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세상 만들기 -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
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전범선.양일수 옮김 / 두루미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만약 누군가가 내게 왜 채식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왜 고기를 먹느냐고 되묻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신이 고기를 먹기로 '선택'한 것처럼 나도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어느 쪽의 선택이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먹는 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면,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내 말과 행동이 자유로운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수 있듯 음식도 마찬가지. 이렇게 매일 새로운 질문은 늘어간다. 


비건은 옳고 정당하며 실천해야 할 무엇이라고 주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장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라.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살아,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바로 그 사람, 당신의 친구이기도 남편이기도 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한 그 사람, 그들은 동물 윤리와 환경 문제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전략을 바꿔라. 완벽한 비건이 있을 수 없듯이 완벽한 설득 방법은 없다. 설득하려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등을 돌릴 것이다. 분노하는 순간 그 사람은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슈든 그 사람이 나와 다른, 반대의 입장이라면 그를 판단하거나 설득하지 마라. 융통성을 발휘해라. 


책을 읽으면서 뜨끔뜨끔. 내가 그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렀구나 싶다. 비단 비거니즘 뿐만이 아니다. 이 책의 방법론은 페미니즘에도 정치에도 기타 여러가지 문제와 토론에 적용할 수 있고 무슨 주의 무슨 이즘 아니라 일상생활의 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소통. 어떻게 소통하느냐의 문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먼저 공감할 것, 상대방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말 것.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일. 나도 어려운데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육식/채식 문제로 토론 아닌 토론을 할 때 결국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느냐, 나와 네가 다른 것이 무어냐. 반성. 어렵겠지만 태도를 바꾸어보자고 생각한다. 책 잘 샀다.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쉼표를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뜻이 달라지는 의미심장함. 


한편으로 위안도 됐다. 완벽한 비건은 없다는 말이 그저 위로성 멘트로만 다가왔었는데. 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는 공장생산먹거리들을 일일이 따져 먹는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한발짝 뒤로 가는 것도 나쁜 짓(?)은 아니라는 말. 먹고 싶을 때, 먹어야만 할 때도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완강하게 버티는 것보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말. 어떤 방식이든 자신의 것을 찾아나가고 중심을 잃지만 않는다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평소에 먹고 싶었으나 달걀분말가루가 들어가 애써 외면했던 과자를 한봉지 까먹었다.(몇개월 동안 정화(?)된 나의 몸은 예전의 그 맛을 그대로 느끼지 못했고 더부룩한 느끼함을 남겼을 뿐이지만, 이렇게 그 과자와 바이바이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여러 유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비건 지향인들, 아마도 거부반응을 견디지 못하고 들이받게 될 초심자들을 위한 책, 이미 오래 비건이지만 아직도 주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있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책, 비건 지향이지만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어쩌면 포기해버린 사람들에게도. 


* 책 실물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재생지인 듯한 종이 질감도, 페이지 위와 양쪽 여백을 최대한 줄인 것도(아래쪽도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았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면 이런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건의 명사(비거니즘, 비건, 비건들)는 형용사(예; 비건 식사)에 비해 어렵다. 명사는 이분법적인 용어다. 당신은 비건이거나 비건이 아니다. 비건들이 이러한 흑백 논리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완전한 비건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명사 '비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베지테리언이나 파트타임 비건이라면, '비건'이라는 명사로부터 배제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당신은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비거니즘'은 당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것이다. 명사는 '배타적'이다. 그것은 당신을 배제한다. 

'비건 식사' 또는 '비건' 제품에서의 형용사 '비건'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에게 비건 식사를 먹거나 비건 제품을 사용하라고 제안하는 것이 "비건이 되어라"고 하는 요구는 아니다. 누구나 비건이 되지 않아도 비건 식사를 하거나 비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훨씬 포용적이다. 형용사는 당신을 포함한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베지테리어니즘을 비거니즘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베지테리언'은 '비건'보다 더 입에 맞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연구에 따르면 베지테리언에 비해 비건이 갖는 추가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다.(하략)" (p.80~81) 

