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왜 얼굴에 혹할까
최훈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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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최훈.

 스스로 얼굴에 혹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책 제목에는 혹해서 읽어 보았다. 한때는 심리학 도서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은데 뭔가 유행 따라 뇌과학한테 많이 밀린 기분이다. 전공이랑 관련 있어서 사회심리학 스터디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리고 교육심리학은 정말 흥미가 없었다…) 이제는 심리학책도 막 엄청 재미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알기를 포기한 건 아닐텐데, 어렵고도 어려운 그 마음 심리학에서는 답을 못찾겠다, 그냥 어디에서도 못찾겠다, 싶은가 보다.

 아이와 떡볶이를 해 먹다 며칠 전 역시 떡볶이 먹으면서 같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가…둘다 한참 기억해내지 못하다 아이가 계란!! 계란후라이가 맞다고 했는데도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간단한 걸 둘다 기억 못했을리 없다고 한참 부인하다 결국에는 하나하나 되살린 기억이 맞아 들어가 계란이 맞는 걸로..결론을 내렸었다. 사실 그날도 어묵도 안 넣고 허전하니 계란을 같이 부쳐줘? 하다가 말았었는데 계란 하나 귀찮다고 안 부쳐준게 마음에 걸렸는지 나의 억압기제(?)는 며칠 전에 계란을 같이 준 바 없다고 ㅋㅋㅋㅋ기억해내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후보 음식으로 내가 거론한 것이 에그타르트? ㅋㅋㅋㅋ 사람의 마음이란.

 사람의 얼굴을 크게 신경 안 쓴다면서도 사실 나는 남의 얼굴을 살피며 자꾸만 성격을 읽으려 든다. 그런 추측들이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만든 선입관이 또 쉬이 바뀌지 않고 나는 계속 확증편향적 사고만 하고 말지… 그렇다고 남들이 호감 가지고 잘생겼다고 하는 얼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체 왜 잘생겼다는 거야…하면서 얼굴값 한다…하고 반감을 가질 때가 많지…

 그렇게 얼굴 관심 없다면서도 결국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을 펼쳤는데 역시나 크게 흥미로운 얘기는 없었다. 심리학 일반에서 언급되는 이런 저런 들어본 효과들이랑 관련 분야 실험 연구 등등을 얼굴이라는 주제로 묶은 건 애쓴 부분 같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었고 얻은 것도 별로 없었다… 왜 자꾸 없대… 읽긴 읽었는데 할말이 없나 보다…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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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17 2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심리학 -> 뇌과학 거쳤고 지금은 사회학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ㅋㅋㅋ 이제 사람의 문제를 개인 심리의 층위에서 파악하는 것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알아보는게 더 유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둘 다 필요하겠지만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7 23:29   좋아요 1 | URL
은오님 배우신 분!!! ㅋㅋㅋ저의 독서는 십대 후반 이십대까지 사회학과 그 친구들 위주로 시작했지만…이제는 소설과 만화로 수렴하고 있네요. ㅎㅎㅎ
 
드립백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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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온라인으로 원두커피를 구입한 곳은 알라딘이다. 처음 온라인으로 (스웨이드의 커밍업과 오아시스의 모닝글로리) 시디를 구매한 음반 가게는 향뮤직이라는 사이트였고,처음 온라인으로 책을 산 곳은 리브로라는, 지금은 사업을 접은 서점이다. 예스24를 거쳐 알라딘에는 제법 늦게 가입했는데 처음 산 건 책이 아니라 화장품이었다. 화장품을 저렴하게 팔고 포인트도 사은품도 많이 주고 그랬었다. 온라인 상거래는 점원 앞에서도 낯을 가려 어쩔 줄 모르는 내게 혁명이었다. 인터넷 수퍼 없었으면 굶어죽었을 것이다. 물론 온라인 서점 없었으면 집에는 지금의 절반이 안 되는 책만 있겠지… 나는 그 책값 아껴 뭐를 했을까…

