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훈드여, 새로운 사상은 반드시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되오. 하나는 그 사상이 약할 때: 너는 어떤 존재인가? 타협하고 거래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 살아남으려 노력하는가, 아니면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에 꼬장꼬장하고 게다가 멍청하기 짝이 없어 산들바람에 휘어지느니 차라리 부러지는 쪽을 택하는가?─후자인 경우, 대개는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쯤)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오. 그러나 백번째에는 세상을 뒤바꿀 수도 있소.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1989년 9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자마자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하 하고 모독 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불태우며 극렬한 시위로 들끓어 오른다.


악마의 시는 무슬림 인구 집단이 많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수단,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태국, 탄자니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에서 출판을 금지 시켜버린다.

1990년 2월 14일 이란 테헤란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사망) 유언으로 남긴 '무슬림을 모독한 자는 처단하라'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발표하며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슬림들은 살만 루슈디를 발견 하는 즉시 무함마드의 이름으로 처단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1990년 2월 14일 파트와가 발령된 다음날 부터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도피 생활을 시작 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악마의 시>를 불 태우는 시위와 작가 살만 루슈디의 생명을 지키자는 시위로 극렬하게 나눠져 버린다.

이 책을 출간하는 나라의 담당 출판사들은 무슬림으로 부터 폭탄 테러 위협을 받았고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들은 무슬림 폭도들에게 공격 당하거나 살해를 당했다.

유럽에서 <악마의 시>를 가장 먼저 출간한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의 번역가와 출판인들이 무슬림의 공격으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자 세계 각국의 출판인들과 작가 단체들은 즉각적으로 살만 루슈디와 출판인들과 번역가들을 무슬림의 테러 대상에서 보호 받아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 하라는 선언서를 발표 한다.

영국은 살만 루슈디를 24시간 밀착 보호 하며 이란에게 경제적 외교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살라딘은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그 사건이 다윈의 보복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덤스데이는 저 딱딱한 빅토리아시대에 살았던 불쌍한 찰스에게 미국의 마약문화에 대한 책임을 덮어씌웠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와서는 자기가 그토록 반대하던 부도덕한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중에서

1981년 <한밤의 아이들> 출간한 살만 루슈디는 전 세계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 문단 중심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의 보호 아래 수시로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세워 보다가 사용했던 침대가 무려 56개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격투기, 권투 같은 호신술을 배운다.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본격적으로 서점에 깔리기 3개월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언을 반드시 지킨다는 무슬림들이 파트와는 발령한 사람만 취소 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살만 루슈디를 향한 칼 끝을 저버리지 않았다.

제국 시절에 북아프리카 이슬람국가를 지배해서 무슬림의 이민자들과 난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프랑스는 1993년에서야 <악마의 시>를 번역 출간 하고 이슬람의 테러 행위가 미국 땅으로 번질 것을 우려 했던 미국은 프랑스 출간에 뒤이어 미국판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파트와 법령을 충실하게 시행했던 무슬림 폭도와 테러리스트들은 세계 곳곳에 알라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을 대상으로 분노하고 테러짓을 저지르는 동안 살만 루슈디는 공포심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지 않았다.

그는 매일 각종 호신술을 연마 했고 전 세계 여러 매체에 출연해서 언론의자유, 종교적, 관용, 문학의 자유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며 전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1998년 서방 국가의 제재 압력에 버티기 힘들었던 이란은 루슈디의 사형 선고를 철회 한다고 발표 했지만 루슈디를 처단 하는 어떤 무슬림도 처벌하겠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파트와 법령이 발표 되자 마자 이틀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 수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린다.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부를 들키는 것, 그 살 떨리는 벌거벗음의 상태 그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일찍이 지브릴은 살라딘 참차의 모든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상황을 -납치,추락,체포 -목격하지 않았던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반세기를 지나서도 무슬림들은 <악마의 시>를 쓴 작가 살만 루슈디를 용서 하지 않았다.

2022년 여름 살만 루슈디는 뉴욕대에 주최하는 강연장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이슬람 테러리스트 가 휘두르는 칼에 찔려 한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바닥에 쓰러져 내 몸에서 바깥쪽으로 퍼져가던 피 웅덩이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피가 많네. 나는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극적이고 특별히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엄지손가락이 내 목을 눌렀다. 큰 엄지손가락 같았다. 그 손가락이 가장 큰 상처를 눌러 내 생명이 담긴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살만 루슈디의 <나이프> 중에서


원형 극장 무대에 살만 루슈디가 올라가는 순간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24세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로 목을 찌르고 얼굴 위쪽과 입 왼쪽, 가슴, 허벅지를 차례차례 찌른다.

살인마 무슬림 청년이 살만 루슈디를 찌른 시간은 단 27초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과 의사들의 빠른 응급처리를 받은 살만 루슈디는 왼손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끊어진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와 죽음을 향해 갔다.


눈을 잃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시신경이 손상되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나를 죽이지 못했으나 내 눈을 가져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눈을 잃는다는 건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시야의 4분의 1을 아예 보지 못한다는 건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마취제를 투여 받은 살만 루슈디는 가족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 삶을 되찾아야 해. 죽음과 비슷한 상황에서 그저 회복만 할 수는 없어.

삶을 되찾아야 해.'

