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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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쯤 비상 계엄이 선포 되고 하늘에선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국회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고 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담장을 넘은 국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 가고 시민들이 몰려가 군 경찰을 온 몸으로 막는 사이 자정을 넘긴 시각인 12월 4일 오전 1시쯤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술톤 얼굴의 내란수괴범이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 해제 선언을 한 직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탄핵안 1차 표결이 이뤄진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 2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12월 14일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12월 14일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내어 지켜냈고,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국격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십조에 달하는 국가 경제적 가치는 하루 아침에 모래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으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단 한번 울려보지 못한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에서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낭독 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라 전체를 비상 계엄이라는 수렁 속으로 끌고 간 내란의 주역들의 실체가 사주, 역설, 무속과 관련 인물들이라는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권력자가 비 상시적이고 비 이성적인 무속 비선 라인을 통해 내란을 모의 하고 계엄을 선포 하고 군병력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체포 하고 감금 할 계획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이 시국에 영화도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다섯 번 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말을 잃은 여자가 손톱을 바싹 깎은 손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동안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그 연약한 부분은 각자 만이 안고 있는 지난 시절의 상처, 사고로 인한 것 일 수도 있고 기억의 저 너머 고통의 한 순간 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는 모든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 해야 우리는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고전이라 일컫는 세기의 소설들은 '실패자의 기록물'이다.

한강 작가에 앞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 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 하며 불행과 불운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실패자의 기록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친 파도에 맞서 낚시 줄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삶이 형편 없다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은 날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을 쏴 죽인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 비난 할 수 없다.

주인 달링턴 경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집사 업무에 매달렸지만 결국 주인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그의 경력과 인생에도 금이 가 버린다.

역사는 승리자의 말과 행동 그 결과만 기록 하지만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도 뜻하는 데로 생이 흘러 가지 않는 실패의 여정을 보여 준다.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두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첼로의 장례식. 한 무더기 국화꽃 사이 그녀의 영정 사진은 흐릿해서 더욱 애련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녀 아버지의 퀭한 눈은 허망했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을 지키던 너는 꼿꼿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서늘한 눈빛은 얼음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삐죽 고개 들던 악의는 눈물로 덮혔다.

-이선영의 <그물을 거두는 시간> 중에서

오랫동안 불화를 겪다 이혼 후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최윤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모 ‘선임’으로부터 자서전 집필 의뢰를 받는다.

조카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 하기 위해 지난 과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모 선임이 결혼 날짜를 잡은 아들에게 초대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하지만 뜻밖에도 이모 가족에게 깊게 패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과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모의 과거를 알게 되는 동안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는 남자가 찾아와 윤지가 애써 지워버렸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 당한 듯 성장의 순간 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온 악의였다.

언제나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강탈 당했던 이모 선임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에게 현금 인출기 취급을 받을 뿐 아내 어머니라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조카 선임은 가족들에게 외면 당해 쓸쓸하면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모 선임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미성숙 했던 청춘 시절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지는 드문 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춰나가던 중 자신 안에 움트고 있었던 악의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이모 선임은 자서전 집필에 필요한 구술을 전부 하고 나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

이모 선임은 자서전 출간을 통해 지난 시절 사랑을 품었던 미란에게 참회를 하자 조카 윤지는 자신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스무 살, 자신의 손아귀에 사랑을 쥐고 싶었던 윤지는 수진을 걱정하는 선재를 미워 했고 K를 사랑하느라 선재를 외롭게 하는 수진을 증오 해서 희대의 악녀인 수진의 인생을 파멸 시키고 싶어 했다.

결국 윤지는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형사들에 쫓기고 있었던 선재와 수진의 은신한 거처를 밀고 해버리고 두 사람의 삶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린다.

내면은 항상 청춘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윤지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선재에게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난 시절 그가 학교 도서관에서 읽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떠올린다.

늙어가는 대가로 얻게 된 젊음의 가면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늙은 형상으로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범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서서 단 2분 사과를 하고 계엄의 정당화에 대한 변명은 20분간 늘어 놓았다.

내란수괴범을 옹호 하는 변호인단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 오면 착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2022년 3월,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며 인간에게 충성 하지 않는 다는 자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란을 선동하는 괴물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자 노력할 시간이나 기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뜻하지 않은 것을 겪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 받아 혈세로 먹고 살았던 권력자와 무속 신앙으로 연결된 자칭 영적인 지도자라는 이들로 인해 국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순간 국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고 나갔고 촛불을 들었다.

이 세상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모두 인내 하고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 가고 있다.

소설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 버린 이들을 직접 찾아가 참회 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참회>는 범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빌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크사마(ksama)가 한국 불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참혹할 참(慘)와 뉘우칠 회(悔)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서 용서를 빈다는 의미로 확장 되었다.

기독교에서 < 속죄>는 어떤 죄라도 책임을 지고 신에게 고해 하고 고백해서 속죄를 해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란수괴범은 국민 담화문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 했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 하고 있는 내란 수괴범은 앞으로도 영원히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와 속죄를 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건 법과 질서, 정의 그리고 자유가 지켜 지는 민주주의다.