 세상 귀찮은 드립커피 왜 먹음??? 하던 내가 작년 말부터는 거의 매일 드립커피만 마셨다. 시험 가까운 동안 캡슐로 에스프레소만 내려서 원샷, 이렇게 시간 아까워하던 내가 그동안 못하던 시간 낭비를 마냥 하고 싶어서 그랬다. 그런데 알라딘에서는 원두 산 지 오래… 간만에 에티오피아 아리차 드립백세트를 산 이유는…커피스탬프 8개 남은 게 아까워서… 자, 7000원 드립백을 3000원 쿠폰 주고 4000원에 사서 스탬프 2개를 받으면 할인쿠폰 4000원으로 바꿀 수 있어…오예! 
 이번 드립백은 뉴지코리아라는 곳에서 만들었다는데 미국 드립백을 주로 취급한다고 홈페이지에 써 있다. 거기서 직접 구매할 만한 특색 상품은 없었다. 아, 커피보다는 베트남 커피 카페 쓰어다 만드는 데 쓰는 연유 같은 게 잘 팔리고 있음…
 오늘 아침 새 드립백 내려보니… 여러모로 불만이었다. 증량했다는 원두량은 이전에 다른 품종 드립백보다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물을 많이 붓지 않았다. 다 내리고 불은 커피찌꺼기도 별로 안 묵직…그리고 이건 필터 문제인지 갈린 정도 문제인지 물이 너무 안 빠졌다. 한 잔 내리는데 오래오래 걸렸다. 커피 맛은 뭐 에티오피아 원두는 훌륭하고 깔끔하니까. 그래도 이제는 진짜 안녕.

 알라딘 콜드브루 외주업체(?)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연두커피는 할인 안 하면 원래 먹던 원두들이나 비슷한 가격이지만 매달 이달의 커피, 하면서 거의 절반 가격으로 좋은 원두를 깎아 주고 있었다. 그래서 말라위, 코스타리카, 인도네시아 원두를 12월 말에 구입했다. 제조일자가 받은 날 전날이라 감동… 향이 살아있음… 말라위 커피는 흔하지 않던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무난하면서도 또 새로웠다. 코스타리카는 알라딘에서도 몇 번 사 먹었던 풍요로운 해안…의 산뜻한 맛이고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얘들 비하면 씁쓸한 편인데도 풍미가 좋아서 두 달 내내 돌려가며 신나게 마셨다. 이 달은 엘살바도르, 케냐, 에티오피아, 온두라스를 할인 중이고… 저는 갑니다… 저에게 커피의 맛을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그런데 커피의 가격도 알아버렸네요… 내맘대로 리뷰 쓰는 게 낙이었는데 (그러니까 커피를 사면 커피 리뷰 작성권을 얻는), 책 사면 커피 같이 오는 것도 편하긴 했는데, 마지막 커피 리뷰를 끝으로… 가끔 독후감이나 얌전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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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3-02-17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커피는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연두커피도 함 가봐야겠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2-17 23:25   좋아요 1 | URL
옮긴 곳도 괜찮으시면 나중에 알려주세요 ㅎㅎㅎㅎ 이제 호구는 그만하리…ㅋㅋㅋㅋㅋ

Yeagene 2023-02-17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알라딘 드립백 시켜보았는데...그저그랬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7 23:27   좋아요 1 | URL
원두는 초반에 블렌딩들 말고는 싱글원두들 나쁘지는 않았는데 가격이.,.중간에 오르기도 하고 그런 거 치고도 사악해요…포장지는 늘 예뻐요 ㅋㅋㅋㅋ예레기될 예쁜 것들

페넬로페 2023-02-17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두커피 검색해봐야겠어요~~
요즘은 동네카페에도 커피원두를 파는데가 많더라고요^^

