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6
이문구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1124 이문구.


1학년, 국민학교 첫 여름방학이었다. 할머니는 어디 친척집에 며칠 다니러 가셔서 엄마가 우릴 데리고 할머니댁에 머물며 할아버지 밥을 해주고 지냈다. 더위에 허술하게 보호장비를 했던지, 농약이 너무 독했던지, 정한 희석 농도보다 높았던지 알 수 없지만, 논인지 밭인지 분무기에다가 약 주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우물가에 쓰러져 누웠다.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엄마는 할아버지 팔다리를 주무르다, 아마도 구급차인지 삼촌인지 누군가에게 연락했고,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할아버지는 며칠 입원했고, 친척집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병원에서 병바라지 하는 동안 엄마랑 나랑 동생은 예정보다 더 오래 할머니댁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책도 못 가져오고 학교 숙제인 탐구생활 한 권, 그림일기 하나 들고온 터라 무척 지루한 날들이었다. 그무렵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다. 밀집모자를 쓰고, 머리에 꽃도 달고, 익살스럽게 찍어뒀지만 농약중독사고를 직접 목격한 충격은 삼십년 지난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도 할머니댁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부터 20년전까지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본업은 건설현장 노동자로(노가다 십장) 중동이랑 북아프리카랑 해외로 오래 떠돌았다. 벼농사랑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이런 저런 채소 밭농사랑 짓는데 한국의 농업이란 무척 노동집약적이고, 도시나 읍내에서 직장 다니거나 회사 다니는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농번기에는 휴일마다 수시로 불려 가서 모를 심고, 자꾸 고장나는 경운기를 고치고, 고추모를 심고, 이거저거 다 했다. 며느리들은 밭농사를 돕거나 밥을 해날랐다. 나는 어린 사촌동생들이랑 논둑 근처 솔밭 아래 돗자리 깔고 애들이랑 놀아주다가 뱀이 나타나서 어린애들을 껴안고 뱀!!! 뱀이다!!!! 하고 비명을 질렀더니 뱀이 이리 기어오다 놀라 달아났다. 동생들은 뱀이 나오면 언니처럼 뱀!!!하고 소리지르면 된다고 잘못 배웠다.

도농복합시 읍내 살다 군이 시되는 걸 보고 자라서, 술먹고 엄마 두드려패는 아빠 피해 가출해서 서울 와서 이제 거의 이십년 가까이 되었다. 그때도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농촌이었지만, 그런 농촌에 자본주의 들어오고 소비와 욕망만 늘고 상품 수익성은 택도 없어 죽어라 일해야 빚만 늘고 그냥 서서히 망해가는 농촌 이야기 적어둔 소설 보며 나는 농업 종사는 커녕 들일 밭일 거들어 본 적도 없이 구경만 했는데도 그냥 내내 쓸쓸했다. 이전 읽은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이문구 선생 말년에, 이번 읽은 ‘우리 동네’보다도 좀 더 지나 거의 다 죽은 농촌의 서글픔, 거기 약간의 체념과 작가 생명 숙어지던 질병 앓던 시절이라 그런가 더 처절하게 잘 쓴 것 같았다. 그보다 아마 조금 젊던 시절 쓴 ‘우리 동네’는 그래도 아직 안 죽었다고, 중년의 농촌 쯤 되는 시절을 그린 느낌의 연작 소설이었다. 나는 수능 전 이문구 소설집은 다 읽고 간다, 했는데 하나 밖에 못 읽고 이건 너무 두꺼워서 이제야 다 봤다. 보고 나니, 이건 수능에 못 나와… 너무 야해… 정씨는 귀숙어매랑 동네서 몰래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틀어져 경찰서까지 가서 드잡이 하고, 아재들은 수매가격 그지같이 곡식을 넘기고 신경림 시의 ‘농무’에 나오는 농악대처럼 울분 토하다가 유흥업소 가서 술 퍼마시고 단체로 성매매하러 가… 핍진하긴 한데 역시나 개빻아가지고, 하긴 인생 막장 개털인데 저러고 막가는게 인간이지 싶고 가엾으면서도 예쁘게 볼 수 없는 모습들, ‘드러-’ 하는 추임새처럼 진짜 드럽게 놀며 현실 도피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내가 안 살아봤으니 막 욕할 수도 없고 그랬다…

그래도 나름 재밌고 호감간다 싶은 아재도 하나씩은 나왔다. 안 좋은 꿈 꿨다 싶어 그것 때문에 손탈까 가족 걱정하며 일찌감치 들에 나와 안절부절 못하는 김씨 아저씨가 그랬다. 새에게 모이 주고 새잡이 총질하는 도시 사람과 싸우는 최씨가 또 그랬다. 연작 소설집의 시작과 말미를 김씨의 활약으로 열고 닫는다. 첫 소설부터 양수기 빌려다 물대다가 싸움나고, 그러다가 민방위 오라니까 다들 샥 몰려가서 관에다가 바른 말 하는 김씨와 그걸 거드는 주변 사람들이 절창이다. 너무 재미났다. 막판에 농민들의 사자후라 해야 하나, 농민 등처먹는 아이콘인 황씨한테 망신 주고 대거리하다가 도시 것들, 높은 사람 들으라는 듯 마지막 울분을 뿜어내는데, 이게 이미 망해버린 농촌의 뒤늦은 유언 30년 후에 듣는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

