈지 몰라서 그래,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지만, 암담한 마음만은 어쩌지 못하겠다. 탄생만큼 신비한 죽음이, 이렇게 이해되는 게 서글프다. 나 역시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니까.

 














존경하고 애정하는 유시민 작가님이 알릴레오에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 도서관에서 얼른 대출해왔고, 마지막 단원을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을 아니까) 가열차게 읽었다.

 


춥고 황량한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면 웅장한 설계도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바깥이 아닌 내면이다. 이미 제시된 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과학은 바깥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어둠을 뚫고 소리와 침묵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영혼을 자극할 것이다. (459)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그 끝을 말해주겠다던 브라이언 그린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면으로,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이 책을 지은 과학자의 결론이다. 그리하여, 이 우주에서 더는 발견될 수 없는 고유하고 특별한 원자의 조합으로서 내가 할 일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것. 소설을 읽는 것. 올리브를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필멸의 존재인 나 인간이, 예정된 죽음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 방법을 써보려 한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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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10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십분 앞서냐 이십분 뒤냐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은 올리브의 말대로 the truth 지요. 다시, 올리브가 참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노년의 올리브가 참 좋아요.

단발머리 2021-05-13 07:43   좋아요 0 | URL
전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지 않았잖아요 ㅎㅎㅎ 아시잖아요. 저는 더 젊은 올리브도 기대하고 있어요. 어떤 올리브가 더 좋을지, 그걸 또 판단하고 싶어집니다. 헤헤.

mini74 2021-05-10 2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올리브를 꺼내서 읽을 때가 있어요 어떤 부분이 나와도 별 상관없이 다시 맘이 따뜻해져서 책을 덮곤 헙니다.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어디든 펼쳐 들고 싶네요 *^^*저 커피우유도 탐나는군요 ㅎㅎ

단발머리 2021-05-13 07:44   좋아요 1 | URL
전 <버지스 형제> 읽고 이번에 두 번째 스트라우트를 읽는 건데요. 너무 좋으네요. 두 번째 읽어도 좋아서 저도 미니님처럼 가끔씩 꺼내 읽을 것 같아요. 커피우유는 아롱이 스탈입니다. 제가 뺏어먹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애정하는 작가. 정희진 그리고 유시민. 저랑 똑같네용!ㅎㅎ

단발머리 2021-05-13 07:46   좋아요 1 | URL
에 이어서 좋아하는 작가 이름대기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샬롯 브론테, 마거릿 애트우드, 대프니 듀 모리에랑 최은영이요. 툐툐님 이어가세요~~~~~~~

붕붕툐툐 2021-05-13 23:11   좋아요 0 | URL
우왕~ 최은영님만 빼고는 잘 접해보지 않은 작가들이네요~ 분발하겠습니다.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줌파 라히리, 박경리욤!ㅎㅎ

단발머리 2021-05-14 10:40   좋아요 1 | URL
그럼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츠바이크, 줌파 라히리, 박경리 받고 나쓰메 소세키, 필립 로스, 아룬다티 로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리고 정세랑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4 23:18   좋아요 0 | URL
ㅋㅋ아까 리뷰보고 정세랑도 여기 들겠다 했는데 역시네영! 책 좀 더 읽고 올게요!(엄마 젖 더 먹고 와라 이런 분위기~ㅋㅋ)

수이 2021-05-10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깨 스틱에 눈독 들이면서 앤드 오브 타임이라구요? 하고 적어놓아요. 이탈리아에 가게 된다면 말이죠, 저는 그 옮기신 문장 안에 있는 내면이란 것에 조금 더 다가가고 싶어요. 차마 제가 가진 모든 틀들을 가볍게 손짓 털듯 버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저는 그 안으로 더 성큼성큼 겁도 없이 내딛고 싶어요. 그래서 세상 끝간데 없이 다정해지고 싶어요. 20분 먼저 앞서가는 이들에게 나보다 20분 더 늦게 올 이들에게 끝간데 없이 다정해진다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1-05-13 07:51   좋아요 1 | URL
참깨 스틱 1+1 이라서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먹었습니다. 슬픈 일이죠. ㅎㅎㅎㅎ 수연님은 내면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성큼성큼 걸어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자주 보았거든요. 끝간데 없이 다정해지고 싶지 않아도 돼요. 이미 그런 사람입니다. 세상 끝간데 없이 다정하십니다, 수연님은^^

