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이다. 아니 진즉 눈치챘어야 했다. 시행착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어쩌겠는가,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법. 모든 것을 알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 무슨 말이냐 하면, 옆지기가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를 들고 갔다는 말이다. <가부장제의 창조>라니, 그 어려운 책을?(나만 어렵나 ㅠㅠ) 페미니즘 책이 대체로 처음인 지금?


처음 책상에 책들을 쌓아놓았던 작년 봄을 기억한다. 책을 오랫동안 사지 못했던 터라 그 책들이 무엇이든 한꺼번에 사서, 돈과 시간을 들여 받아서, 책상에 쌓아놓을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쌓은 채로 두고 즐겼다. 읽기도 전에 뿌듯한 마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나는 그랬지만 옆지기는 책탑을 보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목이 모두 후덜덜한 페미니즘 책이었다.(사실 지금 보면 그리 '쎈'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예를 들면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같은 책 제목들. 여기서 괴물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쉽게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ㅎㅎ 아무튼 책들을 본 옆지기는 페미니즘이다! 와 함께 겁나는데! 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나중에 내가 이혼하자고 하는 거 아닐까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니 그러면 뭔가 켕기는 게 있기는 한가 보지?!)


책들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불확실한 생각과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아나가면서 괴로워졌다. 이미 괴로웠는데 더 괴로워! 나만 괴로울 수 없어!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불만이 쌓이고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를 갉아먹는 짓이니까. 내가 깨어나는 만큼 그도 깨어나야 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든 하지 않든 지금 중요한 건 '깨달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너도 알아야 겠어. 그래야 그동안의 삶이 너에게도 보일 테니까. 세상이 보일 테니까. 각성. 만약 그게 되지 않는다면, 그 땐 어쩔 수 없겠지.


사모으는 책들 중 쉬워 보이는 혹은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을 골라 건넸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책도 공감이 비교적 쉽지 않을까 했다. 의외. 내가 건네는 족족 책들은 다시 돌아왔다. 평소 매사에 비판적이며 어느 정도 냉소를 장착하고 있는 옆지기에게 책들은 거부당했다. 거부. 그는 '남성'이라는 존재를 거부당한다고 느낀 것이다. 너희는 큰 잘못을 저질렀어, 오래전부터 너희는 사악하게 여자들을 짓밟았지, 그런 적 없다고? 그럴 리가, 너의 존재 자체가 이미 특권인 거야, 이미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깊이 가담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듯한 책들을 견디지 못했다. 오케이. 접수. 검색하다 알게 된 책을 주문해달라길래 얼씨구나 하고 샀다. 그 두 권 중 한 권 역시 거부를 당했고 한 권은 아직 읽기 전이다. 스스로 읽어보겠다고 그 나름 노력해 고른 책이었는데 아쉬웠다. 한동안 책을 권하지 않았다. 초기에 <악어 프로젝트> 같은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에 느꼈던 '가까운 거리'는 평소의 거리로 혹은 더 멀리 벌어졌다. 나는 계속 읽었고 어찌됐든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는 제자리에서 고민만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이 그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옹호 발언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 가끔 처절하게 밑으로 가라앉았고 싸움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토론을 나와 격하게 했으며 그 나름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다만 철저히 '혼자서' 고민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함께 읽자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과정에서 말하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껏 그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꼭 말로 해야 알아? 응, 꼭 말로 해야 알아. 말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이 한 문장이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에 전부 적용되지는 않을 수 있겠으나 가족 공동체 안에서만 생각해 볼 때는 확실히 그렇다. 말이 없어지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습관을 부수고 싶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의 기분을 살피는 오래된 나의 습성은 아무리 의식적으로 떨쳐내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말이 필요하다. 대화, 일방적이지 않은. 그러기 위해 매개체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책이었으면 했다. 함께 보는 미디어 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 것들도 물론 매개체가 된다. 이 매개체를 통한 대화가 실전이라면 책을 매개체로 한 대화는 이론에 대한 것이다.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토론을 통해 생활로 나아갈 수 있다. 옆지기에게 필요한 책은 그런 이론서가 아니었을까. 이유를 찾아가는, 역사를 되짚어보는, 혼란 속에서 잣대를 세워줄 탄탄한 이론서. 솔직히 뭔가 증거와 숫자를 엄청나게 들이대야만 그제야 믿을까 말까 하는 남자들의 속성 때문이라고 후려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얼마간 사실이기도 하고. 어쨌든지간에 <제2의 성> 부분을 읽을 때도 그랬고 <가부장제의 창조> 앞부분을 읽고 읽을 의지가 생긴다는 것도 그렇고, 그의 취향(?) 혹은 선호도(?)를 존중하기로 한다. 어려운 책들을 함께 읽을 동지가 한 명 더 생겼다. 나는 지금 <제2의 성> 2권을 들어갈 참인데, 같이 읽는 건 어떠냐고 제안할 참이다. '현대 여성의 삶'이야. 기혼여성에서부터 매춘부와 첩을 거쳐 노년기 여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흥미롭지 않겠니? 그 다음에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어 역사를 다진 후에 우에노 지즈코나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으면 좋겠구나. 마리아 미즈 책 아직 없는데. 책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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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03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저는 부딪치는걸 싫어해서 혼자 읽는 편이예요
이 책 왜 읽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노코멘트,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서로 교집합이 없는 부분은 토론 안해요^^
공감하는 얘기 하는것도 시간이 없는데,,, 그렇다고 그런 책을 읽는 제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
둘다 감정소모를 싫어하는 편 ^^

