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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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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월 26일 영국의 군인이자 식민지 행정관인 아서 필립은 11척의 배에 1500명의 선원을 태우고 1년을 탐험한 끝에 거대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허허 벌판의 빈 땅 '시드니'에 행정관 아서 필립과 천 오백명의  선원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서 이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첫 번째 이주민 상선에 포화 상태인 감옥의 죄수들을 가득 태워 보냈다.

영국의 감옥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 하자 마자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백인 죄수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호주 원주민 남자들은 죽여 버렸고 여성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강간 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영국 죄수들은 호주 원주민들을 애버리진(Aborigine/원래부터 있던 사람/속어로 미개한 사람)이라 부르며 인간 사냥을 벌였고 그 결과 혼혈 원주민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2차 상선에 미개척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탑승한 선교사들은 호주대륙에서 백인 이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하프캐스티드피플(half casted people)이라고 부르며 '신의 이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미개한 원주민 사회에서 구출 해야 한다는 구호 운동을 펼쳤다.

한 손에 성경책을 든 백인 선교사들과  각 지역을 담당하는 목사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원주민 혼혈 아이들을 백인가정에 입양 시켜서 호주 대륙에 원주민 흔적을 지우기로 합의 한다.

호주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원주민이 미개하다 못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가축을 키우는 농장 같은 우리에 가둬 버리고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입양 시켜 버렸다.

1900년에서 1972년 사이  3만5000명의 원주민 아이들과 백인 혼혈 아동들이 백인 가정에 입양 되었고 간신히 백인의 폭력과 살상에서 살아 남은 원주민들은 호주 대륙에서 가장 척박한 사막 지대로 쫓겨났다.

호주 정부는 1992년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이 가해자인 원주민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레드펀 연설(Redfern Speech)'을 하기 전까지 백인 이민자들이 원주민에게 가한 극악한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아이들을 빼앗은 사례가 아주 많다.

미 대륙을 차지한 영국과 프랑스계 백인들은 인디언 부족을 사멸하고 인종을 말살 하기 위해서 인디언 가정의 아이들을 백인 가정에 입양 시키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와 종교 시설에 보내 버렸다.

미 대륙 백인들은 인디언을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키고 나서 흑인 노예를 수입해 농장에서 가축처럼 부렸고  목사와 선교사들과 단합해서  교구 확장과 신자수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 아이들을 종교 시설에 강제로 보냈다.

미 대륙에서는 1978년에 제정된 아메리카 원주민 아동의 입양 및 양육에 대해 특별한 법적 보호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 외부와 단절된 미국의 남부 국경지역에서 강제 아동 입양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내 독일계들을 잠재적 스파이라며 집중 감시를 하면서도 부모와 아이를 분리 시키거나 강제 수용서로 끌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하와이 섬에 폭격을 가하자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몰아 넣었고 아이들과 분리 시켰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미 정부는 행정부가 바뀌어도 1982년 부터 미국 내의 특정 인종에 대한 감시와 차별법을 은밀하게 가동 시켜 왔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집권 초기 불법 이민자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그 자녀들을 교회 단체에 보내 버린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회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코로나 균의 진앙지가 중국이라며 아시아인 차별법을 시행해서 강제 추방을 시도 했지만 이 역시 의회 반대로 무산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시아인 차별법'은 폐기 되었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시행했던 일명  ‘차이나 이니셔티브(수천 명의 중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한 스파이 색출 작전)’라 불리는 행정 명령은 2025년 트럼프 2기 집권기부터 더 정교하고 더 차별적인 이민과 차별 정책으로 계승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와 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색 인종과 비 백인들. 유학생 체류 비자 발급도 중지 한다고 선포 하고  불법 이민자들 그리고 외국인 갱단과 친 아랍계들을 내쫓은 자리에  유럽 백인들과 남아공 백인들에게 유리한 비자를 주겠다며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 불법 이주민과 난민 가정의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자녀들은 미국 사회와 격리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이에 동조하는   백인 극우 단체들은 비백인과 이민자들, 아시안계들을 내쫓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인종 사회 미국에서 인종과 종교간의 갈등은 단 하루도 잠잠한 적은 없었지만 사회적 이목 때문에 그동안 내색을 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트럼프의 차별과 분노를 조장하는 정책에 크게 환호 하고 있고  정치권은  미국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중국이라 가정 하고 ,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차이의  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20세기 미국이 눈부신 번영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군사 경제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건 박해와 차별, 가난을 벗어나 미국 땅에서 성실하게 삶을 일구며 미래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 했던 이민자들과 난민들 덕분이였다.

이들 중에 상당수는 자국에서 뛰어났던 인재들로 전쟁과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해서 미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 세기 전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중국계 과학자 부부가 있었다.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셀레스트 잉의 부모는 1960년대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과학자였다.

