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데로다. 이책에서는 1%가 될 수 있는 정말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것을 말하기 전에 우선 이책은 읽다보니까 확실하게 우리 정서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이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외국인이 저자여서 당연히 외국인 저자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듯 하다. 이 책 전에 읽은 <사람을 얻는 기술>이라는 책하고 내용도 상당히 비슷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심리학 쪽에서는 통용되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책은 <사람을 얻는 기술>보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한국인 정서에 맞게 한국의 예를 들어가며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듯이 1%가 되는 아주 정확한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책의 내용은 저자가 말했듯이 누구나 아는 뻔한 얘기들로만 구성되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새롭다 하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책의 시작이자 끝은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도 그 내용을 정확히 꼬집고 있다. 세상의 1%가 되는 진리의 길은 바로 지행합일 인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 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성실히 하면 누구나 우등생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말이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음악에 미쳐서 끝없이 파내면 그쪽에서 1%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흥미로워 하는 것에 성실히 임하면 1%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1%는 머리가 아닌 성실성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99%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알면서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자니 유혹이 나를 부르고, 독서를 하자니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도둑인 놀이란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 버린다. 시간요정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 자체가 지루해 죽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게임에 빠지면 시간요정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우리를 미래로 안내해주면서 우리는 마약과도 같은 쾌락에 빠져들고 현실에 돌아오면 금단 증상을 느낀다. 후회라는 금단증상에 빠진다. 하지만 이내 같은 짓을 반복하고 만다. 바로 그 지겨워 죽겠는 시간을 자기 개발에 힘쓰면서 시간요정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고난의 느린 시간과의 투쟁하에 승리 하는 자만이 1%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은 뻔하지만 에필로그에서 정확한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최고 점수를 주려한다. 왜냐면 진리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 아니 뛰어나나 뻔하고 누구나 아는 얘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에필로그로 인해 나를 깨닫게 해주고 그것만으로 최고 점수를 주려한다. 1%가 되고 싶은가 이미 답은 자신에게 있다. 진리는 원래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면서 진리에서 뺑 돌아가려고 한다. 그 진리의 싹을 틔운 자가 1%가 되는 것이다. 물론 알고 있어도 1%가 될 수는 없다. 왜냐면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기술
레일 라운즈 지음, 임정재 옮김 / 토네이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아직 많이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사람에 대한 현재의 생각은 답이 없다라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 세상에는 절대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 예를 들면 살인을 하지말고 도둑질을 하지말고, 싸우지말고 등등... 이것들은 당연한 절대법칙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부족은 살인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족이 있다. 약탈과 폭력 또한 절대법칙이 무색하게 만연하다. 결국은 모든 것은 인간의 규칙에 적용된다. 사실상 인간에게 제약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느순간 지구에 인구가 반으로 줄지 않으면 전부다 멸망 한다고 하면 얼마간 살인이 합법화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선악 그어떤 절대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이 규칙이 각각에게 이익이 되고, 또 강제성이 물려서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에게 절대성이란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사람을 얻는 기술... 사실상 답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사람을 얻는 사람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민첩하고 유연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책의 내용을 완전히 100% 마스터 했다해도 사람을 얻는 달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인간세상이야 말로 카오스 그 자체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그 유연성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내용들이었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역사소설 같은 것들을 읽다보면 사람에 대한 것들은 어느정도 공부가 되기도 한다. 