난티나무 2021-10-04 05:03   좋아요 2 | URL
그러시군요. 저는 교집합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생각해보면 대화같은 대화, 솔직한 대화를 못(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오리지널 마인드> 


목차를 보고 글로리아 스타이넘부터 읽었다. 밑줄긋기. 


***

책소개
가즈오 이시구로로부터 "전세계에서 작가 인터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엘리너 와크텔의 또 다른 인터뷰집. 세계적인 사상가, 작가,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수전 손택, 놈 촘스키, 조너선 밀러, 조지 스타이너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자기 분야를 확장하며 한 시대의 획을 그은 혁신가들의 ‘독창적인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6
들어가며・ 12
조너선 밀러・ 21
제인 구달・ 8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31
조지 스타이너・ 165
데즈먼드 투투・ 217
수전 손택・ 241
아마르티아 센・ 285
글로리아 스타이넘・ 331
재레드 다이아몬드・ 373
올리버 색스・ 415
제인 제이콥스・ 449
움베르토 에코・ 491
메리 더글러스・ 533
놈 촘스키・ 581
아서 C. 클라크・ 613
해럴드 블룸・ 651
참고문헌 ・ 711



와크텔 : 남자보다 여자들이 베트남 전쟁에 더 반대했다는 건 저도 몰랐습니다.

스타이넘 : 네, 훨씬 더 반대했습니다. 더 일찍부터, 더 많이 반대했지요. 사실 특이한 일은 아니에요. 여자들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에 훨씬 더 회의적인데, 부분적으로는 남성성을 증명하도록 키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여성이 더 똑똑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폭력과 공격의 가치를 믿도록 세뇌당하지 않았고, 또 여자가 폭력의 주요 대상이며 폭력이 우리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와크텔 : 페미니즘은 왜 1세대, 2세대와 같이 세대별로 올까요? 그런 면에서 다른 운동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스타이넘 : 저는 운동에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매일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하지만 운동은 격렬하게 일어났다가 동화, 또는 분산의 시기를 거친 다음 다시 격렬하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뛰어난 역사학자 게르다 러너는 어떤 운동이든 백 년 동안 계속되어야 지속적인 효과가 있다고 항상 말합니다. 저는 그런 장기적인 시각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단계를 인식할 수 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저는 인도의 여성 운동이 많은 면에서 간디에게 본보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종종 그렇듯이, 그 사실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았지요. 인도의 여성 운동보다 데이비드 소로가 간디의 모델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저는 70년대 후반에 친구와 동지들을 만나러 다시 인도에 갔는데, 우리는 간디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아주 좋은 전술적 모범이라고, 그의 편지를 살펴보고 여성 운동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출판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간디와 함께 일했던 어느 나이 많은 여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는 엄청난 인내심으로 우리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간디가 준 교훈이 여성 운동에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요. 간디가 아는 것은 전부 우리가 가르쳐 주었으니까요."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도에서도 대대적인 여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성들은

조혼과 사티 (미망인을 죽은 남편의 시체와 함께 화장하는 풍습이지요) 등 여러 가지 병폐에 맞서 싸우면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지지했는데, 여성에게는 비폭력이 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간디가 그 전술을 배웠지요.


