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커버를 다시 만들었다. 제목을 지난번 것은 잊어주세요,라고 써야지 하다가, 그럼 나는 이 두번째 북커버를 왜 만들었지,를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북커버를 왜 만드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 오늘 생각의 시작이다.
지난번 것은 잊어주세요. 나는 이걸 보이기 위해 만들고 있나? 쪼그리고 앉아 다림질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기 싫거나 말거나 이미 하나를 만들었고 좀 덜 실용적이긴 해도 어쨌든 책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주기는 할 텐데 굳이, 더 예쁜 천으로 다시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읽던 책을 팽개치고 사서 고생을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첫 시작은 물론 책을 보호하기 위한 커버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의문. 책은 꼭 보호해야 할까? ^^;;; 나는 이미 답을 안다. 필요 없다. 그냥 책주머니(이것도 이미 있음)에 넣어 다니면 된다. 아무데나 얹어두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나는 시간을 들여 커버를 만든다. 왜? 갑자기 퐁퐁 솟아나는 창작(?) 욕구? 뭐 하나에 꽂히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 글을 읽을 이웃님들, 밖에서 책을 꺼냈을 때 혹여 와닿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여지기 위한 행위.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별 수 없이 인간이구나,와 함께 그래서 좀은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 그러지 않고 싶어지기도 한다. 시작은 그저 (필요는 없지만)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지라도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자(이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는 하다) 서둘러 레벨업을 해야 겠다는 욕망이 생겨버렸다. 그 바탕에, 사실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이만큼요,가 있다.(두번째라고 해서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ㅠㅠ) 한마디로 인정 욕구 + 과시 욕구다. 결과물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지(?) 객관적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결국 자기만족이겠지.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라기보다는 과정과 행위에 대한.
커버를 다 만들고 책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추를 달거나 고정끈을 만들거나 해야 하는 필요를 느꼈다. 판매되는 북커버들에 똑딱이나 고정끈이 있는 이유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실과 코바늘을 꺼냈다. 코바늘로 뜬 팔찌는 어느 정도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 책에 끼우면 웬만큼 고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별 생각없이(라고 쓰고 열심히 색을 골랐다고 읽는다. 이런 거 하나도 나는 얼마나 별 생각없다고 쓰는지.) 근처에 있던 녹색과 갈색실을 합쳐서 끈을 뜨기 시작했다. 절반쯤 뜨고 커버에 맞추어 보는데 색이 이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런. 일단 뜬다. 끈은 몇 개라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단추를 달까 그냥 통으로 이어버릴까를 고민하면서 세로고정할 수 있는 길이 하나를 떴다. 어제 본 합창경연이 생각났다. 참가팀 중에 음악을 전공한 주부&엄마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이 있었다. 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출전했다. 연습기간에는 아이를 등에 업고, 가족에게 맡기고, 돌아가며 봐주었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보고 듣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지 못하고 중단한 채 집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있구나. 답답함과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저렇게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갇혀 살고 있구나.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아까운가 말이다. 끈 색을 바꾸어 다시 가로끈을 하나 더 뜨면서 만약 내가 어릴 적부터 뜨개를 꾸준히 해왔다면 지금 전문가가 되어 있겠지, 뜨개 뿐이랴, 하는 부질없지만 쓸데없지는 않은 생각을 했다. 나도 아깝다. 그들도 아깝다. 저기 너머 여성들도 모두, 아깝다.
완성된 고정끈 색이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다. 살짝 색을 바꾸어 다시 가로끈을 떴다. 단추도 달았다. 통으로 연결하면 다른 책에 사용하지 못하니 조금 넉넉하게 떴다. 이쯤에서 북커버의 단점을 말해야겠다. 책을 펼치면 손에 쥐는 느낌이 불편하다. 책 크기에 꼭 맞는 커버라도 펼쳤을 때 책과 천 사이가 뜨게 마련이다. 책에 촥 붙지 않아서 조금 신경쓰인다. 책을 덮어두면 예쁘지만 계속 덮어둘 것도 아니고, 크기고정커버는 조금만 판형이 다른 책에 씌우면 책과 커버가 겉돌기 일쑤다. 이런 걸 왜 사고 만들고 하는 걸까? 완성 후 또 질문을 던진다. 이제 안 만들어야지, 끝! 이래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간다. 아, 다음에는 책 크기에 고정할 게 아니라 여러 책에 맞게 책날개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야 겠다. 그러자면 보자, 음 이렇게 접어서 이렇게 고정하고 거기에 고무밴드를 달고... 응? 또 만든다고? 아니 도대체 왜??? 책이 더러워지는 게 싫으면 가지고 나갈 책만 종이로 싸주면 되지 않나? 이뻐보이지만 실용적이지는 않은 천커버(혹은 뜨개커버)에는 왜 욕심을 내는 것일까? 자기만족, 인정과 과시 말고 또 무엇이 더 있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1.이렇게 글을 끝내려고 하는데 지금 막, 책을 펼쳤을 때 천과 책 사이가 뜨지 않게 만드는 기가 막힌(?)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이걸 시도해봐? 말아?)
(2. 그 기가 막힌 방법을 조금 더 머릿속에서 발전시켰더니 책에 단추 모양만큼의 자국이 생길 것같다.)
(3. 일단 보류.)
(4. 3을 쓰는 순간 2를 해결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천재?)
(5. 4의 두번째 문장은 취소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천의 제 색깔이 안 나와서 포기한다. 두번째 가로끈 장착. 여행 준비 끝. 응?)
(첫번째 세로 고정끈 장착하고 어둠 속에서 찍은 사진. 이게 뭐라고 색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투덜투덜. 역시 사진 하나도 보여지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믿거나말거나 실물이 훨씬 이쁨.ㅋㅋㅋㅋㅋㅋㅋ)
(최소한의 바느질을 추구했다. 그래도 커버 양 날개를 잇는 것과 단추 다는 건 바느질을 해야 했다는.)
(얌전하게 안에 들어가있는 책. ㅎㅎㅎ)
(뜨개고정끈은 여차하면 팔찌로도 사용 가능.)
(짐승일기 한정 북커버 뻘짓 끝! 그런데 어제도 나는 뻘짓을 하나 더 한 것같다? 그거슨 전자책으로 한 뻘짓... 하... 뻘짓은 계속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