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는 뭐 예전에도 잘 몰랐지만 지금은 더더욱 모르는 상태가 된 듯하다. 3월은 길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서재 달력에는 고작 3일이 체크되어 있다. 나는 무엇을 했던가. 열심히 읽었고 그러느라 그랬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한쪽 눈 상태가 메롱메롱해서 한 이틀 쉬었고 일주일 정도 눈을 아꼈고, 그러다 보니 읽기는 읽었으나 정리하지 못한 책도 있고 쉬엄쉬엄 읽고 있는 두꺼운 책들도 있고 그러느라 머릿속엔 생각만 따박따박 쌓이고.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완독한 책이 몇 없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이 났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무엇을 쓰더라도(쓸 수 있더라도) 설명하지 않는 문체, 부러웠다. 그것만으로 좋았다.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딱히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 무얼까 싶고 부모자식 관계, 무얼까 싶고. 막 슬프고. 그래서 다음엔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으려고. 그러려면 일단 책을 사야 하는데... 음... 
















알리스 슈바이처 <사랑받지 않을 용기> 

완독. 몇몇 단어들 거슬리기는 했으나. 두루두루 여러 의제들을 짚어주어 좋았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책이었다. 벌써 가물가물. 
















네이딘 버크 해리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제목이 책의 내용을 잘 보여준다.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막연히 의심했었는데 과학적 근거와 관찰/연구 결과로 실제 그렇다는 걸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어떻게 아동건강센터(웰니스)를 세웠는지 그 과정을 (지나치게) 늘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 또한 연구의 결과이기도 하므로 인정하면서 (그런 부분들은) 설렁설렁 읽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자잘한 질병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연결된다는 게 어이없으면서 한편으로는 섬찟하다. 어이없는 건 그러니까 지금 내 성격을 이룬 바탕도, 관계를 형성하는 기술(?)도, 세상을 인식하는 눈도, 그밖의 모든 것도 다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왔는데 질병도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고, 그래서 자꾸 무서워지는 거. 맞는 말인데 무섭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되짚어서 풀어내고 털어버려야 하는 건지. 털어지기나 하는 건지. 
















클라리사 에스테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저자 성을 자꾸 에스테바 라고 쓰고 고치고 있다. 에스테스. 

늑대에 대한 선입견도 깨야 겠다는 생각. 늑대 = 나쁜 남자 아니던가. 음흉한. 그것도 다 편견이라고, 그러니까 늑대에 대한. 내 안의 늑대를 찾고 싶어졌다. 있기는 있었나 싶지만 책에서 있다고 하니 되찾고 싶다. 지금의 내 모습, 지금까지의 내 생활, 이런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 책 속의 설화/신화/구전동화 등을 심리적으로 해석한 것은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째서 페미니즘심리학적 분석은 안 되는가, 뭐 이런 생각도. 
















제임스 홀리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위의 늑대.. 책과 연결해 읽었다. 진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쉰이 되어버렸네. 전자책 대여라 확실히 읽고 나서 내 손에 잡히는 게 없고 그래서 남는 게 없는 건지도. 종이책 만세. 당췌 들쳐볼 수가 있어야지, 전자책은. 게다가 대여는. 아무튼 책의 첫인상은... 깊었다,고 해야 인상깊었다가 되려나.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 할 듯.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다르지 않을까. 일단 오 너무 좋아요,는 아니었다. 역시 유년기의 경험, 어린 시절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나도 내가 누군지 이젠 좀 알고 싶으다. 
















낸시 프레이저 외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완독,이라고 하긴 좀 불완전하지만 어쨌든 넣어본다. 끝부분 남성학자들 챕터 두 개 빼고 읽음.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과 논쟁들'이 부제이다. 그대로다. 여러 학자들이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비판하고 거기에 또 프레이저가 반박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남성학자들의 의견이 어이없었고 거기에 '친절히' 설명&반박하는 프레이저의 태도가 조금 답답했는데(왜,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해서) 마지막 챕터에서 통쾌하게 밟으면서 내 이론이 짱이야! 하셔서 ㅎㅎㅎ 속이 조금 풀림. 솔직히 다 이해 못했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 이야기인 거지? 이런 상태. 어렵기는 해도 사회적 분배와 인정의 문제에 대해, 정의와 부정의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독서모임에서 낭독으로 함께 읽지 않았다면 애저녁에 집어던졌을 책. 몇 년 후에 혹여 다시 읽는다면 조금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슬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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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3-24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 얼마만인지요~^^♡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궁금했던 책인데 역시
무거운 느낌이 드네요. <루시 바턴>설명하지 않는 문체에 대해 저도 어제 책에서 읽었는데 반갑고요. 그 책에선 하이쿠까지 갔어요ㅋ 몇권 담아갑니다. 책은 저도 종이책이 더 좋아요. 만지고 펼치고 넘기고 쌓이고ㅋㅋㅋ

