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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모드 방튀라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평점 :
-20250621 모드 방튀라.
낮잠을 자는 일은 몇 달에 한 번은 될까 싶게 드물다. 토요일 정오를 지나, 잠시잠깐 엎드린 자세로, 벗은 안경을 손에 쥔 채 머리 위로 팔을 뻗고, 잤다. 깼다. 귀마개를 끼면 밤이고 낮이고 평온하다. 간밤엔 귀마개를 잊고 잤다. 작은어린이가 텔레비전으로 틀어놓은 2배속 게임방송이 거슬리는 낮에는 귀마개를 하면 마음이 다시 편안하다.
어려서 학급 장기자랑 시간에 아홉 살 짜리 한 아이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눈 앞에 흰 물체가 어른거렸다고. 어딜 가도 어딜 보아도 계속 어른거리는 그 유령에 겁에 질려 있었는데, 흰 물체의 정체는 눈꺼풀에 붙은 밥풀이었다고. 공포에서 개그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왜 생각나냐면 과제 채점을 할 때도, 읽던 책을 타자 쳐서 옮겨 적을 때도 오른 눈동자 위로 와이퍼 지나가듯 흰 무언가가 슥슥, 지나가기 때문이다. 내 엄마가 예전에 이걸 앓으면서(아마 지금도 앓을 듯) 비문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기가 눈앞 나는 듯한 그 증상에 이름 붙일 말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겁에 질렸을지도 모르지만(내가 미쳤나? 진짜 귀신이 있는 건가?) 눈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겁날 일이긴 하구나. (하고 적는 순간 눈 앞에서 똑딱, 진자운동처럼 뭐가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귀마개를 하고, 모기 같은 모기 아닌 게 눈앞에 어른거리는 채로 소설을 읽었다. 결말부에서 남편이 할 말을 미리 예상해버려서 뭐여 이게...했다. 에필로그는 사족 같았다. 사랑은 징벌이 아닌데. 어떤 혼인생활은 회복적 정의가 아닌 응보적 정의로 가동될 수도 있겠군...그런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거기 하나 더 붙었구만, 그래도 그냥저냥 시간 죽이기 좋았다. 번역가는 내가 칠조어론 볼 때 한자 사전 뒤진 이후 가장 많이 사전을 뒤져보게 만들었다. 국어 낱말 공부라도 한 게 어디야. 그런데 왜 번역 이력에 카트린엠은 빼먹으셨나요 선생님…. 엠언니가 부끄럽나요… 띠지나 표지의 이런저런 찬사는 좀 오버 같다. 징글징글하게 쓰긴 했는데 뭐 징글징글 대회도 아니고 다른 독자들이 별로여, 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나는 별로까진 아니고 그냥 왜인지 거울치료 받는 기분이었다. 수첩도 징벌도 없는데도 그냥 그랬다고.
+밑줄 긋기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랄 수 없고, 더 나은 것을 바랄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결핍감은 어마어마하고, 나는 그가 그 결핍을 메워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가 과연 어떤 집으로, 어떤 아이로, 어떤 보석으로, 어떤 사랑 고백으로, 어떤 여행으로, 어떤 몸짓으로, 이미 가득 차 있는 것을 채울 수 있겠는가?(11-12)
-이렇게 해석자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더없이 잘 어울린다. 나는 무언가를 창안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딱 맞는다. 나는 상상력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살펴보고 분석하고 추론하기를 더 좋아한다. 나무나 열매의 껍질을 벗겨 그 속을 살피듯이 원문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원문의 함의를 밝혀내고, 그 무언의 울림을 드러내는 일을 좋아한다. 마치 감춰진 증거를 찾아 나가는 수사관처럼 치밀하게 조사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 (45, 나는 내 마음대로 오독하고 다시 쓰는 게 좋아서 책을 읽는데 말이다. 어차피 난 쓴 이의 참뜻에 가닿지 못할 걸 아니까 뜻은 내가 만든다.)
