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엄마에 대하여
한정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엄마에 대하여. 엄마라는 존재와 딸인 나의 존재. 단순한 줄 알았으나 한없이 복잡하고, 비슷한 줄 알았으나 끝없이 다른, 딸들과 엄마들의 관계, 연결과 그 사이의 괴리. 실려있는 모든 단편들에서 이 존재들 각각이 스스로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 다른 엄마라는 존재를 본다. 그래서 좋았다. 사회가 엄마라는 존재에게 요구하는 틀에 박힌 정형성이 모든 엄마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 중의 착각이다. 거기에 나를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들은 모두, 가짜다. 


한정현 [결혼식 멤버]

고정관념은 가라. 역사와 사회를 엮어서, 계층과 차별을 묶어서, 그렇게 하나하나 건드리는 게 좋았다. 당당해서 좋았다. 대체 누구에게 미안해해야 한단 말인가. '나와 결혼한다'는 말이 훅 다가왔다. 우뚝 서는 느낌. 그리고 슬퍼졌다. 내 결혼식에도 동생의 결혼식에도 올 수 없었던 나의 엄마가 떠올라서. 


*** 

"오, 굉장히 웃기는 남자들이군요.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멋있어요, 누구하고도 사랑할 수 있을 만큼이요."
내 말에 여자분이 조금은 웃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두 분. 나, 사실은 내일 나랑 결혼해요! 김수현 드라마 보셨나요? 배종옥이 맡은 첫째 딸처럼 되고 싶어요. 내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이요!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사는 그 첫째 딸 말이에요!"
주인 할머니는 "아이고 그거 다 드라마지, 현실이냐 어디. 여자가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너는 입만 다물면 완벽하다고 면박 주는 게 남자 놈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래, 남자보단 너랑 결혼하는 게 낫다" 하시면서주말 연속극으로 채널을 맞춰주더군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대중문화를 연구했던 것도, 그러니까 가령 내가 덩리쥔이나 김치켓 시스터즈, 모리타 도지 같은 사람을 좋아했던 것도 여성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에 마음이 끌린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 말이에요. 그런 생각 끝에는 그 여성분의 자신과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펑리수를 결혼식 선물로 건네달라 하였어요. 마음으로는 항상 그 여자분의 결혼식 멤버이니까요..
이걸 왜 말해주고 싶었을까요. 글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국가와 가족은 참 비슷합니다. 한 명의 권력자와 그에 순응해야만 하는 피지배자. 그리고 그 구조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사람들이 겪는 따가운 시선과 불이익들과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국적과 결혼도 엇비슷하지요. 국적은 나를 증명하는 가장 명백한 방법이고 누군가에겐 결혼도 사랑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대만인이자 일본인이며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나의 간극을, 당신을 두고 떠나간 나의 어떤 마음을 절대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이 말이 나를 이해해달란 말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웨딩 세리머니에 오지 않아도 당연히 좋습니다. 다만…… 나는 말이에요. 이 메일을 드디어 쓰기로 결심한 순간들엔 어쩌면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어요. 뭐랄까요. 귀하와 내가 생물학적이 아니더라도, 국적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정한 가족 관계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어떤 틈새에서 연결되고 있다고요. 이 메일은 결국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조우리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동성애에 기겁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 딸의 결정과 신념을 무시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 그것은 결국 경험이 해낸 일이 아닐까.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느끼는, 경험. 그러나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겠지. 어떤 자식이라 해도, 성적 성향과 상관없이 그 삶의 많은 부분과 전체가 걱정인 것은 나도 다르지 않다. 대범해지고 싶다. 



김이설 [긴 하루] 

유순 언니, 장씨랑 헤어져요. 언니 스스로와 결혼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 아닐까요. 그 솔직함으로 소통하는 것 아닐까요.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다.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기구함들. 불안과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인 유순언니,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아직은 홀로 서지 못하는 듯해 아쉬우면서도, 삶이 노동에 짓눌린다면,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렵다면, 그 땐 나고 너고 없이 그저 노동에만 목매달게 되지 않나, 그럴 땐 어떡하나,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순 언니, 이제 그만 스스로와 결혼해요. 딸이 저를 갈아넣으며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왜 전부 갈아넣으며 살아요. 이제 그만. 



