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실재론 : 우리 몸 밖의 세계는 우리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관점.

* 확증편향 : 자신의 선입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는 중 나오는 두 개의 단어. 이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 [편협한 이야기의 위험 The danger of a single story]에도 마찬가지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지리아 사람인 작가가 '아프리카인'이라는 말을 미국에서 들으며 '새로운 정체성'이라 명명한 것처럼 나에게도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아시아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빠리나 리옹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대도시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시골에서의 경험. 일단 어 아시아사람이다, 관심을 던진다. 신기하니까. 다르게 생겼어. (웃기게 생겼어,가 더 맞을 지도.) 어디서 왔어요? 그리고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본?(나 일본 알아.) 중국?(중국도 알지.) 베트남? 태국?(어쩌면 프랑스에 있는 외국식당을 아는 순서대로 대는 것 같기도 하네.) 아무튼 아는 아시아 나라들 대여섯 개를 줄줄이 대보면서 맞추려고 든다. 아는 나라를 다 말해도 끝까지 한국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답을 말해 주면 아아 그런 나라가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얼른, 아 축구!(한참 축구로 한국이 이름을 날렸던 때) 요즘이라면 아 BTS!(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웬만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모르기 일쑤다.) 혹은 기생충!(나 그거 봤어.) 또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다.(나 좀 알지, 거기. 김정은도 알아.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모름.) 그러니까 그들에게 한국은 둘로 나뉘어진 나라이면서 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임에도 축구를 아주 잘하는 나라인 것이다. 영화로 알려진 작은 나라인 것이다.(아마도 영화 속 이야기가 한국의 흔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겠지.) 면전에 대고 말은 잘 안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너네 개고기 먹는다며?도 추가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아디치에가 말하는 싱글 스토리, 편협한 이야기다. 미국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편견을 갖듯이 말이다. 한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

나는 그렇게 프랑스에 와서 '아시아인'이 되었다. 대체로 외모만으로 중국인이라 짐작 당하면서.(엄마, 중국사람이야. 손가락질을 하며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빤히 쳐다보는 눈빛.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우월감에 차서 상대를 내려다보거나 비난하는 눈빛. 너 되게 싫다를 의미하는 눈빛. 꺼지지 않고 왜 계속 거기 있니 하는 눈빛. 상대가 눈치채고 쳐다볼 때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 너 까고 있어 알리는 눈빛. 무표정을 가장한. 이 눈빛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있었다. (자, 이 눈빛은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아디치에의 '아프리카인'은 나의 '아시아인'이다. 아마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시아인'도 만만치 않다. 세계 공통 편견이자 일반적인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종의) 인식대로, 혹은 현실에서 취급당하는 순서대로 인종을 줄세우면 맨 꼴찌로 바닥에 있는 게 아시아 여성이라고 한다. 여기 사람들의 눈에 내가 그냥 '아시아 여자'로 보인다면, 내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저 똑같은 취급을 당할 밖에.

흔히 사람들은 어느어느 나라에선 인종차별 안 해요, 그런 일 적어요, 당해본 적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 나라에선 그래도 인종차별 안 하지 않나? 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 외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가 외국에서의 경험을 좌우하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편견도 만든다. 여행 중에 만난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상대의 면전에 대고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슈퍼의 계산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글생글 웃던 직원이 내 차례가 되면 굳은 표정으로 바뀌는 일이,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일이, 내 얼굴만 보고 프랑스말을 하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꺼내 쓰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그것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인지,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좀처럼 알 수가 없지만.