일주일 동안 끔찍한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회복 기간 동안 살만 루슈디는 앉고 일어서고 걷고 움직이는 법을 천천히 시도하고 파트와 법령 선포 당시 아홉 살 나이였던 아들, 이제는 새 하얀 머리카락으로 풍성하게 뒤덮인 그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지 18일 만에 살만 루슈디는 환자복을 벗고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휠체어에 올라탄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 하는 눈도 귀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회복의 시간을 갖고 칼이 아닌 펜을 들고 한 글자 씩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언어도 칼이었다.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과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언어는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베어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는 헛소리를 지적하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언어가 나의 칼이었다.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들고 달려간 테러리스트 이름은 하디 마타르 24살의 레바논 출신인 그는 ‘악마의 시’를 단 두 페이지만 읽은 뒤 범행을 계획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그의 집에선 3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

이란과 이슬람 국가는 이 사건과 자국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했고 그 테러리스트도 단독범행이라 자백했다.

현재 미국 경찰은 배후 세력을 찾아내지 못했다.

파트와가 선포 된지 3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칼에 찔린 살만 루슈디는 강한 의지로 살아 남았다.

그는 회복 기간 동안 자신의 목을 찌른 그 테러리스트에게 범행의 이유를 묻는 일문일답 형식의 상상속 대화를 시도한다.



-살만 루슈디

신의 본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

-테러리스트

신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고 모든 것을 아시지. 그분은 곧 모든 것이야.

-살만 루슈디

너희의 전통에 따르면, 너희의 신과 그 책에 나오는 다른 민족들. 그러니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믿는 신은 다른 거지? 그 사람들은 그들의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테러리스트

그들이 틀렸어.

-살만 루슈디

너는 내가 부정직할 뿐 아니라 악마이기도 하다는 거네.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게 옳다는 거야?

-테러리스트

너는 새끼 악마일 뿐이야. 그러니 자만하지 마. 하긴 새끼도 악마도 악마지.

-살만 루슈디

악마는 파멸 시켜야 하고?

-테러리스트

그래, 넌 이십억 명의 미움을 받고 있어. 그것만 알면 돼. 그렇게 까지 미움을 받다니. 어떤 기분일까? 벌레가 된 기분이겠지 잘난 체하며 온갖 말을 떠들어대지만 사실 너는 자신이 벌레 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있어. 발로 밟아 죽여야 할 벌레 말이야. 넌 다른 나라고 여행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전 세계 나라의 절반 정도에는 발도 들일 수 없어. 그런 곳들에서는 너에 대한 증오가 너무도 강하니까.

-살만 루슈디

평범한 남자에게 할 만한 평범한 질문이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나?

-테러리스트

난 신을 사랑한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고 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성을 모독했는지 아닌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라졌다.

1989년 ‘악마의 시’는 출간 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돼 수입·유통·출판이 금지되어서 이슬람권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었고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휘두른 테러리스트도 딱 두 페이지만 읽어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신성 모독이 아닌 시대와 사회에 대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찬 20세기 <돈키호테> 같은 스토리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까닭은 온건한 사람으로 보이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내가 여기 있는 까닭은 내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든 것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인,카리브인, 인도인,파키스탄인,방글라데시인, 키프로스인, 중국인-만약 우리가 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저 하늘을 건너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중에서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만 살아 남는다.

살아 남은 두 사람의 운명은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비행기 잔해 속에서 탑승 했을 때의 영혼과 자아를 벗어 던져 버린다.

모국어도 잊어 버리고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영혼, 초능력을 갖은 두 사람의 미래는 이미 현실에서 소멸 되어 버린 채 지상의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거야. 자네와 나. 생일 축하하네. 이봐 생일 축하 한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홀수 장에서 비행기에서 추락 하기 전 지상에서 15년 동안 배우의 삶을 살았던 지브릴 파리슈타의 삶을 보여 주고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모습으로 교차 시키며 세상을 들끓어 오르게 만드는 온갖 사건들을 끄집어 낸다.


기억할 거야 양탄자 타고 다니는 레카 우리가 추락할 때 봤잖아 그리고 한 명 더 있었는데 미친놈 같은 스코틀랜드 복장을 하고 고라(백인, 유럽인) 같던데.

이름은 제대로 못 들었지만

알리도 그 둘을 봤는지 못 봤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알리는 그대로 서 있기만 했고

레카가 시킨 일이었어 알리를 위층으로 데려가라고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면서

나는 손가락으로 알리를 겨냥했고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어

나는 알리를 밀지 않았어

레카가 밀었지

나는 절대로 알리를 밀어버릴 수 없었으니까.

스푸노

내 마음을 알아줘 스푸노

빌어먹을

나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에서 초월적 존재의 진짜 정체를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고 그의 정체를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 초월적 존재는 시 공간을 오고 가며 현실과 지옥, 그리고 천국 속에서 지상의 온갖 사건 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푸념 하고 변명하며 거짓말 같은 진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파트와 선포 후 3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목을 찌른 테러리스트가 법정에 서게 되는 날 작가 살만 루슈디는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삶에 당신이 침입한 것은 폭력적이고 해로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지요. 당신이 감옥에서 보낼 나날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아닐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앞으로 내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아마 별것 아닌 듯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칠 겁니다.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그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나날 동안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상관없는 존재가 될 겁니다.

나는 당신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서 기쁩니다. 내 삶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살만 루슈디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지시하는 자는 신의 제자가 아닌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한 살인 교살자일 뿐이다,

어느 시대나 어떤 사회에서도 예술은 논쟁과 비판을 불러 일으키지만 예술의 궁극적 가치를 인간성의 본질에 부합되는 자유와 존엄의 권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단,그 예술의 가치가 형편 없다면 사람들에게 금세 잊혀 질 것이고 역사에 기록 되지 않을 것이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추방 당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오비디우스가 세상에 남긴 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살해 당하고 불태워지고 소각 되고 쇠창살에 갇힐 지라도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자유까지 막아 낼 수 없다.