반유행열반인 2023-02-17 23:28   좋아요 1 | URL
프랜차이즈 말고도 아는 카페가 있어야 하는데 동네 나들이를 너무 안 해서 원두 파는 좋은 가게를 못 찾았어요 ㅎㅎㅎ

건수하 2023-02-18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드립백 요즘 변했나요... 아리차 #4 좀 감흥이 없긴 했는데....;;;

반유행열반인 2023-02-19 12:45   좋아요 0 | URL
드립백 제조가 외주라 꽤 여러 회사들이더라구요 ㅎㅎㅎ이 커피는 맛은 상큼깔끔 좋았어요 ㅎㅎㅎ포장지도 예쁘고… 다만 퍼뜩 비싼 걸 먹고 있구나 싶어져서 ㅋㅋㅋ
 
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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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이하진.

예전에 다음에 ‘카산드라’ 연재하던 작가님 만화를 재미있게 봤다. 연재가 드문드문 이어지다 중단된 이후 잊고 있었는데, 내가 잊고 있는 동안 완결도 되고 책도 나오고 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작가님의 첫 책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 웹툰 연재분을 모은 이 책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가정 불화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어둡다. 엘리자베스 워첼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를 비틀어 오히려 불행한 가정이야말로 다들 고만고만 비슷비슷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말에 공감했다. 사실 도박에 빠진 시동생을, 그리고 그 시동생을 두둔하느라 다른 자식들까지 망하게 만든 시어머니를 가족이라 칭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민법 상에도 친족, 인척하니까… 혈연이나 혼인으로 인한 관계가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으로 질환까지 오게 만드는 서사는 슬프고 괴로웠다. 정신질환은 전염병이다. 내가 공부하는 수능 생명과학에서는 비감염성 질환, 이러고 땡 탈락, 하겠지만 과학적 의미로는 감염되는 게 아니라 하겠지만 심리적, 정신적 고충은 주변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옮아간다. 중독자의 가족은 공동의존, 우울증, 온갖 것이 올 수 있다. 원가정 혈연 지키려다가 새로 이룬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

담담하게 겪은 일들 복기하듯 그린 형태라, 그리고 정작 그리고 싶은 만화도 못 그리며 고통 받는 중에 혹은 그 이후에 짬짬이 그렸을 것이라 이전에 보던 연재 만화에 비하면 구성도 연출도 그림도 엉성한 느낌이 있다. 책 구성도 웹툰을 책으로 낼 때 재편집해서 책답게 하는 과정을 대부분 거치는데 거의 컷 그대로 옮겨져서 내용에 비해 쪽수도 어마어마하다. 거의 오백쪽… 그런데 금방 읽음… 남의 괴로운 가정 서사 앞에서도 구성 타령 하는 나새끼 개새끼지만 그래도 작가의 역량 크게 발휘하면 어떤 퀄리티 나오는지 알고 있는 터라 책 완성도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주변의 중독 때문에 고통 받은 경험보다는 내 스스로가 중독적 성향 때문에 내 인생도 곁의 사람들 인생도 조질까 걱정하며 단도리 하고 살아온 터라 그냥 무서운 디스토피아 이야기 하나 더 봤다 싶다… 같이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고 자기 삶 건사하기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 짠하기도 하고 굳건해서 닮고 싶기도 했다. 다만 자기 이름이나 그간 커리어도 다 묻히고 이야기 안에서는 내내 누군가의 부인, 엄마, 며느리, 형수, 자녀, (그나마 적극적인 지위가 내담자! 정신과 진료 받는 환자!) 이렇게 위치 지어지는 묘사 뿐이어서 그게 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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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2-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내용이군요..이런 책은 읽기가 참 힘들어요 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2-15 23:13   좋아요 2 | URL
혈연이나 배우자나 배우자의 가족이 만드는 지옥에 관한 서사는 진짜 끝도 없네요. 어딘가는 오손도손 잘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그건 이야기거리가 안 되겠지요ㅎㅎㅎ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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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1 박상영.