영국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셀레스트 잉의 아버지 다니엘 잉은  NASA 설립 초창기 멤버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클리브랜드 주립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미 정부로 부터 핵심 인재로 우대 받았던 과학자 부모 아래서 성장한 셀레스트 잉은 아시안계들이 거의 없는 오하이오주 백인 사회에서 성장하는 동안 큰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백인들 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셀레스트 잉은 성장 하는 동안 겪었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인종에 대한 차별을 글로 적어 나가면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자 부모의 영향으로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고를 갖췄던 셀레스트 잉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예술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당시 단편 소설 부문 상을 받은 셀레스트 잉은 2012년 부터 다양한 온라인 매거진에 글을 기고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메사추세츠북어워드상, 미국도서관협회 알렉스상을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주목 받는 작가가 되었다.

 201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작은 불씨는 어디에나》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단숨에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간 셀레스트 잉은 2022년 세번째 소설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으로  미국 타임스에서 ‘2022년 100권의 필독서’로 선정 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적’이지 않은 생각과 외모가 탄압 받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은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 시행에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의혹에 불과 했던 아시아계 출신 무명 시인 ‘마거릿’이 PACT’ 시행법을 비판하는 행동을 하며 정부 정책에 대항하는 반역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자 사람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시인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시인 '마거릿'을  본보기로 내세운 미국 정부가  아시아계를 겨냥한 감시를 노골적으로 시행하는 사이에  아홉살 짜리 시인의  아들 ‘버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사이렌과 고함이 울렸고 가끔은 총성도 들렸다. 아니, 폭죽 소리였나?

불안의 물결이 산불처럼 주에서 주로 퍼져 나갔고 전국이 바짝 말라 어떻게든 불타고 싶어 했다.

-셀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중에서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에 위법 하는 행위를 저지른 부모들은 잡혀가고 그 아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가정이나 시설로 보내진다.

삼 년 후, 12살이 된 버드는 오직 그림으로만 채워진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받고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홀로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들의 이야기>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작가 셀레스트 잉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 정부에 탄압 받아 남편과 아들 모두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잃은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삶을 차용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리카르도 헌이 번역한 일본 설화의 뼈대를 작품의 토대로 사용했다고 후기를 통해 밝혔다.

근 미래 시대 미국의  전통문화 보존법 ‘PACT’의 탄압 받는 인종으로 중국계 여성 시인을 내세운 작가 셀레스트 잉이 펼쳐 보이는 근 미래 시대 미국사회는 그다지 암울하거나 암담해 보이지 않다.

작가 셀레스트 잉은 미국 정부로부터 과학자 우대 정책 특혜를 받아 별다른 차별과 어려움 없이 성장해서 인지 검열과 침묵이 일상이 된 근 미래 시대 미국에 홀로 남겨진 10대 중국계 아이가  행방불명된 시인 엄마가 남긴 흔적을 도서관에 비치 된 시집을 찾아 헤매는 모험 스토리처럼  펼쳐 보였다.

불과 반 세기 전까지 흑인 차별법을 시행했던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 하고 있는 차별법은  단계별로 시행 되고 있어서 이후에 들어서는 새 행정부에서 완전히 폐기 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떤 주에서나 적용 할 수 있는 새 차별법이 만들어 질 것이다.

미국에서 아시안계들이 받는 차별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걱정하고 우려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침없이 과학 굴기와 압도적인 영토 크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며 호령 하는 중국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상대국은 대한민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소멸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외국인 인구층의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계들로 중국인 부모를 두고 있는 자녀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 정부의 중요 기관에 취직해서 기밀을 빼돌리는 사건이 비일비재 하게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10대 후반, 20대 초반 중국 청년들이 한반도 내  군사보호시설에 몰래  사진을 찍거나  높은 곳에서도 선명하게 찍히는 드론으로 국가 주요 시설을 찍고 있다.

 2023년 6월 중국인 유학생 3명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지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무단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야산에서 드론을 띄우는 중국계를 잡아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분석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진과 영상이 모두 국가주요시설물들 뿐이다.

이런  혐의로 잡힌 중국인들에게 한국 법 처벌은 고작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2개월 정도 출입국 금지를  내리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리고 있다.

한국 정부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는 동안  중국인들은 입을 맞춘 듯 '호기심에 찍었다' '경치가 좋아서 찍었다'고 둘러대면 이들은 과태료를 내고 풀려나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출입국 금지가 해제 되면 언제든지 한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보이스 피싱, 딥페이크, 금융 해킹 사고의 배후에는 거대한 중국이 있고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수차례 탈탈 털릴 정도로 국가와 기업의 안일한 법망과 보안 시스템은 너무 허술해서 전 세계 해커들에게  한국 통신망은 가져 갈 것이 많은 호구가 되었다.

한국에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중국계들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조선족 칼부림에 한국민이 희생 당하고 있다.

중국의 검은 세력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잠입해 있어도 마땅하게 처벌할 법도 없는 한국은 근 미래 시대에 국가의 존립 마저 위협 받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전 세계 대륙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식민지를 넓히며 현지인들을 착취하고 말살 시킨 백인 국가들은 국가의 존립과 기강을 위해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해서 촘촘하게 차별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민의 삶을 위협 하고 있는 마약과 갱단을 미국 밖으로 몰아 내고 있고 이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 보다 국적을 취득한 중국계의 인권을 더 중요시 하고  개인정보 보호는 소홀히 하는 사이 중국 대사관은 서울 중심 용산에 노른자 땅을 대거 사들였다.

