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14.
"아까 보니까 마을 입구에 철거한다고 써 있더라."
"아 그거.. 올림픽 때 외국놈들 보기 좋으라고 마을 싸그리 밀어버리겠대.."
"그럼.. 돈 몇분 받고 쫓겨나겠네.."
"아니, 우리가 왜.. 난 끝까지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외국놈들 보기 좋으라고 자기나라 사람들 죽이놈들이 어디있어.. 그렇게 말도 안되는 걸 우리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야, 니가 그렇게 암만 씨부려도 어, 모 달라지는 거 없어..응? 야 이 자식.."
"난 그래도 좋아.. 내가 힘이 없어서 바로 잡을 순 없어도, 잘못된거, 잘못됐습니다! 이렇게 말할 순 있어야지.. "
"야.."
"형.. 그 정도 자유는 있어야 되는 거잖아.."
그냥 영화를 보려고 했을 뿐인데..
아무 생각 않구 재미난 영화를 보려고 했을 뿐인데..
흥행은 고사하고 상영관 문제로 개봉하자마자 내린 영화 <홀리데이>.
무슨 영화인 줄도 모르고 인터넷에 신작으로 올라와 있길래 그냥 봤다.
이성재도 나오고 최민수도 나오고.. 뭔가 볼만해 보였다..
그런데.. 잘못 선택했다.
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면 인질극을 벌이다 자살한 탈주범, 지강헌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였다. 묵직한 사회의식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88올림픽을 전후로 펼쳐지는 배경.
그 속에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쪽팔리면 안된다구
도시를 아름답게, 서울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는 도시 미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없고 못사는 사람들, 다른 나라에 없어보이면 안되니까, 아니 쪽팔리니까
국가는 이들을 공권력을 사용하여, 혹은 공권력을 위임받은 깡패들을 동원하여
안보이는 곳으로 싹쓸어 버리는 대청소를 한다.
"이 일은 국가가 우리에게 부탁한 일이야, 눈 마주치는 새끼들은 애고 어른이고 다 쓰러버려!
그럼 서울은 아름다워진다... 좆나게"
철거깡패 반장쯤 되는 놈이 짖는다.
"자자, 여러분 이곳은 건설 허가가 나지않은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불법입니다. 불법!"
시청직원 정도쯤으로 보이는 놈도 짖는다.
깡패새끼들을 가리켜 현장 정리하는 걸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라고 시청직원으로 보이는 놈이 씨부리자, 싸움이 시작된다.
또라이 경찰에게 한 명이 총맞아 죽고...
그 총맞아 죽은 놈 형은 지랄하다 공무집행법 방해 등등으로 감옥에 간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픽션일 것이다. 사회 배경과 지강헌이란 인물이 살아온 삶에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픽션일 것이다.
아무튼 무언가를 훔치고 공권력에 저항했다는 지강헌은 징역 7년에 보호감옥 10년, 총 17년의 형을 언도받는다. 그리곤 교도소 부소장으로 온 또라이 경찰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면서 또라이로 대변되는 공권력의 변태적 폭력에 시달린다.
"니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넌 내 손바닥 안이야.. 야, 야 이 쥐새끼야.. 너희같은 새끼들은 나라에서 인정한 개쓰레기같은 새끼들이고, 난 대한민국 국가 공무원이란 말이야, 이 새꺄.. 이런 버러지같은 새끼들.. 공권력은 언제나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한단 말이야, 이 새끼야! 어!"
주로 강도짓 몇 번으로 10여 년의 징역을 살게 온갖 잡범들과 함께 방을 쓰던 지강헌. 전두환 동생 전경환이 몇백억 횡령이 드러났는데도 몇년도 안되는 형량을 받자 그 분노는 더욱 커져가며 그들의 탈주가 시작된다.
감독이 의도한 바겠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범죄자들과 너무도 비인간적이고도 비상식적인 공권력과 다시 마주했다. 언젠가 철거된 상계동과 대추분교의 철거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던 동영상이 생각났다. 왜 이렇게 닮았을까..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공권력은 왜 언제나 변태적 폭력으로만 나타날까.. 왜 이토록 비상식적인 정책에만 끌려다닐까...
지강헌 사건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KBS에서 만든 <인물현대사>에 이 사건이 올라와 있다. 79회까지 하다 멈춘 프로그램. 중요한 현대사, 그 속의 인물들 목록이 눈에 띈다. 이걸 모두 보고 나면.. 그러고 나면..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다..
또 비온다.. 젠장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