요즘 애들-김남준
보름 이후의 사랑-고찬호
우리가 되는 순간-유한영과 황은채
믿음에 대하여-임철우

네 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집. 작품 시작하는 각각마다 제목과 이름이 써 있다. 소설의 주인물 이름을 저렇게 해놓으니 꼭 여러 소설가 작품 묶은 것처럼 착각이 들어서 웃겼다. 심지어 임철우는 진짜 소설가 이름이잖아…

이전에 읽은 김금희 소설이 연작이었고, 이 소설에도 방송국, 잡지사,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나와서 처음 읽을 땐 둘이 겹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십 대까지만 해도 내가 앞으로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살 줄만 알았다. 지망도 언론학부, 광고홍보학과, 신문방송학과 같은 곳이었다. 수시로 1차 붙고 안 간 0대는 언론학부, 정시로 붙은 0대도 신문방송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이었지. 그렇지만 대학 간판만 보고 서열 제일 높다는 사범대에 갔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중에 언론이나 광고에 대해 질색하게 된 걸 생각하면, 그리고 그 분야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과 협업이 중요한지, 수많은 사람들과 상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리로 안 빠지길 다행이지 싶다.
사실 나는 언제 어디를 갔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궁리했을 것이다. 스무살 이후 거처를 옮긴 게 최소 열한 번인 걸 돌아보면.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집의 임철우랑 가장 비슷했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 임철우는 사진을 찍는 커리어로 잘 나가다가가 연인의 죽음과 그에 관한 거짓을 알게 되고는 일을 집어치우고,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폭망하고,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한 번은 그만뒀잖아? 나는 아주 긴 그만두기를 하는 중이다. 그 수단이 수능이 될 줄은 몰랐네...

김남준과 황은채가 인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슬펐다. 내가 신규이던 시절에는 실컷 부려먹더라도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같이 힘들게 일하던 어른들이 있어서 그나마 견딜만 했던 것 같다. 직장이 힘들어진 데에는 그렇게 새로 온 사람들 적응을 돕고 처음 일하는 젊은이들 많이 가르쳐줘야 할 어른들이 사라지고, 자꾸만 자리를 비우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오히려 자기가 할 일을 물정 모르는 새 사람에게 떠넘기고, 잘 알면서도 물어오는 것들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회피하고, 그러면서 잘 못한다고 혼내고 호통치고, 그런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어서 였다. 내가 그걸 겪는 일도, 그런 일을 겪는 어린 사람들을 보는 일도 고통이었다. 아직 내 위치에서 누굴 돕거나 가르칠 짬도 안 되고, 내가 자라서 저런 거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 자신도 점점 없어지고, 결국 환멸만이 남았다. 가까운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망해도 돌아갈 곳이 남았으니 최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제발 돌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내 삶을 바꾸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걸요.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이루고 싶다, 보다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러다 정말 돌아가게 되면 진짜 큰일 났다ㅋㅋㅋ 내 미래의 가능형에 관해 너무 비관을 하고 욕을 많이 해놨어ㅋㅋㅋㅋㅋ

예전 어른들이 육이오 때 말야- 아이엠에프 때 말야- 하듯 코로나 유행 시기를 회자하고, 이 병을 겪지 않은 아이들이 뭐래 딱딱- 하는 그런 날이 오면,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가물가물해지면 나는 이 소설을 다시 펼칠 것이다. 몇십명이 걸리면 엄청난 공포이고 혐오이고 배척의 대상이 되던 병이 몇만 몇십만이 되면 그냥 다 그런 것, 원래 그런 것, 그랬던 날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중 열에 여덟이 게이가 된다면 아마 둘 남은 이성애자들을 핍박하겠지.(열에 하나 했다가 고쳤다. 하나 남으면 이성애 어렵겠다 ㅋㅋㅋㅋㅋ) 시대가 어느 시절인데 아직도 유성생식을 하고 새끼를 까질러서 지구를 파먹는데 일조하냐. 셋 넷이 되려고 하는 저들은 야만이다. 대상만 바꾸었지 사람들은 끝없이 선을 긋고 부려먹고 욕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빗물에 첨벙첨벙 빠져가며 걷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고 모이고 자리 잡고 쓸려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지탱하는 세상. 믿음이 없는 내가 거기 얹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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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2-12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성애자 깨알 챙겨주셨네욬ㅋㅋㅋ 마지막 문장 너무 좋다. 어쩐지 믿음이 느껴져서, 라고 하면 오독이거나 억지일까요? ㅎㅎ 긴 그만두기를 응원할게요.