삼국지 같은 고전명작을 몇번만 읽어도 사람의 관계를 어느정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아마 세상의 어느 책도 인간에 관해서 완벽하게 서술할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상한선이 무한대인 능력치에서 점점 누적을 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책의 저자도 사람에 대한 기술이 분명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보다 능력치가 높기때문에 능숙해보이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사람이 정말로 사람을 얻는 기술의 달인이고 완벽하다면 아마 세계의 왕이 되거나 세계의 대 부호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저자는 남들보다 사람에 대해 조금더 박식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것만으로도 이책을 읽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세사람이 같이 가면 그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다면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깨닫게 해주는 것도 많지만 좀 의문스러운 점들도 많다. 아마도 그의 상황과 나의 상황 그리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런 인문도서류는 자신의 살을 붙이는 용도로 써야지 자신의 뼈로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책의 막판에 적을 만들지 마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쓸데 없는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인간만큼 큰 변수도 없기때문이다. 한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한 인간 역시 인생을 종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쓸데 없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헌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굳이 나에게 피해가 있어나 나에게 책임이 없을때는 나서지 마라고 한다. 그냥 다시는 안보면 된다고 한다..... 현명함과 가치관을 헤매게 만드는 발언이 아닐 수없다. 만약 길에서 소매치기가 내앞으로 지나 간다면....나는 모른척해야 하나 잡아야 하나 하다못해 다리라도 걸어주어야 하나.... 내가 잘못을 바로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등의 말들. 물론 책에서는 아랫사람들이 피해를 주거나 바로 잡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들 경우 어쩌고 여러 상황을 들지만 아무튼 이 단원은 여러번 읽었다. 나에게 너무 혼란 스러운 내용이라 그럴까나 이해가 잘 되지가 않았다. 책에서 읽은 내용치고는 너무 정의롭지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결국 유연하게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짜피 딱히 정답은 없는 것이 인간이니까.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류의 책도 많이 읽어서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경험은 다다익선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더 많은 경험치를 위해 이런 인문계 쪽의 도서를 많이 접하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류나 실용도서류만을 고집 할 게 아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나무에 대한 향수가 있기에 파라다이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2003년 여름. 장염에 시달리면서 죽을 둥 살 둥 하고 나서 회복기에 나무를 읽으면서 상대적으로 책에 집중할 수 있었기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무에 대한 충격이 꽤나 컸다. 기운도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기때문에 누워서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가 있었던 것도 한 몫했겠지만 나무는 당시 내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의 소설들을 읽었지만 개미 이후로 딱히 임팩트를 가지지 못했었지만 당시는 워낙 베르베르의 팬이고 해서 무슨 작품이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읽게되었다. 하지만 나무는 베르베르라는 딱지를 떼고서도 완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서 생각해보건데, 실제로도 나무는 베르베르의 생각의 신선함이 있었던 작품이었다고도 생각된다. 쉽게 예를 들어서 개미가 베르베르 v1.0 이었다면 왠지 타나토노트나 천사들의 제국 같은 것들은 개미의 연장선 같은 느낌의 v1.1 또는 v1.2같은 느낌을 지울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무는 정말 신선하게 다가오면서 베르베르 v2.0의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2.0버전으로 생각되었다면 완전히 새로웠다는 것이 될 것이다. 개미에서 이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너무도 새로운 상상의 나래였기때문에 정말 상상력의 충격으로 다가왔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마도 당시는 한창 상상력이 동틀때이고 세상의 무한 지식흡수 스펀지가 장착 되있던 시절이고 또 정신세계도 그리 넓지 못했기에 더욱 최강의 나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무를 보는 세상에 대한 나의 평가는 딱 한마디로 요약되었다 <최고 아니면 최저> 나무를 읽은 사람들은 극단적인 평가들을 내렸다. 정말 최고의 책이라는 분류와 완전 쓰레기라는 부류였다. 왠만해서 중간계층을 보지 못하였던 듯 하다. 받아들이면 정말 최고고, 못받아들이면 정말 최저가 되었던 듯싶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최고의 책으로 등극시켰다.  

