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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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선한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서사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감지하지만 쉽게 감정이입하는 인물은 악인이 아니라 선인이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탐욕, 위선, 이기심, 질투, 증오는 공감이 아니라 투사에 의한 적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를테면 우리가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게 된다면 그는 나의 약점, 내가 싫어하는 나의 어떤 취약점을 공유할 가능성이 큰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야기의 캐릭터 구현은 종종 선악의 대결구도로 그려질 때 무게중심을 슬며시 미덕을 가진 인물에게 옮겨간다. 그만큼 악을 형상화해서 독자의 호응을 얻는 것은 어렵다. 그레이엄 그린은 그런 어려운 일을 해냈다.


<브라이턴 록>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년 핑키다. 그는 범죄자다. 살인을 저질렀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사건의 중요한 증언을 할지 모를 열여섯 살의 소녀 로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빈민가에 강렬한 증오를 느끼고 그것을 공유하는 로즈를 사랑할 수 없음에도 결혼을 강행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이 소년의 눈으로 바닷가 휴양지의 브라이턴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영화촬영의 카메라 뒤에 있는 듯 이야기의 정조,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그린의 배경묘사는 그래서 부차적인 게 아니라 때로 핵심이다. 세상을 온통 무정한 악으로 가득찬 곳으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높이에서 호화로운 호텔은 현재는 가지지 못하지만 마침내 정복하고 가지고 싶은 전리품으로, 도망쳐 왔지만 끊임없이 돌아오는 고향은 풀어낼 수 없는 족쇄처럼, 바다의 잔교는 빛과 어둠의 통로이자 경계로 자리한다. 


소녀 로즈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핑키를 사랑한다. 가난하고 무정한 부모와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스노 식당과 악과 참회와 죽음 속에 부유하는 소년 핑키는 어쩌면 연장선상 같음에도 로즈는 핑키를 만나서 한 경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부정적인 경험도 그것을 통과하면 사람은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원상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을 이전과 이후로 양분한다. 그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을 거부하는 로즈의 모습은 삶에 대한 그린의 가차없는 직시가 투영된 것이다. 그린은 우리의 삶과 인간의 본성을 이상적인 하나의 절대선과 긍정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지옥 같은 절망의 무도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브라이턴 록' 막대사탕의 은유처럼 그것은 "끝까지 깨물어 먹어도 여전히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도 삶의 본질도 그렇다. 부정적인 것이 나올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반면 탐정의 역할을 하게 되는 아이다라는 여자는 다소 아쉬운 캐릭터다. 초반부에 죽게 되는 헤일과 잠시 스친 인연으로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과감하게 파헤치게 되는 역할은 다소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소녀 로즈를 핑키에게서 빼내오기 위하여 기울이는 노력은 나이 어린 소녀가 나쁜 남자에 빠져 자신의 삶 자체를 방기하는 것을 선배로서 두고보지 않겠다는 연대감에서 비롯된 것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거부하는 로즈가 결국 돌아가게 되는 곳이 어쩌면 더한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도 그러하다. 그린은 그 지점을 예리하게 묘파한다. 우리가 흔히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인가? 이 반문은 적시에 필요한 의심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외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끝내 구원을 얻지 못하는 핑키와 핑키를 사랑했던 시간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로즈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다의 이야기는 서로 어긋나는 듯하며 만난다. 사는 일은 동화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숱한 악과 선이 혼재되어 있다. 그 누구도 단편적으로 일관되게 딱 떨어지게 모든 것들을 심판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과 그 환경에 철저하게 매몰되는 인간이 있다. 그 어딘가쯤에 우리 모두는 자리할지도 모른다. 그 깨달음은 무겁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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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26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반갑네요!이 작품 유튭에서 흑백으로도(1947), 2010년작도 토막으로 볼 수 있는데 매력있어요! 상황탓에 좋아하는 척하면서 구토참는게 기억에 남아요. 꼬집는거랑ㅋㅋㅋㅋ잊지못할 캐릭터 핑키!

blanca 2021-06-27 13:03   좋아요 3 | URL
이게 참 딱 영화로 제작하기 좋겠다 싶은 스토리와 배경이더라고요. 카포티의 <차가운 벽>도 생각났어요.

새파랑 2021-07-07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이책 읽었는데 반갑네요. Blanca님 당선 축하 드려요 ~!!👍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덕분에 알았네요.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7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아우, 이 이쁜 팡파레~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07-07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07-08 08:2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

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앙 2관왕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08 08:3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초딩님, 2관왕이라 하니 뭐라도 된 착각 나쁘지 않네요. ^^;;;
 

진짜 신비로운 일이 있다. 이를테면 충동적으로 산 호박잎. 이건 그냥 시판 쌈장과는 안 어울린다. 강된장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그건 심히 귀찮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엄마에게 쌈장을 부탁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부시럭 부시럭 검은 봉지를 내미는 엄마가 

"자, 쌈장이다. 쌈 싸먹어라. 상추까지 사려 했는데 상추는 아줌마가 안 나와 못 샀다."