+밑줄 긋기

-부면장은 무슨 말이 나오는 것을 참는지 한참 동안 입술만 들먹거리더니 겨우 말머리를 찾은 것 같았다.
“도대체 당신 워디 사는 누구여? 뭣 허는 사람여?”
그러자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두 높어유.”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곁들여졌다.
”놀미부락 개발위원이구, 마을문고 후원회원이구…...“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르르 하고 아무나 한마디씩 뒵들이를 했다.
”부랄 조심(가족계획) 추진위원이구…...“
”부녀회 회원 남편이여.“
”연료림 조성 대책위원이유.“
”야산 개발 추진위원이구.“
”단위조합 회원이여.“
”이장허구 친구여.“
”죄용해 줘유. 앉어줘유. 그만해 둬유. 입 다물어줘유.“
하고 부면장은 다시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약간 수그러들자 부면장은 언성을 낮추어 말했다.
”일 헥타는 삼천 평입니다. 앞으루는 이백 평이니 말가웃지기니 허구 전근대적인 단위는 삼가주셔야 되겄다-이겝니다.“
말허리를 끊으며 김이 말했다.
”이 바닥에 헥타르를 기본단위로 말할 만치 땅 너른 사람이 멫이나 되느냐 이게유.“
부면장은 들은 척도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에, 날두 더운디, 지루허시드래두 자리 흐트리지 마시구 담배나 피시며 쉬서유. 저 놀미 사는 높은 양반두 승질 구만 부리시구 편히 쉬서유. 미안헙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은 그 박수의 임자가 자기라고 믿으며 속으로 웃었다.
(‘우리 동네 김씨’ 중, 34-35)

-”세상이 아무리 뭣같이 되었더래두 헐 말은 허구 살아야겄더라구.“
이장은 계속했다.
”촌늠은 나이가 명함이지만 나두 막말을 안 헐 수 웂어 허는디, 당신이 계장님 만나러 예까장 온 속심을 우리가 모르지 않어. 물간 새우젓, 곯은 황새기젓 좀 농민들헌티 멕여보까 허구 시방 지켜앉어 있는디, 아스슈, 아스라구. 나두 작년 같잖여. 나두 정신채렸다구. 작년만 해두 동네서 쥑일 늠 소리를 들었고, 또 그래야 쌌어. 허지만 나두 싫어. 왜냐. 나두 당신 말마따나 젊어. 넘으 잔치에 설거지해 주다 내 배 곯구, 동네서 소릴 들어가며 살구 싶지는 않더라 이게여. 그러구 이건 내 개인문제가 아녀. 그럼 뭐냐. 하늘과 땅과, 비바람두 눈보라두 우리를 보호해 줘. 심지어 개돼지두 우리를 위해 살어. 그러나 사람은 틀리더라 이게여. 그러니 이저는 세상웂이 거시기헌 늠이 무슨 소리를 해두 못 믿것더라 이게여.“
이장은 말허리를 끊고 좌중을 한차례 둘러본 다음 나머지를 이었다.
”그러니께 결과적으루 우리 스스로 우리를 보호허지 아니허면 아니되겄더라-이게 결론여. 내 맘만 같으면 당신이구 오도바이구 죄 남댑문표 빤쓰에 싸서 둠벙 속에 처늫겄어. 또 그래야 옳어. 그러나 워쨌든 간에 당신은 우리게 사람여. 우리는 아직두 이웃을 보살피구 동네 사람들 애끼구 싶다 이게여. 그리구 당신 빤쓰 아니더래두 수재민들이 홑바지는 안 입는답디다. 부디 니열 새벽 빤쓰버텀 걷어가슈. 당신 손으루. 동트기 전에.“
“…...”
황은 응수하지 않았다. 틈을 여투어 김이 말했다. (중략)
“내가 헐라는 말은 저기여. 벨것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구 땅만 믿구 사는 우리찌리는 여전히 경우가 있구, 이웃두 있구, 우정두 있구, 이런 것 저런 것 다 분별이 있는디, 직업이 사람을 상대루 허는 직업은 우리가 마소나 들풀이나 돌멩이 같은 다른 저기들과 다름웂이 뵈는 모양여. 우리가 있음으루 해서 각기 직업두 생긴 겐디, 그 직업을 한번 붙잡었다 허면 우선 인심부터 내버리구 저기허더란 말여. 직업을 권세루 알기루 말헐 것 같으면 하늘을 입구 흙을 먹는 우리네 위로 올러슬 것이 웂을 텐디두…...그러나 우리를 업신여긴 것치구 오래 안 가데. 나는 배움이 웂어서 지난 역사를 저기헐 수는 웂지만 아마 사람 위에 올러스려구 버둥댄 것치구 저기헌 적이 웂을겨. 그랬으니께 오늘날에 우리가 있는 게구, 우리는 또 자식들이 사는 걸 저기하면서 저기허는 게구…...”
김은 하던 말을 남기고 일어설 채비를 했다.
(‘우리 동네 황씨’ 중, 393-39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4-11-25 0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스토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네요. 다시 읽어봐야 겠군요. 흠...