난티나무 2022-03-24 17:53   좋아요 2 | URL
너무 뜸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날들이 슉슉 가버리네요. ㅎㅎㅎ
어떤 책인지 궁금한데요? 루시 바턴 이야기하는 책이요. 알려주사와요~^^
스트라우트 책 보관함에 잔뜩 담아뒀어요.ㅋㅋㅋ
종이책이 짱~!!!^^

청아 2022-03-24 17:57   좋아요 1 | URL
아! <루시바턴> 이야기를 한건아니예요.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는 문체에 대해 롤랑 바르트가 얘기하더라구요.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에서 어제 그런 내용을 읽었어요ㅎㅎ
잔뜩 담아두셨다니 저도 꼭 스트라우트 읽어볼께요!

난티나무 2022-03-24 18:03   좋아요 2 | URL
우왕 그렇군요! 롤랑 바르트...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사람...ㅋㅋㅋㅋㅋㅋ
저는 미미님의 글에서 훔쳐 배우는 걸로~^^;;;;;

프레이야 2022-03-24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종이책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오래전 읽었어요
마음에 대체로 들면서 일부분 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난티나무 2022-03-24 17:55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님~^^
늑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말씀 들으니 반가워요~ㅎㅎㅎ
종이책을 사랑하는 서재분들~^^

바람돌이 2022-03-24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의 감동이 좀 식으면 루시 바턴을 읽어야겠어요. 오늘도 제가 모르던 책들이 많군요. 왜 이렇게나 세상에는 좋은 책이 많은지말입니다. 보관함은 날로 날로 빵빵해져 갑니다. ^^ 좋은 책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난티나무 2022-03-24 17:58   좋아요 2 | URL
보관함 넘쳐나는 거 다 비슷비슷할 거 같아요.^^
루시 바턴 이후에 다른 소설들도 보관함에 막 다 담아뒀어요. 저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다음 책으로 읽으려 합니다.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한번 더 읽고 <다시, 올리브>로~^^

라로 2022-03-24 1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을 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는지요!! 난티님도 읽어서 좋아요!! 맞아요!! 설명하지 않는 문체!!! 이렇게 글로 똭 표현해 주시니 아! 그거였나? 싶기도 해요. 막 좋아요!! 이런 표현을 할 줄 아는 난티님도 막 좋고!! 근데 눈을 아꼈는데도 이렇게 마니 읽었어요?? 우왕 나 뭐지?ㅠㅠ

난티나무 2022-03-24 18:02   좋아요 2 | URL
라로님 바쁘신 와중에 책 많이 읽으심서 왜 그러셔요~ㅎㅎㅎ
눈이 너무 건조해서 아픈 거 같아요. 흠흠. 몇 년 전부터 눈의 물기가 확연히 적어졌거든요. 요즘 좀 심한 듯....ㅠㅠ
루시 바턴 읽고 나서 한국 단편 소설을 읽는데 문체 차이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스트라우트가 더 좋아진 것도 있어요.ㅎㅎㅎ 일단 전작 읽기를 해보려고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다시 한번 읽을려고 하고요. 라로님의 좋아요!!를 좋아하는 난티나무입니당.ㅋㅋㅋㅋ

mini74 2022-03-2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시바턴. 저도 정말 이런 소설 쓴다는게 넘 부럽더리고요 대단해보이고. < 불행은 질병으로 >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건강의 빈부격차도 슬펐고요. 리뷰 넘 잘 쓰쎴는데요 난티나무님 *^^*