신의 이름을 외치며 칼을 들고 달려든 자에게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살만 루슈디는 폭력이 아닌 펜을 들고 예술로 이렇게 답했다.


언어는 나의 칼이었다.

만약 내가 뜻밖의 칼 싸움에 휘말렸다면

아마도 ‘언어’라는 칼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만 루슈디(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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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11-1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작가의 분노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오늘도 눈호강하고 갑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당~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시원합니다!

scott 2024-11-19 11:22   좋아요 2 | URL
살만 루슈디 여전히 칼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눈과 팔의 신경이 끊어져 버렸지만 죽을 때까지 칼 대신 펜을 쥐고 악의 공포를 이겨 내겠다고 합니다
에이 아이 시대에 더 소중해진 펜의 힘! ^^
 
인버트 영매탐정 조즈카 2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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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남자의 실루엣만 봐도 영상이나 책을 읽지 않았어도 실존 하지 않는 어떤 인물 보다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라는 걸 전 세계인들은 알고 있다.

셜록홈스라는 인물은 실존하지 않지만 그가 소설 속에 살았던 주소는 실제 하고 있고 그 주소가 있는 장소에 세워진 집은 셜록 홈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어 박물관까지 차려져서 전 세계 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세상에 실존했던 어떤 역사적인 인물들도 탐정 셜록 홈스의 필적할만한 캐릭터가 되지 못한다.

허구의 인물을 창조한 작가 코난 도일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영원불멸한 가상의 인물을 창조 할 수 있었을까?

1882년 영국 포츠머스에 병원을 개업한 코넌 도일은 환자가 찾아오지 않아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고심 끝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첫 작품부터 정통 역사 소설에 도전하고 모아 둔 돈을 탈탈 털어 출간하지만 책이 팔리지 않아서 자리만 차지 하고 있으니 흔적도 없이 서점 진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변에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한 코넌 도일은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시들이 쌓여서 어느새 100편 넘는 시를 발표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도전한 분야는 추리 소설로 평소에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던 분야에 코넌 도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린다.

그렇게 탄생한 코넌 도일의 첫 추리 장편이 '주홍색 연구'로 서점 가판대에 진열하자 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책이 되고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출간 독촉에 떠밀려 써낸 두 번째 장편 '네 개의 서명'도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은 코넌 도일이 창조해낸 캐릭터 셜록 홈스에 열광하며 사슴 사냥꾼 모자에 파이프를 문 셜록 홈스 패션을 흉내내는 남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뒤이어 나온 단편모음집 '셜록 홈스의 모험'은 코넌도일을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게 만들며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 놓았다.

광팬들은 새 책이 출간 될 때마다 서점에 구름같이 모여들고 코넌 도일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스타작가가 되었지만 얄팍한 대중 소설 작가 보다 굵직한 역사 소설가로 남기를 원했다.

마침내 코넌 도일은 더 이상 자신의 소설에 셜록 홈스를 등장 시키기 않기로 결심하고 1894년 출간한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를 죽여버린다.

광팬들에게 셜록 홈스가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숙적 모리아티와 함께 추락사 하는 장면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였다.

소설을 연재하던 잡지사들은 구독 거부 사태에 직면하고 광팬들의 항의로 마음고생에 시달리던 코넌 도일은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보낸다.

아들의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답장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코넌, 네가 힘든 걸 잘 알겠다. 그런데 도대체 왜 셜록 홈스를 죽인거니?"

어머니에게 답장을 받은 코넌 도일은 7년을 버티다가 결국 셜록 홈스를 살려낸다

괴물 개의 전설과 그에 휘둘리는 인간의 속성을 그린 '바스커빌가의 개'에 드디어 홈즈가 다시 등장한다.

"나는 지금까지 수사력의 범위를 현실 세계로 제한하고 이 세상의 악과 맞서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가상의 괴물이라면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존재 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에 푹 빠져버린 독자들의 비 이성적인 심리적 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했던 코넌 도일은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인 영적인 힘에 대해 깊이 연구 했다.

셜록 홈스는 마치 접신을 한 영매 처럼 낯선 사람을 한 번 훑어보는 것 만으로 직업과 성격은 물론 최근에 다녀온 곳이나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처음 본 사람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 셜록 홈스의 이런 능력은 사건마다 초인적인 추리력을 보여 줘서 읽는 독자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 주었고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가 되었다.

의학을 공부하고 진료실도 운영했던 코넌 도일은 자신 창조한 홈스처럼 이성과 논리로 무장 했던 인물이 아니였다.

그는 신과 대화 할 수 있다는 ‘접신’을 신봉하며 심령술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마녀 법 폐지에 앞장섰다. 협심증을 앓아 정원 산책도 힘들어했지만, 북유럽으로 심령 순회를 떠날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생애 마지막 4분의 1을 심령술 전도사로서 살다 갔다.

만약 실제 세상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초능력자가 등장해서 첨단 수사 기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미제 사건을 해결 하게 된다면 현장의 증거물과 범행 동기 그리고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논리에 부합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죽은 자의 마지막을 본다거나 아예 피살자의 혼을 불러오는 영매가 자칫 억울한 이들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범죄 사건에 거짓말 탐지기는 도입이 되어도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수사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

단,미국의 FBI도 난항을 겪게 되는 수사에 최면술과 심리 요법을 통해 목격자의 기억을 더듬어서 무의식 중에 잠재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 내기도 한다.

