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몇번 감았다 뜬 듯한데 오늘이 6월 하고도 27일... 재독이기는 하지만 처음 읽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글을 쓰지 못해서 시작 알림과 동시에 감감무소식.ㅎㅎㅎ 아닙니다, 읽고 있어요. 읽고'는' 있어요. 밑줄도 새로이 많이 긋고 있답니다. 화들짝, 27이라는 숫자에 놀라 되는 대로 책을 펴고 밑줄 몇 군데 가져와봅니다. 인증 페이퍼..^^;;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에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138~139 / 4. 여성노예)


"남성들은 그들의 직업 혹은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에 근거한 계급위계 속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의 계급위치는 평범한 외관상의 표시 - 복장, 거주지역, 장신구 착용 혹은 장신구 없음 - 에 의해 표출된다. MAL§40 이래로 여성들에게 계급구분은 그들을 보호하는 한 남성과의 관계 - 혹은 그런 관계가 없음 - 와 그들의 성적 활동에 근거하고 있다.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들'과, 남성들에 의해 보호되지 않은 채 거리에 나가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자유롭게 파는 '평판이 나쁜 여성들'로 나눠진 것은 여성들에게는 기본적인 계급구분이었다. 그것은 하층계급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성적 억압과는 대비되는 상층계급 여성들의 제한된 특권을 표시했고, 여성들을 두 개의 집단으로 분리하였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여성들 사이에 계급동맹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였고, 페미니스트 의식이 형성되는 것도 막았다."

(248 / 6.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고대국가는 가부장제의 형태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계와 계급특전은 국가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데 근본적이었다. 따라서 감히 베일을 쓰고 거리에 나타나는 매춘부는 불온한 병사나 노예만큼이나 사회질서에 큰 위협이었다. 딸들의 처녀성과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정절을 지키는 부인들은 사회질서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가장들에게 남아 있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MAL§40을 통해 국가에게 맡겨졌다. 기원전 1250년경부터 줄곧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쓰는 것에서부터 산아제한과 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는 가부장적 권력의 본질적 특성이 되어왔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 중 하나이다."

(249 / 6.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베일', '산아제한과 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 이런 말들이 요즘 세태와 겹쳐져서 그냥 읽고 넘길 수가 없네요. 모두 비슷한 마음이실 듯.ㅠㅠ 


이제 8장 가부장들(285) 들어갑니다. 4일 남았지만 완독 가능할 거예요.^^;;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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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6-27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8장 들어갑니다~~ 제가 밑줄 그은 부분이랑 겹쳐서 반갑네요^^

난티나무 2022-06-27 21:21   좋아요 2 | URL
❤️👏👏 독서괭님이랑 진도도 밑줄도 같아서 저도 더 반가워요!!!!!!!

얄라알라 2022-06-28 01:21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난티나무님,

책 읽다 같은 부분 밑줄 친 플친님 만나면 짜릿한 그 기분! 두 분의 열공을 응원합니다.
저는 6월달은 책 표지와만 친해지고 패스 각으로 갑니다^^:;;

난티나무 2022-06-28 02:01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감사합니다~^^
일년여만에 다시 읽는데 왤케 새롭죠.ㅋㅋㅋㅋ
짜릿한 그 기분!!!!
 
안젤라 - 1세대 페미니스트 안이희옥 연작소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된 일상의 기록
안이희옥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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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책을 받은 것이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날 정도니 오래 미루어두었다. 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밤, 책상 위의 어려운 책들에 손이 가지 않아서, 좀은 소설소설한 거 읽고 싶어서,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숙제(?)로 각인된 책을 꺼내들었는데 호로록 다 읽고 만 것. 미뤄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러나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 번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나, 요즘 생각한다. 그러니 첫인상 정도를 적어둔다는 마음으로...^^;; 


지난번 읽은 <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과 방식이 비슷하다고 할까, 문장들이 비슷하다고 할까, 다른 이야기이지만 겹치고 그러면서도 좀더 포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적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한국 현대사의 중요사건들을 짚고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많은 사건들을 이야기에 담다 보니 언급하고 지나가는 느낌도 든다. 이것도 넣어야지, 저것도 뺄 수 없잖아. 그럴 수밖에.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이야기를 갖고 있으니. 같은 이유로 좀은 헉헉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잘 몰라서 그렇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나니 부끄러움이 커진다.


