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소니픽쳐스가 블루레이 타이틀을 런칭함에 따라 국내에도 차세대 DVD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이에 따라 한 시대를 풍미한 DVD가 서서히 황혼기를 맞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DVD가 원숙기에 접어들면서 놀라운 완성도를 갖춘 많은 타이틀들이 여전히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에 작품성과 화제성, 화질과 음질, 스페셜 피처 구성과 패키징에 이르는 주요 조건을 산정해 올 상반기 최고의 DVD 10편을 꼽았다. 당신의 베스트는 과연 무엇인가? (출시일: 2006.1.1~7.31, 순서: 출시일 순)

판타스틱 4 DE (Fantastic Four) / 폭스
<판타스틱 4>는 거창한 제목 그대로 <슈퍼맨>부터 <배트맨>, <엑스맨>, <스파이더맨>, <헐크>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스크린을 점령해온 아메리칸 슈퍼 히어로물의 결정판이다. 마블 코믹스에서 뛰쳐나온 네 명의 초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평범한 사람인 양 어수룩하게 살아가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떳떳하게 TV 인터뷰에 응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유쾌하고 호탕한 모습을 보여준다. 1950년대 원작자 스탠 리는 “슈퍼 히어로라고 팀을 이루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라는 제안을 받고 <판타스틱 4>를 구상, 주인공들에게 몸을 자유자재로 늘일 수 있는 탄성이나 불꽃을 뿜는 능력, 바위처럼 단단한 피부 등의 초능력을 고루 배분해주었다. 리드와 그 동료들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혼자 활동하는 영웅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한다. 괴력을 가진 벤이 추락하려는 자동차를 붙잡고 있는 동안 리드는 다리와 강물 중간 즈음까지 손을 뻗어 사람들을 끌어올리고, 수는 방어막으로 불길을 막아주는 식이다. 타이틀의 화질과 음질은 그야말로 환상적. 입체감마저 느껴지는 발색과 계조, 극히 우수한 선예도는 HD 영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며, DTS 사운드의 해상도와 공간감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DE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 워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오직 팀 버튼만이 창조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판타지다. 이미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를 통해 작가 로알드 달과 인연을 맺은 바 있는 팀 버튼은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을 통해 환상의 세계와 그 원천이 꿈처럼 녹아드는, 기묘한 공간을 스크린에 옮겼다. 달콤한 폭포와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민트 풀밭으로 가득한 윌리 웡카의 공장에서 초콜릿 강물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푸줏간집 뚱보 소년 아우구스투스와 버릇없고 이기적인 재벌가의 소녀 버루카 등 네 명의 아이와 그 부모들은 극단적으로 밉살스럽고, 벌 받아 마땅하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들이 하나씩 처벌받을 때마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움파룸파들의 뮤지컬 장면은 그 야릇한 쾌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결코 잔인하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이것이 탐욕과 위선을 꼬집어온 팀 버튼의 블랙 유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화려한 색감을 그대로 구현해낸 영상, 경쾌하고 공간감 가득한 사운드, 위트 넘치는 서플먼트 등 DVD의 삼박자 역시 고루 갖추고 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 워너
<해리 포터> 시리즈는 현재 진형형 판타지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의미가 깊다. 즉, 1960~70년대 히피 세대의 고전이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지난해 대단원의 막을 내린 SF의 총아 <스타 워즈> 시리즈와 달리 동시대 독자, 관객들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연작의 네 번째 장. 시리즈의 이전 책들보다 훨씬 두꺼워진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영화로 옮기기 위해 마이크 뉴웰 감독은 과감한 생략법을 택했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도니 브래스코> 등을 감독한 드라마의 대가답게 뉴웰은 볼드모트와의 대결과 무도회를 큰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퀴디치 월드컵 장면을 축소하는 대신 극적인 감정의 기복을 해리에게 선사했다. 순수하고 고분고분했던 아이에서 반항과 분노의 성장기를 거쳐 생애 처음 겪는 사춘기 시절 이성을 향한 애틋한 감정에 이르기까지, 해리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비롯한 배우들의 빠른 성장만큼 영화도 점점 원숙함을 더해간다. 이미 이전 세 편에서 검증된 DVD의 탁월한 퀄러티는 이번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킹콩 SE (King Kong) / 유니버설