반유행열반인 2023-02-12 09:20   좋아요 3 | URL
다정한 응원 감사합니다 유수님 ㅎㅎㅎ자꾸 없다 하다보니 사실 믿고 싶다, 믿음을 갖고 싶다, 를 다르게 말하고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ㅎㅎㅎ나는 차가 없어…나는 여자친구가 없어…이런 거랑 비슷한…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2-13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하긴 한데 이전의 박상영 작가 작품 분위기랑 다르다고 해서 망설이는 중입니다.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긴 했네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3 19:01   좋아요 1 | URL
소재 탓인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랑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살짝 비벼놓은 느낌+퀴어 첨가+적 느낌입니다 ㅎㅎㅎ 젊은 노동자들 이야기랑 세대론이랑 지금 시대 모습 반영하려고 애쓴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물감 2023-02-14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 말에 눈물이 핑 도네요. 제 얘기 같아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2-14 16:22   좋아요 1 | URL
물감님 울지 마세요 ㅠㅠ 흘러내리는 확신 없는 사람들이 복수형이어도 세상 잘 돌아가는 거 보면 조금 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님!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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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이미상.

Suede-Trash
https://m.youtube.com/watch?v=-PdKGDMhau4

골목에 버려진 진열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구 위에, 혹은 안에, 우리는 몸을 붙여 앉았다. 용도 모를 그 네모의 위쪽이 막혀 있어서 집이나 방 같았다. 남자아이는 열일곱 살의 나에게 입을 맞추고 내 웃옷 속으로 찬 손을 넣고 파르르 떨었다. 학원이 끝난 시간인지 어디선가 나와 우루루 지나가던 아이들이 흘깃 시선을 던지다 금세 멀어졌다. 아는 얼굴이 있던 것 같아 부끄러운 건 잠시였다. 피씨 통신에서 만난 아이들은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고 이름과 아이디로만 아는 상대방이 쉽게 좋아지기도 했다. 글자로 쉼 없이 나와 수다를 떨어주는 상대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귀자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기 전 그 가을의 두 달 남짓이었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남자아이는 독서실 앞 공중전화로 나를 불렀고, 학교 마치고 저녁 나절 열람실에 잠시 앉았던 나는 의자에 가방만 걸어두고 반갑게 뛰쳐나갔다.
서로의 집에는 가 본 적이 없다. 주로 처음 만난 오락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펌프를 하거나 동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했다. 단둘이 있고 싶으면 골목길을 마냥 걷거나 통일공원 벤치나 기념비석 둘레에서 입을 맞췄다.
아이들이 함께 할 장소는 거리 밖에 없었다. 공간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이들은 공간을 가질 돈도 법도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헤어짐이 아쉽던 젊은 아이들이 막상 시간과 체력을 팔아 공유할 공간을 마련하고 나면 몸을 맞대고 눕지 않게 된다. 노동은 서로를 안을 힘을 앗아간다. 보증금이든 매매 금액이든 그렇게나 큰돈을 (빌리든 모으든) 끌어 모으고 나면 아이들은 늙는다. 새로 생긴 아이들이 늙은 등에 매달린다.

