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저자들의 짧은(?) 글을 모아놓은 책이라 생각보다 진도가 느리지 않다. 워낙 두껍다 보니 읽는 대로 조금씩 밑줄도 남기고 그러는 걸로. 

















4장 인권, 재생산 건강, 경제정의는 왜 분리될 수 없는가 


"복잡하게 뒤얽힌 세계무역은 언뜻 보기에 재생산 및 성적 권리와 거리가 먼 듯하지만, 실제로는 건강과 인권, 거시경제학이 만나는 연결고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을 집행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활동은 국가 법률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한 국제협정(가령 위험 폐기물을 비롯한 환경 독소의 교역 금지)에 앞서는 권한이 있다. 이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은 제네릭generic 약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비특허 공금업체로부터 이런 약을 싼 값이 구입하기가 -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 쉽지 않다. 무역 제재를 비롯한 징벌 조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p.166) 


남인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또 슬퍼졌다.ㅠㅠ 




5장 욕구에 바탕을 둔 성정치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다시 주장한다 


"정서 능력은 인지와 연결되며, 그 안에 각인된 사회적 맥락의 흔적과도 연결된다. 수많은 인간 잠재력 가운데 하나로서 정서 능력은 또한 육체의 다른 물질적 욕구 - 음식, 주거, 질병이나 부상의 회복 등에 대한 의존 - 와 관계가 있다. 이 모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태의 사회적 협력이 필요하다. 굶주림과 마찬가지로 정서적 관계에 대한 욕구 역시 역사적으로 충족되며, 다양한 사회구성체에서 각기 다른 형태를 띤다. 이러한 정서적 잠재력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에도 포함된다. 이는 필수적인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고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분명하게 그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욕구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인간 잠재력의 발전을 조건으로 삼는다고 주장할 때 종종 언급하는 '자아실현'을 위한 인간 잠재력 중에는 정서적 욕구도 포함된다." (p.178) 


5장은 좀 어려웠다. 모호함 속에 무슨 이야기인 줄은 짐작가는 정도. 금지된 욕구, 의식의 상품화... 




6장 가족은 죽었다, 새로운 가족 만세! - 주디스 스테이시 


"근대 가족 제도가 발흥함에 따라 명백하게 가부장적인 전근대 가족 경제는 소멸하게 되었다. 따라서 근대 가족 제도는 사회학자 데니즈 칸디요티가 말하는 '가부장적 교섭patriarchal bargain'에서 변화를 나타냈다. 고전적인 가부장적 교섭에서 여성들은 안전한 사회적 지위와 보호를 얻는 대가로 공공연한 종속을 받아들인다. 근대 가부장적 교섭은 공사 영역 분리와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로 이 거래를 보기 좋게 포장한다. 근대 남성과 여성은 부모나 친족이 경제/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중매하는 전근대적 결혼 대신 사랑과 교제를 추구하며, 개인적인 욕망을 상호 보완하기 위하여 그들 스스로 평생을 결합한다.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주부 사이의 분리된 하지만 동등한 분업이라는 겉모습 아래, 여성과 아동은 점점 남성의 소득에 의존하게 되었다. 19세기에는 '진정한 여성다움'에 대한 숭배가 생겨나면서 가정생활과 모성애가 찬양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여성성에 관한 개념들은 계속해서 서구 가족 이데올로기에 주입된다. ..." (p.189) 


가족이란 무엇인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라는 구절을 보니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떠올라서 책꽂이에서 꺼내왔다. 그동안 서너 번은 읽었을 텐데 단편소설집이네? 헐, 장편소설인 줄 알았... 다시 읽어봐야 겠다. 이번달 책탑 이미 쌓았는데, 거기 더 추가하면 안 되는데, 하며 일단 얹어놓음. 