유부만두 2021-05-13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깨스틱 품절이래서 슬픈 아침입니다. 더해서 ‘다시 올리브‘ 아직 안 읽은 사람이라 슬프고요. 책은 있는데요.

단발머리 2021-05-13 11:44   좋아요 1 | URL
참깨스틱 품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시 올리브‘ 아직 안 읽으신 건 축하할 일 같아요.
놀라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부만두님^^
 

















7년 전쯤에 아이패드를 샀는데, 내가 필요해서 사기도 했고, 기계 좋아하는 아롱이가 사용하는 걸 가능한 한 막아야 해서, 처음부터 이건 엄마꺼라고 확실히 말했다. 마침 어린이날 즈음이라 엄마가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거라고 했다. 뭐라 뭐라 퉁명스레 말하기는 해도 특별한 말은 없더니만, 며칠 뒤 다른 일로 혼나고 있는데 별안간 그 일을 들먹인다. 근데 엄마는 어린이도 아니면서 왜 어린이날 선물 받아! 으아앙앙앙!!!


사야하는데 사야하는데 미뤄뒀던 책이 어제 오후에 도착했다. 선물해주신 마음은 그 뜻대로 따뜻한 마음이 분명할 테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내게 이 책은 어린이날 선물 같().


제목이 진지하니 올해 어린이날에는 진지한 어린이가 되어볼까 한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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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5-05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월은 푸르구나아 우리들은 자라안다아~

단발머리 2021-05-05 13:19   좋아요 0 | URL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수이 2021-05-0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나게 놀도록 하자. 밀면 먹고싶다. 부산의 밀면 으아아아아악

단발머리 2021-05-07 11:53   좋아요 0 | URL
으아아아아악! 시원하고 담백한 부산밀면이 나를 부릅니다! 아흐!

다락방 2021-05-0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란히 꽂힌 책들하며 너무나 지적인 책상입니다 🥰

단발머리 2021-05-07 11:55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ㅎㅎ 많이 빌려오기는 했는데 속도가 따라주질 않네요. 문제는 스피드입니다. 책상은 저의 최애템^^

- 2021-05-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더 두근거리는 책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이 가운데 딱 보여요. 울프일기도... 아 저도 빨리 이번에 온 책들을 찍어서 올릴것이다!!

단발머리 2021-05-13 07:52   좋아요 0 | URL
펭귄 친구 사진만 올라오더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파블로 좋아요. 그런 자세 좋아요. 펭귄인데 추위가 싫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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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Olive, Again』을 같이 읽고 있다. 일주일에 한 챕터씩 읽기가 계획인데 미루는 성격이라 금요일 오후쯤 되어야 아! 올리브! 하고 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숙제가 급한 초등학생처럼 바쁜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하지만, 소설 자체가 갖는 이야기의 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휘리릭 빨려 들어간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58)

 


이 구절이 좋았다. 올리브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잭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영화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올리브의 생각이 그대로 표현되는 장면.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올리브의 생각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상황. 그런 순간이 좋다. 전능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과 생각, 계획과 예상 그 밖에서 마치 인형 같은 주인공을 내려다보는 순간.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사야지! 하고 결심했다.