탈선의 온상이라는 룸카페가 뉴스에 나왔으니 청소년 금지 구역이 또 하나 늘겠다. 소설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 속에서 귀띔해 준 차고지 공터에서 기름 묻고 잔돌이 등에 달라붙은 채 뒹굴던 아이들은 폭발한 탱크로리 때문에 불에 타 죽는다. 혹은 추운 날 열린 옥상을 찾아 현관이 열린 남의 아파트 단지를 쏘다닌다. 부모들이 성지순례를 떠나고 집을 비우길 기다린다. 전기 형식이 되려다 회고담 형식이 되고만 이 소설 속에서 카트린엠을 읽어내고 항의하는 독자도 놀라웠는데 그 항의 메일을 소설 말미에 그대로 가져다 붙여 답변을 대신한 소설가의 패기도 놀라웠다.

대학 시절 생긴 지 수십 년 되었다는 노래패 동아리에 가입했다. 민주화 이후의 세상에서 조금 더 불분명해진 싸움의 대상이 무언지 골몰하며 너냐, 너였냐,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국가주의, 가부장제, 학벌사회 다 쑤시고 다니다 보니 4년이 금세 지났다. 홈커밍데이 때 부모뻘 혹은 고모삼촌뻘인 선배들을 만났다. 매일 부르던 민중가요 작곡, 작사가가 눈앞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보는 일이 신기했고, 항쟁이 끝난 후 학원 원장, 대학교수, 조선일보 기자(그땐 어떻게 거길 가셔서 일하세요 싶었지만…) 혹은 제적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인이 된 과거 운동권 사람들을 직접 보는 것도 신기했다. 그 사람들이 뭔가 서로 울분과 불만에 차서 으르렁대는 사연이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과 별로 상관 없겠지만, 운동권 후일담 내지 블랙코미디 같은 ‘하긴’을 처음 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두 번째 읽으니 처음만큼 그렇게 충격일 이야기는 아니네, 하면서도 여전히 잘 쓴 소설로 담담하게 읽었다. 보미나래의 이야기는 뒤늦게 예언서처럼 읽히기도 했다.(그러니까 의사 면허 취소되면 나랑 같이 수능 보자…늙은 나도 하는데 너도 할 수 이써ㅋㅋㅋㅋㅋㅋ) 연작처럼 이어지는 ‘그친구’에서 김의 말 뿐 아니라 규의 말까지 들을 수 있어서, 거기에서 추방을 추방하고 규가 떠나는 대신 둘이 끝까지 남아 서사의 지배자가 된 결말이 더 좋았다. 순수하고 신성하다고 스스로 우기는 것들을, 스스로 위대해진 것들을 까발리고 우습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는 좋다.

82년생 김지영이나 현남오빠에게가 화제가 되고 잘 팔릴 때 솔직히 창피했다. 그것이 촉발한 행동과 연대와 인식 전환은 가치가 있겠지만, 나의, 우리의, 사회 절반의 고충을 대표하겠다고 나온 서사와 문장이 후져서 싫었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나 ’이중 작가 초롱‘을 읽으면서 내심 이게 시작이었다면, 싶었지만 선후관계가 틀렸다. 어쨌거나 이 소설들은 언제 쓰였든 여러 여성 서사 소설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휩쓸고 지지고 볶고 조금 시들해지고 그런 뒤에 나왔으니 거기에 빚진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람 욕심 끝이 없고 후진 건 후지다고 해야 해요…