 7년........ 나무가 나온지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간 것 같지도 않은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지금서 돌이켜 보면 확실히 나무가 유치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미 나의 생각의 공간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에 나무를 떠올려보면 유치 하다고 하는 의견에 대한 이해가 지금은 이해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당시는 나에게 워낙 좋은 책이라 이책이 후졌다는 것에 정말이지 동의를할수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7년이 흘러서 파라다이스가 나무버전으로 보자면 나무 v2.0 이 나온 셈이다. 독자들의 나무라는 책이 있었지만 관심도 없었기에, 파라다이스가 실질적으로 나무 2번째 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나무랑은 확연히 차이가 나게 변했다. 우선 나무는 간결함과 단순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파라다이스는 엄청 복잡해진 느낌이다. 우선 그림에서도 윈도 3.1에서 윈도 95로 바뀐 느낌이다. 굉장히 세련되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무의 그림체에 대한 임팩트가 파라다이스에서는 안느껴진다. 당시 나무의 그림체는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그림체역시 나를 다른세계에 데려다놓은 듯한 그런 붕~ 하는 느낌을 준 것에 대비되게 파라다이스는 오히려 시각적으로는 복잡해졌지만 나의 상상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너무나도 단조로워졌다. 내용에서도 파라다이스는 나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복잡해져 간 듯 싶다. 아니면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쪽이든 파라다이스는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루함쪽에 가깝게 나에게서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리고 너무 데자뷰현상이 심하다는 것이 베르베르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라다이스 전에 신이라는 작품을 읽어봤는데 신에서 나온 소재를 그대로 가져다 쓴 유머를 추적하는 이야기같은 것들은  왠지 모를 데자뷰현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비단 파라다이스 뿐 아니라 베르베르의 작품은 크건 작건 전 작품이 이렇게 공유되어지고 있다. 일관성이 있어보이기는 하지만 작품이 방대해질 때마다 약간의 지루함을 앉겨주는 단점이 있다. 왠지 읽은 것을 또 읽는 느낌. 새롭지 않다는 느낌 등등 파라다이스는 나무 v2.0 이지만 베르베르버전으로는 새버전으로 나가지를 못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포장해보려고 하니까 힘들다. 그냥 내머리 속에 마음속의 둘의 딱 두가지 이미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무는 상상력의 원초... 뿌리를 흔드는 느낌 파라다이스는 표면.... 가지를 흔드는 느낌이다. 기초과학과 공학의 차이라고도 볼 수가 있을까? 생산과 가공의 차이? 영화로 보면 20세기 영화와 21세기 영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옛날의 영화들은 겉포장외의 먼가가 있었는데, 요즘 영화는 화려해진 반면 깊이가 낮아진 느낌이 있는 듯하다. 암튼 이런 비슷한 생각이다. 나무가 가장 원초적인 상상력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흥미를 주었다면 파라다이스는 가공의 상상을 자극하는 느낌이다. 이것이 딱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7년전 나무를 읽으면서 싫었다는 사람들의 위치에 내가 서게 된 것일까.... 분명 파라다이스의 리뷰를 보다보면 정말 흥미롭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아닌데.... 과거 나무때의 반대자가 내가 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씁쓸해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뇌가 늙었는지 상상의 나래가 늙었는지 아니면 베르베르가 늙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기대했던 작품에대한 기대치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씁쓸해지는 것은 정말 불행중의 불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판 1판1쇄를 구매했는데 별로 맘에 안든다는 것은 정말 아쉽다. 기대로 구매해서 실망에 중고매물로 내놓는 이 쓸쓸함 누가알까. 베르베르도 이제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작품을 하나의 세계화 하려는 의도라면 몰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 1~6권 세트 - 전6권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전체적인 느낌은 유치하다는 것이다. 그의 앞의 작품들 중에서도 그렇게 느낀 것들이 몇몇 있었는데, 마릴린 먼로라든가 하는 것들은 정말 좀 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신을 읽은 기간이 약 2~3달 쯤 되다보니까 자세한 것까지 꼬집을 수는 없지만 어쨋거나 전체적인 대표의 느낌은 "유치함" 이었다.  

