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나오기 전까지 1,174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에 올랐던 작품이다. 2004년 개봉 당시 전국 440개 스크린에 걸리며 39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 한국영화 최단 기간 흥행기록을 수립했다.이 같은 흥행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이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각오로 당시까지 한국영화로는 최대 규모인 마케팅비 포함 17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물량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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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ty Check |
Picture ★★★★☆ Sound ★★★★ |
Title Spec |
감독 |
강제규 |
출연 |
장동건, 원빈, 이은주 |
등급 |
15세 이용가 |
러닝 타임 |
148분 |
출시사 |
KD미디어 |
비디오 포맷 |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2.35:1 |
오디오 타입 |
DTS, 돌비 디지털 5.1 |
언어 |
영어 |
자막 |
한국어, 영어, 일본어 |
지역 코드 |
3번 |
2001년 10월부터 시작한 프리프로덕션을 거쳐 9개월여의 촬영 기간 동안 2만5,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합천, 대관령, 김제, 부산 등 18군데를 돌며 촬영한 영상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된다. 아닌 게 아니라 강제규 감독은 오랜 시간 철저한 준비를 거쳐 공들인 촬영을 한 덕분에 이전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감나는 전쟁 장면과 규모 있는 영상 서사시를 펼쳐냈다.

이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개각도 촬영, 이미지 쉐이크, 핸드헬드 등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곧잘 시도된 영상들은 흡사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촬영은 <유령>, <반칙왕>, <챔피언> 등에서 다이내믹한 영상을 선보인 홍경표 촬영감독이 맡았다. 그는 인물 위주의 메인샷용과 넓은 전경을 잡는 와이드샷, 전투 장면을 잡는 고속 및 개각도용 등 3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동시에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었다.

아울러 전쟁의 강렬한 이미지는 개각도 촬영으로 강조했다. 보통 촬영 시 조리개 각도를 180도로 활짝 열어 광량을 넓게 분산시키는 반면 이 작품은 25~45도로 조리개를 조금만 열어 순간적으로 많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움직임이 끊어져 보이게 만드는 개각도 촬영으로 전쟁터의 격렬함을 극대화했다. 얼핏 보면 영상이 거칠어 보이는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사실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제격이다. 또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해 현장감을 강조했다. 특히 움직임이 커 보이고 흔들림이 많도록 망원렌즈까지 부착한 채 핸드헬드 촬영을 감행했다. 그 바람에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폭파장면 등에는 이미지 쉐이크가 쓰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도 사용된 이미지 쉐이크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전동으로 카메라를 미세하게 흔들어 폭발의 진동이나 충격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장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에서는 비싼 전용 장비를 부착해 렌즈를 미세하게 진동시키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구할 수 없어 제작진이 직접 제작한 모터를 장착해 카메라 헤드를 흔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진동폭이 렌즈를 흔드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안정적이고 섬세한 영상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도로 꼽을 만하다.

문제는 이 같은 특징들이 장점으로 작용한 반면 단점이 되기도 했다는 것. 낮 장면의 경우 실크 스크린으로 햇빛을 가리고 촬영을 했는데, 국내의 경우 할리우드에서 사용하는 큰 폭의 실크 스크린을 구할 수 없다보니 훨씬 작은 범위에서 적은 인원을 동원해 거대한 전쟁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렇다보니 적은 인원으로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카메라를 더욱 바짝 들이댄 상황에 흔들리기까지 해서 극장에서 전투 장면을 보는 것은 심히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프로젝터를 이용해 100인치 영상으로 DVD 타이틀을 봐도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만큼 의욕은 좋았으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다.