현재 <괴물>의 봉준호가 그러하듯 피터 잭슨은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의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판이하게 다른 그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스타일과 그 눈부신 성취는 바야흐로 B급 영화의 발칙한 정서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의 현현이다. 9살의 나이에 <킹콩>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피터 잭슨은 그로부터 35년 뒤, 2억700만 달러가 투입한 3시간짜리 대작 <킹콩>을 완성했다. 애초 피터 잭슨이 <킹콩>을 리메이크한다고 공언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다분히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피터 잭슨이 누구인가. 영화화가 불가능하다던 <반지의 제왕>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설로 이끈 그가 아닌가. 피터 잭슨은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대형 고릴라 이야기를 다양한 액션과 애틋한 드라마가 결합된 감동 스토리로 부활시켰다. 절정에 이른 웨타 스튜디오의 특수효과 기술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 빛나는 이유는 킹콩이 거대하고 잔인한 야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족 최후의 존재로서 감당해야 했던 고독, 그래서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머잖아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확장판이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이 두 장짜리 스페셜 에디션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CE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 The Wardrobe) / 디즈니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고전 판타지 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됐던 <반지의 제왕>이 엄청난 성공을 거둠에 따라 마침내 <나니아 연대기>도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로 부활했다. 처음으로 영화화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연대기 가운데 시점상 가장 먼저 집필된 작품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앞서 <슈렉>을 연출했던 감독 앤드류 애덤스는 원작의 상상력을 충실히 스크린에 옮겼으며, 사자 아슬란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리암 니슨이 영화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기독교 변증학자로 유명한 루이스의 원작은 모두 7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5개 작품이 앞으로 5년 동안 해마다 한 편씩 영화화될 예정. <반지의 제왕>에 비해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나니아 연대기>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이은 또 하나의 ‘Must-See’ 가족 판타지가 될 것이다. 대작 타이틀답게 화질과 음질은 빼어나며, 원작 이해에 도움을 주는 다채로운 스페셜 피처에도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유령신부 (Corpse Bride) / 워너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팀 버튼의 전진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유령신부>는 팀 버튼이 <크리스마스 악몽> 이후 12년 만에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전작에서 제작과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했던 팀 버튼은 이번엔 직접 감독을 맡아 한 층 폭이 넓어진 판타지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찍이 <비틀쥬스>와 <가위손>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팀 버튼은 <유령신부>를 통해 다시 한 번 죽음의 의미를 반문한다. 물론 이와 대구를 이루는 것은 탐욕스러운 자들이 득실거리는 암울한 현실. 영화 속 지상과 지하 세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전자는 주로 탈색된 블루 톤, 또는 잿빛의 회색 톤으로 제시되며 당장 유령이라도 나올 듯 으스스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지하 세계는 총천연색의 물결이라 해도 좋을 만큼 화려하고 다채로운 곳으로 상정된다. 이런 팀 버튼의 독특한 발상은 그가 호러 영화의 포스트모던한 사유자임을 방증하는 뚜렷한 예에 다름 아니다. 깊이 있는 화질, 6.1채널의 충만한 사운드와 더불어 인형 제작 및 촬영과정을 담은 두 개의 스페셜 피처에서는 그 지극한 노고와 정성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왕의 남자 LE (King And The Clown) / 아트서비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봄까지 <태풍>, <청연>, <야수>, <무영검> 등 상당한 제작비와 스타급 배우들이 투입된 대작들이 잇따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한국영화를 지탱한 것은 바로 <왕의 남자>였다. 특히 스크린 쿼터 축소 결정으로 인해 한국영화계 전반이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왕의 남자>가 보여준 조용한 약진은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꽃에 다름 아니었다.