 

 

소설은 흔히 가볍고 쉬운 이야기라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역사의 격랑’, ‘이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화와 타협같은 거대 담론을 주제로 삼지 않으면 더더욱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예전 학교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고, 먼 도시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과 사별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이제 더는 혼자 살 수 없어 요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이 모든 과정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 이런 경험들은 모두 하찮게 여겨진다.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간으로서의 불행과 행복은 이런 작은 순간에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친구 중에 엄마를 집에 모시고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돌보거나 저녁을 챙겨드리는 친구들이 모두 넷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울 때, 그때 느끼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모든 일을 사랑과 도리, 효와 애정의 문제로만 설명한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 그 모든 무거운 짐을 껴안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딸, 며느리, 손녀는,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불평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이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은 일이고, 효심이 부족해 생기는 마음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 이생을 살고 늙어가고, 그리고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이 좋았다. 무리 부인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고, 그래서 또는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건 다른 인간의 관심과 애정,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손길이라는 걸 말해줘서 좋았다. 

 


좋았던 또 하나의 구절은 바로 여기다.

 


잠시 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 가지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잰이 그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는 그만의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는 숱한 비밀을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비밀은 전혀 나쁠 게 없다고, 그는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189)

 


만나자마자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해결책을 찾는다기보다는 고민의 토로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된다. 고민을 넘어 쉽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 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져도 차분히 그 이야기를 듣는다. (단발머리의 고민 상담소 : 비밀 보장) 내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이라 내게 말하는 것일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 마주 앉아 가만히 비밀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웬만큼 비밀을 털어놓은 후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저요? , 뭐요? 제 고민이요? 아니, 제 비밀이요? 그니까? ? 작은 거밖에 없어요. 제 고민은 다 자잘하고. … 제 비밀이요?

 


비밀이라.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온 세상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도 무척 많은데. 하지만 내게도 한두 개의 비밀은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비밀은 아니지만, 지난한 과정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비밀인 비밀. 난 누구에게도 그 비밀을, 비밀들을 말하지 않았다. 글로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면,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면, 94세쯤에 비밀과 비밀들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내렸던 바보 같은 결정과 그로 인한 파장,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과 그래야만 했던 결정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후회에 대해 쓰고 싶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쳤던 수많은 밤과 밤처럼 어두웠던 낮과 눈물의 기도들과 내 기도의 응답에 대해 쓰고 싶다. 94세쯤에 그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하지만 그전에는 말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다. 내 비밀은, 내게는 이렇게나 크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버니가 수잰을 위로해줄 때, 앞으로 그녀가 간직하게 될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밀의 책임은 네가 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때, 좋았다. 수잰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한 버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비밀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버니가 허락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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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7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5-04 0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저도 너무 좋아요. 번역본 읽기 위해 원서도 다시 이북으로 읽거나 보고 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들이 찾아와서 막 눈물도 나고 그래요.
저는 이번편에서 수잰이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왔다고 말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도 결코 망가지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남편은 아내를 학대하고 엄마는 아들을 학대하고 아들은 여성혐오살인을 했는데, 거기에서 바람핀 거 가지고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수잰을 보면서 인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싶더라고요. 왜 어떤 이는 여자를 찔러 죽이는데 어떤 이는 바람핀걸로 고통받나. 왜 특히 그 부분 있잖아요. 아버지가 바람피웠던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처럼 될까봐 너무 걱정된다는, 그 부분이요. 저는 거기서 너무 아팠어요. 저도 다시 올리브 다시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그 부분에 대해 페이퍼 쓰고 싶었는데 바빠서 못썼네요.

다시 올리브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1-05-07 12:03   좋아요 1 | URL
전 무엇보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중요한 경험들이 사소하게 여겨지는게 그런게 너무 아쉬워요. 수잰에게 버니는 사실 동네 아저씨잖아요. 아빠의 대리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잰을 아는 사람… 이런 관계가 무척 중요한거 같아요. 근데 요즘은 점점 더 이런 관계를 갖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이사도 잦고 또 아무래도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그러니까요. 전 그 챕터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느슨하지만 긍정적인 관계, 인사를 나눌수 있는, 경쟁하지 않는 관계…

다시 올리브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저한테도 그래요.

mini74 2021-05-0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같이 읽으신다니
부러워요. *^^* 같이 밥 먹으면 식구라는데 같은 책 읽으며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마음의 식구가 되는 건가요 ㅎㅎ