반유행열반인 2024-11-25 09:27   좋아요 1 | URL
낫기는 나무 시리즈가 나은데 이것도 말맛이 솔찮어유 ㅎㅎ충청도 연고 없는데도 사투리 문학에 오금 못펴는 갱기 촌것이라ㅎㅎ

syo 2024-11-2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고 이번에 페이퍼에 쓴 어떤 책읽은 책에서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이 짧게 있었습니다.
˝잊혀가는 충청도 사투리가 가득하다˝ 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정도면 독자에게 ˝나는 이 책 읽었다˝라는 걸 알리는 것 이외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거나 진배없군요.

반유행열반인 2024-11-28 09:35   좋아요 0 | URL
그거 그 선생님이 쓴 책일 것 같다는 킹리적 갓심 ㅋㅋㅋㅋㅋ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 7
황인찬 지음 / 난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1124 황인찬.

 

 작년 이맘쯤 찾았던 시흥시를 다시 찾았다. 연고도 뭐도 없던 동네인데, 황인찬 시인이 시니어 도서관에서 강연인지 북콘서트인지 한다고 해서 서해선 열차 타고 갔다. 노인들 틈바구니에 앉아 미래에서 스파이처럼 노인인 조용히 시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글쓰는 사람에 관한 환상은 없다. 쓰인 것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의 구분은 비교적 확실해서.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남긴 사람들일수록 주변 사람들은 또라이새끼 때문에 많이 불운, 불행했다, 하는 일화를 많이 보았기에 글은 흠모해도 사람은 흠모하려고 애쓰진 않는다. 흠모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뭐가 맞냐.

 덕분인지 이번 산문집 읽을 때는 시인 목소리 그대로 음성지원이 되어 재미있었다. 산에는 지네/ 꽃이 지네 하는 산유화를 다루는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자리에서 닳고 닳도록 했을 같지만, 그래서 책에도 나오지만 듣던 다시 읽는 다른 느낌이 든다.

 

 시흥시는 이름만 들으면 시가 흥할 같은 동네인데, 시인도 여기랑은 아무 관계가 없고, 그냥 행사 섭외되어 잠시 들렀다 곳이고, 나도 그냥 찾아간 곳인데, 어쩌다가 물기 없는 바다 흔적을 따라 돈가스도 먹고, 갈매기도 보고, 오리도 보고, 드넓게 아무것도 없는 진창에 갈대만, 갈대 말고 이름 모르는 짠물 견디는 풀들만, 그리고 나무랑 바람만, 약간의 갯내만 날아다니는 벌판을 오래도록 걸었다. 그게 좋았다. 가을이 무르익은 날이었는데, 한해만에 찾은 그곳은 작년보다 20 정도 늦춰 찾아갔더니 이미 채도가 단계 바래 가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날은 흐리고 잠시 비가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제법 푹한 날이었고, 이번에는 작년에는 가지 않았던 자전거 모양 다리를 건너고, 갯벌의 건너편엔 그렇게 평행선처럼 거울처럼 비슷한 외줄기 길이 뻗은 알게 되었다. 새로 길에는 새를 탐조할 있는 헛간 같은 있어서, 진창의 오리들을 망원경으로, 맨눈으로 실컷 있었다. 뽀또 속살 크림처럼 노란 치즈색 오리를 처음 보았는데, 이름은 직관적으로 황오리라고 했다. 이쪽으로 엉덩이를 두고 진흙에 빠지는 발을 힘겹게 옮기며 뒤뚱뒤뚱 걸어나가는 오리 마리가 너무 귀여웠다.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 하늘로 엉덩이를 솟구쳐서 물고기를 잡는 놈들, 저들끼리 쫓고 쫓아가고 그렇게 평화로운 사실은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에서 저들만의 먹고사니즘하고 있는 오리들을 나는 한가로이 구경하였다. 오리를 구경하고 오리에 관한 시도 제법 썼다는 산문 구절은 그때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2010년의 두리반, 연인과 걷거나 머물던 보라매공원, 그런 공간들을 글로 마주하면 직접 겹쳐지지는 않았지만 살짝 어긋난 시간이든 실제가 아닌 글이든 어쨌거나 사람들의 삶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교차하고 흘러가는 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7월의 일기를 11월에 읽는 적절한 걸까, 이런 식의 잠깐의 궁금증이 때마다 영리/영악한 시인은 물으실 알고 이미 대답해 놓았습니다 프하하하 하듯이 미래의 독자와 티키타카를 잘했다.