조즈카 히스이 신비로운 비취색 눈동자를 갖고 있는 그녀의 직업은 영매 탐정, 사건을 해결 하러 나갈 때마다 컬러 렌즈를 착용하고 패션 잡지 화보에 등장 할 정도로 화려하게 차려 입는다.

비취색의 신비로운 눈빛으로 영적인 시공간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능력은 '인버트(invert)

즉, 사건의 발생 동기를 거꾸로 추적해 나가면서 법과 논리를 뒤집어 버리며 오리 무중한 사건의 실체를 밝혀 내는 명 탐정이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들과 수사 담당자들 앞에서는 영적인 능력으로 진상을 미리 파악하고 나서 이성적인 논리에 맞춰 사건의 퍼즐을 하나 하나 수집해서 사건의 최종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신중하게 접근 하면서 자신의 영적인 세계를 현실의 세상에서 충족 시켜 줄 누군가를 통해 사건을 해결 할 뿐이다.

추리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 발생 시점 부터 막연하게 범인이 누군지 찾기 시작한다. 일단 잠정적으로 이 사람이 범인일 것 같다는 의심을 갖고 나면 작가가 곳곳에 설치 해 놓은 논리를 따라 가기 보다 독자 스스로 정해 놓은 잠정적 범인의 행적을 쫓는데 급급하다.

따라서 독자 이기도 한 작가들은 첫 시작부터 이 사람이 범인이다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추리 소설은 추리를 즐기기 보다는 <반전>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의외의 범인과 의외의 결과, 흔히들 독자들의 허를 찌르고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치밀한 논리와 두뇌 싸움의 대열에 독자들도 가세 하게 만들며 읽는 쾌감까지 느끼게 만든다면 시리즈 작품이 나올 때까지 목을 빼고 기다릴 것이다.

일본 추리 소설계에선 갖가지 초현실적인 설정을 동원한 이른바 ‘특수설정 미스터리’가 대세로 영적 능력의 매력적인 여성 탐정이 주인공인 <영매 탐정 조즈카>는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시작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등 도서차트 5관왕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적 능력을 갖춘 영매 조즈카는 세상을 뒤 흔들어 버릴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가령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피해자가 살해 당한 장소에서만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또 영혼과의 공명 여부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추리소설가 마코토와 짝을 이뤄서 여러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따라서 독자들은 영매 탐정의 영적인 능력이 보여주는 비 이성적인 논리와 현장 답사를 하며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과 증거물을 토대로 논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소설가 마코토의 합동 수사 과정을 함께 추리해 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상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된 <영매 탐정 조즈카>는 영적인 능력 때문에 친구도 없고 스스로 저주 받은 존재라 느꼈지만 범죄 수사에 기여 하면서 비로소 세상을 만나게 되고 사건 해결의 논리적 실마리를 찾아주는 소설가 마코토와 우정과 애정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흘러 넘치는 청춘 소설과 사이코 스릴러 탐정물을 혼합한 새로운 추리물이다.

추리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보다 더 끔찍한 범행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 시대에 영적인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답답한 현실을 토로 하러 가는 이들이 몰려 가고 있다.

유툽에 무속, 무당, 샤머니즘이라는 단어 키워드로 검색하면 총천연색 한복과 알록 달록한 방울을 흔들고 부채를 펼치는 한국 무속인들 영상들이 수백개가 좌르륵 뜬다.

이들 무속인들은 현재 가장 핫한 연예인들, 인기 몰이를 하는 배우들,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정치인들 그리고 재벌들 사주를 분석하는 영상들이 많고 어떤 무속인들은 적중률 90퍼센트 이상을 보이며 유명인들의 운세를 미리 예측하기도 한다.

출처: South Korea's young shamans revive ancient tradition with social media ,.reuters,2024.0608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문 직종인 점술가는 철학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21세기에 가장 멋지고 세련된 인생 상담소로 발빠르게 변모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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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04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라는 직업도 어느 정도 소위 신기가 있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작가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깊이 파헤치다 보면 작품이 이성의 영역을 벗어 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님, 추리 소설과 영적 탐정에 관한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scott 2024-11-04 18:24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려면 예지력과 신기가 있어야 독자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뚝 떨어지고 있네요
마힐님 건강 잘 챙기세요 ^^

희선 2024-11-05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셜록 홈즈는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주고 그걸로 다른 소설이 나오기도 했군요 소설뿐 아니라 만화도... <카모노하시 론의 금단 추리>에서는 모리어티 집안과 홈즈 집안 후손이라는 설정이 나오더군요 카모노하시 론이... M 집안은 범죄 집안으로 모리어티 후손...

영매탐정이지만... 다음은 말하지 않아야겠군요 첫번째 책 본 사람은 다 알겠지요 scott 님은 두번째 책 만나셨군요 첫번째 뒤에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게 맞기도 했어요 그건 범인이군요


희선
 
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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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극심한 가난 속에 떠돌이처럼 친구들의 집을 오고 가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악상으로 작곡했다. .

그는 악상이 떠오를 때면 친구와 식사 도중에 메뉴판에도 음표를 그렸고 잠을 자던 중에 악상이 떠올라 밤새 작곡하다가 새로운 곡이 떠오르면 앞서 작곡했던 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방탕한 생활로 얻은 매독 후유증으로 인해 건망증이 매우 심해진 슈베르트는 쓰던 곡을 곧잘 잊어버린 경우가 많았고 평생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8개월밖에는 가지지 못해서 대부분의 곡을 기타로 작곡하거나 허밍으로 음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세상에 남겨 놓은 실내악곡은 악기로 연주되는 가곡 처럼 악기 특유의 음색으로 노래하듯 울린다.