내란 수괴범의 운명은 헌재 재판소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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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2-2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십시요!ㅎ

scott 2024-12-28 11:52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건강하게 한 해 마무리 잘하세요
새해 복 마뉘 ^^
 



펄롱은 다른 아이들이 그토록 반기는 것을 겁내는 자기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고 이 아이가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에서









1985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아침, 아일랜드의 제조업 생산기지가 있는 도시 뉴로스로 석탄 배달일을 하며 아내와 딸 다섯을 부양하는 책임감 강한 가장 빌 펄롱은 수녀원 창고에 석탄을 배달 하러 갔던 날, 그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펄롱과 눈이 마주친 수녀원 안의 아이들은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리거나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린 채 광택제 통을 놓고 죽어라고 바닥을 닦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끼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펄롱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수녀원 아이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 거린다.

다음 날 다시 찾아간 수녀원 바로 옆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 놓인 높은 담벼락 꼭대기에 깨진 유리조각이 촘촘히 박혀 있다는 사실에 놀란 펄롱은 며칠이 지나 다시 석탄 배달을 하러 찾아간 창고에 갇혀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그 여자 아이는 뜻밖에도 펄롱에게 14개월 된 자신의 아기의 행방을 묻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뜨거운 차를 내놓으면서도 얼른 돌아 가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한껏 풍긴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에서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 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라는 헌사로 시작되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 인들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막달레나 강제 세탁소(수용소)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막달레나 수용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역 조선소가 문을 닫고 비료 공장은 여러 차례 해고를 단행했던 혹독한 시기에도 하루 하루 일감이 끊이지 않은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거래처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평범한 가장의 가장 큰 목표는 다섯 명의 딸들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학교(세인트마거릿 학교) 졸업생으로 키워 내는 것이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고 있던 펄롱이 종교적 위선에 짓밟히고 있는 자신의 딸들과 비슷한 또래를 외면 하지 못한 채 갈등 하는 모습에서 작가 클레어 키건은 ‘자신의 삶도 버텨나가기도 어려운데 소시민으로서 어디까지 사회의 불법과 위선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수녀원의 실상을 마주한 펄롱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녀원장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50파운드 지폐를 덥석 받아버린다.

펄롱은 수녀원에 감금된 소녀들이 노동과 인권을 착취 당하는 걸 외면 하고 거래처의 일감을 착실하게 챙겨서 가족들과 살뜰하게 살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수녀원에 감금 된 소녀들을 마주 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에게 지켜야 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있었다.

50파운드 지폐는 정육점 외상값을 갚고도 남고 칠면조와 햄도 살 수 있을 정도의 액수 였지만 펄롱은 봉투를 구겨 석탄통에 던져 버린다.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 건 수녀원장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한 것도 아니였고 석탄 광에 갇혀 있는 아이의 모습을 목격 해서도 아니였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에서


남편 펄롱이 자신의 위선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지켜 본 그의 아내는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며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할 뿐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다며 남편에게 외면하면 그만" 이라고 말한다.


펄롱의 이웃들도 상관 하지 말고 조심하는 편이 앞으로 편히 살아 갈 수 있다며 수녀들 눈 밖에 나지 말라고 경고가 섞인 말을 내뱉는다.

하루 하루 노동으로 먹고 사는 서민들은 다수의 횡포에 대해 조용한 침묵을 유지 하는 편이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법이라 조언을 들은 펄롱은 안락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펄롱은 다시 수녀원 주변을 배회하다 창고에 갇혀 있던 여자 아이를 찾아 데리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 인들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정부와 함께 몸을 버린 여자들을 재교육 시킨다는 명목으로 미혼모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를 수용했던 곳으로 실제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강제 노역과 학대, 감금, 폭행을 당하며 수세기 동안 여성과 아이들의 삶이 끔찍하게 짓밟혔던 곳이다.

정확한 조사나 기록조차 없는 이곳을 거쳐간 여성들과 아이들은 약 3만 명에 달하지만 무덤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시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버려졌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1996년에야 문을 닫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아일랜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다수의 침묵으로 묵인 되어 왔던 인권 유린에 맞선 펄롱은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날, 길을 가던 노인에게 묻는다.

“이 길로 가면 어디로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이 펄롱이라는 걸 그 노인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노인은 펄롱에게 이렇게 답한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매년 출판사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에 가장 많은 독자들이 읽은 책들 순위를 발표 한다.

2024년 거의 모든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1위를 차지 한 책들은 자기계발 분야의 <세이노의 가르침>과 소설 분야의 클레어 키건의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다.

인터넷에 올라 온 글이 인쇄 된 책으로 출간 되자 마자 1년 만에 100만부를 찍어낸 <세이노의 가르침>에 가장 큰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삶의 우열은 돈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주식 투자는 쓸 일이 없는 여유 자금으로 하라.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버려라.