 

+밑줄 긋기

-(반바지 타령이 허송세월 이어진다) 그러면 나는 그때도 반바지를 입은 또래의 사람들을 보며 반바지를 입느냐 마느냐 하염없이 고민을 하겠지. 혹시 제가 벌써 지겨우신가요. 하지만 짧은 책은 앞으로도 이럴 예정입니다. (26. 이런 불쑥불쑥이 앞으로도 이러면서 그게 책의 재미이고 매력입니다.)

 

-아무튼 군대란 남자고등학교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에는 입시라는 부담스러운 관문이 없었다.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나면 전역이라는 해방만 있는 셈이니, 시간이 느리게 흘러 생기는 초조함은 있을지언정 미래의 성취에 대한 불안은 느끼지 않아도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는 복무 시절이 제법 마음 편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군대가 마음 편한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폐쇄적인 분위기와 억압적인 문화를 차치하고라도 당시 나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미칠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시간을 되돌린 것만 같다는 감각이 주는 이상한 기분이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있으니 몸도 마음도 젊어진 같다…... 까지는 말할 없겠지만(매일 운동을 억지로 하는 바람에 몸이 조금 건강해지긴 했음), 스무살 남짓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동안에는 분명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때가 많았다. 살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십대 후반, 아니면 이십대 초반에 느꼈던 불안이나 슬픔, 미움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친구는 시간을 돌이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시절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은 좋겠어요. 저는 스물둘이라 시속 이십이 킬로미터로 가고 있는데 형은 삼십몇 킬로미터로 가고 있잖아. 군대 빨리 끝나겠다.” 세상에 별말을 듣는구나 싶었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것만 같다. 시간이란 야속하고도 웃기는 것이군요.

 

 또다른 오랜 친구는 이백 살까지는 살고 싶다고 했다. 삶이 너무나 지겹고 버겁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말을 듣고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 삼십몇년 사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살아온 세월의 배나 되는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느냐고. 친구는 세상에는 아직 즐기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고, 앞으로는 재미있는 것이 생겨날테니 그걸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답했다. 친구의 답변을 듣고 정말 크게 놀랐다. 삶에 대한 이런 낙관이라니. 그것은 단지 세상에 대한 순진한 기대는 아니었으리라 나는 짐작했다. 삶이란 이토록 지루하고 괴로운 것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재미있는 것을 찾아 움직여야 하리라는 일종의 대항 의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의료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인간의 수명이 이백 살까지는 족히 늘어나리라는 것이 친구의 이어진 설명이었는데, 또한 아득하게 들렸다. 이야기는 어쩐지 SF소설에서 소재로 자주 삼는 냉동 수면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기술을 통해 우리의 육체가 시공 속에서 소모되는 것을 견디게 함으로써 우리를 미래로 옮긴다는 점에서 분명 냉동 수면과 의료 기술을 통한 수명 연장에는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득한 이야기를 나는 차마 감당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 뜨겠노라 농담을 던졌는데, 친구는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웃었다.

 

 누군가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미래를 그린다. 그것은 조금도 특이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돌이킬 없는 시간과 가닿을 없는 시간에 대해 상상하곤 하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현재와 조금 어긋난 곳에 위치해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자꾸 다른 시간을 그리게 된다.

 

 문득 친구를 나란히 떠올리게 것은 내가 과거나 미래 어느 쪽으로도 딱히 가닿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끔 상상하기는 한다. 내가 만약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혹은 세기 후의 미래까지 있다면, 따위의 생각들을. 하지만 나는 어떤 시간대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쪽이다. 어쩌면 내가 시를 쓰는 것도 그런 까닭일지 모르겠다. 시는 현실로부터 조금 비스듬한 자리에 있는 것이고, 자리에 서서 자꾸 지금은 아니라고, 이곳은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다. 지금과 여기를 벗어나 돌이킬 없는 과거와 닿을 없는 미래를 그리는 , 마음의 작용이 결국 시인 것이다.

(207-210. 친구의 일화와 시간, 그걸 시에 이어 붙이는 부분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 통으로 들어다 옮겨 적었다. 사실 저건 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시를 전부 소설이라고 바꿔 말해도 틀리진 않다. 나는 이래서 시인의 산문이 소설가의 산문보다 좋다. 소설가들은 소설 산문에서는 문장을 아낀다. 아껴도 너무 아껴 구두쇠들… 그런데 시인의 산문을 보면 이런 수다쟁이들이 어떻게 말들을 참고 손바닥만한 시어들을 아껴가며 꾹꾹 눌러 담았을까... 쓰는 극기일지도… 못한다 못해 나는 군더더기형 부사형 인간이다 이러고 새삼 신기해하게 된다….)

