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세월 국어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했고 영어는 꾸준히 노력한 것 같은데도 아직 나는 들인 시간에 비해 두 언어에 서툴다. 잘 기억나지 않는 단어들, 헷갈리는 표현들, 확신이 서지 않는 문장들, 때로는 상대가 한 말을 재깍 알아듣지 못하고 확인한다. 숫자와 기계 앞에서는 자신이 없어도 언어 앞에서는 그보다는 좀 더 당당해지고 싶은데 소망과 기대만 부풀어 오르다 한번씩 바람이 빠진다.


쉰일곱의 저자가 뒤늦게 사랑에 빠진 대상은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다. 하지만 뒤늦게 그가 미친 듯이 프랑스어에 쏟아 부었던 열정은 기대 만큼 효율적이지 않았다. 일 년이 넘게 프랑스어에 투자된 시간은 그가 학창시절 제2외국어로 공부했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대단한 대미를 장식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그의 펜팔 친구인 프랑스 여인과 막상 대면했을 때에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간단한 대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고군분투 외국어 학습 체험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욕망 앞에서 진솔해지기로 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어에 쏟아부은 사랑은 그 사랑 그 자체만으로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남겼다. 그는 달라졌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무너지곤 했던 몸도 이제 가속도로 노년을 향해 하강곡선을 긋고 있던 인지능력도 그의 프랑스어를 향해 걸어갔던 노정에서 분명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도약의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어도 무언가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투자했던, 소모했던 그 시간들과 정력을 그는 헛된 것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 나이들어 외국어라니' 는 반문이나 의심이 아니다. '나이듦'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교묘하게 닮으며 서로를 빗겨간다. 만났다 헤어졌다 해서 그것이 일생의 실패는 아니다. 사람을, 사물을 만나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그 숱한 지점들은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그것을 밟고 생을 지나간다.



















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시집 한 권은 연년생 동생에게서 선물 받은 것. 한달음에 다 읽어버렸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는 언제나 실감을 남기니 더욱 진부해진다. 맞는 말이니 체감하는 말이니 반복되는 것이겠지.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른 밤>












나에게 '너'는 말과 글이기도 한 것같다.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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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3-2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보관함에 담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늘지 않는 프랑스어라니, 그때 느꼈을 작가의 감정이 궁금해서요. 부제는 ‘늘지 않아도 괜찮아‘ 네요.

저는 언제나 외국어를 잘하고 싶었어요. 외국어에 대한 열망이 강했죠. 그렇지만 그건 그냥 바람으로만 그치고, 저는 외국어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도 않아요. 그러니 이런 제가 외국어를 잘 할 리가 없겠죠. 자꾸 미루면 안되는걸텐데, 나중엔 꼭 열심히 외국어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해요. 나중에 할거면 왜 지금 하지 않나...라는 물음에는 늘 답이 궁해요.

blanca 2017-03-23 21:02   좋아요 0 | URL
중년에도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억지로 하지 않으려 한 점이 더 돋보였어요. 효율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을 솔직히 얘기하니 오히려 와닿더라고요.

2017-03-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3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2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김대중 대통령은 50 넘어 감방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법인데
그 마음 먹는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외국어를 하려면 현지에 가거나 적어도 외국인 친구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동인없이 일부러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ㅠ

blanca 2017-03-23 21:07   좋아요 0 | URL
아, 진짜 대단하네요. 영어를 잘 하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스토리는 몰랐어요. 시간이 무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니 진짜 급한 것 아님 시간을 전면적으로 투자하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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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 속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모가 나왔다. 이모는 꿈 속에서도 몸이 아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결한 숲에서 얼굴을 보여준 이모는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예뻤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문득 잠에서 깨니 역시 마음 한곳이 아려왔다. 이모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생은 어찌 이다지 하찮고 허무하게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죽고 나면 우리 같은 평범함은 때로 하찮음과 망각으로 치환되어 서럽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는다고 해서 생이 더 유의미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진대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마치 발이 단단히 이 지구t상에 못박혀 있는 것처럼 일상 속의 사람들은 싸우고 끄달리고 욕망하고 붙잡는다.