단발머리 2021-05-07 12:08   좋아요 1 | URL
‘마음의 식구’라는 미니님 표현은 제가 오래오래 기억하고 사용하고 싶어요. 같은 책을 읽는 건 그 어떤 일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 맞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알라딘 이웃님들도 제게 그런 마음의 식구입니다*^^

- 2021-05-1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땐 (꼭 이럴 때만) 제가 나이어린게 다행입니다. 94세에 단발님 비밀 이야기의 굳 리스너가 될겁니다. 제가 번호표 1번 뽑아써요? 예약이예요.

단발머리 2021-05-13 07:54   좋아요 0 | URL
우아아아아아아앙!!!! 번호표 1번이 쟝쟝님이라면 94세가 아니라 74세 정도로 확 당길까 해요. 예약증은 문자로 발송됩니다.
시간 엄수하시고요. 번호 지나가면 기다리셔야 돼요!!!

초딩 2021-06-0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단발머리 2021-06-07 12:5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초딩님!! 제가 답이 늦었네요!
오늘 월요일이지만 좋은 날 되시길 바래요!

서니데이 2021-06-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6-07 12:5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요즘 자꾸 눈이 침침하다. 이불 속에서 유튜브 많이 봐서 그렇다. 아롱이한테 여러 번 걸려서 잔소리 대마왕의 속사포 공격과 압수 공격을 당했는데도 그런다. 안 그러려고, 다시는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그런다. 이불 속에서 유튜브 보다가 잠들면 아침에도 개운하지가 않다. 고쳐야 할 텐데, 그만 봐야 할 텐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성경은 1권이지만, 원래는 상하처럼 구약과 신약이 있고, 각각은 39권과 27권으로 총 66권이다. 성경 66권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로마서이다. 로마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졌다는 단점이 있지만, 로마서 그 자체로는 상당히 독특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흔히 이런 비유를 쓴다. 성경 전체를 다이아몬드 반지라 했을 때(다이아몬드 싫으면 다른 보석도 된다. 다만, 알반지이어야 한다. 보석이 박힌 반지), 로마서는 그 보석, 다이아몬드에 해당한다. 그만큼 기독교의 정수를 밝혀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마서 7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두개의 존재가 내 안에 공존한다. 하나는 선을 행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려고 한다. 두 개의 세력 가운데 이기는 쪽이 나를 다스린다.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과 책을 더 읽고 싶은 마음 중 하나의 마음이 나를 지배할 터인데,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이긴다면 나는 유튜브를 보게 될 것이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이긴다면 나는 책을 읽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즉 책을 보는 일을 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것, 유튜브를 보는 악을 행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왜 선을 원한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는가.

 


그제는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시몬 보부아르 책을 이번에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고,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은 130쪽까지밖에 읽지 못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도 끝부분을 읽지 못했고, 『A little princess』은 두 쪽 읽고 반납했다. 반납하러 갔던 도서관은 조명과 바닥에 신경 쓴 예전의 그 도서관이 아니고, 집에서 더 가까운 평범한(?) 도서관이다. 아파트 숲 사이에 파묻혀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곳인지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편이다.

 

책을 반납하고 책장 사이를 거니는데, 구석구석 빈 자리가 보였다. 작은 공간이라 이제 어디쯤에 어느 작가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했는데, 인기 많은 몇몇 작가의 책들은 이미 꽤 해진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실망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고 싶지는 않다. 빨리 읽지 못하는 편이고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라서 항상 가벼운마음으로 독서를 한다. ‘놀이로서의 독서가 내게는 가장 친숙하다. 그런데 책장을 돌아보다가 실망한 내 마음속에, 여기 작은 도서관, 사람들이 찾지 않은 이 작은 도서관의 2, 여기 몇 개의 책장의 책들은 다 읽어볼까 하는 계획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겐 그럴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간만에 둘러본 책장의 책들이 조금씩 해져 있었다. 책들이 나처럼 늙고 있었다. 나는 실망했다. 눈은 침침한데 책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의 서재에서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나는 천문학자는 아니지만 이런 의문을 자주 갖는다. 나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존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이 넓은 우주에 하나님께서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환경 파괴를 일삼는 인간만을 만드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조우할지도 모를 지구 외부의 존재에 대해 항상 궁금하다.