 

-이제 너에게 비밀을 말해줄게

  책에는 너의 미래가 적혀 있고

 

  일은 모두 일어날 거야

 

 언젠가 네가 바닷가에 갔을

 너는 혼자가 아닐 거야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거야

 수면은 빛을 받아 눈부시게 산란하고 있을 거야

 

  사람은 바다를 보며 이상한 농담을 던지지

 

 그떄 나눈 농담은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계속 되풀이되며

  사람을 웃음 짓게 거야

 

 아침이 오면 식탁 위에 올려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을 거고 밤이 오면 포근한 어둠 속에서 동안의 일을 이야기할 거야

 

 그러다 깜빡 잠들어버리겠지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로

  호흡을 교환하며

 

 부드러운 꿈속에 빠져드는 거야

 그건 아주 평화로운 밤일 거야

 

 가끔 슬픔이 찾아올 때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결코 혼자가 아닐 거야

 

  구운 빵을 나누며 순간 서로가 같은 온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이 삶의 위로가 된다는 당연한 사실에 놀라며 잠시 서로를 끌어안을 거야

 

 그거면 거야

  괜찮아지는 거야

 

 너에게는 많은 기쁨이 있을 거야 딸기밭에 딸기가 매달린 것을 보며 웃을 거고 강아지가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웃을 거야

 

 물론 아무 일이 없어도 웃을 있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면 말이야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손이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일어날 거고

 

  책의 가장 첫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가지는 확실해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232-235, ‘미래의 책’ 전문. 이전 산문집에도 친구들을 위한 축시가 나오는데, 이번 책에 실린 시는 읽는 순간 나한테 선물한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한테 읽으라고 실어둔 거니 내가 내맘대로 선물처럼 받는데 세상 기쁘고 좋았다. 책을 산문집이라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책은 날짜를 붙여 일기 형식이지만 에세이랑 시랑 섞여 있고 서간문도 있어서-사실 남의 편지 읽을 별로다 나한테 부친 것도 아니고 수신인 분명한데 사람한테 흠모의 잔뜩 늘어놓은 보면 괜히 샘남 그렇게 존경할 있는 사람 갖는 거조차 샘날 일이 아닐까 싶어서- 그냥 산문집은 아니고 하이브리드 짬뽕 좋아할지 몰라서 준비해 봤어요 느낌인데 그게 읽기 괜찮았다. 산문 질릴 이렇게 강약중강약 있는 책이라서)

 

 , 새로운 마니아 되면 북플이 알림메시지를 앱에 띄우는데 궁금해서 둘러보니 나는 이제 syo님을 제치고 황인찬의 1번째 마니아가 되었다. 우하하하 시의 요정 시요가 수능 국어 수능 수학 1등급을 만드는 사이 나는 황인찬 전작을(아직 구관조 씻기기는 남겨둠… 젊은 풋풋한 시에 실망할까 조금 겁남. 그래도 그림책까지 독자 여기 있다) 하고 마니아 1등급을 쌓고 있었던 거였군… 마니아 탈환하려면 따라 읽어라 2인자...훗훗훗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티오피아 넨세보 불가 내추럴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알라딘 원두 사봤다. 난세보 시다모 이 동네 커피들은 다 좋았어서... 커핑 노트 보면 매번 뻥 치지 마 자몽? 홍차? 아카시아꾸울? 했는데 방금 못 참고 내리는 동안 진짜다, 왜 자몽향이 나! 상큼한 향 대비 맛 자체는 산미가 세지 않고 진짜 홍차랑 꿀 느낌도 난다...까불지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 - MGS를 훌쩍 뛰어넘는 아미노산, 단백질, 생명현상 이야기
최낙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1123 최낙언.

 

 문돌이인 나에게 과학 공부를 많이 시켜준 , 재미있게도 수능 과학 과목이 아니라 수능 국어의 독서(옛날에 비문학이라 하던) 과목이었다. 한바닥짜리 쪽글은 초식동물의 반추위에서 일어나는 대사 과정, 식물 광합성의 명반응과 암반응, 반도체의 작동 원리, PCR검사의 원리, 미토콘드리아와 고세균의 공생과 공생 아닌 것의 구분, 이부프로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용매와 용질과 촉매와 어쩌구… 열거하지 못할 만큼 이런저런 지식들이 쏟아져내렸다. 당연히 남들 학기 걸려 대학교재 권으로 배울 것을 10여분 안에 이해할수도 없고,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게 독해 문제이다. 최대한 빨리 읽어내려가며 구조 파악하고, 적당한 인덱싱으로 나중에 문제 풀다 돌아가서 짝맞추기 잘하도록 끝없는 훈련, 훈련.