"2017년 설", 작가의 사인은 힘찬데 어쩐지 조금 아릿하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영원한 오십 대인데 작가는 벌써 칠십 대에 접어들었단다. 우연히 옆에 있던 딸아이가 작가의 후기를 읽다 "엄마, '늙기가 힘들어 허덕지덕하였대'."라고 뜻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슬며시 옮긴다. 작가보다 한참 어린 나인데 그 '허덕지덕'의 무게를 실감한다. 시간의 경과가 늙음과 동의어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늙어지지만 늙음을 내면화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거죽은 풍화하는데 내면에 생의 기운과 젊음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이니 그것들을 내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서 있을 초로의 여인과 나를 동일시하기란 쉽지 않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이러한 첫문장으로 들어갈 때 이야기의 하중이 절로 다가와 다리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생으로 시작하지 않고 죽음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다시 그 사람의 삶으로 가는 역순환적 순서로 갈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마동수의 삶은 결국 그가 낳은 형제 마장세와 마차세를 이야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만날 접점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가 종결될 복합적인 지점이다.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부박한 아비의 삶은 결국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 도착점이 된다. 형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분투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을 닮게 되는 생존의 그 지엄하고 가혹한 본질에 가 닿는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해했던 시간은 시간의 결을 따라 제대로 해석되고 때에 따라서는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죽어 홀가분했다."는 차남 마차세만의 문장이 아니었다. 형 마장세는 일치감치 베트남전의 참전을 로 빌미로 그의 던적스러운 삶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가 타지에서 벌였던 불법적인 사업으로 인해 아버지 만큼 추락한다. 형과는 달리 동생 마차세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지척에서 지켜보게 되지만 그 또한 신산하고 초라하고 때로 비겁한 그들의 생존에서 멀리 떨어지려 시도해도 결국은 다시 떨어지는 진자 추처럼 생으로 귀환한다.


억새꽃이 부풀었고, 가을빛이 자글거렸다. 시든 줄기가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을 버티고 있었고 꽃씨들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억새는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였다.

-p,311


전쟁통에 전남편과 젖먹이를 잃어야 했고 평생 방황하는 남편을 두고 형제를 키워내야 했고 말년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던 형제의 어머니를 화장하고 내려오는 길의 묘사는 눈부시다. 그것은 비단 어머니 김도순의 삶의 은유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인들 이러지 아니할까. 충분히 나이든 김훈의 삶의 결을 간파해내는 문장들은 가슴의 결에 아로새겨질듯 간명하면서도 처절하다. 그의 문장은 끌로 판 듯 치열하고 또렷해서 차마 흘려보내지 못할 듯하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공적인 큰 파도 속에서 부유하며 그 사사로움을 잠식 당한다. 누군가의 삶도 결국 개인적인 서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다. 사사롭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언어로 도열하면 삶의 지고하고 처절한 순간들이 드러난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 욕망과 의지와 이상과 좌절의 겹쳐진 그 틈새를 간파한 작가의 필력은 그가 살아 낸 생의 기억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늙고 사는 일을 실감한다. 무겁고 무섭지만 신비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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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3-0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따님이 문장을 또박또박 잘 읽는데요?
엄마를 닮아 글을 잘 쓰려나 봅니다.ㅎ
그 뜻이야 앞으로 살면서 문득문득 많이 떠오르겠죠.
김훈 작가의 그 문장 참 기가막히군요.
정말 앞으로 살면 살수록 허덕허덕할 때가 많겠죠?
살면 살수록 물 같으면 좋겠는데...

blanca 2017-03-07 09:28   좋아요 0 | URL
벌써 4학년인 걸요. 김훈 문장은 여전히 경이로운 대목이 많더라고요. 늙는 일은 절로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아요.

stella.K 2017-03-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딸래미가 벌써 4학년이어요? 아니 언제에...ㅎㅎㅠ

blanca 2017-03-11 13:20   좋아요 0 | URL
저도 깜짝 놀라요. 제가 4학년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이건 좀 과장이죠? ㅋㅋ)
 
바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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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디에서 오는 길이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길이었을 낯선 아저씨는 가족에게 주려고 산 붕어빵 봉지에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낯선 아이에게 건네 주었다. 따뜻했다. 하늘의 달은 정말 신기하게도 집까지 따라와 주었다. "신들의 시절"이었을까? 세상도 우주도 한없이 광대한 시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신기한 것은 신비로 점철되던 시절, 유년. 서서히 장막은 걷히고 남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 또는 있었던 모든 일들은 나의 안전한 지지대로도 파고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시점, 나도 내가 사는 삶도 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깨닫게 되는 그 시간, 어른은 소멸을 향해 늙어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한 해가 끝을 향해 이울어가고, 낙엽들이 허둥지둥 달려가고,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낮의 밝음이 희미해지고, 가로등이 매일 저녁 어제보다 약간 더 일찍 켜지는 때에. 그래, 이것이 내가 어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늦가을에 맞이한 기나긴 화창한 날씨 같은 것, 고요의 상태, 호기심이 사라진 차분한 상태. 견디기 힘들었던 유년의 날것 그대로의 직접성은 다 사라지고, 어렸을 때 곤혹스러워하던 것은 다 풀리고,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고, 순간순간에 물이 똑똑 듣듯이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황금 방울처럼 똑똑, 마지막,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