'아프리카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진 편견도 생각해 본다. 아프리카에 대해, 거기 있는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대체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떠오르는 것은 단편적인 단어이거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니 나도 아프리카에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아프리카까지 갈 것도 없다. 일상에서도 수두룩하다. 나의 편견들은 내가 깨닫고 깨어버리려고 노력하면 된다지만(실제로 깨지고 말고는 차치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은 어찌할 것인가. 가서 콕 집어 편견이라고 말해줄 것인가.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힘이 세고 권력도 더 가진 사람이라면, 직장 상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스스로 깨우칠 일은 없어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해도 소용없음을 아는 것은 득인가 실인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할 일인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게 맞을까. 내 생각 또한 편견이 아닐까. 여러 가지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질문 또한 계속된다. 답을 찾기가 어렵다면 같은 질문을 계속 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나부터 잘하자에 나만 잘하면 안 되지가 더해진다. 얼마전 읽은 <비건 세상 만들기>에서도 그랬듯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지난한 길이다. 상대에 따라 묘수를 부려야 하는 일이다. 옳음을 주장한다고 해서 편견이 부서지지는 않는다. 작든 크든 하나의 편견을 깨부수는 일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 얽힌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었나 싶다. 그랬던 거다. 몰랐을 뿐이다.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는 한글책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프랑스어판에 실린 글이다.

테드 강연이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ted.com/talks/chimamanda_ngozi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social&utm_campaign=ted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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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라는 말이 잠깐 낯설다. 정신 차려, 5월이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구긴. 

3월에 정신 없을 줄 알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이 있고, 4월은 정신 없을 줄 알고 조금 줄였으나 아예 읽지 못한 책도 있다. 허허. 그래서 5월에는 일단 못 읽은 책들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5월에도 정신이 없을 예정이라.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네 시작하려 애써보았습니다. 내 정신은 딴데 가있는 와중에 울프님의 어조는 너무나 자유분방하였던 것입니다. 두어 페이지를 들여다보다 이건 이 정신머리로 읽을 일이 아니구나 깨닫고 얌전히 책장을 덮어두었습니다. 4월에서 5월로 밀려났으나 이번달에 읽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6월로 밀려나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무도 안 알아준다 한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보이지 않는 여자들> 

4월에 읽었어야 할 책을 4월 말에 펼쳤다고 합니다. 희한하게 소설이 읽히지 않는 정신머리인데 이 책은 또 읽힙니다? 플래그 붙여가며 동그라미 쳐가며 죽죽 진도 빼는 중...이라고 말하면 좋겠으나 오전 중 말짱(?)한 기운에 읽을 때와 저녁 흐릿한 불빛에 읽을 때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좌절 중이라 합니다. 말짱할 때 진도 빼라고 해야 겠습니다. 
















나익주,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3월에 읽겠다고 해놓고 3월에 얼추 절반 이상 읽었으나 3분의 1 지점에서부터 슬렁슬렁 책장이 넘어가는 기현상 발생, 급기야 덮어버리고 말았다고...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여유로울 때 다시 펼쳐봅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메리, 마리아, 마틸다> 

5월 여성주의책읽기 도서. 

오늘 우체국에 맡겨졌다는 비보. 그러니까 사기는 엄청 오래 전에 샀단 말입니다? 항공 배송료가 겁나 올랐단 말입니다? 그동안 항공으로 척척 받던 책들을 그냥 다 동생 집에 보관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 해서 꼭 받을 책을 딱 세 권 골라 부쳐달라고 부탁했는데 동생이 책을 집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못 찾았다는, 그런 말입니다. 대충 읽었다고 해서 웬일이야 잘 했네 했더니만 글쎄 책을 착각하고 있었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동생이 대충 읽었다는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좋다가 말았습니다. 책 시작하려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네요. 다 읽고 감상이든 뭐든 한글자도 못쓴 소설책이 두 권, 아니 세 권.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슬픈 이 시기에 잘 읽을 수 있을런지 지레 겁이 나긴 합니다만. 




욕심을 내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만. 

4월 30일 금요일 밤 열 시에 쓰는 5월 읽을 책 가벼운 목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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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1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난티나무님 동생분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내세요!!

