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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 - 상실의 글쓰기에 대하여
안드레 애치먼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평점 :
이책의 첫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삶은 어딘가에서 라벤더 향으로 시작한다”
다국적 문화가 공존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가족을 따라 유럽대륙으로 건너간 작가 애치먼은 그곳에 뿌리내릴 틈도 없이 불안한 정세 속에서 로마로 망명한다.
3년 후 뉴욕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리먼칼리지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함께 살았던 삼촌,형제, 자매들을 하나 둘씩 문장으로 엮어나가기 시작한다.
1965년 자신의 유년 시절의 모든 기억을 품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그곳을 사랑하지만 떠나야 했던 슬픔이 다른 곳으로 이주 하고 난 후에도 알렉산드리아의 모습, 그곳에 두고 온 추억을 지우지 못한다.
현재 살고 있는 국가, 언어, 도시로 이주 할때 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것을 단단히 마음속에 새겨두지만 알렉산드리아를 향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문화 관습 제도를 배우면서 작가 애치먼의 과거 속의 모습, 그의 기억들이 하나의 긴 여정들을 문장으로 빚어내면서 자신의 발길이 머물렀던 그곳, 그 도시에 대한 풍경, 음식, 사물들이 아닌 함께 웃고 울면서 사랑했던 가족,형제,친지들이 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그 자체로 보지도 읽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며, 세상의 흔적을 그 자체로 알지도 못한다. 눈앞에 놓인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건 장막이다. 그것은 생명 없는 물체에 본질을 불어넣고,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손을 내민 우리의 몸에 결국 와 닿는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투영한 찬란한 빛이다. 편지가 아닌 봉투이고, 선물이 아닌 포장지이다.]
기억으로 빚어낸 문장들이 삶의 어두운 부분을 온전하게 채워주지 못해도 흩어져버린 기억의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 가다보면 결국엔 삶의 종착역, 인생의 끝자락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될까?
[어쩌면 글쓰기가 열어 젖힌 평행 우주로, 우리는 모든 소중한 기억을 하나하나 옮겨 원하는 대로 재 배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알리바이, 당신의 알리바이는 어디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