-p.92


이 남자는 지금 이 시간을 상실과 더불어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이미 남자는 충분히 늙었다. 반 세기가 더 지나 돌아온 유년의 풍경은 화석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오십 년의 시차는 같은 공간 안에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극복된다. 남자가 회상하는 자신의 세계 밖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관조적이다. 남자는 그 모든 시간을 직접 통과해 왔건만 번번히 불투명하게 관찰하는 시점에 자신을 고착화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응축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그 모든 것의 직접성은 비록 서사의 구체적인 결은 다르지만 이 남자의 음험한 짝사랑과 서툴지만 영롱했던 그 모든 처음이었던 것들과 겹친다. <바다>를 읽게 되면 그래서 멈칫멈칫하게 된다. 이것은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도 되니까.


작가는 "세속적 표현의 순간"을 고대하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빌어 그의 소망을 실현했음을 들킨다. "나는 표현될 것이다."는 작중 화자의 고백으로 폄하되지 않는다. 그 뒤에 숨어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을 들키는 작가 본인의 것으로 의심되어도 충분할 것이다.


사는 일은 지난하지만 절실한 일이다. 상실과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유한한 삶의 본질적 속성일 게다. 눈물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일이다.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은 그래서 때로 진부해지지만 영원히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다. <바다>를 유영하는 일은 그러한 상실을 저마다 개별적인 지점에서 보편적인 곳으로까지 밀고 나가는 힘겹지만 의미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모든 불가능한 것들의 발치를 쓸어가는 시간을 통과해 신들의 시간을 통과해서 다시 신들의 시간으로 갈 운명이다. 그 운명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바다>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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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되면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즐기지도 여행을 많이 가본 것도 아니지만 시간과 체력과 각종 여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완벽한 순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지점을 얼마간은 시간에 책임에 겉치레에 쫓기지 않고 타닥타닥 하염없이 걷는 꿈을 꾼다. 그러다보니 산티아고 순례에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책도, 또 다른 많은 이들의 책도 산티아고라는 공통 여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났었다. 그러다 보면 헷갈리게 된다. 내가 이 순례기를 읽었던가? 분명 이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인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낯익지? 그렇다면 분명 그건 재독이다. 이 책도 시작 전에 좀 망설여진 이유가 그러했다. 읽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제 처음일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반복일까 지레 물러서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책 날개에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듯한 남자가 무언가를 앉아 메모하는 사진 아래 그의 화려한 이력이 소개된다. 현직 의사, 역사가, 외교관, 게다가 공쿠르 상 수상 소설가. 마치 로맹가리를 모사한 듯한 경력이다. 여기에 하나 더 얹어 현직 의사. 하지만 그의 문장은 그의 이력을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담담하고 담백하고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언뜻 비치는 아름다운 재기가 있다. 또 그의 산티아고 순례는 진부하거나 그 어느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닮지 않았다. 젊은 여자 앞에서 조금 흔들리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길에 실례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느끼는 어떤 어색함, 부끄러움이 과장되어 있지도 미화되어 있지도 않다. 종교적으로 감화되려는 찰나 미끄러지는 모습도 솔직하다. 순례의 길이 끝나고 현실과 만나는 지점에서의 실망감도 생생하다. 무언가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순간 집착하게 되는 역설에 대한 고백도 진솔하다. 순례가 끝나고 그의 존재는 더 가벼워지고 본질적이 된다. 그러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도 그의 그러한 탈피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착시를 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어쩌다 내일의 고민의 무게로 뒤척이다 거실등을 켜고 빈 공간을 고독하게 응시하는 순간, 이 사람의 순례기는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거울을 보면 나는 조금씩 늙어 있다. 세월의 흔적과 무관한 동안은 어쩐지 좀 괴이쩍은 구석이 있다. 아무리 젊어보여도 내가 그 나이 자체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기발랄하던 동생은 어느 날 만나면 삶에 지친 구석에 자신의 생기를 차곡차곡 접어 놓았다.  그렇게 다 나이가 드는 것인가 보다. 점심으로 우동을 먹으며 나와 그 동생은 나이듦의 무게를 이야기했다. 생존은 낭만으로 감침질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잘 나이드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푸른 밤 동안에는 하루의 끝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푸른 밤이 끝나갈 즈음이면(끝은 오게 되어있고 반드시 온다) 한기와 함께 혹시 몸이 아픈 것일까 하는 우려가 찾아든다. 그리고  사라지고 있음을, 이미 해가 짧아지고 있음을 , 여름이 떠나버렸음을 깨닫는다.

