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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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100자평을 아직 안 썼다니! 이런...ㅠㅠ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 기쁘고 즐거웠다. 수전 구바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두꺼운 책으로 재독을 기다리겠다. 난 벌써 올초에 읽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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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6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6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두 번 보고 각본집 두 번 읽고 써보는 주절주절.

일차 폭력으로 인한 이차 폭력. 이 말을 떠올리게 만든 인물, 홍산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홍산오, 그는 죽기보다 감옥가기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한 여자 오가인을, 그에 의하면 '사랑'했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사랑했고 그의 방식대로 죽음을 택했다. 죽는 방식도 폭력적이다. 가위, 피, 추락. 그런데 계획한 바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오가인이 보는데서 그렇게 한다. 폭력에 폭력을 더한 셈이다. 자기중심주의라고밖에... 정말 홍산오가 오가인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나? 죽으면서까지 트라우마를 만들어주는 게 사랑인가? 홍산오를 끌어안고 해준을 올려다보는 가인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이게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인가요?"

이 방식은 송서래가 택한 죽음의 방식과 대비된다. 산오의 "... 너 아녔음 내 인생 공허했다"라는 말은 얼핏 감동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사랑고백도 뭣도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항상 '나'가 세계의 중심이지. "여자들은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하고 자요?" 산오의 이 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는 "자요?"다. "(걔랑) 잤니?"와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사귀어요? 도 아니고 결혼해요? 도 아니고 자요? 이 말은 남자들이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사랑 = 섹스) 그래서 중요한 대사다. 해준이 산오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설득을 위해서였거나 말거나 간에. 더군다나 똑같이 비슷한 말을 나중에 해준도 하지 않나. 이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사랑'한다고 믿는 여자들은 철저히 타자가 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사랑.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타이밍은 늘, 맞지 않게 되어 있다. 이성애에 있어 사랑에 대한 생각,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어긋나서 슬픈 게 아니다.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


그러면 서래와 해준은 어떠한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는 상황을 적확하게 본다. 해준의 머리꼭대기에 있다고 말해도 좋다. 사람이 어리석어지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자주 그 지점에 도달해버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순간들을 갖는다. 서래는 남자들의 사랑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해준이 말한 적 없다던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의 사랑이 언제 끝났는지 안다. 그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도, 비겁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초반 서래가 해준에게 보이는 관심과 행동들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호기심,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에 대한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 ("말씀. ... 아니 사진." 해준은 이걸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근거로 삼지만 틀렸다. 서래는 '말씀' 부류다. 해준은 계속 틀린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이라는 말은 관객에게도 유효하다. 여전히 찌질하고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여전히 폭력적이고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전형적인 남자이지만, 그래도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은 맞다. 과연 그런가 생각은 좀 해야 한다. 그저 요리 좀 하고 눈썰미 좀 있다고 해서 과대평가를 하는 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할 지점이다. 잠깐의 호의나 친절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담배. 사랑하니까 이해해준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해준은 동료들에게 폭언,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막상 자신은 피의자를 두드려팬다. 욕설은 하지 않지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서래에게 한다. 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말만 하고 증거를 없애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품위' 있는 남자니까.

어쨌거나 서래는 해준 때문에, 혹은 해준을 위해서, 혹은 해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죽은 게 아니다. 서래는 다 알아버려서 죽었다. 사람도, 세상도. 탕웨이의 아우라에 가려져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방인의 고달픈 삶. 밀입국 중국인. 영화에서는 외국인으로 나오지만 같은 한국여성이라 해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래의 삶이 훨씬 고달플 뿐.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처절함마저도 아우라에 가려졌다. 반면에 서래가 보여준 당당함은 가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자주 부족한 '당당함'. 서래 캐릭터가 갖는 양가성. 혹은 장단점. 어쨌거나 해준이 서래의 죽음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기폭제가 될 수는 있었겠다. 세상은 서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를 이용하고 유린했다. 사람에 대한 약간의 희망을 해준에게서 보았으나 그것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끝의 끝에서 마지막 불이 꺼졌다. 죽음은 서래가 행한 다른 방식의 사라짐이다.