정부는 이 또한 제재 할 방법도 법령도 없다며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이든  관광하러 온 중국인이든 법을 어기면 이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의 삶의 터전도 생명도 위협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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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7-04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scott 2025-07-05 00:33   좋아요 1 | URL
민아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주말 시원하게 보내세요 ^^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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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는 다양하면서 잡다한  영상들이 올라 오는데 조회수가 높은 순위에 꼽히는 영상들은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영상들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우들은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 속의 모습이 아닌  냉장고 안에서 음식을 꺼내 직접 요리해 먹거나 지인들을 초대해서 수다를 떠는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모습이나 작품에서 미처 보여 주지 못했던 개인적인 취미나 재주를 보여 주기도 한다.

유튜브 플랫폼이 존재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배우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각 방송사에서 특별 제작 하지 않은 이상 대중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배우들, 화려한 조명 아래 멋지게 차려 입은 그 배우들이 한 시절의 인기가 저물고 나서는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 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10대 때 부터 영화에 출연 해서 19살에 출연했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단숨에 월드 스타가 되었다.

 데뷔 이후 부터 배역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그녀는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배우로 엄마로 살았던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대 배우의  인생 이야기는  책도 유튜브도  아닌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손에서 영화로 탄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래전에 깊은 감동을 받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고 조금씩 구상을 하다 2003년 인생의 말년을 맞이 한 어느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의 시나리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라는 제목으로 준비해 두었다.

애초에 이 시나리오는  연극 상영이 시작 되던 날 분장 실에서 여배우가 소원해진 자식과 우정을 나눌 동료 배우조차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는 내용이였다.

감독이 미리 점찍어 두었던 여주인공은 1950년대부터 60년대 까지 일본을 대표 했던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와 감독의 페로소나 같은 배우 기키 기린을  염두 해 두고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다른 작품 촬영에 밀리고 밀려서  시나리오 작업이 부진해 졌고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2018년 영화 제작을 시작할 무렵에 기키 기린 배우가 암 투병 끝에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시나리오는 서랍 속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바닷 마을 다이어리> 상영 때 직접 관람했던 카트린 드뇌브와 인연이 닿았던 감독은 우연곡절 끝에 <어느 가족> 촬영을 마치고 나서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영화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이름은 파비안느, 직업은 배우로 실제 카트린 드뇌브의 삶과 매우 흡사하게 설정 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 성공을 거두었던 배우 파비안느는 한때 프랑스를 대표했던 대 배우였지만 이젠 작품 섭외조차 들어 오지 않는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배우였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자서전을 준비하는 동안  발간 하기에 앞서 좀처럼 왕래 하지 않았던 딸 부부를 초대 한다.

파비안느의 딸 뤼미르는 엄마의 자서전을 읽다가 단 한 줄도 진실이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항상 영화 출연 중이여서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둘도 없는 모녀 사이를 넘어 단짝 친구처럼 묘사 되어 있었다. 

엄마와의 추억이 전혀 없었던 딸 뤼미르가 이 자서전은 허구라고 따지자 파비안느는 무심한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진실은 재미없지 않겠어?"

배우가 되지 못해 시나리오 작가가 된 딸 뤼미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가식과 허영 덩어리로 대중들에게 조차 엄마의 모습을 연기 하고 있을 뿐이다.

파비안느 삶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갖지 않는 진실 된 사람이 존재 한다.

손녀 샤를로트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이지만 배우인 할머니의 성격을 쏙  빼닮아서 개성 있고 매력적인 성격의 아이다.

영화는 배우 파비안느가 그동안 살아 오면서 실제 인생과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인물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사랑과 위트가 넘치는  가족 품에서 다정한 엄마로 살고 있는 딸과 달리  엄마 파비안느는 어린 시절 부터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생을 연기 하다가 실제의  삶과  가상의 인물의 삶이  혼재 되어 어느 새 모든 순간이 가식적인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감독은 파비안느가 연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에서 흘리는 눈물과 딸과 사위 앞에서 흘리는 눈물의 모습을 뒤섞어 놓고 관객들에게  영화와 현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기하는 인물과 실제의 삶이 다르지만 일반 대중들은 작품 속 배역에 완전하게 몰입한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같이 눈물을 흘릴 때가 있듯이 연기하는 배역이 그 배우의 실제 모습과 가깝다고  착각 할 때가 있다.

감독이 실제로 만났던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 속 인물처럼 살지 않고 연기와 자신의 인생을 구분해서 살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 사회>로  전 세계인들에게 이름을 알리면서 10대 시절 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 이선 호크는 카메라 밖에서는 수다쟁이에 딸의 치아 교정을 언제 해줄 지 고민하는 딸 바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줄리엣 비노쉬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출연 섭외를 받자   감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직접 식사 대접을 했다.