- 부자가 되려면 좁은 문으로 가라


시중의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에는 누구나 노력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이노는 “성공은 운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성공을 원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 꿈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며 인생은 자전거와 같아서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나의 발이고 앞바퀴를 돌려 방향을 잡는 것도 나의 손이고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안 된다는 일침을 가한다.

이 세상에 누구나 부자로 살고 싶어 하고 부자를 꿈꾼다.

로또 판매의 상승이 단 한 번도 하락 한 적이 없고 미래의 운명과 액운을 비방 하는 법을 알려주는 점집을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막막할 때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온라인 오프라인에 떠도는 명언들을 찾아 보거나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앞날을 밝게 해주거나 현재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점술가에게 인생을 앞날을 미래를 현재의 고통과 고난을 물어봐도 뽀족한 대안이나 비방이 되어 주지 못한다.

상담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 깊이 생각해 보면 결국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살아 주지 못한다. 살아가는 것이 힘겹고 앞 날이 막막해도 내 스스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자 숙명이다.

그러니 주변에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다거나 이웃의 고통에 대해 크게 걱정하거나 신경 쓸 여유도 없고 어려움을 해결 해 줄 의인이나 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슬픔에 걱정 하기 보다 내 삶을 살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따끔씩 책을 펼치면 나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 진다.

나처럼 고통에 처하고 나처럼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에 공감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삶과 이런 환경에서도 모든 걸 감당하고 이겨내는 뜻하지 않은 삶의 모습에 감동을 받을 때도 있다.

특히 작가가 창작한 허구의 삶을 그린 소설을 읽는 순간 두 번 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은 채 경의로운 감정에 사로잡혀서 현재의 삶보다 더 생생한 허구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살게 되는 두 번째 삶을 통해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이가 안고 있는 운명을 간접 경험 하듯 함께 생각하고 느끼면서 비로소 타인의 삶을 이해 하게 된다.

소설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상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본질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철학 그리고 사상이 녹아 들어가서 다른 환경에 처한 이들의 삶을 이해 하고 공감 하며 세상의 어둠을 외면 하지 않게 만드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 세상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인생도 내 마음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마음 먹은 데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현실이 때로는 슬프고 비극적이여서 이 모순된 세상에서 상상의 공간이 없다면 숨조차 마음껏 쉴 여유가 없을 정도로 허구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순간 암흑의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1985년,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제목 그대로 소설 속에 등장 하는 이야기는 지나쳐 버려도 상관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다.

무려 70여년의 세월 동안 잔혹한 인권 유린을 자행 해 왔던 곳이 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행하는 수도원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것들을 짓밟는 모순된 이기적인 집단들이라는 실체를 밝혀 낸 작가 클레어 키건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사회고발적이거나 역사고발적인 주제를 펼쳐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종교적 모순과 수녀원의 비리와 악랄함에 집중하지 않고 실상을 목격한 노동 계층의 남자 주인공이 갈등하고 번민 하는 모습에서 그의 도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에서 느낀 비참함이나 가족과 함께 살면서 느꼈던 감격의 순간들을 교차 시켜 보여 주면서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버지도 모른 채 태어나 어느 노부인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얹혀 살았던 펄롱은 성실하게 일해서 세 딸을 낳아 건실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 .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는 사회 밑바닥 계층이다.

삶의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갈등 하던 펄롱은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라며 어찌할 수 없이 휘말려 버린 거센 소용돌이 속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도 결국 이 세상을 버텨내고 살아 나갈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 믿으며 수도원에 감금된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 온다.

2024년 한 해 동안 모두가 어렵고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견뎌 내고 12월 행복한 성탄절을 기다리며 마음이 들뜨는 시기에 뜻하지 않게 비상 계엄이 발발 했다.

단 두 시간 만에 시민들의 힘으로 계엄을 무효화 시켰지만 대한민국의 국격은 단숨에 밑바닥으로 추락 해 버렸고 나라 안 밖으로 비상 경제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위해 '사랑' 때문에 비상 계엄을 선포 한 권력자는 법률 책은 읽었서도 소설은 물론이고 활자로 적힌 책은 단 한 줄도 읽어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문자가 발명 되어 인쇄 기술 혁명으로 책이라는 도구가 생겨난 이후로 수 세기 전 사람들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수단이자 참된 지혜라는 것을 강조 해왔다.

책을 읽는 것은 낯선 세상과 만나는 것으로 나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을 책을 통해 대화하고 이해 하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바꾼 책은 누구에게나 한 권 쯤은 있을 것이다.

구글 창을 열면 무엇이든지 검색해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서 AI인공지능이 대신 읽어주고, 대신 검색 해주고 대신 글을 써 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AI인공지능과 대화 하며 친구를 맺을 수 있지만 AI인공지능이 내 삶을 대신 살아 주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코로 숨을 쉬고 팔 다리를 움직이며 땅 바닥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삶의 지혜와 조언을 줄 수 있는 곳이 숏폼이나 유툽 영상이 되어 주지 못한다.