해준은 서래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작고 귀여운' 아내 정안에게는 없는 매력의 소유자. 그가 중국인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국적을 알기 전에 이미 해준은 서래에게 반했으니까. 그가 서래에게 한 말, "서래씨는요, 꼿꼿해요."는 스스로에게 바라는 이미지이다. 남편, 경찰, 아버지로서 꼿꼿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자부심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스로 품위있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없어보인다. 사랑은 투사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투사해 그 환상을 좋아하는. 서래가 꼿꼿한 것은, 우스갯소리지만 등을 잘 굽힐 수 없는 몸을 가져서 그럴 수도 있다.(풋.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는 항상 자세가 '꼿꼿'했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해준에게 매우 중요하다. 마치 그것만이 그의 삶에서 의미가 있어보인다. 이 지점도 매우 중요한데, 남자들은 흔히 자부심을 자존심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준이 '붕괴'되었다고 한 말은 자존심의 붕괴일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채 서래를 범인이라 생각하고(배신 혹은 기만당했다는 자책) 어떻게든 서래가 범인임을 입증해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노력. 어리석고 어리석다... 그렇다면 해준이 서래를 찾아 바닷가를 헤매게 된 이유는? 서래가 범인이 아님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서래에게 사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품위'있는 형사니까. 설령 그가 다시 서래를 만났다 하더라도 뻘소리를 할 확률 100%. 그는 사랑이 무언지 계속 모를 것이다. 정안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서래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해준이 깨달았다고 치고 하는 말이다. 아닐 확률이 높지만.) 해준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서래)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이었고, 서래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해준)이 아니라 서래 자신이었다.

서래가 중국인인 것은 여성과 남성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절묘한 장치였다. 아마 이 부분에서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정안과 해준이 그랬듯이, 가인과 산오가 그랬듯이, 서래와 해준이 그랬듯이. 이 영화의 주제는 여남 간 소통의 불가능성, 바로 그것이다. (뭐 원래 인간 사이에 소통이라는 게 불가능하기는 하다. 쩝)


"뭐라고요? 한국말로 해 줘요."


(한국말로 하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 서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 연수다. 서래와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

+ 서래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건 좀 아쉬웠다. 처음엔 그냥 아쉬웠는데 가만 생각하니 무수한 영화들에서 얻어맞고 상처입고 죽어 사라지는 여성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죽어 사라지는 여성의 재현, 이라서 아쉬운 것같다. 잘 만든 영화인데 군데군데 이렇게 반복재현되는 것들. 현실을 반영해 굳건한 남성의 무너지지 않는 세계와 자꾸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여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어디까지 반영이고 재현이고 어디에서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건지 좀더 고민해 봐야.

+ 해석은 내 마음대로.














(알라딘에는 영화이미지를 올릴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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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9-14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해석에 90%쯤 동의합니다.. 남은 10%는 잘 이해 못해서 그런 걸로.

난티나무 2022-09-14 19:30   좋아요 3 | URL
오 90%! 수하님 더 방가방가 ㅎㅎㅎ
10% 어느 지점인지도 궁금해지네요.^^

건수하 2022-09-14 23:47   좋아요 2 | URL
10%는… 사실 깊이 생각하고 쓴 수치는 아니에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결국 남자와 여자,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뭐 이런 측면에서..

사실 해준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좀 경박(?)하다고 해야하나… 유부남이고 용의자 후보인데 막 초밥 시켜주고 허벅지 보여주는데 여경 나가라고 하고 남의 집 들여다보고 자기 집 데리고 가서 요리해주고… 너무 조심성이 없지 않나요.

그게 그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전 남자의 사랑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니까요.

근데 서래의 선택은 성별만이 아니라 확실히 계급? 어쨌든 상황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해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도 뿌렸고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었을까..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게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도 같았고 언어 소통이 잘 안되는 점도. 이 부분 좋았어요.