 

또 내가 궁금한 것은 흑인들이 억압자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내면화시켰는가, 이고(관련 도서 추천받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명백한 악행보다 위선을 더 미워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상처 주는 말도 서슴치 않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그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솔직하게나쁜 말을 하며, 그리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이다.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심한 말을 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자리에서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한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내 앞에서 시원시원하게 하는 사람과 내 앞에서는 별말 없다가 안 보는 곳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더 싫은가. 나는 첫 번째 부류가 더 싫다. 아무리 나를 욕하더라도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쁜 사람과 위선적인 사람 중에 나는, 나쁜 사람이 더 싫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위선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기호나 취향이 아니라 판단이 필요한 문제에서 내 생각에 명확히 아닌경우에도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게 행동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그건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 에서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한다. 저건 아니다, 저건 경우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경우에도 그렇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겪으면서 나는,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절 별로 안 좋아해도 되니 제 앞에서만은 모진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겉으로라도 평범하게 지내봐요, 우리.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은 위선적인 사람을 더 싫어하는 것 같다.

 

특히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그랬다. 위선적이야, 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에 대해서, 그 무게와 엄중함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동의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면과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인간을 찾고 있다는 건지, 완벽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와 미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건지, 그딴 소리 할 거면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으라는 건지, 난 그걸 잘 모르겠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란 결국 가면이고, 가면이란 곧 위선인데. 그 모든 가면을 벗고 생얼을 까라는 건지, 생얼 깔 자신이 없으면 입 다물라는 건지. 나는 그걸 아직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궁금하다.

 

 


어젯밤에는 트루먼 커포티의인 콜드 블러드』를 읽었다. 70쪽까지 읽었는데 완벽한 아버지와 완벽한 딸이 등장하면서, 곧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짜증이 났다. 이어서 읽어봐도 별일 안 일어나면 확. 그냥 확, 빨리 읽어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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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5-01 0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일 일어날까(일어나는 게 당연하지만) 조마조마하며 읽었는데요. 단발머리님 별일이 일어나도 아마 확, 확 빨리 읽게 되실 걸요. ㅎㅎ

단발머리 2021-05-01 10:17   좋아요 3 | URL
저는요, 뭐랄까요. 이미 그 별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사건이 일어났다), 그 별일에 대해 듣기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잖아요. 근데, 70쪽까지 평안하니 화가 나더라구요. 아시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사실 그런 별일 가득한 책을 잘 읽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여기는 고요한 토요일 오전이에요. 저희집의 고요함을 프시케님께 쪼금 나눠드리고 싶어요. 고요함 아주아주 많아요!!!!!

별족 2021-05-01 0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시로 든 것처럼 제 앞에서 지적하는 사람과 제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 중에 고르라면 저는 제 앞에서 지적하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그 사람의 지적이 맞는 말이면 받아들이면 되고,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게 한 마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뒤에서 험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음 친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몸이 부딪치는 현실계에서의 위선과 인터넷상의 위선에는 좀 더 다른 태도입니다. 현실계에서의 위선은 바람직?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에서의 위선은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선이든 위악이든 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결국 확인할 도리가 없는 말들 가운데서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게다가 말은 얼마나 쉽습니까?
나쁘다,와 위선적이다,라는 말이 무언가 좋고 싫음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려면, 결국 그 다음이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위선적인 걸 더 싫어하는 데에는 그 다음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친절하게 말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를 쳤어. 같은 거요.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면 피할 수나 있지, 같은 거요.
사람의 겉과 속, 행동과 말, 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고 그저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만, 위선에 더 나쁜 평가를 하는 데에는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위선‘이 더 낫다,라고 말할 때의 위선은 ‘선‘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나 노력같은 거지만, 사람들이 위선이 싫다,고 할 때의 위선은 다른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같은 건 아닐까요.