 

 과학 공부는 오히려 산수 공부 내지 멘사 두뇌 퍼즐, 이런 이름이 적합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근육이 수축하면 부분은 줄고, 여긴 늘고, 여기에 자극이 가해지면 순차적으로 마이크로 단위로 부분은 전위가 발생해 찌르르 흐르고 그게 마이크로세크당 센티미터까지 이동하고 전위 발생 정도가 탈분극인지 재분극인지 맞춰 하는… 나는 대소비교와 비례식, 단순 덧셈뺄셈 나눗셈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 3 공부하면서 알았다. 풀이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계산기와 같은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입시 수학 과학에서 너무나 중요해. 어려서 구몬수학 같은 번도 안하고 덧셈 뺄셈은 두자리 부터는 세로셈으로 적지 않으면 하지도 못하던 나새끼가 분초를 다투는 고등 수학 과학에 다시 도전한 건…원래도 셈이 느리고 자릿수도 만의 자리 천의 자리 0개수 구분 어렵던 나새기가 노화마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 더딘 모르고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구나… 그랬다.

 

 어느 달인가 알라딘에서 독후감에 적립금 상을 줘가지고, 고민하다가 최낙언 선생의 전자책이 보여서 낼름 사버렸다. 글루탐산, 그거 -글루타민산나트륨에 붙어 있는 뭔가가 아닌가? 엠에스지 이야기냐… 그래도 펼쳐보면 단순히 맛과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유익한 공부를 시켜주는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에 홀린듯 놓고 다운로드도 받고 잊고 있다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홀린 전자책 놓은 있냐...하다가 먼저 펼쳤다.

 

 아니 그런데 책에, 내가 수능 생명과학에서 공부하던 나와 있었다. 수능 국어 지문에 나오던 이런 저런 화학 반응 관련된 거도 나오고… 그냥 수능 과학 공부 하고 책을 먼저 봤으면 재밌고 고생한 아닐까 싶게… 단백질과 중에서도 핵심이라 만한 아미노산인 글루타민, 글루탐산 다루면서 선생은 생명의 온갖 작동 원리들- 근수축, 막전위 변화, 광합성, 호흡, 질소순환, 20여가지 아미노산이 분자 분자 붙고 떨어지고 하면서 이루어지는 분자구조식까지 깨알같이 담아 두셨다. 생명과학이랑 화학 공부하는 중고생들이 읽으면 통섭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문제 풀이 시키기 위한 수능 과학은 진짜 과학 공부하는 본질은 잃고 순발력과 지구력 테스트를 위한 퍼즐 맞추기 문제로 변질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걸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가서 어떤 응용 과학에서 이걸 이용하게 될지, 혹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이걸 공부하는지 완전히 망각시키고 있다. 이미 공부 조금이나마 하고 와서 이게 재밌는건지,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그래도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있게 텍스트랑 그림으로 풀어줘서 그런지 책은 제법 흥미로웠다. 물론 이해하지는 못하고 한참 성분명 분자명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것까지...하는 사람도 있을수는 있지만 말이다… 식품공학이나 화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두고두고 읽을만 보였다.

 

 어려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평생 앓고 있다. 학교도 들어간 , 동네 약국 약사 아줌마가 자기가 낫게 해준다고 엄마한테 엄청 확신에 차서 꼬시는 바람에 엄마는 거의 돈백을 약국에 꼴아박고 나는 생약인지 정체 불명의 갈색 과립(약간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 같은 제형)약을 일년 꼬박 먹었다. 먹지 말아야 것들의 목록도 길게 챙겨 줬는데, 거기엔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밀가루 등등... 성장기 필수 영양소 담긴 음식 거의 대부분이 있어서, 유치원에서 간식시간에 우유 담긴 컵을 무심히 내민 선생님 앞에서 우유 마시면 된대요 하고 울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른 중반 되어서 병원 종합검진 패키지에 딸린 알레르기 검사를 보니… 나는 가장 흔한 식품, 식물, 집먼지알레르기 등등 70여종 항원 어느 것에도 알레르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7 수많은 알레르기 가능성 있는 음식을 제한한 그저 가장 자라는 시절에 영양 부족으로 성장 지연만 시키고 ( 키는 그래서 157에서 자랐고…) 그렇게 헛짓거리로 남은 것이었다. 거의 일년 비슷한 식습관 (오트밀에 요거트랑 견과류 비벼먹고 단백질 음료에 시리얼바 처묵처묵 정도만 일반식사) 하면서 몸무게를 10킬로 줄이고 체지방 줄이고 근육량은 늘린 같은데, (자세한 다음 건강검진 인바디와 각종 검사로 건강 상태 확인 예정), 내내 건강하게 지내다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그대로 갔는데도 연말 환절기 되니 아토피성 피부염이 7 만에 올라와 버렸다. 수능 앞두고 2 전이었다. 결국 자가면역에 가까운 만성 질환들은 대부분 자체가 병의 시작이다. 부신 피질에서 뿜뿜하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반짝거리는 피부 보고 오늘이 왠지 올해 들어 가장 예쁜 같아… 이제 이럴 같아…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며칠 바로 얼굴과 목과 발목과 거의 전신에 염증성 피부염이 벌겋게 돋아나 나는 가려움과 감염 위험과 줄다리기하면서 보습하고, 약한 스테로이드도 발라보고, 그렇게 자신이랑 싸우는 날들이다…

