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천재성이란 본질적으로 적응력이자, 집요하고 긍정적인 집착이다. 거기서 집요함을 빼면 남는 것은 한 순간의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 적응력을 빼면 남는 것은 파괴적인 광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긍정적인 집착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로런 오야 올라미나 <지구종; 산 자들의 책>에서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로런은 꿈에서 날아다니는 법을 저절로 공중에 뜨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매번 방향 잡기가 서툴지만 꿈 속에서 집안 곳곳을 날아 다니며 움직이고 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로런은 꿈을 꿀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제 열 다섯 살이 된 로런은 내일 쉰 다섯 살 생일을 맞게 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로런의 가족들은 육중한 장벽으로 둘러 싸인 소도시 '로블리도'에 살고 있다.
일곱 살 무렵 부터 이곳에 들어온 로런, 그녀에게 장벽은 마치 웅크린 거대한 짐승으로 보여서 언제든지 달려 들어 위협 할 것 처럼 느껴진다.
사방이 장벽으로 막혀 있는 폐쇄적 공동체 삶 속에서 밤 하늘에 빛나는 별빛은 로런에게 유일한 희망의 빛이였다.
'로블리도'의 침례 교회 목사인 로런의 아버지는 주말 마다 집안에서 찾아 오는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보지만 노숙인 무리들이 이따끔씩 집안 교회를 점거 하고 휘발유를 뿌리며 불을 질러 버릴정도로 위협 했기에 가족 모두 무기로 무장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30킬로미터 쯤 떨어진 이옷 '로블리도'는 한 때 초록 잎으로 우거졌던 곳으로 장벽으로 둘러 쌓여 있지 않아도 평화로운 곳이 였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하나 둘 씩 습격 당하거나 살해를 당했고 로런의 조부들도 2010년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 채 거주지 마저 화염에 휩싸일 정도로 끔찍한 살해, 약탈 범죄 소굴이 되어 버렸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게 되면 자신의 살갗에서도 피가 나는 '초공감증후군(hyperempathy syndrome)'을 타고난 로런은 자신의 의지로 느끼는 공감을 떨치기 힘들 정도로 타인의 고통과 쾌락을 공유 하며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다.
대학 교수이면서 학장이였던 로런의 아버지는 자신의 첫 번째 아내가 마약에 중독 된 채 아이를 출산 했고 그 아이가 의학적으로 증명 하기 힘든 증후군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주변에 숨기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로런은 엄마의 약물 중독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과 쾌락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이제 타인의 섹스까지 공유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끼는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해 식수가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물이 흘러 나오는 곳을 점거 하고 비싼 돈을 받고 물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휘발유 가격보다 더 비싸진 물을 쟁취 하기 위해 살해를 하고 불을 질렀고 식량난 까지 가중 되어 경제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2024년,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미쳐 버린 미국. 총성과 마약, 방화와 살인이 들끓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거나 돈이 되는 모든 것을 팔아 치우며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강도에 습격 당하는 무고한 이웃들의 모습을 목격 한 로런은 스스로 신앙을 이해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느님은 힘이다.
무한 하고, 무적이고, 무자비 하고, 무심한 힘,,,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유연하다.
사기꾼 처럼 스승처럼 혼돈 처럼 진흙처럼
하느님은 빚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
서로를 향한 혐오와 불신이 넘쳐나는 세상, 어린 여자 아이가 살해를 당하고 강간을 당하며 노약자들이 거주 하는 곳마다 불길에 사로 잡히는 세상에서 로런은 변화가 필요 하다고 믿고 있다.
굶주리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 둘러 쌓인 폐쇄형 주택 단지를 벗어나 자신이 믿는 것을 글로 기록하고, 장벽 안에서 숨을 죽이며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며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다.
2025년
지성이란 계속 발달하는 개별적인 적응력이다. 지적 생물 종에서는 한 세대 만에 가능한 적응이 다른 생물 종에서는 선별 적 번식 및 사멸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성은 다루기가 힘들다. 실수로 또는 고의로 그것을 오용 한다면, 지성은 제 나름의 마구잡이식 번식과 사멸을 조장하기도 한다.
2025년 7월 19일 토요일
열여섯 살이 된 로런은 생존 배낭을 꾸리면서 문득 자신의 생일 선물을 떠올린다.
'지구종의 숙명은 별 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로런은 자신의 열여섯 살 생일을 앞두고 발견된 새로운 행성에 흥미를 느끼며 사격 연습에 몰두 하는 동안 두 살 아래 동생 키스가 돌연 장벽 넘어 세상 밖으로 나가 버린다.
사흘 밤은 골판지 상자에서 자고 음식은 훔쳐 먹었다는 동생 키스의 배낭에는 탄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의 총을 훔쳤는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내뱉는 동생 키스는 알래스카로 건너 갈 꿈에 부풀러 다시 장벽 밖으로 나가지만 총에 맞아 시신으로 발견 된다.