와크텔 :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요, 아름답다는 것이 짐이 되기도 합니까?
스타이넘 :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경험은 남자들에 비해 외모가 우리 정체성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다 같이 그러한 관행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생긴 여성이 뭔가를 성취하면 외모 덕분에 남자들을 통해서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하지요. 또 사회가 규정하는 대로 생기지 않은 여성이 뭔가를 성취하면 남자를 얻을 수 없어서 그러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기가 꺾이는 일이에요. 저는 가끔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제가 이룬 것이 외모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기가 꺾입니다. 참 불쾌한 기분이지요. 정말 가슴이 아파요. 저는 이제 예순일곱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도 사라질 줄 알았어요.

와크텔 : 쉰 살, 예순 살 이후의 삶은 "다른 나라" 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고, 또 늙었기 때문에 우울하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분노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더 급진적으로 변했다고 하셨지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스타이넘 : 네, 그렇습니다. 저는 여자들이 보통 그런 경험을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대부분은 일반적인 패턴 남성의 패턴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역전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반항적이고 나이가 들면 더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패턴 말이에요. 여자들은 젊을 때 보수적이다가 나이가 들면서 반항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확실히 그래요.

와크텔 :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더 반항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스타이넘 : 문제를 더 많이 겪었기 때문이지요. 이제 여자라서 채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듣지는 않지만, 12년에서 15년 정도 지나면 유리 천장에 부딪치거나 핑크칼라의 밑바닥 일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남자들이 당신을 추월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니 급진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30년 동안이나 법을 바꾸기 위해 애쓴 끝에 요즘은 평등한 결혼을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다시 불평등해집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을 급진화시키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나이 자체도 물론 그렇지요. 아직까지도 나이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불이익을 줍니다.

와크텔 : 그렇다면 페미니즘 때문에 오히려 결혼이 독립적인 여성에게 더욱 현실성 있는 선택지가 되었군요.
스타이넘 : 저는 그렇게 될 거라고 항상 말했습니다. 60년대 후반에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이혼의 원인이라고 말하면 저는 이렇게 말했죠.
"아니, 이혼의 원인은 불평등한 결혼이에요." 페미니즘 덕분에 사상 최초로 사랑이 가능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사랑처럼 보이던 것이 사실 사랑이 아닌 경우, 의존이거나 선택지의 부족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므로 평등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관계라는 의미의 사랑은 페미니즘에 의해서 가능해졌습니다.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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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피곤하다는 의식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내뱉고 행동했던 것들, 툭 하면 살 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말하던 주위의 여자들 이 떠오른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나도 죽을 때까지 어이구 이 똥배 좀 봐, 이거 먹으면 살찌는데, 오늘부턴 저녁을 좀 줄여야 겠어,를 입에 달고 살았을 수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내 몸을 미워하고 부정하고 낙인찍었을 수도 있었다. 70이 넘은 나의 엄마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렇다. 어쩌면 엄마는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알면 무척 억울할 테니까. 


<욕구들>을 함께 읽으며 옆지기와 대화를 나눈다. 여자의 일상, 끝도 없이 머릿속을 울려대는 세상의 잣대들을 자신에게 들이대며 사는 일상에 대해. '자기 비난의 목소리'. 여자들의 머리 속에서 매일을 지배하는 목소리. 일상이 되어버린 목소리.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설명과 표현에 애를 먹는다. 모르기 때문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커다란 구멍을 메우기에 나의 말은 너무 성기다. 여자들의 말하기는 아직 멀었다. 훨씬 더 많이 말해야 한다. 구석구석 핵심과 맥락을 콕콕 짚어내야 한다. 


거식증 환자였던 캐롤라인 냅의 글에서 옆지기는 거식증을 염두에 두고 읽는 듯했지만 나는 거식증이라는 행위보다 딸과 엄마(부모)의 관계,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인정과 사랑에의 욕구, 여자들을 '조종'하는 세상의 모든 것 들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한다. 거식증은 결과로 나타난 행동 혹은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행동일 뿐이다. 누군가는 손목을 긋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매일 남자를 찾아나서기도 한다고 냅이 말했듯이 이런 행동들은 분명 스스로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용기와 타인의 시선을 거리낌없이 받아칠 수 있는 배짱이 생겨야 없어지지 않을까.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면 사정은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여정이 너무 길고도 힘들다. <배움의 발견>의 타라가 떠오른다. 현실을 부정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라가 선택했던 행동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직시하기 위해 그 역시 긴 세월이 필요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어째서 지독한 괴로움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욕구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문장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읽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한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역시 종이책으로 사야 할. 그래 첫번째 읽기라 생각하고 좀은 설렁설렁 읽은 감도 있다. 옆지기는 행간 사이 의미의 간극이 크다며,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어려운 철학책을 읽을 때의 기분. 그 기분 이해한다. (나는 냅의 그런 글쓰기 방식이 좋았다. 문장 하나에 멈춰서 오래 생각해야 하는 일이 잦았는데 옆지기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간극이라고 말한 듯하다.) 