-나의 첫 번역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관한 책을 옮길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 과학적 발견(우리가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으며, 지구가 무한한 우주의 외딴 구석에서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파천황의 사태)을 끊임없이 나의 애정 생활과 비교했다. 나는 마음이 어수선해진 채로 스스로 되뇌었다. 만약 내 남편 없이 살아야 한다면, 내가 겪어야 할 것이 바로 그런 사태이리라고. 사고의 모든 지표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이 언제나 확실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그런 사태를 내가 겪게 되리라고. (49,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라는 부재 붙은 만화책 읽고 이 책 펴자마자 코페르니쿠스 나와서 -정작 만화책엔 그 이름 한 번 나옴- 모든 책들은 알아서 이어진다는 생각을 또 했다.)
-루이즈가 덜룽스럽고 생급스럽다면 니콜라는 주의 깊고 자상하다. 루이즈는 햇살과 같고, 니콜라는 그 따가움을 완화한다. 그들은 함께 서로를 보완한다. 서로 잘 맞물린 두 개의 기계 부품과 비슷하고, 기름칠이 맞춤하게 되어 있는 톱니바퀴 장치와도 비슷하다. (73, *덜룽스럽다:성미가 찬찬하고 차분하지 않은 데가 있다.
*생급스럽다: 하는 일이나 행동 따위가 뜻밖이고 갑작스럽다.
전에 다른 책에서는 감창소리 라는 말로 사전을 찾게 만든 번역가님…이 부분 이후로도 나는 사전을 계속 펴게 되고...)
-옥생각(76:공연히 자기에게 해롭게만 받아들이는 그른 생각.)
-나는 그를 따라 침실로 가기 전에, 잠시 혼자 남아 내 수첩에 저녁 모임 동안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다. 우리 아들의 생후 몇 개월 동안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이야기, 자기 생일잔치 얘기를 하면서 그가 나를 언급하지 않은 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귤에 비유한 일을 적고, 만년필로 밑줄을 긋는다. 마트형 과일의 쌉쌀한 맛으로 그의 배신을 기록하자는 뜻이다. (87, 데스노트냐. 사실 조금 더 섬뜩한 무언가.)
-투명한 두 줄기 눈물이 마르고 나니까 내 남편의 숨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숨소리가 느려지고 있다. 이 사람은 저녁 모임에서 나한테 그런 짓을 하고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지? 나는 이 사람이 우리 부부의 삶에 에너지와 열의를 쏟아부으리라 기대했는데, 잠을 잘 자는 이 사람은 수면 활동에 그런 것들을 쏟아부은 모양이다.(91, 라고, 이 문단을 베껴적는 책상 옆 이부자리, 아침 아홉시 사십 구분 현재, 곁의 사람은 내 베개 위에 팔을 얹고 모로 누워 아기처럼 자고 있다. 쿨쿨.)
-그가 나를 옆에 두고 전화기를 꺼냈다는 사실. 그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지 않았고, 우리 몸이 서로 닿지 않는다는 사실. 그가 내 번역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는 사실. 오늘 오후에 서류를 가져다준 것에 대해서 그가 다시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는 사실. 귤과 관련해서 그가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다는 사실. 밤에 덧창을 열어 놓고 자고 싶지만, 그가 그런 예외적인 제안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우리 아이들이 경이롭게 우리가 함께 사는 삶이 하나의 축복이지만, 그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모든 것에 생각이 미친다. (158, 쪽까지의 읽은 내용이 이 한 문단으로 다야, 하는 나는 미친다. 이쯤되면 그냥 아니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나 집착의 오마주 같은 건가… 프랑스 소설은 다 왜 이래… 뭐하다가 할 말 없으면 자꾸 뒤라스의 ‘연인’ 꺼내서 방패처럼 써 먹는데 니네 프랑스는 그 둘 빼면 뭐 없냐.)