-존 디디온 <푸른 밤>

 

 

 

 

 

 

 

 

 

 

 

 

 

 

 

일흔다섯의 작가는 자신의 나이에 새삼 놀란다. 젊은 시절 어울리던 것들, 즐기던 것들을 더이상 걸치거나 할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진지하고 때때로 혼란스러워했던 외동딸의 결혼식은 엊그제 같은데 딸은 신혼 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투병하다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상실, 노화, 소멸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 반드시 그렇게 있음에도 응시가 불편하다. 작가의 투명하고 예리한 시선은 그 결을 그래도 훑으며 따라간다. 이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나의 것이 된다. 분명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항상 감지하고 의식하면 지금, 여기에서의 삶들은 무너진다. '나'는 분명 시간을 통과하며 내가 가정하는 젊고 생기 있고 건강한 '나'로부터 멀어져 결국 늙고 소멸하는 타자로부터 잠식당하며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딸을 잃고 남편을 잃고 이제는 건강하고 정력적이던 일상의 모든 사소한 일들을 자립적으로 해 나가가던 그 모습에서도 멀어져 간다.

 

생과 시간과 죽음을 통합하는 일은 절대 명제인데 폄하되고 지나치게 신비화되는 역설이다. 시간을 통과하며 삶을 순례하는 우리들은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그 길들을 통과하고 종점에 이르고 말 것인가, 하는 절망 앞에서 그래도 사는 일은 지엄한 것으로 여겨져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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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과 우동을 드시면서 나누는 대화 중에도 ˝생존은 낭만으로 감침질 하기 어렵다˝ 같은 멋진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라면 일부러 머리를 짜내도 만들어내지 못할 표현을요.
저도 산티아고 기행 관련책만 몇 권을 읽었는지 몰라요. 기회 되면 가리라...
그런데 기회가 그냥 되지 않더라고요. 직접 제가 그 기회를 만들지 않는한.
그러면서 여전히 저 책에서 눈을 못떼고 있네요.

blanca 2017-02-05 19:47   좋아요 0 | URL
나인님, 말로 나눈 것은 아니고요. ^^;; 말보다는 돌아서서 곱씹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과 느낌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데 저질체력이라 감당이
될까 싶기도 하고... 아직은 애들이 까마득하게 어려 하루도 온전히 시간 내기가 힘들어 아직은 꿈만 꾸는 중이랍니다. 스페인은 알함브라 궁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여왕흰이 2017-02-16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기발랄함이 나이듦의 무게가 날라와 가슴에 콕 찍히네요.

blanca 2017-02-25 03:33   좋아요 0 | URL
나이,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 신비로운 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남처럼 낯설게 느껴지게 만드는 듯...
 