난티나무 2022-09-15 00:58   좋아요 3 | URL
아! 맞아요! 그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해준의 행동들, 특히 ‘잠복‘을 빗댄 스토커질! 아 나 경찰이고 잠복할 수 있고 그러면 걔를 볼 수 있는 거구나! ㅠㅠ
경박하다는 표현, ㅎㅎㅎ 속은 그런데 겉으로는 품위 있는 척 하는 거. 웃겼고요. ㅎㅎㅎ

서래는 이미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 길목에 해준이 있었던 거고요. 어쩌면 임호신을 만나기 전에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수하님 댓글 보니 해준을 좀더 깔 걸 싶네요.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14 18: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리고 제게는 아주 음, 정확한(?) 아 어떤 단어가 좋으려나, 아무튼 동의할만한!!! 해석이라 보입니다. 저는 영화를 한 번 봤고 각본집은 슬쩍 들춰보기만 해서, 제대로 다시 뭔가 느끼기 위해 한 번 더 봐야하나? 생각하지만 한 번 더 보고싶진 않더라고요. 너무 좋은 글이에요, 난티나무 님. 크-

난티나무 2022-09-14 19:45   좋아요 4 | URL
사람들이(여성들이 ㅎ) 자꾸 보고 또 보고 한다니까 은근히 나도 더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더 드는 듯해요. 저도 그랬고요. 처음 봤을 때 흥~! 이랬기 때문에 ㅋㅋㅋㅋ 다시 본다고? 그랬거든요. 풋. (저는 아마 더 잘 ‘비판‘하려고 다시 본 거...ㅋㅋㅋ 좋아서 다시 본 것은 확실히 아님...ㅎ)
이 영화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알겠어서 조금은 슬프기도 했어요.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숫자)이 극소수라 느끼는 것처럼 영화를 곱씹는 여성들도 아마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도요.^^;;;

다락방 2022-09-14 1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만, 저는 여기에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파괴적이긴 했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상대의 마음과 기억에 각인되는 그런 사랑이요. 그 사랑은 결코 제가 할만한 사랑은 아니지만, 서래가 선택한 건 저는 극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자기파괴적인 그러나 극진한, 영원히 기억될만한 그런 사랑이요. 그런데 이건 난티나무 님 말씀처럼 서래가 서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니, 궁극적으로는 그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9-14 21:2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어떤 형태이든 사랑이 있죠. 다만... 서래는 사랑을 했지만 해준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어떤 것이) 사랑인 줄 모르는 사람으로요. 그리고 아주 조금 서래의 사랑도 의심(?)이 가는데, 왜냐하면 처지가 너무 안 좋고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이 엿보이는 해준에게 끌린 건 아닌가, 방어기제로써? 무의식적으로? 하하 그런 생각도 해보았더랬습니다. 아무튼지간에 서래는 해준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을 시작하는데 해준이 멍청하게 말을 해서 현실을 깨닫게 되잖아요. 다르지 않구나... 그래서 미결사건으로 벽에 사진 붙여놓고 잠 이루지 못해라, 하는 말이 저는 좋았어요. 딱 그만큼이 해준의 사랑(?)이고 서래는 그걸 아는 사람. 거기서 더 나갈 수 없는 사람이 해준이라는 걸 아는 사람. 이 지점은 계급과도 어느 정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사랑에서 계급을 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탕웨이 아우라가 가려버린 부분이 이 계급이기도 하고요.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듯해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니까요.^^

공쟝쟝 2022-09-15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 같은 남자는 나같은 여자와 결혼해주지 않으니까요…
저도 많이 동의하는데.. 그래서 사랑 안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영화 보면서 사랑하고 싶었어요!!! 난티님 평 너무 좋으네요! 정확하기도 하고 그래서 뼈아프기도 하고요.

난티나무 2022-09-15 16:5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세요!!!!! ㅋㅋㅋㅋㅋㅋ
우리와 사랑을 나눌 사람 음 여성 제외하고, 과연 있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따아...