최정나 [놓친 여자] 

작가의 말처럼 '과했다'. 그러나 정말 과했을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제대로'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세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려면 얼마나 큰 뚝심이 필요한지. 아이들의 '연애' 앞에서 부모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요즘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놓친' 여자가 사라진 건 어떤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한유주 [우리 만남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훑으며 아 뭐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열린 결말, 특히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설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아. 



차현지 [핑거 세이프티] 

언제까지 엄마를 탓해야 할까. 엄마도 사람이고 힘들었고 모든 것을 견뎌야 했음을 알게 되었어도 원망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쩔 수 있었을까? 어째서 '가정폭력'은 이처럼 흔한가. 남의 집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은가. 일부의 경우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비슷하게 일어난다면 그건 가정사가 아니라 사회문제라고 했지 않나. 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토론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한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보여주면서, 아 또야 같은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

"어떤 사건은 영영 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수천 번 빌었던 일들. 상태를 기록한다고 해서 증상이 해결될 일은 없을 터. 그리고 나는 그런 방식으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 쓴다고 해서 사건으로부터 벗어난 적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엄마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건 축복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


나도 엄마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축복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인원은 2명. 페미니즘 책을 함께 읽는다. 책 추천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지만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모임 멤버가 나보다 더 페미니즘 초짜이기 때문이다. 책 선정이 고민된다. 작년 말부터 권했던 책들 중 벨 훅스도, 박정훈 기자도, <맨박스>도, 리베카 솔닛도 튕겨내는 (그러니까 얼추 이 책들을 들여다보기는 했다) 그 멤버의 성향으로 미루어보건대, 어떤 책을 고를 것이냐는 모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짐작했겠지만 그 멤버는 나의 옆지기다. 


시작은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이달의 독서모임 도서들이 쌓여있다. <페미니즘의 투쟁> <학교의 슬픔> <제 2의 성> 1권과 2권, 그리고 프랑스어 원서들까지. 아마 제목이 눈길을 끌었을 터, 거기에 더해 며칠 전 나와의 '설전'도 촉매제 역할을 했을 듯 한데, 책을 집어들고 살펴보길래 읽어볼래? 했다. 마침 2부 첫부분에 '성 입문' 챕터가 있다. 여기만 읽어 봐. 그렇게 옆지기는 부분이긴 하지만 <제2의성>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보부아르는 성 입문 맨 앞에 여자의 첫 성적 경험이 일생 동안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똭 기술하고 있다. 옆지기는 첫 페이지를 읽으며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여자들의 입장을 얕게 헤아려보는 경험을 했다. 아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껏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될 때 내 머릿속에 내리쳤던 번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 듯하다. 그 덕분에 한 챕터를 집중해서 읽었고 몇몇 문장들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나와 독서 성향/습관이 아주 다른 옆지기는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눈으로 술술 읽고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넘어가는 나와는 정반대. 함께 문장을 짚고 뜻을 유추해보니 좀더 의미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옆지기는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언제 읽게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음날 옆지기가 뭐 읽을까 묻는다. 아, 책 선정은 고민이다. <제2의 성>이 옆지기에게 '읽힐' 수 있었던 건 그 부분이 마침 남자들의 주요관심사인 '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자들의 욕구가 어떻게 억압되고 지워지는지, 여자들을 지배하는 사회/문화적 기제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에 대해 먼저 아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대출해서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나는 읽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나의 행동 동생과 친구의 행동 엄마의 행동과 말 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완전히 공감은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옆지기는 지금 <욕구들>을 함께 읽고 있다. 