난티나무 2022-03-24 21:34   좋아요 1 | URL
비슷하게나마 흉내내고 싶은 문체의 소설… 이었어요. ㅎㅎㅎ 필사라도? ㅋㅋㅋ
서재 달력 보고 깜짝 놀라서 ㅎㅎ 읽은 책 정리라도 간단히 하자 싶었어요. 읽은 부분이 적어도 분량이 많지 않아도 좀 써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요.^^;;;
mini74님 고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빈 곳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앞에 가는 차가 열심히 달리면서 비켜주어 내가 앞으로 달려갈 수 있듯이 말이다. (속도가 그 빈 곳을 채우는 데 열심이긴 하지만.) 만약 너와 나 사이에 빈 곳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에게 질식해 이미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말기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누군가 샴 쌍둥이처럼 붙어 있던 우리의 몸을 칼로 베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너와 나 사이의 빈 곳이 우리를 각자로 존재하게 하고, 그 빈 곳이 우리를 다 파먹어, 장차 우리를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해줄 것이다. 빈 곳이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빈 곳 때문에 우리는 미워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자, 역설적으로 너와 나 사이의 이 '빈 곳'이 말할 수 없이 무겁다." (41~42, 김혜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너와 나 사이의 빈 곳은 우리를 얼마나 파먹었을까. 자연스레 '너와 나'의 자리에 남편과 나를 대입한다. 사회가 엉망이어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근심걱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내가 제대로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 버티고 서있기 위해 매일 부딪혀 싸우는 사람은 그와 나, 둘이라서. 김혜순의 글을 몇 번씩 되풀이해 읽어도 이 '빈 곳'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표현하기 어렵다.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 각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 사랑도 미움도 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빈 곳은 그만이 갖고 있는 본질, 그러니까 참자아 같은 건가. 서로의 존재를 뼈아프게 느끼면서 빈 곳이 무거워지는 건가.

그런 말이라면 조금 수긍이 간다. 각자로 존재하지 못해 서로의 기댄 팔을 말없이 갉아먹던 시간이 길었다. 같은 높이로 기댔다고도 할 수 없다. 기대고 싶어 기댔다고도 할 수 없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뻗대어본다. 세상은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도 일러주지 않았다. 삶의 지혜를 배울 롤모델 따위는 없고 그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하는 나쁜 모델만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분노했으나 그나마도 표출하지 않았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그게 사랑이겠거니 했던 관계에 진정한 사랑이 새로이 존재할 수 있는지, 마음의 소리를 찬찬히 듣고 들여다보면서 '빈 곳'을 깨우칠 수 있는지, 최근에야 함께 생각하고 표현하고 시도하고 있다. 이 일은 짐작보다 휠씬 힘들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옳다고 믿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삶의 기준들을 송두리째 바닥에 팽개치고 다시 하나씩 집어 새로운 자리에 꽂아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입당한 사회와 문화의 시선을 버리고 달라진 눈으로, 상대방이 어떤 느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두 글자로 남편과 묶인 지 24년째다. 묶인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서로를 제대로 모르는 채 묶여 살았다. '빈 곳'은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그렇게 했고 그 마음을 거부하는 마음이 그렇게 했다. 지금에서야 서로의 빈 곳을 찾아 돌아보고 인정한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갈 길이 멀고 우리는 겨우 50이다. 서로의 존재를 뼈아프게 느껴서 빈 곳이 말할 수 없이 무거워질 그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자유로운 춤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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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0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 밑줄감
(~33쪽까지 읽고)

여성의 시 언어는 남성의 시 언어와 다르다. 여성의 언어는 이제까지 밖에서 주어졌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터져나온다. 여성의 언어는 본래적으로 위반의 언어인 것이다. 이 위반이 이제까지 있어왔던 서정시의 장르적 특성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것 때문에 여성의 시는 기존의 서정시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습적 인식에 대항한다. 그러나 이 위반의 자리에 서면, 시의 온전한 재료이며, 존재 비평인 언어마저도 여성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엄혹한 현실이 닥쳐온다. 이렇게 부유하며, 쫓기는 그 자리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을 새로이 불러야 하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시 잉태하고, 분만해야 한다.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그 명명의 자리에서 사랑의 아픔으로 뒤범벅된 여성시인의 다양한 발성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 P7

나는 여성시인도 바리데기 연희자와 같은 어떤 상징적인 치름, 그 과정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여성시인에겐 스스로 인지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자신의 여성적 삶의 현실, 혹은 자신 스스로 구축하지 않으면 여전히 남의 현실로만 존재하는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여성시인은 그 순간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 그 병과 함께하는 죽음을 명명해야 한다는 것을 홀연히 깨닫는다. 그리고 그 아픈 몸으로 죽음과 삶의 소용돌이를 치러낸다. 그런 어느 시간의 점, 여성시인은 ‘여성성에 들린다.‘ - P15

