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34년,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망막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쓰고 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 망막렌즈에 삽입된 홀로그램에 검색 결과들이 주르륵 뜬다.

학생들이 입력한 키워드가 자동 완성어로 입력되어 화면에 뜨는 순간 눈동자의 시선 방향으로 스크롤을 밀면 자동 음성 변환기가 읽어준다.

역사, 지리, 언어, 과학,사회, 문화 학습을 인공지능 학습 기기의 지도 아래 학습을 마친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째로 다운로드 받아서 지식 인지 기능 역할을 하는 뇌 이식 칩 속에 넣는다.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되는 체육 수업에서 지난 주에 모의 게임 축구 시합을 하는 동안 익혔던 행동 기억 기능 장치를 켜자 망막 렌즈에 장착된 안경 화면에 이번 시합의 전술과 전략에 맞춰 각 선수들의 포지션 자리가 자동으로 뜬다.

2034년의 로봇 교사는 수업 내용과 교실 안에서 학생들의 행동과 주고 받는 대화를 실시간 듣고 정리해서 학부모들에게 일괄적으로 전송 한다.

교실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학생, 화장실이나 도서관, 운동장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폭력적인 행위는 교내 설치된 CCTV카메라에 찍히고 교실 안 창문 유리창에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과 언행을 일삼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자동으로 뜬다.

2034년 학교에서 개인의 인권 침해나 ,교권 보호, 학생의 인격 존중에 대한 법적 분쟁이 일어날 일이 없다.

학교에 등록하는 모든 학생들은 이런 규율과 규칙에 합의하고 동의 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 하고 각 반 마다 배치된 로봇 교사들은 몸이 아픈 학생, 신체가 불편한 학생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해서 별도 관리를 하고 보호와 심리 상담을 주기적으로 한다.

2034년 교실 안에선 학생들 사이에서 집단 따돌림도 교내 폭력과 폭언 그리고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는 모욕적인 언행도 사라진다

인공지능 학습 교육을 받지 못할 정도로 극빈의 가정은 아이들의 행동 기억과 인지 능력이 뒤떨어져서 ‘생각하고, 말하는’ 기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홈스쿨링을 통해 책 읽기와 글쓰기 학습 교육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1980년대 미국 IBM이 개발한 고급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Fortran)’의 쓰임새는 주로 과학적 공학적 계산을 하는 언어로 쓰였다.

인간을 대신해서 복잡한 수리적, 공학적 계산을 담당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후 40여년동안 무한 급수적으로 발전해서 ‘파이선(Python)’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능이 향상 되었다.

1차적으로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를 숫자와 기호로 조합해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에 가장 근접한 조합의 수를 찾아 2진수로 표현한 기계어(Machine Code)가 ‘파이선(Python)’이다.

컴퓨터가 ‘파이선(Python)’이라는 언어적 도구를 이용해서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변환하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을 ‘코딩’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식과 활동 영역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있어서 '코딩' 작업은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다.

컴퓨터 구조와 데이터 구조, 메모리 계층을 심도 있게 이해해서 정확한 목표 설정과 정보를 수집하는데 유용한 알고리즘의 마인드 맵을 구축해 나간 프로그래밍 언어는 자연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로 발전 해 나갔다.

인간이 구사하는 대화, 작문, 번역과 검색 기능의 알고리즘을 학습해 나간 챗GPT의 약자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Model’이다.

GPT 약자에는 인공지능이 어떤 학습으로 연결 되어 있는지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기존에 사용 되었던 인공지능 언어와 달리 각 단어 사이의 관계 중요도를 파악해서 서로 연결하는 맥락 연결망(Attention Network)을 갖춘 GPT는 텍스트 속의 문자와 문장 뿐만 아니라 문단의 ‘맥락(Context)’까지 학습한다.

문자와 문단 ‘맥락(Context)’을 학습한 GPT는 ‘변환 모델(Transformer Model)’기능 단계로 넘어가면 백과사전 책 한 권을 통째로 읽고 인터넷, 도서관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서와 책을 모두 학습해 나가면서 읽고 기억하고 학습하며 방대한 알고리즘을 축적 해 나간다.

‘변환 모델(Transformer Model)’기능 단계에서 영어로 된 책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된 책과 정보를 읽고 학습한다.

이렇게 ‘사전 학습(Pre-training)’을 통해 방대하게 읽어나간 GPT는 인간의 몇 세대에 걸쳐 학습한 지식을 단숨에 학습해서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해도 웬만한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벌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승리였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거둔 승리는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가 되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중에서


2016년 세계 바둑 신 이세돌과 바둑을 두었던 인공 지능 알파고는 책이나 문서 속 한 단어, 한 문장, 혹은 한 문단을 비워 놓고, 그 속을 채워 넣기 연습을 끝없이 하며 잘 채워 넣으면 높은 점수로 보상을 주는 글 채우기 게임으로 창작을 위한 ‘생성(Generative) 능력’을 키워 나갔다.