난티나무 2021-05-02 21:50   좋아요 1 | URL
아하하~~~ 책 표지를 착각하는 바람에 이틀을 뱅뱅 뒤졌대요.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5-01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아 저도 5월은 읽다만 책들 꼭 끝내고 싶어요! 함께 파이팅해요! 🙋‍♀️📚

난티나무 2021-05-02 21:50   좋아요 1 | URL
넵! 그래서 열심히 <보이지 않는 여자들> 읽는 중입니다. 열불 나요.ㅠㅠ
 















프랑스어판으로 현재 한국의 친구들(프랑스어책읽기)과 함께 읽고 있는 책. 같은 책을 두 권 갖고 있지만 두번째 이야기들이 다르니 같으면서도 다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아래 사진 오른쪽 책으로 읽는 중. 두 권 동일하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실었고, 왼쪽 책에는 단편소설 하나가, 오른쪽 책에는 또다른 TED 강연이 실려 있다. (<우리는 모두...>도 TED 강연이었다.)


짧고 적확하고 쉽다. (TED 강연을 텍스트화한 것이고, 워낙에 말(글)이 명료하다.)

제목만 보고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나 맞는 말인 걸.)

스웨덴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책이라고 한다. (부럽다.)

프랑스에서는 나누어주지 않으니 내가 사서 아이들에게 읽혔다. (가격도 싸다. 2유로.)

이런 책은 가볍게 만들어 주저없이 사서 마구 뿌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갱지를 써서 책을 만들면 좋겠다. (불가능하지 않은데 안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책의 내용보다 판형과 재질과 디자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닐까 스물스물 드는 생각.(독자들이여 바뀌어라!)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Nous sommes tous des féministes.(should be가 왜 sommes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devons être여야 하지 않나. 페미니스트여야 한다와 페미니스트이다의 차이.)  정말 그러합니다.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페미니즘은 나쁜 게 아니라니깐요. 모두를 위한 것이죠. 당신을 짓밟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일단 한번 읽어봐~ 


[편협한 이야기의 위험] -> Le danger de l'histoire unique. 역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을 텍스트화한 것이다. 앞부분 번역해 가며 읽는 중. 똑똑해. 빛이 난다. (l'histoire unique, 영어 원문 single story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S님이 답을. 단면 혹은 단편적인 이야기. 짱이야.)

강연 비디오를 찾아 들어도 좋다. 나는 아직 안 들었다. 그냥 글자로 먼저 읽고 싶다. 다 읽고 비디오 볼래.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더라고. 작년에 <헝거> 읽을 때 록산 게이의 테드 강연 비디오를 봤는데 책 읽는 내내 얼굴이 떠오르더라. 영상이 글자 읽기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그건 이미지를 보기 전에는 알아챌 수 없으니.

이미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젊은 작가들이 게스트 출연 많이 하고 있다. 아는 작가가 티브이에 나오니 반갑기는 한데 그것이 또 예능에 나와 말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 책에서 쌓았던 작가의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지는 경험도 하게 되는지라... 시대가 변하면서 작가의 일상도 변해가는군 하는 중이다. 두문불출하면서 한우물 파던 시대는 버얼써 끝난 거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거지.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요구가 아닌가. 검색도 유튭으로 하는 세상이니 이미지 마케팅은 당연한 것인가. 모르겠다. 좋아하는 마음 쪽의 작가들이 나와서 찌릿하게 만드는 말 한마디씩 하면 좋겠다. 편집에서 다 잘리려나. 아마 그렇겠지. 그러니까 예능은 예능인 거야.

잠시 샜다. 영어로 쓰여진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주아주 어렵지만 아디치에 작가는 이런 나를 위해 어렵지 않은 문장들을 선사해 주었다. 쩔쩔 막히면 안 되는 영어문장도 보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사전도 찾고 우당탕탕. 프랑스어 문장들을 읽으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설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당췌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는 아주 난감한. 그럴 때 나는 그 문장들을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80% 정도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뉘앙스를 눈치채는 일은 정확한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과 다르다. 아니 그리고 나는 왜! 찾아본 단어와 구절들을 자꾸 매번 계속 까먹는 거냐. 들어도 소용없고 적어도 소용없고 입으로 읊어도 소용없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술이 너무도 뛰어나다. 그래서 언어는 밖에 나가 사람들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슬프다. 책 이야기 하다가 자책하는 기술 또한 뛰어나군. 정신 건강을 위하여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러니까, 음, 이제, 겨우 두어 페이지 읽었는데 이렇게 할 말이 많다고? 계속 이러길 바래. 책 한권 다 읽고도 한마디도 못하는 날은 우울해.