(며칠 전 써두었던 글이다. <욕구들> 다 읽고! 다른 책 읽는 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9-25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난티나무님!!!! 옆지기님 대단한걸요? 일부라도 무려 제2의성을! 첫 책 잘 선정하셔서 이 느낌 쭉 가셨음 좋겠어요~♡♡ 입문용으로 쉽고 술술읽히는<보이지 않는 여자들>살짝 추천드려요. 제 주변 초보자들 3명 중 2명이 읽고 만족. 한 명은 느리지만 아직 읽는 중이예요. 읽어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사례들이 많은게 장점인듯해요😆

난티나무 2021-09-25 17:21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독서모임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ㅎㅎㅎ 책 동반자 꿈꾸었는데 과연 이루어질까요? ㅋ
<보이지 않는 여자들> 안 그래도 읽을 수 있겠는지 한번 훑어보라고 건네줬는데 지금은 안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뭔가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아직은 아닌 걸로.
책 추천 종종 해주세요 미미님!!!!!^^ 🙏🙏🙏

청아 2021-09-25 17:27   좋아요 1 | URL
초입문자만요ㅋ 제가 늘 난티나무님 읽으신 책들 사 모으는데 어찌 추천을하나요ㅎㅎ😳😆

난티나무 2021-09-25 18:00   좋아요 1 | URL
옴마 미미님~~^^
아 저도 <페미니즘의 투쟁>을 마저 읽어야 겠습니다.^^;;;; 미미님 글 보고 탄력!!! 근데 페이퍼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ㅠㅠ

책읽는나무 2021-09-25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멋지십니다.
부부 독서 모임!!!
제가 바라던 이상적인 독서 모임이네요^^
저의 남편은 아예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지라.....
책 읽고 같이 얘기 나누고...부럽습니다^^
난티나무님도 옆지기님도 응원합니다!!!

난티나무 2021-09-25 17:58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제 남편도 그래요. 책 안 읽고요. 아주 가끔 정말 자기가 꽂히는 뭔가가 있는 분야의 책 아니면 안 읽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읽고 책 내용 이야기하는데 새롭고 좋았어요. 지금은 서로의 소통을 위해 페미니즘 책을 읽지만 점점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노년의 2인 공동체를 위해서요.^^
응원 감사히 받아요~!!!
 
[eBook]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 비대면 시대에 우리가 일하는 방법
김개미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자'에 방점을 찍고 읽어서 그런지 나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꽉꽉 채워져 있기를 바랬는데 그건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예를 들어, 김개미 시인과 김영글 미술작가 같은 분들의 이야기가 무한반복되는 책이었다면 하는 욕심.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심심해하지 않으며 혼자서 일도 놀이도 잘 하고 취미도 다양해서 스스로를 '능동형 외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혼자 집에서 심심하지 않아?' '남자(여자) 친구 없어요?' 같은 질문에 그러라 그래~를 시전할 수 있는 사람들. 혼자여도 괜찮다고, 혼자여서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하는 욕심. 더 강조되었다면 하는 욕심? 욕심이 많았다. 아니 어쩌면, 나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서 그걸로 위안을 삼으려 한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럴 수도. 


두번째 차례인 시인 김개미의 글을 읽고서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그의 시를 읽고 싶어졌다. '은둔적 성향' '집에 있는 게 좋다' '능동형 외톨이' 같은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다만 요즘 예능을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볼 수 없는 나의 입장에서 특정 예능인의 예능 언급은 살짝 나 혼자 거슬려했다고 고백하겠다. 부분과 전체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가의 문제이기도 해서 굳이 입을 댈 필요는 없는가 싶기도 하다. 본문 중에 실린 시가 좋아서 옮겨적다가 종이에 적고 싶어 그렇게 해본다. (사진을 올리며 그냥 타자 칠 걸 그랬다 싶다.)





