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문학시장 일본소설만 ‘활활’ [2005. 1. 14]
일본소설의 힘이 세지고 있다.
신년 초여서 물량이 많지 않았던 지난 일주일 동안의 신간동향만 살펴도 그렇다. 국내 작가의 새 소설이 한권도 없는 가운데 일본소설은 무려 5권. 단순 수치로 따질 문제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최근 문학시장의 출간동향에서 일본문학의 양적 성장은 엄연한 사실이다. 출판가에 “돈될 만한 일본소설은 (국내 출판사들이)싹쓸이 계약해 놨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요시모토 바나나·에쿠니 가오리 등 ‘스테디셀러’
한국출판연구소의 집계는 이를 증명해준다. 지난 1999년 국내서 출간된 일본소설은 219종.2003년에는 372종으로 부쩍 늘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집계가 나오지 않았으나,2003년보다 크게 증가했을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보증수표’로 꼽히는 대표적인 일본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등. 출판 관계자들은 “단시간에 대박을 터뜨리진 않아도 고정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꾸준한 판매량을 보장하는 ‘브랜드 작가군’”이라고 이들을 평한다. 문학작품 판매고가 초판 3000부를 넘기 힘든 불황에 출판사들로서는 이들에게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아쿠다카와·나오키·분케이문학상 등 일본내에서 굵직한 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오른 작품은 즉각 (국내 출판사들이)상식선 이상의 프리미엄까지 붙여 계약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표작가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도 있다. 북스토리는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쓰지 히토나리, 쓰쓰이 야스타카, 유이카와 케이, 요시다 슈이쓰 등의 대표작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냉각된 소설시장에서 일본소설이 ‘먹히는’ 배경은 뭘까. 청어람미디어 김장환 주간은 “일본어로 씌어졌을 뿐 주된 정서는 일본적이라기보다는 딱히 꼬집어내기 어렵게 모호한 이국풍”이라고 최근 일본소설 경향을 짚어내고 “국내 작가들의 경험에 바탕한 ‘사소설’ 경향과는 딴판으로 현실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벼운 터치로 그리는 공통점이 있다.”고 해석했다.
●‘현실탈주 욕망 가벼운 터치로 접근’ 공통점
문학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독자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국내 30대 독자층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류가 ‘제1전성기’를 누렸다면 3∼4년전부터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신진작가들이 ‘제2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최근 ‘하얀 강 밤배’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9권을 출간한 민음사의 이지영 팀장은 “바나나의 대표작인 ‘키친’은 출간 5년 동안 17만여부가 팔렸다.”면서 “폭발적 반응 대신 꾸준히 마니아층을 확보해 차기작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일본소설들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일본소설이 젊은 독자층에 호소하는 또다른 매력은 소재와 등장인물의 다양성. 예컨대 ‘프리터’(일정직업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신세대를 일컫는 일본식 조어)같은 주인공은 국내 소설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것.
출판사들의 마케팅 전략도 한몫 한다. 종이책을 부담스러워 하는 젊은 독자들을 의식해 얇고 가벼운 ‘사륙판’ 규격이 기본이다.
●2003년 372종 국내출간… 日출간 한국소설 19종 불과
대중문화쪽의 한류열풍이 문단에서만큼은 거꾸로 불고 있는 셈이다.372종의 일본소설이 국내 출간된 2003년에 일본에 선보인 한국소설은 단 19종. 급변하는 독자들의 입맛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국작가들의 매너리즘을 꼬집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삶에 대한 성찰없이 가볍고 일상적 소재의 ‘카툰만화’식 소설이 득세하는 독서현실은 고민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