나중에 알라딘 어느 책 리뷰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저자는 공부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납득이 가지 않거나 생경하게 다가올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전한다."(<세미나책> 리뷰 중 https://blog.aladin.co.kr/712851116/12724109) 딱 들어맞는 말인 듯해 톡으로 보내주었다. 


다음으로 옆지기와 함께 읽은 책은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이다. <욕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여성의 외모, 꾸밈, 다이어트 등의 이야기가 함께 나온 터라. 평소에도 조금씩 의견을 나누던 소재니 이참에 이런 책도 읽어보자 싶었다. 


* 가벼운 혹은 얇은 책이라면 일주일에 한 권씩 읽자고 옆지기가 말했다. 나야 물론 콜. 둘이 읽는 이 모임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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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3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간을 같이 나누는 이와 책까지 나눌 수 있다면, <욕구들> 읽으신 시간이 더욱 오래 기억나실 것 같네요. 계속 진행형이 될 거라고 하시니 부러운 맘 살짝 감추고 응원 합니다^^

난티나무 2021-10-01 00:27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북사랑님 감사합니다~^^
토론이 막 불붙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은 <욕구들>로 그럴 만하지 못했나 봐요, 둘 다. 함께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다음에 더 불붙는 토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봅니다.ㅎㅎㅎ 그래도 같이 읽고 책으로 이야기나누니 그건 정말 좋아요. 헤헷.
 

이번달에 읽고 페이퍼나 리뷰를 쓰지 않은, 몇 권의 책을 여기 모아본다.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김선우 <40세에 은퇴하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40세에 은퇴하다>는 옆지기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몇 개월 전에 사서 갖고 있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빌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책의 저자가 부부다. 책을 읽는데 크게 상관은 없다. 비슷한 이야기가 간혹 나오기는 한다. 

솔직함이 독자의 눈으로 찾아지는 것이라면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솔직하게 보여지는 걸까. 사전정보 거의 없이 읽었으나 왠지 착 달라붙는 맛이 없다. 매우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나는 왜 자꾸 색안경을 장착하게 되는 건지, 그게 내 선입견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기 같은 페이퍼를 쓸 때에도 자기검열 모드가 발동하는데 책을 쓸 때는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고. 두 권을 굳이 비교하자면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좀더 좋았다고 말하겠다. 삶을 대하고 생각하는 태도 같은 것.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의미있고 좋아보인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때로 부러움을 느낀다. 비슷한 삶을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에 대한 감탄이라고 해 두자. (예를 들면 집에서 인터넷 사용하지 않기.)  

에피소드를 좀더 적절히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구체적 연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 하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른 글쓰기 스타일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평점을 매기지는 못할 듯하다. 아리송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읽을 만하다.



















오한기 <인간만세> 

첫 부분 읽는데 어, 낯이 익다. 좀더 읽는데 어, 이거 읽었잖아. 단편집인가 했다. <멜랑꼴리 해피엔딩>에서 읽은 단편 「상담」이 실려 있다. 슬슬 읽고 다음 편을 읽으려는데 어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좀은 황당무계하고 가끔 웃기고 때로는 진지한, 아니 어쩌면 내내 진지함을 장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이야기. 신선했다. 소설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뒤에 실린 해설보다는 나았다. 차라리 소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겠다.ㅠ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조각조각 분석되어서 해설이 붙는 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재미있어할까, 슬퍼할까, 아무렇지도 않을까. 비꼬다. 이 단어가 떠오른다.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빗소리가 들리는 일요일 오전, 결국 빗소리 따라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노래도 그림도 얼굴도, 무엇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북토크 영상으로 처음 만난 이반지하에게서 뿜어져나오던 불안과 자기방어기제 같은 뉘앙스들이 나의 편견이라 생각했었다. 절반을 읽으니 다른 사람 즉 '남'의 입장에서의 내 시각이 편견만은 아니었구나 싶다. 이거 좀 오만방자한가. 무엇으로도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존나 다양하다'.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밑줄만 올리고 글을 안 썼더니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내 뇌는 정상이다. 그래도 읽었고 좋았고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으니 이렇게 흐릿하게라도 기록을 남겨야지. 다시 읽을 때 옆지기와 함께 하면 더 좋을 듯하다. 인터넷 강연에서 만난 김현미 선생님 짱! 
















