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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달콤함과 차가움의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은 어떤 맛일까.
<달고 차가운> 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읽고 싶다라는 필이 왔던대로 이 책은 내가 짐작했던 감성을 담고 있었다.
달달하면서도 차갑고도 서늘함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한 부분 아니겠는가......
대학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이 인정하는 대학이 아니었기에 어쩔수없이 재수생 신분으로 있는 지용과 부드러움 이면에 지옥같은 삶을 안고 살아 온 신혜. 재수학원에서 만나 사랑을 하며 겪는 두 사람의 내면과 진실, 그리고 반전까지...... 왠지 뻔한 스토리가 나올법한 주인공 신분이지만 강남B급스럽지도, 이해불가의 깊은 심오함까지도 내려가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달고 부드러운 것을 갈망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차갑다.
재수까지 해서도 대학 입시에 또다시 실패한 지용은 몸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어야 하는 낙오자 신세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엄마는 미국 누나에게로 가 있으라하고,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부드러운 것이 필요할 뿐인데 그마저도 세상은 자신에게서 부드러운 것을 빼앗으려는 것으로만 느껴질 지경이다. 쥐락펴락해대는 악당들에게 살의가 치밀어 오르는 내면의 소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어린 딸을 판 엄마를 둔 신혜의 지옥같은 삶과 맞물려 결국 살인에 이르게된다. 모진 운명이 지용을 모질게 변화시키고 있었고 지용은 더 이상 손해 보기 싫었다.
『 악을 없앨 방법은 악 밖에 없는 걸.
죽느냐 죽이느냐, 둘 중 하나라고. 』
- p17
『 붙거나 떨어지거나, 죽거나 살거나, 사랑하거나 외면하거나, 잡히거나 빠져나가거나, 인생은 매번 둘 중의 하나다.
중간은, 없다. 』
- p23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고 미국으로 간 지용은 갑자기 신혜의 소식이 끊겨 버린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유일한 한 사람마저도 사라진다. 그런 신혜를 찾기 위해 넉달의 시간이 흐르고 신혜의 진실과 마주한 결말은.... 책을 덮으면서 달콤한 느낌은 사라진 채 깊은 차가움만을 안겨주고 있다.
남과 눈이 마주치는걸 불편해 할 정도로 소외감을 안고 사는 지용이라는 인물은 부드럽고 달콤한것에 빠져있다. 아니, 갈망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억지스러운 기대감을 받고 엄마만 생각하면 겁이 나는 그런 자신을 싫어하며 집이 지옥같다고 생각하는 지용은 신혜와의 관계를 통해 따뜻함을 알게 된다. 불쾌한 꿈을 꾼 이후에도 "부드러운 것이 필요"했고, 엄마의 비난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려댈때마다 다디단 목소리를 지닌 신혜를 그리워하고, 신혜와의 달달한 만남에서는 아델의 노래와 조지 마이클의 노래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갖고 있는 차가움. 살인을 한 다음날 비행기 안에서 듣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의 부드러움과 죽음을 함께, 뉴욕 공원에서는 'In cold blood' 책을, 후반에 다시 한번 더 나오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의 의미.. 등 이처럼 음악을 통해서건 대화를 통해서건 영화에서의 복선처럼 암시를 주는 장면들이 전반에 걸쳐 많이 나타난다.
『 특별한 사람이 못 되는 나는 그러지 못해 불안했지만, 미안하지는 않았다. 낳아 달라고 애원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평범하다는 게 어째서 죄가 되는지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때때로 기적을 상상했다. 기적이 온다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기적을 가장 바라는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기적을 기도한다면 불운은 누구 몫일까. 궁금했다. 』
- p75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남을 사랑할 수도 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움만을 갈구한 지용 역시 신혜를 통해 대리충족 살인이라는 내면을 안고 있어 단순히 순진한 희생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살인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며 타인을 악이라 하고 벌 주려 하는.. 악을 없앨 방법은 악 밖에 없다는 그의 심리는 결코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불행에 허우적대며 삶의 의지조차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실적인 속물일 뿐이라고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말하고 있다.
『 부드러운 목덜미를 누른 오른 손목 안쪽으로 맥박이 느껴졌다 』 - 프롤로그 中
『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런데 부드러운 안쪽에서 딱딱한 무엇이 끈질기게 꿈틀거렸다. 살갗 아래 숨어 있던 목 뼈. 완강한 긴 줄기. 그것은 지나치게 질겼다. 』 - p176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이 비교되는 문장으로 달고 차가움의 의미를 대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