남들이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보는 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 해서는 안된다.

태어난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주변 상황을 탓하고 사주를 탓해 봤자 소용이 없다.

점술가도 예언가도 타인의 운명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설령, 로또 당첨 행운의 날벼락을 맞게 된다 해도 현재의 삶과 크게 달라지기 보다 오히려 불운을 떠 않는 경우가 많듯이 삶의 지혜를 얻고 싶으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채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 그 해답을 알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은 가장 헛된 시간일지 모르고 삶에 그리 큰 교훈이나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인생을 단 한 단어로 줄이면 [이야기] 즉,서로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다.

살아 온 세월은 이야기의 연속이고 인생 자체가 이야기 보따리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동안 허구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두 번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양서는 처음 읽을 때는 새 친구를 얻은 것 같고,

전에 정독한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옛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

- 골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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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4-12-24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틈을 낸다면
스스로 속(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루를 쓴다는 뜻이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앞으로 나아갈 길과
오늘까지 걸어온 날을 되새기게 마련이라

책을 읽는 틈을 내는 오늘을 보낼 적에는
스스로 속(마음)부터 차리면서
새롭게 꿈을 그리는 씨앗을
살며시 심는 몸짓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한 해 끝자락에
저마다 마음을 돌아볼 책 한 자락을 그리면서
책집마실을 다닐 분이 늘어날 수 있다면
기쁜 일이겠지요.

2024-12-24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 밤의 달리기
이지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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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을지로 4가'역 3번 출구로 나와서 곱창처럼 복잡하게 꼬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페인트 칠이 벗겨진 철물점, 공업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달고 비둘기 형상을 한 철제 조각물 부터 유리 공예 아트 공방들이 올망 졸망 모여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1970년대 대대적인 개발 붐 시대에 서울 을지로 일대는 "탱크, 잠수함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불릴 만큼 철공소, 자재상, 인쇄공장 수천 개가 모여 있는 숙련공들의 피, 땀, 눈물이 배어 있는 서울 안의 산업 단지였지만 현재 을지로는 설치 예술가 집단의 거대한 작업실이 되었다.

한옥이 있던 자리를 허물어서 공업사와 소형 공장들이 들어 섰던 곳이 제조업의 쇠락으로 슬럼화 되기 직전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나서 골목길 마다 예술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모터 가게, 인쇄소, 주물 가게, 유리 가게들이 모여 있어서 원스톱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을지로는 서울 안 교통의 중심지에서 저렴한 임차료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 져 있어서 예술가들에게 천국이다.

을지로 세운상가 터에 매달 50여명의 신청자들이 대기 할 정도로 입점 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해 졌고 임차료까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작업실 임대료가 치솟을 때마다 거처를 옮겨 다녔던 시각 예술가 '휴일'은 예술가들에게 천국 같은 환경을 제공 하는 을지로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작업 활동을 시작한다.


'내게도 직업이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콜라주를 하고 사진을 찍고 소리를 채집한다. 글자를 모으고, 때로는 사람들에 질문을 던지며 그것을 기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를 시각 작가 혹은 설치 미술가라고 부르고 내가 하는 일을 다윈예술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과연 돈을 벌기는 커녕 쓰기만 하는 걸 직업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둘 수도 없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

-이지의 <노란 밤의 달리기> 중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한 휴일의 동기들 중에서 함께 작업하는 태유를 제외하고 다른 동기들은 예술가가 아닌 다른 길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휴일은 생계 걱정을 할 정도로 벌이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동기생 태유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팀으로 활동해서 '주목할 만한 신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그 상이 오히려 그의 인생에 독이 되어 버렸다.

작품이 팔리지 않았지만 작업을 멈추지 못한 휴일은 입시 과외나 백화점 문화 센터와 구청에서 간간히 일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다.

아빠가 게이란 사실을 알고 엄마가 어린 휴일을 옷장 속에 버리고 떠났다.

어쩌다 사진을 전공한 휴일에게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 조차도 예술적 영감이 되어 서른 살을 앞두고 세운상가에서 ‘서식’하는 예술가로 살아 간다.


'안다. 버림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새끼 펭권인 척할 수도 없다. 나는 성인이고 아버지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사실 아버지와 사는 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두 남자가 데면데면하게 사는 집. 고독만 두 배다. 그래도 누군가 떠난다는 건. 그래서 오는 코끝의 알싸함은 심장까지 닿는다.'


가난한 예술가 휴일에게도 '엘'이라 불리는 여자 친구가 있다.

휴일은 여러 명의 여자와 원 나잇 동침을 하고 나서도 언제나 '엘'에게 돌아간다.

'휴일'은 엘과 3년 째 만나는 동안 울며 고백하며 모든 이야기를 들어 준다.


'나는 사실 여자였어요. 분명히 여자애였는데, 엄마가 집을 나가고 얼마 후 남자가 됐어요. 내 기억은 또렷한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요.'