공쟝쟝 2022-09-15 17:45   좋아요 1 | URL
없다고 말하자 그것이 현실!

얄라알라 2022-09-1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보니까....˝없다. 없다˝의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난티나무님께서 이렇게 적어 주셨네요..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_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9-19 19:55   좋아요 0 | URL
없다, 그쵸. 없다... 흑흑흑
몸은 좀 괜찮으세요?^^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시대 리커버
권명아 지음 / 책세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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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판, 2021년 개정판. 오래된 책이지만 근대 한국의 가족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근대 남성작가의 소설, 신경숙과 배수아 소설 분석도 흥미로웠다. 다만 문장이 잘 읽히지 않고 마치 어려운 번역체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별을 하나 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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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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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던져놓은 문장이 미끼가 되어 한없는 고민의 늪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는 책. <길 잃기 안내서>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솔닛은 그의 글 가운데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 그렇게 독자 스스로 어떤 길에 서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지도. 옮긴이 김명남이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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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왜 쓰는가"와 동격의 물음이다. 나의 삶과 글쓰기와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 나의 글쓰기 태도는 어떤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가.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나의 글쓰기는 어떤 사고방식 때문에 가능했는가." " (10) 



바로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들이 있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 단순함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답은 늘, 왜, 한두 문장으로 명료하게 끝나야 하는가? 사람들과 만나고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고(반대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도 마찬가지) 돌아와서도 계속 그 질문을 생각한다. 내가 한 대답을 떠올리고 그 대답이 충분치 않았음을, 혹은 조금 어긋났음을 깨닫는다. 아차 혹은 에잇 싶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 나에 대한 이미지 하나를 만들어 돌아갔다. 다음에 만나 다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그의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내가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왜 쓰니,라고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샘의 다른 책 제목처럼 나는 "나를 알기 위해 쓴다",가 가장 적절한 대답 같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모르겠다. 지금은 계속 분열하는 나를 찾으려고, 살피려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잘 보려고, 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보려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내 생각은 지금 어떤지, 어떻게 변화해갈 건지를 보려고, 이해하려고, 분노하려고, 반성하려고, 그러기 위해 혹은 그러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고, 좀더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내 말과 행동과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나에게 이해시키려고, 조금 더 편해지려고... 이런 이야기를 '너는 왜 쓰니'라는 질문 앞에 즉각 늘어놓을 수 있나? 없다. 나는 즉답의 능력이 한참 부족해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대답하지 못하는 성향이 앞으로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 이불킥이 줄어들 거라는 믿음, 그거 없이 어떻게 살아?) 


왜 쓰는가, 보다 "나의 삶과 글쓰기와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에 더 꽂힌다. 써야 한다는 강박 비스무레한 것이 생겨버린 지금은 책 읽고 나서 무조건 쓰기, 읽으면서도 메모하기, 지나면 잊으니까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기, 스치는 생각을 잡아채서 끄적거리기, 등등을 시전하면서 왜 보다는 어떻게를 더 고민하게 되는 듯한데 사실 이 어떻게,도 고민한다고 해서 짜잔 어떻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아서 때로 끄적거려놓고 차마 플랫폼에 올리지 못하는 글도 있다. 어떻게든 나는 '살고' 있고, 그것을 쓰고, 쓰는 와중에 내가 속했거나 아니거나 한 사회에 대한 내 생각도 거기 들어가게 마련이니 뭐 단순하게 생각하면 셋이 불가분의 관계, 그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그냥 글이 내 삶이고 사회고 뭐 그런 거지. 거꾸로도 마찬가지. 셋이 한몸 속에 들어있는 것. 조심해야 할 것은 언어의 한계와 제한성.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언어에 의해서(만) 물질,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가 존재를 가능케 한다"(12)는 정희진샘의 말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흔히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도그마와 다양성을 대립하는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각각의 다양성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틀린 생각을 다양성이나 취향으로 옹호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처럼 탈정치적이고 무의미한 말도 없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여혐이 있으니 남혐도 있고, 구타당하는 여성이 있으니 구타당하는 남성도 있다"는 말은 논리도 현실도 아니다." (20)