자기들끼리 게임 하듯 서로 문답(問答)하고, 서로 평가하고, 그리고 보상하면서 학습하고 성장해 나간 챗GPT는 ‘생성 인공지능망’ 언어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와 문장 외에도 영상, 비디오,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생성 기능을 가진 다중 모드(Multi-modal) 인공지능 능력으로 거듭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제 챗GPT의 생성 능력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딩 능력에 까지 이르러서 의뢰를 받아 인간을 대신해서 코딩을 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성한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를 인간에게 설명을 해 주고 인간이 작성한 코드를 분석해서 실수를 고쳐주는 디버깅 작업도 하고 기존 코드를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변환까지 시켜 준다.

알파고가 바둑 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4대 1로 이긴지 10년 만에 인간을 대신 해서 정보를 찾고 분류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계산을 대신 해주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능을 장착한 로봇이 걷고 말하고 뛰는 신 인류의 시대가 도래 했다.

눈동자만 깜빡 하면 대화 하듯 명령하고 주문하면 원하는 걸 척 척 만들어 주는 신 인류 시대에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인건비를 절약 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밥벌이가 되었던 직업군들까지 인공지능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생성 인공지능망’ 언어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와 문장을 방대하게 학습 하는 기능을 갖춘 챗GPT는 자판기에 버튼을 누르면 맞춤법을 고쳐 주고 문장을 다듬어 주고 특정 전문 지식에 관한 정보를 찾아 분류 해서 전문적 글, 창의적 글, 정보성 글, 광고 문구들도 척척 써 낸다.

인간이 손으로 컴퓨터 키워드로 검색하고 수정하고 정보를 찾지 않아도 챗GPT와 채팅하듯 대화 하며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동안 인간은 컴퓨터에 글을 쓰면 자동으로 맞춤법을 수정해주고 단어의 의미를 찾아 주고 정보를 찾으면서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 하면서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정보의 정확성을 구별 해서 최종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인간이 실수를 하듯 생성형 인공지능(AI)도 학습 하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해서 존재하지 않는 패턴이나 객체를 인식해 부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아주 많다.

부정확한 정보를 진짜처럼 말하고 여러 정보를 짜집기 해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행동형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백퍼센트 신뢰 할 수 없고 신 인류의 시대가 도래 했다 해도 인간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걷고 말하고 읽고 쓰는 고도의 사고 능력을 퇴화 시키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탑재된 챗 GPT는 인간에게 만능 학습 보조 교사이자 동료이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인간의 고유의 영역 이였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논쟁의 불이 활활 붙었다.

어떤 창작자의 글이 AI가 썼는지 아닌지를 구별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글 쓰는 능력까지 퇴화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문해력이 퇴화 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인간이 동굴에 살았던 시절 부터 행해 왔던 구술과 필사, 인쇄 기술은 챗GPT는 1분이 채 걸리지 않게 학습 하고 발전 시켜서 인간처럼 읽고 쓰며 로봇 사피엔스가 되고 있는 동안 정작 인간의 문해력은 퇴화 하면 자연스럽게 쓰는 능력까지 저하 되고 있다.

챗 GPT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나는 투비컨티뉴드에 2025년 2월 21일 새 시리즈 <AI 시대에 글 쓰는 법>을 발행했다.


- 2025년 2월 21일 모닝 페이지 <AI 시대에 글 쓰는 법>

https://tobe.aladin.co.kr/n/318234









중국에서 약학자인 어머니와 통계 과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으로 태어난 켄 리우는 할머니의 보호와 양육 아래서 성장하며 11살에 미국 땅으로 건너 와서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았다.

1년 만에 영어를 습득한 켄 리우는 새롭게 정착한 미국 땅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웠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마이크로 소프트 엔지니어로 근무 하면서 번역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수많은 문학상을 휩쓰는 SF문학계의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두 아이를 편리한 기능이 장착 된 유모차에 태우지 않고 아기 띠를 자신의 몸에 묶어서 어부바로 키웠다.

두 아이에게 직접 책을 읽어 주고 함께 종이를 접고 붓으로 한자를 써 주며 양육에 온 힘을 기울였던 켄 리우는 전업 작가로 살지 않고 여전히 과학 기술계에 종사 하며 곧 다가올 미래 세계를 몸소 경험하며 활자로 구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AI의 주요 효과 중 하나는 경쟁의 장을 평준화한다는 점이다. 글쓰기, 아이디어 창출, 분석, 그 외 여러 전문 업무에서 역량이 하위권에 속한 사람은 AI의 도움으로 상당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이선 몰릭의 <듀얼 브레인> 중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진, 비디오, 스캔자료, 드론영상, 녹음 기록만 있으면 무한 복제 되어 맞춤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받아 원하는 대로 새로운 아바타로 탄생 하는 세상이다.

글쓰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기술 중 하나다.

인간 영장류와 가장 흡사한 원숭이, 오랑 우탄은 연필을 쥐고 무언의 형체를 그려도 스스로 사고 하며 심혈을 기울여서 확장 축소 편집, 필사 그리고 받아쓰기를 하지 못한다.