사람으로 산다는 것 -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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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을 어린 시절 겪은 적이 있지만 죽음은 '나'를 주어로 한 것은 아닌 줄 알았다. '삶은 유한하다'는 명제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프로이트의 말처럼 누구나 자신이 불멸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나에게도 얼마쯤 해당되는 이야기였나 보다. 작년 피부암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밤마다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생은 유한하다.'는 명제를 뼈아프게 실감했다. 긍정적인 면이었을까. 이후로 무언가를 마냥 기뻐하고 순간에 함빡 몰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조직 검사 결과가 괜찮았다,고 해서 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겁쟁이가 됐다. 누.구.나. 죽.는.다.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죽는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정말 안 무서워요? 이 모든 게 결국 끝나는데...거리를 웃으며 지나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며 아직은 생의 유한성을 실감하지 못하니까 그런거야, 라고 되뇌일 때도 있다. 생의 절반이나마를 통과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이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 추운 겨울도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꽃 피는 봄도 그렇다. 그러면 모든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갑자기 생생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스무 살이 보는 벚꽃과 서른 살이 감상하는 벚꽃과 마흔이 감동하는 벚꽃의 질감은 엄연히 다르다. 달라진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책이다. 스웨덴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헤닝 만켈은 지금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그는 암투병을 하는 노년이다. 그가 복기하는 삶의 단편들은 흩어져 있지만 결국 유기적으로 묶여 한 작가가 사람으로 얼마나 진지하고 투쟁적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된다. 그를 스치고 지나갔던 비극적인 풍경들, 타인의 삶, 아름다운 공명의 순간들이 빛난다. 아프리카에 가서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의 곁을 지키고, 계속되는 내전과 살육의 현장에서 고대 그리스의 연극을 투사처럼 기획했던 그가 마침내 내전의 평화로운 종식을 들었던 순간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반추하고 젊은 시절 풋사랑과 추위 속에서 나누었던 육체적 교감을 추억하는 장면들은 하나 하나가 완결된 짧은 이야기로 들린다. 그는 주절주절 자신의 사적인 삶을 주워섬기는 게 아니다. 10만 년도 더 전의 빙하 속의 물과 10만 년도 더 후까지 위험성이 제거되지 않을 핵폐기물이 후손에 끼칠 영향에 대한 걱정까지 문명의 향유가 아니라 착취가 판을 치는 소외된 아프리카 대륙까지 거대하게 확대된 시공간의 자장에 그의 개인적 삶은 포개지고 확장되고 융화된다. 그러다 보면 그가 그렇게나 어렵다고 이야기했던 죽음까지 어쩌면 꽤 괜찮은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으로 생과 사를 축소하면 인간의 존재와 삶은 더없이 무의미하고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매개가 되어 한없이 확장되다 보면 아름답고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부분처럼 딱, 여기, 지금에서의 생의 고결한 가치를 불러온다.

 

죽는다는 건 현존하는 인간의 전통 중 가장 위대한 전통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p.108

 

그는 스웨덴 사람이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결정"이 그의 평생을 관통해온 질문이라는 고백은 감동적이다. 사회의 변방에서 생존 그 자체에 매달리느라 다른 차원의 고민이나 사고는 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의 공간 안에서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의 반대급부와 어두운 면면을 응시하게 한다.

 

정말로 중요한 모든 이야기들은 각성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225

 

나한테는 헤닝 만켈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죽음 앞에서 가감없이 "두렵다"고 고백하면서도 품위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힘을 끌어모으는 노작가의 진지하고 섬세한 모습,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외된 세계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노정, 자신의 삶을 거대한 역사와 공간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조망하는 시선은 나를 각성시켰다. 크레타에서 매일 안온하고 단조롭지만 한없이 고결하고 경건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채웠던 그의 읽기, 쓰기의 추억은 나를 떨리게 했다. "매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그의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찡했다. 그러한 와중에도 "세상에 여전히 예속과 압제가 있는 한 문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문명을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책임의식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고 새로운 은총의 순간들을 기대하며 살고 있다. 나 스스로 뭔가를 창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창작한 것을 볼 수 있는 기쁨을 아무도 내게서 빼앗아가지 않는 순간들, 내게로 오고 있는 순간들. 나에게 인생이 가치 있으려면 반드시 와야만 하는 그런 순간들을.- p.450

 

만켈의 에필로그. 2014년 이 에필로그를 끝으로 2015년 10월 5일 잠에서 깨지 못한 채 그는 두려웠지만 차근차근 공부하며 기다렸던 삶의 대미로 뚜벅뚜벅 평화롭게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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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1-1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헤닝만켈의 이 책을 봤지만,
님이랑 비슷한 종류의 두려움으로 미뤄뒀었죠.
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저도두렵지만 차근차근 공부하고 기다릴 수 있을것 같아 이 책이 읽고싶어졌어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자극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__)

blanca 2017-01-18 10:3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이 책 읽고 저는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작가의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뭉클했어요. 빨리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17-01-1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힘들었겠습니다 괜찮은 거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생각해도 자신의 죽음을 바로 생각하기는 어려워요 아니 자신보다 부모님 죽음도 바로 생각하지 못하는데... 저는 제 죽음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때가 찾오지 않아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blanca 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희선

blanca 2017-01-18 10:36   좋아요 0 | URL
희선님, 감사해요. 흑, 저는 아직 무서워요. 그렇지만 점점 덜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살면 살수록 사는 일과 죽는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습니다.

2017-01-19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0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0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0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1-2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ca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7-01-27 13:21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1-27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7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