"아녜스가 80년대 세대라면 요세피나는 90년대 세대로서 시대적 억압이 덜한 성장기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대 담론에는 별 관심이 없고 소소한 일상사가 주된 화제였다." (185)


거대 담론과 소소한 일상사는 별개의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러나 90년대에 20대였던 내 모습이 정확히 저기 저 말에 일치하는 듯해서. 앎과 모름의 차이. 그것에 대해서도.




"...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나는 최초의 기억이 이 막막함이야.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 나 혼자 서 있었어. 밤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적산 가옥 마루였던 거 같아. 나는 자다가 깨어 방에서 나와 있었지. 다락의 다다미방에서 아버지가 피리 종류를 불고 있었어. 가냘프고 애틋한 관악기 소리가 슬퍼서 나는 흐느껴 울었어.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은 어린 내가 기어오르기에는 가팔랐어. 막막했지. 가 닿을 수 없는 아버지의 애절한 슬픔. 달빛이 희뿌연 가운데 안개가 낀 듯했어. 나는 울었어, 소리 없이...... 그때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고 놀라서 나를 끌어안았어. 따듯한 어머니 살이 차가워진 내 몸을 폭 감쌌지. 나는 울음을 그쳤어. 거기까지야, 최초의 기억은." (100)


공감하기는 어려운 구절이지만 최초의 기억,이라는 말에 내 최초의 기억은 뭐지, 한참을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최초, 기원, 이런 것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 「저는 한국을 떠난 적이 없는 토종 페미니스트예요. 유학 다녀오신 교수님들과는 경험이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한국 여성으로서 토착적 한이 있지요.」

「어릴 때부터 생선을 먹으면 여자들은 꼬리와 머리 부분을 먹었고, 남자들은 몸통을 먹었어요. 도시락에 달걀도 남자만 싸줬어요. 차별이 심했어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어요.」" (214)


이 부분이 왜 마음에 걸리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지는 정확히 알겠다. 다만 토종,이라는 말은 아닌 사람과 구별짓는 단어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무엇이 토종인가 의문이 생긴다. 말하고자 하는 토착적 한이 저런 것이라면 모르는 여성이 있겠나 싶다. 그러니까 남성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저런 대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


간간이 응? 싶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옳다고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니 섣불리 뭐라 할 수는 없겠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가 오면 그때는 얼마나 다르게 다가올지. 이 어정쩡하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실 수 있을지.




"세 여자는 지금 별 탈 없이 사는 것에 감사하자고, 하루하루 건강 유지에 애쓰자고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자식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 세대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전전 세대, 전쟁 세대, 4·19 세대, 유신 세대, 전대협 세대, 한총련 세대, ·X 세대, · N 세대, MZ 세대 모두 저마다의 과제가 있으니까. 다만 많이 미숙했던 여성 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서로 다독이며 살자고, 가능하면 송이도 자주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267)


위로가 되는 문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도 여성 운동의 하나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롤모델도 더 많이 필요하고 스스로 그렇게 될 필요도 있다. 그러니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여성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작아지지 마! 사라지지 말자고! 주문을 외며, 여전히 비가 내리는 일요일, 우산을 받쳐들고 고인 물 위에 발걸음을 찍으러 나간다. 




(겉표지와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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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드는거 아닐까요? 대부분이 골병들고 억척스럽게 나이가 들죠. 사는게 너무 힘들잖아요.