단발머리 2021-05-01 07:56   좋아요 3 | URL
저같은 경우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나쁜 사람과 위선적인 사람의 구체적인 실례가 있는 경우이고 별족님은 별족님 경우가 있을테니 그건 무언가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 어렵겠지요.

다만 인터넷상의 위선이 끔찍하다고 하시니 그건 좀 의아합니다. 어떤 사람이 별 영양가 없고 내용도 없는 제 글을 읽고 ‘말도 안 되는 말, 하지도 마라.‘ 혹은 ‘김치년들 노답(실제로 제 글에 달렸던 댓글입니다)‘이라고 댓글을 달았다고 하면 그게 별족님의 댓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그래서 다르게 판단합니다. 말은 쉽죠. 특히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은요. 하지만 별족님마저도 자신의 본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긴 댓글을 달고 계시지 않습니까. 별족님이 제게 대해 어떤 판단이나 생각을 하고 계신것과는 상관 없이요.

bookholic 2021-05-01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튜브 영상은 보지말고 소리만...~~
우리집에 계신 분의 방법^^

단발머리 2021-05-01 16:49   좋아요 0 | URL
그 분께 제가 이 방법을 잘 접수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꼭 좀 전해 주십시오!!

붕붕툐툐 2021-05-01 0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한동안 그랬어서 너무 공감가요~ 근데 어느 순간 ‘유튜브에 나오는 얘기 하나도 몰라도 사는데 1도 지장 없잖아?‘란 생각과 함께, 알라디너님들이 소개해 주시는 책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니 책 읽을 시간도 벅차서 유튜브는 자연스레 끊게 되었지 뭡니까? 하하!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신 위선은 예의와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내 앞에서 예의는 지켜줘!! 우리 그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잖아!!˝ 내 선을 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호소?(저도 그런 인간이라.. 단발머리님도 내면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악에 대해서도 위선에 대해서도 그냥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어서-별 관심 없거나 세상은 원래 그렇다는 생각일 수도- 둘 다 그냥 그런거 같아요. 어쩌면 세상에는 제가 위선적이어 보이거나 악해 보이는 순간이 있을테고 그걸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테지만, 욕하는 사람도 다 그런 면이 있는 거 아닐까요? 욕하는 사람도 그냥 둡니다.ㅎㅎ(이랬지만 저도 유튜브 댓글 달았다가 ‘틀탁‘이란 말을 들은 후 댓글을 안 쓰게 되더라구요. 글은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너무나 달라지는 거 같아서요!!)
토요일이 아침 단발머리님의 진솔한 글을 읽고 저도 이렇게 댓글을 쓸 수 있어서 참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단발머리 2021-05-01 16:5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툐툐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는 제 앞에서도 예의를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제게는 마음의 평화가 샤라랑~~~~ 고민하는 사람과 걱정하는 사람이 저 하나지요. 물론 저도 실수가 잦은 사람이라 실수를 줄여가고 싶기는 합니다.

전해주신 특급 비책으로 저도 유튜브 줄이기에 성공하고 알라딘 책의 흐름에 솨라락 몸을 맡겨 볼까 합니다. 툐툐님의 혜안을 고요히 듣는 이 시간이 너무 좋네요. 즐거운 토요일 오후 되세요!! 저는 지금 마트에서 사온 참깨스틱 먹고 있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참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han22598 2021-05-01 11: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막말이라도 그냥 뒤에 가서 하는 것이 적어도 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본인만 감정 다 털어놓고 남은 어쩌라는 건지....참. 별로입니다.