여자 아이였지만 엄마에게 버림을 받고 나서 남자가 되고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엘이라는 여자는 알록달록한 곰 젤리 하리보를 입에 달고 살고 있는 젤리 중독자다.

기억 속에 침착 되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휴일은 사랑에 섹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 많은 연상의 ‘엘’과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에 섹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밤인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 그대로 착즙해서라도 내 매력을 찾아주는 그리고 가감 없이 표현해주는 엘이 좋다. 그것이 낮의 엘이든 밤의 엘이든, 별이 빛나는 엘이든 폭우의 엘이든 엘의 피부와 향기, 신음이나 숨결, 목소리와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머리카락과 숨결, 엘의 몸 속의 물, 그것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좋다. 그걸 좋아하는 걸 엘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밤의 카니발을 지낸다. 이십대의 끝, 나는 엘에게 내 육체를 헌신한다.'


기나긴 생활고 속에서 사랑으로, 예술로 삶을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 허황돼 보이고, 차라리 동물적 꿈을 함께 꾸는 반려견이나 입 속에서 쫀득한 맛과 향을 내는 젤리 하리보가 힘이 되어주는 웃픈 현실 앞에서 사람이 몸에 색을 칠하고 스스로 동물 우리에 들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 한다.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서 환상과 기억 사이를 수시로 오고 가는 휴일과 그 또래들은 부모에게 버림 받아 꿈 많았던 20대 청춘 시절에 도시의 재생 마중물로 쓰이다가 버려져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는 법을” 모른 채 “받아본 적이 없이' 살다가 어느 덧 사회의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해 버린다.

동물의 우리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 휴일의 동기생 '핑크스핑크스'라 불리는 태유의 아버지도 꿈을 꾸고 우리 안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여러 구역을 전전 하다 을지로 한 복판 세운 상가에서 작업을 시작한 휴일은 인간의 목소리가 내지른 말의 높낮이와 떨림, 강세 같은 소리를 채집한다.

그는 목소리를 채집 하는 동안 한 껏 들뜬 목소리를 내지르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하고 애원 하기도 한다.

휴일이 채집한 인간의 목소리의 톤이 오르락 내리락 할 때 마다 그를 둘러 싼 주변인들의 삶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의 몸과 하나의 얼굴이 있다.'


동물원에서 발생한 갑자스런 화마에 잿가루가 되어버린 태유의 아버지는 죽어서 더 유명해 졌고 음식으로 유명해지겠노라며 세상을 유랑 했던 아버지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자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롭고 연인이 있어도 외롭다.

따라서 생은 외롭지 않으면 괴롭고, 괴롭지 않으면 외로운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소리를 제대로 듣게 되고 냄새를 맡아서 주변의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 아버지를 통해 휴일은 소리의 감각이 펼쳐 보인 세상을 알게 된다.

휴일은 돈을 벌어 음식을 먹고 잠자를 구하는 생존이 아닌 숨 쉬는 생존을 하기 위해 밤의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을 달리고 있는 휴일의 시야에 눈가루가 흩날린다.

달리면서 얼굴에 달라 붙는 눈가루들 눈위의 눈, 눈에 눈들이 그의 머리 위에 쌓여 간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달리는 동안 온 몸에 땀으로 범벅이 된 휴일의 머리 위에 내려 앉은 눈은 어느 새 촉촉한 물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상 모든 것들의 전성기는 찰나다.

모든 것이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의 운과 이치에 딱 맞아 떨어지는 그 순간, 누군가의 인생을 가로 막고 있던 어둠이 잠시 걷혀서 빛이 들어 온다.

그 빛은 언젠가 사라져 버리지만 그 빛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아 보았다면 남아 있는 생 앞에 놓인 어떤 고난도 역경도 이겨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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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들의 섬
엘비라 나바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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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소도시 푸엔데토도스 마을에서 도금공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버지는 바스크 태생으로 미천하고 가난한 도금공이었지만, 운 좋게 몰락 귀족의 딸인 그라시아 루시엔테스와 결혼해서 여섯 자녀를 낳는다.

철저한 신분제 계급사회에서 가문의 배경이 없는 미천한 이들이 출세 할 수 있는 길은 성직자 뿐이였고 이 성직자들 중에서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부모에 의해 수도원에 형제들과 들어간 고야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종교재판소 미술검열관이었던 종교화가 호세 루산 이 마르티네스(Jose Luzan y Martinez, 1710-1785)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판화 작업 부터 석고 데생 작업에서 미술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한다.

문하생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고야는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에서 장학금을 받아 스페인 역사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공부 하기 시작하고 여러 차례 왕립 아카데미의 경연대회에 도전 하지만 낙선하고 만다.

1770년 무작정 떠난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무수히 많은 종교화를 관찰하며 베끼는 작업을 하던 고야는 군주 초상화의 복제화 작업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1775년 부터 마드리드의 산타바르바라의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에서 공예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고야는 엘 파르도의 궁전 식당을 장식할 태피스트리 밑그림 작업을 의뢰 받는다.