캐럴라인 냅 <욕구들> 

사야 하는 책이라고 ****님이 강추하셨는데 종이책 사서 받기 너무 오래 걸리므로 전자도서관 줄 서서 대출. 뭐라고 페이퍼도 리뷰도 적을 수 없다. 밑줄이라도 올리려고 엄청 체크해두기만 했다. 그것도 못 했네. 옆지기와 함께 읽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진짜 별것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페이퍼 커밍 순. 아, 이 책은 꼭 종이책으로 살 겁니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하. 한숨부터 나온다. 뭐랄까. 이거 페이퍼나 쓸 수 있겠어? 싶은 마음. 위에 <욕구들>이 마침 있으니 비교하기 딱 좋지 아니한가. 두 권 다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실 듯. 이 책을 향한 찬사의 말들은 핵심을 좀 비껴나는 것 아닌가. 뭣이 중한디. 한글 제목 <배움의 발견>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읽다가 열받아서 이렇게 썼다. '여자는 인질이다'(책 제목). 딸도 인질이다. 
















윤지선, 윤김지영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읽었다. 읽었는데... 또르르... 아마도 다음달에 페이퍼 커밍 순. 그 때 쓸 거니까 지금은 이하 생략. 
















케이트 쇼팽 <이브가 깨어날 때> 

(제목 진짜 구리다.) 용기내어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 이거 진짜 원제목 안 봤고요(전자책 표지에 영어 잘 안 보여요, 아마도 안 봤을 거예요), 제목이 <이브가 깨어날 때>이고요, 내용 궁금했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뭐가?)인지 아닌지가 알고 싶었고요, 케이트 쇼팽인 거는 알고 있었고요. 지금은 이것만 쓸게요. 아마도 페이퍼 하나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요. 이 소설은 케이트 쇼팽의 그 유명한 <각성>이었던 겁니다.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소설 다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지요. 만쉐! 




아래는 이번달에 읽고 뭐라도 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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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30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쇼팽 어웨이크닝을 지금 이브가 깨어날 때 라고 내놓은 건가요? 세상에.. 이브가 깨어날 때라니… 🥲

난티나무 2021-09-30 13:49   좋아요 0 | URL
오래전 나온 책인데 제목을 아주 자극적으로 뽑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많이 읽게 하려고? ㅎㅎㅎ 제목 딱 보고 그래 무슨 이야기 하나 봐주겠어! 이랬다는 거죠 제가. ^^;;

다락방 2021-09-30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배움의 발견은 저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라 깜짝 놀랐어요. 제가 기대한 내용이 나오는 대신 알고 싶지 않은 내용(아동 학대)이 이어져서 아오 읽는 내내 힘들었네요 ㅜㅜ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읽고 싶어 찜해두고 있어요. 페투 읽고나니 더 그래요. 훗.

난티나무 2021-09-30 13:54   좋아요 0 | URL
한글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원제목도 다르게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글에 없기는 하지만 성적 학대는 없었을까도…ㅠㅠ 그 나쁜 오빠 셰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 같…. 아무튼…. 음 생각과 다른 책이었어요 저도.

숲 속의 자본주의자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벌써 궁금한데요?^^

단발머리 2021-09-3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많이 읽으셨네요! 책 구하기 어려우신데도 이렇게 부지런히 읽으시는 모습 너무 멋집니다!! <배움의 발견>의 한숨 이해합니다. 다른 책들 이어지는 페이퍼도 기다릴께요^^

난티나무 2021-09-30 13:56   좋아요 0 | URL
이번달 좀 달렸어요.^^ 전자도서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ㅎㅎㅎ
배움의 발견…ㅠㅠ 종이책 안 산 거 다행이라 생각 드네요.^^;;;
아이구 페이퍼 올리러 일어나야겠어요.ㅋㅋㅋㅋ 🥰
 
[eBook]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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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내용 요약 없는 감상문.