난티나무 2022-06-27 19: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에요....ㅠㅠ
그래서 그렇게 나이드는 게 여성운동이라는 말이 더 다가오는 것같기도 하고 현실이 힘들고 어려우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도 동시에 여전하고요. 역시 계급... 문제도 걸리고 특권의식이라는 말도 생각나는 지점이에요. 어려워요.^^;;;
 

9장 어머니와 딸

밑줄.

나를 울리고 또 위로하는 구절들…

어머니가 어떤 다른 생각을 하셨든간에(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부분적으로는 암묵적으로 내 편임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또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 당시에 경험하셨다고 후에 내게 말씀하셨던 ‘무감각한 상태‘ 밑에 깔려 있는,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죄의식을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해 쓰기가 어렵다.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묘사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신이 분열되고, 어머니의 피부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처럼 느낀다. 나의 일부는 어머니와 너무나 닮았다. 아직도 어머니에 대해서 깊이 쌓인 분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만한 잘못 때문에 벽장에 갇힌 4살짜리 아이의 분노(아버지가 명령한 것이지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어머니였다), 안면의 틱 증세가 생길 때까지 너무 오래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던 6살짜리 아이의 분노(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우겨서 했지만, 레슨을 시킨 사람은 어머니였다). 내 자신이 어머니로서, 나는 아이의 얼굴에 나타나는 틱 증세가무엇인지 알고 있다 - 그것은 자신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예리한 죄의식과 고통의 칼날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임신하고 어머니를 절실하게 원하고, 어머니가 적에게 가버렸다고 느끼는 딸의 분노를 느낀다.
또한 나는 어머니 안에도 분노가 깊게 쌓여 있음을 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해 걷잡을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분노를 갖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어머니가 되었을 당시의 조건, 불가능한 기대, 임신한 여성에 대한 아버지의 혐오, 아버지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아버지의 혐오감을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 대한 나의 분노는 비애로 바뀌고 그녀를 위한 분노로 바뀌며, 다시 어머니에 대한 분노, 오래되고 정화되지 않은아이의 분노로 바뀐다.
현재 나의 어머니는 항상 어머니가 원하던 대로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할머니이며, 새로운 영역을 탐구 - P252

하며 산다. 어머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살고 있다. 나는 끊임없는 치유를 위해 어머니와 대화를 갖는다는 환상, 치유 받지 못한 아이의 환상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모든 상처를 내보이고 어머니와 딸로서 함께 겪어 온 고통을 넘어서 마침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최소한 나는 어머니의 존재가 현재 얼마나 중요한지, 그동안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20세기의 새로운 여성운동의 초기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당한 억압을 분석하고, 왜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가 아마존이 되도록 교육시키지 않았는지, 왜 우리의 발을 묶어 놓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지를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석은 정확했고 철저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의 모든 정치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분석은, 의식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내부에는 여성의 보살핌과 부드러움, 그리고 승인,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행사되는 여성의 힘, 여성의 향기, 감촉, 목소리, 우리가 두려움과 고통을 느낄 때, 우리를 감싸는 강인한 팔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들 누구라도 크리스타벨 팬크허스트의 말대로,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가를 미리 지불하기로 마음먹은 어머니, 여성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할 자세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갈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의 힘을 느끼려 노력할 때,
우리는 어머니를 필요로 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린 소녀의 외침을 수치스러워 할 필요도 없고 퇴보라고 느낄 필요도 없다. 그 욕구야말로 강한 어머니와 강한 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는 우리욕구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인 시각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다. 우리는 단지, 어머니가 계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편에 있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 P253