논리도 현실도 아닌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답답하다.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모두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팩트를 팩트로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한숨이 나오고 그만 절망하는 단계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오곤 한다. 누군가는 아예 말을 말라고 하고 누군가는 아예 관계를 끊으라고 하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모든 관계를 끊으면? 그것도 지향해야 하는 바는 아니지 않나? 세상은 어떻게 변할 수 있나?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리면 지구는 벌써 멸망하고 인간의 흔적은 싸그리 없어지고 없을 텐데. 그러나 스스로 각성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각성할 수 있게 뭐든 하나씩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이 책의 다른 제목이 있다면 '공부란 무엇인가'이다. 아는 것을 버리자. 자기 입장에서 출발해 경계를 넘어서자. 우리 모두 트랜스포머(trans-former)가 되자!" (24)



아는 것을 버리는 일은 지금껏 안다고 믿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몰랐던 새로운 것을 깨닫고 지식을,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과정이라고 풀이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혹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이 곧 변화하는 지식 혹은 의견일 수 있다... 자기 입장에서 출발, 우선 내 입장 내 위치를 깨닫는 것. 경계 넘어서기도 실천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매사 염두에 두지 않으면 자칫 내 위치를 망각할 수도 있으므로 또는 함부로 행동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런데 어째서 이 어렵고 어려운 일을 '아는' 사람만 해야 하는지. 여기서부터 혹은 여기에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 있(었)을까? 




+ 9쪽 인용구에 대해서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어야 해.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 장춘익 " 

-> 이 구절 난 좀 맘에 안 드네. 왜냐. 이건 완전히 남성의 시각으로 보는 페미니즘이 아닌가 말이다. 페미니즘도 철학이고 가치관이고 학문이다. 이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남성사회 남성지식인인데(아 가부장적 마인드를 가진 여성들 포함)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 신뢰를 받으라니, 이런 황당무계한 말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려면 어차피 다른 분야도 다 공부해서 지식뿜뿜해야 되는 건 맞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여성학자들 대체로 다 똑똑하잖아! 박식하잖아! 그걸 인정하기 싫으니 저런 말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고 공감도 안 됐다는. 물론 정희진샘은 여러분 공부하세요, 많이 하세요, 이걸 강조하려고 가져오셨겠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알아챘지만. 아님 이렇게 까라고 가져오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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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9-13 0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님.. 우리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장춘익 ㅋㅋㅋㅋ 저거 나 불만 이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하님 댓글에 나는 맘에 안든다고 달아놨는데 ㅋㅋㅋㅋ 여기서 내 맘 같은 말 똑 나오네요?
이 책 좋죠? 하하. 너무 좋습니다. 난티님 글 보니까 더 좋아요!!!!! 여기는 오늘부터 연휴 끝나고 또 일상이 시작됩니다. 건강 잘 챙겨가며 공부열심히 하세요~!

수이 2022-09-13 09:47   좋아요 3 | URL
수하님도 좋다 했고 단발님도 좋다 해서 저도 좋다 했는데 아 저렇게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허허허. 그런데 장춘익 아저씨가 왜 저렇게 말했는지 전 알 거 같아요. 물론 남성의 시각일 수도 있지만. 한나 아렌트 언니도 그렇고 다른 언니들도 그렇고.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리려면 다른 쪽 공부도 잘 해야하고 그래야 다른 이들이 네 말에 좀 솔깃해지지 않겠느냐 이런 뜻 아니었을까요. 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데 페미니즘은 읽는 이들이 정말 제한적이라는 걸 다시금 느껴요, 요즘 들어. 나도 읽어봐야겠군요. 저 책. 결국은.

건수하 2022-09-13 10:3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 새벽에 일어나 난티님 글 보고 좀 놀랍기도 하고 찔리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는 못 달고 공쟝쟝님 글 댓글에 달았어요.