애절한 선율로 가득 찬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는 음악가들에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듣고 싶은 곡으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 때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C장조 D.956, 작품163/2악장 아다지오를 연주 해 달라고 부탁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조셉 선더스는 자신의 무덤 비석에 이 곡 제1악장의 제2주제를 새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슈만은 때 이른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슈베르트 사촌 형에게 찾아가 자필 악보를 보여 줄 수 없냐고 부탁했을 정도로 듣는 이들에게 한 없는 슬픔과 애수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최고의 음악가 였던 베토벤의 시대에 태어난 슈베르트는 웅장한 화음으로 가득 채우는 화려한 교향곡 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의 악기로 구성된 실내악 화음에서 악기 고유의 음색으로 침울하면서도 풍성한 소리의 화음을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작품은 후대의 낭만파 음악의 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c) Untitled Blue, Green, and Brown ,Mark Rothko,1953

색면 추상화 작품을 남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한 가지 또는 두 세가지 색 만으로 세기의 작품을 완성했다.

물감 몇 개와 캔퍼스 그리고 붓만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나 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어린 시절 부터 물감 섞이 놀이를 해 본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색의 배합만으로 완성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인다.

하양과 빨강의 색이 겹치면 분홍빛이 나오고 빨강과 푸른색이 뒤섞이면 보라 빛이 나오고 푸른색을 더 많이 배합하면 질흙 같은 검은 빛이 나온다.

마크 로스코는 가장 먼저 커다란 붓으로 흰 색 캔퍼스 바탕에 흰색과 갈색을 뒤섞은 밑바탕 색을 칠하고 붉은 빛을 덧칠해서 분홍빛을 나오게 하고 마지막 붉은 선홍색을 제법 큰 면적으로 칠하고 스펀지에 물을 적셔서 번지는 기법을 구사했다.

마크 로스크의 단순해 보이는 색감과 기법을 상세하게 분석 해 보면 세상에 쏟아져 내리는 빛을 시시각각으로 분석해서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c) UNTITLED NO. 17, Mark Rothko,1961

도형의 윤곽선이 뚜렷하지도 않고 경계선 조차 선명하지 않는 이 작품은 도형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도 없고 색의 조화도 그리 썩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윤곽선은 뭉개져서 성기게 칠해져 있지만 묘하게도 자세히 바라 볼 수록 색의 경계선이라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크 로스코는 작품의 이름을 정하지 않고 숫자로 표기 했지만 스케치 노트에 '비극, 황홀경, 죽음' 같은 단어를 적고 나서 '황홀한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써 놓았다.

고대 건축 양식과 연극, 음악에서 회화적 영감을 얻었던 마크 로스코는 초기 시절엔 엄격한 형식에 얽매여서 완벽한 구도를 갖춘 작품을 완성 하는데 몰두 하다 차츰 구상주의적이면서 사실주의를 표방한 회화에서 벗어나 오선지 위에 화음을 그려 넣은 음표처럼 색과 형태가 층을 이루고 차례 차례 배열되는 수직성을 갖춘 추상 주의 작품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그는 붓을 들고 캔퍼스 앞에 설 때면 슈베르트의 실내악 음악을 틀어 놓고 오선지에 음표를 채워 넣는 물감을 덧칠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감미롭게 흘러가는 선율 속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불협화음과 함께 조성이 바뀌어 버린다.

이 기법은 놀라울 정도로 마크 로스코가 색을 다루는 기법과 매우 흡사한데 강렬한 색조의 대비를 통해서 그림이 걸려 있는 장소에 따라 색의 움직임과 활력이 달라진다.

마크 로스코 그림 앞에 서면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두 가지 또는 세가지 색 사이의 경계선이 여러 층으로 겹쳐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직사각형의 가장자리에서 감정이 요동치듯 일렁이는 강렬함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c)Rothko Chapel, Houston, 1971

스스로 생을 마감 한 마크 로스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예술은 분명 예술이 작용하는 시대의 모든 지적 과정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크 로스코(1903-1970)

마크 로스코가 세상에 남긴 예술의 지적 영감을 받은 세기의 작가가 있다.

나는 1970년 11월 27일 생이다.

처음 내 생일을 삼촌에게 말했을 때, 삼촌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책장에서 두툼한 화집 한 권을 꺼내 왔다. 날카로운 책장에 손을 베이지 않기 위해 삼촌은 면장갑을 끼고 책장을 넘겼다.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야.

삼촌이 말했다.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으로 망명했고 1970년 2월 25일에 죽었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죽던 날을 전후해서 너는 처음 생겨 났겠구나.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중에서


작가 한강이 2005년 가을 무렵부터 구상에 들어간 <바람이 분다. 가라>는 2007년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연재를 시작해서 이듬해 가을까지 일 년 반 동안 연재하다 다시 일 년 남짓의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새로 고쳐서 장장 4년 6개월여의 긴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새벽의 미시령 고개에서 사십 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자동차 사고를 둘러 싸고 그에 얽힌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이 진실을 캐묻는 화자 이정희의 기억과 힘겨운 행보를 따라 전개되는 이 작품은 촉망 받던 한 여자 화가의 의문에 싸인 죽음을 두고,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치르듯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잠자코 그림을 들여다 보았다. 화면의 가운데가 분할 되었고 서로 다른 색채의 커다란 사각형 두 개가 바탕색을 향해 번지며 스며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색채가 번지게 하기 위해서 붓 대신 스펀지를 쓰기도 했다고 해.