6장을 읽기 전, 어제 북플에서 타고 넘어가 가족 관련 검색을 하다 전자도서관에서 충동대출한 책도 있다. 조주은 <기획된 가족>. 아,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하면 안 되는데! 이미 늦었어. 벌써 읽기 시작.ㅠㅠ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8조(혼인과 출산) 1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 

뭥미, 싶은 각주의 내용.ㅠㅠ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이라니... 






















7장부터 내일 읽으려고 책끈 걸어두다가 첫 인용구를 보고 말았다. 


"그는 토요일 밤마다 아내를 때렸다. 제 실패를 아내의 얼굴에 자국으로 남김으로써 아내 탓으로 돌리려고 한 것이다. 

- 앨리스 워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 


오마이갓. 또 추가? 전자책으로 사두고 아직 안 읽은 소설인데, 이번 달에 읽어야 하나? 음음....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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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을수록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이 늘어나는건 기쁨일까요 슬픔일까요? 지금 읽으려고 쌓아놓은 책탑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인건 슬픔이구요. ^^

난티나무 2021-03-07 21:48   좋아요 0 | URL
기쁨이면서 슬픔인 것이, 바라만 봐도 행복하고 말이죠. 그런데 한번에 한권밖에 펼치지 못하니 슬픔인 거고요. ㅎㅎㅎㅎㅎ 아이러니~~~~~ 이건 명백한 모순입니다. ㅎㅎㅎㅎㅎ
책탑은 무너지면 또 쌓으면 되지 않...을까요.^^;;;;;;

다락방 2021-03-11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엄청 많이 읽으셨네요. 저는 서문 읽는 중인데요 ㅠㅠ 요즘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아요.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고 저는 이번 책을 완독할 수 있을지..
주말에 몰아서 봐야겠어요. 흑흑.

난티나무님 같이읽기 책 함께 읽어주시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페이퍼로 풀어내시면서 다른 책들 가져오시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대환영 이랄까요. 후훗.

난티나무 2021-03-11 18:10   좋아요 0 | URL
이 글은 7일 쓴 거고 오늘은 11일이므로 저는 지금 400쪽을 돌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ㅎㅎㅎ
요즘 바쁘신 것 같아요. 건강 잘 챙기세요. 뭐니뭐니해도 몸이 건강해야 하더라고요. 힘!!!!!!!
 















<3장> 월경전증후군, 노동 규율, 분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런 생각을 설명한 바 있다. "흡사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 끝없는 반복이다. 깨끗이 치우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면 치우는 일이 날이면 날마다 계속된다. 가정주부는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서서히 닳아 없어진다. 주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무한히 반복할 뿐이다." " (p.145) 


어찌 밑줄 긋지 않을쏘냐. 

[제2의 성]을 읽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읽고 싶어서 일부러 한글번역본을 펼치지 않는다,는 좀 거짓말이고, 아무튼! 읽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적으로 정해진 일주일이라는 주기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산업자본주의에서의 노동 규율 요구를 중심으로 정해진 주기 말이다. 심지어 남성은 여성보다 더 강하게 일주일 주기에 맞춰 자신의 기분을 조직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주간 주기에 따른 계획적 결근(제너럴모터스에서는 월요일,금요일 결근율이 10퍼센트에 달할 정도다)은 미국 산업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155) 


오! 또다른 시각.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라. 

얼마 전 옆지기가 나에게 두 번이나(!) 한 이야기가 있다. 여성들이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월/금요일에 기를 쓰고 맞춰서 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성 CEO가 있는 회사에서도 그렇다고,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더라고. 윗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옆지기의 직장에서도 월/금요일 아프다고 안 나오는 직원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경우 남녀의 비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남자들도 그러던 걸. 오히려 더 많이. 담에도 또 그 이야기 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두어야지. 인용구 긁어서 옆지기 톡으로 보냄. 