미국에 사는 기독교 흑인들...단발머리님과 비슷한 맥락에서 관심있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어느분이 추천해주신 책인데 저도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몇장밖에 안 읽었는데, James Cone의 [The Cross and the Lynching Tree]...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알려드려요 ^^

- 2021-05-01 13:02   좋아요 1 | URL
저도 동감ㅋㅋ 본인만 감정 다 털어 놓으면 내 감정은?? 감정이 분석된 언어로 앞에서 표현할 에너지가 없다면, 감정적인 언어는 그냥 뒤에서 말해줘... 나도 그렇게 하니까... ㅋㅋ 이 쪽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1-05-01 17:03   좋아요 2 | URL
han님/ 아하~~ han님! 저 왜이렇게 길게 썼나요!! 한님 말씀이 딱!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입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요. 짝짝짝!!! 요즘 다시 읽고 있는 노아 트레버의 <다시 태어난 게 범죄>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살짝 언급하더라고요. 노아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으로 ‘규정‘되는 아프리카 원시 신앙에 비해 기독교는 ‘상식적‘으로 이해됐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구요. 추천해주신 책은 찾아보니 번역본이 없는데, 작가 이름으로는 책 두권이 있네요. 두 권 다 품절인데 한 권은 도서관에 있다고 합니다!!
찾아서 읽어볼께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공쟝쟝님/ 저와 동감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제가 쫌 마음이 위로가 되려고 합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감정을 분석할 언어를 갈고 닦으시면 저 좀 빌려주시기를 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2021-05-01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튜브를 왜하는 지는 뇌과학이 알려주더라고요.. 도파민. 도파민 때문입니다. 빠른 도파민을 위해 ㅋㅋㅋ 그것은 절대 선악 의 문제 가 아닙니다. 뇌의 문제이지요. ㅋㅋㅋㅋ 자 저는 마저 뇌를 훈련하는 방법을 읽어야 할 참인데...
최근의 한국 정치상황에 한정해서만, 댓글 달자면 전 위악위선의 문제는 아니구... (ㅋㅋㅋ 이승만이야 말로 위선자...ㅋㅋ)... 혐오와 환멸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민주당에 느끼는 건 환멸이거든요. 꾸준히 가지고 있던 혐오감보다는 불현듯 나타난 환멸감의 강도가 더 센것 처럼 느껴지므로 일단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분노하죠. 저의 환멸감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 전 문제예요. ... 민주당에 기대 많았나봐.. 어쨌든 이 부정적인 두가지 감정이 정치상황이라 관심을 많이 갖지는 않지만, 둘다 똑같이 싫을 때 처럼 느껴질 땐 근현대사 책 보는 편이예요. 어디까지는. 그래. 그리고 어디까지는. 그래. 하고. 최근 미얀마 상황을 보면서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아아, 그래. 그랬었지, 하면서. 하지만 역사는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 제가 살고 싶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페미니즘을 읽습니다. 전 그래서 페미니즘을 많이 읽습니다. (기승전 페미니즘 우화화)

단발머리 2021-05-01 17:18   좋아요 2 | URL
도파민은 참으로 활발히 활동하는군요. 뇌훈련에는 자신이 없지만 좀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여러 분들이 비책을 알려 주셨어요. 저의 눈건강이 이제 안녕할 일만 남았습니다.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쟝쟝님 의견에 대해서는 이해한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가 민주당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저는 당원도 아닌데요.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았던 40대 이상의 모든 사람의 책임이었던 것처럼, 민주당이 쟝쟝님에게 이 정도의 환멸과 분노를 불러왔다면, 저는 사과하고 싶어요. 처음 대통령 선거 투표를 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을 지지했고 그 정당에게 아직도 희망을 갖고 있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열어갈 가능성이 다른 어떤 정당보다 1% 정도는 많다고 믿으니까. 난 쟝쟝님에게 미안하다고,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답을 찾았던 그래서 특정 정치세력의 역사를 또렷이 기억하는 4,50대와 2,30대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창이 다르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둘 다 아닐 때 페미니즘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대통령 바뀐다고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다 보았으니까요. 다만 정치 그리고 정치행정의 의미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페미니즘 사고에 근거한 판단이 어떻게 ‘작동‘되었는지에 대해 여성주의 역사가 가르치는 여러 지점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제 엘렌 식수를 빌렸어요. 책이 좀 낡았고, 2004년 출판되었던데. 곧 재출간 될건지 아니면 절판되기 전에 얼른 사는게 나을지 잘 모르겠어요. 좀 알려줘요. 기승전페미니즘.

