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약속 -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딕테 시리즈 2
사라 아메드 지음, 성정혜.이경란 옮김 / 후마니타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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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서 모임 멤버들로부터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모임에 빠지지 않고 읽어와야 할 분량을 읽어오고 정리하자고 하면 꼭 몇 글자라도 끄적여서 오고, 그래서 멤버들은 나를 모범생, 우등생, 이라고 불렀다. 나도 안다, 그게 칭찬인 것을. 그러나 나는 모범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거부감을 가졌다. 칭찬하는 말에 적절한 대응법을 (아직도) 모르겠어서 흥흥 웃고 말았지만, 그 후로 왤까, 계속 생각했다. 뭐가 싫은 걸까. 

모범생, 우등생, 학교에서 말 잘 듣고 허튼 짓 안하고 곁가지로 빠지지 않고 시키는 것(만) 잘하는 사람. 내 머릿속에는 하라는 대로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둥둥 떠다녔다. 이건가, 내 거부감은. 사실을 말하자면 학창 시절 나는 모범생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우등생은... (아주 잠깐 그렇기도 했지만 대체로 절반쯤은) 아니었다. 시키는 걸 잘하고 싶었으나 애를 쓰지는 않았다. 애를 써도 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도 지나고 사회 생활도 지나오고 기혼 생활도 웬만큼(?) 해본 나를 돌아보자니, 떠오르는 에피소드 속의 내 모습이 아주 적확하게 '정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늘 그렇지는 않았어도 자주 그랬다. 하. 나는 뼛속까지 이방인이었어. 그걸 알아서 항상 나를 탓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돼, 이상한 짓 하지 마, 벗어나면 안 되지... 

다시 모범생이라는 말로 돌아오면, 정서 이방인으로서 나는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역사를 다시 쓰자.ㅋ) 좋아하는 것을 했고 약속을 했으므로 그 약속을 지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모범생이라는 단어는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단어로 칭찬받는 것이 싫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도 새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칭찬이 싫음, 기분 나쁨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걸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올바른' 생각인지를 생각했다. 


나를 수동적 인간이라고 여겼다.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안 되는 거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여겼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한 가지 면만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정서 이방인'으로 행동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건 단순히 수동적,이라는 단어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던 것,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 모든 게 부정적이라서 내 입꼬리는 항상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아주 불만이라고, 여겼던 것 들이 실은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뒤늦게 알아차리는 거, 이거야말로 '행복'이겠지.ㅋㅋ 그런데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우등생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못했던 때처럼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몰랐을 뿐일지도. 


남들과 비교해 내 삶이 보잘것 없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다가, 아니다, 그런 게 어딨어, 정해진 기준은 없고 세상에 '성공'한 사람만 잘사는 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실패한 게 아니야, 그냥 내 삶을 살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의 전환을 이루었으나, 곧 이건 '합리화'가 아닌가 싶어 나를 의심하기를 반복했는데, 이젠 정말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책을 덮으며 또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기존 관념의 연장선에 내 생각을 놓는다. 기존 관념을 의심하는 시각으로 내 생각을 본다. 그거 또다른 기존 관념 아니야? '합리화'라는 말로 너를 다시 옭아매려는 술책?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자책은 금물이다. 자책할 시간에 책을 한 글자 더 읽자. 


도입부가 어려워서 어렵다고 끙끙거렸다. 다시 읽으면 덜 어려울 것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서, 물론 아메드의 말을 따라 나를 생각하면서는 슬펐지만, 그 슬픔은 좋은 슬픔이었다. 나는 이제 이 느낌을 기분 좋은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이 아프지만 좋은 느낌이라고, 좀 고통스럽지만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 아메드 덕분이다. 


잘난척하는 사람을 보면 묻고 싶었다. "그래서 넌 행복하냐?" 내 눈에는 하나도 행복해보이지 않는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하다고 대답했겠지. 이런 게 행복 아니겠냐고 말했겠지. 나도 내 기준에서의 행복이라는 관념을 설정해두었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의 행복. 그걸 아직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그땐 좀 헛발질하는 느낌으로 행복이라는 걸 상상했다면 지금은 발 끝에 단단하게 무언가가 와닿는 느낌으로 '좋음'을 상상한다. 그게 별것 아니라는 사실, 스쳐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 이미 수없이 스쳐보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아메드의 말을 되새긴다. '행복'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자주 쓰던 단어 '어쩌면'이 심하게 더 좋아질 것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행복)'! 






(밑줄들은 '결론'에서 가져왔다.) 