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흥행을 거둔 적이 없는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 <황산벌>에 이어 <왕의 남자>로 기존의 사관을 뒤집어보는 낯선 시도를 펼쳤다. <황산벌>이 왕과 장군의 관점이 아닌 평민의 시각으로 역사를 새로 썼다면, <왕의 남자>는 왕과 광대를 대비하며 왕의 존재론을 재고찰했다. 그리고 각각 연산군, 장생, 공길, 육갑으로 분한 정진영, 감우성, 이준기, 유해진의 인상적인 연기는 이 영화가 1,230만 관객을 감동시키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왕의 남자> 한정판은 그런 의미에 정확히 부합하는 타이틀이다. 영화의 아름다운 색감을 그대로 살려낸 영상, 이병우의 탁월한 음악을 효과적으로 재현한 DTS 사운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으며, 3장의 디스크에 풍성하게 담긴 서플먼트는 <왕의 남자>라는 작품을 다시금 곱씹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OST와 더불어 양장 케이스, 4단 디지팩, 화보집, 엽서, 탁상용 액자 등 화려한 패키지 구성은 그 소장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파이널 판타지 7 (Final Fantasy VII: Advent Children) / 소니픽쳐스
게임이 엔터테인먼트의 경지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된 현재, <파이널 판타지>는 그 바이블 가운데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상. 일본 스퀘어 사가 개발한 이 게임은 1987년 12월 18일 처음 공개된 이래 지금까지도 꾸준히 새롭게 제작되고 있는 대표적인 RPG다. 정교한 그래픽과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매 작품마다 커다란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는 현재 12탄까지 출시되었으며, PS3와 함께 <파이널 판타지 13>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파이널 판타지 7>는 기본적으로 스퀘어 에닉스가 <파이널 판타지> 마니아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팬서비스다. 이것이 애초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아닌 게임 감독이 만든 게임 부가 영상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7>은 적어도 CGI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작품이 아니다. 게임 그래픽을 뛰어넘는 고차원의 3D 영상, 여기에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은 그야말로 무한한 시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흥미로운 내용의 스페셜 피처는 타이틀의 가치를 더해준다.

언더월드2: 에볼루션 (Underworld: Evolution) / KD미디어
<블레이드> 시리즈에 이은 또 하나의 매력적인 뱀파이어 액션물. <고질라>, <맨 인 블랙>, <인디펜던스 데이> 등의 미술 작업을 담당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감독 렌 와이즈먼은 타인의 피를 빨아들임으로써 살아가고 타인을 또 다른 뱀파이어로 전염시킬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명했다. 그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두 비극적인 피조물의 대립이라는 설정을 유사성과 배타성이 함께 내재된 애증으로 형상화했으며, 뱀파이어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분위기에 하이테크 액션을 조화시켜 독특한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케이트 베킨세일의 놀라운 연기 변신은 이 모든 요소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폭력과 호러, SFX가 황금비율로 혼합된 <언더월드>는 이 속편에서 더욱 매혹적인 액션영화로 거듭났다. 전편의 5배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반영하듯 영화의 비주얼은 비약적으로 화려해졌고, 액션의 면면 역시 한층 강력해졌다. 타이틀의 AV 퀄러티 면에서도 레퍼런스로 명성이 자자했던 전편의 흐름을 이어감은 당연한 사실이다.

씬 시티 SE (Sin City) / 엔터원
<씬 시티>는 <엘 마리아치> 3부작을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펄프 픽션>, <킬빌> 시리즈의 쿠엔틴 타란티노, 미국의 전설적인 코믹스 작가 프랭크 밀러와 함께 완성한 21세기형 폭력 미학의 신기원이다.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원작의 비주얼을 살리기 위해 로드리게즈는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하면서 여기에 포인트 컬러 기법을 도입,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과 생동감을 부여했다. 흑백의 영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붉은 피와 파란 드레스, 묵직한 총의 질감이 살아나는 금속의 총구, 초록색 눈동자와 금발의 머리카락 등은 선악의 이분법만으로 가득 찬 흑백의 도시 ‘씬 시티’가 단조로워지지 않도록 함과 더불어 감상자로 하여금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해 클라이브 오웬, 베네치오 델 토로, 제시카 알바, 일라이자 우드, 스티브 부세미, 조쉬 하트넷, 브리트니 머피, 데본 아오키 등 신구를 아우르는 화려한 출연진의 면면은 영화의 가치를 한층 드높인다. 3디스크로 무장한 이 스페셜 에디션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흠 잡을 데가 없는, 영화 <씬 시티>의 결정판이다.
출처 케이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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