색채들의 충돌이 인간의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감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시작도 끝도 없던 혼돈이 방금 갈라져 피 흘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그토록 단순한 구도의 비구상 화면에서 극적으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중에서


“그날 새벽 폭설이 그 모든 흔적을 덮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바람이 분다. 가라>는 촉망 받던 여류화가 서인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그녀의 친구 이정희와 서인주의 죽음을 신화화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신전에 올리려 하는 남자 강석원의 감정의 흐름들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격렬한 숨과 서사의 파동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꿈틀거린다.

작가 한강은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매 순간 흔들리고 번민 하는 삶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 서 있는 당신은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살아내는 것으로 진실한 빛을 얻을 수 있는가?

이 그림을 처음 마주 하는 순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가 살짝 뒤로 물러 섰다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림을 바라 보는 동안 캔퍼스를 가득 채운 색들에 서서히 스며 들어간다.

마치 성소 앞에 서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하듯 그저 거대한 그림의 색 앞에서 하염없이 밀려 드는 감정의 선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전시장 밖을 나오니 바람이 불어 온다.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 번의 삶에서 여러 인생을 살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디 마디 끊어지는 것이었다고,

어떤 마디의 기억들은 전생처럼 멀고 어둑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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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0-31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님의 작품 분위기랑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정말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 한강의 회화버전이 로스코이고, 로스코의 소설 버전이 한강이라고 할 정도로요!ㅎ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ㅎ

scott 2024-11-04 18:25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잘계신거죠!
마크 로스코 전시를 서울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서울 나들이로 ^^

Falstaff 2024-11-01 0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슈베르트의 D.956 아다지오 악장. 오랜만에 듣습니다.
도라이 쿳시는 이 아다지오 악장 자체가 섹스라고 주장하느라 상대로 하여금 그만 김이 팍, 새버리게 만들었다지요. ㅋㅋㅋ

scott 2024-11-04 18:26   좋아요 2 | URL
퐐스타프님에게 슈베르트의 아다지오는 ㅎㅎㅎㅎ

Falstaff 2024-11-04 18:37   좋아요 2 | URL
아이작 스턴에 대한 경의지요 뭐. ㅋㅋㅋ
 
십자가의 괴이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조영주 외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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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13년 전인 2011년 5월 1일 문경 폐채석장서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괴이한 형상으로 숨진 50대 남자가 발견 된다.

다음 날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시신 부검 결과 국과수로부터 숨진 남자의 오른쪽 옆구리에 난 자창 흔적은 각도와 방향상 스스로 흉기로 찌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1차 소견을 받고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경찰이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던 가장 큰 증거는 손과 발에 박힌 못의 모양새가 서로 달랐고. 발에 박힌 못에는 못머리가 있는 반면, 손바닥을 박은 못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사건 당일 숨진 남자는 못머리가 있는 못으로 발등을 먼저 박은 뒤, 십자가에 미리 박아 놓은 다른 못에 손을 집어 넣었다고 유추 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손에 구멍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전동 드릴과 십자가 설계도면과 십자가에 매달리는 방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김씨 자필 메모지까지 발견되었다.

만일 타살이라면 칼과 드릴 등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이 현장에 그대로 보존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것이 당시 경찰 측 조사 결과 였다.

2011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 그대로 재현한 괴이한 사건으로 시신이 발견된 문경의 어느 채석장은 인적이 드물고 가파르기로 유명한 둔덕산이 있다. 이곳에 특이한 암석 지형의 폐채석장이 있는데, 1990년대 말 폐장된 후 방치돼 왔다.

십자가 설계도와 죽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남긴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에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했고 시신으로 발견된 남성의 신상이 밝혀졌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택시기사로 사망 당시 58세였다.

1990년대 부인과 이혼 후 자녀들과 함께 지내다가 연락이 끊어진 후 줄곧 혼자 살았다.

그는 특정 종교 집단에 드나 들면서 부활, 영생, 유체 이탈, 재림 예수에 심취했고 교회에는 다니지 않고 홀로 성경공부를 했다.

사건이 발생 하기 한 달 전 생계수단인 개인택시를 팔고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짐이 많이 들어가는 SUV 차량을 구입했다.

이후 약 2주동안 텐트를 구입하고 휴대폰을 해지 하고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들러 예금계좌를 해지하고 전액 인출해서 친형 계좌로 이체했다. 다른 통장에 남은 돈은 전부 털어서 불우이웃 성금함에 넣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는 끔찍한 죽음을 실행 하기 전 몇 주 전에 구입한 SUV 차량을 직접 몰고 문경의 둔덕산 폐채석장으로 가서 인근에 텐트를 치고 죽기 전까지 지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런 형태의 자살이 가능할 수 있는지 실험까지 나섰고 혼자서 정교한 처형 장면을 재현할 수 있느냐는 것부터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는 행위를 사망한 남자가 남긴 메모를 근거로 사건을 재현한 결과 성인 남자 혼자 자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십자가 설계도와 죽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남긴 이 엽기적인 죽음은 상상 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전해 질 정도이고 이런 상태를 스스로 실행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면봉이나 손톱, 면류관, 끈, 칼 등에서도 시신으로 발견 된 남자의 DNA만 검출돼 타살이나 제3자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실행계획서 역시 그 남자의 필적인 것으로 확인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와 여러 정황과 사망 전 남자의 모든 행적을 추적한 경찰 발표대로 이런 잔혹한 방법으로 자살을 했더라도 자살 조력자나 방조자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다.