줄리엣 비노쉬는 대 배우와 기싸움을 벌이거나 작품에서 자신의 배역 비중을  놓고 감독에게 압력 행사를 하지 않고  다른 국적의 감독들이랑 영화 촬영 당시에 얽혔던 에피소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며 영화 출연에 있어서 감독의 국적이나 언어 장벽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9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영화로 개봉한 이 작품의 원 제목은 <진실>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003년 부터 지지부진하게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캐스팅을 염두 해 두었던 배우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영화 배경을 일본이 아닌 프랑스로 옮겨서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와 딸의 갈등과 화해에 촛점을 맞추었다.

프랑스 현지 촬영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감독은 통역사를 통해 촬영과 연기 지시를 했고 편집하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서 격리 기간 동안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촬영했던 것을  일지처럼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멋지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직접 하이쿠 시와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남긴 감독은  촬영하는 동안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연기 배테랑들의 배려와  촬영팀의 협력으로 두 달 만에 완성했다.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 <브로커>촬영과 동시에 프랑스에서 영화 촬영과 편집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영화 일지 마지막에 한국 영화 제작 촬영 팀과 일했던 소감을 적어 놓았다.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자주  방문 했던 감독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 촬영 중에 막말을 쏟아내는 촬영팀의 우두머리와 콧대 높은 배우들의  모습이 초대형 히트작 <오징어 게임>과 흡사 하다고  일지에 남겼다.

감독은 1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 했을 때에 비하면 그나마 한국 영화계는 수평적이게 되었다고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영화  현장에서 60대 부터 70대까지 꾸준하게 활동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나이와 출신 세대 별로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서 기싸움을 벌이다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은 팬들과 소통을 위해 작품 홍보를 위해 배역을 맡지 못하는 동안 연기 공백기를 이유로 상당수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며 연예인 프레미엄으로 붙는 PPL까지 챙기고 있다.

전국민 80퍼센트 이상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고 누구나 개인 콘텐츠를 제작해서 영상을 촬영하고 올릴 수 있는 시대에 일반인들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까지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영화 속 세상이 진실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보여지는 것들을 진실로 받아 들일 때가 있다.

실시간 영상 시대에 진실처럼 보여지는 가상의 세상을 보며 울고 웃는  우리는 진실이 덮어진 무시 무시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영화 <공기인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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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5-24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영화계를 보고 남긴 일지의 글들이 참 뜨끔하네요.
우리 나라 영화계에도 좀 더 분위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요즘 저도 유튜브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예전보다 연예인들의 판?이 더 많아지긴 한 것 같아요. 알고리즘이 뜨다보니 어? 이 사람도 유튜브 채널 개설했네? 생각많이 했거든요.
나중엔 유튜브 열풍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긴한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암튼 스콧 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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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라일리가 13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자기 발견의 이야기가 중심인 '인사이드 아웃2'의 감정 컨트롤 센터에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새롭게 감정컨트롤 센터에 들어 온 불안 , 당황 , 따분 , 부끄러운이 감정들이 센터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던 기쁨이 , 슬픔이 , 버럭이 , 까칠이 , 소심이들과 감정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 단순한 감정만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기쁘기도 하다가, 슬픔을 느끼다가 , 당황 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불안감에 사로 잡히기도 한다.

시종일관 단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복잡 미묘한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서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는 불안을 정면으로 내세우며 애초에 인간은 단순히 기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궁극적으로 감정의 변화가 행동을 만들어 내면서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넷 익명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음껏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요즘은 그야말로 '감정'의 시대다.

인터넷 통신망이 없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나 사적인 모임에서 표출된 감정이 사람들의 입을 통하지 않고는 익명의 사람들이 알지 못했고 정치적 탄압이나 억압적인 권력층에 의해 감정을 억누르고 표출을 자제해야 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광활한 통신망 시대에는 누구나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개인 블로그나 인스타를 통해 경험과 취미, 일상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하거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기도 하고 혐오하거나 싫어하며 불편한 것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 명의 사람이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어서 다양한 자아로 다중적인 일들을 벌일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무심코 올린 사진 한 장에 단 한번도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받게 되는 일이 발생 하기도 한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봤습니다. 어깨에 똥을 싸지르는 비둘기보다 당신이 나은 게 하나라도 있을까요?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군요. “왈왈왈, 나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허접한 머저리입니다. 사람들 주목을 받고 싶어 칭얼거리는 개새끼입니다.” SNS에 영광을 돌려야겠네요, 아주 잠시나마 유명세를 누렸을 테니.

-비르지니 데팡트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중에서

프랑스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사십대 인기 소설가 오스카 제이야크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선망해왔던 여배우의 외모를 폄하하는 발언을 별 생각 없이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 여배우에 대한 글을 올려는 지 조차 잊고 살았던 어느 날 오스카는 그 여배우로 부터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답장을 받게 된다.

오스카는 책 출판 홍보를 담당했던 직원에게 미투로 고발 당하고 책 출간이 무산 되어 하루 아침에 그는 SNS에서 '개자식'으로 불리면서 언론의 먹잇감이 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물어 뜯기게 된다.

소설가 오스카가 도대체 그 여배우에 대해 어떤 글을 썼길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답장을 받게 되었을까?

