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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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이상한데 좋다. 조금은 낯설다. 낯선데 좋다. 왜 좋은지 생각한다. 문장들이 주는 감정, 정확히 그 감정이 아니라 해도 무엇을 말하는지 왠지 알 것 같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 비슷하게나마 내가 느꼈던 것들. 주목받지 않고 알 필요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 첫 단편에서부터 툭툭. 아아. 

이런 관계, 이런 시선, 이런 어긋남을 알아챌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겠지. 여성의 경험 속에서 알아채지는 것들. 수많은 선과 경계와 시간과 공간 들. 그냥 내뱉은 말로 보이는데 말 속에 힘이 있고 뼈가 있고 가시도 있다. 그리고, 상실을, 슬픔을, 분노를, 고통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 



「보내는 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손을 뻗어야 하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려야 하나, 얼마나 오래 함께 손잡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작용하는 관계의 상호작용.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헤어지게 된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쉬운 관계도, 덜 아쉬운 관계도 있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것 중 제일이다. 


「여기 우리 마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 혐오는 공포를 낳는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작품 속 현실에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두 여자의 관계에 안도한다. 


「눈으로 만든 사람」

처음 읽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었다.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이라 기대를 한 건지도. 작가의 말을 읽고 제목에 지나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나와 내담자」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다만 들을 수 있을 뿐. 

상처와 말할 수 없음, 벗어나기 어려운 과거. 말할 때까지 있어주기. 상처, 상처, 상처, 그리고 상처...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운내」

얼마 전 읽은 책의 사혈이 생각났다. 옛날 서양에서 의사의 처치로 행해지던 만병통치의 방법. 사혈,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부터 불안했다.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말들을 하는데, 희한하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 존재하지 않는 감옥에 갇혀버린 아이들. 


」 

슬픔과 죄책감을 놓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게 내가 나일 그때」 

다른 책에서 읽은 단편인데 다시 읽으니 그때보다 좋다. 좋다고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아리다. 


「11월행」

역시 다른 단편모음집에서 읽은 작품. 비슷하게 느꼈던 일상의 숨겨진 감정들,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


「점등」 

낯선, 종교 행사의 이면. 괴로움과 고통의 드러나지 않는 원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알 것만 같은 느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내가 하는 말을 알아채는 사람, 고통의 원인을 몰라도 아픔을 짐작하는 사람, 울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삶이었으면. 그런 삶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런 사람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자. 그런 사람 꼭 한 명은 만나자. 소설들이 내게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개인 시간은 어차피 없었다. (「보내는 이」)

나는 알고 있었다. 진아씨네 식탁 등이 아무리 각별해도 여긴 내 아이의 친구 집이다. 진아씨는 내 아이 친구의 엄마이며,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비슷한 여건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아는 나이이므로, 이 관계를 오래 가꿔가고 싶다면 훅 들어가선 안 된다.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구조적인 것들에 대해선 얼마든지 얘기를 나눠도 좋지만 개인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건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 아이에게 불리한 빌미가 될 수도 있으므로, 내 스트레스 생활 또한 너무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 (「보내는 이」)

은채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남편은 딱 한마디를 하고 지나갔다. 우리 딸 사춘기인가! 남편은 은채가 열 살일 때도 그 말을 했다. 우리 딸 사춘기인가! 하하하! 기분이 좀 좋은 날이면 남편은 서점에 들러 초등 고학년 딸이 엄마와 갈등을 겪다 서로를 이해하는 내용의 아동소설을 사왔다. 그는 한 번도 부녀 관계에 대한 책은 사오지 않았다. (「여기 우리 마주」)

은욱이의 아이를 생각하면 엄마는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자다가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왜 깨어 있을 땐 잘 웃지 않았었는지, 그런 게 궁금할 뿐이다. (「美山」)

"목요일부터 계속 까만 밥을 먹었어요."
"흑미밥?"
"먹버섯 남은 게 있어서 먹버섯밥을 했더니 그래." 하은 대신 은형이 말한다.
"먹버섯이 그게, 항암 효과가 그렇게 좋단다."
규옥은 항암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항암 다음에 좋아하는 말은 항산화. 미나리, 시금치, 고구마, 호박, 작두콩, 무, 배추, 어디에서나 규옥은 항암과 항산화 성분을 발견했다. 항암 효과가 불러온 이상한 피로감에 젖어 은형은 멍한 상태로 운전을 계속했다. (「11월행」)

신부가 웨딩드레스 말고 한복을 입었는데, 한복도 이쁜 게 좀 많니. 결혼식인데 화사하면 좀 좋아? 퓨전인지 뭔지라는데 색깔은 위아래 다 허연 게, 비녀는 금방 흘러내릴 것처럼 비뚜룸하고, 새색시가 아니라 꼭 상주 같았다니까."
덕산 방면으로 우회전을 하면서 은형은 결혼식 날 상주 같아지고 만 신부에 대해 생각했다. (「11월행」)

"엄마 둘에 딸 둘이시네요."
...
규옥과 은형과 하은은 성이 다 달랐는데 하은은 전씨였다. (「11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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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9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9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8-06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08-07 00:16   좋아요 0 | URL
앗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도요~^^

thkang1001 2021-08-06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08-07 00:17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난티나무 2021-08-07 00:17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그레이스님도요~~!^^

2021-12-2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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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주는 일은 얼마만큼의 경계를 가져야 수월한 걸까. 나의 경계와 너의 경계가 달라 어긋나는 시선. 상처와 말할 수 없음. 문장마다 고통스러워 가슴이 아린데, 좋다. 아픈데 좋다고 말해도 되나. 그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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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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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가 현실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슬프면서도,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책. 남성 페미니스트를 응원한다. 더 깊은 사유를 바라며 별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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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버틀러의 책은 안 읽고 다른 책 구절 가져오기. 




