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언제야, 지지난주? 전번에 갔던 중고가게에 다시 가서 문고판 쪽을 뒤졌다. 이제 두 달 가까이 못 움직이게 생겼으니 중고책 고르는 재미도 스탑이다. 


















존 르 카레, <모스트 원티드 맨> 

읽은 책 없고 이름만 들었고 심지어 이름 보고 프랑스 작가인 줄 알았던.ㅎㅎㅎ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딱 이 소설 하나만 실려있는 얇은 책이다. 한국어판 집에 있는데 비교하며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영화도 보고. 


에릭 엠마뉴엘 슈미츠, <밍 부인이 가져본 적 없는 열 명의 아이들> 

아 진짜 이 작가 좀 읽고 사라고! 나에게 소리지른다.ㅎㅎㅎ 얇으니 원서로 도전해보도록. 다행히 한국어판도 내게 있어.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프랑스어판으로 읽을 자신은 없다. 그러므로 한국어판을 사야 한다. 번역서 왤케 많아?@@ 집에 있던 문고판이 발췌본이라 전문이 실린 문고판 발견해서 가져왔다. 작은넘에게 읽으라고 주었더니 앞의 편지글 부분이 아주 지루해 미치겠다며 난리를 치기에 마지막 서너 페이지는 그냥 띵가먹으라고 해줬다.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그냥 이름만 보고 집어옴.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전번에 산 <사물들> 문고판도 안 읽었는데. 흠흠. 


Stephanie Hochet 는 모르는 작가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아이들 읽히려고 사옴. 내용 괜찮길. 





***


자, 그리고 구매함을 열어본다. 허허. 

전자책 구입 리스트. 
































한번에 '혹' 해서 사는 책들은 잘 없다. 모든 책들을 어딘가에서 보고 '혹' 해서 '사야지보관함'에 넣는데 책을 살 때마다 다시 살피고 또 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혹'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 책을 왜 보관함에 넣었더라를 생각하게 된다. 대단한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는 '혹' 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나?) 

그래서 사야 겠다고 생각한 과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예를 들면 플루타르코스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 어느 책에서 본 것이라는 기억은 있는데 어느 책인지, 왜 사야 겠다고 다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사야 겠다고 담아두었으니 산다. 이 또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최현숙,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플루타르코스,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 

루이자 메이 올컷, <신데렐라의 탄생> 

이주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이것만 샀느냐. 당연히 아니다. 쿠폰과 적립금 제도는 무한개미지옥과도 같아서 엄청나게 큰 인생 변화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역할 수 없다. 알라딘이 구매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모두들 다 잘 아실 터. 종이책도 사야 하고 굿즈도 사야 한다. 개미지옥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새 종이책도 두 권. 


















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강남순,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땡스투는 왜 맨날 까먹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이제 적립 안 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처음 보관함 담을 때 이 분에게 해야지 했던 마음가짐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그 분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드물지만 땡스투할 만한 글을 못 찾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에도 잊은 것이 있다. 그래도 몇은 했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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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03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궁금. 암튼 구매목록 아주 좋은걸요!! 제 취향이 많이 보여서 구런가봐요. ㅋㅋ 사야지보관함 저도 그런 식으로 시간 낭비 엄청 합니다요. 😰 아마도 우리는 책을 신중하게 사야 하는 처지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고요. 😅

난티나무 2021-04-03 20:27   좋아요 1 | URL
집에서 10킬로 이상 못 나가는 봉쇄령 떨어졌어요. 일단 한 달이고 개인적 사정(?)으로 다음달에도 집콕할 예정이라 두어 달입니다.ㅎㅎㅎㅎ 가게들이 문을 열지 닫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라로님 읽으신 책들~!! 땡투 해야 하는데 잊어버렸어요! 제가 그래요.^^;;;

맞아요 신중하게. 그런데 사고 나서 한참 뒤에 정작 책을 손에 들 때가 되면 내가 이거 왜 샀지,가 되니 이거 과연 신중한 거 맞나 싶기도 하네요? 웃프다.ㅠㅠ

유부만두 2021-04-03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저 책 한 권만 딱 한 권만 더 추천할게요;;; 애니 프루 <시핑 뉴스> 정말 좋거든요;;;;

청아 2021-04-03 22:12   좋아요 0 | URL
<시핑뉴스>첨 들어봤네요! 느닷없이 제가 담아감요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4-03 22:28   좋아요 1 | URL
애니 프루 책은 왤케 안 사 지지요? 시핑 뉴스 좋다는 말 듣고 한참 예전에 담아두었는데 아직도 못 샀다는요.ㅎㅎㅎㅎㅎㅎ 담에는!!!!!! 감사합니다~^^
 















내게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앞으로 어찌 될런지가 너무도 궁금해서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지나간다. 묘사를 하는 부분은 통짜로 건너뛰기도 한다. 옛날에는 정말 그렇게 읽었다. 책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니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남들도 그렇다고 인정해줄 때 나는 책을 그런 식으로 읽었고 그래서 늘 기억이 흐릿했다. 한마디로, 헛읽었다고 하겠다. 요즘은 한 문장을 길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이 못된 습관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레이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아마도 많은 문장들이 눈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쌩 지나갔을 것이다. 