-가리사니(191): 사물을 분간하여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
-그런 만남의 목적은 단 하나, 사랑의 압박감을 덜어 줄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남편을 상대로 느끼는 엄청난 압박감을 여러 사람 사이로 분산시키는 길을 찾는 것이다. (208, 아 그래?시종일관 정신 없네...)
-내 살갗에서 막심의 냄새를 맡고 일종의 남성적 본능이 되살아난 것은 아닐까?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내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고 온 날이면 언제나 나랑 성행위를 했다. (…) 그러나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다 해도, 내 남편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있어도, 나는 그가 무척이나 그립다. 그가 내 몸에서 물러가면, 나에게 깊숙한 자상이, 무시무시한 허허로움이, 곪아 터질 상처가 남는다. (218, *허허롭다:텅 빈 느낌이 있다. 매우 허전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금요일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 색깔인 초록색 덕분이다. 이건 한낱 미신이 아니다. 미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실들이 있다. 나는 정말로 필요하다 싶을 때면, 주위에서, 즉 가까이에 있는 물건이나 풍경에서 초록색을 찾았다. 그렇게 초록색을 찾아내면, 나에게 좋은 결과가 온다고 믿었다. (228, 요즘 나는 초록 옷이나 가방 착장하고 나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크초록 새초록 온갖 초록을 입고 연속으로 나를 스쳐지나가서 아...이 색 노인들 사이에 유행이구나… 그래서 자꾸만 누군가 내 바글거리는 머리를 보고 어머님, 하다가 어머 아가씨잖아-둘다 아니야-하는 경험을 하는 건가 싶다. 색깔 강박 아웃, 초록은 새마을 컬러다. 아웃. 스타벅스 아웃.)
-인터넷을 조금 검색해 보니, 초록색은 색채 스펙트럼에서 525나노미터의 파장에 해당한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빅토르 바슈로 52번지에서 자랐고, 25번 도인 두에서 태어났다. 설명은 합리적일수록 더 나은 설명이 된다. (229, 숫자가지고 자꾸 의미 부여하면 안 되겠다 싶은 거울 치료...되게 모지리처럼 보이는 구나…)
-사랑에서 나는 그 무엇도 배우지 못했다. 사춘기 시절 이래로 똑같은 도식을 되풀이한다. 나는 너무 강렬하게 사랑하는 나머지 사랑 속에서(분석 속에서, 질투 속에서, 의심 속에서) 나 자신을 소진해 버린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나는 언제나 좀 사그라진 듯한 슬픈 상태를 맞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는 엄하고 슬픈 사람으로 변하고 마음 쓰는 폭이 좁아진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진지하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사랑은 고단한 일로(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빠르게 변해간다. 요컨대, 나는 불행한 사랑을 한다. (…) 그 남자들 중 어느 하나에 의존했다기보다는 사랑에 중독되어 있었던 셈이다. 남자들은 변수였고, 그 중독만이 상수였다. (237, 내가 애기 때 내내 겪던 증상을 여기서는 사십대 가까운 중년 여성이 아직도 앓고 있다. 이제 좀 낫자...)
-당시의 내 심리 상태를 서술하기에 적합한 표현이 하나 있다. 즉, 나는 내 삶이 틀을 잡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 삶이 무언가 지속성 있고 견고한 것으로 변화하기를 바란 것이었다. 꼭 찰흙이 굳어 덜 만만한 것으로 변해 가듯이, 나 역시 물기를 버리고 단단해지고 싶었다. (242)
-언죽번죽(24):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고 비위가 좋아 뻔뻔한 모양.