"앞서 서술한 "생물학적 여성이란 논쟁적인 용어"라는 언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논쟁은 제3물결 페미니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기존 페미니즘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적 성)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섹스는 언제나 이미 젠더였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등장하면서 여성학계에는 커다란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젠더 트러블』에서 섹스 역시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의 주장은 섹스를 해체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곧 생물학적 자연에 대한 소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순수한 생물학적 실체가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보자. 보부아르가 위와 같은 주장을 했던 1949년 당시, 지배적인 성 담론은 사회생물학이었다. 사회생물학은 남성의 성은 충동적이고 능동적인 반면, 여성의 성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라고 여기며,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기초를 생물학적 근거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보부아르는 역으로 사회규범이 여성성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자연적인 실체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버틀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겉보기에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성적 사실들이 정치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면서 과학 담론인 양 이해되고 있었다면, 섹스가 불변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 역시 의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몸의 경험을 인식하는 것마저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섹스가 아닌 젠더가 아닌가. 자궁을 적출하거나, 완경한 여성을 훼손된 여성이라 간주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와 "자궁이 없는 자, 말하지 말라"라는 넷 페미니스트들의 언설은 얼마나 상통하는가. 버틀러는 "생물학은 운명"이라는 공식을 논박할 의도로 제시된 섹스와 젠더의 구분이 오히려 그 주장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버틀러는 2세대 페미니즘이 그동안 다뤄오지 않았던 가부장적 이성애주의를 퀴어의 정치학으로 비판하면서 역대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도발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버틀러는 운동 주체로서 보편 여성이라는 일관되고 매끄러운 재현주체가 필요하다는 기존 페미니즘의 정체성 논의에도 반기를 든다. 버틀러에 의하면 주체가 정치학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정치적인 지점이다. 왜냐하면 정치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가 있다는 생각은, 배타적인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주체가 구성되고 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떄문이다. "여성"이라는 용어는 늘 가변적이고 모순적으로 성립되며, 누군가를 규정하는 완전한 의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대상을 재현하고자 할 때, "어떤 여성을 재현할 것인가?"라는 불안한 경합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배타적인 실천은 결국 '동일성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에 가담하면서 더 심한 파편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아름 「모두의 페미니즘을 위한 정치윤리학 : 당사자주의를 넘어서 우리'에 대하여」,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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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젠더트러블>을 펼쳤다. 오랜만에 펼치면 눈에 좀 더 잘 들어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으나 기대는 여지없이.ㅎㅎㅎ 그냥 글자만 훑어나가는 걸로. 안 읽기는 그러니까. 읽기는 읽는다! ㅠㅠ 툭툭 튀어나오는 단어나 문장에 내 경험을 얹어 생각해 보는 걸로 만족. 설령 내가 생각하는 것이 글의 뜻과 딱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를 읽고 있다. 첫 장이 정희진의 글인데 여성주의이론이 함께 나와서 어 이거 만만치 않네 보던 중 '주디스 버틀러'!!! 또 나와!!! 가져왔다. 


"젠더에 대한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은 페미니즘 이론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는 젠더에 대한 그간의 모든 이분법적 딜레마에 탈출구를 제시했다. 정상과 비정상, 보편과 특수, 이성애와 동성애, 남성과 여성 등 수많은 이항 대립적 사유를 넘어선 그의 이론은 페미니즘뿐 아니라 현대 철학 전반에 분수령이 되었다. 버틀러는 젠더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 수행을 거쳐 구성되는 사회적 규범(norm)이자 임의적 범주(category)라는 것이다.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정체성(identity)은 동일성이 아니라 동일시() 욕망이다. 남성성이 작동하는 원리는 남성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기존 담론에 따른 인용, 패러디, 재현, 행위(doing)의 문제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 한국 말을 잘 하는 것은 그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매일 한국어를 사용하기(performing)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국인이든 실체는 없다. 행위가 있을 뿐이다. 니체의 유명한 말, "행위 뒤에 행위자는 없다."를 버틀러만큼 적실하게 사용한 철학자는 없을 것이다. 행위는 행위자의 속성이 아니며 행위 자체로서 변형(해석)될 때 젠더의 해체도 가능하다. 버틀러의 주장은 '언어적 실천'이라는 패러다임을 확고하게 제시했다. 이론과 실천 운동의 뿌리 깊은 분리와 위계를 해소한 것이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중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정희진, p.40~41)


이것만 읽고 버틀러 끝, 하면 좋겠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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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2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님 어쩜 이렇게 버틀러 잘 설명해주셨을까요? 쏙쏙 들어오네요. 정희진 쌤이 버틀러 해설서 써주시면 좋겠어요!! ㅠㅠ

난티나무 2021-07-24 00:10   좋아요 0 | URL
저도요!!!!! ^^;;;;;;;

단발머리 2021-07-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찾아봐야겠어요. 난티나무님 덕분에 이 책을 다시 발견했네요. 감사합니다!!!

난티나무 2021-07-24 00:11   좋아요 1 | URL
한참을 묵혀뒀다 꺼냈는데 음청 좋네요! 이 기획 책들 다 사모아야 겠다는!!!!!!

- 2021-07-28 16:14   좋아요 0 | URL
저 다 이미 사모아놓은 사람 쨘 !!! 그나저나 희진사마… 😭

난티나무 2021-07-28 19:17   좋아요 0 | URL
미투의 정치학 그저께 삼요.ㅎㅎ 한 권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