- 2021-05-01 18:28   좋아요 0 | URL
스에상에.. 제가 단발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ㅠㅠㅠㅠㅠ 근데 이거 참 어허 참 위로 된다...... 그런 걸까요? 이 환멸이 해소되지 않는 건 그들의 미안해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었나? 얼떨결에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도 미안해할줄 아는 어른으로서 책임감도 좀 배워야겠어요..!

책은 절판되기 전에 사세요!! 영미쪽 에 비해 엘렌식수나 이리가레 쪽은 번역이 빨리 될거 같지는 않아요. 이쪽 장르(프랑스 페미니즘? 정신분석페미니즘?)는 아직 인기 없는 것 같아요.. 당장 선명하거나 전투적(?) 지침을 주지는 않는 이유일까요..? 하지만 말장난(?) 같은 그 혼란한 글들이 저는 좋더라말입니다. 새로 나오면 그것도 사면되고 영영 안나오면 중고가격 오를테니 사두시고 저도 그 책 뭔지 알려주세여!! (그러게요 페미니즘!)

단발머리 2021-05-01 18:38   좋아요 1 | URL
미안해할 줄 아는 어른, 성찰하는 어른 역시 위험합니다 ㅎㅎㅎㅎ 나는 반성하는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또 다른 위선의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하지만 쟝쟝님에 대한 제 사과는 진심이에요. 나는 진심으로 상심하고 실망한 모든 사람들에게... 나 혼자 미안합니다.

그 책은 쟝쟝님 방금 전에 읽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한없이 미뤄두었던, 쟝쟝님 글 읽고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한 <메두사의 웃음/출구>입니다. (아무튼 페미니즘)

- 2021-05-01 18:48   좋아요 0 | URL
사세요 사세요~ 전 이 책의 번역에 대해 불만이 없습니다! (아직 읽은 데 까지는!!!)

단발머리 2021-05-01 18: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러다 재출간 전에 덜컥 품절이라도 되면 어찌합니까! 바로 주문들어갑시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5-01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군가의 글에서(작가였던 걸로 기억함) ‘모든 사람은 위선 적이다‘라는 말을 보고 많은 위안을 얻었어요. 인간은 생각보다 거짓말도 많이 한다고도 하고..저도 제 앞에서 그러는 경우가 스크레치가 오래 남긴 하던데요.특히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잘 잊히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아 그때 이렇게 말할껄>이란 책도 읽었음요ㅋㅋㅋㅋ 😔

단발머리 2021-05-01 17:22   좋아요 4 | URL
네, 맞아요. 미미님이 인용해주신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위선적이죠. 저 역시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는 ‘난 뒤끝이 없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좀 무서워요. 그 분 앞에서 솔직히 이야기 하면 그런 분들은 앞끝작렬의 대서사시를 시연하실 테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만 솔직할 수 있는 이 대범함, 독단성! <아 그때 이렇게 말할껄> 그 책은 왜 읽으셨대요 😔

mini74 2021-05-01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도저히 못 참고 뒤에서부터 읽기도 합니다. 미리 결말을 알고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읽기도 한답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21-05-03 08:01   좋아요 1 | URL
그 방법은 제가 가끔 사용하는 방법인데요 ㅋㅋㅋㅋㅋㅋㅋ 한 번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미니님 말씀하신 방법대로 읽다가 직선적 독서법을 가진 가족들에게 걸려서 아주 스테레오 방식으로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답니다. 토요일 늦은 밤에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ㅠㅠ 이젠 빨리 읽을 수 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