영상과 더불어 내용의 한계도 문제다. 강 감독의 민족관은 냉전 시대의 산물인 <쉬리>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얼핏 보면 북한군 포로 학살, 보도연맹 사건 등을 통해 반전과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 전야의 고즈넉함과 이산 가족의 비애,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을 사건 순서대로 그림만 나열할 뿐, 메시지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지극히 피상적인 정서로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늘 ‘배달의 기수’, ‘대한뉴스’ 식의 뻔한 스토리를 풀어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강제규, 강우석 등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 감독들의 한계일 수도 있다. 3년의 긴 전쟁을 관통하는 커다란 시대극보다는 차라리 범위를 좁히더라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국지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갔더라면 훨씬 밀도 높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해 이 작품의 월드 프리미어 때 방한했던 성룡을 인터뷰한 기억이 난다. 당시 성룡은 작품의 스케일을 높이 칭찬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너무 비슷한 영상이라는 점과 한국전쟁이 서양인들에게 너무 낯선 소재여서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외국인의 시각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객관적일 수 있는 성룡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이 분단 민족의 비애나 역사의 질곡에 갇힌 가족의 아픔보다는 오직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영상의 작품으로만 남았다는 점은 이 작품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차라리 국군과 북한군 양쪽을 오가며 어줍잖은 반전정서나 양비론을 강조하기보다는 독일군이나 저항군의 시각을 배제한 채 철저히 미군의 시각만 강조해 미국 편향의 일관된 정서를 보여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 식의 접근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본편을 2장으로 나눈 불편함을 보상하듯 지금까지 DVD 타이틀로 출시된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화질을 자랑한다. 우선 디지털 인터미디어터(DI) 작업을 거쳐 필름이 아닌 디지털 소스로 직접 트랜스퍼된 영상은 한 점의 잡티나 스크래치가 전혀 없는 깨끗한 영상을 보여준다. 특히 클로즈업 영상의 세밀한 묘사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나다. 할리우드의 DVD 타이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클로즈업의 세부 묘사는 발군이다. 색감도 좋다. 피부 색조 등을 보면 점진적으로 색조가 변해가는 그러데이션도 잘 살아있고 원색이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색감이다.

원래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의 DVD 타이틀 작업을 담당했던 웨타(WETA)에서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웨타에서 만들어온 1차 소스는 기대 이하였고, 여기 실망한 제작진이 국내에서 직접 트랜스퍼 작업을 했다. 이를 위해 인페르노라는 별도의 장비를 구입, 색 보정을 거쳐 깨끗한 영상을 뽑아낼 수 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필름 상영한 극장보다 톤이 약간 밝은 편이다. 이 점이 오히려 야간 고지전 등 어두운 장면에서 세부 묘사를 살리는 효과를 발휘했는데 극장에서 본 영화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면 전체적으로 약간 밝은 감을 느낄 수 있다.

돌비 디지털 5.1 외에 새롭게 추가된 DTS 트랙 역시 화질 못지않게 훌륭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후방 스피커의 활용도가 높아서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동하는 전차 소리 등을 들어보면 소리의 이동감과 방향성이 적절하게 살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후방 스피커에서 포성이 울린 뒤 스크린에 불이 번쩍하며 파열음이 전방 스피커에서 울리는 사운드의 시간차 디자인이다. 역시 서라운드 효과를 잘 살린 덕분에 음향효과가 자연스럽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리의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포탄 소리나 폭발음 등을 들어보면 요란하게 울리기는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처럼 낮고 묵직하게 저음이 깔리며 청취 공간을 뒤흔드는 맛이 없다.

2004년의 일반판에 1장이 추가된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만큼 부록은 보다 지칠 정도로 풍성하다. 우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장면 해설 자막, 시각 장애인을 위해 성우가 장면을 소설책처럼 읽어주는 음성트랙 등이 들어 있으며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 원빈이 참여한 음성해설, 이성호 PD와 강제규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신보경 미술 디자이너 등이 함께한 음성해설 등 2가지 음성해설이 들어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디스크에는 제작 과정, 미술 디자인, 소품 작업, 음악, 시각효과, 월드 프리미어 등이 들어있다. 그런데 세 번째 디스크의 미술, 세트, 의상을 소개한 ‘풍경 1950’과 소품을 소개한 ‘만년필에서 탱크까지’, 스케줄 매니저와 그립팀의 활약을 다룬 ‘신규 보직’, 음악 작업인 ‘태극 아리아’ 등은 PC용 파워 DVD에서 재생이 되지 않았다. 일반 DVD 플레이어나 Xbox 360 등 게임기에서는 정상 재생됐으나 파워 DVD에서만 문제가 일어났다.

아울러 부록의 음량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일부 부록은 인터뷰 대상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잘 들리는 반면 일부 메뉴는 배경음에 묻히거나 너무 작게 녹음돼 쉽게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처럼 몇 가지 문제점만 제외하면 레퍼런스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타이틀이다.
글 / 최연진(DVD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