2026년
개인에게 지성이 있듯이 집단에는 문명이 있다. 문명은 연속적인 집단 적응을 성취하기 위해 다수의 지성을 결합하는 수단이다.
문명은 지성과 마찬가지로 적응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기도 하고 적절히 수행하기도 하며 수행하지 못하기도 한다. 문명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내부 또는 외부의 통합된 힘마저 문명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문명은 무너져야 마땅하다.
2026년 11월 17일 화요일
쉰 일곱살의 로런의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 없이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몇 몇 동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실종된다.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로런의 아버지와 헤어진 곳은 집에서 고작 다섯 불록 떨어진 곳이였다.
로런은 친구들과 완전 무장을 한 채 목숨을 걸고 산과 주변을 수색하며 수많은 오물과 시신 그리고 들개들 무리 속에서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
모든 동네 주민들이 총 동원 되어 수색을 벌였지만 로런의 아버지는 흔적 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2027년
우리는 지구종 우리는 육신 스스로를 잘 알고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육신 우리는 지구 생명 가운데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잘 알고 똑같이 빚을 줄 아는 부류, 우리는 성숙해가는 지구 생명, 부모 행성에서 떨어져 나올 준비를 하는 지구 생명, 우리는 새 땅에 뿌리 내릴 분비를 하는 지구 생명, 스스로의 사명을 약속을 숙명을 다하는 지구 생명
2027년 7월 31일 토요일
로런이 탈출 하는 순간 동네는 불에 활 활 타올라서 사방이 혼돈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달아나며 비명을 질렀고 총을 쐈다.
순찰 대원들은 비상벨 조차 누르지 못한 채 총에 맞아 죽었다.
열 여덟 살 로런은 길거리 부랑자가 되어서 폐허로 변해 버린 도시에서 몸을 피할 곳을 찾으며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종이지만,
아는 우주의 다른 부분들 또한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화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 종이다. 지구 종은
지구 생명을 새로운 땅에 퍼뜨리는 모든 것이다.
우주는 하느님 종이다. 오직 우리만이 지구 종이다.
지구 종의 숙명은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로런은 장벽 밖에서 강간 당하는 여성들 그리고 장벽 안 여성들은 돈 많은 남성에게 사고 팔리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로런 처럼 부랑자가 된 사람들은 중성적인 외모와 이름(로런Lauren/ Loren)으로 인해 남성으로 착각하지만 로런은 혼돈의 시기에 자신의 이런 모습에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믿음을 글로 기록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며 새로운 공동체 ‘변화’를 신으로 믿는 ‘지구 종Earthseed’의 창시자가 된다.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지구종끼리 모이는 것은 유익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감정을 발산하고 마음을 진정 시키므로 이로써 정신을 집중하고 사명감을 북돋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므로'
-<지구 종:산 자들의 책>에서
101번 고속도로에서 지구 종 은 탄생 했다.
한 때 이곳은 북쪽을 향해 거센 물 줄기가 흘러 내렸던 강으로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캘리포니아 주가 사들여서 강한 물살을 막아서 시멘트로 채워 버린 곳이다.
이제 로런을 따라 사람들은 안전 한 곳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 떠난다.
야영 할 곳을 찾으면서 로런은 자신의 동생 또래 아이들을 하나 둘 씩 만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공포의 순간 예전의 세상,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 시절로 돌아 갈 수 있을까...
[그 곳에는 집이 없었다. 건물이 한 채도 없었다. 거의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다. 산기슭에 널따랗게 나 있는 시커먼 흔적, 잿더미에서 비죽 불거진, 개중에는 서로 기대선 것도 있는 불탄 기둥 몇 개, 그리고 높다란 벽돌 굴뚝 한 개가 외로이 시커멓게 오래된 묘지 그림 속 묘비 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뼈와 재 사이에 묘비 처럼..]
로런은 잔해 속에서 유골을 찾아 매장하면서 사라져 버린 이웃들과 지인들의 뼈를 땅에 묻어 준다.
그녀가 뿌린 씨가 자라 나무가 되고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어서 비가 내려 애벌레가 자라 벌이 되어 생명이 움터 나가는 땅을 일궈 나갈 수 있을까...
서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성서 구절과 지구 종시,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와 시를 읊고 망자들을 묻은 땅에 떡갈 나무를 심었다.
이 땅의 이름은 에이콘(Acorn) 도토리,살아 있는 세상이 지구 종 스스로를 변화로 여기는 생명들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 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기도 하였다.
또 더러는 돌짝 밭에 떨어지니 싹이 돋아났다가 물기가 없어서 말라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 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 덤불이 함께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자라나,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누가 복음 8장 5-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