최은영 소설만 읽으면 우는데 어김없이 이번 소설도 그렇다. 시작은 8% 지점, 할머니와의 재회 장면이다. 딱히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무덤덤한 만남, 그 무덤덤함 속에 깔린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 장편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넘어가는 페이지와 함께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린다. 이른 아침 일어나지 않은 채 책을 읽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 눈물을 닦다가 페이지를 넘기고 눈물을 흘리고 손으로 닦고, 페이지를 넘기고. 그렇게 끝까지. 


어째서 이 여자들은 이렇게 정이 넘쳐 흘러서. 어째서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옛날에도 지금에도. 남자들이 없는 세상, 존재하지만 다른 세상에 서 있는 남자들. 고되고 슬픈 삶을 사는 여자들.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 서로를 알아서, 알아봐서, 고통스럽지만 서로를 끌어안는 여자들.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그러나 그런 연대도 실은 기만이 어느 정도 깔린 것은 아닌가, 문득. 혈연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납득해보려고 발버둥친 결과는 아닌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그 거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혹은 거리 따위 개나 줘버려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여자는 여자가, 여자를 여자가, 다독이고 쓸어주고 안아주고 그래야 하는지. 그걸 제대로 못하는 여자는 또 어찌해야 하는지. 어째서 남자는 늘 없는지. 없어도 괜찮은지. 차라리 없는 게 나은지. 


엄마의 엄마의 엄마... 요즘 읽는 페미니즘 책들에도 그렇고 연달아 읽은 소설들에도 그렇고 엄마, 딸, 할머니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죽음이 있다. 가끔 생각한다.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보고 싶다고,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데. 나는, 나도 그런 말 하게 될까. 엄마 보고 싶다고 울까. 솔직히 지금으로선 장담하지 못하겠다. 때론 나라는 인간이 한없이 냉정하구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혼란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후회가 되는 것은, 엄마나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조금은 기억의 조작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을 지워버리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신기하리만치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어쨌든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기억한다. 할머니는 너무 먼 곳에 살았고 이젠 세상에 없다. 엄마도 멀리 살았고 지금도 멀리 산다. 이젠 만나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야지. 어릴 땐 어땠는지, 할머니는 어땠는지, 결혼하면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어릴 땐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엄마가 기억하는 엄마를 이야기해 달라고 해야지. 그러면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나를 얼마쯤은 건져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기적인 딸의 속마음. 엄마도 엄마를 얼마간은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 다만 감정적으로 싸우지 말 것. 더이상의 상처는 반사. 


100자평에 썼지만 마지막에 나에게 떠오른 말은 "우리들의 밝은 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밤은 밝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 

(밑줄긋기를 앞부분밖에 하지 못했다. 빌린 책은 이미 반납했다. 뒷부분은 이야기에 빠져 읽었나 보다.) 

"난 혼자가 편해."
내가 엄마에게 해줄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엄마가 온전히 내 편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리라는 희망 같은 것을 나는 포기했다. 그와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가 입은 상처보다도 이혼당하고 혼자가 될 사위를 신경썼다.
‘나는 너는 걱정이 안 돼. 그런데 그 약한 애가 나중에 자살이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떤 말은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 7%

"아빠는 너 이혼한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하더라."
엄마가 무심하게 말했다.
"자기 딸이 쪽팔리는가 보지."
"그래도 너희 아빠 같은 사람이 없어."
"그래?"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아빠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남자가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이혼이라니 말도 안 된다. 김서방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라. 마음을 넓게 먹어야지. 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 이혼을 결심한 내게 아빠가 한 말이었다. 나보다 사위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아빠의 모습은 별로 놀라운 게 아니었다. 아빠가 내 편이 되어주리라는 기대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8%

"어떤 분이셨어요?"
"누구? 우리 엄마?"
"네."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다시 말을 하려다가 입을 열지 않았다. 얼굴에 내내 어렸던 미소가 사라졌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냥……"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봤다. "보고 싶지."
할머니는 내가 마치 할머니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다 입가에 힘을 줘서 웃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지 뭐." - 11%

그 말에 군인 둘이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남편이 없는 여자아이를 원하는 거였다. 그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다.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도 군인들이 혼인하지 않은 여자아이들을 조사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부모들은 고작 아홉 살, 열 살밖에 안 된 딸들을 흔인시켰다. 그게 딸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에게 ‘주인‘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 13%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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