장춘익 님이 남자 분이라 그리고 직접 들은게 아니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저도 아래 비타님 말씀하신 정도의 뜻이었다고 생각.
정희진 님이 까는 뜻에서 얘기하신 게 아니었다면요. 그 분은 까려면 그냥 까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생각해 보면서?

공쟝쟝 2022-09-13 10:35   좋아요 1 | URL
일단 남자는 깐다 ㅋㅋㅋㅋㅋ 난 아인슈타인도 깐다 ㅋㅋㅋ 하이젠베르크도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농담이고, 전 딱 하나요! 좀 편해지면 안돼? ㅋㅋㅋㅋ 좀 편하게 살자는 거죠 ㅋㅋㅋ 그리고 남자 설득할 필요는 없는 듯요 ㅎㅎ 남자는 남자가 설득해야죠ㅋ 여자는 자아에 집중하자고 필리스 채슬러가 여성은 당분간 여성중심적이어야 한다고 거다러너가 말씀 하셨습니다 ㅋㅋ 솔깃하게 만드는 건 나중에. 일단 나 먼저 나를 사랑하는 페미되기 ㅋㅋ 나 그거 하려고요 ㅋㅋㅋ!!!

수이 2022-09-13 10:42   좋아요 2 | URL
아니 남자들을 설득하자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 알고 페미니즘 읽는 여자들 진짜 극소수, 전 남자들보다 같은 여성들 입장에서 말한 거예요. 페미니즘이 왜 필요해? 난 여자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한걸~ 이라고 말하고 생각하며 사는 여자들이 팔할 이상이라고!!

공쟝쟝 2022-09-13 10:4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정말? 내주변은 다 이기적인 페민데 ㅋㅋㅋㅋㅋㅋ 다 자기 입맛대로 한남 팰 때 페미 가져다 쓰고 책읽는 사람은 거의 없음ㅋㅋㅋㅋ (근데 난 걔들이 맞다고 생각해요 ㅋㅋ) 오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해서 남 책읽는 거 배아파하는 그심성 연구해봐야겠다 ㅋㅋㅋㅋ

건수하 2022-09-13 10:47   좋아요 2 | URL
비타님 마음 이꼴 제 마음 ㅋㅋㅋ

남성보다 여성 설득이 먼저죠.
팔할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ㅠㅠ

공쟝쟝 2022-09-13 10:46   좋아요 1 | URL
아 가부장제 부역이 그래서 나온 말이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기혼페미 귀하신 분들 ㅋㅋㅋㅋㅋㅋㅋㅋ !!!!!!!!!! 완전 💕💕💕💕💕💕💕

수이 2022-09-13 10:54   좋아요 2 | URL
페미는 여성들이란 카테고리 자체만으로 봐도 극소수라고 봐요. 제 친구들 중에 여성주의 읽는 이들은 알라디너 동지들이 전부, 아무리 여성 서사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해도 이게 전반적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릴 거예요. 제 생각이지만.

공쟝쟝 2022-09-13 10:50   좋아요 1 | URL
비타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는 미래가 환영하는 사람들~!! 역시 50살의 쟝쟝이 적중하네요?! 저는 지금도 미래도 행복하려고요!!!! 암튼 설득하는데 에너지 빼지마요 ~ 자기 자신이 되어요~ 나는 고구마다 행복한 고구마 흥얼흥얼

단발머리 2022-09-13 12:33   좋아요 3 | URL
장춘익님 말을 전한(전하는 형식이었음) 정희진쌤의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속 저 문단을 읽어본 사람으로서(에헴) 정희진쌤의 의도는 까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고요. 정희진쌤이 장춘익 선생님의 제안을 ‘긍정‘하신 걸로 보입니다.