영감은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나‘를 통해 ‘나‘를 무(無)로 만드는 기제, 그러나 그 기제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저 바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바깥이 내게로 여릿여릿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열고 여성성으로 들리자 저 바깥이 착각의 소용돌이인 내 안에서 열리는 것이다. 그 순간 영감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아득해지고, 나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져 있는 것만 같다. 먼지처럼 작은 모래 알갱이들만 소용돌이친다. 나는 휘날리는 모래 알갱이들 같은 불모에 휩싸여 사라져버린 나를 부른다. 나는 나와 만났다 헤어지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나는 온전한 정신이 들었다 사라졌다 하는 사람처럼 나를 끌어안았다 걷어차며, 걷어찼다가 끌어안는다. 나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방으로 떨어져가며 말의 새끼줄을 스스로 생산해낸다. 그 새끼줄이 나에게서 뿜어져나와 나를 옭아맨다. 그렇게 끊임없이 새끼줄을 뽑아내지 않으면, 또는 그것에 옭아매여 있지 않으면 나는 영감의 소용돌이에 파묻혀 미치거나 아니면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새끼줄을 끊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그 허방에 목매달려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그 영원한 허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말한 대로 미쳐버릴지도, 아니 벌써 미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절명의 시각, 내가 나라고 믿었던 사랑과 아픔이 모두 깨어난다.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죽음이 보내온 신기루라는 이름으로. 그때 역설적으로 세계가 다시 내게로 살아나온다. 시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아득한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 P23

특히 여성시인이 ‘나‘를 열어 ‘나‘의 그 알 수 없는 심연의 죽음 속으로 빠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심연이 바로 자신의 존재임을, 시를 쓰는 작업이 바로 그 존재성을 자각하는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때, 여성시인은 그 불모의 사막 속에서 ‘나‘를 보내고, 모든 ‘나‘를 불러들인다.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비추며, 모두를 무성하게 한다. 그것은 존재의 결핍이 아니라 부재를 통한 무수한 존재의 발견이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나 모두 있다. 그곳을 여성시인인 내가 방문하는 것이 내 시의 궤적이다. - P25

여성시인의 영감은 이 지상에서 버려진 존재로서의 자신을 유일하게 생산적인 것으로 치환시켜주는 기제이다. 동시에 버려진 아이를 끌어안고, 그 버려진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기제이다. 혹은 죽은 아이를 살려내는 여행을 날마다 감행하는 샤먼처럼 ‘살아 있는 죽음‘ 속으로 스스로 떨어져가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기에 여성시인에게 영감은 남성시인의 관념적인 죽음의 응시, 그 투명한 공간으로의 여행과는 다른 공간으로의 여행을 감행하게 하는, 날마다의 ‘들림‘을 명명한 것이다. 여성시인이 바라보는 죽음, 혹은 무(無) 속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들어 있다. 동양 철학이 궁구하던 무(無) 속에 ‘절대적인 없음‘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듯이, 여성적 영감이 끌어당겨서 홀려가는 여행의 공간 속에서는 언제나 버려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메아리친다. 그 순간, ‘나‘의 죽음은 죽음을 초월해 저 너머로 간다. 저 너머에 있는 죽은 아이인 또다른 ‘나‘를 만나러.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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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22-03-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읽는 책들이랑 연결되어 보여요. 여성시학 (강추), 여성 시하다 (아직 안 읽음)

난티나무 2022-03-06 14:03   좋아요 0 | URL
여성 시하다,는 사려고 보관함에 담아두었어요. 두 권 다 읽고 싶어요!
 
[기역이미음] 김칩스_쯔란 - 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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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왓 저는 왜때문에 이거 맛있죠?!! 서재이웃분들이 겨맛 난다고 하셔서 잔뜩 각오했는데 완전 맛있어!!! ㅋㅋㅋ 이 맛은 호불호 있는 것으로~~~~ 하나만 산 거 후회했슴돠. 또 사고 싶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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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27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술안주는 호불호를 심하게 타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2-02-28 02:1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첫 조각 집을 때 심히 긴장!!!!! 근데 반전!!!!!

잠자냥 2022-02-2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잊고 있던 겨맛 ㅋㅋㅋㅋㅋㅋ 이거 아직도 판매하는군요?!

난티나무 2022-02-28 02:20   좋아요 0 | URL
담에 책 살 때 아직 판매중이면 또 살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겨맛 ㅋㅋㅋㅋㅋ 안 나던데!!!!!!ㅋㅋㅋㅋ

2022-02-28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라질 산토스 디카페인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향은 아주 좋아요. 볶은 콩 옮겨담아둔 병을 열 때부터~ 맛은 향에 비해 조금 평범하다고 느꼈어요. 가격도 저렴하지는 않은데 맛을 좀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알라딘 커피 두어 종류 맛보았지만 모두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미얀 알라딘. 커피집은 아니지만 더욱 분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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