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를 위한 딴지] 영화 '한반도'가 범하고 있는 국제법적 오류
- 부산대학교 법학과 안홍익
1. 서설 - Prolog
이 글의 제목에서 별도로 표시한 바와 같이 본 글은 딴지를 위한 딴지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바이다. 영화는 설령 그것이 역사적 고찰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그 픽션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가정도 허락하고 그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에 필자의 견해가 같이 한다. 필자가 영화 '한반도'를 감상함에 있어 법학도, 특히 국제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법학도로서, 그 속의 국제법적 오류를 지적하고 gossip 꺼리를 만드는 것에 개인적인 흥미를 느껴 본 글을 집필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글은 영화 '한반도'에 대한 어떠한 비판 또는 딴지로 받아드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한반도'에서 나타난 강우석 감독의 역사의식과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에 깊은 동감을 표하며, 이와 같은 가정과 그에 따른 전개를 아주 흥미롭게 감상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2. 영화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법
(1)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
그 협상과정에서의 많은 문제점은 별론으로 하고,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을 통하여 국교를 맺고 하고 1945년 일본의 연합국에 대한 항복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일관계를 정상화 하였다. 본 조약 제 2조(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It is confirmed that all treaties or agreements concluded between the Empire of Korea and the Empire of Japan on or before August 22, 1910 are already null and void.))는 1910년 일명 '조일병합조약'과 그 이전의 대한제국과 일본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제조약의 무효(already null and void)를 확인하고 있다. 물론, 이때 그 무효의 시점에 대해서 '이미' 무효인 것을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이 확인한 것이라는 견해와 당시 일본국의 한반도 강점이 사실상 있었으나 한일관계를 정상화 하는 시점에서 이전의 조약을 무효로 선언한 것이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전자에 따르며, 이러한 맥락에서 일명 '을사보호조약'을 비롯한 '조일병합조약' 등이 무효이므로 국제법상 대한제국은 일본국에 편입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시점까지 대한제국이 계속되어 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그 전문에서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계승한 것을 천명하고 있는 바, 결국 대한민국은 국제법적으로 대한제국에서 상하이 임시정부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박배근 교수와 김창록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일본국이 대한제국과 임시정부 시절에 한반도를 실효적으로 점령한 사실(fact)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기간을 '일제강점기' 등으로 부를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필자도 깊이 동의하는 바이다.
(2) 조약의 무효사유와 시제법 원칙 - 강박 / 국내법 규정의 위반
조약법에 관한 일반국제법과 조약법에관한비엔나협약은 조약의 무효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중 하나가 강박이다. 강박은 국가에 대한 강박(비엔나 52조 국제연합헌장에 구현된 국제법의 제원칙을 위반하여 힘의 위협 도는 사용에 의하여 조약의 체결이 감행된 경우에 그 조약은 무효이다.)과 조약체결권자에 대한 강박(비엔나 51조 국가대표에 정명으로 향한 행동 또는 위협을 통하여 그 대표에 대한 강제에 의하여 감행된 조약에 대한 국가의 기속적 동의 표시는 법적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으로 구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현대 국제법상 절대적 무효사유로 인정된다.
여기서 국제법의 중요한 원리인 '시제법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제법 원리란 역사의 발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규범의 변화에 따라 현시대의 국제법을 과거의 국제관계 또는 과거의 분쟁상황에 근거한 현대의 국제관계를 조정하는 원리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므로, 과거의 국제관계 또는 과거의 분쟁상황을 해결함에 있어 당시의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국제법 전반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시제법 원리를 본 사안에 적용하면, 영화 '한반도'에서 문제되는 시점은 20세기 초이고, 따라서 시제법 원리에 따라 영화에서 문제된 상황의 해결에는 당시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당시 국제법은 현대 국제법과 달리 무력의 일반적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타 국가의 국제법 위반에 대한 대응조치(복구)로서 무력적 복구와 전쟁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무력사용이 일반적으로 금지된 시점은 적어도 유엔헌장이 채택된 1945년을 기점으로 잡을 수 있으며, 빠르면 1920년 부전조약(켈로그-브리넬조약)을 그 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된 시점인 1905년에서 1910년 당시 국제법은 국가에 대한 강박은 조약의 무효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며, 다만 조약체결권자에 대한 강박을 주장하여 그 무효성을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반국제법과 조약법에관한비엔나협약이 규정하는 조약의 무효사유 중 또 하나는 국내법 규정의 위반(비엔나 46조 1항 조약체결권에 관한 국내법 규정의 위반이 명백하며 또한 근본적으로 중요한 국내법 규칙에 관련되지 아니하는 한, 국가는 조약에 대한 그 기속적 동의를 부적법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동의가 그 국내법 규정에 위반하여 표시되었다는 사실을 원용할 수 없다.)이다. 국내법 규정의 위반은 조약체결권과 관련된 국내법 규정을 말하며, 예를 들면 조약체결권을 위임받지 않은 자에 의한 조약의 체결 등이 있다. 강박과는 달리 국내법 규정의 위반은 역사적으로 조약의 기속적 동의를 파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예가 많으며 상대국의 인식가능성이 적다는 선의자 보호 등의 관점에서 명백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중요한 위반이 아닌 경우 그것을 원용할 수 없다. 이는 상대적 무효사유로 해당국의 원용이 있어야 당해 조약이 무효로 된다. 동조 2항은 '통상의 관행에 의거하고 또한 성실하게 행동하는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위반이 객관적으로 분명한 경우에는 그 위반은 명백한 것이 된다.'고 하여 동조 1항의 '명백하며'의 의미를 확정하고 있다.