오스카가 한 때 자신의 여신이였던 여배우 레베카를 직접 보고 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개인 SNS에 이런 글을 썼다.

참담함의 기록

파리에서 우연히 레베카 라테를 봤다. 그 배우가 그간 맡아온 캐릭터가 머릿속에 차례차례 소환되어 다시 상영되었다.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연약하고, 애처롭다가도, 때론 영웅적이기까지 한 여자. 얼마나 숱한 나날을 레베카와 사랑에 빠졌던가. 무수히 많은 사진이. 허다한 집을 거치며, 얼마나 많은 침대 머리맡을 장식했던가. 얼마나 많은 나날을 그 사진을 보며 꿈꾸었던가. 그런데 끝으로 치달은 한 시대의 비극적 은유를 목도한 것이다.

한 때 프랑스 남성들의 이상형이였던 배우 레베카는 전성기 시절에 잡지 표지와 광고계를 평정 했던 스타였지만 오십 줄에 들어 서자 배역이 들어 오지 않아서 커리어에 큰 위기가 불어 닥친다.

레베카는 배우로 한창 잘나갔던 시절에 몰랐던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고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하는 도서 홍보 담당자 조에 카타나의 글을 읽으면서 여성들에게 공격적인 백인 남성 블로거들을 물어 뜯기 시작한다.

한 때 동경 했던 미모의 여배우 레베카로 부터 온갖 저주의 말을 주고 받던 오스카는 자신의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이십대 여성 조에 카타나에게 미투 고발까지 당하자 무결함을 호소하면서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 노동 계급 출신인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익명으로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 해 왔던 조에는 실명을 밝히고 자신이 운영하는 페미니즘 블로그를 통해 계속해서 여성을 쾌락과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백인 남성들의 폭로를 이어나간다.

여성과 남성, 청년 세대와 기득권 세대, 노동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미투 고발자와 미투 가해자 등 전혀 다른 상황과 처지에 놓인 이들의 목소리를 1인칭 시점의 SNS의 서간체 형식으로 가감 없이 담아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의 배경은 현 시대 프랑스이지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과 세대간의 대립과 갈등의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미디어의 환상적인 카메라와 편집 기술로 인한 비현실적 미의 기준,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계층간의 갈등과 차별, 노인 혐오와 폄하, 젊은이들에 대한 불신 온라인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이버불링, 청년 세대가 겪는 우울과 불안, 마약과 알코올 중독 문제까지 현 시대의 모든 문제들이 용광로 처럼 펄펄 끓어 오른다.

현실감 넘치는 현대 사회 이슈를 폭넓게 담아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를 쓴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는 젊은 시절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였지만 가족과 지인 그리고 사회로 부터 보호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1969년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난 비르지니 데팡트는 사춘기 시절 '여자 아이가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부모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 당한다.

15살 나이에 정신병원 담당의사로 부터 성적 수치심과 모욕을 당했던 비르지니는 병원을 탈출한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이 학교에서 퇴학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탈출에 성공했지만 의지 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되자 무작정 리옹에 가서 닥치는 데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학력도 없고 정신병 이력을 달고 있었던 10대 소녀 비르지니는 어느 가정집 상주 가정부로 일을 하다 그 집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신고하게 되면 다시 병원에 감금 될 것이 두려웠던 비르지니는 식당 과 음반 가게를 전전하다 성 노동자가 된다.

비르지니는 성매매 하는 남성들의 민낯을 경험하고 나서 포르노 영화계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위장 취업을 해서 익명으로 매체에 기고를 하다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를 하며 기자로 활동한다.

1993년 비르지니는 그동안 철저하게 남성들이 감독하고 연출하고 제작 해왔던 포르노그래피 물에 정면으로 대항하기 위해 포르노그래피와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 소설 <베즈무아>를 발표 하면서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장편 소설 <베즈무아>는 영화로 제작 되었지만 프랑스 측에서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최고 행정 법원에서 배급 중단 행정 명령이 내려지지만 비르지니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검열 반대 운동을 펼쳐서 개봉 시키는데 성공한다.

비르지니는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의 경험을 과감하게 공개 하면서 SNS시대에 나날이 교묘해지고 악랄해진 젠더 간의 차별과 갈등으로 인해 왜곡된 성의식을 갖고 있는 남성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수 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과 차별을 가하고 있는지 사회 전역에 걸쳐 공론화 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다.

개인 데이터를 통째로 뽑아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셀프 브랜딩(self-branding)’ 해서 사회가 좋아하고 원하고 있는 '나’의 이미지로 설계 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다.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블로그 등 수많은 SNS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 세계 속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전시해서 스스로를 브랜드처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각 플랫폼과 그곳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나’의 모습에 맞춰 페르소나를 취사 선택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나’의 모습에 맞춘 페로소나를 선택한 개인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자신과 특정 성질을 공유하는 집단의 정체성과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의 주류에 편승한다.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들은 계층도, 연령도 모두 제각각인 세대의 집단이지만 자신의 집단에 몰입하고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여성이나 성 소수자를 공격하며 그저 무분별한 ‘혐오’로 똘똘 뭉친다.