(*식사를 먹거나 -> 식사를 하거나)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가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덧붙인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어떤 색의 벽지를 고를까 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히 파란색이냐 초록색이냐의 문제가 아닌 고통의 문제이자 생사의 문제이다. 물론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지만, 베지테리언-비건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의 논리가 더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인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일반 대중이 무엇을 먹을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대형 마트나 생산자, 식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정부 보조금이나 정책이 특정 음식의 접근성과 가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제품의 가격과 광고 메시지에 의해 움직인다. 개인이 가족, 국가,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가 자의적으로 식습관을 결정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우리 모두는 멜라니 조이가 육식주의라고 명명한 신념 체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략)" (p.175~176)



"분노는 강력하고, 심지어 중독성이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동물 학대범, 동물의 고통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 쓸모없는 정치인, 대중의 무관심, 잡식주의로 돌아가는 비건에게 화를 낼 수 있다. 이해한다. 공포는 어디에나 있고, 분노는 위로가 되며 힘을 주기 때문이다. 

도덕적 분노는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동의 분노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비건의 수가 너무 적다. 이 현실은 언젠가 바뀔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분노를 조심해야 한다. 분노가 운동에 대한 신념의 표시, 열정과 에너지의 근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 계속되는 분노는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소통에서 효과적이지 않다. 우리는 화가 나면 단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또한 사실을 과장하고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힐난하고,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라면 그런 사람 주위에 있고 싶겠는가?" (p.249~25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1-04-29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걀분말가루가 들어간 과자도 안드셨군요, 와~
미국에 있을때 채식주의자인 한 미국인 남자 아이가 한국 라면이라면서 컵라면을 즐겨 먹는 것을 보았어요. 쇠고기 분말 가루 들어가 있다는 얘기 해줄까 말까 망설이다 말았지요.
저는 윤리나 환경 이런 의식 없이 그냥 고기가 싫어서 안먹고 있는 사람인데 예전엔 지금보다 더 해서 아주 특이한 사람 보는 듯한 시선을 많이 느끼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지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해주는 것 같아 관심이 가네요.

난티나무 2021-04-29 18:38   좋아요 1 | URL
밀가루 소화를 잘 못 시키다 보니 과자도 엔간하면 안 먹는데 아주 가끔 당길 때가 있더라고요. 성분표 훑어보면 대부분 달걀분말이나 우유분말이 들어가요. 기타 첨가제들도 많고요. 그러면 저는 아 동물성 성분이네 보다는 아 느끼하겠다 소화 안 되겠다 생각합니다.^^;;;; 반반일 때도 있고요.
예전에는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했겠지요. 지금도 뭐 많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길바닥에, 구르는 사랑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 나와

사람 사람의 귀를 흔들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처녀의 가슴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

눈먼 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착한 여인들의 한을 지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내가 미덥지 않은 미덥지 않은 너를

어떤 날은 만나지라고 기도하고

어떤 날은 만나지지 말라고 염불한다

속이고 또 속이는 단순한 거짓말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서

눈먼 이의 손길에 부서지는 것아

내 마음에서 사라져라

오오 '사랑'이란 거짓말아!


저주


김명순


(1896~1951)

평양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가난하게 숨진 김명순은 소설가이자 시인, 언론인, 변역가, 영화배우다.

식민 통치하의 암울했던 사회 환경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활동하였다. 기생의 딸이라는 낙인, 성폭력 피해 그리고 문학으로 가장된 동료 문인들의 공격이 내내 잇따랐다.

당시 문란하고 독한 여자로 그려지기도 했던 김명순은 사실,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서 5개 국어를 구사하며 서양 문학을 조국에 선보인 번역가였고, 동시에 '자유연애'를 역설하며 여성해방을 꿈꾼 신여성이자 선각자였다.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s://blog.aladin.co.kr/nantee/12561501


→ 그러므로 나는 계속 깨달아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적어도, 끊임없이.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알리스 슈바르처, <아주 작은 차이>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수잔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애비 노먼, <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 

손희정 외, <을들의 당나귀 귀> 

구세나, 박효진, 이소현, <페미니스트 교사들의 열두 달 학교 생활> 

윤유석, <샘골 사람들, 최용신을 말하다> 

뉴필로소퍼 12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언유주얼 10 <XXXY - 여와 남> 

















그리고 전번 부동산 책들에 파묻혀 버린 두 권을 다시 여기에 가져온다.