김영글 미술작가의 글을 읽을 때에는 눈이 번쩍 커졌다. 아니, 이 글 읽기 바로 전에 침대에서 간밤에 꾼 꿈을 막 적었는데, 이 사람도 침대에서 간밤의 꿈을 적는대! 침대와 책상을 전천후로 활용한대! 뜨개질이 취미래! 나도 그런데! 이렇게 막 공통점 있다며 반가워하고 괜히 혼자 우쭐거리고. 집이 하나도 안 답답한, 코로나 시대가 그래서 오히려 더 반가울 수 있는, 일과를 쪼개고 나누어 그것을 지키면서 살지 않는(나는 딱히 '직업'이라 불릴 만한 돈 버는 일은 지금 하고 있지 않지만), 집중해야 할 때는 소음이 거슬리는, 이런 성향들이 너무 나라서 내가 오히려 좀 작아지는 듯한 느낌도. 괜찮아, 어떻게 사람이 다 똑같이 잘날 수 있겠어.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잘난 거지,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렇게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라서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골라 기억하기로 한다. 나머지 분들의 글도 잘 읽기는 했다. 단지 마음에 덜 와닿았을 뿐이다. 약간의 성찰이 필요하지는 않은가도 싶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글쓰기'라는 제목과 컨셉에 얼마나 잘 부응(?)한 쓰기였는지에 대해. 


덧 : 문득. 일하기,는 꼭 돈을 받는 직업이어야 하는가 묻는다. 1인 가구가 아니라도 혼자서 '일하는' 사람들 많은데. 식구들이 많아도 혼자서 계획하고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처리하고 혼자서 다 하는 사람들 많은데. 더군다나 지금처럼 비대면의 시대엔 더더욱. 허허로이 웃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담은 책이 나와도 좋겠다. 단순히 수다와 동어반복에 그치지 않고 뼈때리는 책. 사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도 뼈때리는 책은 아니다. 꼭 뼈때리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뼈때리는'이라고 쓰면서 다른 표현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생각하면 너무 폭력적이다. 뼈를 세게 때리면 아프잖아. 그런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오늘은 이렇게 쓰고 계속 찾아보는 걸로.) '일하기'라는 단어에서 돈 받는 직업을 먼저 떠올리는 것도, 주부의 일은 일이 아니라는 인식도, 결국 고정관념 아닌가. 제목을 그대로 주부들의 이야기에 갖다붙여도 되겠다. '혼자'의 의미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9-2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씨 너무 귀여워요~ㅎㅎ😍👍

난티나무 2021-09-22 20:55   좋아요 2 | URL
오늘은 귀욤 버전입니당.ㅋㅋㅋㅋ

- 2021-09-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책 읽고 있어요, 게을러질때 마다 쪼금쪼금. 그런데 난티님이 말씀하시는 덧붙임이 좋은 기획이고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ㅎ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이랑 그런 글쓰기해서 책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근사할 것 같아요~>_<

난티나무 2021-09-29 15:20   좋아요 0 | URL
완전 근사하죠!!! 관건은 이야기를 에피소드에 파묻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어반복 지리멸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책은 공쟝쟝님이 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팬입니다! 갑분 고백! ㅋㅋㅋ

그레이스 2021-10-0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 예뻐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북플로 안하고 서재들어와서 하니까 첫번째로 축하메세지도 남기네요^^

난티나무 2021-10-09 01:06   좋아요 1 | URL
앗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의 유해성과는 별도로,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선생님들이 모두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꿈을 응원하고 책을 읽는 법을 알려주고 끌어주고 다독이는, 그런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새삼 가져본다. 어린 시절에 그런 선생님을 단 한 명만 만났다면, 독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주는 선생님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건 여전히 쓸모없는 말일 뿐이지만, 그랬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생각한다. 그랬다면. 괜찮다.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만 선생님인 것은 아니니까.