이러는 것이었다. 그럴 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쌈장을 말한 적이 없다. 엄마가 종종 쌈장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때 맞추어 쌈장이 왔다. 게다가 나에겐 호박잎이 있다. 상추 아줌마가까지 때맞춰 안 나와준 것이다. 이럴 수가.
















게다가. 나는 하루키의 <우연 여행자>를 읽고 있었다. <우연 여행자>도 그런 신비로운 우연에 관한 이야기다. 화자인 하루키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요청하고 싶었던 앵콜곡을 마치 알아채기라도 한듯 바로 듣게 되는 우연, 우연히 카페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만나게 된 여자, 그 여자의 투병으로 오랜 기간 소원했던 누나와 재회하게 된 우연 등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야기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핍진성도 떨어져 보이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역시 하루키이기 때문일까? 


기본적으로 하루키의 이야기에는 신비로운 요소, 정합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서사의 진행들이 빈번하다. 갑자기 누군가가 사라지거나 다시 나타나거나 죽은 자를 보게 되는 등의 판타지는 그런데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거기엔 인간의 내면, 심연에 가닿은 하루키 특유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개입하는 우연성, 그 돌발적인 변수들에 대한 천착은 언어와 인식의 틀로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점을 이야기하는 데 하루키는 노련하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논리적인 근거를 댈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다.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을 하던 아들을 상어에게 잃은 엄마가 그 아들의 모습을 봤다고 주장하는 또래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시선에 맞춘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가 가지는 감동은 그 느닷없음이 끼어든 삶이 그 후로도 여전히 진행되는 모습을 그린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가장 큰 신비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상실, 절망,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서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 자체의 신비를 대적할 크기의 것은 없을 것 같다. 그게 가장 오컬트적인 삶의 비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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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22 1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나 블랑카님 글을 좋아하지만 오늘 글을 읽으면서는 아 블랑카님 처럼 글쓰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저도 꼭 블랑카님처럼 쓰고 싶어요. 블랑카님 글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차분하며 그러면서도 중요한 건 다 넣고 있는 것 같아요.

쌈장에 호박잎으로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

잠자냥 2021-06-22 14:20   좋아요 1 | URL
다부장님은 정리정돈 잘 된 글에 약하시군요? ㅋㅋㅋㅋㅋ 다부장님 삼천포 글도 매력있어요. ㅋㅋㅋㅋㅋ 그런 글 쓰기 쉽지 않아.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2 14:27   좋아요 3 | URL
네, 저는 워낙 정리정돈을 못해서 정리잘 된 글 보면 되게 매력적이고 부러워요. 아 어떻게 이게 되지.. 이러면서요. 그런 글 쓰는 분들 너무 멋져요! 그게 생각하고 써야 가능한 것 같은데 저는 쓰면서 생각해서 그런것 같아요. 어휴.. 안돼안돼 왜 안될까.. ㅠㅠ

blanca 2021-06-22 17:01   좋아요 1 | URL
거의 며칠을 웅녀의 마늘처럼 먹었어요. ㅋㅋㅋ 또 이게 수제 쌈장은 유통기한이 짧아서 전투적으로 며칠내에 소진해야 합니다. 아, 다락방님 글의 매력은 이미 검증된 바가 있잖아요. 저의 문제는 글을 길게 못 쓰겠어요. 어느 정도 쓰면 에너지가 바닥나고 다른 것들이 자꾸 떠오르는... 이것도 참 문제더라고요. 어느 정도 분량 이상되는 깊이 있는, 그것도 생활에 접목한 글을 쓰시는 다락방님이 부러운걸요.
곧 행복한 퇴근길 되시기를...
 

교생 실습을 나가고 난 후 스스로 교사가 될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중학생 아이들과 생각보다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수업에 대한 열정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던가 확신이 안 선다. 아이들과 어쩌면 함께 했을 수도 있을 교실에서의 수업의 정경을 떠올리게 된다. 같이 읽고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지금은 짐작하기 힘든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어렵고 생각대로 안 되고 때로는 상처 받고 실망하고 무력감에 휩싸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십대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들의 이야기인데 이 둘의 현장은 외형적으로 사뭇 다르다. <우리들의 문학시간>은 과학고이고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이다. 한곳은 <코스모스>를 읽고 교사보다 더 쉽게 이해하는 아이들이 영재 교육을 받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열일곱 살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소년이 교사에게 인사하기 위해 간이 교실에 자유롭게 들어오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만화책도 소유하지 못하는 곳이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들의 공통점은 십대라는 연령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이 두 공간을 가로지르는 공감의 지대에서 두 공간의 십대들은 만난다. 좋은 글을 읽고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편견은 와르르 무너진다. 윤동주의 시에 모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년원 친구들은 줄줄 암송해 내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순수했다. 좋은 글 앞에서. 