인간은 두 손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쉼없이 찾고 분류하고 분석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효율적인 생산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그 결과 현재 이 세상 어디에서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 네트워크 연계성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기술적 대 변혁을 겪게 되었다.

전에는 불가능 했던 모든 것을 방 구석에서 실시간 감상하고 이동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을 대신해서 쓰고 말하고 걷고 움직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영상과 자동 인식 행동 학습으로 인지기능과 근육 기능을 키운 인간은 쓰기와 읽기 능력을 상실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인공 지능 기기가 대신 해 주게 되어서 미래 세상엔 데이터 센터에 갇힌 기계 속 유령들은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 세계에 반격을 가한다.

이런 반란을 일으킨 기계 속 유령들은 국가들의 보안 프로그램을 해킹해 서로 미사일을 날리게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모든 것이 데이터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데이터 센터의 유령들은 세상을 살릴 수도, 멸망 시킬 수도 있는 ‘신’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 신화나 동화나 영화 속에서 살았던 인물들 처럼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여러 번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데이터 통신망에 접속하면서 노출되고 수집 된 정보와 기록 그리고 이미지들은 인공지능의 거미 망에서 어떻게 학습되어 어디서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지 모른다.

이런 기계들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단 한순간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쓰고 읽고 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1. 한번에 한 단락씩 한 쪽씩 쓰기


https://tobe.aladin.co.kr/n/318262


2025년 2월 21일에 <AI시대에 글 쓰는 법> 제 1회 . [한 번에 한 단락씩 한 번에 한 쪽 씩]을 발행 했고 2025년 6월 25일 이 글로 투비 선정 2차 인증 작가가 되었다.


https://tobe.aladin.co.kr/event/290357


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설계된 종(種)이다.

따라서 어떤 진실은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뿐 데이터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총 10회 분량의 AI 시대의 글 쓰는 법을 연재 할 예정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AI 시대에 누구보다 더 멋지게 글 쓰는 법을 많은 구독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2. 글쓰기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https://tobe.aladin.co.kr/n/452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은 매일 무언가 쥐고, 만지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을까?


특정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당신은 거기 서서

엄청나게 커다란 양배추

혹은 바이올린

혹은 밝은 색 풍선을

들고 있다.

그건 그 자체로 일이다.

한 가지만 하는 단순한 행위

 - 마이라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에서

짙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빨간 풍선 다발을 들고 분홍 빛 벛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곳을 지나간다.

그림 속 여자는 풍선만 들고 있는 것일까?

사는 동안 무언가 들고, 지고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c)maira kalman

'거대한 바위를 안고 아몬드 꽃 사이를 걷는 내 꿈속의 여자(Women in my dream walking through almond blossoms holding a giant boulder)'라는 제목의 이 그림 속의 여인은 자신의 몸 보다 몇 배나 커다란 바위를 양 손에 힘겹게 들고 있다.

저 바위는 그녀에게 무엇일까?

온갖 근심과 걱정 덩어리들, 슬픔과 회환,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들이 저 바위 크기 만큼 온 몸을 짓누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로 삶을 짓누르며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다.

(c)maira kalman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덩어리들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양배추 크기였다면 매일 몇 장씩 잎을 떼어내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 해서 전부 씹어 삼켜 버릴 수 있다.

양배추를 가지고 있었을 때와 양배추 한 덩어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났을 때의 마음 상태가 다르듯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금전이나 물건도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행복을 어떻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c)maira kalman

태어나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흐를 수록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정작 삶의 소중한 시간은 허비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놓치는 동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도 하며, 어깨 위에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의 무게를 벗어던지기 위해 인생을 행운의 날벼락 같은 숫자에 맡길 때도 있다.


산책 하듯 강변 길을 걸어 가면  꿈의 숫자,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쏟아내는 행운의 명당 판매점이 있다.

 경제가 나쁠 수록 불티나게 팔리는 건 저가형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그리고 로또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일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로또를 살 때 마다 '혹시 모르지, 당첨될 지도 '라는 꿈에 잔뜩 부풀러 오른다.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꽤 만족스러울 때면 내 몸 하나 온전히 버텨 내는 것 만큼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 같다. 

취업난, 월급난, 물가난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 속에  커피 한 잔 값으로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며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어떤 것을 가졌다가 낙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성해나의 <혼모노> 중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06-25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또 당첨자가 나오면 로또 당첨자보다 그곳이 더 잘될지도 모르겠네요 혹시나 하고 로또를 사는 사람이 많을 테니... 로또를 파는 사람은 자신이 당첨되는 걸 좋아할지 로또가 잘 팔리는 걸 좋아할지...


희선

2025-06-25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른 새벽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한 로렌스 추기경은 바티칸 수도원을 지나 황급히 교황이 머물던 숙소로 간다.

세계 각지에서 갑작스런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은  추기경들은 애도를 할 새도 없이  교황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어떻게 낼 것 인가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교황청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간다.