수많은 문장들 속에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문장이 있다. 

"고칠 수 없으면 참아야 한다고." 

그레에스에게, 정말 그러냐고, 그래야 하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고치고 싶고 주변사람들을 고치고 싶다. 그럴 가능성이 1도 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냥 참고 살아야 하냐고, 어디에 대고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을 지른다. 그렇게 참고 사는 여자들이, 모두가 참고 있는 세상이, 너무 웃겨서 웃기지도 않다. 내 안의 다른 한편에서, 고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거기에 대항(?)하면 나만 나가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결국 도망치는 것밖에 없지 않냐고,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맞서지 않고 참는 것처럼 보이면서 틈새를 공략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썩어들어가는 내 마음은, 솔직하게 문제를 짚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내 마음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두고? 이브가 저주받은 거라고 그렇게 퉁치면서? 


오래 전부터 소설을 좋아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하곤 했다. 소설만 읽었었다. 이제는 소설 읽기가 힘들어진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그저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던 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본다는 만족감이었나. 지금 나는 소설에서 무엇을 보나. 무엇을 보기는 하는 건가. 소설을 읽고 좋다 좋지 않다를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은 무섭다.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불안함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레이스>도 불안하다. 나는 왜 이 소설들이 불안하고 무서운 것일까? 








「사이먼은 기사를 읽는다.  


길이 이런 상황이건만, 안타깝기는 하나 죄를 저지른 한 인간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모이다니 그런 광경을 즐기는 병적인 취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광경을 공개하면 풍기가 개선되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성향이 억제될까?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사이먼이 말한다. 

"제가 만약 그 근처에 살았다면 가서 봤을 거예요." 리디아 양이 말한다. "선생님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사이먼은 이처럼 단도집입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불건전한 흥분을 유발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에게 잔인한 상상을 심어 주는 공개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성격을 안다. 그의 호기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이긴다. "직업상 그랬을지 모르죠."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여동생이 있었다면 가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리디아 양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요?" 

"여성들은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보면 안 됩니다." 그가 대답한다. "그러면 우아한 심성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의식적으로 거드름을 피운다.」 (134~135)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항상 어릴수록 고분고분하다고 착각한다.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것은 사이먼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며느리다. 

... 

가끔 그도 항복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어머니가 내민 어린 아가씨들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후보를 고르면 된다. 그러면 일상이 정연하게 이어질 테고, 먹을 만한 아침이 차려질 테고, 그는 아이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아이를 만드는 행위는 하얀 이불로 조심스럽게 가려진 채 은밀하게 진행되고 절대 입 밖으로 거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싫어하면서도 의무적으로 응하고, 그는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집에는 온갖 문명의 이기가 갖춰질 테고, 그는 호강을 누리며 쉴 것이다. 그보다 못한 운명도 많다.」 (136~137) 



「저는 그때부터 여자들이 그런 깃발 같은 걸 만들어서 침대를 덮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어요. 여자들은 원래 방 안에서 침대에 가장 신경을 쓰잖아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경고의 의미라는 것을요. 선생님이 침대를 평화로운 곳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건 침대가 휴식과 편안함과 단잠의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침대에서 위험한 일들이 아주 많이 벌어지거든요. 침대는 우리가 태어나는 곳이니 우리가 인생 최초의 위기감을 맛보는 곳이죠.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곳이니 종종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남녀 간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죠. 선생님도 무얼 말하는지 아시겠지만,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 하고, 누구는 절망이라 하고, 또 누구는 참아야 할 모욕일 뿐이라고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대는 우리가 잠을 자고, 꿈을 꾸고, 대개는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에요.」 (240) 



「메리가 너는 이제 여자가 된 거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다시 눈물이 났어요. 메리는 저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어요. 늘 바쁘거나 지치거나 아팠던 우리 어머니라도 그렇게 다독여 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더니 제 것을 살 때까지 쓰라고 빨간색 플란넬 페티코트를 빌려 주면서 어떤 식으로 옷을 접어서 핀을 꽂으면 되는지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걸 이브의 저주라고 부르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브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는 무슨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녀 탓으로 돌렸던 바보 같은 아담을 참고 견뎌야 했던 거라고 말했어요.」 (245) 



「그리고 2주 동안 모든 것이 매우 평온하게 흘러갔군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내 진술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예, 맞아요. 내가 대답한다. 그럭저럭 별일 없었죠. 