서론에서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중 월경전증후군 부분을 보고 책장에서 꺼내온 책이 있다. [호르몬의 거짓말]. 사놓고 아직 안 펼쳤던 책, 이참에 함께 읽는다. (100여 페이지 정도를 읽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은 괴로운 일인 것 같다. 반성도 자주 한다.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휘리릭 넘겨본 이 책의 뒷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 


나의 의심은 정당하다. 대체로 정당하다고 해두자. [호르몬의 거짓말]은 아직 다 읽기 전이지만 추천. 월경, 임신, 출산 등의 상황에서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거짓말들. 

한 권 더. [가슴 이야기]도 함께 추천해 본다. 월경과 마찬가지로 가슴과 관련한 역사와 새로운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읽은 지 좀 되었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나중에 한번 더 읽어야 할 듯. 다 읽으면 뭐라도 좀 써놓으라구.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것 같고(이런 시각을 갖고 성교육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여자들이 읽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모든 남자들이 읽으면 좋겠는데, 늘 그렇듯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는. 혹여나 읽는대도 예상들 하는 그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옆지기가 [호르몬의 거짓말] 책 앞뒷면을 훑어보고는 씨익 웃었다. 그 웃음 뭐냐 물으니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답한다. 깨달음의 의미가 아닌,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그런 웃음. 하아. 읽기나 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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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7 0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3-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얼른 시작하고 싶어지는 페이펍니다!!

난티나무 2021-03-07 04:06   좋아요 0 | URL
시작시작!!!!!!!!!
 



조금 많나 싶기도 한데 일단 이렇게 쌓아보았다.

전자책 대여 되도록 하지 말고 있는 종이책 먼저 읽기.


3월 여성주의 읽기 책 <사회주의 페미니즘> 낸시 홈스트롬

그리고 개인적으로 연결시킨 책 <호르몬의 거짓말> 로빈 스타인 델루카

노년의 페미니즘이 궁금하다 <나이듦을 배우다> 마거릿 크룩생크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코르셋> 쉴라 제프리스

한뼘책방 <은유로 보는 한국사회> 나익주

지난달부터 띄엄띄엄 읽고 있는 <비건 세상 만들기> 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소설 좀 읽어! 그래서 일단 네 권. 

<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그리고 프랑스어책 읽기는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하루 1페이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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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6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소설 좀 읽어! ˝ 제가 뜨끔해져서^^쌓여 있는 책들 페이지 수 다 합치면 난티나무님의 3월, 정말 바쁘게 가실것 같아요. 책의압박은 행복한 압박같아요. 언제라도

난티나무 2021-03-06 14:30   좋아요 1 | URL
요즘 진짜 소설을 안 읽어서 ㅎㅎㅎ 제게 잔소릴 좀 해보았어요. 예전엔 소설만 읽었는데 말이죠.ㅎㅎㅎ
좀 많기는 한데 열심 읽어보려구요. 별일없이 읽자, 이 달의 목표입니다.^^

수이 2021-03-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덜덜합니다. 하지만 모두 궁금궁금. 코르셋은 읽고싶은데 아직도 못 읽었네요. 저도 콕! 하고 찜!

난티나무 2021-03-06 14:32   좋아요 0 | URL
좀 그렇죠?^^;; 방 책장에서 책을 빼다 보니 복도 책장의 책들은 후보에서 그만 알게모르게 밀려났다는...ㅎㅎㅎ 아우 진짜 사놓은 책부터 읽어야지!!! ㅋ
 

하늘이 흐리다

매일 학교버스 타는 것을 즐겨하던 아이가

오늘은 버스 타기 싫다 말한다

안 타면 차로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빠를 깨우면 안 되잖아,

아이가 말한다

안 되진 않지, 다만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렴

싫은 건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 않았을 때 이어지는 일들과

무관하고 싶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싫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지

나는 왜 그 일이 싫은지

하지 않으려면 온전히 끊어내는 것만이 답인지

궁금해지는 현관 앞 5초

아이는 문을 열고 나선다

학교버스 기사님의 아침 안녕을 저절로 바라게 되는 순간.