 

 잡설이 길지만 결국 우리는 집어서 무슨 물질이 나쁘고, 무슨 음식은 어디에 좋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데, 모든 물질은 자체로는 중립에 가깝고 전반적인 환경과 적재적소에 정량이 갖춰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건강과 생명과 질환과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구나 하는 확인하는 독서였다. 그게 과학적인 지식과 전반적인 통찰에 의한 결론이면 좋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이건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이러고 아니 어디선 커피가 당뇨에 좋다더니 얘는 공복 커피가 혈당 올린다고 어쩌라고! 하면서 버럭질을 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커피는 그냥 맛있고 기분 좋자고 먹는 거지 건강 따질 거면 그냥 맹물을 열심히 드시라구요…

 

  레인의산소’와미토콘드리아’를 예전에 갖추고 이걸 수능 끝나면 볼까, 했는데 책에서도 거기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제법 인용되었다. 역시나 나중에 나가는 읽으니 저자 선생님께서도 책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셨다 하고 참고문헌에도 적혀 있어서 결국 알아서 필요한 읽고 그러다보면 책들끼리 줄줄이 이어지는 구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맨날 이제 최선생님 그만 봐야지...하면서도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유사한데 (문제는 물질 자체는 죄가 없다 암은 랜덤…) 그래도 보다보면 조금이라도 배우는 있고 재미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쟁여둔 커피 공부 책만 보고 진짜로 하산하겠습니다…


주요 아미노산을 한 바닥에 깔끔하게 정리한 그림… 이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도표와 분자구조식이 많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11-2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토피성 체질인데 고 3때 1년 내내 고생했고 만성이었던 중이염도 그때 최대로 심했거든요
제 인생의 앞길을 막은 건 이 두 가지였다고 생각해요 이것만 아니었다면 좀 더 잘 풀릴 수 있었을텐데요 ㅎㅎ
아토피는 가을부터 봄까지 계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보습제를 발라도 그때 뿐이고 스테로이드 연고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름이 덥고 땀은 나지만 아토피는 훨씬 덜 하더라고요.
저도 알러지 검사에서 음식에 대한 반응이 없었는데
그래도 우유, 달걀, 요거트 등 유제품이 확실히 안 좋아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먹어야 하는데
정말 고민입니다 ㅠㅠ
커피를 좋아해서 맹물을 죽어라고 안 마시기게 돼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2:5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고생 많으시군요. 정말이지 여름은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피부 상태가 썩 괜찮아요. 동남아시아 놀러가면 로션 안 발라도 안 꺼칠은 피부가 며칠 지속되서 진지하게 (피부염 때문에) 여기 살고 싶다...근데 여기서 뭐해먹고 사냐.. 그러고 포기한 기억도 있네요 ㅎㅎㅎ 커피는 맛있잖아요... 물에 콩가루 태운 거 녹인 주제에 왜 향기로워서 사람을 홀리냐... 물 마실 배 좀 남겨다오... ㅋㅋㅋ

hnine 2024-11-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재미없게 쓴 생물책은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가 아닐까요.
있던 흥미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데 치중하다보니 충분한 설명 없는 도표와 구조식이 더 어렵게만 만들고요.
이 책 흥미로운데요. 책표지 구조식에 산소 자리에 미원 상표 그려넣은 것도 재미있고요.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4:09   좋아요 0 | URL
이 책도 분자구조식? 구조도? 는 쫌 많은데 저는 열 권 넘게 본 저자라 그냥 익숙해진 대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ㅎㅎ전자책을 보다보니 표지 깨알 미원 마크는 미처 못 봤는데 덕분에 ㅎㅎㅎ 요즘 교과서는 올칼라에 저희(?라떼??) 때 보다는 낫게 나온다 싶지만 교육과정 자체가 딱 뭔가를 관통하는 방향성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전공인 사회도 사실 좀 그래요...) 짧은 공부로 얻은 느낌이었고 그건 거의 (의치한약수 더하기 명문대 거름망) 고시처럼 변질된 선발 목적의 입시교육의 한계겠지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1122 라우라 에스키벨.