 그리고 그 유치함이라는 것을 배경으로 흥미있는 것들이 상당 수가 있었다.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 신들이 나와서 진행된다는 것 자체는 좀 유치스러움 면이 있으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나름의 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여전히 유용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것들은 어려운 것이 상당수 있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세세하게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쓰기는 좀 힘겨운듯 하여 뭉틍거리면서 쓰고자 한다.  우선 유치하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분량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정도의 분량이었다. 조금 더 양질적으로 축소해서 3~4권까지 압축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쓸모없는 부분과 질질끈다 싶은 부분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신화에 대한 지식들과 베르나르의 소설에서 그러하듯이 잡다한 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었다..... 크게 생각 하면 이 두가지 밖에 생각이 안나는듯 하다.  

 너무 인간적인 관점에서 쓰여서 일까... 신의 나라가 무슨 인간의 세계하고 이리도 같냐는 생각에서 였을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현실의 차원으로...우뇌에서 좌내로 점점 기능이 커가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나날이 약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절대적으로 그의 역량이 작아져가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나의 기능이 쇠해져가는 것인지...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들에서 이렇다할 작품을 만나지 못하였다는 것만큼은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듯 하다. 개미와, 나무 두편의 명작. 그리고 그 후에 읽어본 뇌,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파피용, 인간, 아버지들의 아버지, 신...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파라다이스 까지  전혀 새롭지가 않았다. 첫 두편의 포스가 워낙 강렬했던 터라 맹목적으로 읽어왔는데 흥미롭기는 하나 그다지 새로운 내용들이 아니라는 생각들이 강렬하게 든다. 소재들은 각각 다르지만 스타일이 그대로이기 때문일까. 이제는 약간의 식상함마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런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베르의 작품이라면 나오자마자 보던 시절에서 그냥 언젠가 읽어보겠지....라며 느긋하게 생각하던 게 좀 오랜듯하다.  

 그래도 신의 우주관과 내가 생각하는 우주관에는 약간의 비슷한 그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의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면 우주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면 이 끝없이 생길 수가 있는 우주는 어떻게 존재할까 등등 우주는 정말로 인간의 상상력 밖의 물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3차원의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주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앞뒤로 밖에 가지 못하는 개미에게 2차원의 세계 밖에 없듯이 말이다. 어쩌면 우주란 것은 생가보다 매우 간단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의 인식에 그 차원이 없기 때문에 선과 높이라는 단순한 차원의 하나처럼 선과 높이 그리고 무언가의 차원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평생 모를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수학적으로 나마 예측 해보는 것이 전부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베르나르의 우주관은 우주속의 또 우주가 있을 수 있다는 개념인데, 실제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기도 한다. 어쩌면 몸속의 세포 또는 세상에 존재하는 원자 하나하나가 전부 하나의 우주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우주역시 어떤 것의 하나의 원자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또는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무튼 생각할수록 머리복잡해져서 그만뒀다.   

 

 그의 소설은 상당한 노력이 배어 있는 것이 보이지만 이제는 좀 식상하다. 어쩌면 그의 생각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의 나이도 있으니까 그의 정식세계가 앞으로 크게 변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가정하면 앞으로도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우주관, 사람관, 자연관, 사후관 등 작품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보면 어긋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모든 작품이 마치 하나의 작품인듯한 일관적인 관점이었다.  어쨋든 1권후 유치스럽다는 고정관념속에서 읽었기 때문일까. 끝까지 유치스러웠다는 것이 생각이었다. 다만 인간세계로 떨어졌을때는 조금 흥미롭기는 했다. 만약 내가 어떤 신이고 나의 종족들이 온갖핍박속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그속에 떨어진다면?? 조금 흥미롭기는 했지만 왜 떨어졌는지 모를정도로 별다른 내용도 없이 다시 아에덴으로 복귀를 하고. 결말도 다소 흥미롭기는 하였는데 조금 황당스럽기는 했다. 왠지 소설을 소재로 쓸 것 같은 내용들이 족족 나와서 할 것 같더니 마지막에 결국 써먹었다. 하지만 매우 흠미롭기는 했다. 읽으면서 진짜로 미카엘과 애드몽이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햇으니 말이다. 결말은 허무하면서도 참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르나르의 최신작(2010 5월기준.)파라다이스다. 출간은 3월이었다.
 
 파라다이스는 짬짬이 읽기에 좋게 단편집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나무와 같은 구성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심 나무때와 같은 새로운 충격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어본다.

 일주일 동안 5편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었는데, 참으로 책을 읽는게 쉽지가 않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어찌하여 청소년기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당시는 못깨닫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되는게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생각된다. 나이를 하나 하나 먹어감에 따라서 여유가 사라져가고 책읽는 시간에 단어를 더 외워야 하는 현실에 부딪고 마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그러하여 2006년 부터 독서량의 급감을 인식할 수가 있을 정도이다.

 프리리뷰치고 너무 장대해지는 듯 하여 본론은 리뷰에서 하기로 하고,  파라다이스에 대한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우선 5편의 단편집을 읽어 본 바로는 이상하다는 것이다.