3. 영화 '한반도'의 구체적 내용에의 적용
(1) 1907년 경부선과 경의선의 제권리에 관한 조일조약의 유효성
앞서 확인한 국제법의 적용에 있어 영화 '한반도'의 치명적 오류는 바로 문제된 1907년 경부선 및 경의선의 제권리에 관한 대한제국과 일본국간의 조약(이하 편의상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으로 칭하기로 함)의 무효성이다. 즉, 영화는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그에 따른 1910년 이전 제조약의 무효여부의 검토 없이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의 유효함을 전제로 극을 전개하였으며, 그에 따라 해당 조약의 진정성과 유효성에 관하여 진정한 국새의 존재여부를 중심으로 스펙터클하게 극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에 따라 1910년 이전 제조약이 무효가 되면서 영화의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도 무효이고, 따라서 영화와 같은 모든 소동은 이미 그 필요성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영화의 법무부장관과 외교통상부장관 그리고 그 이하 모든 공직자 및 공무원에게 직무유기 등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도 있게 하는 점이다.
나아가, 영화는 조약이 대한제국과 일본국 사이의 조약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으나, 만일 대한제국이 일본국의 특정 기업에 해당 권리를 양도한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같이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약'에 따라 해당 기업을 청구권을 잃는다고 해석과 동 협약에 따르더라도 해당 기업의 청구권은 상실되지 않았으나 일본국의 외교적 보호권은 상실된다는 해석 등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실관계가 없으므로 그 구체적 판단은 유보하기로 한다.
(2) 해당 조약의 유효성을 전제한 그 이후의 제문제
우선 앞의 논의와 상관없이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의 유효성을 전제한다면, 그 다음의 문제는 조약법의 적용에 있어 동 조약의 유효성 검토일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경우 논의될 수 있는 조약법의 원칙은 조약체결권자에 대한 강박과 국내법 규정의 위반이다. 하지만, 조약체결권자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영화에서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주어진 사실관계로 강박의 존부에 대한 판단과 그에 따른 효과를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새의 진정성과 관련된 국내법 규정의 위반과 그에 따른 무효 원용 가부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고종은 대한제국으로 국시를 변경하면서 대한제국의 국새를 제작하였고, 그 후 불안한 국내 정세와 일본국의 압력에 대응하고자 국새를 봉인하고 위조 국새를 사용한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 즉, 조약 체결에 있어 부진정한 국새의 사용을 명백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중요한 국내법의 위반으로 불 수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당시 동북아 질서에서 국새가 가지는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게 점점 그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중요성은 지대하였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서명거래가 일반화 되어있는 오늘날에도 인장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아직도 주요 공문서에는 인장이 반드시 필요한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부진정 국새가 사용된 모든 문서에 고종 또는 고종 이후 후계자에 의해 직접 날인되었다는 점, 특히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이 고종에 의해 직접 날인되었다는 점에서, 날인 당시 조약체결권자의 객관적 의사에 의한 기속적 동의가 표시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국새의 부진정이 근본적으로 중대한 국내법의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하겠다. 또한 비엔나 협약 제 46조 2항의 '명백'의 정의에 따르더라도, 날인 방식의 기속적 동의 표시가 동북아에 한정된 문화라는 점 등으로 비추어, 부진정 국새의 사용이 '명백'한 국내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4. 결어
제공된 사실관계의 한계로 말미암아 좀 더 구체적인 조약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고찰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 '한반도'는 그 시작인 1907년 조일부의선조약의 유효성을 전재하고 들어가는 오류를 범하여 극 전체를 필요 없는 가정으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법돌이'의 '아는 척'을 배제하고 영화를 본다면, 그 가정과 그에 따른 전개는 아주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가정이 아주 신선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 만화영화를 만들어 버리는 잘못을 저질러 관객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과는 다르게, '한반도'는 역사적 가정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을 현실에서 찾음으로써 마지막까지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안성기와 문성근의 다이얼로그는 이 시대에 통일과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바라보는 시점의 양 축을 아주 축약적으로 잘 대변해 주고 있음을 느꼈으며, 필자로 하여금 결국 반세기 분단의 현실이 남한 내부의 또 다른 분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까하는 걱정을 하게 하였다. 끝으로, 이 영화가 민족의 아픔과 한반도의 시련, 그리고 그 비참한 역사와 자주적 미래를 걱정하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다양한 의도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출처 : '영화 '한반도'가 범하고 있는 국제법적 오류' -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