이 책 읽기를 더 미룰 수 없게된 건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북플 마니아에 라우라 에스키벨이 떠 있어서였다. 아 이게 누군데... 나 왜 마니아… 보니까 가장 가까이 높다란 책장 위에 꽂혀 나 얇은데? 금방 볼 건데? 하고 내려다보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였다. 열두 달 마다 레시피 하나씩, 너네는 한 번도 안 먹어봤을 중남미 요리로다가, 그렇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였다. 식욕이랑 성욕이랑 버무리면 누구 하나라도 걸리지 않겠냐, 이런 치트키를 뿅뿅 써가지고 유쾌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었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건 이성애건 동성애건 범성애건 성애적 형태로 충족될 수도 있고, 아 난 에이섹슈얼, 그레이섹슈얼이라 그냥 로맨틱만 원해, 아니 다 됐고 난 얼큰한 국밥 한 그릇 뚝딱이면 그만이다, 거기에 알코올 추가요, 하고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밥 필요한 사람한테 자꾸 달라는 국밥은 안주고 배고픈데 주방에선 조리사님이 윙크만 오지게 보내거나, 밥은 됐고요 빨리 라면이나 한 사발 뚝딱하고 그냥 푸지게 더 안고 뒹굴고 싶은데요 하는 사람한테 만한전석을 차려준다고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 그렇게 엉뚱한 것만 허락하고 정말 원하는 걸 자꾸 안된다고 해서 내내 불행해질 뻔하다가 순간이나마, 혹은 늦게나마 원하던 걸 찾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엄마는 자기 몸종하라고 연애도 결혼도 못하게 해…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해… 그런데 왜 이새끼 저새끼 군인새끼들 밥까지 이 언니들이 다 해먹여야 해...짜장면 시켜 먹어 새끼들아…
어느 책에선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 옥시토신이었나 하여간에 행복해지는 호르몬이 듬뿍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행복해지려고 자꾸 우리를 먹이려 드시는 거였어… 효도하려면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를 자제하자… 가끔 먹고 맛있다고 엄지척해드리자… 나는 하도 잘 안 처먹어서 이렇게 불효자는 웁니다…

아무리 봐도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나마 덜 빻고 지적이고 다정하고 사람이 된 놈이다, 싶은 게 존 박사 밖에 없었는데, 티타는 몸과 마음이 이끄는대로, 존 하고는 그냥 사돈댁하기로 하고 처음 사랑인 페드로와 불을 태운다. 그의 나이 향년 39세. 나랑 동갑이군요. 사실 나이 제도가 바뀌어서 어쩌다보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39세를 보낸 기분이다. 구 한국나이 39세는 22년도였는데 만나이 39세는 아직도여서 이제 올해 12월 중순이나 되어야 드디어 앞자리가 바뀐다요… 나이랑 몸무게랑 페어링하는 시대가 오겠군요! 하여간에 20년 간 조카 키우느라 참아둔 사랑을 티타는 진짜 활활 태워버리고 만다. 누가 진짜 불장난 하랬어… 엄마 쟤 성냥 먹어…

그냥저냥 재밌게 읽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약력에서 작가가 ’백년의 고독‘ 영화화 준비 중인 소식 보고는 개봉 하긴 했냐? 언감생심이네… 중남미라고 적당히 묻어가면 되겠나… 그 정도는 아니예요… 리얼적 마술리즘 노리는 할배가 저기 중국에 옌롄커라고 있는데… 할매도 할배도 적당히 빻은 건 닮았지만 더 이상은 좀 오바에요… 하고서 나는 백년의 고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음식이 잔뜩 나오는데 하나도 모르는 음식이라 전혀 자극되지 않는 식욕… 이렇게 저렇게 허풍치며 섹스들 하는데 그냥 적당히 흐뭇한 광경일 뿐 딱히 야하지는 않았고요… 너무 매운맛만 좋아하는 어른이라 송구합니다….

+밑줄 긋기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곷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아! 얼마나 맞는 말인가! 티타는 그 누구보다도 그 말에 공감했다.
티타는 불행히도 자신의 성냥이 이미 축축해져서 곰팡이가 가득 슬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다시는 그 누구도 불을 지필 수 없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자신의 불씨를 일으켜줄 수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성냥에 불이 붙으려고 할 때마다 불이 가차 없이 꺼져버린다는 거였다.
존이 티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입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답니다.”
존은 양손으로 티타의 한쪽 손을 감싸며 간단히 덧붙였다.
“축축해진 성냥갑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124-126)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4-11-23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찾아보니 백년의 고독은 다음 달 첫 영상화 넷플릭스에서 나온대네... 아놔 넷플릭스 구독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처음 흔들려 봄...

공쟝쟝 2024-11-24 10:31   좋아요 1 | URL
아… 나 해지햇는데

반유행열반인 2024-11-24 14:18   좋아요 0 | URL
그냥 이참에 백년의 고독 소설 다시 읽는 것으로 퉁치죠 ㅋㅋㅋ이 플랫폼 아니면 넌 이 컨텐츠 못 접하지 메롱메롱 하는 게 너무 싫어서(반체제인사 반새끼) 구독 안 하고는 있는데 거기서만 볼 수 있는 백년의 고독, 살인자ㅇ난감, 도로헤도로 이런 건 좀 탐나더라구요…박찬욱 리틀드러머걸도 넷플릭스 독점인 줄 알았더니 비비씨 방영에 왓챠에 있는 걸 좀 전에 알고 어리둥절했지만 ㅋㅋㅋㅋ띵작인지 졸작인지 방영 후 눈치보고 최초 넷플 구독을 들어갈까 말까 고민해보기로(아마 안 할듯 ㅋㅋㅋ)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