1. 환경파괴범은 교수형 부분은 있을 법한 미래이기도 하고 황당한 내용은 아니지만 먼가 좀 유치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답고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고, 그냥 명품형 이야기는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2.번 진리는 손가락에는 먼가 심오한 뜻이 있는듯하면서 매우 짧아서 그냥 넘어가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현자가 아니므로 달을 알 수는 없지만 현자가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3.번 존중의 문제는 좀 가관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이게 정녕 베르베르의 상상력에서 어느영역을 차지하는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베르베르의 작품에서는 어느정도는 그의 생각이 읽히는데 이 내용은 재미도 없고, 내용도 없고, 좀 어이가 없는 부분이었는데, 메시지를 몰라서 일까나....

 꽃섹스역시 황당 무개하고, 좀 별로인 파트다. 어느정도 베르베르 답긴하지만 1~4번 파트까지 읽는 동안 확 끌어당기는 먼가가 없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번 작품은 현재까지 실패로 보이고 있다. 하지만 꽃섹스에서는 그래도 먼가 인간의 이상향에 대한 것들을 볼 수가 있었다. 번식상대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서 인간으로서 한단계 탈피 해나간 그런 이상향의 진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착이 사라지면서 그에 따른 분쟁은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고, 점점 더 자연 친화적이 되면서 결국 식물에 가까운 인간으로 변화(이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는 잘 모르겠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적 영역에 더욱 가까워진 진화라고 본다.)가 되고, 그 어떤 스트레스와 걱정근심을 초월한 한없이 평화로운 대자연이라는 어머니의 보살핌아래 무한히 편안한 존재로 되어간다는 점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인간의입장에서 본다면 게임도 없고, 움직임에도 제약이 따르고 움직이는 생물에게 유린당하는 그런 것들이 별로 일지도 모르나 인간이 없는 상황아래에서의 이런 진화 역시 나쁘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자연의 축복속에서 무한 축복의 삶을 오래 가져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시선이 아닌 진화인의 시선으로 보면 유흥은 즐거움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쩌면 이야기 속의 나무처럼 진화하는 것이 聖인들이 추구한 이상향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처럼 편안하면서도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 순리에 따르는 삶등

 꽃섹스는 재미는 없지만 나름 내용에서는 건 질 것이 있었는데 여전히 별로 였으나 마지막 사라진 문명에서 그의 색깔을 볼 수가 있었다. 여전히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는데 어쩐지 중간쯤 이야기가 오니까 딱 예측이 되었다. 사라진 문염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 베르베르를 안다면 그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떤 인간이 어떤 사라진 문명을 찾으려고 탐험을 하는가......하면서 별 기대도 안하였고, 문명을 찾기 전까지 당연히 뻔한 내용들..그러하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문명을 찾고, 부가 설명을 붙일수록 이것이 인간의 문명을 얘기하는 것임을 딱 알 수가 있었다. 읽어 내력갈수록 그것은 명확해졌다. 이 못생긴 거인의 모습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의문이 안생긴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나게 작은 몸집의 탐험가는 누구일까.... 솔직히 개미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미래의 인류가 소인이 되었다고 생각 했을 뿐이었다.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베르나르 다운 반전의 단편집은 현재까지 이 사라진 문명정도인 듯 하다. 그렇다고 딱히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류의 타락이 스스로를 멸망시켰다는 메시지정도? 이부분은 내용보다는 반전에 그 점수를 높이고자 한다.

 앞으로 12편정도가 남아있는데 사실 기대가 별로 안된다. 베르나르의 상상력의 뿌리가 이미 뻔하게 보이는 듯해서 나무때와 같은 충격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나의 상상력의 나무가 과거보다 성장해서 대단치 않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나에게 신세계적인 상상력을 심어주었던 것에 비해 그 이후로의 그의 작품에서는 그런 신선함을 맛볼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는 10년넘게 그 색깔이 조금도 변함이 없다.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의 작품은 전부 한편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정도로 연관성이 있고 상상력에서도 하나의 덩어리 느낌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결국은 한뿌리라는 느낌을 쉽사리 가질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