문제는 이렇게 똘똘 뭉친 커뮤니티들 회원들 중에서 무시와 혐오를 당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 상대적인 박탈감이 원한으로 심화될 경우 이는 곧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어 사회 양극화의 갈등을 조장하고 여론 몰이와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겪고 있는 세대별 차별과 불안, 청년층의 불안과 노년층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전 세계 사람들이 겪고 있을 정도로 현 시대 사람들의 감정에서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불안감이다.

특히 한국은 태어나자 마자 살고 있는 거주지부터 계층이 나눠져서 극성스러운 양육과 교육열로 5살 부터 학원에 다니고 7살 때 부터 대학 입시를 향해 공부 하는 한국인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학교에서는 결석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를 따라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리켜서 '개근 거지'라 부르고 유행 하고 있는 아이템이나 옷으로 패딩 가격과 색깔로 또래집단 내 위계가 형성되어 학교 폭력으로 번지는 사태가 발생 하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소득 양극화, 높은 주택비용, 극심한 사교육 열풍 속에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입고 있는 '옷과 가방 그리고 자동차'가 신분증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는 '헬 조선'으로 불리고 있다.

장기 침체로 인해 노동 시장은 불안정해 졌고 소비는 위축되어서 불안의 심리가 사람들을 잠식했고, 이 불안감은 SNS전체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는 것이 고달 퍼지니 사회 형평성과 분배 문제를 둘러싼 계급 갈등과 젠더, 세대, 취향 등을 둘러싼 인정 욕구가 현실에서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더라도, 인터넷 익명 게시판과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음껏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의 시대 배경은 2020년 프랑스다.

다른 국가에 비해 자유와 관용이 넘쳐 날 것 같았던 프랑스는 SNS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 자행 되어 왔던 성차별과 성폭력이 2010년 부터 폭발적이게 늘어 나자 가해자 집단이 된 프랑스 남성들의 극우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계층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미투 고발자이면서 미투 가해자 그리고 관찰자이기도 했던 비르지니 데팡트는 ‘여성혐오’를 논의의 장 한복판으로 끌고 온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상처와 차별로 인해 함부로 꺼내 보일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구조적으로 적대성을 띠는 가혹한 곳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은 백인 남성들이 24시간 상주 하며 먹잇감을 찾아 다니며 공격할 대상을 찾으면 그 사람들의 행동보다 그들의 존재 자체에 낙인을 찍고 성희롱과 조롱, 인종 비하와 사이버 불링을 지나가다 툭 내뱉는 농담처럼 하고 있는 공간이다.

흑인, 아랍인, 아시아인, 극빈층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이들의 사이버 불링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해서 궁극적으로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자행 하고 있다.

인간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며, 사고도 치고,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에도 사로잡히고 한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거나 감정 때문에 여러 관계나 일을 포기하고 바꾸는 경우도 무척 흔하다.

온갖 계층과 국적의 사람들의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하고 있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한 인간의 인생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막강해져서 어느 날 누군가가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특히 한국은 남성에 의해 자행 되는 여성 혐오적 살해가 전국적으로 분당 13건씩 발생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2024년 이별 통보한 동갑 여성 살해 사건, 수능 만점자 출신 의대생의 여자 친구 살인 사건까지 데이트폭력, 스토킹, 강력범죄 피해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다.

문제는 이별 후 보복 범죄, 불법 촬영, 온라인 스토킹이 폭력이나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폭발적이게 증가하고 있어도 강력 범죄 사건이 발생 할 때 마다 초기 대응도 미흡한 것 뿐만 아니라 .스토킹 처벌법, 가정폭력방지법 등의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해도 법적 실효성이 느슨해서 피해자를 국가가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SNS의 등장으로 가속화된 계층 간 세대간의 갈등이 취업과 결혼, 출산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고 이루어 놓은 것들 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어서 현재 대한민국은 불안정과 무기력의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유일한 것이 바로 공통의 적입니다. 그외에 대해서는 우리는 너무 많은 개체를 보유한 인간종이기에 동질적인 집단을 형성 하기 힘듭니다. 적들은 우리를 관찰합니다. 우리를 파악합니다.

뿌리가 같은 우리 저격수 그들이 서로 총질할 때 그들은 즐거워 합니다."

-비르지니 데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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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스토브 - 오시로 고가니 단편집
오시로 고가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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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 세계 국가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가로 종이로 발행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출판 하며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출판대국이였다.

특히 종이 만화의 종주국이였던 일본의 만화 시장은 전 세계 독서 소비인구가 단연 1등이였고 발행되는 만화 잡지 종류도 다양했다.

엄청난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 전체가 종이 만화로 뒤덮였던 일본은 손 안에 스마트 폰 시대에 읽는 매개체가 디지털화 되면서 웹툰과 전자책 발행으로 판매 부수로는 인쇄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2020년 이전에 일본 도쿄 지하철 안에서 종이 신문과 종이 잡지, 만화, 기타 문고본을 읽고 있는 일본 승객들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 갔던 일본인들 대부분 대중 교통 이동 중에 스마트 폰만 응시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일본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뭘 보고 있는지 얼핏 보니 게임이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예능을 주로 보고 있었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이들도 꽤 보였다.