새로운 권력의 선출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 교황청은 로렌스 추기경을 콘클라베 선거 단장으로 추대 하고 로렌스는 교황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뒤로 한 채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 ‘콘클라베’를 빠르게 추진한다.


누런 불빛 아래 거울을 보니 잿빛 얼굴 여기저기 반점이 가득했다. 부디 계시라도 있기를, 내게 힘을 내리시기를. 승강기가 덜컥하며 멈췄는데도 위장은 계속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손잡이에 의지해 중심을 잡아야 했다. 교황의 즉위 초기 함께 이 승강기에 탔을 때였다. 대주교 둘이 들어오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주님의 대리자를 직접 마주하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교황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말고 일어나시게나. 나도 늙은 죄인일 따름이라네.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 중에서

 

작은 어촌의 일개 어부에서 교회의 반석이 되었던 베드로 사도로부터 시작된 교황이라는 자리가 지금껏 2천년의 시간을 넘어 면면히 이어져왔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그것이 실로 가톨릭의 신비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과거의 교황들은 유럽이 중심무대였으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오늘날의 교황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역량이 요구되는 자리였음은 분명하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교황 연대기> 중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인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cum’ 과 열쇠라는 뜻의 ‘clavis‘ 에서 유래한 말로 ‘열쇠로 잠근 방’을 의미한다.

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칙서를 통해 “추기경단은 외부와 격리된 방에서 교황 선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문화하면서 교황 선거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교황이 사망 하면 가장 먼저  그의 반지를 부수고 방을 봉인하고 투표 용지 보존을 위해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한다.

1492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 선종 이후 이어져 온 콘클라베의 투표권은 교황 선종일을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인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이 갖는다. 별도의 입후보 절차 없이, 투표권을 가진 모든 추기경이 후보가 된다.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바티칸 교황 관저에 있는 시스티나 경당(작은 예배소)에서 투표를 반복하는 동안 투표가 종료될 때마다 굴뚝에 피우는 연기의 색깔로 결과를 알릴 뿐 콘클라베의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 투표에 참가하는 추기경들은 교황청 내 방문자 숙소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숙식을 하고  공정성과 보안을 위해 인터넷 접속이나 뉴스 시청도 철저하게 제한 당한다. 

투표가 종료될 때마다 굴뚝에 피우는 연기가  흰색이면  선출 성공,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면  실패라는 의미다. 교황 선출에 성공하고 당선인이 즉위를 수락하면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새 교황을 얻었다)”이라는 공식 선언이 나오고 새 교황의 즉위명(名)도 발표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의 일기로 4월 21일 선종 하셨다. 

젊은 시절 폐의 일부를 제거했고, 고령에 여러 차례 건강 문제를 겪어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14일 호흡곤란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한 뒤 폐렴·신부전증 치료를 받다 38일 만에 퇴원했으나, 부활절인 지난 20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부활절을 축하한다”고 말씀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이 되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이탈리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이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일반 사제가 아니라 수도회(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랜 수도와 묵상을 통해 일구어낸 영성가의 눈으로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주저주저하던 사안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과 파격적 메시지를 내놓으며 격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결혼이나 미혼 출산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비판했고 수녀 대상 사제 성폭력을 인정하며  성직자의 성범죄를 엄중하게 다루기 위한 규율 부서를 따로 두었다.

 2023년 4월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여성과 평신도에게도 주교회의(시노드) 투표권을 부여 했고 차관 이상 고위직에 여성 신자와 수녀를 임명 했다.

이 모든 개혁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시행 된 것들로 2020년 11월 교황은 재무 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교황청의 핵심 부서인 국무원의 교회 기금 관리 기능을 박탈 시키고 1500억원이 넘는 영국 런던 첼시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연루된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2020년 9월 교황청 고위 직책에서 경질 시켰다.

청빈과 순명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도 난민이였다며 이민자와 전쟁 난민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마지막 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보듬었던 교황이였다.

콘클라베 선거권을 갖고 있는 전 세계 80세 이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서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영화 <콘클라베>의 비밀 투표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대변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로 대표되는 교황 예비 후보들의  진실과 거짓의 가면이 벗겨 질 때마다  성추문, 매관매직, 인종 문제,동성애와 낙태, 그리고 여성의 인권 같이 현실 사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교황청의 비리들이 후보자들의 추문과 연결되면서  유력했던 후보가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았던 후보가 급부상하기도 한다. 

투표 당일, 미켈란젤로가 그린 유명한 천장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물리적으로 봉쇄되며, 비밀 서약을 한 80세 미만 추기경들은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에게 비밀리에 투표하고, 투표용지에 이름을 쓰고 제대 위 성배에 넣는다.

 세례를 받은 남성 로마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교황 후보자 자격이 있지만 철저하게 비밀 선거에서 선출 된 선출된 교황 266명 중 대다수가 유럽 출신이다.