만일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혹은 우리를 입양시키기로 작정함으로써, 아니면 생활고 때문에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미쳐서 우리를 버렸다면, 제도화된 모성하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위한 여건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생계 때문에 어쩔 수없이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면, 제도가 요구하는 대로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고, 그 때문에 우리의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청교도적인 어머니가 되었다면, 혹은 아이 없이 살 필요가 있어서 그냥 우리를 떠났다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아무리 용서하고 어머니 개인의 사랑과 힘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 안에있는 아니, 남성이 통제하는 세상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여전히 순간순간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역설과 모순에 맞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어린 소녀의 탐구열을 우리 내부에서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느낌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운동을 해나가는 여성들 가운데서 반복적으로 분출되는 맹목적인 분노와 고통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 간의 자매 관계 이전에, 어머니와 딸이라는-과도적이고 단편적이지만 아마도 근본적이고 중요한-지식이 있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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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정체> 3장 동화, 문명화의 기준이 되다 : 샤를 페로와 여성 작가들의 전복적 역할


밑줄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고전 동화를 들려주며 무해한 시간을 보내지만, 고전 동화의 무해함에 어떤 해악이 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p.110)

페로가 구전 설화의 부르주아화(bourgeoisification)에 이바지한 범위는 페로 자신이 의식한 것보다 훨씬 컸다. 페로는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칠 수 있는 아동 문학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 이야기들』에 들어 있는 8편의 산문 동화의 기원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모티프는 페로시대에 퍼져 있던 구전설화 또는 (민속자료를 차용했던) 스트라파롤라와 바실레 그리고 프랑스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서 발견된다. 페로는 민속적 모티프와 문학적 모티프를 혼합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예법에 관한 자신의 독특한 부르주아적 시각을 제시하려 했다. 이를 통해 페로는 민중적 설화 장르의 내러티브 관점을 농민층의 관점에서 부르주아-귀족 엘리트의 관점으로 바꾸어놓았다. 이같은 상황은 얼핏 보면 별로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동 사회화의 측면에서 보게 되면, 설화의 관점이 변함으로써 아동은 자신의 위치와 섹슈얼리티, 사회적 역 - P86

할, 예절, 정치 등을 인식하는 데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20세기와 21세기에 중류 계급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동화를 반복적으로 들려주기 시작한 이유 역시 이를 통해 설명된다. 이미 남녀 주인공의 경우를 통해서 보았던 것처럼, 내러티브 관점의 변화는 조야한 표현법과 사회관을 세련되게 만드는 단순한 문체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현실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아동동화 장르의 문학적 측면에서 보게 되면, 페로는 설화 속에 등장하는 낯익은 인물과 배경, 플롯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아동의 내면적 외면적 본질의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문명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이미 아리에스와 엘리아스의 저작에서 증명된 것처럼 아동 교육은 명령과 금지를 전달한다는 의도를 점점 분명히 밝혔으며, 페로 동화의 창작 의도는 ‘민중‘으로부터 의사 표현의 통로를 빼앗는 동시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키도록 되어 있는 사회 규약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 P87

강한 소녀가 상징적 제식을 거치는 원래의 설화에서 페로는 혼란과 혐오를 느꼈다. 페로는 이교적 민속 전통에 적대적이었고, 여성을 두려워했는데, 이러한 적대와 공포는 페로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된다. 『신데델라』를 다룰 때 우리는 구전 설화 버전이 동화 문학 버전과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구전 설화 버전은 모계 전통에서 나왔으며, 여기서는 소녀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되찾는 투쟁이 그려진다 (죽은 엄마가 사회를 수호하는 존재로서 소녀를 돕는다). 누더기를 걸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신세로 전락한 신데렐라는 남은 뺨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자기의 불리한 입장을 상쇄하려 한다. 신데렐라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재기를 발휘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데, 이때 그녀의 목표는 결혼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이다. 신데렐라는 바로크풍의 드레스를 차려입지도 않으며, 쉽게 부서지는 유리 구두를 신지도 않는다. 오히려 신데렐라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줄 옷차림을 하고 있다.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가죽 슬리퍼를 되찾고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의 강한 독립적 성격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한편 페로의 동화에서 신데렐라는 자기가 얼마나 순종적이고 부지런한가를 증명하려 하는 인물로 바뀐다. 대모 요정과 왕자가 신데렐라를 구해주는 이유는 그녀가 예절에 신경 쓰기 때문일 뿐이다. 페로는 설화 버전을 조롱하며 수동적 여성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투영(投影)하는데, 페로가 겨냥하는 독자층은 이러한 새로운 여성성을 진지하게 수용하게 된다. - P91