⌈행복은, 니체가 이야기하듯, 당신이 하도록 요청받은 것을 따르는 방식일 수 있다. ...... 우리는 능동적 활동과 수동적 활동을 경험하는 방식의 질적 차이를 설명할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능동과 수동의 구분 자체에, 그런 구분이 존재의 계급 구분을 고정하는 방식에, 행복한 사람과 길을 건너는 닭들을 고통 받는 영혼과 움직이지 못하는 길들과 구분하는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 (378) 


⌈로드는 작품 내내 우리가 상처 주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지 상처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상처를 야기하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작업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 말은 알아차리지 않도록 배워 온 것을 탈-배움unlearning하라는 의미다. 힘과 피해의 관계인 폭력이 어떻게 다른 신체가 아닌 어떤 신체로 향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런 작업이 필수적이다. ⌋(388) 


⌈이 책에서 내 목적은 나쁜 느낌들이 단순히 반작용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쁜 느낌들은 끝나지 않은 역사들에 대한 창조적 반응들이다(Ahmed 2004:200~202도 참조). 우리에게 불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 견딜 수 없는 것으로 경험될 수 있는 느낌에서 로맨스나 의무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단지 불행을 극복해야 할 느낌 이상의 것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390) 


⌈가능성을 받아들이려면 과거로의 회귀, 즉 우리가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 포기한 것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보학을 하는 것, 현재의 도착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현재로부터의 일정한 소외가 수반된다. 익숙한 것이 물러나면 다른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서 이방인들은 창조적일 수 있다. 우리는 그릇된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포기하라고들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바람들을 중심으로 생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져야 일이 벌어진다. 우연 발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 (392)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런 자유는 행복 하중을 가볍게 할 것이다. 불행할 자유는 그러므로 행복을 제쳐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연발생을 행복 안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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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9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난티나무 2023-04-30 05:42   좋아요 2 | URL
하뚜하뚜!!!

다락방 2023-04-30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 님, 너무나 좋은 리뷰 입니다!! 멋져요!!

난티나무 2023-05-03 06:45   좋아요 0 | URL
오홍홍 칭찬은 기분 좋은 것입니다!! 충성! 아 이거 아닌가…^^;;;;;; 🥰

거리의화가 2023-04-3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난티나무 2023-05-03 06:45   좋아요 0 | URL
유후!!! 😘
 
행복의 약속 -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딕테 시리즈 2
사라 아메드 지음, 성정혜.이경란 옮김 / 후마니타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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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나 수동적이고 부정적인지 불만이었는데 사라 아메드 덕분에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이 규정지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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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4-28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다 읽었는데 할 일 많았던 바람에 백자평 이제 적음. 나는 과연 4월 30일이 지나기 전에 리뷰 비슷한 거 쓸 수 있을까???

거리의화가 2023-04-28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 많았는데 막상 정리하려니 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지ㅋㅋ 결국 쥐어짜낸 백자평으로 퉁치고 가네요ㅠㅠ

난티나무 2023-04-29 02:49   좋아요 1 | URL
ㅋㅋㅋ 모두들 좀 그러신 거 같아요.^^;;; 근데 책은 정말 좋았어요 저는.ㅎㅎㅎ 뭐라도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ㅋ

- 2023-04-29 12:5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거참 신기한 책이죠?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9 22:08   좋아요 0 | URL
신기해서 더 좋은 듯요 ㅋㅋㅋ
 





5장 밑줄 올리면서 사진도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북플 밑줄긋기 하니깐 사진 올릴 수 없대... 컴으로 들어와서 저장페이퍼를 누르니 글쎄 행복의 약속 읽으면서 주절주절 휘갈긴 글이 세 개나 있다. 그런데 올리기가 쫌... (다들 이래서 조용하신 거 맞아유?) 뭐 별 내용 없고 감상적이라 그렇기는 하다. 이케저케 만져보고 싶으나 잘 안 되는 ㅋㅋㅋ 어쩔? 리뷰 쓰는 게 목표인데 이래서야 리뷰는커녕 백자평 쓰기도 어렵겠다. 

아무튼 결론만 남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어렵거나 말거나 그저 좋구만. 미리 별 다섯 드림. 아메드 다음 책 <고집스런 주체> 언제 나옵니까,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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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0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읽으면서는 오만 생각이 드는 데 읽고나니 아무생각이 없어지는 행복의 약속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무의식에 남기를! 어쩌면 행복! 🤔

다락방 2023-04-26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요. 저는 아직도 여전히 읽는 중이지만, 오늘 아침엔 불현듯 한 줄 정리가 되더라고요.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4-26 13:43   좋아요 1 | URL
역쉬 다락방님!!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

라로 2023-04-26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어려운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만드는 님아!^^;;