13세기에는 약 3년, 18세기에는 4개월이 걸린 적이 있었던 콘클라베에서 교황 선출에  필요한 3분의 2를 얻는 후보자가 없으면 하루에 최대 4번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되었던 콘클라베에서는   약 24시간 동안 5번의 투표를 진행되었다.

개표가 완료되면 바티칸 소방관들은 미리 설치한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첫 번째 난로에서  투표 용지를 태우고 두 번째 난로는 화학물질을 연소시켜 굴뚝을 통해 외부로 연기 신호를 보낸다. 

검은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음을, 흰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됐음을 의미한다.
 

영화 <콘클라베>에서 바티칸에 모여든 추기경들을  먼 거리에서 희미한 붉은 점처럼 보여준다.

콘클라베 선거 단장을 맡은 로렌스 추기경이 내려다 보고 있는 추기경들은 모두 머리에 빨간 모자를 썼지만  관객들은 새 교황을 선출 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이  어떤 피부색을 지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구체적인 얼굴 모양새도 체형도 알 수 없다. 

비밀 투표가 진행 될 수록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 사이의  조용한 음모와 암투극이 점점 더 날카롭게 충돌하면서  가장 신성한 공간인 비밀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들의 인간적인  얼굴의 민낯이 드러난다.

살아 생전 교회의 개혁과 변혁을 추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환대와 이혼 및 재혼자의 영성체 문제 등을 놓고 교회 내 보수파와 갈등을 빚으며 개혁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있는 지구촌 분단의 현장에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평소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했던 교황의 모든 실천의 뿌리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였다.

추기경이 되고 나서도 고급 승용차와 개인 기사를 두지 않고 일반인들이 타는 버스와 지하철을 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총에 맞아 죽거나 에이즈에 감염 될 수 있는 빈민촌을 찾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보살펴 주었던 빈민가의 교황이였다.

신을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깊은 사랑과 영성을 주고 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서야말로 화해에 이르는 문이라는 말씀을 남기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출처: 바티칸 교황청 

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 선출되었다.

현재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맡고 있는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O.S.A.) 추기경은 미국 시카고 태생에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일원이다. 

 사제 서품 후 오랜 기간 페루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셨던  레오 14세 교황은  19세기 말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을 계승한다는 의미 새 교황명으로  '레오'를 선택 했다.

1810년 이탈리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교황 레오 13세는 1837년 사제 서품을 받고 1841년까지 교황령이였던 이탈리아 베벤토와 페루자 총독을 겸임했다.

 교황청 소속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던 교황 레오 13세는 1878년 콘클라베에서 투표 3번 만에 교황으로 당선되었다. 

귀족 가문 출신 답게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19세기 산업 혁명기에 불어 닥친 노동과 인권 운동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던 교황 레오 13세는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과 인간다운 노동 조건 보장의 필요성, 노동조합 설립 권리 인정, 사유재산의 권리를 인정하되 '공동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대규모 충돌과 시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 해서 시스티나 성당에 격리된 채로 교황으로 즉위 하도록 하였다.

교황으로 당선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68세로 93세까지 교황직을 유지 했던 레오 13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장려하고 교황권의 우위와 중앙집권화를 고집했으며, 교황청이 잃어버린 세속적 주권을 회복 하려 했고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사회주의 이념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10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 레오 14세는 "주교는 자신만의 왕국에 머무는 작은 왕자여서는 안된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걷고, 고난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미션에서 신부와 사제들이 포르투갈 군대에게 목숨을 잃고 난 후 정치적 논리로 원주민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당시 교황청 소속 추기경은  혼자 살아 남아 이렇게 말한다.

"사제들은 죽고 나만 살아남았지.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나고, 산 것은 그들이야. 그것이 그들의 정신이니까. 그리고 그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을 걸세." 
 

 레오 (Leo)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혼돈의 세상에서 새 교황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포용과 사랑으로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선물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1936=2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둑의 시작은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에서 유래 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 하며 별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돌들은 기원전 2300년 경 중국의 요왕이 아둔하고 게으른 아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인 바둑을 시작했다.

한반도에 바둑이 전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 승려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도구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 였던 바둑은 17세기 일본에서 막부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게임의 룰이 생겼고 오로지 바둑만 두고 사는 직업군인 기사제도와 본인방 같은 가문 대대로 바둑 기사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 가문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지역별 종파별 바둑 가문 대결이 시작되면서 전 열도의 대전으로 게임의 룰이 정비 되었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다.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 흑과 백의 돌을 미리 바둑 판에 배치 하고 시작하는 순장 바둑을 두었지만 해방 후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조남철 9단이 일본 바둑 룰을 한국에 보급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바둑은 단 한 번에 게임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흑의 수로 중단 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게임의 룰이지만 일본 바둑은 여기에 상수(上手)에 대한 예외를 두고 일단 상대의 수를 봐 두고 다음 수를 다시 바둑이 재계 되는 시기까지 천천히 고심해서 대국이 중단될 때까지 마지막 수를 봉할 수 있는 규칙으로 변형 되어 왔다.