(TED 강연 영상 페이지 들어갔다가 텍스트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는 걸 알았다.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 아무튼, 한국어 번역이 나름 매끄럽다? 순간 프랑스어 번역하지 말고 여기서 긁을까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5초 정도 하다가 황급히 접었다. 공부하는 자세가 글러먹었어. 쯧.)




「스웨덴에서는 스웨덴여성로비, 스웨덴유엔연맹, 스웨덴노동조합연맹 등의 주도로 이 책의 스웨덴어판을 전국의 모든 16세 고등학생에게 배부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스웨덴여성로비의 회장 클라라 버글룬드는 “이 책은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스웨덴 정부는 스스로를 “세계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부”라고 자부하며 세계에서 성평등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나가고 있는 정부로 손꼽힌다. 스웨덴은 현직 장관 24명 중 12명이 여성이며, 젠더 주류화를 정부의 핵심 의제로 삼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사 NPR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배포 소식을 전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이의를 제기한 스웨덴인은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한 칼럼니스트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스웨덴 고등학생에게 이 책의 내용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성평등 국가인 스웨덴에서 모든 고등학생에게 이 책을 읽히기로 결정한 것은 이 책에서 전하는 ‘21세기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준다. 아디치에는 멋진 선물을 받게 된 스웨덴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 해야 한다, 할 수 없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남녀 모두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 남녀가 진정 평등한 세계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입니다. 16세 때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말뜻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스웨덴의 청소년들도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정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세계가 진짜로 공정하고 평등해져,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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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5-01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줌마라는 이유만으로, 애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는 가능하고 -는 불가능하고 이런 제약을 스스로에게 두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습관이 무서운 건지 저도 모르게 딸아이한테 여자가 그러면 안돼 라고 할때 있어요. 입틀막이죠 -_-;;;;;;;; 반성합니다. 이 얇은 책이 주는 무게가 이렇게 클 줄 알지 못했어요. 읽지 않았다면 큰일날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락)

난티나무 2021-05-01 00:49   좋아요 0 | URL
저도 입틀막 가끔 합니다.^^;;; 입으로 나가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화들짝 할 때도 있고요. 왜 안 그렇겠어요...ㅠㅠ 얇은 책 많이많이 뿌리고 싶은데 제목 보고 안 펼칠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ㅎㅎㅎㅎㅎ 함께 읽기! 아자!

단발머리 2021-05-0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책이든 번역된 책이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읽는 사람이 바로 저라서ㅠㅠㅠㅠ 번역의 고충 이야기하시는 거 듣다보니 새삼... 맞아, 아, 그래, 번역가들 진짜 힘들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또 혼란스럽고 헤매고 고민하는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공부법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더 열심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싶은데, 이제 의지할 수 있는 번역은 딱 한 개 뿐이랍니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완벽 비매품이죠. 움하하하하하하핫!!!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해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1-05-02 21:5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뭐라고 할 말이....ㅎㅎㅎㅎㅎ 하겠다고 해놓고 하루만에 후회도 했어요.^^;;;
이거시 정말, 한국말로 뭐라고 써야 하나 고민되더라고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 실력에 관한 이야기이니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ㅎㅎㅎ
저는 번역책 읽으면서 막 욕하면서 읽거든요. 번역이 이게 뭐냐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반성도 하지만 또 읽다 보면 그것이, 욕 안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나이 듦을 배우다 - 젠더, 문화, 노화
마거릿 크룩섕크 지음, 이경미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3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띄엄띄엄, 이제야 끝냈다. 얇지 않은 책이었으나 지루하지 않았고 잘 읽혔다. 이상하게도 책 제목이 외워지지 않아 꼭 책 표지를 보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렵지도 헷갈리지도 않는데 자꾸만 나이듦에 대하여,라고.

