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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20250310 필립 로스.
수능 생명과학 강의 들을 때, 인터넷 일타 강사 선생님이 좀 유치하지만 자기가 만든 암기법이라면서 “독감에 걸린 홍소천, 그 연예인 분 아냐 내가 만든 말이야.” 했다. 독감, 홍역, 소아마비, 천연두는 바이러스성 질환, 자매품 ”페콜결파탄. 펩시콜라결국파탄...나 그 콜라 좋아해 비난하는 거 아니고 잘 외우라고 만든 거야.” 세균성 질환 페스트, 콜레라, 결핵, 파상풍, 탄저균. 여태 이거 하나 남은 거 보면 그 강사 용했다.
국민학교 들어가서,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히던 시절이 있었다. 독특한 예방접종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입 안에 물약을 쏴악, 쏘아주면 애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약을 삼키며 맛이 이상해, 했다.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이었다. 이후 어린이들 키우며 대부분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이 되었다. 폴리오, 매번 듣는데 아 그건 뭐지...치약 같네...하다가 아 소아마비라고 하던 바이러스 예방주사구나...이젠 주사로 놓네...했던 기억도 있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뉴어크 지역은 폴리오 전파라는 또다른 전쟁을 치른다. 그 안에 있던 켄터 선생은 눈이 아주 나빠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남았다. 나도 며칠 전에 5년 만에 안경렌즈 다시 맞춘다고 안과에 처방전 받으러 갔더니 고도근시네요...했다. 내가 고도근시라니… (-9.0, -8.25...안물안궁) 오늘 렌즈 완성되서 새 안경 쓰고 이 독후감 쓰는 중이다.
놀이터 체육교사로 여름 내 아이들 운동을 지도하던 켄터 선생은 폴리오가 퍼지면서 함께 운동하던 아이들이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을 목격한다. 운좋게도 그에게는 더위와 질병을 피해 떠날 기회가 생긴다. 연인 마샤가 지도자로 일하는 캠프에 참전자가 생기면서 지도자 자리가 비어서, 켄터 선생은 새 일자리의 기회를 두고 놀이터를 지킬지, 시원하고 전염병 창궐하지도 않는 캠프로 떠날지 한참 고민하다가 마샤와 약혼을 결심하고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캠프로 떠난다.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은 이쯤 읽으면 짐작할 것이다. 결국 캠프에도 병이 창궐하고 누군가는 지옥을 겪겠지. 손 씻어라, 거리둬라, 마스크 써라, 공용음수대 폐쇄하니 각자 물병에 물 담아 다녀라… 5년 전 우리는 모두 켄터 선생이었다. 휴직 직전 학기 끝나갈 무렵 반에서 감염자가 하나 둘 갑자기 등장했고, 등교수업 하던 아이들은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어 집에 격리되었다. 나는 백신을 맞고는 후유증인지 심장 맥박이 이상하다고 여겼고, 내과에 가니 공황장애약을 줬다가, 호흡기능 검사를 하고는 천식입니다, 하고 천식약을 줬다. 상관 있는지 모르지만 3년 후쯤 폐동맥에 혈전이 걸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미쳐서 반년간 약을 먹었지… 모든 게 어디서 시작이고 또 끝인지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는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을, 그걸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켄터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고, 본인도 폴리오에 걸려 장애와 재활 과정을 모두 겪었지만, 놀이터의 아이들도, 캠프의 감염자도 사망자도 모두 자기 탓이라 여기며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저절로 잃는다. 스물네살의 처음이자 끝 사랑이던 마샤와, 조부모 양육으로 키워진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마샤의 가족들과 이어질 기회와, 놀이터에서 일하던 고향 동네 모두를 떠났다.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그 놀이터에서 켄터 선생의 굳건한 모습, 이탈리아인들이 침 뱉고 시비걸던 것을 저지하던 일, 아이들에게 안전과 건강을 당부하며 놀이터를 잘 관리하고 멋지게 투창 던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놀이터 아이 중 하나인 아널드 메스니코프이다. 그 역시 폴리오에 걸려 후유증을 앓았지만, 완전 절망하지는 않았고, 배우자를 만나 가족을 꾸려가면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이어갔다. 우연히 마주친 켄터 선생을 알아보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켄터 선생이 털어 놓은 속내, 캠프의 일, 그 이후의 삶을 전해들으며 아널드는 그 모든 게 선생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켄터 선생은 꿋꿋하게 끈덕지게 자책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탓이 아니라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켄터 선생 같은 캐릭터는 귀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비극적이다. 세상을 구하거나 망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 망치고 겨우 살다가 죽는다. 필립 로스는 마지막 소설이라 선언하고 절필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사람들과, 네 탓 맞는데 좀 인정하라고 해주고 싶어도 끝내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 마구 섞여서 참 균형 잡기 힘든 세상이다. 1910년대, 1940년대, 그리고 또 수많은 질환들이 널리 퍼지며 사람들을 죽였고 인류는 그래도 살아남았지만, 병을 마주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너무 겁먹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탓을 하고 벌을 주었다. 격리 기간에 연인을 만나다가 처벌 받았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여행을 가도, 코인노래방을 가도, 헬스장을 가도, 외국인이어도, 데이트를 해도, 그게 다 죄이던 시절. 성적 지향과 직업과 주거지와 가족관계 같은 신상이 다 까발려져도 되던 시절. 그 시절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야 우리 왜 그랬냐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인간은 잘 배우지만 또 잘 배우지 못한다. 뭐 나도 그렇다… 자책과 남탓을 동시에 하니까 이중으로 힘든 삶이냐…
+밑줄 긋기