혼자서 발에 못을 박고 드릴로 손을 뚫으며 칼로 배를 찌르는 등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행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인근의 양봉업자는 한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환생'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교리를 믿는 교회 부목사 출신으로 1999년쯤 탈퇴한 후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폐채석장 인근에서 양봉업을 하며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는 시신을 처음 발견 당시에 크게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며칠 동안 시신 목격담과 자신이 촬영한 시신 사진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죽은 그 남자와는 2008년 부터 교류를 했고 그는 이 양봉업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이기도 했다.

경찰도 이 양봉업자 용의선상 인물로 올려 놓았지만 2008년 이후 서로 만났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 수상한 최초 목격자는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의구심을 남기고 미흡하게 사건이 종결된 엽기적인 '십자가 시신'은 2024년 미스터리 앤솔로지로 탄생해서 6명의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는 6명의 작가들이 <십자가의 괴이>라는 작품집에 각자 나름대로 재 해석 해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친다.

가장 먼저 46페이지 분량의 <영감>이라는 단편을 실은 조영주 작가는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을 받고 <환상의 책방 골목>이라는 작품으로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터키어로 번역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십자가의 괴이>에 관한 앤솔로지 글을 부탁 받은 것으로 시작하는 조영주 작가의 <영감>은 특정 주제에 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늘 찾던 카페의 사장을 만나러 간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는데 작가님이 쪽지를 남기셨기에 답장을 적습니다. '무진 십자가 사건'은 10년 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대표적인 미제 사건입니다. 이런 미체 사건을 잠깐 생각한 정도로 진상을 알아내 소설로 적을 수 있다면, 미제 사건이 될 이유가 없었으리라 사료됩니다.

-조영주의 <영감> 중에서


사건의 배경이 문경에서 무진으로 옮겨 갔고 실제 사건의 주인공은 아들에게 신장 이식을 받고나서 가족과 연락을 끊어 버린 최씨로 등장한다.

무진에서 발생했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던 중 이야기의 화자인 작가는 한강 공원의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자신을 간호 해 주고 있는 엄마가 내지르는 잠꼬대 부터 수시로 자신의 꿈 속에 들리는 어느 기이한 목소리들이 둥둥 떠다닌다.

부탁 받은 글을 완성 해야 하는 작가는 이렇게 떠다니는 영감을 떠오르는 데로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퇴원 후 10년 전 십자가에 스스로 못을 박고 죽은 그 남자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그가 남긴 메모와 죽기 전 신도로 가입했던 사이비 종교 단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 남자가 남긴 메모와 일치 한다는 걸 발견한 작가는 편집자에게 들려 주고 몇 일 후 그 편집자는 작가가 한강 강변에서 사고를 당했던 그 계단에서 발을 헛 딛고 현장에서 사망한다.

화자로 등장하는 40대 남성 추리 소설 작가의 의문의 사고와 편집자의 죽음 사이에 미스터리한 인물인 카페 주인이 등장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은 작가가 희대의 미제 사건으로 기록된 십자가의 죽음에 관한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실제 사건들의 전개와 개연성이 미흡했다.

작가는 후기에서 2023년 1월 <영감>이라는 작품을 쓰던 중에 망막 박리라는 눈 사고를 겪게 되어 수술을 받았고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입원하고 나서 자신의 겪은 경험과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연결 시켰다고 밝혔다.

총 6편의 앤솔로지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실제 사건 배경과 등장 인물의 모습과 흡사했던 작품은 내과 의사 출신인 박상민 작가의 <그 날 밤 나는>이다.

49페이지 분량의 <그 날 밤 나는>은 석 달 전 한강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익사한 딸의 죽음에 타살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자살로 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을 미흡하게 수사를 한 경찰의 수사 능력에 크게 분개 하고 있었던 남자는 분노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자살을 결심한다.

생을 포기한 남자에게 어느 날 의문의 초대장이 날아 온다.

그 초대장을 보낸 이들은 한강에서 자살로 종결된 딸의 사건을 재 수사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어느 단체였다.

건축가였던 남자는 수상한 단체의 초대장을 들고 가방에 칼을 넣고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 간다.

자살한 한 남자가 남긴 메모에 적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억울하게 죽은 딸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세상을 향한 증오와 그토록 성실하게 믿었던 신을 향한 배신감에 불타 오른 남자가 하잘 것 없는 인간도 예수 처럼 숭고하게 십자가에 박혀 죽을 수 있다는 끔찍한 형상을 현실로 재현한다.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할 적당한 표본 인물을 모색하고 무진에서 아들의 신장을 이식 받고 아내와 이혼 후 홀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그 남자를 대상으로 삼고 숭고한 죽음을 이행할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사건 현장이 발견 되기까지 수일간 폭우가 무진을 적셨다. 빗물은 자연뿐 아니라 내가 남긴 추악한 흔적도 함께 정화해주었고 초기에 경찰은 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인지조차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나 하나 쯤이야 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 아니다. 유나가 잔혹한 살인마의 딸 취급을 받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예수가 언제나 처럼 자비로운 눈길로 내려다 볼 것은 자명하다.