18세기 중반 스페인에서 부유한 귀족의 하인겸 비서로 일하거나 상업으로 부를 쌓은 벼락 부자를 의미하는 ‘마호’(Majo남자 멋쟁이 )와 마하(Maja; 여자 멋쟁이)를 고야는 그림에 등장 시켜서 춤추고, 술 마시고, 싸우고, 소풍을 즐기고, 카드놀이를 하고, 연을 날리고, 연애놀이를 하는 신나게 놀고 먹는 이상적인 모습을 연작 그림 형태로 완성한다.

당시 놀고 먹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던 귀족들에게 고야의 연작품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 고야에게 작품 주문이 쇄도 하게 된다.

고야는 밤 낮으로 밀려드는 주문에 부응하기 위해 귀족들의 유흥과 취향을 충족 시켜 주는 그림 위주 작품을 그리는 동안 그의 아이들이 줄줄이 사망을 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삶의 낙을 잃어버린 고야는 천국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에 더이상 집중하지 않고 버림 받고 굶주리며 거리를 떠도는 이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 부터 고야는 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이나 거리의 매춘부, 핍박받는 농부들, 부유한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맹인과 정신 지체를 앓는 광대들을 그리며 도시의 빛과 어둠을 기록하듯 동판화로 제작하기 시작한다.

고야가 살던 시기에 마드리드는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번화하고 부유한 이들이 몰려 사는 곳이였지만 수시로 칼부림이 일어났고 어디에서든 도적떼가 출몰해서 어떤 식으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범죄 도시였다.

1778년 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1780년에 완성한 '교수형 당한 남자'라는 판화 작품에서 고야는 머리와 목은 쇠로 만든 목줄로 수직기둥에 고정된 끔찍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사형수를 마치 순교자처럼 그렸다.

고야가 사형수를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처럼 그린 이유는 당시 사형을 집행하고 그 임무를 직접 수행했던 이들은 성직자들이였기 때문이였다.

신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성직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처형 시켰고 수도원 안에서 신의 이름을 더럽힌 성직자들도 목에 밧줄이 감겨서 동료 사제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고야는 1786년 궁정화가로 임명되어 최고 권력자 부터 그 권력에 아부하고 빌어 붙는 이들, 탐욕으로 가득 찬 계층과 사회에 가장 미천한 계급이 이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기법으로 완성해 나갔다.

고야의 경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스페인 땅에서는 혁명과 내전이 터졌고 마녀 재판을 하듯 무고한 시민들은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을 당했다.

영국의 첩자로 의심을 받았던 고야는 생활고를 겪던 중 중병을 앓아 후유증으로 귀가 멀어 버리게 된다.

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암흑의 시기 동안 성화 속에 등장하는 가장 고귀한 신적인 존재들을 마녀와 마귀, 괴물의 얼굴로 둔갑 시켜 버린다.

사방이 컴컴한 공간에서 한 화가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고 그의 주변으로 스라소니, 고양이, 박쥐떼들, 올빼미 일곱 마리가 모여 있다.

판화집 <변덕>의 43번째 작품인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의 판화를 그리던 시기에 고야는 종교 재판소에서 언젠가 자신을 소환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형상을 스라소니,고양이·올빼미·박쥐들에 투영시켰다.

고야는 낙후된 스페인이 발전하려면 교회에 의존하지 말고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야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스페인 땅에는 이성 보다 비합리성, 불안, 폭력, 광기로 무장한 권력자들이 권세를 잡고 피의 전쟁을 벌였다.

마드리드는 공동묘지로 가득했다. 산이시드로 공동묘지, 카라반첼 바호 교구 공동묘지,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 뒷편에 둘러싸여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영국인 공동묘지까지 영국인 공동묘지 옆 건물에는 잔디밭도 없고 양로원을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화려한 속옷이 거미줄처럼 얽힌 빨랫줄에 항상 널려 있었다.

-엘비라 나바로의 <지옥의 건축학을 위한 기록> 중에서

1980년 시청 도시 계획 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중앙아메리카로 이주 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멕시코로 건너간다.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마약과 미신에 빠져 살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예전의 일터인 시청으로 돌아가지만 지난 시절 제 정신을 잃고 미쳐 날뛰던 큰형의 환영이 수시로 나타나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온갖 망상에 시달리던 그는 죽은 큰 형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고 실체를 보지 못하는 가족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죽은 큰 형은 국방성의 고위직 인사로 재직 할 당시에 미확인 비행 물체를 추적하는 아폴로 계획 지상 추적소의 관리를 맡게 되지만 비밀을 발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흑백 텔레비전 시대에 시민들은 어딘선가 수상한 물체가 출몰하면 총질을 하며 공포에 떨고 국가는 수상한 징후가 보이는 지역은 모두 봉쇄 시켜 버린다.

매일 신문에 미확인된 비행 물체가 어디선가 출몰 했다는 출처가 없는 기사가 연이어 터져 나오자 전국의 사기꾼들과 자칭 예언자라는 이들, 우주 천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괴소문에 날개를 달아 주고 이 모든 혼돈의 원인자로 미확인 비행 물체를 추적하는 관리인인 큰 형이 지목된다.