다른 거 다 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정희진쌤이 개인의 발명, 자본주의, 근대의 탄생, 탈식민주의, 환경주의, 마르크스, 푸코, 해러웨이, 스피박, 니나 유발-데이비스, 코젤렉, 클라스트르는 모르시고 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케이트 밀렛, 파이어스톤, 이리가레만 이야기한다면 좋아하실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없을걸요, 아마? 나는 선생님의 지식이, 선생님의 존재가 지적인 열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거든요. 그건, 장춘익 선생님의 제안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원리이기도 하구요.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가 근사해졌다는 의미.... 로 전 이해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9-13 20:33   좋아요 2 | URL
아...저도 장춘익 님의 말을 배움의 자세에 돌입하려고 하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고 쉽게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글을 읽다 보니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완전 다른 책을 읽은 듯한 느낌도 들어 책을 읽을 때, 좀 더 신경 써서 읽어야겠구나! 깨닫고 갑니다ㅋㅋㅋ

난티나무 2022-09-13 22:19   좋아요 2 | URL
와 이 분들~!!!!! ㅎㅎㅎㅎㅎ

공쟝쟝님)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는데 맘에 안 들잖아요, 그쵸? 왜 페미니즘 자체로는 인정 못 받아? 페미니즘이 얼마나 심오하고 어려운 학문인가요? 왜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이런 반발심 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남자는 깐다! 이거도 저랑 비슷 ㅠㅠ 어째요 ㅋㅋㅋㅋ) 설득 필요없다는 말에 공감은 해요. 왜냐! 설득이 안 됨! 남자도 여자도! 설득보다는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그것 또한 내 마음대로 안 됨... ㅋㅋㅋ

비타님) 그쵸그쵸 우리 모두 무슨 말인지 다 너무 잘 알죠.ㅠㅠ 그래서 문제...ㅎㅎㅎ
페미니즘 왜 필요함? 나 여자라서 넘 행복해! 이거 저도 진짜 ㅠㅠ 팔할 이상이 모두 행복하다고 여기지는 않겠지만 ㅋ 그만큼 많은 거 맞는 거 같아요. 위에도 썼지만 설득 전혀 안 되고 ㅠㅠ 씨알도 안 먹히고 ㅎㅎ 가족도 친구도... 그러나 그렇다 치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제 저녁에는 주방에서 식구 셋을 상대로 혼자 페미 주장! ㅎㅎㅎ 그 순간만은 세상 외롭더이다. 끙. 만약 정말 제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식구들이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9-13 22:29   좋아요 2 | URL
(넘 길어져서 중간에 댓글 자르면서 쓰고 있음 ㅎㅎㅎ)

수하님) 아니 왜 댓글 못 다셨어요? 막 얘기해도 괜찮은뎅요!!^^
인용구의 말은 무슨 말인지 모두들 너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도 저 말을 만약 여성학자선배언니가 한 거라면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랬어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요. 장춘익님이 남성이라 그런 것이 아닌 거죠. 그 분도 현실을 넘잘알, 정희진샘도 넘잘알, 그러니 인용하셨을 거라고 보고요. 음 그런데 정희진샘도 못 까는 거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 가끔 합니다.ㅋㅋㅋ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을! 이것도 맞는데 설득 안 되기는 진짜 마찬가지인 듯해요.ㅠㅠ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딱 적당한 표현 아닌가 싶네요. @@ 설득하는데 에너지 빼지 말라는 공쟝쟝님 말씀이 맞아요. 에너지 엄청 들어요. 그러나... 아예 딱 끊는 것만이 답인가는 좀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저도 단발머리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원리를 페미니즘 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독 날 세워 들이대는 느낌 너무 많이 들어서요. 인용구 아니라도 일상에서도 그렇고요.
‘긍정‘하셨다는 말씀, 맞아요. 저도 그런 뉘앙스로 이해했어요.^^


난티나무 2022-09-13 22:31   좋아요 3 | URL
책 읽는 나무님) 같은 문장을 읽어도 생각이 다 다른 것이 독서의 묘미 아니겠습니까.ㅎㅎㅎ 누가 더 맞고 누가 덜 맞고가 아니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바가 다른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