이렇게 자잘한 규칙과 예외, 만일에 대비한 비책까지 바둑의 현대 룰을 확립한 바둑 기사는 일본의 명인이라 불리는 혼인보 슈사이다.

일본의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50년 동안 불패의 기록을 세운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는 상대 바둑 기사를 선발 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은 상대와의 게임에서 궁극의 승자가 되는 바둑을 즐겼다.

대국 조건도 각자 제한 시간 40시간에 각 대국 간격이 나흘 일정에 대국 중에는 줄곧 숙소에 머무르면서 승부가 날 때까지 바둑을 지속했던 명인은 결국 마지막 바둑 경기를 앞두고 숨을 거둔다.


제 21대 혼인보 슈사이(本因坊 秀哉 )명인은 1940년 1월 18일 아침, 아타미에 있는 우로코야 여관에서 죽었다.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살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1938년 6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세기의 바둑 대전이 벌어졌다.

14회나 계속된 이 경기는 65세의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대국 경기로 그는 경기 중반에 병으로 쓰러져서 11월 중순까지 석 달 동안 경기가 중단 되었다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마자 겨우 제개 되었다.

하지만 50년 간 이어온 '불패의 명인'이라는 기록이 30세의 젊은 신성에게 깨지고 결국 대국이 끝나고 나서 1년 후 1940년 명인은 원래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날이면 항상 바둑판을 펼쳐 놓고 바둑알을 만지작 거리며 바둑판에 흑색과 흰색 기보를 두고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참관하는 동안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하며 일본 열도를 바둑의 열풍으로 몰고 갔을 정도로 바둑 애호가 였다.

일본의 바둑 역사는 약 300여년으로 [명인 名人]이라는 호칭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엔 모든 걸 다 차지할 수 있는 직위일 정도로 바둑 판에서 승자의 자리에 올라가면 막강한 세력을 과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나서 부터 바둑계의 승자인 명인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명예뿐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에 실존 명인 혼인보 슈사인는 1914년 마지막으로 명인 名人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명인의 하얀 부채가 얼음물을 얹은 검은색 칠(漆) 쟁반에 비치어 움직이는 고즈넉함. 관전은 나 혼자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50년 동안 바둑의 명인이였던 혼인보 슈사이는 삼십 년 동안 흑을 쥔 적이 없었다.

그는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였고 살아 생전 후진 가운데 8단도 없었다.

동시대 활동 했던 바둑 기사들 중에서 그의 지위에 견줄 자가 없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십 년 동안은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승부를 넘어선 기사도 나타나지 않았고 계승자도 없었다.

흑과 돌의 집짓는 게임을 '도道'의 예술로 끌어 올려 기와 예절을 갈고 닦는 명인 바둑 기사를 탄생 시킨 곳은 일본이였지만 일본의 바둑의 기예를 누른 상대는 한국의 바둑 기사들이였다.

승부의 세계가 원래 그렇다. 아니, 승부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 중에서

한국 바둑의 명인 계보는 한국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이 터를 닦기 시작해서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그리고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둔 이세돌에서 현재 2000년생 신진서 9단으로 이어진다.

2019년 1월부터 7년째 세계 1위인 그는 14억 중국의 최고 기사(棋士)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무서운 20대 신진서 9단은 엄청난 인해 전술 전략을 펼치며 만리 장성 같은 바둑 게임 판을 키우고 있는 중국 바둑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대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 다섯 명이 신진서 9단에게 달려 들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한 해 동안 82국을 소화하는 신진서 9단은 상대가 강할 수록 묘수가 떠오르고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날 수록 정신이 집중 되어 강자들을 꺾을 때 마다 자신감이 붙어 마지막 승자 자리에 올라가는 바둑 인간 알파고다.

5일 동안 이어지는 결승 대국이 시작될 때는 신진서 9단은 혼자 다섯 명의 중국 바둑 대표들을 상대 할 때는 게임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40분 부터 저녁 6시간 까지 경기에 임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 식사와 주변 산책을 하며 마지막까지 온전히 바둑판과 혼연 일체가 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복기를 하고 복기가 끝나면 새로운 상대인 인공지능 바둑을 연구 하고 있다.

2000년 생이 혼자 중국과 일본의 바둑 기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건 지속적이면서 일률적인 습관 덕분이였다.

신진서 9단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9시 기상

-식사 전 기보, 두 개

-오전 11시 전 까지 아침 겸 점심 식사

-인터넷 바둑 공부

-오후 시간 동안 기보/기보/기보

- 오후 3시 쯤 간식과 휴식

-인터넷 바둑(이길 때 까지 게임을 지속한다.)

-저녁 6시 까지 기보/휴식/기보

-늦은 밤 이기면 산책을 나가고 지면 이길 때 까지 기보/기보/기보


이겼다고 믿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잡념은 교활하다.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는 순간이 자신이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임을 알고 있다. 목표가 눈앞이라면 그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그때가 가장 큰 위기일 수 있다.