간간히 웹툰을 보는 일본인들 중 상당수는 종이로 발행 되었던 만화를 가로로 화면에 축소 시킨 흑백 만화책을 스마트 폰으로 보고 있었다.

일본은 잃어 버린 30년 경제 침체 속에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유서 깊은 서점들도 문을 닫고 있고 지역 도서관도 사라지고 대세가 된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 종이에 인쇄 된 거의 모든 것들을 스마트 폰으로 볼 수 있어서 종이 만화 발행 부수량도 대폭 줄어 들고 있다.

출처: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 만화 <눈 내리는 마을> 중에서

밀려 드는 K-웹툰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하게 종이에 펜으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이 있다.

종이 만화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종이 만화들은 ‘원피스·나루토·블리치-귀멸의 칼날·주술회전·체인소맨 같은 소년들이 주인공인 만화가 여전히 대세지만 이 틈을 뚫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가 ‘이 만화가 대단하다’ 순위에서 1위(여성편)를 차지했다.

스마트 폰 기기 하나로 집 안의 가전 제품과 연결 되어 원격 조정과 제어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아마존 쇼핑몰에서 구입한 전기 스토브가 집 안의 모든 상황을 감지 하며 말을 한다는 비 현실적인 이야기 조차 나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의 일상과 절묘하게 뒤섞여서 따스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주변의 공기를 따스하게 해주는 전기 스토브 한 대와 평균 체온이 삼십 칠도에서 삼십 오도 사이의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린다면 남아 있는 온도는 자신의 체온과 전기 스토브 한 대 뿐이 된다.

종이를 넘길 수록 매회 등장하는 장면 마다 사랑은 쿵 하고 다가와서는 휙 하고 떠나가버린다.

방 안의 온기가 되어 주었던 연인이 떠나고 전기 스토브만 덜렁 남겨진다거나 한 때 따스한 우정을 함께 나눴던 친구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서 영혼까지 갈아 넣어 버리다 텅빈 영혼의 육신만 덜렁 남겨진다.

펑펑 내린 눈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함께 눈덩이를 뭉치거나 공중 목욕탕으로 가던 길에 만난 이와 함께 목욕을 하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실연당하고 이별 하고 영혼을 치유 받는다.

오시로 고가니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걸 항상 두려워 하며 가족과 연인을 잃는 상상을 쉼 없이 하면서도 섣불리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작가 오시로 고가니는 매 장면 마다 출렁이는 바다, 달리는 지하철,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 따스한 물로 가득찬 공중 목욕탕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거나 함께 걷거나 마주 보며 살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하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보여 준다.

별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 하지만 한 장 한 장 마다 그려진 그와 그녀의 모습을 따라 가다 보면 미숙한 청춘의 상실과 슬픔이 느껴지고 언젠가 잃어 버리게 될 곁에 머물던 존재의 죽음과 이별이 한 편의 시처럼 다가 온다.

출처: 오시로 고가니의 <당신이 투명해지기 전에>

어느 날 광학연구소로 향하던 차량이 폭발 하고 이 길을 지나가던 스기와라는 그 차량에서 흘러나온 특수 약품을 온 몸에 뒤집어쓰는 사고를 당한다.

사고 이후 스기와라는 나닐이 자신의 육신이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벌어 지고 아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남편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 볼 뿐이다.

한 때 사랑했지만 함께 사는 동안 울고 웃다가 미워 하기도 했던 사랑이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 사랑이 떠나고 난 후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히 들렸던 도쿄 서점에서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 1위를 차지 했다는 띠지 문구에 호기심이 일어서 구입한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집 <해변의 스토브>는 휘리릭 눈으로 훑어 버리는 만화가 아니였다.

디지털 시대에 화려한 컬러 색상의 웹툰이 대세인 시대에 작가 오시로 고가니는 여전히 편을 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뚜렷한 명암 대비와 고운 선으로 그린 배경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의 그림체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보여 주다가 인간의 기억에 남기 위해 본보기로 사람을 얼려 죽이는 설녀가 등장해서 인간과 한 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뜨거운 음식을 먹고 빙수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축제를 따라가는 기발한 상상이 펼쳐 진다.

현 시대에는 모든 것이 스마트 폰과 연결된 과도한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자기 전까지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엉뚱한 상상이나 잡념 조차도 넘쳐 나는 영상과 이미지 홍수에 푹 젖어 들어서 시간을 들여 생각을 하기 보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것에 소중한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 되었지만 통제 하기 힘들 정도로 과도하게 연결 되어 소통이 단절 되고 관계가 단절 되어 오로지 '나' 하나만 덜렁 남겨 버린 시대가 되었다.

가게를 들어가도 자판기로 주문을 하는 시대에 집에 돌아와 반기는 건 내가 없는 사이에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해준 청소 로봇 기기의 불빛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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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시인선 7
김이듬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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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천 원으로 배를 채울 것도 없고 지하철을 탈수도 없다.