만약 내가 2~3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해 본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으리라. 50이 코앞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숫자가 내 나이가 되었다. 흰 머리카락이 늘고 주름들도 함께 늘어가고 체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는 젊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항상 젊다. 이런 생각은, 젊음은 늙음보다 좋은 것이라는 사회의 환상에 절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 아빠를 다시 생각한다. 스쳐지나간 인연의 언니들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나이든 사람들, 많이 나이든 사람들의 삶을, 상황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늘 비난만 하던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도저히 모르겠다고, 너무 싫다고, 몸서리쳤던 것을 조금은 후회도 한다. 함부로 내뱉던 말들. 늙어서 그래, 이제 너도 늙는 거지, 늙으면 으레 아픈 거야, 나이에 비해 젊네, 진짜 안 늙는다, 너도 나이들어 봐라...... 오마이갓. 이젠 안 할게요. 


노인과 여성이 의약산업의 최대 소비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과 <호르몬의 거짓말> 같은 책들에서 이미 여성 피해의 역사를 보았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피해를 본다. 양로원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어머니 아버지, 옆지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매일 일정 분량의 알약을 삼킨다. 의사의 처방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어머니 아버지들은 무조건 신뢰를 하니 그 또한 슬프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아플 확률도 높은데 다른 사람까지 돌보아야 하는 나이든 여성은 최하위 약체이다. 여전한 성차별. ('젠더와 문화와 노화'는 복잡하게 얽혀 여성을 억압한다.) 내가 이미 속해 있으며 앞으로도 걸어들어갈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의 글자들이 무겁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향하는 목표는 있지만 이루어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인식이 바뀌는 일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널리 읽혀야 한다. 나이든 여성에 대한 책이 더 많이 쏟아져나와야 한다. 외국의 논문 번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얼마 전 알라딘 책소개에 <완경일기>가 떴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소개글과 목차와 인용구를 살펴보고는 조금 낙담을 하긴 했으나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완경,으로는 단 두 권이 검색된다. 한국에서도 완경 관련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여성들의 인터뷰집도 종종 보인다. 구술사도 더 많아졌으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쓰여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면. 책 말미에 나오듯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이듦에 대한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껏 궁금해하지 않았던,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많이, 계속. 


이 책도 다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둔다. (안 읽으신 분들 읽읍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강박적으로 신경 쓰는 증세, 수동성, 광대짓, 노화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노인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통해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음을 주장한다."(Green, 141) 이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특성은 보통 개인의 성격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사실은 무력감의 반영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면적 식민화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부모나 조부모가 자신에게만 몰입하거나 지나치게 유순하거나 노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이를 참지 못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늙었다’는 평가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조롱하느라 이 이면의 연유를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 P41

"엘리자베스 막슨Elizabeth Markson은 기억상실이 역할이 사라진 여성들의 적응 방식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우리가 치매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보다 원시적이고 비사회화된 정서적 인지적 상태의 표현이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상실은 "의미로 가득 찼으며 안식처라 불리던 과거의 우주"로 회귀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비슷한 해석도 있다. 그런데도 알츠하이머는 불치의 질병이고, 특히 85세 이상 노인은 대부분 걸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연령의 여성 수는 남성에 비해 네 배나 많다." - P113

"그러므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인생 후반기의 질병이 생물학적 근거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배양된 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가족이나 의사의 회의주의 혹은 무신경함에 직면하더라도 질병이나 사고, 질환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 기관이 병든 노인을 지원하도록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건강 유지나 증진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또한 알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의 환자 역할이 유해한 까닭은 질병을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할 뿐 아니라 사람을 의존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노인들은 종속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건강이나 타고난 치유력보다는 허약함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는다. 늙은 환자가 완전하게 기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는 의사는 거의 없다. 질병의 심각성뿐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전략과 회복 능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기회를 갖는 환자도 거의 없다. 만약 늙은

여성이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분노를 표출한다면 정신착란으로 진단받기 쉽다. 이것이 가장 소란스러운 형태의 성차별이라는 생각은 미처 떠오르지 않겠지만, 그녀의 증세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향정신성 약물이 처방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젠더다." - P116