-박상민의 <그 날 밤 나는>중에서


내과의 출신의 작가 박상민은 딸의 죽음으로 사회와 국가, 종교에 대한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고 무고한 사람을 시험 삼아 십자가의 못을 박는 엽기적인 범죄 짓을 저지르는 과정을 마치 어느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의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 다 보듯 묘사했다.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른바 십자가 사건은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실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버려진 채석장에서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 그대로 재현한 괴이한 형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한 줄 짜리 단서 만으로도 6명의 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해석한 미스터리 앤솔로지 <십자가의 괴이>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사건은 발생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잔혹한 범죄와 엽기적인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고 여전히 살인범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죄의 무게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가볍다.

범죄자들은 점점 더 교묘해졌고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불특정 대상으로 무고한 시민을 향해 더더욱 흉포해지고 있다.

선과 악의 구분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에 사형제 부활을 외쳐 보지만 시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급급한 권력자들의 솜방망이 처벌과 안일한 대처로 오늘도 내일도 무고한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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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ros 2024-10-26 04: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츠 유행 시대에 이렇게 긴 글이라니~ 그래도 본능적 호기심에 끝까지 읽게 되네요~~
 
악스트 Axt 2022.1.2 - no.040, 커버스토리 한강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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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스웨덴 한림원 측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한 작가 한강은 여러 달 전에 참석 의사를 밝힌 포니 정 시상식의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고는 겸손하면서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시간이 지났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작품이 이토록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연일 매진과 품절의 소식이 날아 오고 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열 달 정도에 걸쳐서 이룬 백만부 판매 고지에 단 몇 일 동안 분당 수십권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작가의 출간 작들은 1994년 첫 시집을 발행 한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꾸준한 필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인 것이다.

은둔형의 내향적인 작가 한강의 오래전 인터뷰들과 영상들, 기고글, 그리고 직접 작사 작곡을 한 음악까지 모두 화제가 되고 있고 지인들에게 추천한 책들, 아버지 생일 날 선물한 책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책들의 판매 부수가 올라갈 정도로 작가 한강의 말과 글은 읽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시대에 찾아 읽는 열정의 불을 지펴 놓았다.

2년 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작가가 문예지 Akt에 실린 인터뷰 글을 다시 읽어 보니 단 한 순간도 세상을 향한 따스한 눈길을 거둔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작별>을 쓰게 된 계기는 먼저 눈사람이 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눈은 녹잖아요. 무엇이 이 사람을 녹게 할까? 이 사람을 녹게 하는 건 따뜻함이고 사랑이죠. 그러니까 눈사람에게는 뜨거움이 죽음인 거죠. 따뜻함이 죽음이고 눈물이 죽음이고, 사랑이 죽음이고 그걸 생각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 할 수 있었어요.

-한강 인터뷰 중에서


작가 한강은 언젠가 독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사는 대로 소설을 쓰진 않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어렴풋이 떠오르는 형상, 강렬한 이미지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그 이미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 때 메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싸우는 소설이야 들썽 들썽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전진하고...

이렇게 메모해 나가면서 이미지들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서서히 그 이미지들이 움직이며 제게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틀이 갖춰져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동안 죽음 가까이 갔다가 절반을 살고 절반은 죽은 상태로 되었다가 마지막 순간 마침표를 찍을 때 불을 켜고 현실의 제 삶으로 되돌아 옵니다.'

-한강

(c)La vegetariana - Daria Deflorian

채식주의자를 연극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2018년에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유명 여배우가 추천한 한강의 책을 읽자 마자 강렬한 감동에 휩싸여서 연극 버전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한다.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채식주의자를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읽고 나서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심리를 깊이 이해 하기 위해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고 영혜의 마음, 그녀의 언니와 형부의 마음 그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겹겹이 감춰진 감정의 실타리를 하나 씩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죽는 게 왜 그렇게 끔찍한가요?(Why is it so terrible to die?)

-채식주의자


30년 동안 작품을 써온 한강의 글을 단 몇 줄만 읽어도 작가 고유의 문체에 담긴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필력은 언어로 만들어 놓은 감각 그 자체다.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한강의 작품들은 시적인 산문 속에 드리워진 기괴한 아름다움에서 뜨거운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어서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엔 삶으로 가는 소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해 하기 위해서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은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 한강의 작품엔 교향곡처럼 음표가 있고, 주제가 있다. 돌아오는 후렴구도 있다. 매번 인간성, 운명, 자매의 사랑, 전쟁과 폭력 등의 후렴구가 계속 돌아온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말한다.”

30년 전에 발표한 작가 한강의 첫 시 <서시>의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 안고

오래 있을 꺼야.


언제 어디서든 흘러 넘치는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시대에 우리들 각자는 몇 날 몇 일 동안 화제의 중심에선 인물이나 즐겨보는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한 것을 검색하고 찾아 보며 웃고 즐기는 것에 익숙하다.

인간이 창작한 활자에 새겨진 이야기 속에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언제인가...

한 없이 버거울 정도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 속의 그 남자, 그 여자는 누구의 삶이였던가....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소설들 속에 수천, 수 만명의 사람들이 박제 되어서 누군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줄씩, 한 점씩 세상 밖으로 튀어 나와 말을 걸고 웃고 울며 함께 걷는다.

'누군가 앞으로 뭘 쓸 거냐 라고 물을 때 마다 저는 항상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라 대답하죠.

막 소설 한 편이 끝나려고 할 때 괄호 속에 들어가 있던 모든 것이 둑을 넘듯 조용히 몸속으로 다시 흘러 들어올 때 언제나 저는 더 머뭇거리고 싶어지고 더 쓰고 싶어지고 더 숨을 불어 넣고 싶어집니다.'

-한강,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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