천 원으로 영혼을 고양 시킨다거나 지성을 갈고 닦을 수도 없으니 천원 지폐 만큼 가벼운 시집 한 권을 구입한다.

당신은 지금 잠의 가시 덤불 속에서 양 떼를 세고 있습니까?

한 마리의 양을 잃은 상실감으로 뒤척거리다 일어나, 모든 양을 풀어 주러 나왔습니까?

집들은 모두 낡은 목조 건물이고, 지붕에서 뜯어낸 판자로 만든 덧문 너머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까?

지붕 고치는 사람처럼 나는 사라져 가는 직업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걸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김이듬의 <목동의 밤> 중에서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김이듬은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기 전 까지 시를 쓰는 것 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서 일산에서 ‘이듬 책방’을 운영하며 시를 썼다.

시인은 낮에는 책방 주인으로 북토크를 열고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낭독의 시간을 가졌지만 책은 고작 하루 서너 권 정도 팔렸다.

대학 강사 수입까지 탈탈 털어 넣어도 매년 치솟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시인은 책방 문을 닫고 서울 변방에 작은 작업실에서 온종일 시어를 다듬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안락의자를 샀다고 말했던가?

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나는 열 권의 책을 쓰고 서른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시인은 안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어붙은 길목 앞에서 파쇄한 백지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비애와 불운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시인의 고독은 세상과 엇물리는 자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어진 시어들이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동행을 하듯, 정처 없이 떠돈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 아이스 중에서

또래들과 달리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을 거쳐 학교와 학원, 다양한 국가의 문화원과 도서관, 여러 국가의 박물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알지 못한 세상, 가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갈증이 강했다.

한국 땅을 떠나 영어와 독일어를 마스터 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에서 연극에 심취하고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서 이집트 고대 상형 문자를 배우며 어느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고대 문명을 연구 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유럽 전 대륙을 누벼 봤고 살아 봤고 북아프리카 이집트 카이로 부터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킬리만자로까지 올라가 봤다.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은 보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거대한 예수상을 보고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의 모래 가루 같은 소금도 만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일들, 버킷 리스트에 적어 놓은 것들을 거의 다 해보았고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나와 보니 순수가 어떻게 위협 받고 배반 되는지, 열망은 어떻게 죄가 되는지 인생의 단맛과 쓴 맛을 두루 맛보았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던가?

학업의 성취를 넘어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을까? 아니면 피 땀 눈물로 번 돈이 모두 중 범죄 짓을 저지르고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국민의 생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는 권력자들의 세금 루팡으로 전락해 버린 걸까?

시인 김이듬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풀도 가축도 무시하는 목동 같아요.'

퇴계 이황의 얼굴이 새겨진 천 원으로 시집 한 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늦은 밤 시인이 써 내려간 시를 읽는다.

어떤 순정과 진심은 ‘명작’ 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시는 명작이 되어 누구의 삶을 구원 할 수 있을까?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읽는다 내가 읽던 사람이 노란 버스에 탄다 구름을 읽는다 가로수와 새를 읽는다 건성으로 읽을 때도 있다 이상하게 나는 난독증을 고칠 의욕이 없다 다시 길을 걸으며 간판을 읽는다 독일어를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아우구스트스트라세에서 서점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당나라 말기 러브레터 이집트 상형문자 벵골어 부기어 등 오래된 언어들이 적힌 얇은 책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글자를 통해 사람을 읽는 게 재밌다 읽을 게 없으면 죽고 싶다 얼굴은 표지의 기능도 상실했다 워낙 리커버가 많으니까 나는 읽으면서 읽힌다 투명 비닐로 포장된 타이포그래프 잡지도 골랐다 셀프 계산대가 있었다 공항 검역대를 통과할 때처럼 소리가 난다 바코드 읽는 기계로 사람을 읽는다”

-「두 유 리드 미」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적는다.

커다란 덩어리 같은 제목을 적고 감정의 살점을 붙이듯 한 단어를 쓰다 떼어내고 다시 한 단어를 붙이며 운율을 붙여서 풍경과 사람들이, 어떤 시선들이 온 몸을 관통한다

퇴근 후 늦은 시각 텔레비전을 켜고 OTT에 접속하면 내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벌 수 없는 고소득의 개런티를 받는 예능인들, 배우들 모델들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있다.

나는 이들이 광대짓을 하며 돈을 버는 동안 내 시간을 허비 하며 삶을 소진 하고 싶지 않다.

글자를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고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 점점 더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해질 것이고 전파력이 강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양식을 찾아 다니듯 천 원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다이소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해도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을 사러 갈 것이다.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항상 떠날 궁리를 하죠. 안정감이 밤 물결 소리를 내며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나 들를지도 몰라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김이듬의 <밤엔 명작을 쓰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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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2025-03-0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이듬 시인의 시도 좋지만 님의 글도 놀랍네요.

scott 2025-03-09 15: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

media666 2025-03-09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무언가 값진 걸 주고 계시네요. 감사하고 또 부럽습니다 :)

scott 2025-03-09 2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

건빵 2025-03-09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cott 2025-03-10 12: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 주 시작 활기차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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