그런데 모든 것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가요? 일상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나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날마다 어떤 일을 했느냐고요. 

아, 예전과 똑같았어요. 내가 말한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했죠.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거였나요? 

나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조그만 하얀색 네모가 그려진 노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는 거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남자들은 자기가 어지럽힌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지럽힌 것뿐 아니라 그들이 어지럽힌 것까지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앞날을 걱정하거나 저지른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길러졌을 뿐이다.」 (316) 



「아침이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가 그 안에 나를 싣고, 문을 꼭 닫은 채 기차처럼 울면서 무관심하게 한결같이 정해진 선로를 따라 끝까지 달려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벽에 몸을 던지며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고, 주님에게 내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이야기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난장이다. 음울한 포효,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깨진 유리와 갈라진 나무의 잔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집 혹은 빙산에 부딪히거나 급류에 휩쓸려서 승선한 어느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는 배처럼. 그러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 이야기 비슷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이것을 들려줄 때.」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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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번 그렇진 않지만 특정 부분은 휘뚜루마뚜루 넘어가요ㅋㅋㅋㅋ워낙 훌륭한 책이 많으니 가끔은 괜찮은것도 같아요.😁

난티나무 2021-04-03 20:21   좋아요 1 | URL
아 미미님 반가워요!ㅎㅎㅎ 저는 워낙에 자주 넘어가서 정신 차리고 다시 읽는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히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하하~!!!

라로 2021-04-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2. 😅😅😅 특히 불편한 얘기나 무서운, 잔인한, 등등 문장은 더욱요. 😰

난티나무 2021-04-03 20: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문장과 이야기 자체가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
 

3월에 읽을 책들을 쌓아놓고 좀 많나 싶었는데 과연 좀 많았다. 별일이 없었다면 다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별일이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 (세 권의 끄트머리를 아직 못 끝내고 있음) 다행히도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계속 그 없는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도록. 


4월에는 인터넷 바다를 두루두루 헤엄쳐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조금만 쌓아보자 하고 책을 보는데, 음 꺼내고 싶은 책이 많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일단 이렇게 꺼내본다. 


4월 여성주의 읽기 《200년 동안의 거짓말》 

함께 읽을 페미니즘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케이트 쇼팽 단편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짝짝짝. 혼자 고르고 박수치고. 

박수치고 나서 복도 책꽂이 앞에 섰더니 거기서도 안 읽은 책들이 째려본다. 어떡하지? 추가할까? 다 못 읽을 것 같은데. 몇 권을 소심하게 꺼냈다가 다시 조용히 꽂아둔다. 좀더 기다려. 내가 말이지, 전자책으로 사놓고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것들이 있거든? 시간이 되면 그것도 좀 열어봐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너희들은 좀더 기다리렴. 

































*** 

 

뭔가 엄청 책을 많이 읽어대는 듯이 보이지만, 1년여 전만 해도 내가 이렇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말도 안 되는 시국이 나에게 판을 깔아준 것일 수도. 주어진 시간은 매일이 똑같은데 책을 쌓아놓고 읽고 말테야 모드를 장착하고 다른 일들을 외면하기. 되도록 안 하기. 집에 있는 일손 써먹기. 그리고 나는 책을 읽는다. 내년이 되면 이런 시간이 다시 없을 수도 있다. 고맙게도(?) 프랑스는 토요일 저녁부터 다시 봉쇄다. 학교도 한달간 닫는다. 9월 초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에게는 혼밥의 시간이 없을 것도 같다. 살짝 우울하지만 괜찮다. 안 읽은 책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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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4-01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말도 안 되는 전세계적 상황이 난티나무님께는 독서의 시간을 제공해주다니요. ㅎㅎㅎㅎㅎ
봉쇄의 시간 잘 보내시기 바래요.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과 함께라면 자동으로 좋은 시간이 보장될 것 같기는 하네요^^

난티나무 2021-04-01 21:10   좋아요 2 | URL
쉿 🤫 살림 안 하고 책 읽는 거 아무도 알면 안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04-01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자주 등장하는 문장, ˝혹시나~~ 많을까 했는데, 과연 많았다˝^^ 저도 매주 도서관 순례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답니다