"양로원에서 수년간 일한 심리학자 이라 로소프스키는 회고록 <형편없고 잔인하고 오래도록Nasty, Brutish, and Long)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노인은(양로원에 있건 아니건) 의약산업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공장과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양로원 거주자는 하루에 열 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주로 소화제, 진통제, 심혈관제, 정신활성제 등이다." " - P145

"건강한 노화에서 종종 간과되는 본질적 문제는 건강한 선택과 습관이 중산층에게나 허락된 사치라는 점이다. 자기 건강은 자기 자신이 책임진다는 중산층의 편견이 노년학자들의 언설에 그대로 묻어난다. 중산층의 기준에 맞게 건강한 선택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 설계는 가치 있으며 적어도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반면, 빈곤층이나 노동계층은 삶의 조건이 당사자가 아니라 남의 손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장기 계획과 유예된 만족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략) 세심한 식사, 운동, 적당한 음주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에서 오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중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 - P217

"여성으로서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노인 여성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들의 요구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의료 전문가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노인 여성은 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고 질병과 정상적 노화를 구분할 만한 임상 경력도 갖추지 못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예방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 여성이 남성의 두 배가량 많고, "건강염려증에 걸려 넑두리하고 불평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환자 - 의사 관계에서의 젠더 차이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여성 의사는 환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더 많이 허용한다. " - P232

"그러나 우선순위가 어긋났음을 탓하고 끝내기에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잘 챙겨 먹고 운동을 계속하라는 은근한 지시의 이면에는 개인주의가 숨어 있다. 개인이 사회적 분석의 기본 단위라면 부와 권력의 분배와 같은 구조적 패턴보다는 개인의 행동에 관심이 쏠리게 되고, 따라서 개별적 건강교육이 질병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확산된다. 건강은 개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은 "소수 인종 노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상호의존이나 집단책임"과 정면 배치된다. 개인주의 철학 덕분에 기업과 정부는 질병(환경오염)을 부추기고, 그것을 지속시키면서도 그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다. 기업과 정부가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받게 되는 영향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진다." - P249

"노화에서 젠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은 돌봄과 은퇴다. … 현재 미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노인 돌봄의 80~85퍼센트를 무상으로 감당하고 있다. 돌봄은 같이 거주하는 식구에게 때때로 도움을 주는 것부터 24시간 돌봐주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때로 남성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인을 위한 재가 돌봄의 70~80퍼센트는 여성이 담당한다.(90~95퍼센트로 평가하는 조사도 있다.) 며느리가 아들보다, 여자 형제가 남자 형제보다 돌봄을 제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족 돌봄’은 여성의 일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 연로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정서적 구속’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 수명이 길어지고, 소규모 가족으로 바뀌고, 자녀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율과 혼합가족이 증가하는 등 몇 가지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돌봄의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가족 구성원 중 65세 이상 된 사람이 두세 명 정도는 있다 보니 60대나 70대 여성이 나이 많은 부모를 돌보기도 한다. 과거 40년 사이에 어머니와 같이 사는 50세 이상 여성의 비율이 37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현재와 과거 돌봄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의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마치 "무임금 돌봄 제공자 군대"가 가정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듯이 정책을 운영한다.

돌봄 노동을 하다 보면 일상적인 다른 집안일까지 맡아야 하지만, 그런 일은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돌봄에 적합하다는 가설은 여성 전용 영역이 따로 있다는 통념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여성이 경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무기력증에 계속 중독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이슈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복잡하다. 많은 이가 여성에게 특별한 돌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전통적 돌봄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 측면이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그 역할이어야만 가능한 정서적 심리적 이점이 인정됨과 동시에 돌봄 노동자의 실질적이면서도 때로 감추어진 비용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돌봄이라는 고된 노동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무임금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실제로 엄청난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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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30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늙는 법˝ ˝죽는 법˝에 대한 내용인가보다 하고 난티나무님 리뷰 따라가다가 보니, 그제서야 ‘젠더‘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하위 약체라는 말씀에 제 가까운 관계부터 돌아보게 되네요. 꼭 읽어볼게요!