큰형은 가족들에게 조차 외면을 받아 서서히 정신이 마비되어 멍청한 고깃덩어리 처럼 변해 버리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다 결국 누군가 자신의 목에 '정신 이상자'라는 팻말을 걸어두었다며 자해를 시도한다.

수시로 울고 웃다가 펄쩍 펄쩍 짐승처럼 뛰어다니던 큰 형은 거리로 뛰쳐 나가 악마가 도시를 지배 하니 악마의 시선으로 건물들을 보기 시작한다.

교회 천장에 그려진 성상화에 사탄주의가 깃들여 있다는 망상을 한 큰형의 눈에 수도사와 사제들 모두 악마의 사신으로 보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신 병원에서 어떤 죽음을 알지 못한 큰형의 망상에 시달리던 동생은 어쩌면 큰형은 어디에선가 성직자나 구마 사제로 생을 이어가고 있을 지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어느 목요일, 차에 앉아 있던 그는 별관의 어느 방 커튼 사이로 비치는 큰형의 그림자를 보았다.

말라붙은 야자수 잎이 발코니에 달려 있었다.

큰 형은 방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는데, 누군가를 구석에 몰아넣고 위협하거나 공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걸음걸이가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불이 꺼졌다. 다시 한 번 온몸에 오싹 전율이 일었다.

그의 뼈와 근육은 머리가 상황을 논리적이면서도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았다. 그 사건은 매일 같은 시간에 사흘 연속 되풀이 해서 일어났다.

나흘째 되던 날 성당의 원형 천장에 등이 켜지고 드디어 동생은 큰형의 모습으로 보이는 사람의 형태를 보게 된다.

다음날 미사를 마친 동생은 교구 신부에게 찾아가 천장에 직접 올라가는 방법이 있냐고 묻자 신부는 몸을 안전벨트로 고정하지 않으면 올라갈 방법이 없다고 딱 잘라 답한다.

동생은 신부에게 누군가 천장에 올라가 있는 걸 보았다고 말하자 신부는 그를 내쫓아 버린다.

그 날 밤 동생은 천장에 누군가 올라가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되고 몇 시간에 걸쳐서 그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고야,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1780

1780년 고야는 수도원 사제들에게 잔혹하게 사형 당한 어느 사형수를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바로 옆에 그려서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입을 벌린 채 두 눈을 감지 못한 상태로 죽음에 이른 자를 마치 박해 받은 성인이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그렸다.

인간의 고통과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혀 죽음을 맞이한 예수의 죽음, 그리고 죄를 지어서 성직자들 손에 죽은 평범한 시민이 지은 죄의 무게는 서로 동등한 것일까?

고야가 죽고 나서 그의 조국은 잔혹한 내전을 치루며 결국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한 계몽주의 사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힘과 목소리가 센 자들이 외치는 불확실한 정보나 편견을 기반으로 해 다른 이를 비난하고 배척하며 낙인을 찍어버리는 괴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

이 세상은 과연 천국에 가까운 곳일까?, 아니면 지옥에 가까운 곳일까?

2021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후보에 오른 연작 소설집 , 스페인 태생의 엘비라 나바로의 <토끼들의 섬>은 과거와 현실을 오고 가며 스페인 땅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처한 노동의 현실과 개인 존엄의 위기, 사회의 불안정함, 정체성의 혼돈에 사로 잡힌 모습을 수평적, 수직적으로 시 공간을 이동시키며 과연 이 세상이 인간이 살아 갈 만한 환경인지 실험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다.

어디에 살고 있어도 인간은 항상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다.

그러니 어디서든 이런 문구를 보게 되면 현실에 처한 암울한 내 운명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조언을 누군가 해주지 않을까라며 귀와 눈이 솔깃해진다.

기적과 점술은 실제로 존재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교활한 사기꾼이 많죠,

삶의 진실을 밝혀줄 타로점을 봐드리겠습니다.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8034550930

-점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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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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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배경의 한 남자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권총을 발사 하듯 그의 손에 들려진 라이터에 불꽃이 솟아 있다.

독일의 현대미술가이자 전 세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는 20세기 회화 작품을 21세기적 세계관에 투영시킨 미래 지향적인 예술가다.

회화 장르에서 시작한 그의 예술은 사진처럼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법으로 세상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남자의 자화상부터 소녀가 된 자기 딸의 뒷모습을 사진에 기초해 화려한 색채, 그윽하고 안정감 있는 톤, 정교한 붓질로 아름답게 재현 해서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들(photography based painting)'을 독특한 장르로 승화 시켰다.

(c)Gerhard Richter's 'Betty,1988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은 사진 원본에 붓질을 해서 이미 완성된 작품에 덧칠 하는 연출 기법으로 마치 21세기 디지털기기로 사진을 보정 하듯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완성한 작품은 사진일까?회화 일까? 아니면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일까?