<소년을 읽다>를 읽다 자주 가슴이 아렸다. 분명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가는 곳이다. 범죄에는 분명 피해자가 존재한다. 그들을 의식한다면 이 소년들의 국어 수업을 그저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독방에서 시엽서의 시를 암송하며 시간을 보내고 책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에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발표하고 십대의 아이들이 택배 상하차를 다룬 이야기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풍경은 이 소년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아이이고 싶은데 아이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감히 상상해 본다. 일찍부터 친절하지 않았던 세상, 소년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먼저 강요하는 곳에서 재판으로 넘어온 경계의 이편에서 저자는 아이들을 만난다. 저자 또한 자신 앞에 있는 이 소년들의 열중하는 눈망울과 그 뒤안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좋은 삶과 좋은 읽기를 가르치는 일이 가지는 궁극의 의미에 대한 불확실성과도 닿아 있는 이야기다. 이곳의 아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지만 그 세상은 그 아이가 떠나왔던 이 곳에 오기 직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이것은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사는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는 데 분명 우호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암울한 전망과 현실로 여기에서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일은 어떤 관성처럼 아이들을 옭아맨다. 


금요일마다 만나서 소년들과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꽉 찬 시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에 쌓이고 있을까. 강 하구에 퇴적물처럼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가, 바다로 흘러가는 어귀에서 새로운 물길을 만나게 될까. 아니면 도로 옆에 쌓인 흙먼지처럼 풀꽃 위에 잠시 머물다가 , 휙 지나가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말까. 사라져버리고 말까.

-서현숙 <소년을 읽다> 


실제 일 년 동안의 수업일기는 대단한 성취나 거창한 감동의 결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극적으로 교화되어 근사한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도 없다. 대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해주어 감사하다며 선생님에게 커피 두 잔의 기프티콘을 보내오고 선생님 건강하라고 안부 전화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담담한 장면들의 울림이 한층 더 크다. 사람을 믿지 않았던 아이들이 자신들과 일주일에 한번 책을 읽고 때로 짜장면을 사주었던 선생님의 건강을 신경쓰고 누군가와 함께 선생님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까지의 여정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읽는 일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나는 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함께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나누며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기억의 한 자락을 점유하게 되는 일은 분명 헤아리기 힘든 질량과 질감을 가지는 시간일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부럽다. 그것이 세상의 풍파를 만나 깎이고 때로 스러진다 해도 거기 그렇게 한 구석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가지게 될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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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6-08 19: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교생 실습하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는 오래 전 주일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저도 아이들 가르치는 건
정말 내일이 아니구나 했죠. 그래도 한 6년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가능했죠.ㅋㅋ
요즘 성경공부를 줌으로 하고 있었는데 정말 못할 짓이더군요.
근데 리더님이 참 열정 있으세요.
본인도 죽 쑤고 계시다는 걸 누구 보다 가장 잘 알고 계실텐데
저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텐데 끝까지 해 내시는 걸 보면서
저의 주일학교 시절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중요한 건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끝까지 해 내는 것이구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blanca 2021-06-09 11:19   좋아요 4 | URL
스텔라님, 6년이나 그 일을 지속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아, 요새는 다 줌으로 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그런데 이게 모여 하는 분위기랑은 또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많은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게 또 최선이라... 맞아요, 그런데 그 끝까지 해내는 게 진짜 갈수록 더 힘들어져요. 그런데 저는 갑자기 요새 아이들이 마음으로 예뻐요. 뒤늦게--;; 이걸 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페크pek0501 2021-06-18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때에 따라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저도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는데 교사는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잡지사 기자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나중에 뒤늦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외로 적성에도 맞고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수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ㅋ 인생엔 정답이 없음, 인 것 같아요.

blanca 2021-06-22 13:17   좋아요 3 | URL
페크님, 잡지사 기자 일 하셨군요! 저는 막 마음으로 애들이 이쁘고 그러지 않아 그게 이십 대에 나는 교사가 되지 못할 이유라고 판단내렸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이 들고 나니 고등학생도 예쁘고 대학생도 예쁘더라고요. ㅋㅋ 귀엽고 아기아기한 아이들 뿐 아니라 뭔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지금에서야 생기니...왜 이렇게 항상 타이밍이 어긋날까요. 뭔가를 할 수 있을 때에는 그게 싫고 참, 모르겠습니다.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08 08: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7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blanca 2021-07-08 08:3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해요.^^