난티나무 2021-04-30 01:22   좋아요 1 | URL
노년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라고 할까요, 페미니즘 노년학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노년과 노화에 대한 문제들을 짚어내는 책이에요. 추천합니다.^^
 



3년 전. 

한국에서 내가 처방받은 약은 여성호르몬제였다. 산부인과 의사는 증상 몇 가지를 듣고는 빼박 갱년기라며 약을 처방했다. 그 때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심장이 수시로 벌렁거리고 제멋대로 뛰는 느낌이었으며 어쩐지 안정이 되지 않아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긴 이야기가 있으나 너무 기니까 거두절미하고.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위에 탈이 났고 다음날 동네 내과에 갔었다. 한국의 병원 시스템을 잊어버리고 구구절절 며칠 간의 일을 이야기하며 증상을 설명하려 애쓴 나는 밖에 환자들 엄청 많다며 의사에게 호통을 들었지만, 다다음날 그 의사의 처방전을 본 산부인과 의사는 그가 명의라고 추켜세웠다. 처방전에는 신경안정제 반 알이 들어있었다. 힘이 너무 없어 링거를 꽂고 누워있던 나를 살피며 나이도 그렇고 혹시 모르니 다른 원인을 찾아보라고 권유한 것도 내과의사였다. 그는 나의 무엇을 보고 내가 불안한 상태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을까? 

병원에서 처방받는 모든 약의 부작용을 알게 되면서 되도록 약을 먹지 않는 나는 한밤에 심장 때문에 잠이 깨는 일에 놀라서 호르몬제를 일주일 정도 먹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저혈당도 아니고 갱년기도 아니라는 것. 불안한 마음과 공포. 공황 초기. 지금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는지. 불안한 게 맞았는지. 그리고 공황증세가 맞는지도 사실. 어쨌든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내 아픔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호전에 영향을 미쳤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화가 났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공황증세는 마찬가지 이유로 갱년기 증세와 비슷하다. 증상 몇 가지만으로 덮어놓고 갱년기라 확신하고 무조건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자세. 왜 의심하지 않지? 그러다 문득, 알았다. 내과에서는 이전의 상황을 횡설수설 길게 늘어놓았었다. 산부인과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간략히 증상 위주의 설명을 했다. 내 설명이 진단에 영향을 미친 건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태도는 아직도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산부인과 의사와 내과의사는 모두 여성이었다. 


프랑스에서 우리 가족의 주치의(일반의)는 최근까지 13년 동안 나를 봐왔다. 7년여 전, 어느 날 된통 체했을 때였는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채로 병원을 찾았다. 인사를 하고 문 안으로 들어서는 나의 얼굴을 빤히 보던 의사가 말했다. 울고 싶은 얼굴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치솟았다. 그랬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 날 의사는 내게 한국에 한번 다녀오는 건 어떠냐고 권했고 그 말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한국으로의 혼여를 꿈꾸게 되었으며 실제로 몇 달 뒤 비행기를 탔다. 내 인생 최초로 혼여라 이름붙일 수 있는 여행이었다. 


한동안 병원 갈 일이 없었는데, 작년 말 편지 한 통이 왔다. 주치의가 병원을 닫았으니 다른 주치의를 찾아보라는. 표정만 보고 우울한 것을 눈치채주던 의사는 이제 거기에 없다. 나는 낯선 의사 앞에서 아픔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나의 주치의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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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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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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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2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 만나신 주치의. 그런 분 만나기 좀처럼 쉽지 않은데요.
아무래도 이윤추구에는 관심이 없어서 문을 닫았을까요.저도 이 책 읽으며 만났던 의사들 생각나더라구요.🤔

난티나무 2021-04-29 18:2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만나기 힘들지만 또 좋은 인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가져 봅니다. 주치의 그 분은 아마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신 것 같아요. 원체 거구에다가 다리가 워낙 안 좋아 무릎 수술도 하셨거든요.

2021-04-29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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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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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2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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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0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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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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