-“어른에게 놀이는 오락이고 삶을 갱신하는 것이며, 아이에게 놀이는 성장이고 삶을 얻는 것이다.”(조지프 리의 책을 읽다가 켄터 선생이 적어 놓은 한 구절)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켄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여러분이 모두 진정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공황을 퍼뜨리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생활의 모든 걸 가능한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합리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42-43)
-그는 만일 앨런이 상자 안에 누운 채 계속 더 익으면 상자에 불이 붙어 폭발하고, 안에서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아이의 유해가 영구차와 거리 전체로 터져나올 거라고 상상했다.(78)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 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106)
-“뉴저지 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 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의도적으로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함.” (134)
-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언덕의 풀 덮인 비탈을 걸어가는데 비에 흠뻑 젖은 땅으로부터 처음 맡아보는 짙고 습한 파릇파릇한 냄새가 솟아올라 그가 논란의 여지 없이 생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늘 조부모와 함께 도시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전에는 온기와 냉기가 섞인 7월의 산 아침을 살갗으로 느껴본 적도 없고, 그런 아침이 일으키는 느꺼운 감정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가없는 공간에서 일하며 하루를 보 내는 것은 너무도 생기를 북돋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텅 빈 섬의 어둠 속에서 마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너무도 매혹적인 일이고, 천둥과 번개의 전격전 아래서 잠을 자고 나서 태양이 인간 활동을 비추는 첫날 같은 느낌이 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너무도 짜릿한 일이었다. 나는 여기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의 발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흠뻑 젖은 풀이 짓이겨지며 내는 절벅절벅 소리에도 기운이 솟아올랐다. (181)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어.”마샤가 속삭이며 그의 안경을 벗기고 굶주린 듯 얼굴에 키스했다.“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버키, 내가 약속할게. 나는 너한테 늘 노래를 불러주고 너를 사랑할 거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맞아.“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빌리와 어윈과 로니에게 무엇이 달라질까? 그는 생각했다. 그들의 가족에게 뭐가 달라질까? 상사병에 걸린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들처럼 끌어안고 키스하고 춤을 춘들-그게 누구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202...이런 사명감은 병이 아닐까….꼭 뭘 해줘야 하냐고 먼저 묻는게 자기 자신과 여친한테 예의 아니냐…남말할 처지는 아니다만...)(202)
-”하지만 선생님은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내가가냄라했다. ”불행하게도 너무 빨리, 백신이 나오기 십일 년 전에 폴리오에 걸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20세기 의학은 엄청난 진보를 이룩했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약간 늦었던 거예요. 오늘날 아이들의 여름은 티끌만한 근심도 없이 지나가요. 원래 그래야 하는 거죠. 폴리오의 심각성은 이제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아무도 그때의 우리처럼 무방비 상태가 아니에요. 어쨌든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자면, 선생님이 도널드 캐플로에게 폴리오를 옮긴 게 아니라 거꾸로 선생님이 옮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스타인 버그 쌍둥이 실라는…...그애는 누구한테서 옮은 거야? 이봐, 지금 그 모든 걸 다시 되짚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는 이미 나와 거의 모든 것을 되짚었으면서도 묘하게 그렇게 말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야.“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짓은 한 짓이야. 나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사는 거고.”(249)
-“읽어봐. 보라고 가져온 거야. 마샤가 캠프에 가고 나서 불과 며칠 뒤에 받은 거야.”
봉투에서 꺼낸 옅은 녹색의 작은 편지지에는 완벽한 파머 매서드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251, 미안, 난 한 줄만 쓰고 복사-붙여 넣기 세 번 했다….)
-“그만, 제발 좀! 너는 기형이 된 게 네 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기형이 된 건 네 마음이야!”
“그게 나로부터 너 자신을 구해내야 할 또하나의 좋은 이유야. 대부분의 여자는 불구자가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 걸어나가주면 기뻐할 거야.”
“그럼 나는 그런 대부분의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도 단순한 불구자가 아니야! 버키 ,너는 늘 이런 식이었어. 너는 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지를 못해. 한 번도! 너는 늘 네 책임이 아닌 것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 끔찍한 하느님이 책임을 지거나 끔찍한 버키 캔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책임은 둘 중 누구에게도 있지 않아. …”(260-261,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놓다니 진짜 버키는 보통 인간은 아님...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착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나쁜 미친 놈임….)
-그의 하느님 개념은 전능한 존재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듯 하나의 신성 안에 삼위가 일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둘, 즉 좆같은 새끼와 사악한 천재가 합쳐진 것이었다. (265)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2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