책에 실린 소설들 중 비교적 나중에 발표된 작품들로 갈수록 더 나아지는 느낌이어서 이미상의 다음 나올 소설들이 기대되었다. 책 뒤편의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현실 독자든 상상 속 독자든 누군가 뭐라고 했고 그게 수긍이 간대도)와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 꽤 좋았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여러 소설에서 반복된다. 수진이 신발 상자 놓고 베란다에서 몰래 소설 쓰는 이야기가 특히 애틋했고 초롱 조롱 하는 건 비슷한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아니 저기 사람들 생각보다 소설가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판 안에서나 난리지…싶었다. 여기 소설들이 좋게 읽힐수록 소설이 너무 무섭고 징그럽고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있지 않은데도 쓰기 싫어질 만큼 기를 꺾는 잘 쓴 소설인가… 요즘은 그냥 많이 많이 읽고 싶다. 그렇지만 그날 공부 여덟 아홉 시간 겨우 채우고 자기 전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단편소설 하나 읽을까 말까 처지이고 지금은 그래야 하는 게 맞는 처지… 자꾸자꾸 읽고만 싶은 걸 참으며 그럼 난 뭘 위해 사나, 싶다. 매일 집에만 박혀 있으니 살이 너무 쪄서 이제부턴 일부러 나가서 걷기로 하자, 하면서 나는 왜 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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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5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3-02-05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르겠습니다. 근데 열반님 하시는 얘기가 콕콕 들어오는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5 17:41   좋아요 2 | URL
저는 패기있는 작가들을 사랑합니다 ㅎㅎㅎ 골드문트님이 추천하시는 소설들 늘 제 위시리스트이거나 위시리스트가 되거나 하는데 ㅎㅎㅎ제 말 중에는 콕콕할 게 뭐 있나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저에게는, 우리에게는, 긴긴밤 함께 할 책이 든든 가득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02-05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의 체험(?)기랑 suede의 trash 가사랑 완전 매치가 되네요 ㅋ

왜사냐 하건 웃지요? ㅋ

다시 공부시작하셨나보네요ㅜㅜ

걸으시면서 책을 읽으시면 두가지가 해결될수 있을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5 18:49   좋아요 2 | URL
제 십대가 좀 트래시(?)했나요!ㅋㅋㅋㅋ지금도 여전합니다… 저 바깥 돌아다니면서는 휴대전화도 잘 못 보는데 새파랑님 읽으며 걷기 능력 보유자이신가요?!?!

새파랑 2023-02-05 20:50   좋아요 1 | URL
그건..

불가능하죠 ㅋ 한번 해보고는 싶은데 미친 x 소리 들을까봐 못하겠습니다 ㅋ

반유행열반인 2023-02-05 22:01   좋아요 1 | URL
저 걸으면서 책 읽는 사람 본 적 있는데 미친 x 소리 여부는 아무래도 얼굴이 결정하지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못된 외모 지상주의네요.

라로 2023-02-0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음악 들으니까 곧 출간 될 브렉 앤더슨 회고록 생각나요. 펀딩 하고 싶었으나 그거 하면 책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배송하는 거 한 려고 했었는데,, 암튼 전자책으로 나오겠죠?
그건 그렇고 저도 이하동문이에요...

반유행열반인 2023-02-06 16:01   좋아요 0 | URL
아마존엔 진작 영어판(?)있더라고요. 저도 펀딩 잠시 망설이다 가난한 유년 이런 거 위주로 우리가 아는 브렛 되기 전 이야기 위주라고 크게 흥미있는 내용 없다고 (아마존 외쿡인들 리뷰에서?) 그래서 그냥 접었어요. 제목만 봐도 뭔가 암담함 ㅋㅋㅋ 뭐에 동문하셨어요 ㅋㅋㅋ여기에는 나 예쁘다 이런 말 없는데요 ㅋㅋㅋㅋ

Yeagene 2023-02-08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과거 얘기 들으면 가끔 허걱 합니다.이런 얘기까지 하셔도 되나 싶어서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08 18:03   좋아요 1 | URL
그냥 있었던 일인데요. ㅎㅎㅎ 막 저한테는 실제로는 없는 언니가 아무말이나 막 하는 저를 이노무 지지배 주책이야 이러고 막 때찌하면서 걱정해주는 느낌이네요 ㅋㅋㅋㅋㅋㅋ

2023-03-0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9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