현관을 나서자마자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에 아침의 일이 생각나서,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을 옮겼다. 봄이 오나 보다 하는 중에 다시 겨울로 가는 것 같은 날씨. 하늘도 흐리고 바람은 부는데 드문드문 서있는 개나리나무에 벌써 꽃은 피기 시작하고. 그냥 노란꽃, 이른봄에 피는 꽃,에 불과했던 개나리는 이제 내게서 괴물나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섭도록 가지를 뻗쳐 위로 위로 자라는 힘에 놀란 지 여러 해, 마당에 두 그루 있는 괴물나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란 꽃을 피워대기 시작했다. 억울하겠다. 개나리는 원래 그리 생겼는데 너무 잘 자란다고 괴물이라고 부르다니. 사람의 집 울타리 안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행복할까. 내 집 마당이 생기면 적어도 개나리는 심지 말아야지. 개나리처럼 마구 커버리는 나무는 심지 말아야지. 가지를 안 쳐도 되는 작은 꽃을 심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생각하다 보니 그 생각들은 또 이기적인 생각이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다.

오늘도 뒤죽박죽이군 또 생각한다. 어깨를 움츠리면서 춥다, 소리내어 말해본다. 입 밖으로 나오는 내 목소리가 낯설다. 윤기나는 검정과 갈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나를 쳐다본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나갈 때마다 대문 안에서 컹컹 짖던 개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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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차를 훔치고, 마약을 하고, 주유소나 식당 종업원 같은 밑바닥 일자리를 전전했다. 우리는 고귀하지 않았고, 세상에 감사하거나 희망을 품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멸시하는 걸 알고 있었다." (p.78, 도로시 앨리슨, [계급의 문제]) 


사람들이 멸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건 맞다. 그 일들은 그러나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아,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일단 접어두고.) 흔히 '밑바닥' 일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다. 누가 어떻게 '밑바닥' 일자리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 

글의 요지는 알겠으나 굳이 밑바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까 질문해 본다. 답은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집세 낼 돈이 없을 때 카운터 너머로 딱한 미소를 짓거나 애처로운 웃음을 보낸다고 해서 수치스러울 건 전혀 없었다. 엄마처럼 자존심을 긁기도 하고 사정하기도 하는 식으로 남자들을 구워삶아 돈을 조금 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싫었다. 그럴 정도로 가난한 게 싫었고,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수치심이 드는 게 싫었다. 그건 구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면에서는 몸 파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에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경멸해 마지않았던 일이었다. 결국 나는 돈이 필요했다." (p.89, 도로시 앨리슨, [계급의 문제]) 


밑줄친 문장('어떤 면에서는 몸 파는 일이나 다름없었다.')을 보는 순간 거부감이 솟아올랐는데 이건 나만 그런 건가 궁금하다. 가난 때문에 사정하고 애걸하고 구걸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몸 파는 일'이 그렇게 한 문장의 수치심으로 뭉쳐서 던져버릴 만한 일인가?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론 다음 <선구자들> 부분에서 읽은 구절도 떠올린다. 아래 부분 읽으면서는 울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위의 인용구와 아래의 인용구가, 그러니까..... 그게...... 


"... 여성이 자유롭지 않다면 자기 이름값을 하는 게 가능할까?

오늘날, 아니 오늘날까지, 임금노동자가 자기 육체노동을 팔지 않고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것처럼, 여성도 자기 성을 파는 것 말고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다. 여성은 평생 동안 한 남성에게 자기 성을 팔아서 그 대가로 사회에서 존중을 받고 귀부인이나 일꾼으로 새장에 갇힌 삶을 살아간다. 아니면 밤이면 밤마다 성을 파는 '자유여성'이 되어 세상의 멸시를 받다가 빈민굴에서 삶을 마감한다. 어느 경우든 간에 (여성 자신이 정말로 이 문제에 관해 생각을 한다면) 그 여성은 자존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참으로 대단한 선택권이다! -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의 운명이 이러했던가? ... " (p.58, 에드워드 카펜터, [사랑의 성년기]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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