페로의 「더벅머리 리키」를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할 때, 우리는 이 동화가 왜 사회학적·심리학적으로 문명화 과정에 들어맞는 작품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부르주아 사회와 귀족 사회에 속하는 비교적 젊은 여성은 끊임없이 중년을 넘긴 남성과의 정략 결혼을 강요받았다(이러한 남성은 육체적으로 매력이 없거나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둘째, 17세기 말엽이 되면 여성은 잠재적인 마녀형 인물과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교회와 국가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성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위력을 통제하는 것과 악마적 세력을 통제하는 것을 연결지었다. 셋째, 개방적이었던 섹슈얼리티가 은밀한 정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교회가 혼외정사를 죄악이자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했으므로, 성은 숨겨져야 했고 지극히 사적인 어떤 것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제대로 잘 자란아이는 성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페로의 동화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페로 자신이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 나아가 페로가 자기 자신의 성적 충동에 대해갖고 있는 공포를 그린다. 자신의 성적 충동을 받아들이기 위해 좀 더 문명화된 형태로 위장한 것이다. 페로는 자신의 공포와 욕망으로부터 동화의 지형을 만들어낸다. 믿음직하고 금욕적인 남성이 변덕스럽고 무지한 여성을 다스리는 미학적-이데올로기적 구도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다. - P98

오누아의 동화는 모두 도덕적 교훈을 제공하며, ‘미녀와 야수’ 의 테마를 다루는 동화들에서는 페로의 동화에 담긴 메시지가 반복된다. 곧, 여자는 호기심이 많고 믿을 수 없으며 변덕스럽기 때문에 계속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분별력과 신중함에 달려 있다. 여주인공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야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거나 야수의 명령과 기대에 복종하는 것이다. 야수는 고귀한 귀족의 영혼과 올바른 시민의 예절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동화의 숨겨진 메시지는 일종의 명령이며, 오누아를 포함한 그 무렵의 여성들은 이러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종을 거부하면 천하게 여겨지거나 배척당했다. 예법이란 자기 부정이라는 고뇌를 견디는 것을 뜻했다. 남자들은 여성과 섹슈얼리티와 평등에 대해서 갖고 있던 두려움을합리화하기 위해 여성과 기타 억압받는 집단으로부터 자기 표현과 자립성을 박탈하는 규제들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누아의 피네트 상드롱Finette Cendron」 「흰 고양이 The White cat」 「마르카생 왕자」 등과 드라포르스의 착한 여자The Good Woman」 「페르시네트Persinette」 그리고 드 뮈라의 복수의 궁전 The Place of Revenge」 「돼지 왕」 등을 보면, 전복적인 기호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호들은 이 여성 작가들이 남자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자의성을 어떻게 비판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 이 여성 작가들은 엄청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모종의 타협을 행했다. 고전 동화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하나는 여성작가 자신이 남성의 욕구와 헤게모니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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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24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데렐라 구전설화는 전혀 다르군요?! 동화에 대한 이런 다른 시각의 책이 읽고싶었어요^^*

난티나무 2022-06-25 00:41   좋아요 2 | URL
네^^ 신데렐라 뿐만이 아니고 빨간모자 외 다른 동화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절반 가까이 읽었는데 재밌어요!^^

mini74 2022-06-24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화를 통해 은연즁에 남자아이들은 모험을 떠나고 괴물이나 용을 처치하고 땅을 넓히고 보물을 얻고 그런 식으로 여자도 얻지만, 여자아이들은 인내와 순종을 미덕으로 세뇌당하는 거 같아요. 이런 책 좋네요 난티나무님 *^^*