난티나무 2023-04-26 13:44   좋아요 1 | URL
라로님 그간 바쁘셔서 못 오신 동안 저는 꾸준히 책을 샀더랍니다.(응?) ㅋㅋㅋ
이 책 어렵지만 좋아요!!!!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342)

“당신 자신이 당신이 드러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353)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형태의 행복과 약속의 형태를 띠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현재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상상하는 한 같은 지평에 속한다. 그리고 현재 행복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불안한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실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멀어질 수 있다. 현재 행복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방어적이 되어 행복에 위협이 되는 것(혹은 사람으로부터 두려운 마음에) 멀어질 수 있다. - P294

여기서 허위의식은 부르주아가 자신의 동기를 모른다는 것,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일치함을 알지 못하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의식적인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의식으로부터 그런 믿음의 이해관계적 성격을 탈각함으로써 이해관계를 유지한다. 우리는 "허위의식" 관념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허위/진실의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너무 지배적이어서 "허위의식"이라는 - P301

말 자체가 구시대적인 말처럼 들릴 정도다. 하지만 내가 2장에서 지적했듯이, 의식을 개인 주체에 속한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면, 이 개념을 다시 살려 낼 근거가 있다. 의식이란 주체들의 도착보다 선행하는 기만들이 공유를 통해 사회적인 것을 배열하는 방식에 대한 것일 수 있다. 루카치가 잘 기술하고 있듯이 "부르주아 사회의 본성에 드리운 베일은 부르주아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Lukács 1971: 66[154]). 그 베일은 질서의 재생산을 은폐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재생산한다.
핵심은 진실과 허위의 구분이라기보다는 진실의 재생산에서 허위가 담당하는 역할이다. 다른 말로, 의식이 허위인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와 결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상태가 이해할 수 있는 것 혹은 참인 것의 지평을 규정하면서 특정 질서의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재생산은 이런 불일치에 대한 인식의 실패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질서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진짜 의식, 즉 진실에 대한 의식을 획득한다는 의미에서 자신과의 일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혁명가란 단순히 일치의 실패를 목격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베일이 벗겨진다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베일이 벗겨진다 해도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그 폭로에는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의식의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의 허위성을 의식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사회적 믿음이 가지는 이해관계적 본성을 의식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 P302

소외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강탈되었는지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외가 어떻게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 P304

혁명 의식이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 혹은 세상이 이질적이라는 느낌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 주어진 세계- 좋은 습관과 예절로 이루어진 세계, 복종과 선의를 다하면 안락함을 약속하는세계-로부터 멀어진다. 느낌의 구조로서 소외는 불타오르듯 강렬하게 현존한다. 그것은 당신을 소외시키는 타인들 앞에서 일어나는 느낌으로, 마치 당신을 억누르는 동시에 멀어지게 하는 힘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당신은 자세를 바꾸고, 머리를 숙이고, 땀을 흘리고, 초초하고 불안하다. 모든 것이 당신을 짓누른다. 세상 전체와 싸우는 것 같고, 세상도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잘 적응된 상태가 아니다. 세상에 적응할 수가 없다. 혁명가는 이런 특정한 의미에서 정서 이방인이다. 당신은 몰입할 수가 없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신이 세상에 저항할 때는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도 저항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다. - P306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불행[불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즉, 하나의 믿음으로서의 불행은 어느 정도 무관심하게 대상들 사이를 떠돌면서 현재를 붙들고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모든 게 다 불만이라는 것은, 어떤 한가지를 기대하고 있어서 그것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행하다는 것이다). - P307

아이들의 부재는 그에게 내 희망을 유예할 수 있는, 그를 위해 현재의 내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부재를 나타내는 기표다. 다른 말로, 아이들은 이 판타지의 무게를 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도전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자기 자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아이 없이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이가 꼭 있어야 삶이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지친다. 우리가 아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라는 이 관념을 어떻게 해석하든, 여기서 표현된 불안은 관념으로서의 미래가 상실되었다는 불안, 그리고 그 상실에 대해 걱정함으로써 미래가 있다는 관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불안이다. - P332

이는, 4장에서 설명했듯이, 돌봄에 특정 형식을 부여하고 돌봄을받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행복 돌봄이라기보다 우연 돌봄hap care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것이다. 우연 돌봄은 돌봄에서 불안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연에 대한 돌봄care for the hap 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보다 더 취약한 것은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닌 존재에 내 에너지를 쏟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다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봄이란 불안한 일이다 - 관심 가득하다 full of care, 조심스럽다careful는 것은 그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워서(미래 - P335

가 그 존속이 중요한 대상의 허약함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것들에 신경 쓰는 것이다.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착해지거나 다정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돌봄"을 자신의 자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의 선한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아주 무뚝뚝하게 행동한다. 돌본다는 것은 대상을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빠져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 P336