열등생이었던 페낙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십 대 후반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설령 그것이 암기 위주 지식에 불과하더라도, 책상에 앉은,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그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나에겐 너무 벅찬 -가슴 뿌듯한 벅참 말고 힘겨운 벅참- 일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 국어를 가르치면 한문도 자동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일종의 세트세트 교과분류에 따라 한문 수업도 잠깐 한 적이 있다. 공부를 싫어하는 한 중학생 아이는 대체로 10점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내 나름 성의를 다해 공부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켜보려고 수업시간 애를 썼고 아이들의 시험성적이 오르기를 바랬으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랬고 무엇보다도 공부를 계속 싫어하지 않기를 - 왜냐하면 몇 년간 어쩌면 대학에 간다 하더라도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주구장창 느껴야 할 테니 - 바랬다. 또 한 명의 어른이 하는 시덥잖은 잔소리로 들릴 게 뻔하더라도 말이다. 다음번 시험을 치고 온 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예의 그 아이가 눈을 빛내며 선생님 선생님! 나를 불렀다. 자랑스러운 기운이 눈에 가득했다. 저 한문 잘 쳤어요! 반가운 마음에 몇 점 받았냐고 물었다. 미숙한 나. 아이는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뿌듯하게, 외쳤다. 20점이요!!!

미숙한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무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 입을 열면 조롱의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미 내 눈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잘했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자책. 아이의 자랑스러움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그 순간의 격려가 아이를 도울 수도 있었으리라는 후회.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인지라 이 생각은 나중에 이렇게 바뀌기도 했다. 내 입에서 조롱의 말이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랬다면 나는 더더욱 그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 순간엔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소용없다. 너는 그저그런 선생 나는 그저그런 학생, 이었던 멀찍한 관계가 너는 쫌 괜찮은 선생 나도 쫌 괜찮은 학생,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사이,인 관계로 바뀔 기회는 그 순간 이후 사라졌다. 친밀함을 쌓을 수 있었던 기회는 날아갔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까까머리와 동글세모한 얼굴과 장난기 많은 그 웃음과 눈을, 기억한다. 여전히 그 눈에 미안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 아이들에게도 쫌 괜찮은 사람인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현재진행형 사실은 이십대의 나와 오십이 코앞인 지금의 내가 별로 달라진 것 없는 그저그런 사람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매일 조금씩 페낙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기억들이 무한반복으로 튀어나오리라는 걸 알았다. 학생으로, 선생으로, 그리고 이제는 학부모로, 내 경험들이 순간순간 치솟아오를 것을,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과 수많은 두려움과 죄책감과 미련과 후회와 그에 비해 양으로 따지자면 엄청나게 적은 만족감과 희열, 행복과 자긍심 같은 감정들이 함께 툭툭 비집고 나올 것을. 그러기를 바란다.


En tout cas, oui, la peur fut bel et bien la grande affaire de ma scolarité ; son verrou. Et l‘urgence du professeur que je devins fut de soigner la peur de mes plus mauvais élèves pour faire sauter ce verrou, que le savoir ait une chance de passer.

어쨌든 그랬다. 두려움은 분명 학창 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문제였고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뒤, 나의 급선무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이었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는 것은 언제나 사적인 일이며, 실컷 우는 것은 남몰래 하는 일이지만, 그리어는 우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슬픔이 개인적 현상일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보았고,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여전히 여자들의 가장 본질적인 자질들과 관심사에 대체로 냉담하고 멸시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걸 잘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했다.
그리어는 여자들이 우는 것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며, 너무 많이 일하고 지쳤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우는 것은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고 남들의 필요를 보살피느라 자신의 필요는 계속 뒷전으로 밀리기만 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남자들이 친밀함의 언어를 구사할 능력이 없다는 느낌을 너무 자주 받기 때문에, 자녀들이 자라나 거리를 두기 때문에, 자신은 그 거리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게 당연시되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낮아지기만 하는 기대치와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적응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여자의 감정이 지닌 힘과 강함은 병적이거나 히스테리컬하거나 질척질척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여자의 관심은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고, 여자의 존재의 핵심은 한 번도 제대로 봐주거나 알아주거나 온전히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여자의 진정한 자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가치 있게 여기고 인정하고 숭배하는 수많은 것들과 어긋나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자신의 사랑이 응답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