-신진서 9단의 <대국> 중에서


박진감 넘치고 실감 나는 3D게임이 넘쳐 나는 시대에 흑과 돌을 만지작 거리며 몇 시간에 걸쳐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올려 놓은 게임은 과거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평생 동안 바둑판만 응시한 채 1년 365일 손에서 바둑 알을 쥐고 사는 명인은 바둑판을 벗어난 세상의 온갖 협작과 질투,교묘한 술책이나 속임수, 눈속임에 크게 개의치 않아야 하고 그런 시선과 모함에 휘둘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명인의 하루 일과는 바둑 알을 쥐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시작되고 하루의 마지막도 바둑 알을 손에서 내려 놓아야 끝이 나고 한 번 승부가 펼쳐 지면 끝장 날 때까지 승부를 보는 근성으로 인생의 모든 걸 바둑에 건다.

바둑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명인의 삶은 이해 불가다.

기껏해야 바둑이고 이기고 지는 승부의 게임이지만 바둑 판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서로 집을 지으려 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렇게 흑과 백이 맞붙는 과정에서 흑과 돌의 대결은 마치 온갖 처세술이 난무 하는 세상의 축소판 처럼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바둑 판 위에서 펼쳐지는 오묘한 게임이다.

인생 전체를 바둑판에 온전히 바쳐 버린 명인처럼 읽고 쓰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매진 하는 사람이 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한 마쓰나가 K 산조는 1년 365일 설계도를 그리며 집을 지어 올렸던 건축가였다.

주중엔 설계도면과 씨름을 하고 주말이면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했던 마쓰나가 K 산조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일상의 자잘한 것들이 떠올랐고 산에서 내려 와서 등산 하는 동안 느꼈던 여러 상념과 공상들을 종이에 쓰기 시작한다.

주말 마다 손에 쥐고 다녔던 산행 루트가 그려진 지도는 종이 위에서 정교한 플롯으로 짜여 졌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주인공 하타의 산행을 통해 무탈하게 별탈 없이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던 3년차 직장인이 어느 날 등산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단 한 번도 시도 한 적 없는 산행을 시작한다.

그는 산을 올라가는 동안 유툽 채널 운영자가 알려주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산을 오르게 되고 산행 중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챗바퀴 같은 인생에도 나름대로의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베리에이션 루트(variation route). 베리 루트라는 표현도 쓴다고 한다. 평범한 등산로가 아닌 길, 요컨대 파선(破線) 루트라 불리는 고난도의 숙련자용 루트나 폐지된 길을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지 않으려나. 좀 진귀한 루트를 두고 베리에이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는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가거나, 지형도를 보고 올라갈 수 있을 법한 곳 또는 오히려 못 올라갈 법한 곳을 나아가는 등 루트를 완전히 무시하고 산행 하는―”

-마쓰나가 K 산조의 <베리에이션 루트> 중에서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도 바둑 판에 흑과 돌을 쌓는 과정도 정해진 '길' 법칙이 없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두 손을 바둑 판에 내밀며 한 발 한 발 , 한 수 한 수 앞으로 나아가면서 포기 하지 않는 노력과 근성으로 버텨 내고 감내 하고 이겨내면서 자신 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산행을 하면서 자신만의 루트를 개척 했고 산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스토리로 종이 위에 활자를 채워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 했다.

산을 오르는 것도 바둑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쉽지 않고 한 권의 이야기를 완성 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장편 역사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매회 1만자를 넘나들며 2025년 1부 50회를 지나서 3월 27일 61회의 고지를 찍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1회부터 60회까지를 발걸음 수로 계산을 해보면 일반 성인 한국인의 보폭은 60~80cm 정도로, 1,000걸음은 약 1km 정도다.

큰 걸음으로 만보를 걸으면 약 6~8km를 걷게 되고 만보 걸음을 채우려면 2시간 정도 소요 된다.

1년을 넘겨서 61회를 썼으니 61 만보를 두 발로 걸은 것과 비교 할 수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AI 시대와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는 오늘날, 목표 또한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면 마치 만점짜리 과녁처럼 그것에만 집중하지만, 기술과 사회는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설정한 목표가 내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장기적인 목표라면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데이터 경제, 디지털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이라야의 AI 시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중에서



인공지능이 바둑도 두고 소설도 쓰고 그리고 뚜벅 뚜벅 만리 장성도 지치지 않고 걸어 갈 수 있는 시대에 창작법을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는 나는 홀로 고군분투 하며 100회를 예정하고 장편 역사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출간한 책들은 지난해 10월 부터 최근 까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순번을 서로 번갈아 가며 1위 자리를 밀어 내고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한강 작품 열기 속에서 인기 아이돌이 추천하는 책, SNS열풍을 타고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영향력 있는 인사가 추천하는 책들이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 와중에 세상은 12·3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렸고 전국 주요 도심은 탄핵 찬반 시위, 시국 선언,집회 등으로 단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권력의 '별의 순간'을 잡으려는 대권 잠룡들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동안 아이돌 그룹의 신간 앨범이나 사진집 발매 오픈 런 대기줄 처럼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 책을 사려는 이들이 대형 서점 개점 전부터 100m가 넘는 줄을 서는 기 현상이 벌어졌다.