만약 불행할 자유가 없다면, 행복할 자유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다.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필연성이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 불행은 자유가 될 수 있다. - P350

우리는 불행이 집단적인 것, 공유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행복에 도전하는 일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획이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다수의 불행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투쟁할 때에도, 열망의 순간에도, 계승과 재생산 사이의 간극에서 춤을 출 때도 페미니스트 아카이브, 퀴어 아카이브, 반인종주의 아카이브가 집단적인 불행의 직조물들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행복할 권리에 도전하는 것이 곧장 뻗어 있는 똑바른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 정치 운동이란 그런 이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을 함께 나눌 때 즐거움과 경이,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있다. 만약 이탈을 공유하는 것이 불행의 원인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즐거움과 경이, 희망과 사랑조차 불행 없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불행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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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잔인하다고 누가 그랬더라. 누가 했든 4월만 되면 떠오르니 시대를 초월한 유행어가 되어버린 그 말, 잔인한 4월, 그런데 정말 4월만 되면 잔인한 것같아...@@ 


토요일에 소포가 왔다. 우체국 특송이라 원래는 직접 전달에 사인까지 받아야 하는데 요즘은 사인을 안 받더라마는. 아침에 메일 확인하다가 응? 배송 후기를 남겨주세요? 초인종 안 울렸는데???? 잠옷에 가운만 걸치고 현관 밖 우체통을 여니 박스가... 띠로리. 맘에 안 드는 크로노포스트 배송이었는데 더 어이가 없어가지고. 각설하고 책이 왔다. 






지난번 4월에 책 많이 샀다고 페이퍼 썼는데 그 책들 받은 거다. 플러스 한 권은 <고통받는 몸>! 싸릉하는 책친구가 선물해줬다. 😍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생각보다 얇아서 왠지 배신(?)감 들었다. 늠 비싸쟈나요... 가격은 안 비싸지만 마찬가지로 얇아서 좀 서운했던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으흠 이거 읽는 달에는 좀 행복이 플러스되겠는데? 금방 읽고 또 서운하려나. 


그러니까 4월의 여성주의읽기 책인 <행복의 약속>을 나는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애초에 같이 읽으려고 꺼낸 책들이 너무 어려워서 그거 꾸역꾸역 읽느라 어려움으로는 또 뒤지지 않는 아메드의 책도 역시나 진도 빼기 힘들다는 이야기. 어이구 힘들어라. 





맨 아래는 푸코의 <말과 사물>! 진짜 꾸역꾸역 저만큼 읽어서 넘나 기쁘고! 이해 따위 집어쳐! 그냥 읽어! 이런 마인드로다가. 중간 책은 <정동 이론>이다. 이거 산 사람 후회할 지도 모른다. 으... 어려워 어려워. 나만 어려운 거라면 다행. 그래도 일주일이나 10일 정도면 끝까지 읽을 것같다. 휴. 맨 위 책이 <행복의 약속>인데.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으쌰으쌰. 














이 세 권 때문에 다른 책을 읽지 못하고 있어서 새로 받은 책들을 쌓으면서도 심란하다. 뭐 말이 심란하다는 거지, 알다시피, 그런 거 아니겠는가. 잠깐 심란하다가 오 새 책이야, 안 읽은 책이야, 좋아좋아, 이러는 거. (내 눈에만) 정갈하게 치웠던 책상은 다시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 혼돈의 책세상 만쉐. ㅠㅠ 


배고프다. 점심 시간이다. 뭐 먹지. 집에 먹을 (만한 맛있는!) 게 없다는 건 슬픈 일이야... 국물떡볶이 먹고 싶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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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2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복의 약속 아직.. 엄청 그 책에만 매달려야 해요 ㅜㅜ

난티나무 2023-04-24 22:50   좋아요 0 | URL
맘 잡고 읽으면 금방 끝낼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ㅋㅋㅋ 여태 미루고 있는데 오늘 24일이네요? 허허. 근데 맘이 안 잡힌다는요.ㅎㅎㅎ 4월에는 맘이 안 잡힌다네~~~~
같이 화이팅!!!!

건수하 2023-04-2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데리치 책 얇아서 저도 살짝 아쉽기도 좋기도 했어요 ㅎㅎ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도 저렇게 얇을 줄이야!

행복의 약속 아직 시작 못했는데... 그래도 시작은 할 거예요 ;ㅇ;

난티나무 2023-04-25 15:26   좋아요 1 | URL
책이 얇으면 왜 서운할까요? ㅋㅋㅋ
법정, 와 진짜 좀 심하다고 생각했….^^;;;
행복의 약속, 화이팅입니다!!! 저도 남은 부분 읽으러 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