피터 노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매트 프래드, <포르노 판타지> 




모두 중고책, 선편으로 받을 예정.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1-04-22 0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다를 헤치고 난티나무님께 도착할 책들, 잘 구경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더는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다 결심도 하게 되고요^^

난티나무 2021-04-22 18:44   좋아요 0 | URL
사려고 마음먹은 책 몇 권이 중고로 보이길래 이래저래 왕창 질렀는데 소포를 언제 보낼 지는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같이 읽어요~!^^

다락방 2021-04-22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젠더 트러블>은 다같이 읽읍시다! 스케쥴은 4월 지나기 전에 공지할게요.
<포르노 판타지>와 <래디컬 페미니즘>은 저도 이미 갖고 있어요. 난티나무님, 저랑 같이 읽어요!!
>.<

난티나무 2021-04-22 18:45   좋아요 0 | URL
네네~!! 중고로 있길래 냉큼 샀어요! 같이 읽어요 다락방님~~~~^^

수이 2021-04-22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계속 읽고 계속 읽고 계속_ 이 열정을 본받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언제 다 읽지?! -.- 이 표정이 아니라 왜 이 표정을 짓게 되는 걸까요? 😊 근데 포르노 판타지는 못 읽을 거 같아 ㅠㅜ

난티나무 2021-04-22 18:51   좋아요 0 | URL
책을 사면 뿌듯한 이 마음~ 으헉....^^;;;;;;
포르노 판타지... 뿐만 아니라 포르노 관련 도서 섭렵해야 해요.ㅠㅠ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발등에 불 떨어짐.ㅠㅠ 많이 알아야 잘 싸운다! 요즘 작은넘과 대치 중입니다. 흑흑.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분통이 터진다. 왜? 도대체 왜? 이유는 책에 있지만 계속 묻는다. 왜? 도대체 왜? 과격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과격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분통 터지는 사실들을 모조리 알고 나서 얼마나 절망했을까, 얼마나 암울했을까, 그러면서도 그걸 딛고 활동을 하려면 또 얼마나, 매일매일, 순간순간 힘이 들까.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살기 때문이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분통을 터트리고 잠시 동안 그 여파가 지속되지만, 책을 덮고 일어서서는 설거지를 하러 가거나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러 간다. 나처럼. 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는 아니니까,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조차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책을 읽고 열을 내다가 밥을 하러 간다. 헐벗고 나오는 걸그룹 아이를 보며 열불을 내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 모든 여자 캐릭터를 벗기고 벗기고 벗기는 유치찬란뽕짝을 지나쳐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와 한바탕 언성을 높여 싸우다가도 다 돌아간 세탁기의 내용물을 꺼내러 간다. 건조기의 필터 먼지는 나만 치울 수 있는 것 같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테트리스 하는 일은 누구도 나를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원래 잘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 해와서 손에 익었을 뿐이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몰랐다. 도표를 보고 그래프를 분석하는 일보다 매일 삼시세끼 무엇을 만들 것이며 그러려면 무엇을 언제 사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글자로 쓰지 않고도 머릿속에 착착 개어놓는 일이 처음부터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니었음을, 반복 학습된 것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으나 깨닫는 것 말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어렵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머리는 생각을 돌린다. 어제 저녁에 한 밥이 조금 남아 있을 테지. 점심은 뭘 먹지? 어제 점심에 라면으로 때웠으니 오늘은 라면 먹이지 말아야 하는데. 하루의 1/3 이상을 이런 생각으로 보낸다. 시간을 재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 정도, 혹은 그 이상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가다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난다. 건조기 안의 빨래를 꺼내지 않으면 습기가 차서 냄새 날 텐데 어제 안 빼고 자버렸네. 가서 꺼내야 겠다. 어제 또 현미를 안 씻어놓고 그냥 잤네. 빨리 씻어서 담가 놓아야 저녁에 밥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젠장. 책이 제대로 읽힐 리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서 읽어야지 아무리 다잡아도 소용 없다. 내 머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은 대단하다. 깨달았으며 그리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행동을 했다. 소설집 하나 읽고 아 좋다 생각했던 것이 존경심으로 바뀐다. 어떻게, 얼마나? 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지금 현재도 아닌데, 그 시대에, 실천했다는 그 사실이, 한없이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더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더 오래 책을 읽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용기 없음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오늘도 책 소개 어딘가에서 비슷한 구절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분노는 그저 분노일 뿐이다. 




