광화문을 지나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눈 앞에 이런 광고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긴박한 순간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역사 다큐멘터리


누구든 책을 낼 자유가 있고 누구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매 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손바닥 크기의 작은 문고본을 꺼내 무심코 펼쳐지는 페이지를 읽는다.


“어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모두가 착하디 착한 이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의 고된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매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인간의 우수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머릿 속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있다.


영혼의 스승’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이 가을의 공기 속에서 그토록 선량한 눈매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뭘 잘못했다고 이 가을의 공기는 이렇게 숨이 막히는가. 언어가, 인간의 그 언어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들으려야 들을 수가 없다. 요즈음 신문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라디오를 들어도 눈물이 난다. 인간의 말이 듣고 싶어서, 우리들 이웃의 나직한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내 귀는 도리어 문을 닫는다.

지형(紙型)까지 떠 놓았지만 언제 책이 되어 햇빛을 보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영혼의 모음(母音)은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가 아니면 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1972년 입동절 다래헌(茶來軒)에서 저자 합장.”

법정스님을 평가할 때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을 실천한 수행자이자 고등교과와 대학 교과에 수필이 실리는 자연주의자 에세이스트로 인식한다.

하지만 스님이 남기신 글들을 찬찬히 읽다 보면 ‘비구 법정’은 반 세기 전 민주화에 앞장섰던 선구자자 였다.

1954년 입산 출가하여 조계산 불일암 시자인 법정(法頂)스님은 1960년부터는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이 주도했던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1972년 12월 독재 정권 연장을 위한 유신 헌법이 발효되고 이에 항거한 학생, 시민, 민주계 인사 등의 유신 철폐 개헌 서명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스님도 뜻을 함께 하였다.

1971년 법정 스님은 <현대문학> 3월호에 <무소유(無所有)>를 발표했다.

우리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一部 몰지각자者

대한민국大韓民國 주민住民 3천5백만 다들 말짱한 지각知覺을 지녔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지각知覺을 잃었는가

아, 이가 아린다 어금니가 아린다.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오늘도 부질없이

치과의원齒科病院을 찾아 나선다.

흔들리는 그 계단을 오르내린다.

「1974년 1월-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중에서)


1980년 법정스님은 해인사와 서울을 오고 갈 때 뉴스와 신문을 통해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 한 것을 알게 된다.

몇 일 후 선암사의 어느 노스님이 군인이 쏜 실탄을 팔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회민주화에 대해 발원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발표한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박해를 받으니까 증오심이 생기더군요. 내 마음에 독을 품는 게 증오심인데 그때 ‘이래선 수행에 도움이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이탈하는 게 괴롭고. 중노릇하는 내 본분이 뭐냐고 스스로 물었지요.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 해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법정(法頂)


시국을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어느 날, 법정스님은 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깨닫고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칸 암자에서 혼자서 밭을 매고 밥 지으며 수행한다.

법정 스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 지 17년의 세월 동안 그의 주옥같은 산문집들을 읽는 독자들 마음마다 사색의 깊이가 새겨지고 스님이 활자로 새긴 철학적 언어들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 내부는 비어 있다.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산 속 암자까지 찾아 가자 법정 스님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1992년 법정스님을 찾아온 한 프랑스 철학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님은 다시 붓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이렇게 자연에서 배우고 얻어 들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눠야 되겠구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자는 일과를 매일 지키셨던 법정 스님은 세상을 향해 말로 글로 깨우침을 전하고 나서 2010년 3월 13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입적 하셨다.

50년 동안 수행을 했던 법정스님이 다다른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사람의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얼마나 주변 이웃에게 덕(德)을 베풀었는지가 중요해요. 바로 덕이야말로 사람의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덕을 쌓을 줄을 모릅니다. 잘 살고 편리해도 덕이 없으니 외롭고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죠. 무슨 일을 하든 이웃에 덕이 되는 따뜻한 가슴과 포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을 내세우는 매관매직을 하고 있는 무소불위 공무원들은 국민의 혈세 법카를 긁으며 잘 먹고 잘 사는 풀 소유의 삶을 누리고 있다.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자들은 저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현금 살포를 하겠다고 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인공 지능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는 법안만 통과 시키며 정치 개혁, 정권 교체를 외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동안 사회 곳곳에 시퍼런 칼날들이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찌르고 있고 부실한 사회 안전망은 언제 어디서 어떤식으로든 무너져 버릴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우리 모두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의 역사다.

소유 하려는 열망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남들 보다 더 많이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울 뿐이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시며 청빈을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은 빈 손으로 떠나셨다.

“그저 ‘현재의 나’일 뿐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삶을 살아갈 뿐이지요. 연륜 값을 하고 있는 건지, 수행자 답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법정(法頂)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힐 2025-03-1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하니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수록 어서 빨리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scott님의 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2025-03-1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