얄라알라 2021-07-08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링크 타고 들어와서 이제서야 글 읽고 갑니다. 축하드려요^^

blanca 2021-07-13 15: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과커피 2021-09-22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맛있는 글이네요~^^ 저도 주일학교등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뒤늦게 아이들이 그모습 그대로 예뻐요~

blanca 2021-09-23 11:36   좋아요 1 | URL
기대보다 너무 좋은 책들이라 감상에 젖어 봤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어떤 특유의 가치와 보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탈한 자가 문득 2024-07-13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고운 선생의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블랑카님의 글은 또 다른 깊이감이 느껴지네요. 행간에서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찜부터 하고 나머지를 아껴 읽었습니다. <소년을 읽다>를 서둘러 사 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blanca 2024-07-14 11:00   좋아요 0 | URL
책장을 덮으니 가슴이 아릿했어요.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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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열네 명의 철학자의 지혜의 기차는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구성이다. 이런 유의 책은 지금까지 충분히 많았고 철학 측면에서도 삶 쪽에서도 그리 깊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경우는 많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충분히 시간을 내어 탑승할 만한 가치를 지닌 열차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반향은 우리 모두에게로 향해 있다. 동승인인 그가 입양한 열세 살의 딸 소냐의 지극히 십대다운 발언들은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철학을 현실로 끌어오는 효과와 이야기 자체의 재미에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맨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저분한 거리에서 던진 질문들은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를 경험하고 사는 삶의 여정으로 확대된다. 은둔의 성자처럼 미화된 소로가 얼마나 삶에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제대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 보는 것에 열중했는지 간디가 겉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정에 집중하여 마침내 이루어 낸 성과가 무엇인지 공자가 실용적인 친절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추구한 바가 무엇이었는지와 더불어 우리가 늙어가며 결국 건설적으로 물어남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지를 거쳐 마침내 몽테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종착점으로 향햐는 저자의 여정은 삶 그 자체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들과 철학자들의 삶 속의 은근히 숙성된 그것들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멀리서 모호하게만 보였던 철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의 답을 찾아나가는데 하나의 안내서이자 지도로 치환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에릭 와이너의 성취는 대미의 몽테뉴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가장 실제로 만나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은 철학자인 16세기의 철학자 몽테뉴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결국 우리가 이 열차에 올라탄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의 연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에릭 와이너와 함께 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무로 돌아갈 것임에도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삶은 여전히 유의미한가.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딱 떨어지는 답은 있을 수 없다.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거창한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와이너가 생테밀리옹의 몽테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읽는 이들에게 꽂히는 불의 화살이다.


그에게 죽음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재앙이 아닌 아름답고 불가피한 것"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을 것이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

-p.495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 도착한 순간부터 그것이 비존재로 다시 돌아가는 그날까지 기꺼이 기억해 둘만한 이야기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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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7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침과 죽음에 대한 철인들과의 성찰 아주 좋았습니다 ㅎㅎ

blanca 2021-06-07 14:07   좋아요 2 | URL
사실 그렇고 그런 책인줄 알아서 책을 차례대로 안 읽고 읽고 싶은 대목만 읽으려 했었거든요. 어느새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읽게 될 정도로 좋았어요. 그리고 사지 않고 빌린 걸 후회했죠. ^^;;;

2021-06-08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문득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연상되는 작품은 어떤 배경이나 분위기일 수도 있고 문체일 수도 있고 이야기 그 자체의 얼개일 수도 있다. 김병운의 <한밤에 두고 온 것>은 연기자이자 퀴어인 '내'가 친구 대신 맡은 희곡 낭독 수업에서 만난 오십대 여성과 소통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지점은 세상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시선에 대한 것이다. 화자는 그녀의 과거 얘기를 통해 자신의 현재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세대를 가로질러 나눈 우정이 결국 성장을 유도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뒤로 밀어놓고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얼마나 소모적인지를 깨닫는 시점이 온다. 그것의 대가는 결국 삶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제는 다를지라도 세대와 성별을 가로지르는 소통이 소위 어떤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또 있다. 청년과 노인이고 수업은 도서관의 '시 윤독 모임'이었다. 어쩌면 가장 김연수다운 서정성이 그의 청춘과 만나 가장 만개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스물다섯의 화자가 그 모임에서 만나게 된 희선씨와 암으로 요절한 그녀의 제자의 마지막 소원, 가닿지 못했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 이야기는 여전히 청량하다. 삼십 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 지금 읽을 때의 느낌이 또 사뭇 다르지만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공명하며 작가의 저력을 실감한다. 마흔세살이 끊임없이 느끼게 되는 기시감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 어떤 것들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도 그 의미를 포착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이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면 세월의 마모를 기꺼이 떨쳐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두 작가의 삶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 와닿는다. 그 와중에 봄이 가고 초여름이 걸어온다. 이제는 알겠다. 이러한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할머니가 되어 추억할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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