난티나무 2022-06-25 00:44   좋아요 2 | URL
맞아요 mini74님! 세뇌!!!! 지금까지도 17-18세기에 만들어진 동화의 형태가 변하지 않고 읽힌다는 게 참…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책 재밌어요~^^
 

8장 어머니와 아들, 여성과 남성 - 밑줄

우리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원하는가? 가부장제의 가치에 도전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아들들이 어머니의 아들로 남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여성이 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있듯이 그들도 성장하여 남성이 되는 새로운 길을 찾기를 바란다. 아들이 여성을 양육과 부양의 유일한 원천으로만 보지 않는 남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감수성과 굳은 의지를 가진 아버지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들이 아직까지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예외적으로 한사람씩 보이는 것이 희망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를 뿐이다.
제인 라자르는 이런 개인적 경우도 다만 겉보기에만 ‘관심있는 ‘아버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남성들이 사회의가장 중요한 일로서 자녀양육의 책임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아들들과 우리의 아들들이 비가부장적 남성상이 어떤 것인지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아들들이 겪는 고통, 좌절, 애매모호함이 강하고 비전통적인 어머니의 문전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지붕 밑에 살면서도 매시간, 매일 아이들을 버린 것은 바로 전통적인 아버지이다. 우리는 과거 수세기 동안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역사에서도 대부분의 아들들이 가장 진지한 의미에서 - 실제로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 P237

만일 내가 아들들에 대한 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다면 여성의 용기를 가져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상당히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를 가진다. 즉 공적 사적 생활에서, 그리고 그들이 꿈꾸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내면세계와 가부장제라는 외부세계 둘 다에서 새로운 비전을 전개시켜 나갈 때, 점점 더 많은 심리적·육체적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들에게서 보았던 용기를 뜻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커다란 용기가 조그만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여성의 직업이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공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종종 혐오스러운 생각을 하거나 모략을 받고, 미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그 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 전통적인 안전과 보호도 거의 사라져 버린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여성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내적.외적 고통을 예상해야만 한다. 나는 내 아들이 이런 고통에 위축되지 않기를, 남성의 낡은 방어벽 속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치명적인 자기혐오증을 보여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서나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 이 지상에서의 삶을 위해 이런 일을 하기 바란다. - P242

나는 남성을 자녀양육의 전과정에 참여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과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자녀양육이 여성의 일이었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저급하고, 일 같지도 않은 일이라는 인식, 혹은 단지 ‘재미‘에 불과하다는 과거의 인식이 문제이다. 이런 인식 뒤에는 개인적인 감정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의 미숙함이 도사리고 있다. - P243

한편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남성이 ‘사랑의 일‘을 공유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자녀양육과 보육의 일부를 공유한다고 해서 그를 칭송하고 감사히 여기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성이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특별한다고 간주된 적은 없다. 오히려 여성이 부모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범죄로 취급되어 왔다. 이 말은 또한 남성의 자아가 계란껍질인 것처럼, 혹은 동등한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남성의 자아를 보전하는 일이 바람직한 것처럼 남성을 대하는 일도 그만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들처럼 남성들도 칭찬받지 않고도, ‘예외적‘이라고 특별대접을 받지 않고도 우리와 같이 행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사랑‘과 ‘일‘을 분리하는 것도 거부함을 의미한다.
남성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것을 새로운 형태의 사랑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가 증오심으로 행동하고말하며 우리도 ‘그들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보호와 관심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정신적인 젖을 준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오염되고, 탐욕적이고, 지배적이며, 자학적이고, 못생기고, 음탕하며, 동성연애자이고, 매춘부라는 소리를 계속 들어왔다.
우리는 이제 서서히 다른 어떤 여성보다 어머니들이 더 진짜 같아 보인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불신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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