-내 남편은 치즈값으로 75유로 23상팀을 냈다. 액수가 크다. 지난주보다 많다.(그가 장을 보면서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나는 그가 나를 더 사랑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생크림과 우유, 오믈렛용 달걀, 나를 위한 콩테치즈, 아이들을 위한 양젖치즈, 샐러드용 염소젖치즈, 그가 목요일에 소스를 만들면서 사용한 로크포르치즈. 한 주간 이상 먹을 만한 양이다. 적어도 열흘 동안은 더 사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전리품을 얻은 것처럼 든든하다. 이건 한 가정의 아버지에게 걸맞은 영수증이다(여기에는 가족의 각 구성원이 좋아하는 치즈가 들어 있다). (250, 치즈 타령에 이렇게 많은 글자를 사용하는 것 보니 프랑스 놈들 치즈에 진심인 거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하지만 내 남편은 내가 자기에게 무언가를 숨길 수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받은 메시지를 삭제하지도 않고, 내 몸에 닿은 그들 몸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샤워를 하지도 않는다. 내 남편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오늘 오후에 다른 남자랑 함께 있었어?>라고 물으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증거를 흩뿌려 놓아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월요일부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낮은 탁자에 올려놓고 있지만, 확신컨대 그는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이렇게 자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내가 왜 갑자기 <연인>이라 불리는 책을 읽기 시작한 거지? 나는 그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어리기를, 그의 차분한 평정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떤 불안이, 어떤 의심이 끼어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의 눈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감뿐이다. (257-258, 이 부분에서 왜인지 이 여자가 가엾었다.)
-우리의 사적인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 나에게는 합리적인 일로 보인다. 그 말들은 나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그걸 다시 들을 권리가 나에게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그건 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습관이고, 대개는 그 결과도 별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그 일을 하지 않고 살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 (…)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내 남편과 드물게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녹음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를 며칠 동안 안정을 잃고 헤매게 만든 말싸움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컴퓨터에 그것을 전사한 다음 영어로 옮겼다. 다만 그게 우리 두 사람의 말다툼이라는 것을 알게 할 수 있는 정보들은 신경 써서 잘라 냈다. 나는 그 번역 텍스트를 인쇄한 다음, 내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를, 그것이 예전 영어 교재의 한 장을 복사한 것인데, 어느 부부의 말다툼이 명령법을 복습하기 위한 완벽한 틀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요’. 크나큰 아픔이 밀려왔다. 나는 잠시 앉아서 숨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261-262, 녹음은 몰라도, 엠에스엔 시절에는 친구나 연인과 대화한 내용을 메모장에 저장해 놓기도 했다. 심지어 음악 시디에 함께 구워서 20년 넘게 박제된 것도 있을 걸? 지금도 문자메시지 같은 걸 주고 받고 나면 복기하듯 다시 돌아가 한 번 읽어보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미친년 이야기처럼 읽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럴 법 하지, 하고 읽게 되는 슬픈 사람도 있는 것이다.)
-찰필(265): 압지나 얇은 가죽을 말아서 붓 모양으로 만든 화구. 문질러서 빛깔을 흐리게 하거나 짙고 옅음을 나타내는 데에 쓰인다.
-그렇게 평영의 몸짓을 하면서 그는 스스로 이렇게 깨닫고 있지 않을까? 나라는 여자와 결혼한 것은 하나의 실수이자 하나의 실패라고, 자기는 우리 집의 포로라고, 자식을 둔 것은 하나의 책무라고, 자기는 자유를 잃었고 꿈을 포기했다고, 아내는 자기가 사랑했던 거무스레한 피부의 스페인 여자만큼 흥미롭지도 않으며 교양도 풍부하지 않다고, 자기는 이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내를 만질 때면 다른 여자를 욕망한다고, 자기는 아내 곁을 떠나야 하고 곧 떠날 거라고. (266, 이 여자가 대체 어떤 삶의 롤러질을 당했길래 이 지경인지 겨우 일주일 남짓 시간의 심리와 행동 묘사를 한 것 가지고는 이 부분에서 파악하기 힘들다. 그냥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구나...그런데 나도 그런 날들이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은 남의 일 같지만 그래도 기시감이 드는 구나…)
-만약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들을 처음으로 하는 일들만큼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다면, 분명코 우리는 무수한 순간들을 더 강렬하게 살게 되리라. (334)
+이것이 찰필이다. 찾아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