난티나무 2021-04-01 23:46   좋아요 0 | URL
과대평가하는 건가요, 모두들?^^;;;;; 저는 과대평가였습니다. 하핫~

라로 2021-04-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짝짝짝👏👏👏👏👏👏👏👏👏
읽을 책 리스트 멋져요!!👍

난티나무 2021-04-01 23:48   좋아요 0 | URL
힛!!! 감사합니다 라로님!!! 🎶

수이 2021-04-0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에도 든든하게 쭉쭉 나아가는 겁니다. 프랑스 봉쇄령 뉴스로 듣고 ㅠㅠ 아 어떻게 하나 했는데;; 살짝 우울하지만 괜찮다는 난티나무님 든든!!

난티나무 2021-04-02 15:04   좋아요 0 | URL
저는 작년 1월말부터 사실상의 봉쇄였어요.ㅠㅠ 집에서 혼자 잘 노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4-5월엔 장도 인터넷으로 보려고 해요. 진정한 집콕이 시작됩니다. 허허허 그저 웃지요.

다락방 2021-04-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난티나무님 서재만 오면 읽어야 할 책들을 저 역시 쌓게 되네요. <보이지 않는 여자들> 저도 사두고 안읽고 있었는데 역시 4월 도서와 함께 읽도록 꺼내둬야겠어요. 일단 어디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네요. 어딘가에 있긴 있는데..

난티나무님의 다음 페이퍼를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샤라라랑-

올리브 키터리지에 케이트 쇼팽에.. 너무 좋네요. 히힛.

난티나무 2021-04-02 15:09   좋아요 0 | URL
책 찾기 어우 그거 험난한 과정인데요. 저는 책 한 권 찾으려다 꺼내는 다른 책이 너무 많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찾던 책은 못 찾고 대신 다른 책들이 제 손에....ㅋㅋㅋㅋㅋㅋ
아 저는 다락방님보다 훨씬 적은 양의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왜 찾는 책이 없는 걸까요? 얼마 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어야 겠다 하고 막 찾는데 없는 거예요? ㅎㅎㅎ
소설 좀 많이 읽으려고 꺼내놓긴 했는데 음 요즘은 소설 읽기가 왜이리 힘든지요? ㅎㅎㅎ
 
사회주의 페미니즘 - 여성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자유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 따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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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생각한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기준에 따라 생각한다.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책을 읽는다. 아! 하고 깨닫는다. 저자의 주장에 감탄하고 현실에 경악하고 나의 자리를 돌아보며 절망한다. 다른 책을 읽는다. 아! 하고 또 깨닫는다. 전번 읽은 책의 주장이 약간은 편향된 것이라는 주장에 감탄한다. 또 다른 책을 읽는다. 새로운 것을 본다.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시각이다. 점점 복잡해진다. 다시 다른 책을 읽는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아닌, 총체적 난국을 본다. 내가 처음 깨달았던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의심스럽다. 책의 내용을 의심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정말 맞는가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더해져만 간다. 정답은 아직 있을 수 없다. 머릿속이 바닥에 쏟아져 흐트러진 책무더기 같다. 책탑을 쌓을 수밖에. 무너지지 않게, 느리게, 차곡차곡. 


*** 


"지속 가능성 문제의 핵심에는 비인간 생물, 육체, 여성 노동, 재생산 등의 영역에 대한 의존을 부정하는 이런 서구의 정복자 의식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선언하는 낙관주의 이데올로기는 장소가 바뀌어도 정치색은 바뀌지 않는다. 오늘날 이 이데올로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자연화한다. 어린애처럼 선견지명이 없고, 동물처럼 미래의 만족을 위해 인내할 줄을 모르며, 학력 등의 자격이 부족하거나 합리적인 자기 개발을 충분히 하지 않는 빈민들은 이성과 거리가 먼 자연으로 여겨진다(Ehrenreich 1989). 억압의 네트워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확대된다."(711, 밸 플럼우드) 


억압의 네트워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확대된다,는 말은 내일도 내년에도 십년 뒤에도 유효할 것이다. 앞부분의 「선구자들」 을 읽으면서 끄적였다. '아아, 정말 세상은 언젠가 바뀔 수 있을까. 200년 전에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환경은 더 나빠졌다. 기술은 급격히 발달하고 사람들은 기계화된다.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암울하다. 직설적인 어법의 문장들을 보니 속이 시원하면서 동시에 갑갑함이 밀려온다.(2021/03/04)' 


책의 두께에 눌리고 여러 저자들의 다양한 시각에 눌리고 때로 놀라기도 했다. 초반에 읽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힘들어진다. 페미니즘을 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펼치면 쉽게 나가떨어질 수 있겠다. 뚜렷한 기준 없이 읽으면 또다른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 두루두루 다른 더 쉬운 책들을 읽고 오라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도전한다면...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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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 👍👍수고하셨어요!