「그렇지만 가정과학 옹호자들은 가정관리의 합리화된 논리를 따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만일 가정관리 활동이 정말로 “전문직”의 내용이라면 글자 그대로 가정을 탈사유화하는 것은 왜 안되는가? 가정의 기능을 훈련된 전문가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왜 안 되는가? 엘렌 리처즈와 그녀의 동료들은 비누 제작, 실잣기 등등이 모두 산업에 흡수됨으로써 개선되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요리, 청소, 육아는 왜 안 되는가? 사실 “가정”은 도대체 왜 있어야 하는가? 관습적이고 비과학적인 가정에 대해 비판한 모든 미국 비평가들 가운데 오직 샬롯 퍼킨스 길먼만이 이 단계에 도달했다. 


“우리는 가정과학의 초석을 세운 사람들이며, 가정경제학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또 우리는 가정 산업의 표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든 문제에 필요한 것이 바로 가정 산업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한 사람이 서너 명의 타인을 위해 요리하거나 청소한다는 사회적 구조는 본질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 길먼은 주장했다. 아무리 많은 “과학”이 가정에 세세하게 적용되었어도 가정의 규모 그 자체가 집안일의 합리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람 만들기” 차원에서 보자면 여성이 남성을 시중드는 모든 가정은 과학적이든 아니든 간에 필연적으로 “끝없는 이기심을 [남성에게] 길러 주는” “자아도취의 온상”이었다. 길먼은 “효율성” 주장을 그 논리적 결론에까지 밀어붙였다. 과거와 같은 가정을 해체하고, 중앙집중식으로 음식 준비, 청소, 양육, 세탁을 담당하는 전문 직원을 갖춘 아파트 공동체에 사람들을 살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성들 대부분이 남자와 동등한 기반으로, 세상에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될 것이었다.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뭐라도 끄적이자 싶어 알라딘 들어왔는데! 그동안 틈틈이 읽은 책 옮겨적고 짧게나마 적어놓은 것들이 몽땅 사라졌.....@@ 어디 갔노! 돌리도!!! ㅠㅠ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청아 2021-04-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ㅇㅠ 슬프면서 웃겨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4-21 04:23   좋아요 1 | URL
흑... 울어야 하나요 웃어야 하나요.... ㅎㅎㅎ ㅠㅠ ㅋㅋㅋ ㅠㅠ

psyche 2021-04-21 0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어째요 ㅜㅜ

난티나무 2021-04-22 03:59   좋아요 0 | URL
하핫^^;;;; 제 불찰이겠죠. 아마도, 그럴 거예요... 흑흑....

라로 2021-04-2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너무했다 알라딘,,, 그러면 왜 그런 기능이 있는 걸까요???ㅠㅠ

난티나무 2021-04-22 04:01   좋아요 0 | URL
임시저장 한 달인데 그럼 한 달 동안 써놓은 글 안 불러왔다는 이야기...가 되나요...^^;;;; 그건 아닌데 아직 한 달 안 됐는데... 힝.. 이러면서 한 달 지나 없어진 게 맞으면 전 뭔가요?ㅋㅋㅋㅋㅋ

라로 2021-04-22 12:08   좋아요 0 | URL
한 달이 유효기간인 줄 처음 알았어요,, 사실 저는 임시 저장한다고 해도 까맣게 잊고 있는 일인,,,저는 뭔가요??^^;;;;
암튼, 근데 아직 한 달이 아니면 서재지기님에게 부탁해보셈. 복구 가능하지 않을까요?? 한 달이 아니라면???

난티나무 2021-04-22 18:40   좋아요 0 | URL
그냥 잊어버릴래요.ㅠㅠ 다시 쓰죠 뭐. 흑흑.

수이 2021-04-2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너무 문제가 많은....... 왜 그러니? 대체? 알라딘아!!!!

난티나무 2021-04-22 18:4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