(c) Mieno Kei

미대를 졸업한 뒤 광고 회사에 다니던 ‘카논’은 상사의 괴롬힘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하고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 편집부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특집기사를 맡게 된다.

여름이 시작 되기 몇 달 전인 3월 3일 히나마쓰리 축제에 맞춰 시작한 전시회 <늦여름> 안내장을 발견한 카논은 전시장을 찾아 가고 미스터리한 화가가 남긴 작품 <늦여름> 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의 크기와 사진같은 세밀한 기법에 탐복한다.

그림 속 모델이 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해서 죽음의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화가 '나유타'의 특집 기사를 맡게 된 카논은 그의 실체를 취재하는 동안 나유타의 독특한 사진 회화 작품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와이 슌지의 <제로의 늦여름> 중에서

‘사신’(死神)으로 불리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의 이야기를 쫓는 ‘아트 미스터리’ ‘제로의 늦여름’에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가 남긴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는 회화적인 언어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테스크한 나유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비교적 좋아하는 그림이 있었다.

<까마귀 공원>이라는 작품이다.

어린 소녀의 초상화로, 티 없는 귀여움이 어딘지 후지이 쓰토무(일본 서양화가)의 작품을 연상 시킨다.

도록의 같은 페이지에 실린, 또 다른 소녀를 그린 <카나리아의 집>과 마치 한 쌍처럼 보인다. 어둑한 방에 있는 소녀를 심플하게 그린 <카나리아의 집>에 비하면 <까마귀 공원>에는 다소 독특한 구상이 엿보인다.

눈동자에는 쓸쓸함이 가득하고 입은 일자로 다물렸다. 손에 든 한 장의 사진에는 소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소녀는 웃고 있다.

회화적인 언어로 미술 작품을 묘사했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유괴와 행방불명의 덫이 곳곳에 깔려 있어 오싹하다.

미술 기자 카논이 나유타가 남긴 작품 세계에 빠져 들 때마다 작품 속 소녀들은 행방 불명 되거나 살해 당해서 피해 가족들의 삶은 산산 조각이 나버린다.

'훌륭한 그림은, 한 눈에 압니다. 뭐랄까, 사체인데 살아있는 것 같았죠. 대단한 거죠. 언제가 되든 어디서든 꼭 공개하고 싶은 그림이네요. 하고 제가 말했을 겁니다. 얼마 후 아드님이 직접 연락해왔어요. 그림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작가명은 '나유타'가 좋겠다. 뭐, 그런 얘깁니다.'

유화를 사용해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기 위해 본인의 사진을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잡지와 신문, 책에 수록딘 실제 이미지를 스크랩 해서 붓으로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버리거나 흘려버리는 기법으로 생생하면서 선명한 리얼리티 경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그는 이런 사진 회화적인 작업을 통해 광란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갔던 어린 시절의 시간부터 종전 후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독일의 모습을 반영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에는 예기치 못한 선택과 우연, 영감 그리고 파괴의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화가의 시선으로 해석된 세상을 보게 만들었다.

화가 나유타는 왜 죽었을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왜 유괴 되거나 살해 당했을까?

화가는 증거로 작품을 남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남긴 작품에는 '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누구도 구하지 못해. 그런 저주'가 걸려 있는 것일까?

가세가 붓을 들고 가시와기 슈조의 그림과 마주했다. 그의 붓끝이 거장의 세계에 닿는다. 붓이 움직인다.

사는 동안 한 번 쯤은 어떤 작품 앞에서 매혹 당하거나 일순간 마음에 무언의 감정이 솟아 날 때가 있다.

형언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을 그린 화가의 심성은 어떤 상태 였을까?

글로 묘사된 나유타의 그림을 머릿 속으로 상상 하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행동을 추측해 보고는 내가 붓을 잡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배경은 어떤 색으로 처리 했을 까..

이젤을 세워 놓고 작품을 완성 하고 나서 사진으로 작품을 찍어두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린 나유타,만면에 웃음을 띤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 또는 그녀가 긴 머리칼을 헝클어뜨린 채 춤을 추고 있는 작품들....

<연옥>....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제 몸에 불을 붙이고 불길에 휩싸여 춤추는 사람을 촬영해서 사진으로 현상하고 마지막 붓으로 완성한 화가 나유타.

영화 감독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은 겨울의 계절이 시작되면 생각나는 영화‘러브레터’와 ‘릴리슈슈의 모든 것’, ‘립반윙클의 신부’, ‘키리에의 노래’ 등 거의 모든 자신의 작품의 원작을 직접 쓸 정도로 일찌감치 글쓰기 재능을 인정받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화가 나유타가 실제로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회화를 완성하듯 이와이 슌지 감독은 미스터리한 예술 세계를 그린<제로의 늦여름>에서 카메라 촬영 기법처럼 스토리를 전개 시켜 나가면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인 언어로 묘사했다.

Overpainted photograph 17. Nov. 99 ©Gerhard Richter 2017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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