난티나무 2021-04-01 19: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미미님!!!!!❤️❤️❤️

다락방 2021-04-0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너무 멋져요! 👍🏻👍🏻👍🏻

난티나무 2021-04-01 19:36   좋아요 0 | URL
넙죽! 고마워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던 말들이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니,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제약회사의 돈벌이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 


책의 목차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밑줄친 부분을 옮기면서 어제 본 예능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암 투병 중인 엄마가 딸의 아침을 차려주려고 주방에 서 있는데 머리는 박박 밀고 힘겨운 모습이다. 사진을 보고 패널들은 어머니의 사랑 운운하며 뭉클하다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뭉클하지 않았다. 뭐가 감동이란 말인가? 저렇게 힘겨운 상태인데도 딸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제 손으로 아침을 차려먹지 않는 딸(아주 어리다면 할 말 없음), 보이지 않는 짝(없는 상황이라면 이 또한 할말 없음).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죽을 병에 걸려서도 식구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여자는 무엇일까?


이 세상은 거짓말을 한다. 모두가 속는다. 돈벌이가 되면 더 많이 철저하게 속인다. 사람들은 속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말한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의심 없이 매일 삼킨다. 그들이 생각하는 당연함이 거꾸로 이 사회구조를 떠받친다. 평생에 걸쳐 몸의 변화를 확연히 겪는 여자들이,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당한다. 편견과 선입견과 혐오와 잘못된 정보들이 여자들에게 쏟아진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의심하라!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 (p.354) 


(* 책 표지의 정희진 추천사 : 편견을 과학으로 믿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여성주의 입문서.) 





"생리전증후군 신화는 무수히 많은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든 깎아내리고, 평가 절하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화가 나 있거나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인 여성은 생리 중일 거라 생각하는 것조차 그 여성의 발언에 ‘못 믿을 여자‘라는 커다랗고 새빨간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성이 우리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생리 때문‘이라는 생리 책임 전가는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상대의 힘을 빼앗는 수단으로 오늘날 남녀 모두가 휘두르고 있다." - P110

"문화적으로 ‘착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날 카드에 적힌 ‘엄마, 필요할 때마다 늘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뭉클한 문구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상을 달성해내는 여성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오랫동안 자제하는 것이다. 착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뒤엎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으레 평정심을 유지하고 늘 과묵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 P111

"의사라는 직종을 남성이 지배하게 된 것은 과학 혁명 덕분이었다. 이 시기에 민간전승이 아닌 과학이야말로 의술의 토대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러한 신생 남성 의사들이 자신들의 의술을 홍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산파들의 민간 지식을 폄하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막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여성 치료사와 자신들을 차별화했던 한 가지 방편은 ‘과시적 의술‘로 알려진 극단적 의술을 행하는 것이었다. 의업 초창기 시절의 의사들은 사혈과 설사약같이 극단적인 효과를 내는 치료법을 처방했지만 그런 치료법은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악화시켰다." - P155

"여성의 완경과 노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대부분 이윤을 내기 위해 확립되고 조장되고 유지된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신화 창작 능력을 최악의 방식으로 오용한 것인데, 수십 년간 무수히 많은 여성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제는 그 정도를 정량화할 수도, 심지어 완전히 알릴 수도 없을 정도다. 이러한 완경 신화는 고의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여성을 불가능한 이상에 매달리게 했으며, 부작용으로 병을 유발하고,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 P285

"성별 고정관념으로 득을 더 많이 보는 건 일반적으로 남성들이지만 남성들 역시 이처럼 쓸데없고, 문제 많고,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관습의 대가를 일부 부담한다. 남성들에게는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끝없는 압박이 어마어마하게 가해지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역사를 통틀어 남성들은 전쟁이라는 잔인무도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본인의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 감내해왔다.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덫에 갇혀 있는 동안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생활전선의 최전방에 갇혀 있었다. 이후 담론에서 나는 여성의 호르몬 관련 신화와 같이 성별에 기반한 신화들이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탈출구를 찾아 몸부림칠수록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덫과 같다. 벗어나려고 해도 문화 규범이 옥죄는 탓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한은 누구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체현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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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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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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